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콘텍스트와 동행하는 텍스트 생산을 위하여 - <아트 인 부산 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 서문
critic & column | 2008/08/28 01:58

도시의 콘텍스트와 동행하는 텍스트 생산을 위하여
<아트 인 부산 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 서문
부산시립미술관 개관 10년을 맞이하여 부산을 다루는 미술 프로젝트를 펼쳤다. 부산을 다루는 예술로서의 가치 지향을 담겠다는 의중을 표현하기 위해서 ‘아트 인 부산’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것도 2008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부산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내러티브를 들여다본다는 데에 방점을 찍기 위해서 ‘아트 인 부산 2008’이라는 틀을 갖췄다. 나아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익숙한 문구를 캐치프레이즈로 달면서 개관 10주년을 맞아 부산 출신으로서 타지에 나가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부산으로 초청한 작가 구성을 반영했다. 이외에도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과 부산을 방문한 타 지역의 작가들, 그리고 부산 지역의 대학생들을 포괄해서 참여작가를 구성한 것은 단일한 주제 의식을 설정해서 계몽적 서사를 유포하기 보다는 10년의 역사를 가진 부산시립미술관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가져야 하겠는지를 큰 틀에서 가늠해보기 위함이었다.
이 전시는 작품의 생산과 소통 과정 전반에 상호 토론과 참여와 개입을 통해서 미술관 전시가 도시의 면면과 조우하고 관계 맺는 담론 생산의 장으로 기능하고자 했다. 부산의 생태와 풍경, 사람과 삶, 욕망과 사회를 읽어내겠다는 목표 설정에 접근하기 위해서 워크숍과 세미나를 열어 부산이라는 도시에 접근하기 위한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일어난 기획자와 작가의 소통 과정 또한 가능한 한 상호주관성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촉박한 시간과 빠듯한 예산을 가지고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토론 프로그램들을 진행한 것은 단기적인 실효를 거두는 것 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기획 패러다임을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토론의 자리는 미술작품 생산을 위한 비평적 담론의 자리인 동시에 예술이 도시와 조응하는 방식에 관해서 열린 자세와 방법론을 준비하는 자리기도 했다. 이러한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시 준비 과정에서 부산과 서울에서 워크숍을 열어 전시의 취지를 설명하고 작가들의 생각을 들어보았으며, 전시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논점들을 찾아 토론을 진행했다.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 지역성 등과 동행하는 비평적 실천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미술관의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것 또한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미술관의 당면 현안이었다. 하여 이 전시는 ‘아트 인 부산 2008’이라는 타이틀 아래 부산의 지역성에 발견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연례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부산의 시간과 공간, 장소성과 역사성을 다루는 이 전시를 통해서 시민사회 속에 한 걸음 다가서는 미술문화의 장이 펼쳐지기를 기대했다. 물론 시각예술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많이 가지고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미술문화와 시민사회를 단선적으로 연결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예술가들이 고유의 아성 바깥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는 태도를 가지는 시발점으로 자리잡기를 바랐다.
각자 다른 입장을 가진 많은 주체들이 전시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일반 시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나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이 예술작품으로 등장했다는 점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많은 미술인들은 이렇게 많은 좋은 작가들이 부산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데에 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산과 서울의 신문과 방송, 미술전문지 등 다양한 언론의 관심은 10년의 역사를 만들어온 부산의 미술문화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관료사회에 몸담고 있는 관객들은 부산의 문화, 생태적 가치를 재발견해낸 예술가들의 관점과 표현 방식을 문화정책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부산의 예술생태를 지키며 활동해온 선배세대들의 고군분투에 비해서 동시대의 미술문화는 한층 고무적인 것이라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참여 작가 62인(팀)은 전 장르에 걸쳐있다. 평면, 입체, 사진,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총망라했다. 부산출신으로 부산을 떠나 활동하고 있는 작가 29인이 78점을 출품했고,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 14인(팀)이 82점과 1건의 작품을 출품했다. 다른 지역에서 부산을 찾아 작업한 작가 14인이 26점을 냈으며, 경성대, 부산대, 동아대, 동의대, 신라대, 그리고 부산 인근 도시인 울산대 등 6개 대학의 교수와 학생이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술관 전관과 바깥 공간에 설치된 출품작들은 개별작품 186점과 공동작업 7건이었다. 출품작의 수와 규모가 막판까지 유동적이었던 점은 불안정 요소인 동시에 성공의 요인이기도 했다. 미술관이 제시한 개관 10주년 기념전이라는 외형적인 틀거리 뿐만 아니라 부산을 다루는 프로젝트라는 데에 동의한 작가들의 열정은 이 전시를 만든 커다란 동력이었다.


