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뫼창작공간 : 동네 아이들의 작업실
푸르뫼창작공간은 지역아이들을 위한 작업실이다. 작업실을 열고 동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그 지역 전체를 만나는 일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미술학원이 아닌 창작공간을 열어 주면서 놀이로서의 미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서송의 작업실 한쪽에 마련한 어린이 작업실은 작가의 작업실이 동네 전체를 위해 순기능을 하는 예술가의 새로운 역할을 발견한 것이었다. 아이들 교육을 작가 작업실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은 어린이 교육이 미술을 넓히는 지름길이라는 그의 지론에 따른 것이었다. 이러한 미술교육 프로그램은 동네에서 작가 작업실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돌려놓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장선영에게 있어서 구산동 작업실은 공간 그 자체만으로도 이야기 거리가 많은 곳이다. 작업실을 짓느라고 옛 작업실 옆에 막사를 짓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두 번의 겨울을 보낸 일은 두고두고 청춘을 회고하는 기억이다. 집에 가스난로를 피우고 고생해가면서 공사를 해서 드디어 집이 생겼을 때의 기쁨이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추억이다. 집을 지은 후에 흙을 퍼나르며 마당을 만들고, 잔디도 심으면서, 안 먹어도 배부른 여유를 찾고, 불안감 없이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남편 작가 서송을 지켜보면서 장선영이 시작한 일은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그는 2003년 여름부터 푸르뫼창작공간을 열어서 대안적인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장선영은 대학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시각과 언어’에서 출판일(1997-1999)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창작과 이론을 겸한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 것인가, 미술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 작업실은 대안적인 교육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예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절반은 틀린 얘기다. 푸르뫼에서는 예술을 가르치지 않고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다음 단계는 아이들과 함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기성 예술의 시각과 언어로서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했지만, 그것은 점차 서로 창의적인 예술담론을 나누는 것으로 전환된다. 작품을 창작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 미술을 나누는 일은 그의 표현대로 ‘미술문화의 터닦기’이다. 그것은 주민을 끌어들여 미술에 관한 흥미를 유발하는 중요한 일이며 자라나는 아이들이 미술문화를 제대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미술교육의 씨앗을 뿌리면 그 씨앗은 결국 다시 예술가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책꽂이에 빼곡한 미술교육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를 꺼내서 뒤적여보니 재미있는 미술교육 프로그램이 적혀있다. 2005년 2월의 프로그램을 보면, ‘우주그림 그리기, 우주그림을 입체로 만들기, 미술관 수업, 우주작품 완성하기’ 등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회화와 입체와 감상교육을 한달동안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우주작품 완성하기는 드리핑 페인팅 방식의 형광 그림으로 화장실을 우주의 환상적인 컬러로 바꾸는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아이들의 흙 작업과 그림들이 테이블과 진열장에 가득하다. 특이한 것은 아이들의 포트폴리오가 가지런히 꽂혀있다는 점이다. 역시 어린이 작업실다운 발상이다. 아이들의 작업들 가운데 괜찮은 것들을 모아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둔 것이라고 한다. 벽면에 붙어 있는 그림들 가운데에서는 기성이 뎃생 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푸르뫼식의 감성적인 그림 그리기를 배운 아이가 그린 자전거 그림이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관찰력과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업 후에 옆방의 서송 작가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친밀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푸르뫼의 큰 장점이다. 옆 칸 서송 아저씨의 작업실뿐만 아니라 옆집의 천영신 아줌마의 도예교실, 그 옆 이원석 아저씨와 뒷집 최승호 아저씨의 작업실, 아랫집 권석만 아저씨와 차현주 아줌마의 작업실 등 주변이 온통 아트로 가득한 곳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힘든 모습이다.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일처럼 여기고, 서로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는” 구산동 작가들의 작업실 군락촌이 대안적인 미술교육의 본산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꿈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장점은 일산 지역의 어린이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대상으로 일산오픈스튜디오 작가들의 작업실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도 그 가능성이 열려있다. 작가의 세계를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온 엄마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그 엄마가 미술문화의 향유자가 되게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미술교육 과정으로 소화해 내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장선영은 종종 일산 시내의 대중강좌 강사로 나가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여성회관에서 어머니들을 상대로 교육을 했다. 어머니들을 교육하는 것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고, 거꾸로 아이들 교육이 어머니 교육으로 이어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회생활이나 재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는 어머니들이 예술을 만나게 하는 일. 생각해보니 매우 중요한 일이다. 기존의 교육 시스템은 예술을 점수로 평가하는 데 그치는 것이라면 대안적인 예술교육 시스템은 그것을 뛰어넘는 창의력을 발산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대안성과 창의성이 종종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어머니들의 요청에 의해 꺾이곤 한다.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이 어머니를 만나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매우 많다. 아이들, 어머니들, 동네사람들 등 미술문화를 가지고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곧 우리가 사는 세상 사람 전체이다. 이 모든 만남들이 푸르뫼창작공간이 ‘동네 아이들의 작업실’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미술과 지역, 미술과 삶, 미술과 공동체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꿈꿀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푸르뫼는 참으로 작지만 큰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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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들어와봅니다.^^
너무 게을러서....^^
작업실 탐방 재밌었어요.
시간만 많으면 함께 점심도 나누면서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을텐데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뵐 때는 더 반가운 얼굴들이 되어있을 겁니다.^^
1년전에 뵜던 분을 온라인 상에서 다시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고 말씀대로 다음에 더 반가운 얼굴로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