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야이 씨발노마!' 라고 세번 외친 까닭 : 안창홍

artpd clip | 2005/10/21 01:44


안창홍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8월초 어느 날 부산의 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원 L씨에게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번에 저희 미술관에서 APEC기념 축하 행사로 전시를 하게 되었는데 출품의사를 타진해 볼라고 연락을 드렸심더”
"무슨 전신데? 출품 작가가 누구 누구고?”
“ 아? 예! 샘하고, 박고석,유영국,하인두씨인데 하인두씨는 우째 될지 아직 결정 못했심더”
“언제 부터고?”
“9월28일부터 임미더!”
“날짜가 와이리 촉박하노? 내년 초 개인전도 있고 해서 바빠서 않되겠다”
“샘 예! 갑자기 기획된 전시라 그러니 이해 좀 해 주이소, 그라고 기획성격상
옛날 작품들만으로 전시 할 꺼니까 작품없어 못낸다는 핑계대지 마시고 이번만은 좀 내주이소!”

몇 해전 두어번의 전시를 거절한 미안함도 있는데다 구작들로만 전시 한다니, 그기다 팔려나간 그림은 소장처만 알려주면 다 알아서 빌려 오겠다고 하니 거절할 명분이 없어 잠시 망설였지요

”계획 좀 미리 해놓고 작가들에게 일찍 연락을 하마 어디 덧 나냐?
늘 허급지급, 작가들에게도 숨 돌릴 시간 좀 주라 이 말이다 알겐나?”

몇 안 되는 인력으로 큰 덩치의 미술관 일들을 이끌어 나가는 학예 연구사들의 고생스러움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못 대먹은 성격상 괜히 몇 마디 찔러 준 것이지요.

“근데 현존 작가는 나 혼자뿐이고 모두 작고 작가들이네?”
“전시방향 때문에 그리 됐심더!”
“전시의도는 뭐꼬?”
“예@#$%^&*&*^%$ 임더!”
“음! 그래, 나쁘지 않쿠만, 참여하께””
.“곧 전시 요청서에 상세하게 적어서 보내 드리끼예”
“오냐,, 빨리 보내주라”

그 후 출품작들의 결정을 위해 여러 차례의 연락을 주고 받는 동안 출품작가들이 두 배로 늘어났고 처음 계획의 의미가 희석되는 것 같아서 계획이 변경된 이유를 묻자 관장님의 간섭 때문에 너무 힘이 든다”며 자신에게 처한 고충을 우회적으로 표현해 왔지요.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런 관료주의의 구태가 아직도 공공미술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한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염려스럽기도 하였답니다.
왜냐면 다른 곳도 아닌 자유와 창의성이 존중 되어야 할 미술관에서 학예 연구사들이 주관하는 전시 기획에 자율성이 보장 되지 않는다면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는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관람자인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 너무나 뻔한 일이니까요.
사설 화랑도 아닌 시민의 혈세로 꾸려 나가는 공공 미술관일 경우엔 문제가 매우 심각한 것이지요.
시립미술관이 대외적으론 부산 미술의 얼굴 마담역할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기도하고요.

관장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관장은 수평적 사고로 실무진들의 창의적 기획을 격려하고 정신적 후원을 해야 하는 것이지 권위의식으로 짓누르며 간섭하고 학예연구사들을 마치 똘 마니 다루듯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최종 결정된 작가는 유영국,정상화 이우환,박서보,하인두,이강소,안창홍,김아타(사진)였어요.
암튼 애초의 성격이 탈색 되어버린 전시라 참여하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지요
늘 좋은 전시를 치르고 싶은 것이 작가의 욕심이니까요
그른데 기획자의 전시에 대한 애착과 정성을 저버릴 수가 없어 마음을 돌려 먹었지요.

