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의제의 최전선에 선 행동하는 예술가 전진경

critic & column | 2012/07/15 13:49


사회적 의제의 최전선에 선 행동하는 예술가  전진경

돌아가신 분을 관에 모시고 영영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순간. 전진경은 너무나 황홀하게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다. 생전에 그토록 냉엄하고 강인했던 어머니를 입관하던 순간, 관 속에 누워계신 어머니에게 꽃을 채워넣는 그 짧은 시간동안에 전진경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뇌리에 담아두었다가 한 달 뒤에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와 영원히 헤어지는 순간에도 그는 그림 그릴 생각을 했던 것이다.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는 ‘너무 아름다웠던 그녀’의 얼굴에는 작가 자신의 얼굴이 그대로 들어있다. 전진경은 근 몇 년동안 돌아가신 분들 여럿을 그림 속에 담았다. 용산참사에서 돌아가신 다섯 분의 영정을 비롯해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님과 민주화운동의 대부 고 김근태님의 장례식에 쓰인 초상화가 전진경의 붓끝에서 나왔다. 철거민들과 명사들의 죽음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을 맞은 전진경은 삶과 죽음의 뜻을 성찰하며 그림을 그려왔다.

전진경은 대학에서 수묵채색화를 전공하기 시작한 이래 20년째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고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개인전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갤러리나 미술관이 아닌 공장건물에서 열리는 전시다. 그는 수년째 장기농성을 벌이고 있는 인천의 악기제조회사 콜트콜택의 빈 공장건물에서 몇몇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점거를 진행하고 있다. 스쾃(Squat)이라 부르는 예술점거운동이 일반화한 유럽에서라면 몰라도, 한국과 같이 예술적 실천에 대해 관대한 시각이 부재한 나라에서 남의 빈 건물에 들어가 작업실을 꾸리겠다는 발상은 여러모로 난관에 부딪혔다. 건물주 측의 거센 항의를 받는 것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고 한다. 고비의 순간들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전진경은 빈방 하나를 작업실로 꾸미는 데 성공했고, 그곳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진경은 벽면을 정리하고 간단한 집기와 화구들을 배치한 후, 그동안의 작업들을 옮겨놓고 신작 제작에 들어갔다. 불법침입자인 그는 버려진 공장 건물 여기저기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모아 작업도구로 쓰기도 하고, 작업실 벽에 벽화를 그리기도 하며 공장아틀리에를 꾸리고 있다. 그는 콜트콜택 사건을 공론의 장으로 확산하자는 뜻에 공감한 스무명의 예술가들과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공장아틀리에 개인전을 연다. 한국사회와 같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사적 소유가 완벽하게 관철되는 국가에서 예술점거를 벌이는 드문 경우이기도 하지만, 그곳 점거아틀리에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여는 작가는 전진경이 유일할 것이다. 그는 이번 개인전을 통하여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고 있다. 스스로 머무르는 곳을 결정하고 예술적 의제를 설정하고 실천하는 예술가 전진경, 투쟁의 현장 속의 뛰어들어 사회적 의제의 최전선에 선 ‘행동하는 예술가 전진경’이라고 말이다.

그가 첫 개인전 장소를 점거 중인 공장으로 선택하여 자신의 뜻과 길을 드러내는 것은 일종의 개념예술적 행위이다. 그는 지난 2006년부터 경기도 평택의 대추리마을에서 지킴이 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이후 서울의 용산참사 현장을 비롯한 사회적 고통과 갈등의 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현장에 거주하거나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주민과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렇듯 사건과 상황에 관한 심층적인 체험은 그의 작품을 진정성의 국면에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10여년간의 작업을 일시에 개인전 방식으로 소개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진경의 경우 초기의 긴 시간동안을 현장미술운동에 할애하였으므로 개인작업보다는 집단창작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이유로 그가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대부분 지난 5년여 동안 대추리를 비롯한 현장에서 제작한 액자그림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진경의 그림들이 현장에서의 쓰임새를 위해 즉발적으로 그려진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다수의 작품들은 자신의 체험이 쌓아준 기억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만다. 가령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과 같은 작품은 서울역에서 만난 곰돌이 모자를 쓴 아저씨와 몽골에서 만난 아저씨의 모습을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그린 그림이다. 평택 대추리마을에서 지킴이 활동을 했던 그는 2007년 봄, 마을을 내주고 모든 주민이 떠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주민들과 함께 그 마을에 머물며 그들의 아픔을 지켜봤다.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마음에 담아둔 전진경은 몇 점의 그림들로 대추리를 기억한다. 대추리의 일상과 사건을 그린 그림들 속에서 전진경은 인간의 삶에 있어 기억의 문제를 깊고 무겁게 다루고 있다.

