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과 연대의 시대정신과 상호지역주의 예술
critic & column | 2009/05/27 18:09
자율과 연대의 시대정신과 상호지역주의 예술
지역은 물리적 장소를 기반으로 한 삶의 공간이자 공동체의 가치를 담고 있는 공공의 영역이다. 지역주의는 해당 공동체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려는 정치적 합의이다. 그러나 지역이라는 낱말은 중심주의 시각으로 왜곡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우리에게 지역이라는 이름은 중앙으로부터 떨어져있는 변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역주의 개념 또한 오염된 언어여서 폐쇄적인 공동체의 집단이기주의로 지탄받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지역의 가치와 지역주의의 가능성을 제대로 발견한 적이 있는가? 특히 예술영역에 지역 단위의 예술생태를 묶어서 사용하는 ‘지역미술’이라는 말에 예술적 실천을 통해서 지역공동체의 가치를 담아내고자 하는 예술 담론으로서의 지역주의 가치를 담고 있는가? 이 짧은 글은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안적인 예술실천의 사례들을 간략히 언급하면서 지역주의 예술의 가능성을 진단해보고, 지역분권 시대의 자율과 연대라는 개념을 지향하는 풀뿌리 문화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수준에서 상호지역주의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보고자 한다.
전지구화 시대의 지역주의 예술
각 도시 별로 대안적인 지역주의 예술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광주의 의제미술관과 매개공간 미나리는 사립미술관과 대안공간의 틀로 지역공동체 속에서 예술생산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인천의 스페이스빔과 퍼포먼스 그룹 반지하의 프로젝트들은 미술로서 도시공간을 재해석하고 동행하는 실천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안양의 스톤앤워터가 벌이는 안양천 프로젝트는 미술문화를 가지고 지역공동체와 접점을 형성하면서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안산의 커뮤니티스페이스리트머스는 국경없는 마을의 이주노동자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다문화 현장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부산에서는 대안공간반디와 오픈스페이스배가 대안공간의 축을 구축하고 있으며, 복합장르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다원예술매개공간 아지트가 젊은이문화를 거리예술로 끌어내려는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각 도시의 대안공간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움직임은 지역주의 예술운동을 견인하면서 대안공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주의 예술운동의 전향적인 양상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서로 다른 역할모델을 찾아가고 있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안산의 리트머스나 청주의 하이브, 광주의 대인시장, 부산의 오픈스페이스배 등에서 벌이고 있는 지역주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오브제 중심의 예술노동 교환구조를 변환하는 일과도 연결된다. 소수의 힘있는 콜렉터가 좌지우지하는 미술은 활기를 잃기 십상이다. 아무래도 특정한 취향에 끌려가다보면 종다양성이 쪼그라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개미의 힘으로 꾸려지는 비영리 문화공간을 통해서 지역단위의 미술생태를 재구조화하려는 움직임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도 중심주의 미술문화를 고쳐보려는 생각과 실천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 예술운동의 다양성이야말로 오늘날의 미술문화를 풍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강력한 중심에 포섭되기 이전의 자생적인 문화생태는 단일한 정체성에 의합 통합이기보다는 다양한 가치의 공존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지역성을 둘러싼 중심주의 사고는 국가체제나 사회현상 전반의 문제이다. 지역미술 운운하는 미술 제도와 문화 또한 마찬가지다. 지역을 사고하는 식민주의 관점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초반의 일본 제국에서 바라본 식민지 조선의 미술은 일종의 지역미술이었다. 그것은 조선의 향토색 운운하며 당대의 현실에 눈감고 귀닫게 하는 박제화한 지역성이었다. 해방 이후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지역미술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알맹이는 없었다. 지역의 예술생태는 자생성을 가늠하기에는 매우 척박한 환경이었다.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숨가쁘게 돌아가는 주류미술의 인정게임에 몸을 실을 기회도 없이 지역 단위의 예술생태는 황폐한 사막이었다. 각기 다른 지역마다 독창적인 풍토색이 담긴 미술형식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접을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자치와 분권의 가치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지역미술을 그저 변방의 비주류로 여기는 풍토가 남아있다. 지역미술을 둘러싼 외눈박이 낡은 생각을 버려야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지역주의 예술담론이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지역주의 예술은 탈중심주의 이슈와 직결된다. 각 지역마다 각기 다른 삶의 정황들을 예술적 의제로 채택하고 예술적 실천으로 현장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프로젝트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벌어지는 예술운동은 단일한 이념 아래서 유사한 양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다. 미술을 양식상의 진보주의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했던 20세기 미술사 개념이 종언을 고한 지 오래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지역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지 난감해질 수 있다. 그러나 해답은 간단하다. 지역주의 미술이 눈떠야 할 대목은 지역단위의 삶의 처소와 대화하는 일이다. 지역주의 예술실천의 첫걸음은 공동체와의 밀접한 협업체제의 구축이다. 