며칠 후 전시할 작품들은 운반 되어 갔고 나도 개막식에 참여할 겸 고향 바다보고 싶은 마음에 평소 가까이 지내는 불똥과 희석,두사람을 바다 보러 가자고 꼬드겨 부산 행 열차에 함께 몸을 실었답니다.
싱싱한 회가 있어도 술잔을 서로 부딧혀야 맛이 나는 법이니까요
마음 선한 두사람이 선배의 청을 거절못해 따라나선거지요.
열차 안에서 우리는 여행으로 들뜬 마음을 약간의 낮술로 더욱 불을 지폇지요 그리곤 이야기의 꽃을 피우든 중 이번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불똥이 나보고 거물급들과 같이 전시를 하니 그 자체만 해도 고무될만하다고 말했어요. 난 가만히 듣고 있었지요 사실 거물인지 거머린진 나에겐 관심 밖의 일이지만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자연스레 이야기 주제의 방향이 바뀌면서 홍대파 거머리들의 계보를 쭈욱 사실감 있게 이야기 햇어요 불똥 답게 치밀하고 친절하게 朴 머시기가 어떻고 李 머시기가 어떻고 李 머시기는 목소리가 너무 크고 우렁차서 짜장면 배달부가 배달 왔다가 “누구냐?”는 목소리에 놀라 철 가방을 떨어터리고 어쩌고 저쩌고 대학시절 혹은 오며 가며 바라본 거물들의 일거수 일 투족을 세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지요.
또 거물급 후계자 키우기랑 그기에 얽힌 에피소드랑 거물들의 자격조건 등을 젬나게 이야기 해줬어요

난 가만히 들으며 생각했지요. 쓰발! 난 일단 거물 되기는 걸럿구낭, 2m에서 좀 모지래는 160cm 키에서 밀리고, 몸통에 비해서 머리가 너무 크서 않대고, 배도 볼록하고, 목소리에는 칼잇쓰마?가 엄꼬. ….강 건너 불구경 같았지만 이야기 자체는 흥미로웠어요.
사실 난 거물급들의 위력을 전혀 모르거든요 왜냐하면 조직에 있어 본적 엄꼬 대학에 댕기본적 없고 오오까미(외로운 늑대)라고 일본말 잘하는 칭구가 붙여준 별명처럼 늘 혼자 노는 체질인데다가 불편해서 어깨
와 목에 힘 못 주는 천성이라 그딴 것에는 아예 관심 조차 없었거든요
투수는 공잘 던지면 되고 엿장수는 엿 잘 팔면 되고 씹쟁이는 씹질 잘하면 되고 쌈쟁이는 맛짱 잘뜨면 되고 화가는 그림 잘 그리면 땡 이라는 지론을 변함없이 늘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물급과 좋은 화가의 연관
관계가 어떤 것인지 쉽게 밀착되어서 와 닫지를 안거든요 그러니 불똥이 말한 거물급과 전시하는 자체 만으로도 고무될 만 하다지만 난 고무 될일이 없는거지요 내가 고무되는 조건은 좋은작가와 전시하는것뿐
이거등요. 그런데 내 머리론 그 쪽 거물들의 그림들을 아직도 잘 모르겠거든요.
그래도 내속 표현은 않고 듣기만 했지요, 어찌나 이야길 실감나고 마싯게 하는지 입 열면 수습불능인 채씨도 멀둥 멀둥 듣고 잇었어요 호시탐탐 입 열 기회를 노리면서요. 그러는 사이 열차는 부산에 도착한 것이지요. 역 플렛홈에서 바로 보이는 항구를 바라보며 일제히 야! 하고 탄성을 질렀어요.갯내음도 밀려오는 듯 했어요

전시장에 들어서니 조명마저 어두운 방에 몇몇 중요한 작품들이 빠져 있고 마치 걸다만 듯 썰렁한 분위기에 놀라 L씨에게 영문을 따져 물으니 자신이 계획대로 걸어놓은 그림들을 관장이 몇 번이나 자신의 의지대로 떼어내고 몇몇 그림을 걸지 못하게 하고 위치까지 바꿔 버렸다는 것이었었어요 작가 입장에선 아연 실색 할 수 밖에요. 전시기획자의 면밀한 계획을 통해 보여지는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고의적으로 망치고 싶지 않은 담에야 어찌 그렇게 할 수가 있었겠어요. 관장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일이든, 어떤 목적을 가진 사심에 의해 행해진 일이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인 것이지요. 학예연구사 L씨의 입장도 있고 해서 내가 직접 관장에게 시정을 요구할 마음으로 기다렸지요

불똥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우리 셋이서 관장뒤로 닥아가 일제히 오줌을 갈기자는 제안을 해 왔어요
불똥 다운 신선하고 유꽤한 생각이었어요.사실 그러고 싶기도 했지만
칫하면 경솔한 행동을 후회해야 할 수도 있기때문에 그일은 실행하지 못햇어요
왜나햐면 그때 상황으론 무언가 단정 내리기엔 불확실한 상태였거든요.

