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처소와 향배를 묻는다
critic & column | 2008/10/24 18:19
현대미술의 처소와 향배를 묻는다
현대미술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현대미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현대미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미술의 처소(處所)와 존재방식에 대한 이러한 질문은 미술이 무엇인지를 캐묻는 매우 근본적인 명제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의 개념과 영역을 묻는 것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현대미술은 제도화한 미술문화공간 속에 존재한다. 미술문화공간은 미술관과 갤러리와 같은 전시공간이 주종을 이룬다.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일반에게 개방된 공간을 말하는 전시공간은 현대미술을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미술영역에 있어서의 근대성은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진 새로운 미술 언어게임을 통해서 무한히 팽창해왔다. 그것은 매체의 실험과 서사의 확장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감성의 영역을 넓히는 자율적인 언어로서의 시각예술 장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전시공간은 미술작품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장으로 기능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문화정치의 장을 만들었다. 항구적인 기관으로 출발한 미술관과 같은 근대적 기관은 미술을 자율성의 영역 안에 자리잡게 했다.
자본주의 시대와 조우한 현대미술은 전근대적인 힘의 원천이었던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을 이탈해서 시장권력에 포섭되었다. 근대적 의미의 예술적 공화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권력과 양립하는 듯하면서도 결과론적으로는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전시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대미술의 장은 그 권력중심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현대미술의 장은 그 바깥에서 벌어진 다양한 방식의 공격을 받아왔다. 근대적 시스템에 관한 총체적인 반성으로부터 포스트 모더니티 논의는 미술문화의 지형을 뒤흔들어왔다. 이 글은 근대적인 미술문화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태동하고 발전해왔는지를 간략히 짚어보고, 이어서 자본주의 시대 문화상품으로서의 미술작품의 면면을 언급한 후, 탈근대적인 미술문화가 어떻게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미술제도 분석의 시론(試論)이다.
1.
현대사회의 미술제도는 문화적 공화주의에 입각한 근대 문화정치의 산물이다. 근대기에 태동한 박물관 제도는 문화영역의 공화주의를 그 이념으로 한다. 전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독점해온 예술생산과 향유의 메커니즘은 근대 시기의 공화주의와 동행하면서 국가단위의 공공성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미술관 제도는 박물관의 역사와 그 궤적을 같이한다. 박물관이 과거의 유물을 통해서 동시대와의 소통을 지향한다면 현대의 미술관은 동시대의 미술문화와 동행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우리가 미술관 전시공간을 통해서 동시대 최전선의 미술담론을 확인할 수 있기까지 박물관/미술관 제도의 확립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실로 지대한 공헌을 했다.
박물관/미술관 제도의 확립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논의 틀은 미술문화를 공론장의 일환으로 해명해보는 일이다. 그것은 문화/예술 콘텐츠가 공공영역을 형성하는 과정에 기여함으로써 발생한 공론장으로서의 예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태동하던 근대기의 유럽에서는 소설 등과 같은 출판물과 더불어 전람회장과 공연장이 주요한 공론장으로 기능했다. 소설과 전시와 공연을 소비하는 대중을 일컬어 ‘le publique’라고 명명했던 19세기 프랑스의 사례로 보건대, 문화/예술 콘텐츠의 수취인은 전근대 시기에 볼 수 없었던 공공영역을 만들었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근대적 의미의 공론장을 문예적 공론장으로 명명했다. 문화/예술을 통해서 발생한 공공영역인 문예적 공론장은 근대성을 전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문예적 공론장은 강력한 체제를 갖춘 근대국가의 확립과 더불어 그 영향력이 퇴조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가 안착하면서 국가단위 공공성과 여론의 주도권을 장악한 언론의 영향력이 막강해짐으로써 문예적 공론장의 지위는 급격하게 낮아졌다. 전근대 시기의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에 포섭되어 있던 문화/예술 영역은 근대시기에 접어들어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전취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치며 주문생산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근대시기 예술가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예술을 자율성의 영역으로 자리잡게 했다. 정치와 종교, 건축과 연회, 예배 등에 부수적인 요소로 포섭되어있던 예술이 독자적인 장을 마련하고 예술생산과 향유의 체제를 공화주의에 입각한 문화정치의 영역으로 전환한 것은 공론장으로서의 예술이 획득한 예술혁명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의 예술은 또 다른 권력 아래 포섭되었다. 시장권력이다. 미술과 시장의 관계는 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제도를 규명하는 중요한 논제이다. 시장권력은 예술제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힘의 원천으로 작동해왔다. 자본주의 시대 미술제도는 미술작품의 사적소유라는 관계항 속에서 성립가능하다. 