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산 House Mountain
critic & column | 2009/05/13 23:44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 기획전
집산 House Mountain
조밀하게 들어선 주택의 집단서식처인 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꽉 찬 모습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 밀도를 채우는 방식은 많이 달라졌다.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근대와 현대가 뒤섞인 거대도시 부산을 멀찍이서 느긋하게 내려다보다가 어느새 바짝 다가서서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양달석과 설종보, 방정아는 피난민의 판자집에서 서민들의 보금자리인 기와집과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밀집이라는 동일한 원리를 가지고 진화한 주거공간의 변화를 세 가지 버전으로 보여준다. 근대화단의 선구자 가운데 한사람인 양달석은 한국전쟁 당시 갑작스럽게 불어난 도시 유입 인구가 만들어낸 <판자촌> 풍경을 생생한 야경으로 포착했다. 설종보의 <지붕밑 풍경-좌천동>은 조밀하게 얽힌 기와집의 연쇄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방정아의 <개나리 아파트>는 같은 크기에 같은 구조로 짜인 아파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일러스트풍의 회화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부산 바닷가 신도시만을 거쳐 간 사람들은 반쪽짜리 관광객에 불과하다. 김범석과 한생곤의 회화는 산의 도시 부산의 모습을 제대로 담고 있는 산복도로 풍경에 주목함으로써 도시의 가치를 재발견한 작품들이다. 이들은 산비탈에 밀집한 ‘집산(House Mountain’)을 멀찍이서 내려다보면서 단일한 풍경으로 읽어내다가 어느새 렌즈를 바짝 들이대고는 골목골목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김범석의 <영주동>은 바다의 도시 부산이 아니라 산의 도시 부산을 포착하고 있으며, 같은 모티프를 가진 <영도-순직선원 위령탑> 또한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발달한 부산 주거지의 독특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생곤의 <거제리 안동네 풍경 2>는 거친 표면에 굵은 라인드로잉으로 골목이 살아있는 도시의 풍경을 보여준다.
인간의 서식처를 풍경의 관점에서 다루는 일은 예술가들의 주된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장진필의 <부산세관>은 1950년대에 그린 그림으로 근대건축물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김봉태의 <무제>는 간명하면서도 깊은 울림의 색면 회화로 바다 풍경을 잡아내고 있다. 안세권의 <부산 파노라마 Ⅰ>은 영주동에서 수정동으로 이어지는 산동네와 영도를 끼고 있는 부산항, 그리고 송도에서 구덕산 자락에 이르는 원도심의 풍경을 11미터 대작의 파노라마 스케일로 내려다보는 동시에 들여다본다. 황령산의 풍경을 사방도 방식으로 전개한 하성봉의 <황,금련산>은 고전적인 시각으로 실경을 평면 위에 재현하는 내려다보기 방식, 즉 부감법의 다시점(多視點)을 현대회화에 적용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도시의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그 속에 녹아있는 시간성을 성찰하게 한다. 회화와 사진 작품에 담긴 도시의 면면은 공간과 시간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도시는 견고한 물질덩어리이면서도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도시 생태는 공간성의 맥락을 타고 증식하며 시간성의 축선을 따라 번식하는 유기체이다. 부산만큼 폭발적인 압축성장을 통해서 거대도시로 급성장한 도시도 드물다. 부산의 풍경을 끌어들이는 예술가들의 시선은 파노라마 방식으로 훑어내는가 하면 구석구석을 깊숙이 들여다보기도 한다. 따라서 이 전시의 출품작들은 한국식 근대성이 직조한 도시공간의 면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아가 산을 타고 올라 집의 산을 이룬 부산의 독특한 도시공간을 성찰하는 데 매우 유익한 텍스트로 작용한다.
김준기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