개막식 시간이 되자 식장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마이크 실험도 막 끝난 상태였지요.식이 시작되기 직전, 마치 느린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게슴츠레 뜬 실눈으로 주위를 둘러 보면서 입가에 잔잔한 웃음까지 머금고서, 아주 아주 천천히, 치질수술을 막 끝낸 환자처럼 느린 걸음으로 관장이 등장하였어요.
난 생각해 보았지요. 요즘도 저런 얼빵한 폼에 감동 먹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요.
그 생각도 잠시, 내가 뜻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느리디 느린 걸음의 앞을 가로막았지요.
순간 뜻밖의 방해자 땜에 폼이 구겨졌든지 걸음을 멈칫하며 양미간이 지프리더라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좀더 가까이서 말하기위해 한쪽 손으로 그의 등을 내쪽으로 당겨 안으며 재빨리 이야기했지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중요한 그림이 몇점 빠졌던데 우째된 일임미까?”

나 보다 나이가 몇살 아래긴 하지만 자기 딴엔 높은 벼슬?한다고 걸음걸이까지 거들먹되니 인정하고 깍듯한 존칭으로 대할 수 밖에요.

“그런걸 왜 내한테 물어요 학예 사한테 이야길 하시잖고……”

불쾌한 듯 콧김 빠지는 소리가 거칠게 들리긴 했지만 난 못들은 척 했어요. 미안해 할까바서요,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지요. 감정의 평정을 찾으려는 듯 목소린 차분했어요. 빨리 이 거머리를 떨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얼굴에도 내 비췄어요.

"아니 니가 내 그림 다 땠으니 니 한테 이야기해야지 누구한테 하꼬?”

이렇게 맞받아 치는 것이 정상이었으나 난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귀 가까이 입을 갔다 대고 아무래도 관장님이 떼어낸 그림들을 원위치 시켜야 되겠노라고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이야기했지요.
그러자 김 팍 샌 얼굴로 재빨리 날 피해 저만큼 걸어갔어요 그기서 부턴 다시 중증 치질환자 같은 걸음걸이로 아주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어요. 사람들의 벽이 갈라지고 길이 뚤였어요.마술처럼요.
내 눈엔 관장의 그런 행동들이 너무 유치 찬란하게 보였지만 어찌해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타인의 취향을 난들 어쩌겠어요, 심지어는 실무진이 담당해야 할 작가들의 숙소를 관장 임의로 정해놓고 오야붕? 작가들 모시고 먼저 떠나버리는 바람에 뒤에 학예연구사 L씨가 가까스로 숙소를 알아내어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어요. 제법 많은 전시를 경험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지요.
여기까지는 그래도 관장의 행태가 수습될만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관장의 파행적 꼴은 멈출줄 몰랐든것이지요

호텔 입구에서 마주친 관장이 악수를 청해오며 객실번호를 알고 있으니 나중에 놀러 오겠다는 관례적인 인사말을 남기곤 오야붕 혹은 거물급 작가들을 모시고 자신은 정확히 두 걸음 반 뒤에 물러서서 결코 앞으로 나서는 법 없이 앞쪽, 거물급 혹은 원로작가의 보폭에 맞추어 중절모에 하얀 바바리자락 휘날리며 총총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요.
상전을 제대로 모실 줄 아는 모범된 자세와 인내심을 나는 인상 깊게 물끄러미 바라보았지요. 근데 왠 인내심이냐고요? 생각들 해 보세요, 그날의 부산 기온이 무척 더웠거등요. 근데 양복에다, 롱 바바리에다,
중절모 까지 쓰고서, 미술관의 뜨거운 조명등아래서도 그랬고 이곳 호텔 앞에서도 흐트르짐없는 자세를 보며 인내심이 남달리 출중?할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떠 올려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아주 천천히 걷는 것
에 대한 이유도 생각해 보았지요. 혹시 더위 때문이 아닐까 하고요, 빨리 결어면 땀이 쏟아질까바서요.

