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론 4] 오세문 : 작업실 공간과 규모의 미학

critic & column | 2005/09/25 01:15



오세문 : 작업실 공간과 규모의 미학

30대 중반의 젊은 작가 오세문은 오상욱 작업실 옆 동에 자리 잡은 커다란 철조작업실을 월24만원의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사용하는 임대작업실 작가이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보다 천정고가 훨씬 높아졌다. 예전에 홍성도 작가가 사용하던 작업실을 고쳐서 대형 철조작업이 가능한 공간으로 바꾼 것이 지금 오세문이 사용하고 있는 작업실이다. 주로 대형 철조작업을 하는 공간으로 쓰인다. 오세문은 젊은 작가들 가운데서도 스테인리스 스틸 재료를 잘 다루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선배 작가들이 대형작업의 마무리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대형 입체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해서 그의 작업실은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는 철공소 같다. 이쯤 되면 작업실에 관한 한 그에게는 별로 아쉬움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공간은 소품이나 드로잉 작업을 할만한 공간을 마련할 수 없는 것이 큰 아쉬움이다. 역시 큰 공간은 큰 작업을 하기에 적당하고, 작은 공간은 작은 작업을 하기에 적당하다. 이것이 작업실 공간이 가져다 주는 규모의 미학인지라 공간의 크기에 따라 작업의 방식도 크게 달라진다. 대체로 그렇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필요에 따라 다른 작업실을 이용하거나 기존의 작업실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한계는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9월에 접어들었는데도 모기향을 피워야할 정도로 산도둑같은 모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작업실 한쪽에 앉아 두런두런 작업실 얘기를 나눴다. 옆동의 철조작업실에서는 빠우치는 아저씨가 얼굴에 시커멓게 먼지가 앉을 정도로 검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광내기에 열중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형태를 잡고 용접작업까지 마친 작품은 흔히 ‘빠우친다’고 표현하는 광내기 작업으로 넘어가는데, 이런 대규모 작업은 광내기 전문가에게 부탁한다. 철조작업의 어려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는 간단하게 답을 했다. 물이 얼면 얼음이 되듯이 쇳물이 굳어지면 쇠가 된다는 것. 듣고 보니 그렇다. 단단함을 부드럽게 만드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면 굳이 철조작업이라고 해서 특별히 어려운 작업이랄 게 없다. 그렇다면 관건은 시스템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작업실에는 녹이고, 자르고, 붙이는 알곤용접, 전시용접, 산소용접, 플라즈마 절단 장비까지 금속재료를 다루는 철공소 수준의 장비들이 완비되어 있다.

작업실을 중심으로 동선을 구성하는 오세문의 네트워킹은 어떠한가? 우선 문래동 지역에 밀집해 있는 금속도매상들이 있다. 오세문이 요청하는 재료를 가장 신속하게 구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없으면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물건을 구해준다고 한다. 재료의 구입은 물론 절단 및 기초가공까지도 그곳에서 해결 할 수 있다. 금속광택업체의 빠우치는 아저씨의 손길은 작업 마무리에 절대적인 도움을 준다. 작업도구들을 거래하는 공구상도 빠질 수 없다. 동네 공구상도 이제는 웬만한 것들은 다 구해준다고 한다. 작품을 제작 한 후 설치현장으로 가지고 나갈 때 반드시 필요한 운송업체 또한 중요한 조력자이다. 특히 큰 작업을 많이 하는 그에게는 운송업체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눈 날에도 다음날 열리는 전시를 위해서 마무리 손질을 한 작품이 작품운송 트럭에 실려 나갔다.

작가로서 사는 데는 작품제작과정에 필요한 네트워킹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작가들과의 교류나 미술계 전반을 만나는 일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는 여러 개의 작가모임 가운데서도 소조각회 멤버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작가정체성을 지켜나간다. 그의 최근작들은 20대 후반부터 손에 익은 인체구상 철조작업으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 원류를 지켜주는 준거집단이 소조각회인 셈이다. 전시회가 열리는 다양한 곳과 그곳에서 만나는 작가들 또한 중요한 사람들이다. 동시대 미술판을 이루는 여러 미술인들과 관계하는 것으로부터 예술가로서의 관계망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양한 작가와 큐레이터나 비평가, 아트컨설턴트들을 만나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작가로서의 일이 되었다. 성신여대 강의를 나가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선배들과 선생님들, 제자들과의 만남도 그의 관계망에 있어 소중한 사람들이다. 미술계 안팎의 각종 정보를 접하는 인터넷은 현대인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오세문에게도 필수적이다. 탄현마을의 가족들과 동네 철물점 아저씨나 식당 사람들처럼 작업실 주변의 익숙한 사람들과도 그렇게 어울려서 한 생을 살아간다. 이 모든 것이 30대 중반의 작가 오세문의 삶의 조건들이다.

그는 조만간 파주 용미리로 작업실을 옮긴다. 조소과 학부를 졸업한 1996년 이래 10년만에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지어 이사를 하는 것이다. 천정고가 6미터에 달아는 30평짜리 작업실을 지어서 이사한다. 2톤을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는 호이스트도 설치한다. 700볼트 승압기도 단다. 꿈의 작업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새 작업실의 규모가 아니다. 오세문의 새 작업실에 대한 기대는 큰 공간에만 쏠려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작은 공간에 대한 기대가 더 클지도 모른다. 큰 공간에서 큰 작업을 할 수 있고, 작은 공간에서 작은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규모의 작업실 철학에 따라 지금까지 맥이 끊어졌던 명상을 통해 구상을 가다듬는 일을 본격화 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작은 작업들에 대한 섬세한 접근을 통해서 작은 공간의 미학을 만들 것이라며 그동안 자신의 작업실을 갖고 싶어 했던 심정을 털어 놓는다.

대형 철조작업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작은 작업들을 들춰내어, 자신의 초기작들을 소개하는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철조작업실 오른쪽에 마련된 계단 위 공간 여기저기에서 뽀얗게 먼지가 쌓여있는 그의 초기작들. 쇠 조각을 이어붙이고 갈아내어 형상인체조각을 선보였던 그의 초기작은 오늘날 스테인리스 스틸 작업을 잘 뽑아내는 신진작가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긍정하게 해줄만 했다. 쇠로 만든 그의 형상인체 작업들은 단단했다. 요즘 그의 심플한 반추상 스테인리스 작업들의 전 단계로서 쇠작업의 손맛이 제대로 살아있는 작업들이었다. 무릇 작가란 거대한 규모의 협동작업보다는 한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단단한 조형작업으로부터 자신의 독창성을 확인하고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작가로서 한 생을 살아가는 법. 이제 보다 내밀하게 자신의 작업을 풀어낼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그로서는 작가로서 사는 이유를 확인하게 하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경제학에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있다. 작업실에 대입해 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업실 규모의 미학.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그의 작업실 작은 방을 찾아서 '작은 작업실 공간의 미학'을 다시 얘기해볼 생각이다.

2005/09/25 01:15 2005/09/25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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