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행동으로서의 세운상가 도큐먼트
critic & column | 2008/05/20 22:43

예술행동으로서의 세운상가 도큐먼트
도시경관 기록보존 프로젝트 시티스케이프 트러스트(cityscape trust)는 사라지는 도시를 기록한다. 도시는 고정불변의 구조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다. 이 프로젝트는 근현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도시경관을 기록함으로써 기억을 직조한다. 사진과 영상이라는 시각 기표를 비롯해서, 말과 글로써 도시의 구석구석을 훑어 다양한 예술적 기표를 생산해내는 일이 이 프로젝트가 표방한 기록의 전모이다. 이 프로젝트가 여느 기록과 차별화 하는 것은 도시의 경관을 외형적인 구조물의 그것으로 보지 않고, 그 구조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구조물은 사라져도 사람들의 삶을 사라지지 않는다. 나아가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도 사람들의 기억은 떠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구조에 대한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삶에 대한 기억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현재를 바라보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미래를 보는 혜안을 열어준다.
세운상가 도큐먼트가 얻고자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담보하는 새로운 담론 생성이다. 그것은 세운상가의 과거와 현재를 과거와 미래의 맥락에서 재발견하는 일이다. 서울 근대화 과정과 영욕을 함께한 세운상가가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일제말기에 조선총독부가 만든 널찍한 공지가 세운상가 필지의 첫출발이다. 해방 이후 1960년대부터 들어선 판자촌과 사창가 시기를 거쳐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프로젝트와 만난 것이 오늘날까지 우리가 목격해온 세운상가의 짧은 역사이다. 김수근의 건축 프로젝트는 박정희의 시대정신을 실현하기에 충분히 야심만만한 것이다. 서울의 도로체계에 남북축을 만들고, 그와 동시에 종묘에서 남산에 이르는 녹지축을 만들고자 했지만, 결과는 근대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콘크리트 구조물의 행렬이었다. 세운상가는 서울의 최고의 주거지와 상가로 자리잡은 후에 점점 퇴락했다. 청계천 복원공사에 따른 후폭풍은 세운상가의 운명을 한 번 더 뒤바꿔 놓았다. 더 이상 주거지와 상가로서의 기능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개발의 압력이 안팎에서 밀려왔다.
서울이라는 거대 구조에 대한 도시민속지를 써온 시티스케이프 트러스트가 세운상가에 주목한 것은 근현대사를 응축하고 있는 도심공간에 대한 명상적 성찰이자 예술행동주의적인 개입과 참여이다. 그것은 이 도시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망각과 개발의 악순환에 제동을 거는 일이다. 개발 논리를 앞세운 자본의 힘은 기억보다는 망각을 갈망한다. 그 프로젝트는 그러한 힘의 논리를 거스르고자하는 예술행동이다. 예술행동은 예술영역과 실재(생활)영역간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전략이다. 20세기 근대의 예술이 철저하게 실재영역과의 결별한 예술적 기표체계 안에 갇힌 언어게임의 영역이었다면, 21세기 탈근대의 예술은 실재영역과 예술의 적극적인 만남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진과 영상과 구두언어와 문자언어, 사회적 시공간을 횡단하는 몸짓 등 그 모든 예술적인 행위들이 세운상가라는 실재의 영역을 관통하면서 다양한 콘텐츠들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예술적 행동이며 동시에 행동적인 예술이다.
경관을 기록하는 일은 삶을 기록하는 일과 동행한다. 이 프로젝트가 예술적인 성찰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도시라는 거대한 구조와 그 속에 존재하는 개인의 삶을 동시와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 막강한 권력체계의 힘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구조는 그 속에 포함된 개인을 조작하고 억압하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구조 속 개인(들)은 구조의 힘에 균열을 내며 파행한다. 오늘날의 예술, 특히 예술행동과 같은 탈근대적 맥락의 예술은 구조의 힘에 맞서는 상징투쟁이다. 예술행동이 예술로 성립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운동과 동행하면서도 상징투쟁을 벌인다는 데 있다. 예술행동은 예술적인 참여와 개입을 전제로 실재영역에 뛰어들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예술적인 실천으로서의 범주영역을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예술적인 실천으로 성립한다. 세운상가 도큐먼트가 예술적인 실천을 통해서 실재영역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가늠해 봄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예술을 가늠하는 중요한 가늠자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문화우리가 진행한 <시티스케이프 트러스트 : 세운상가 도큐먼트> 자료집 서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