그것은 지역거점 예술공간 활동에서부터 공공미술이나 예술행동(activism)의 첨예한 실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한국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동체예술(community art)의 가능성은 지역주의 예술을 견인하는 첨단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민주주의를 향한 상호지역주의 예술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폐해 가운데 하나는 노동의 소외이다. 예술노동 또한 두 말할 나위 없이 사회적 교환체계에서 자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철저하게 소외된 노동이다. 예술노동의 소외현상을 극복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중심주의 예술이슈를 좇아 국제주의의 미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역공동체의 현안을 다루고 있는 예술의 지역적 실천을 꼽을 수 있다. 다수의 예술가들이 문화권력의 환상에 젖어있다. 삶 전체를 건 그들의 예술노동을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언어게임의 장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성에 입각한 문화적 종다양성은 글로벌리즘의 문화중심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서 패권주의를 넘어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이 시대의 좌표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문화다원주의 시각으로 활성화한 지역주의 예술생태는 예술가와 비예술가, 생산자와 수용자,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의 관계를 탈경계와 상호작용의 수준에서 재정립하게 함으로써 예술노동의 교환방식을 다양화 한다. 그것은 예술가의 소외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받는 예술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역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중심주의 사유를 탈피하는 것이며, 중앙집중의 일극 체제를 지역분권의 분극 체제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다. 중앙과 지역, 글로벌과 로컬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집단이기주의나 소영웅주의와는 다른 모습으로 지역단위의 문화생태를 건강한 구조로 이끌어내는 것이 지역주의 예술담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폐쇄성이 아니라 상호성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 지역의 문화권력 재생산 구조에 포획당한 지역주의가 아니라 지역 간 예술적 소통의 기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 거대도시의 문화 정체성을 단일한 문화권으로 묶어서 미술문화 집중공간이나 거대한 미술권력의 작동방식을 상징하는 미술관 중심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가령 홍대앞이나 문래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은 서울을 단일한 중심의 패권주의 미술체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편하고 있다. 하물며 이른바 중앙을 중심으로 대상화하는 한 묶음의 지역미술이라는 범주설정은 그 얼마나 황망한 일인가.
지역주의 담론은 종종 ‘전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think global, act local)’는 식의 글로컬리즘(gloalism)과 같은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문제는 이미 글로벌리즘에 포획된 사유로는 지역적 실천이 어떻게 가능할지가 의문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지역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을 견인하는 지역주의(localism) 관점이 필요하다. 글로컬리즘에는 지역과 세계의 상호 연대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전지구화의 위계화 전략이 들어있다. 따라서 지역성과 예술을 새로운 차원에서 담론화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삶의 처소로서의 지역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지역성을 발견하고 예술적 실천의 뿌리를 지역공동체에 두는 ‘지역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술영역에 있어서의 지역주의는 포착 가능한 삶의 단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들에 관해 비판적 성찰을 시도하고 그 속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예술 실천이다.
지역주의 예술은 지역을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라 다중정체성으로 재발견하게 하는 것이며, 일극의 패권이 아닌 분극의 다중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지역주의의 폐쇄성을 극복하려는 논의가 있다. 상호지역주의(inter-localism) 관점이다. 중심과 주변,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의 이분법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상호성(the inter-)은 지역간 소통에 있어서 중심과 주변으로 고착화한 중심주의 구도를 넘어서는 것이며, 동시에 국가단위 안에서만 맴도는 지역간 소통의 문제를 전지구적 차원의 열린 소통으로 재구조화 하는 지름길이다. 지역 간의 관계를 열린 구조로 사유하는 상호지역성은 폐쇄적인 지역주의 모델을 개방적인 상호지역주의로 새롭게 해석하는 지혜를 요청한다. 상호지역주의 관점은 커뮤니티 안의 예술생태를 하나의 완결체로 인식하는 태도를 기본으로 그것을 바깥과 나누는 상호연대의 철학에서 나온다.
폐쇄적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상호지역주의 담론을 활성화하는 일은 자율(authority)과 연대(solidarity)의 시대정신과 동행한다. 모든 삶의 장소와 풀뿌리 공동체는 평등한 낱낱의 요소이다. 따라서 지역간의 상호 연대는 흩어진 낱개들이 자생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필수 항목이다. 상호지역주의 사유가 필요한 까닭은 개별적인 지역주의 예술실천이 지역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열린 구조 속에서 소통가능성을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지구적인 사유 아래 내용과 형식을 통폐합하려고 하는 전지구화 논리와 갈라서는 상호지역주의의 핵심 논리이다. 지역공동체와 동행하면서 문화제국주의적인 힘의 질서에서 비켜서는 것이 상호지역주의이다. 노회한 중심을 해체하고 풀뿌리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담론인 상호지역주의 예술의 이름으로 자율과 연대의 큰 그림을 다시 생각한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월간미술 2009년 6월호 기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