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 가운데서 리뷰 - 이명훈
artpd clip | 2008/01/25 09:08
[리뷰]
<대추리 현장예술 도큐먼트 : 들 가운데서> 展
2007_1212 ▶ 2007_1228 _대안공간 루프
글/이명훈(공공미술추진위원회 사무국 팀장)
나에게 대추리 현장예술은 80년대의 민족-민중미술의 부활 같은 것이었다. 그것의 부활이란 ‘살아있음’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좀비들의 귀환이 아니었다. 대추리에서 나는 뜨거움의 용솟음과 되살아있는 눈빛들, 80년대 이후로 사라진 비장함, 숭고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몸과 정신으로 깨어난 일종의 탈각체(脫却體)를 마주하는 것이었다. 80년대의 미학적 이데올로거들은 90년대의 무기력함과 종잡을 수 없는 수많은 탈주와 멋쩍은 변신들과 잠재적 피해의식들을 경험하면서 ‘대추리’라는 매우 상징적이고도, 그들이 ‘끝장’을 보지 못했던 정치적, 미학적 상황의 종착지처럼, 그들이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예정된 땅이었던 것처럼 90년대를 거친 80년대가 거기 대추리로 향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는 말로만 들었던, 책으로만 보았던 80년대의 막장을 보았고 새로운 예술의 개막을 또한 보았다.
‘현장예술’로 ‘행동주의 예술’로 혹은 ‘퍼블릭 아트’로 새로운 예술을 개념화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80년대의 미학과 이것을 잇는 담론의 시도들이다. 이것은 경험과 기억과 기록의 멋진 랑데부이어야 할 것인데,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기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은 매우 숭고한 표현으로 강한 저항의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경기문화재단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 프로젝트가 ‘기억’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생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 기억은 단지 대추리-사라진 마을에 대한 기억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80년대와 90년대의 시간적 반추이면서 미래의 새로운 현장에 대한 예고를 하는 암시하는 ‘기억’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이트메어’도 아닌 ‘일장춘몽’도 아닌 지속된 기억이 되기 위해서, 미래의 기억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록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90년대의 기억이나 기록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90년대의 기록이 빠져있는 80년대의 부활이란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90년대를 보냈던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따라서 나는 이번 전시를 마침표가 아닌 하나의 쉼표로써 두 개의 기록하기에 대한 숙제가 주어졌다고 본다. 하나는 90년대를 기억하기, 흩어져 있는 아카이브를 찾아내 분석하기이고 다른 하나는 계속 지금을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일이다.
오늘날 미술에서 ‘기억’이나 ‘기록’이 중요해 지는 현상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단지 과정 중심의 미술의 부각 이전에, 기록 매체의 대중화나 이미지 의존도에 비해 스토리텔링 기법의 재발견과 유행 이전에 그러한 방법적, 미디어적 전환을 낳게 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상황, 맥락에 대한 통찰이 중요할 것이다. 권력이 이동하는 것처럼, 기억이나 기록이 조작되는 것처럼, 대추리가 파괴된 것처럼 경계해야 할 것은 변화하는 권력과 누구도 눈치체지 못하는 조작술과 수많은 망각 기계들의 작동이다. 기록의 예술, 그것을 행하는 예술가 역시 자기 검열, 자기 조작술, 편집의 경계, 망각의 기계적 작동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대추리의 현장예술이, 그것의 기록들이 예술의 현장 개입과 연대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참여와 치유의 역할’이나 ‘긴 시간 주민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대추리 문제를 외부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우리 모두에게 되돌리자면 대추리 현장예술은 80년대의 미학적 이데올로거들을 만나게 하고, 혹 치부를 더 드러냈다 할지라도 치유의 역할을 했으며, 뿐 만 아니라 혹 위로받았다 할지라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미술의 문제, 예술의 제 문제와 고민을 외부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는 말자.
글/이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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