86학번 김대리가 부르는 솔아 푸르른 솔아

critic & column | 2005/02/26 14:52


86학번 김대리가 부르는 솔아 푸르른 솔아

‘조명빨’ 받으면서 마이크잡고 노래를 부르는 직장인, 모니터 속의 노래 가사와 배경 화면으로 등장한 야한 포즈의 여성, 무채색으로 어둡게 처리한 그림의 배경으로 간명한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그림. 여기에 세상 속에서 이제 막 자기 자리를 잡아 ‘대리’라는 딱지를 붙인 직장인의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는 ‘86학번 김대리’라고 하는 감각적인 제목을 붙였다. 화가 박영균의 명작 <86학번 김대리>는 시대와의 불화를 겪고 있는 서른 초반 청년의 모습을 한 폭의 화면 안에 신랄하게 담아내고 있다.

박영균, 86학번 김대리, 130*166cm 캔버스에 아크릴, 1997.

경희대 크라운관 옆 건물에는 굵은 팔뚝을 내민 인물이 눈에 띄는 유명한 벽화 <해방으로>가 있다. 박영균은 재학시절 창작동아리 ‘쪽빛’의 일원으로 그 그림을 그렸다. 벽화운동을 통해 사회변혁을 꿈꾸었던 ‘민주시화회’라는 미술동아리 동기생 얘기를 다룬 김형경의 장편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1993)는 박영균의 실재를 꼭 빼닮았다. 전형적인 386세대 화가인 박영균이 서른 초반에 접한 세상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대한민국 남녀노소의 놀이문화를 노래방이 완전정복한 지 그리 오래지 않은 1997년 여름 장마철. 비 오는 어느 날 박영균은 조각가 친구 조정현을 만나 노래방에 갔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타 하나 있으면 어디서든 둘러앉아 노래를 불렀지만, 노래방 문화가 급속히 번지면서 닭장처럼 닫힌 공간에서 기계음에 맞춰 마이크를 잡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아직 익숙하지는 않은 노래방에서 안치환의 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를 처연하게 목 놓아 부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박영균은 세대정체성과 시대와의 미묘한 갈등을 발견했다.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지 않을까. 백창우의 노래 ‘나이 서른에 우린’에 나오는 노랫말처럼, 서른 무렵의 직장초년생들이 겪는 사회적 성장통이 있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한국현대사의 격동을 고스란히 열혈청년의 삶으로 받아들였던 화가 박영균이 서른 무렵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이 한 장의 그림 속에 담은 것이다. 386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부상하고 간혹 ‘깜빵’에도 드나드는 시절이다. 김광석은 가고 없다. 노찾사는 잊혀지고 웃찾사가 대박이다. 지금은 차장이나 부장 정도 되어있을 이 땅의 수많은 ‘86학번 김대리’들. 요즘도 노래방에서 ‘솔아-’나 ‘광야에서’를 열창하고 있을까.

김준기(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박영균(1996-)은 경희대를 졸업했으며 네 차례 개인전을 였었고, 민중미술15년전(국립현대미술관), 리얼링15년(사비나미술관) 등의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현재 경희대 겸임교수로 있다. 작가 홈페이지 : www.mygrim.net
2005/02/26 14:52 2005/02/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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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 2005/02/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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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김> 2005/02/26 15:14

    AIG 생명보험 사보 [Withus 위더스] 4월호에 [이 한 장의 갤러리]라는 꼭지로 실릴 예정인데... 편집자 임명숙님. 이 블로그는 그냥 제 지인들만 오는 곳이니까 미리 올려두어도 괜챦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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