미술작품을 교환가치의 틀 아래에 두고 작품을 상품으로 만들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대, 즉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로 미술 작품의 생산과 유통이 포섭된 시대에 이르러 미술 작품/상품의 생산은 비약적인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시장권력은 근대적인 미술제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 의미의 예술적 자율성을 반쪽짜리로 만든 거대한 힘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 소통의 기틀을 확보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은 모든 종류의 생산을 상품 생산으로 환원하고 모든 종류의 가치를 교환가치로 소급하는 데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예술작품의 생산은 예술작품이라는 상품 생산으로 직결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율성의 영역에 위치한다고 자부하는 예술가들의 노동이 상품의 생산과 교환 방식에 의해 사회화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의 기능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힘에 따른 예술가들의 주문생산을 시장권력의 힘에 따른 주문생산으로 대체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아니면 비판적으로 거리두기를 하던 간에 예술노동이 상품생산으로 직결하고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힘이 자본권력에 달려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자리잡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논지가 공화주의 문화정치와 시장권력이 양립한 상황을 점검해보는 일이다. 얼핏 보기에 공화주의와 시장권력은 상호 대립하는 요소로 양립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아 근대의 공화주의가 자본주의 체제를 잉태하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술문화와 관련한 공화주의와 자본주의 시장체제는 한 몸에서 나온 두 개의 머리에 불과하다. 문예적 공론장 시기를 거치면서 자리잡은 공화주의 문화정치와 이후에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통어하는 힘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시장권력의 편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 위에 놓여있다. 요컨대 근대적 문화정치의 산물인 문예적 공론장에 연이은 미술시장의 태동과 발전은 자본주의 시대 미술 제도의 태동과 발전을 견인한 두 축이며 그것은 오늘날까지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두 가지 미술문화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다.
2.
미술작품은 시각적 기호들을 조작해서 만든 하나의 정보 체계이다. 시각예술의 영역에서 통용되는 이러한 시각정보를 생산하는 이를 시각예술정보생산자, 줄여서 예술가 또는 미술가라고 부른다. 예술가가 생산한 물질은 예술작품으로 성립한다. 예술작품은 전문적인 전시공간에서 전람회라는 형식을 통해서 작품발표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세상에 공개된다. 관람객은 전문화한 전시공간의 권능을 토대로 예술작품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작품 속에 담긴 의미의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려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인류사회가 합의한 문화적 관행이자 시각적 소통을 위한 기호론적인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관행과 합의는 시각예술문화를 둘러싼 인정시스템을 구성하는 절대적인 요소이다. 한 인간을 예술가로 인정하고 그가 생산한 시각정보체제를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예술을 사회적 관행이자 제도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은 인정시스템으로 구축된 영역이다. 그 인정시스템의 완고한 벽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엄격한 구분을 만들고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를 구별짓는다. 학력과는 무관해 보이는 예술계에서조차 학위조작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예술계야말로 얼마나 확연하게 학력자본에 의존해서 인정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역으로 말하자면 예술계야말로 인정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학력과 같은 비가시적인 상징자본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정시스템이 지탱하고 있는 미술제도 아래서 미술작품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메커니즘으로 기능하는가? 미술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 작품의 의미작용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미술작품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관객과 만나는가? 이제 미술 제도가 어떻게 소통 영역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여타의 경로를 통해서 전시공간에 진입한 미술작품은 감상의 대상이다. 미술작품의 감상은 오래된 약속이다. 회화작품의 경우 프레임 속에 담긴 형태와 색채는 기호작용을 통해서 관람객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우리는 하나의 그림을 보면서 'A공간에 B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김홍도의 <미인도>를 보면서 ‘저기 가채를 쓰고 한복을 입은 조선의 미녀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그 작품에는 한지 위에 먹으로 그은 선들과 채색안료를 입힌 평면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우리가 그 종이 위에 칠해진 선과 색들을 통해서 조선시대 미인을 떠올리는 것은 일련의 정보들이 시각적인 일루전(illusion)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인물화나 풍경화와 같이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호체계를 가진 작품들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게 제시된 일루전 효과를 통해서 단박에 시각적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때 그 작품이 담고 있는 시각 정보가 얼마만큼 격조 있는 선과 색, 구도와 서사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예술작품의 높낮이를 구분하는 잣대로 작동한다. 근대시기 이전가지의 모든 미술작품들은 안정적인 기호체계 안에서 작동했다. 초상화나 풍경화화 같이 사실에 근거하거나 또는 그것을 변용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상상을 통해서 조작된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들까지도 오랜 시간동안의 반복학습을 통해서 나타난 도상의 세계 속에 존재한다. 나아가 그 작품 속에 담긴 스타일과 내러티브가 얼마나 상투적인 표현 수준을 넘어서 독창적인지를 따지는 것이 예술계의 인정시스템에서 중요시하는 요소이다.