미술관 로비 공간과 2층, 3층 전시장 전관, 그리고 미술관 건물 외벽과 정원, 나아가 미술관 주변에 이르기까지 이 전시의 참여작가들은 가능한 모든 공간을 활용했다. 이 전시가 일정 정도의 외형적 규모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규모가 큰 작품들을 배치하기보다는 여러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의 작품이 자리할 수 있도록 배치의 묘미를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 전시가 부산의 인물과 풍경을 다룬 미술관 소장품 전시와 병행했다. 소장품 전시와 신작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 배치됨으로써 동반 상승 작용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미술문화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방법론 가운데 하나를 확인한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옛 것과 요즘 것, 기성의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전시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인물이나 풍경을 다루는 일은 부산 특정성에 접근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회화와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접근한 작가들의 부산 읽기는 동일한 내러티브일지라도 얼마만큼 차별화한 스타일로 다루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시각적 자극과 감동을 선사하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하철 입구에서 미술관에 이르는 바깥 공간에 조형 작품을 설치하거나 미술관 건물의 기둥과 난간을 플래카드로 둘러싼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옥외공간을 점유한 조형 설치 작업들은 이 프로젝트가 지향한 장소특정성이라는 이슈를 담고 있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은 영상과 퍼포먼스, 그래피티, 설치, 회화 등 매우 광범위한 접근으로 자신들의 현주소지인 부산에 접근했다. 리서치 베이스의 프로젝트들도 조형에 얽매인 작금의 흐름에 경종을 울려주었다. 많은 작가들이 부산의 면면을 섬세한 촉수로 깊게 들여다보았고, 그 결과 동영상 인터뷰와 사진, 개념 설치 등 다양한 방식의 도큐먼트가 이루어졌다.
부산 출신 작가들의 옛작업들도 감동적이었다. 60년대나 70년대에 그린 오래된 그림들을 선보인 부산출신 작가들의 구작은 예술가를 길러낸 삶의 터전 부산의 과거를 동시대의 미술공론장으로 발신했다. 부산을 찾은 타지역의 작가들은 독특한 시각으로 부산을 읽어냈다. 바다의 도시, 항구 도시 부산을 찾은 이들은 바다뿐만 아니라 산동네에 이목을 집중했다. 산으로 둘러 쌓인 도시의 풍경, 산허리를 굽이치는 산복도로 마을의 정취는 부산이 소중하게 다루어야할 가까운 과거의 유산을 재발견하게 했다. 부산과 인근에 있는 대학 교수들이 디렉터를 맡아서 학생들의 작업 과정에 동참해서 만든 학생들의 공동작업은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이웃도시 울산에서 부산을 찾은 미대생들이 부산의 과거와 미래를 성찰하는 도큐멘터리 작업을 선보였다. 미술관 바깥 공간이 유쾌한 웃음의 조형공간으로 변모하기도 했으며, 안창마을에서 벌어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아카이빙 전시도 열리고, 영상이나 사진, 설치 작업으로 부산을 새롭게 보여주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의도하는 ‘도시의 콘텍스트와 동행하는 텍스트 생산’은 필연적으로 지역성 논의와 만난다. 중앙과 지역, 글로벌과 로컬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 시도는 글로컬리즘이라는 절충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 대안으로 ‘지역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을 견인하는 예술전략’이 필요하다.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think global, act local)'는 이 언명은 지역과 세계의 유기적인 연대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세계화의 위계화 전략이 숨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성을 성찰하는 예술, 지역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지평 속에서 예술적 실천을 가늠해온 성과들에 대해 집중함으로써, 예술 영역에 있어서 ‘지역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을 강조하는 새로운 전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지역성 논의는 중앙과 지방이라는 낡은 이분법을 넘어설 때 새로운 문화생산의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성이라는 이슈는 동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영역에 걸쳐 전지구적인 변화는 물론 개인의 삶의 질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동시대 최전선의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로컬한 삶의 단위 속에서 벌어지는 삶의 정황들에 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하는 작업 태도를 담고 있어야 한다. 예술적 지역성은 이런 방식의 체험을 통해서 내적 필연성으로 가득 차있는 진정성을 관통하지 않고는 공허한 상상적 허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역성 논의를 통해서 부산의 정체성을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원적인 것으로 재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일한 정체성을 고집하는 폐쇄적인 지역성 논의는 또 다른 중심주의 사고를 고착화하곤 한다.
