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리뷰 : 21세기 초판옵티콘의 실체, 대추리 레이돔

critic & column | 2006/05/25 09:11



21세기 초판옵티콘의 실체, 대추리 레이돔

'사람들, 곡식, 새, 꽃, 나무, 풀, 기러기, 가창오리, 똥개, 황소, 고양이, 물, 철조망, 집, 트랙터, 자동차, 달, 구름, 깃발’. 이 모든 것들이 노순택의 카메라 ‘필름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햐얀 공과 함께. 노순택은 이 공을 ‘얄읏한 공’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지난 3년간 평택 팽성읍 대추리의 황새울 들녘의 풍경과 일상과 사건을 흑백사진으로 담았다. 그 모든 컷들은 하나같이 들판 한가운데 자리잡은 30미터 높이의 레이돔을 동시에 담고 있다. 레이돔. radar+dome=radome. 아메리카 군대의 최첨단 정보통신망이다. 노순택은 평택 들판을 지배하고 있는 가시적 구조물을 통해서 한반도와 그 너머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초판옵티콘으로써의 레이다돔을 편집증적인 집요함으로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는 얄읏한 공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전시명 타이포에 ‘o’ 네 개가 나란히 자리 잡도록 함으로써 야릇함을 보다 야릇하게 만들고 있다. ‘에둘러’ 담았다고 말하고 있듯이, 그는 자신의 카메라가 레이돔을 향하고 있으되 언제나 대추리의 풍경과 일상과 사건을 포착한 장면을 통해서만 그렇게 하겠다는 계획으로 초지일관하고 있다.


노순택의 간접화법은 ‘분단의 향기’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다큐멘타리 사진이라는 것이 피사체를 리얼하게 포착해내는 데 집중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에둘러’ 대추리의 풍경을 담았다. 캠프 험프리 전경 속을 담는 건 기본이다. 물론 그 풍경 속에는 레이돔, 그놈이 들어 있다. 관객입장에서는 노순택의 풍경이 그냥 풍경이 아님을 간파한 이후에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그놈을 다루고 있는지에 관해 관심이 쏠린다. 마른 논바닥의 성긴 풀잎 사이로 야릇한 공이 선명하다. 최병수의 미사일 솟대 뒤로도, 몰려오는 먹구름 아래에도,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행렬 뒤에도 여지없이 야릇한 공은 대추리를 지켜보고 있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떠있는 녀석과 부식되어가는 경운기 뒷부분 사이로 보이는 녀석은 초저녁 보름달을 보는듯하다. 논바닥의 볏그루에 포커스를 맞춘 풍경은 놈을 포커스 아웃된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여물 먹는 황소의 검은 눈망울 속에 하얀 공 하나와 외양간 너머 야릇한 공 하나가 동시패션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나뭇잎 사이로 두둥실 보름달처럼 떠오르는가 하면, 고요한 달빛 아래 또 하나의 달이 떠있다. 농수로 바닥아래에 비친 녀석은 가증스럽게도 영락없는 월인(月印)이다.


일상과 사건 속에 담긴 레이돔은 더욱 절묘하다. 그는 일상 속에 사건을 담아냄으로써 객체를 포착하는 예술가 주체의 자리를 확인하게 한다. 철조망 앞에서 농사짓는 농부의 머리 위에 덩그러니 하얀 공이 떠있다. 들녘에서 괭이질하는 농부의 동선 끝에도 하얀 공이 있다. 마른 논바닥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은 레이돔과 중첩하며 묘한 메타포를 전달하고 있다. 정태춘의 시노래 ‘저 들에 불을 놓아’를 연상하게 하는 들불 장면은 대추리의 일상이자 사건이다. 포크레인 삽질로 레이돔을 떠내기도 한다. 노순택이 잡아낸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들녘의 전투이다. 들녘을 가로지르는 전투경찰의 대오 뒤로 레이돔이 떠있다. 들판 한가운데서 경찰 무리와 시위대 무리가 진압봉과 쇠파이프를 들고 얽혀있는 바로 그 사건의 장면 뒤에서도 레이돔은 변함없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 무슨 희극적인 비극인가. 전투경찰과 시위대의 비극적인 전투장면은 ‘아메리칸 아미의 레이돔’에 의해 더욱 증폭하여 콧등을 시리게 한다.


노순택의 대추리 레이돔 작업은 우리가 예술작품과 실재의 사이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기호의 삼각형 한가운데 놓여있음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게 한다. 머잖아 한국사회는 대추리와 대추리 사람들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노순택은, 또는 노순택의 사진은 그들을 깊이 담아두었다. 대추리 사람들과 레이돔을 섞어서 또 다른 공을 만든 혼성사진 속에는 동일인이 두 가지 모습으로 대비되어있다. 꽃단장한 주민과 투쟁하는 모습의 주민이 그것이다. 지난 5월 4일 대추리 분교는 피로 물들었다. 노순택은 분노와 슬픔을 삼키며 전시를 준비했다. 피로 물든 실재의 대추리와 노순택 사진 속의 대추리는 어떤 관계인가. 5월이 지나는 마당에 노순택의 얄읏한 공이 긴 여운을 남긴다.

김준기(미술비평)

2006/05/25 09:11 2006/05/2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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