단원과 혜원의 그림이 정조시대의 새로운 지식생산으로서 어떻게 기능했는지, 다빈치의 그림 속 ‘모나리자’가 어떤 방식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는지,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는 왜 근대사회의 발전에 있어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헤아려봄으로써 우리는 전근대에서 근대에로의 이행 시기에 얼마나 치열하고 혁명적인 지식생산이 이루어졌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인류의 시각을 얼마나 뒤바꿔 놓았으며, 고암 이응노의 예술세계는 얼마나 처절하게 20세기 한국의 뼈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새로운 매체 시대의 예술을 어떻게 견인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모두 기존의 관념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독창성을 발휘했다. 풍부한 상상력을 토대로 한 창의력의 향연장, 그것은 미술작품을 떠받히는 근저의 힘이다.
미술작품은 정보의 생산과 소통 기제 안에서 작용한다. 모든 예술작품은 정보의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의미작용을 일으킨다. 작품 속에 존재하는 갖가지 요소들이 발생시키는 정보들을 분석하고 조합해서 인지작용이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의미가 발생하는 또는 발생한다고 믿는 것이다. 회화뿐만이 아니라 조각이나 입체 설치, 사진 등과 같은 예술작품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독자적인 시각정보체제 속에서 정보를 생산하고(coding) 그 정보 속에 담긴 약호들을 풀어내는(decoding) 과정에서 예술적 소통이 발생한다. 거기에는 각각의 장르적 속성들과 더불어 공통적인 요소들이 존재한다. 가령 어떠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지, 어떠한 내러티브를 구사하고 있는지, 나아가 그 서사체계를 어떤 스타일로 표현하고 있는지 등이 주요한 작품 비평의 잣대이다. 이러한 일련의 시각예술 소통행위를 담보하는 공간이 바로 미술관과 갤러리 같은 전시공간이며, 미술언론과 미술시장 등과 같은 제도영역이다.
3.
미술은 고급문화 영역으로써 상류계층의 문화소비 영역일 뿐인지, 아니면 대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는 사회적 소통의 장인지를 두고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아무래도 미술영역 바깥의 시각적 소통체제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전시공간은 대중적인 소통공간으로서는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기성의 권위를 공고하 다지는 데 기여하는 매우 보수적인 기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오늘날 미술관이나 기타 미술문화 관련 제도/기구의 역할이다. 격년제로 열리는 미술축제를 의미하는 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를 필두로 지난 100여년동안 미술의 담론을 주도해왔다. 비엔날레를 통해서 동시대 최첨단의 미술담론을 확인하고 동시대 전세계의 미술경향을 일변해보는 시각언어 게임의 장으로 기능해왔다. 이러한 비엔날레라는 제도는 각 국가별로 국가관을 만들어서 경쟁적인 내셔널리즘의 일환으로 작동하면서 미술문화와 관련한 보수적인 시각을 유포하고 있다.
제도화한 미술문화공간들이 보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비해서 전시공간 바깥에서 벌어지는 미술문화는 훨씬 더 역동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탈중심적인 공간 개념을 드러내는 예술행위들이 어떻게 작품으로 성립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몇몇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도 공간 바깥에서 벌어지는 미술행위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는 것이 공공미술이다. 공공미술은 예술작품의 생산과 향유를 사적인 영역으로부터 공적인 영역으로 되돌리는 미술이다. 그것은 전문화한 전시공간의 바깥, 즉 생활영역과 공존하는 도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미술이다. 그것은 전근대시기부터 존재해왔던 기념비적인 동상이나 벽화와 같은 미술작품에서부터 오늘날 거리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방식의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층위를 가지고 있다. 가령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 선 이순신장군의 동상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통치자 박정희가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세운 무인상으로서 호국의 전쟁영웅을 통해서 국가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의도로 세워졌다.
