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힘의 작가 구본주

critic & column | 2006/05/11 08:35





유연한 힘의 작가 구본주

그동안 크고 작은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접해 왔지만, 지난해 ‘삼성화재 소송사건’이라는 희대의 송사를 말끔히 걷어낸 후라서 그런지, 이번 전시에 출품된 그의 작품 20여점은 한결 더 뚜렷하게 구본주스러운 맥락의 핵심과 조형적 변모과정을 보여주었다. 출품작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작품과 마지막 작품을 비교해보면 그가 10여년 작가생활을 통해서 지켜내려고 한 것과 변모시키려고 했던 게 무엇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나무를 깎아서 만든 <노동자>라는 작품을 남겼고, 형광폴리코트로 떠낸 1천개의 작은 샐러리맨 조각을 천정에 매달아 하늘의 별처럼 우러러보게 만든 조각설치 <별이 되다>를 유작으로 남겼다. 어딘가 걸터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인물상 <노동자>는 그의 초기작들이 가지고 있는 인체표현의 전형을 보여준다. 탄탄한 구조 위에 과장과 생략을 더한 근육표현을 추가해서 리얼리즘을 넘어선 리얼리즘에 도달하고자 했던 그의 탁월한 솜씨가 한껏 드러난 작품이다.

솜씨보다 더 소중히 새겨봐야 할 대목은 그가 만든 인물이 노동자라는 점이다. 그는 노동자를 사랑한 작가다. 그가 세상에 눈을 뜨던 시기는 80년대 후반기다. 87년 유월을 거쳐 그해 여름 한국의 노동자들이 오랜 침묵을 지나 스스로 계급적 각성을 일궈내던 시절, 그는 스무살의 젊은 눈으로 세상에 눈을 떴다. 그는 살아생전에 일하는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자상하게 살피며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왔다. 그는 한때 현장노동운동 조직에 투신하기 위해 수원일대에서 암중모색할 정도로 예술가의 삶과 노동자의 삶을 불이(不二)의 것으로 여겼다. 젊은 시절의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는 현대사회가 ‘노동’이라는 인간의 존엄한 본성을 어떻게 냉엄한 현실의 족쇄를 채워 소외시키고 있는지를 가슴 깊이 새겨두었고, 이후로 두고두고 일하는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 고뇌와 환희를 담아냈다.

그가 유작에서 설치개념을 도입한 것은 40대를 준비하며 21세기 동시대 문화의 변화지형에 몸을 싣기 위한 변모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그의 초기작과 유작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작은 나무조각을 이어붙여 인체를 만드는가 하며, 두꺼운 쇠를 두드려 종이짝처럼 휘어내 옷자락과 머리카락과 신발을 만들었다. 쇠철판을 자르고 붙이고 갈아서 거대한 구도를 만드는 데 까지 도달했던 구본주는 이후에 작은 샐러리맨을 수없이 만들어서 천정에 매달기로 했다. 거대하고 묵직한 덩어리의 조각 작품에서 날렵하고 가벼워보이는 인체표현으로 전환해온 그는 그 너머 개체와 군집의 미학을 통해서 공간을 장악해 들어가는 새로운 작업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이제 그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작품을 이모저모 두루 살펴보는 일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날카로운 이성과 섬세한 감각, 힘과 유연성을 공유했던 구본주. 노동자를 사랑했던 구본주. 노동절로 시작하는 오월에 그를 다시 생각한다.

김준기(미술비평, www.gimjungi.net)

2006/05/11 08:35 2006/05/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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