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다] 작품 소개 2 :조양규의 <31번 창고>

분류없음 | 2012/06/19 21:27


[여기 사람이 있다] 작품 소개 2 :조양규의 <31번 창고>

20세기 한반도는 머무는 삶을 떠도는 삶으로 뒤바꿔버렸다. 오늘날 전세계에 걸쳐 600만명에 이르는 한민족 이산(離散)을 낳은 것은 격변의 한국현대사 때문이다. 수천년동안 이어온 정주민의 삶은 식민지배에 따른 이주정책으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산의 고통은 해방 후에도 이어졌다. 남과 북으로 갈린 분단상황은 이데올로기에 따른 개인의 거주지 선택을 강요했다.

조양규(1928-?)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운동에 가담했다가 이승만정권 수립 후 일본으로 밀항했다.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수학한 후, 두 차례 개인전을 연 그는 일본의 전후 리얼리즘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북송선을 타고 북으로 갔다.

이 작품 <31번 창고>는 일본 밀항 후 부두노동자로 일하면서 예술가 활동을 했던 이주민의 고단한 삶을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일반인들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미술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0세기 최고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곤 한다. ‘31’이라는 숫자는 창고 번호인데, 그 창고 앞에 자루를 들고 선 노동자의 모습에는 작가 자신과 재인조선인의 핍진한 삶이 들어있다.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은 식민지 출신의 조선인들을 멸시하고 핍박했다. 조양규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예술가로 자리매김 했지만, 그 팍팍한 이방인의 삶을 버리고 북으로 갔다. 그는 일본에서의 삶을 “공중에 매달린 상태”라고 표현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북한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귀국선에 올랐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을 맞이했을 때, 다수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사회주의를 옹호했으며,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월북했다. 조양규도 남과 북의 분단이 기정사실화 하던 시점부터 좌익운동과 통일운동에 가담하며 정치적 저항의 길을 걸었고, 결국 일본으로 쫓겨 갔다가 예술가로 활동하다가 북으로 귀화했다. 예술가 조양규가 작품활동으로 기록을 남긴 건 여기까지이다.

북한은 자유를 갈망한 예술가 조양규를 끌어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선택한 새로운 조국은 실존을 투영한 리얼리스트의 섬세한 감성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해방공간의 격변기에 조국을 등지고 디아스포라(이산)의 길을 걸었던 그는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해 북으로 갔지만 예술가로서의 그의 활동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했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충청투데이 기고문.

2012/06/19 21:27 2012/06/1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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