폐쇄적인 지역성 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상호지역주의(inter-localism)에 관한 비상한 관심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상호(inter-)’란 중심과 주변,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의 이분법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상호성을 말한다. 한국의 경우 서울과 부산이라는 이분법에 입각하자면 중앙과 지방, 1등과 2등이라는 고착화한 구도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상호지역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부산은 서울과 관계맺는 동시에 대구나 대전, 광주와 만날 수 있고, 베이징과 도쿄를 만나는 동시에 상하이와 후쿠오카를 만날 수 있다. 이렇듯 상호지역성에 입각한 다차원적인 시각이야말로 오늘날 ‘지역’이라는 개념아래 숨어있는 폐쇄성을 극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아트 인 부산’이라는 프로젝트도 상호지역주의의 틀을 가지고 부산의 내부와 부산의 외부를 부지런히 넘나들면서 부산을 재발견하는 예술생산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성 담론은 나아가 예술의 공공성 논의와 동행한다. 공공성이란 공공장소라고 할 때의 물리적 공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생산과 향유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예술적 소통을 시도하며 이를 통해서 문화생산의 맥락까지도 끌어들이려는 공공영역의 문제이다. 조금 더 확대해서 해석해보자면 예술에 있어서의 공공성이란 ‘예술적인 공론의 장’을 형성하려는 시도이다. 예술공론장은 오늘날 국가 공권력이 대변하고 있는 공공성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공공영역의 범주는 극히 한정적이다. 부산의 현실정치세력과 언론, 시민사회의 현실이 말해주듯이 부산은 개방적인 가능성을 가진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매우 완고한 틀이 지속가능한 도시이다. 시민들의 생활문화 속에도 프로야구와 같은 스포츠 마케팅이 부산의 이미지를 대변할 정도로 초보적이고 말초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예술을 통해서 공공영역을 말하는 일이란 쉽지 않아 보인다.
예술적 공공영역은 매스 미디어가 토해내고 있는 여론이라는 극악한 형태의 공공성과 판이하게 다르다. 이들의 공공적인 예술은 거대하게 우뚝 서서 대중들을 향해 웅변하지 않으며 현란한 색채와 조명과 몸짓으로 빈곤한 컨텐츠의 공허함을 위장하려 들지 않는다. 예술이란 익명의 대중을 향해 카리스마 넘치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크던 작던 공공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매우 낮은 목소리의 소통일수도 있다. 예술공론장은 국가나 언론처럼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대규모의 정치적 맥락을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지역 공동체 단위의 예술적 소통을 통해서 그 모습을 가늠해볼만한 소규모의 정치적 맥락을 가진 것이다. 생산과 소비가 대량화 되고 정보양식의 변천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지구적인 차원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상호연관이 옥죄어 오는 상황 속에서 예술의 이름으로 소통 가능성을 지향하는 일은 앞서 말한 지역성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예술적 실험에 직면해 있다. 예술에 있어서의 지역성 논의는 문화적 세계화에 대안이자 근대를 넘어서 탈근대적 지평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공영역의 황폐화를 극복하는 대안이기도 하다.
시각예술이 근대적 시스템을 갖추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탈근대를 이야기하는 지금도 여전히 미술관은 주요한 공론의 장이다.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형성되는 공공영역으로서의 미술관은 근대의 약속을 담고 있는 보수적인 기관이며, 동시에 미술관 바깥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문화정치를 견인하는 진보적인 기관이기도 하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처한 입장은 매우 양가적일 수밖에 없다. 이 양면성 가운데 어떤 가치를 옹호할 것인가를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구분할 여력이나 근거도 없어 보인다. 새로운 10년의 길목에 서서 뒤를 돌아보며 동시에 앞을 내다보는 시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부산이라는 거대도시의 콘텍스트와 동행하는 텍스트 생산이 필요하다. <아트 인 부산 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돌아보는 이 카탈로그에서 프로젝트 자체의 성과나 한계를 발견하기보다 부산이라는 거대도시가 처한 문화정치적 맥락에서 공공미술관이 감당해야할 역할을 재발현해주기를 기대한다. 지난 80년의 미술문화 속에서 지역성과 보편성을 발견하는 일과 동시대의 문맥 속에서 예술적 실천을 가늠하고 미래비전을 만드는 일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한 몸으로 붙어있기 때문이다.
김준기 (부시미 큐레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