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섭지코지에 달떴다 : 휘닉스아일랜드 공공미술

critic & column | 2008/08/2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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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섭지코지에 달떴다 : 휘닉스아일랜드 공공미술


제주도에 새로운 달이 떴다. 아름다운 남도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달이 떴다. 광풍제월(光風祭月). 안종연의 달이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 옆의 섭지코지, 바다와 땅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공공미술 작품이다. 안종연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을 차용했다.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한 인품을 형용한 말’이 광풍제월(光風霽月)이다. 인왕제색(仁王霽色)과 같은 ‘갤 제(霽)’자를 쓴다. 그런데 안종연은 이 글자를 ‘제례(祭禮)의 제(祭)’자로 고쳐 썼다. 광풍제월(光風祭月). 빛과 바람을 모셔두는 제단에 떠오른 달이다. 안종연은 피라미드 제단 형상의 마리오 보타 건축에 제의적 서사를 가미해서 건축과 미술의 동행을 실행했다.

마리오 보타의 건축물 속에 자리잡은 안종연의 이 작품은 바다와 만나는 땅에 덩그러니 떠있는 '지상의 달'이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지키는 '푸르른 달'이다. 마리오 보타는 철재구조물로 피라미드를 만들고 유리로 마감한 공간의 천정부분을 열어두었다. 그 아래 안종연의 달이 떴다.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와 판재를 이용해 만든 지름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달이다. 얼마나 섬세한 미학적 배려와 촘촘한 구조 계산과 지난한 노동을 투여했을까. 그러나 안종연의 작품은 노동과 물질에 머무르지 않는다. 거대한 자연과 만나는 예술적 소통을 위해 제단 위에 달을 띄운 안종연은 물질로서의 예술 저 너머로 시선을 돌릴 줄 아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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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축소판으로서 좁은 땅(협지, 狹地)을 뜻하는 '섭지'와 곶(串)을 뜻하는 '코지'라는 말이 합쳐진 섭지코지에 새로 들어선 대규모 휴양관광단지 휘닉스아일랜드가 들어섰다. 이곳의 모든 시설 배치는 땅의 기운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땅 위에 집을 짓는 것 자체가 이미 땅을 파헤쳐 인공을 얹는 것이니 자본 증식을 위한 개발 논리가 제아무리 자연에 대한 순응을 이야기한다고 한들 그 말이 곶이 들릴 리 없다. 땅에 대한 사적 소유권 인정은 자연 풍경에 대한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을 인정으로 직결하기 때문이다. 땅의 주인은 풍경의 주인이 아니던가. 역설적인 얘기지만, 이 관광단지의 숙박 시설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 다행스러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등대와 작은 성당이 있는 섭지코지에 들어선 건축과 조경, 조형물들은 근래 보기 드물게 엄격한 절제와 조화를 염두에 둔 프로젝트로 평가할 만하다. 단지 내부에는 숙박시설 안쪽으로 더 파크(THE PARK)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내부에 마리오 보타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있다. 안도의 건축물 글라스하우스와 지니어스로사이(Genius loci)는 보타의 건축과 함께 섭지코지 일대를 문화명소로 바꿔 놓은 결정적 장면이다. 절제의 미덕을 십분 발휘해서 집이라기보다는 기하학적 추상의 조각과 같은 글라스하우스는 동쪽의 망망대해와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절경에 자리잡고 있다. 그 안에 화가 이진경의 그림과 내촌목공소의 목수 이정섭의 가구를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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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로사이는 그 땅의 수호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입구에서 깊숙한 내부에 이르기까지 극적인 구성으로 의외의 장면과 상황을 만나도록 지어졌다. 집지을 땅에서 나온 현무암을 캐서 만든 돌길을 지나고 폭포 물길을 지나면 그림 같은 파노라마 성산 일출봉을 만난다. 내부에는 명상의 방이 있고 그 안에 문경원의 영상 작품이 있다. 나무의 생장과 소멸을 통해서 존재와 시간에 관한 성찰을 담은 영상설치작업 <Diary>와, 하루 전의 제주도 하늘을 보여주는 <어제의 하늘>, 그리고 실시간 동영상으로 바깥을 비추는 <섭지의 오늘>이 있다. 지하로 파고든 명상적인 침묵의 공간에서 만나는 문경원의 영상들은 시간의 간극 속에서 삶을 반추하고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사유와 감성을 깊어지게 한다. 자연과 동행하는 건축과 그 속에서 만나는 미술의 공존이야말로 통합의 정치학을 말하는 탈근대적 사유의 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월간미술 2008년 9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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