전진경의 작품에는 대부분 인물이 등장하는데, 몇몇 작품들에서 그는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작업을 했다. 전북 진안에서 만난 이장님을 그린 그림 <진화>는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고 있다. 과거를 가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 태어나고자 하는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애써 그린 인물화 위에 하안 분칠을 하곤 했다. 그는 몇 점의 연작에서 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는 그 위에 하얀 분칠을 했다. 유독 한 작품에서만 그는 얼굴 전체를 지우는 분칠을 멈추고 이마 가운데와 미간 사이에만 분칠을 했다. 존엄을 뜻하는 에스페란토어 제목의 그림 <Digno>이다. 이 그림은 자신을 그린 것인데, 오랫동안 생각하며 완성한 이 작품을 통해서 그는 비로소 마음의 병으로부터 온전하게 탈출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본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그리기도 한다. <이런 겨울>은 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니의 뒷모습인데, 대부분의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싸우며 지키고 있을 때, 먼저 떠난 주민들 가운데 일부가 자신의 고향이 궁금해서 차마 낮에는 돌아오지 못하고 밤에 마을 주변을 서성거리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린 그림이다. 먼저 떠난 주민의 슬픈 마음이 담긴 그림이다. <꽃을 좋아하는 남자>는 전북 진안 방곡마을에서 거주할 때 평생 초등학교 소사로 일하신 할아버지가 죽어가는 화분을 가져다가 되살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의 집은 화초들로 넘쳐났다. 평택과 진안의 두 사람을 기억하는 전진경의 마음에는 쓸쓸함과 따뜻함이 교차한다.

용산참사 현장에서의 예술행동은 전면적인 기억투쟁이었다. 참사가 벌어진 후 1년이 다 되어서야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그 참혹한 사건이 잊혀지지 않고 공론의 장에서 살아있도록 하기 위해서 전진경은 주민들을 만나고 그림을 그렸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돌아가신 철거민 다섯 분을 그린 영정 그림은 먹선의 맛과 멋으로 윤곽을 잡고 정교한 채색으로 인물의 생동감을 살린 작지만 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장례식 때 크게 확대 프린트해서 장례행렬에 쓰였다. 그는 용산포차에서 일식집 메뉴판에다가 그림을 그렸다. 철거민 가족들의 모습을 만화풍으로 그렸는데, 이후 다수의 주민들로부터 서로 자신들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아 메뉴판그림 연작을 했다. 용산참사의 현장을 정리할 때 그는 ‘나무그림증정식’을 열어 주민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나눠줬다.

용산참사 현장작업 이후 전진경은 현장미술팀의 일원으로 예술행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 그는 제주도 강정마을을 찾아 현장 작업을 했다. <구럼비의 신>은 구럼비바위 표면을 종이찰흙으로 떠내고 그것으로 만든 종이부조 가면이다. 이 작품은 해군기지 건설현장이라는 한국사회의 매우 특수한 국면에 참가해서 제작한 것으로서 파견미술팀과 함께 진행한 것이다. 파견미술팀은 회화, 판화, 조각, 설치, 문학,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구사하는 예술가들, 전미영, 이윤엽, 신유아, 안규환, 송경동 등이 함께하는 네트워크의 이름이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조건의 파견노동자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마음으로 첨예한 의제의 현장을 찾아 예술행동을 실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진경은 대학에서의 학업을 정리한 후 곧바로 현장미술활동에 뛰어들었다. 현장의 무대미술을 중심으로 한 현장미술그룹인 그림공장 멤버로 활동한 것이다. 인송자, 김성건, 김주철 등의 선후배들과 함께 한 10년간의 현장미술 활동에서 그는 무수히 많은 거대한 그림들을 그렸다. 그는 단위노조에서부터 전국단위 노동자조직에 이르기까지 무대미술로서 노동자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전진경은 그림공장에서의 10년 활동을 정리한 후 그는 대추리로 갔다. 그곳에서 전진경은 현장미술의 새로운 방법론을 채득했다. 현장에 살면서 그곳의 삶을 이야기하는 예술가로 진일보한 것이다. 노동자대회 등과 같이 수천 수만명이 운집하는 집회의 무대 뒤에 걸린 걸개그림보다는 작고 소박하지만 내용적으로 알차고 진솔한 예술적 실천을 발견했다. 개인적인 선택 따라 삶의 장소와 작업 내용을 채택하는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한 것이다.

그는 대추리와 용산,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강정마을, 콜트콜택 등 사회적 갈등의 최전선에서 예술행동에 동참했다. 특히 대추리와 용산, 그리고 최근의 콜트콜택의 경우는 현장 거주 및 점거를 예술적 행위와 접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미군의 군사전략과 농민의 생존권이 충돌하는 지점에 뛰어들었으며, 죽음을 부르는 자본의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 함께 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직장폐쇄에 맞서 공장을 지키고 있는 악기제조회사 노동자들과 함께 빈 공장을 지키며 점거아틀리에를 꾸리고 있다. 만약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전진경의 점거아틀리에를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진경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빼어난 화가이자 소외된 이웃의 삶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활동가이다. 전진경의 삶은 예술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다. 그는 사회적 갈등의 현장을 찾아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을 창의적으로 결합하고자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는 행동하는 예술가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 전진경 개인전 서문

2012/07/15 13:49 2012/07/1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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