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명품, 리움
critic & column | 2008/10/08 09:49
4년 전, 나는 리움의 탄생을 맞아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그러니까 2004년 10월 30일에 쓴 글이다. 아트인컬쳐 기고문이었다. 도하 언론들이 극찬해 마지 않았던 리움. 김준기도 마찬가지로 '하등의 망설임이 없이 찬사와 찬양을 드린다'는 을 전제로 몇 마디 말해야만 했던 그 리움. 지금 리움은 현대미술을 접었다고 한다. 쟁쟁한 큐레이터들을 내 보내고 새로운 기획전 같은 거 안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발 이 안타까움이 짧게 끝나기를... 문화명가의 새출발에 환호를 보냈던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주는 일이 빨리 멈취지기를... 그리하여 자본권력이 현대미술을 악세사리로 취급하고 있다는 세간의 비판이 잦아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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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명품, 리움
또 하나의 명품이 탄생했다. 한남동에 자리 잡은 리움이다. 한국의 고미술품들과 동서의 현대미술을 망라한 한국 초유의 삼성 컬렉션들이 한 자리에 모인 수퍼울트라매머드급 미술관이 새 출발을 했다. 삼성미술관의 변신에 대한 세간의 평판들은 문화명가의 탄생에 대해 경의와 존경을 한껏 표하는 데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한 언론에는 신(神)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나 또한 저 웅장한 프로젝트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런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두 가지의 미술관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삼성미술관이고 다른 하나는 기타 미술관들이다. 그만큼 삼성미술관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얘기다. 리움의 탄생은 국가 차원에서도 못하는 일을 한 기업이 해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리움 개관 이후 찬사일색의 기사들을 읽으면서 리움의 위용을 상찬하는 여론에 ‘이거 같이 엎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송구스러운 마음까지 들 정도다. 하여 나로서도 이 지면을 이용해 찬사와 찬양을 드리는데 하등의 망설임이 없음을 전제로, 몇 가지 다른 말을 보태려고 한다.
명가의 탄생을 공표하다
리움의 개관은 한국 최초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응하는 근대적 의미의 미술관의 전형성을 이룬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상찬에 상찬을 거듭해도 모자랄 일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근대성의 실현에 있어서 특히 문화적 근대성이라는 것이 한참 뒤진 나라 아닌가. 특히 예술영역에 있어서 고전과 당대의 심각한 단절 현상을 넘어서 양자를 공존하게 한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를 저렇게 떡하니 큰 판을 벌여놨으니 이 얼마나 폼나는 일인가. 이제 비로소 ‘대한민국에도 문화명가가 존재한다’고 말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 명가를 떠받드는 방식이 다소 마음에 걸린다. ‘리움’이라는 이름에 관한 얘기다. 뮤지엄(museum)이라는 명사에 담긴 ‘um'을 따서 'leeum'이라는 이름을 지은 삼성미술관으로서는 적잖이 고심했을 것이다. 뮤지엄이라는 것이 미의 여신인 뮤즈(muse)를 찬미하기 위해 지은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움이라는 명사는 삼성그룹의 창업주와 소유주 일가를 미의 여신인 뮤즈(muse)와 같의 반열에 올려놓은 셈이다. 하기야 뮤즈라는 신이 우리에게 신이라고 인지되지도 않는 바에야 ‘이병철-이건희 뮤지엄’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하니 수사적으로 리움이라고 줄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리움이라는 이름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명가의 탄생을 공공연히 표방한(공표한)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이유, 이름은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성 있는 실천을 잇지 않으면 자칫 뜻하지 않게 손해볼 경우가 생기는데, 리움이라는 이름에 깃든 명가의 기풍에 행여 잔바람 일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남동에 깃든 엘리티즘의 먹구름
다음은 삼성의 엘리티즘에 관한 일말의 우려에 대해 짧게나마 전언하고자 한다. 원래 담화 가운데서도 뒷담화(일명 뒷다마)가 때로는 진짜 도움되는 얘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움이 열리기 훨씬 전부터 미술계에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특히 회원제로 운영하는 엘리트 미술관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소문이 횡횡했다. 소문은 소문에 그치지 않았다. 뚜껑을 열고보니 하루에 전화 예약한 1백명의 관객만 받는다는 것이었다. 황망한 마음에 연유를 알고 보니 모종의 이유 때문에 오픈을 앞당기느라 아직 정상적인 운영시스템을 갖추려면 멀었으니 시스템을 정비하고 나면 정상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그 찬연한 유산들을 하루 1백명 관람객에게만 연다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그동안 리움의 엘리트주의를 우려한 일각의 뒷다마꾼 여러분. 안심하시라. 그런데 한남동에 깃든 엘리티즘의 먹구름은 관객제한에서 끝나지 않는다. 개관을 기념한 전시에 관해서도 이견이 분분하다(참고로 이 역시 목하 언론의 찬양과는 다른 뒷담화들이다). 삼성의 컬렉션의 면면에 대해서야 뭐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드러내 보이는 전시라는 실천적 차원의 얘기다. 고전과 당대의 만남에서 우러나는 고도의 정신적 교감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있어 리움의 전시는 지나치게 교과서적이다. 소장품 위주의 상설 전시장만 운영하는 엘리트 미술관이 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기에는 좀 밋밋한 전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는 말이 있잖은가. 아무리 찬란한 컬렉션이라도 명품진열장으로는 곤란하다. 삼성미술관이 어떤 미술관인가. 최고의 컬렉션으로 최고의 기획을 할 수 있는 막강 파워를 가진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감성적이면서도 이지적인 게임을 기대한다.
보물창고를 넘어서 문화생산의 기지로
개관기념전에 나열된 한국현대미술 컬렉션의 특정 취향 편식 현상은 무소불이의 삼성 파워가 한국미술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삼성의 컬렉션 기능은 너무나 소중하고 막중한 장치이다. 좀더 섬세하고 신중하게 헤아릴 부분이 많다. ‘삼성은 미니멀이다’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90년대 이후 한국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삼성의 컬렉션이 다소 주춤한 상태라는 일각의 풍문이 그냥 풍문이기를 바란다. 문화명가의 리움이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공공적 자산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취향의 정치학을 넘어서는 미술관 정책이 절실하다. 한남동 보물창고가 그저 명품의 위세를 만방에 떨치는 데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문화생산을 지속하는 기지가 되어야 한다. 명품 컬렉션을 바탕으로 시민의 시각문화예술 교육의 장을 열어나가고 고전과 당대의 시대정신을 융합하여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내는 적극적인 경영 마인드. 그것이 진정한 문화명가의 향기를 만방에 퍼뜨리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