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성과 공공성이라는 두 가지 바람 : 2006 바람예술제
critic & column | 2006/09/23 19:30
지역성과 공공성이라는 두 가지 바람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이다. 제주도의 바람은 고난에 찬 억센 삶의 상징이기도 하고 낭만적인 남도의 풍광을 담는 것이기도 하다. 이 비가시적인 물질의 유동을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포착하겠다는 것이 제주바람예술제의 생각이다. 야외조각전과 깃발전으로 구성해서 다섯 개 지역을 순회한 2004년의 첫 번째 축제는 기획자 김해곤이 수년간 지속해왔던 대규모 야외미술행사를 바람 부는 제주도에 연착륙시킨 것으로써, 역사와 장소를 창작의 씨앗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예술적 공공성과 지역성에 관해 매우 비평적인 논점을 제공했다. 송악산 진지동굴 일대와 성산일출봉 일대에서 열린 2005년의 두 번째 축제는 제주도의 대지와 바다와 역사를 바람결에 담아낸 거대한 퍼포먼스였다. 제주바람예술제가 올해로 세 번째의 예술축제를 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행사가 천혜의 자연적 조건을 이용한 거대한 규모의 미학을 추구한 강풍이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후미진 마을을 찾아서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나눈 따뜻한 온기가 스며드는 미풍 같은 것이었다.
한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초에 닷새 동안 열린 이 프로젝트는 제주도의 11개 지역에서 펼쳐졌다. 이들의 예술은 움직이는 예술, 거리를 유랑하는 예술이다. 이들 바람 같은 예술가들의 떠도는 예술은 제도화한 미학적 공간, 즉 전시장이나 공연장 같은 전문공간 속에서만 예술을 만나왔던 20세기 모델의 예술향유 방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이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심지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유랑극단처럼 사람들이 적은 오지마을 깊이 들어가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따라서 이들 떠도는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바람은 삶의 향기를 가득 담아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생동하는 바람이다. 또한 바람은 예술의 소재이자 주제이며 방법이자 태도이다. 이들의 예술은 바람미학이라고 불러봄직한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의 특성인 바람을 이용해서 생활미학 속의 신바람을 재해석하려는 새로운 예술적 바람인 셈이다.
예술가들은 트럭에 그림을 싣고 오지마을로 들어갔다. 커다란 트럭의 화물칸에 마련된 실내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30여명의 작가들이 회화와 조각 작품을 출품했다. 이러한 작품 감상 방식은 두 가지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매우 의미 있으면서도 동시에 매우 진부한 의례이다. 그림감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액자그림을 보여주는 일은 그림감상이라는 체험 자체가 매우 낯선 사람들에게 전문 화가들의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심미적인 각성을 유도한다는 모더니티의 계몽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획은 보여주기만을 강요하지 않고 함께 그리기를 권유함으로써 앞서 말한 일방적인 보여주기의 위험성을 보완하고 있다. 벽화그리기, 풍선 바람개비 만들기로 구성된 신바람미술제가 그것이다. 화가들의 완성품 그림을 트럭에 싣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한 소통이 일어나는 일은 행사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그림그리기이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그림을 그린다. 종이에 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에 벽화를 함께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오지로 찾아가는 그림은 완성품 액자그림보다는 현장에서 함께 그려 오래 남을 수 있는 그림일수록 쓸모 있는 그림일 수 있다.
트럭 자체를 움직이는 예술작품으로 만든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회화와 조각 작품을 싣고 있는 두 대의 트럭 가운데 하나는 콩나물대가리 그림을 그려넣은 양경식의 ‘음악과 텍스트로 포장된 흥겨운 미술관’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천조각을 이어붙인 최승훈, 최승숙의 차량 박스 포장 작업이다. 두 작품 모두 바람을 주제로 하되 움직이는 차량에 설치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설치작업이다. 나머지 석대의 트럭은 설치작품을 싣고 있었다. 정명교 원상호, 최경돈으로 이루어진 아트로드 팀은 귤돔을 만들었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도미 모양에 작은 귤로 비늘을 만들고 귤나무 잎으로 지느러미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잘라진 귤 내부의 무니는 스티커로 차량 앞쪽과 옆쪽을 장식하여 귤로 만든 도미, 귤돔이 완성되었다. 강술생과 김만의 작품은 꽃모양의 바람개비이다. 꽃바람개비로 이뤄진 트럭은 한 마리의 무당벌레이다. 트럭 앞부분은 꼬마자동차붕붕처럼 눈웃음을 치고 있다. 연꽃과 바람의 만남은 만화 캐릭터 같은 유머로 인해서 한층 상큼하게 문화 나눔의 정신을 보여준다. 김형지, 송창훈, 이승수는 철재 프레임 위에 나뭇잎 모양을 달고 실타래를 얽어 넣고 텔레비전을 매달았다. 트럭 위에 둥지를 튼 자연과 문명, 환경과 인간의 모습이다.
