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맥락에서 사유하는 도마뱀 : 신현중 리뷰
critic & column | 2005/01/24 19:46
문명의 맥락에서 사유하는 도마뱀
신현중 : 공화국 수비대, 2004.12.15-12.25, 스페이스셀
연일 혹독한 추위가 이어지는 한겨울이다. 지율 스님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신현중은 아프리카로 갔다. 천성산 고속철 터널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청와대 부근에서 87일간 초인적인 단식을 진행하던 지율 스님이 지난 1월 21일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내 몸을 내려놓을 곳을 찾아야겠다.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세인들의 염려는 그의 목숨을 걱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세상이 이렇다. 자본과 권력의 욕망이 끊임없이 생명과 개체를 억압할 때 이에 맞서는 한 종교인의 목숨을 건 단식은 맨몸의 가냘픈 저항인 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신현중의 아프리카 여행 소식을 전해 들었다. 유라시아 대륙에 이어 아프리카까지 그의 문명과 원시를 넘나드는 그의 여정은 이번 겨울에도 빠지지 않고 이어졌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인 지난 해 12월에 열린 개인전 <공화국 수비대>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20여 년 간 다녔던 오지문명권과 나를 반겨주었던 도마뱀, 정치인들과 돈세탁, 정수일 교수와 국적세탁, 9.11과 이라크(IRAQ)의 공화국 수비대, 지율스님과 천성산 도롱뇽, 이 모든 것들의 아우름과 함께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한 종교인의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단식을 지켜보는 우리는 그의 맑은 영혼에 대해 감히 무어라 한 마디 말을 보태기조차 힘겹다. 이렇듯 생명을 어루만지고 아우르는 종교의 깊이에 비해 예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란 백남준의 저 유명한 말처럼 ‘고도의 사기’를 유포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신현중의 작업은 예술은 사기 그 이상의 그 무엇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브론즈, 대나무 자, 자개 등의 매체로 만든 도마뱀은 신현중 특유의 문명사적 맥락을 가진 것이며, 동시에 당대의 맥락 속에 놓은 현실의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신현중이라는 대형 작가가 스페이스 셀이라는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냈는가 하는 점도 이 전시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해법은 조각난 현실 인식의 지평을 구석구석 숨겨두는 일이었다. 전시장 안팎에 놓여있는 도마뱀들은 각각의 매체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두어 덩어리의 볼트너트 조임 구조로 이어진 도마뱀의 꼬리 형상은 스스로 몸의 일부를 잘라내고는 냅다 줄행랑을 치는 도마뱀의 모습을 적절하게 은유하고 있을뿐더러 도막난 현실인식의 단절 상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무궁화 (세탁)비누를 깔고 그 위에 (평화표) 탁구공으로 내부를 매운 (문명을 상징하는) 대나무 자를 엮어 만든 도마뱀을 설치했다. 세탁과 평화를 엎고 문명의 맥락에서 역사를 배반하는 어이없는 현실 앞에 사유하는 도마뱀을 얹어둔 것이다.
그의 조소작품은 대부분 지난한 노동이 베어있는 거대한 크기의 인공조형물이다. 그것은 물질 덩어리들과의 격렬한 투쟁을 통해 건져 올린 장인의 노동과 전시장과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노련하게도 그 공간을 장악해내는 숙련된 작가의 기술이 만들어낸 예술 장의 산물이다. 그동안 신현중의 작업은 문명과 자연, 역사와 현실의 시공간을 오가는 광대한 스펙트럼의 막연한 그 무엇으로 읽혀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신현중은 당대의 풍경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것은 문명의 시원을 탐구하는 우제류 조각이나 생명의 근원을 향한 곰팡이 작업을 잇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깐수교수, 9.11, 이라크전쟁, 천성산 터널' 등 한국사회와 세계의 현실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얽어내는 작업인 것이다. 문명의 시원과 원시적 생명의 근원을 찾아서 순례를 다니던 신현중의 시선이 어느새 21세기 당대의 현실 깊숙이 들어와 있다. -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월간미술> 2005년 2월호 전시리뷰 기고문입니다.
신현중 : 공화국 수비대, 2004.12.15-12.25, 스페이스셀



* <월간미술> 2005년 2월호 전시리뷰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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