공공미술작품의 출발은 이렇듯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선전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도식공간 속에서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기능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 현대미술로서의 공공미술의 추세이다. 서울역 앞에 자리잡고 있는 박기원의 <자-넓이>와 같은 작품은 서울역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광장 중앙에 우뚝 솟아서 그 공간을 지배하고 호령하는 영웅의 일루전을 갖추지 않은 이 작품은 널찍한 공간에 기하학적인 ‘ㄱ’자 모양의 육면체들을 눕히고 세워놓음으로써 스트리트 퍼니처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노숙자들이 눕지 못하도록 촘촘하게 손잡이를 만들어 놓은 서울역 벤치들과는 달리 마이너리티를 수용해주는 유일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문병탁, 박봉기, 안시형 세 작가가 만든 APEC 나루공원의 <동시상영>은 시멘트 덩어리로 재현한 주변의 건축물 이미지로 도시공간을 집약한다. 센텀시티의 높다란 주상복합건물과 수영강 너머의 80년대식 성냥곽 아파트, 그리고 초대형 콘벤션센터인 벡스코를 축소 제작함으로써 부산의 과거와 현재를 압축적인 시각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라고 불리우는 본격적인 거리의 미술 또한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곳곳에 스프레이 캔 안료로 낙서를 하듯 그림을 그린 그래피티를 비롯해서 스티커를 붙이거나 유인물을 나눠주는 방식의 스트리트 아트는 유럽이나 미주의 도시공간을 뒤덮은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출발해서 세계적인 스타로 활약했던 바스키아 같은 미술가나 얼굴 없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잘 알려진 영국의 뱅크시 같이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대인시장 프로젝트에서 셔터에 장미란 선수 이미지를 그려 넣어서 검색사이트에 오르기도 했던 구헌주와 같이 부산에서 활동하는 젊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도 있다. 부산대역 일대에서 만나는 그래피티 이미지들은 세계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특정 구역에서만 활성화 되어 있을 뿐 도시공간 자체를 가로지르는 문화적 충격으로 자리잡고 있지는 못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액티비즘의 경우 미술영역 바깥과의 적극적인 조우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한 예술실천의 모델로 언급할 만하다.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의 공유를 실천하는 액티비즘은 물질형식으로서의 미술작품 생산은 물론 비물질적인 예술행위들, 가령 퍼포먼스나 발언, 대화, 조직 등 모든 형식의 정보소통체제를 동원한다. 60년대 반전 이슈에 동참했던 비틀즈 멤버 존 레논과 전위예술가 오노 요꼬 부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침실에서 베드 피스(bed peace) 퍼포먼스를 벌였다. 작가 자신이 사회조각이라고 명명한 요셉 보이스의 녹색당 창당운동 같은 정당 활동도 액티비스트 영역에 들어간다. 한국의 경우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벌인 목동예술인회관 점거 프로젝트의 경우 사회적 이슈를 예술적 이슈로 부각한 좋은 사례이다. 비어있는 공간을 점거해서 예술적 공간으로 만드는 스쾃 아트 또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위해 마을을 빼앗긴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서 벌어진 수많은 예술가들의 활동 또한 예술행동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를 남겼다.
큰 틀에서 이러한 변화를 집약할 수 있는 개념이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 즉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미술이다. 20세기 모더니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은 회화나 조각 등과 같이 미술작품이라는 물질형식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미술의 생산과 향유는 미술작품이라는 물질적 존재를 벗어나고 있다. 탈근대 시기의 현대미술은 심미적 가치를 담은 물질형식 중심의 소통방식을 벗어나는 일이며, 모더니즘 시기를 거치면서 상호 분리된 현실과 예술의 간극을 복원하고 있다. 퍼포먼스와 같은 인간의 행위 자체까지도 미술작품의 범주에 포괄하는가하면 디지털 정보화와 동영상, 인터넷 등과 같은 새로운 정보생산과 소통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뉴미디어 영역에 이르기까지 미술작품의 생산과 소비가 넓어지고 있다. 정보의 생산과 소비가 비약적인 수준으로 발전함에 따라, 또는 전시공간과 같이 제도화한 미술문화공간이 예술 소통의 장으로 작동하기에는 뚜렷한 한계를 보임에 따라 기성의 광행과 제도를 이탈하는 예술행위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미술은 현대사회 속에서, 동시대 정보양식과 동행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소통방식을 향해서 진화하고 있다. 예술은 언제나 변화는 사회의 맥락과 동행하기 때문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경성대 교지 기고문. 2008. 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