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거리의 예술가 구헌주

critic & column | 2012/06/26 15:02


인터뷰 : 거리의 예술가 구헌주

“그래피티를 하게 된 것은 힙합음악을 좋아하면서 알게 된 힙합문화 때문입니다. 힙합음악에 빠져들고 난 후, 문화 자체에 눈을 돌려보니, 힙합에서 무용은 비보잉, 노래는 랩, 연주는 디제이, 미술은 그래피티더라구요. 그리고 무대는 거리.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래피티겠다’ 생각했죠.”

고등학교 시절부터 록과 힙합 음악을 즐겨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대중문화의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문화에 젖어들었던 구헌주는 비주류문화의 수용자에서 생산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바꿔나갔다. 오늘날의 그래피티아티스트 구헌주는 거리의 문화에서 나온 힙합 정신을 몸으로 익히며 서서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그래피티라는 기술을 익히기 전에 그 근저의 문화적 토양에 해당하는 힙합문화를 이해하고 체험하며 성장한 것이다. 구헌주는 한국의 그래피티 아트스트들이 결여하고 있는 힙합정신의 본질에 충만한 보기 드문 힙합정신의 소유자이자 그 정신을 실천하는 행동하는 예술가이다.
30대 초반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구헌주는 언젠가부터 그는 부산을 대표하는 대안예술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난 2005년, 그러니까 그가 미술대학 회화전공 4학년 학생일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그는 부산대 앞 지하철역 아래의 천변 공간을 중심으로 한 그래피티 씬에서의 지속적인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명 ‘똥다리’라고 불리는 이 곳은 구헌주를 비롯한 많은 젊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활동해온 곳이다. 한때는 국제적인 그래피티의 메카로 알려져 국내외의 내노라하는 아티스트들이 이곳을 방문해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곳 벽을 사랑했다. KAY2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그는 무수히 많은 그림을 남겼다. 1980년대의 시위 사진 위에 모니터 속 윈도우 프로그램의 ‘삭제’ 아이콘을 그려넣기도 한 그는 초기부터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건드리며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는 대학가의 주류공간이 미술제도 영역으로부터 한 발 비껴난 언더그라운드 문화공간을 자신의 근거지로 삼았다. 그는 재미난 복수라는 문화운동단체에서 활동해왔다. 그는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취향을 지향하며 차근히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지난 몇 년간 그는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꾸리고 있는 공간인 아지트의 운영을 주도해왔다. 올해 봄까지 4년여동안은 아지트의 총괄 운영과 기획을 담당했는데, 이제는 본연의 일인 작업의 길로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다원예술매개공간 지원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한 이 공간은 말 그대로 탈장르복합문화의 실험장이었다.
구헌주는 아지트에서 잔뼈가 굵었다. 아지트는 그에게 액티비스트의 자질을 키우고 실천의 근거를 제공한 배우지이다. 아지트는 류성효과 구헌주, 김건우 등이 꾸려온 대안문화공간이다. 류성효는 대안문화 기획자이자 네터워커이다.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의 접점을 만드는 김건우 또한 아지트의 대들보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손지현, 이정민, 이광혁 등의 문화기획자, 댄서, 뮤지션들이 아지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지트는 미술과 음악, 퍼포먼스 등이 공존하는 탈장르복합예술의 아방가르드 그 자체이다. 장르와 장르의 만남, 예술과 사회의 만남, 세대와 도시와 국가 등의 경계를 넘어 그 모든 것을 뒤섞어 버리는 말 그대로 첨단예술의 아지트이다.
한 사람을 보려면 그 주변을 봐야한다는 말이 있다. 구헌주가 좋아하는 인물들을 보면 그의 취향과 지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존경하는 인물 1번으로 꼽을 정도로 류성효를 좋아한다고 한다. 류성효는 구헌주에게 있어서는 불굴의 예술적인 기획자이자 진정한 아티스트이다. 재미난 복수의 주요 멤버인 류성효는 ‘써브컬쳐씬의 네트워크작업과 축제컨텐츠에 대한 열망이 많은 사람‘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은 ’리얼 아티스트인 김일두‘. 그래피티 아티스티스트 지알(Jial1)은 10여년 전에 불모지였던 부산의 그래피티 문화를 일군 선구적 역할을 했다. 뱅크시와 블루 등 해외의 스트리트 아티스트도 그를 이끈 예술가들이다.
돌이겨 보건대, 구헌주는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여느 신진작가와는 사뭇 다르다. 나는 미술평론가로서, 혹은 독립큐레이터나 미술관 큐레이터로서 수년간 그를 만나왔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7년에 류성효가 경성대미술관에서 기획한 그래피티 아카이브 전시였다. 그래피티의 정신에 대해 토론하며 나는 그가 미술대학을 졸업한 여느 신진작가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그해 가을에 독립큐레이터 일을 맡아 그를 초대한 것은 <아트인대구 2007 : 분지의 바람>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대구의 원도심에 있는 삼덕맨숀의 벽에 거대한 그래피티 작업을 했는데, ‘눈감고, 귀막고, 입막고 있는 대구사람들’의 정치적 보수성을 일갈한 그 작업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이듬해에는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서 <아트인부산 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구헌주를 초청했다. 그는 전시장 안에 사각부스를 만들고 그 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다. 그는 쇠고기 이슈를 다루며 MB를 그려넣더니 급기야 불경스러운 도상을 그려넣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공무원 큐레이터인지라 ‘살살하라’며 약간의 자제를 당부했고, 그도 웃으면서 약간 살살하기도 했지만, 2009년 이후의 살벌한 정국을 생각하면 MB정권 초기의 약간은 널럴했던 분위기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후에도 대안공간반디와 상상마당 등에서의 기획전에 그를 초대하고 작가추천을 하기도 하면서 지켜보아온 그는 한결같았다.