설치미술 작품들이 정적인 감상과 소통을 만들어 냈다면, 공연예술들은 매우 동적인 소통과 참여를 만들어냈다. 대중음악, 연극, 퍼포먼스, 사물놀이, 춤, 전통음악, 판소리 등 장르도 다양하다. 제주도 방언으로 이뤄진 마당극은 제주도의 토착 민담을 극으로 재구성해서 보여주었다. 대중가요 가수 중에서도 제주도 방언으로 노래를 지어서 부르는 통기타 가수도 있다. 이들 제주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자연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내러티브는 제주도 주민 자신들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제주어를 생생하게 담고 있었으며, 그들의 역사 속에서 생성된 생동하는 삶의 정서를 일깨우고 있었다. 설치미술과 회화와 조각 같은 시각예술 작품들과 공연예술이 함께 하는 이와 같은 장르 혼합의 장은 각자의 고유한 예술적 목표를 향해 전문화된 예술공간으로 환원하는 태도와 대비된다. 그것은 전시장이나 공연장 벗어나 삶의 공간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탈근대적인 예술가의 탈공간 실험이며, 동시에 각자의 장르를 다른 장르와 섞어서 나누고자하는 탈장르 실험이기도 하다.
트럭에 예술을 싣고 유랑하는 예술단. 이들의 문화나눔은 공공성과 지역성이라는 두 가지 바람을 타고 있다. 이들은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제주도 지역 마을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실천하고 있다. 미술관 바깥 공공장소에서의 예술적 실천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성이란 공공장소라고 할 때의 물리적 공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생산과 향유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예술적 소통을 시도하며 이를 통해서 문화생산의 맥락까지도 끌어들이려는 공공영역의 문제이다. 조금 더 확대해서 해석해보자면 예술에 있어서의 공공성이란 ‘예술적인 공론의 장’을 형성하려는 시도이다. 예술공론장은 오늘날 국가 공권력이 대변하고 있는 공공성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또한 매스 미디어가 토해내고 있는 여론이라는 극악한 형태의 공공성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이들의 공공적인 예술은 거대하게 우뚝 서서 대중들을 향해 웅변하지 않으며 현란한 색채와 조명과 몸짓으로 빈곤한 컨텐츠의 공허함을 위장하려 들지 않는다. 예술이란 익명의 대중을 향해 카리스마 넘치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크던 작던 공공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매우 낮은 목소리의 소통일수도 있다. 바람예술제는 이점을 각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예술공론장은 국가나 언론처럼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대규모의 정치적 맥락을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지역 공동체 단위의 예술적 소통을 통해서 그 모습을 가늠해볼만한 소규모의 정치적 맥락을 가진 것이다. 생산과 소비가 대량화 되고 정보양식의 변천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지구적인 차원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상호연관이 옥죄어 오는 상황 속에서 예술의 이름으로 소통 가능성을 지향하는 일은 이제 지역성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예술적 실험에 직면해 있다. 예술에 있어서의 지역성 논의는 문화적 세계화에 대안이다. 이들은 제주도라는 지역을 단일한 그 무엇으로 상상하여 만들어낸 틀에 박힌 지역예술을 부르짖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예술 콘텐츠로서의 지역성을 앞세우기 보다는 실제 삶의 공간인 여러 오지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생생한 지역성의 국면들을 체험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오지마을 초등학교, 리사무소앞, 주택가, 야외공연장, 마을회관 분교, 의료원 도서관 등 다양한 지역을 몸으로 체험했다. 이러한 체험이야말로 상상 속에 존재하는 지역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예술적 지역성은 이런 방식의 체험을 통해서 내적 필연성으로 가득 차있는 진정성을 관통하지 않고는 공허한 상상적 허구일 수밖에 없다.
이 행사를 준비한 김해곤은 몇해 전부터 제주도에 자리 잡고 지역문화를 화두로 장소성과 역사성과 예술을 맥락화하려는 일련의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0년에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강원도의 정선 탄광지대 버려진 마을로 찾아가서 탄광촌 미술관을 열었을 때의 그 열정과 지향을 보다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문화운동 차원으로 이어가고 있다. 바람을 싣고 떠나는 트럭미술관. 그 이름도 낭만적인 이 프로젝트는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예술’이라는 정책적 목표에 따라 조성된 기금을 사용하고 있다. 소외지역 프로젝트들은 소외지역을 어디로 정하고 그 장소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의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예술 프로젝트들의 내용적인 빈곤함을 비롯한 한계상황들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이번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 직접 참관해봄으로써 나는 찾아가는 예술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거림이 가지고 있는 중심주의와 엘리티즘의 위험성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예술은 중심에서 다수가 누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변방에서 소수가 나눌 수도 있다는 것. 제주도 한라산 자락 오지마을 운동장에 앉아서 제주도 방언으로 구성된 마당극을 보면서 품어본 짧지만 소중한 생각이다.
김준기 (미술비평, www.gimjungi.net)
2006 바람예술제 도록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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