물끄러미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든 우리 일행들은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동심에 젖어 별과 파도와 갯내음속으로 노랫소리를 멀리 멀리 뛰워 보냈지요.
테너 채의 동심초는 감동적이었답니다. 넘실대는 검은 파도를 타고 퍼져가는 노랫소리에 잠깬 갈매기도 가슴을 벌렁거리고, 멍게, 해삼, 말미잘,꼬시래기까지, 심지어는 살 오른 전어수컷들이 이 로맨틱한 목소
리에 감동 먹고 하얀 정액들을 쏟아내었지요 아마.우리는 점점 달아오르는 흥을 주체할 길이 없어 호텔 2층 노래방으로 무대를 옮겨 창 밖으로 보이는 검은 바다를 등지고서 오직 티비 화면 속 가사읽기와 노래 부르기에만 열중햇답니다.

우 이 씨! 화가들은 노래까지 왜 다들 너무 잘 부르는 걸까요?

카수 박도 마이크를 기도하듯 두 손으로 움켜쥐고서 상체를 아레위로 흔들흔들 흔들며 , 발 한쪽을 탁탁탁! 신중하게 박자를 맞추며 이름처럼 뜨겁게 불러댔지요,똥또르똥똥똥!!!
나역시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지요. 분위기에 취해 목청 껏 노래 부르는 사이 시간은 썰물처럼 흘러갔고 피로한 몸을 뉘러 불루비치의 프런트 데스크에서 객실 열쇠를 달라하니 아니 글쎄 방이 취소되었다는 것
이었어요. 에이, 이사람 농담하나! 했더니 진짜래요,
착오겠거니 생각하고 정황을 물어보니 중절모에 흰 바바리맨이 카드로 숙박비를 계산했는데 다시 돌아 와서 현금으로 바꿔 지불하며 우리들의 방을 취소 했다는 것이었어요.
술취한 머리론 영문을 알 수 없어 갑갑했는데 관찰력, 수사력, 집중력 모두 뛰어난 우리의 불똥씨는 불똥 튀는 예리함으로 프런트의 햐얀와이스쳐 사나이와 몇마디 주고 받고 확인 하더니 정황을 순식간에 짐작
하는 듯 했어요.
그랬으니까 내가 관장과 통화하기 직전 “형 절대 욕은 하지마소”라고 몇번이나 당부 했겠지요,
나도 화가 나긴 했지만 그 말하는 영문을 첨엔 몰랐거든요.

어렵사리 관장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었지요
잠들 깬 저음의 관장목소리가 천천히 수화가로 흘러나왔어요

“여보세요 나, 안창홍인데 느즌시간에 죄송한데요 우리 방이 없어졌어요
관장님이 취소 시켰다면서요, 우쩨된 일입니까?”

“난…모르는 일 입니다, 아까 계산 다하고 끝이에요”

왠 끝?!

“프런트에서는 중절모에 흰 바바리 입은 분이 취소 시켰다는데 관장님말고 누굽니까?”

끌어 오르는 감정을 누르며 공손해 지려고 아랫도리에 힘을 주니 똥꼬가 다 땡 겼지만 꾸욱 참았어요
정말 똥꼬가 땡겼으요. 그래도 정말 참았어요.

이놈의 지랄 같은 성격 때문에 낭패 본일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난….. 모르는 일이고요, 그 때문에 잠 깨우려고 이 깊은 밤에 전화했어요?”

다시 저음으로 천천히 들려오는 이 목소리가 너무 야속했어요 아니 아무리 늦은 밤에 잠을 깨웠기로서니 졸지에 잠 잘곳을 잃은 초대 손님에게관장이 할 소리가 아니었거든요.
당연히,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으니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노라고,
죄송하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이렇게 나올 줄 알았거든요
갑자기 뿔따구가 치솟으며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어요.
순간적으로 아찔해 지는 것이머리 속에서 굉음이 잃어나며 분통이 입으로 확 터져 나와뿌럿서요

“야이 씨발노마!”

“이말 녹음합니다”


“그래, 녹음해라 씨발노마”

“전화 끊습니다’


"끊어라 씨발노마”


그리고 전화가 딸깍 끊켰지요
그 순간 비로소 설마 하든 관장의 유치 찬란한 음모를 알아챈 것이지요,
김용대의 짖거리 때문에 박 불똥씨와 채희석씨에겐 얼굴 조차 들수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지요.