“아트신과 관계를 어떻게 맺을까라는 고민은 한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지는 상황이나 기회들이 아트신과 닿아 있다면 거스를 필요도 없지만, 굳이 그쪽만을 바라볼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홀로서기를 한 지금 저의 생각과 저의 결과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여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만 할 뿐입니다. 우선은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게 가장 먼저인 것 같습니다.”

미술계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젊은 작가도 참 드물 것 같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도권 미술계에 찌들지 않고 꿋꿋하게 한길을 걷고 있다. 나는 그의 이러한 두둑한 뱃심이 저항문화에 관한 성찰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의 현대사에 면면히 흐르는 저항문화의 흐름을 나름의 시각으로 가늠하고 있다. 그는 1980년대식의 정치적 저항문화를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세대가 지난 세대와 어떤 점에서 맞닿아있고, 어떤 점에서 단절의 지점을 형성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1980년대 방식의 정치적 저항운동과 2000년대 방식의 문화적 저항운동의 차이를 가르는 변곡점에 서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세대 간의 단절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4,50대 선배 세대와의 만남에도 마음을 여는 네트워커이다. 제도권 미술계에서 일하는 나는 비제도권 문화계에서 일하는 그와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세대 간의 차이를 넘어 대화할 수 있는 많지 않은 후배세대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그를 꼽곤 한다. 그래봤자 12년 차이 나는 것이니 마음만 열면 세대공감이 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물론 그는 그렇게 생각 안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도 나는 안다).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구헌주의 다음과 같은 언급으로 봐서 그는 자신의 좌표를 비교적 정확하게 짚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정치적 저항은 민주화나 현실정치 개혁 등의 거대담론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2000년대 저항문화는 다양성이 결여된 기존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시작으로 각자의 행복추구, 자기표현 등이 중심이 된 개인의 발견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나 작은 사회의 특수성에만 매료되어 큰 삶, 큰 사회의 이야기와 단절된 채로 사는 것은 원치 않지만, 저마다 다른 다양한 삶의 모습,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함께 존중받고 지켜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구헌주는 부산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활동반경을 넓혀왔다. 광주와 대구, 서울의 도심에는 그의 그래피티가 남아있다. 그의 해외활동은 주로 일본과 연관이 있다. 일본의 그래피티 작가들이나 문화활동가들과의 협업이 주를 이룬다. 후쿠오카시청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아지트의 레지던스프로그램에서 만난 해외 작가들과의 밀접한 관계도 큰 재산이다. 조만간 스트리트아트의 메카인 베를린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싶다. 이왕이면 그의 생각대로 ‘예술을 점령하라’는 모토로 국제적인 액티비스트들의 집결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베를린에서 구헌주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일한 구헌주, 떠나라!”

김준기 (미술평론가,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부산문화재단 <공감 그리고> 2012년 여름호 기고문.

2012/06/26 15:02 2012/06/2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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