다음날 이 기막힌 사연을 전해 들은 L씨가 송구스러워 몸둘바를 몰라 하며 마침 휴일이라 관장에게 전화로 자초지종을 따져 물으니 첨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 때다가 나중엔 “내돈주고 내 맘대로 하는
데 왠 말이 많냐”며 밥 먹고 있으니 전화 끊겠다며 통화가 딸깍 끊켰답니다.

지금도 정말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관장한테 절대 잊지 못할 만큼 지독한 욕을 못해준 것이지요. 일 테면 야이 씹도 못할 노마!,아이 고자새끼야!,야이 좆도 안 서는 노마! 따위의 욕들 말입니다.

잠자고 쳐먹으며 자신의 둔한 몸뚱어리 보양하며 챙기고 있는 사이에 필요에 의해 초대 받고도 밖으로 내몰린 한 화가의 자존심이 여지없이 짖밟히고 부산의 문화체면 또한 땅바닥에 쳐 박히고 있었든 것이지요
이것이 공공미술관의 대표님께서 공적인 전시에 초대 받은 작가에게 취해야 할 적절한 언행 이었을까요? 조 폭 두목 모시는 똘마니처럼 자신이 모셔야 할 작가의 똥꼬엔 맨대가리 디밀며 굽실거리고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 작가라고 공적 책임과 의무도 잊은 채 고의적으로 무시할려고 더는 이런 저급한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그후 아무른 해명도 사과도 없는 , 기본적인 상식조치 갖추지못한 이런 사람을 부산을 대표하는 미술관의 장으로 그냥 둬도 괜찮은것일까요?

지금껏 나는 화가의 긍지만으로 살아온 대한민국의 몇안되는 전업화가입니다.
오직 한길, 화가로서의 자존심만으로 내 삶을 꾸려온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그럴것이고요.
생각들 해 보세요. 사회적 지명도가 구축된 화가가 이런 꼴을 당했다면 신념 하나만으로 외롭게 악전 고투하는 무명의 후배 화가들이 이런 인간들로부터 당해야 할 수모를 한번 짐작해 보라고요.
그래서 이 일을 더욱 묵과할 수 없는것이지요.나의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일이기도 한것이니까요.
생각을 새 보세요
고작 3~5년의 임용직으로 그것도 우리 세금으로 월급받는 나부랭이가 평생을 통해서 이루어 내야할 예술을 위해 가시밭 길 조차 마다 않는 전업 화가에게 경의는 표하지 못할 망정 부끄럼 도 없이 그런 짖을 해 놓고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정신에 이상이 있는것은 아닌지 의심 스럽답니다.
정말이지 그런 유치한 발상 자체가 어디 모자라지 않고서야 가능한일이겟읍니까?
또한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지요.

지금은 김용대의 무지와 저급한 테러에 대한 죄값을 어떤 방식으로
치르게 해야할지 생각중이랍니다.
화가가 없다면 미술관과 관장이 존재할 이유가 없는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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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응 (2005-10-16 21:24:34)
박불똥씨 글읽고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림처럼, 영화처럼 선명해 지는군요.
'씨바로마' 는 중국말로 '식사하셨습니까?'라데요.
새벽에 하기엔 조금 과한 인사말이긴 하지만
안부인사를 하는데 웬녹음을 한답니까?


와! (2005-10-16 21:36:49)
멋찌다!
안창홍 선생님, 화이팅입니다!

졸라 열심히 사는 (2005-10-17 15:50:31)

김용대씨 아~~~웃


안창홍 (2005-10-17 17:45:20)
강건너 불구경이 아닙니다.
수많은 화가들에게 처해진 현실이잖습니까!
외면하지 마십시요.
2005/10/21 01:44 2005/10/2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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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gim 2005/10/21 01:48

    늦었습니다만, 안창홍 샘 본인의 글도 퍼올립니다.

  2. 아량 2005/11/04 00:20

    안창홍선생님의 아량은 정도를 지나친듯이 그@^를 봐준듯합니다.
    선생님의 치열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김용대 관장은 미끄러지듯이 .......내려오고 진실되고 작가와 대화가 되는 분이 후임이되었으면,,,,,하네요...우리끼리 왜치지 말고 이젠 다른 전략을 세워야할듯 싶읍니다. 슬푸다.....씨빨

  3. gim 2005/11/06 10:46

    최근 들어 뭔가 일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것 같은 조짐이 보입니다. 미술인회의 게시판을 주목해보시기 바랍니다. www.misul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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