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낮은 곳의 예술 : 극장전 리뷰

critic & column | 2009/11/27 00:17


낡고 낮은 곳의 예술

산업사회 이후 영화는 거대한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20세기를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로 만드는 데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까지도 영화는 강력한 흡인력으로 대중을 지배한다. 극장은 영화를 매개로 대중을 직조하는 대중적인 장소이다. 부산 범일동의 삼성극장은 6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대중들이 모여드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의 예전과 지금은 다르다. 재개봉이나 동시상영, 성인영화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 삼류극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공간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사실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존재방식은 거의 동일하다. 범일동 일대의 극장가가 이런 식으로 변모한 것은 부산의 도시 생태 변화에 따른 것이다. 흥행가도를 달리던 이 극장이 이리도 초라한 모습으로 쇄락한 데는 자본의 규모와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며, 구도심이 신도심에 중심적 지위를 빼앗겼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더 이상 대중이 찾지 않는 공간, 과거의 기억만이 존재하는 공간은 그래서 영화라는 산업이 얼마나 자본의 논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반증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전시는 일종의 기억투쟁이다. 잊혀질 것이 뻔해 보이는 마지막 남은 단막극장을 찾아 많은 예술가들과 관객들이 예술적 소통을 시도했다. 그것은 잊혀지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이나 공간을 잊지 않겠다는 소수자 개인들의 발언이다. 하여 이 전시는 ‘대중(The mass)’이 집결하는 극장이라는 장소에 관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을 문제 삼는 프로젝트로 성립한다. 잊혀질 것이 뻔한 역사를 주섬주섬 주워 모으는 일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라지는 도시의 역사적 공간에 대한 기억과 상황을 챙기는 일이다. 그것은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민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간의 소외와 기억의 상실에 저항하는 일이다. 도시의 공간들은 사람들의 쓸모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자본이다. 예술은 큰 틀에서는 자본과 동행하면서도 지엽적으로 그것과 역행하곤 한다. 자본과의 동행보다는 역행에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예술이 타율이 아닌 자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도시생태가 변동하는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그 속에 참여하고 개입하겠다는 예술적 실천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영화를 극장 상영물이 아닌 전시물로 대할 때는 사뭇 다른 소통 상황이 발생한다. 삼성극장 주변의 범일동의 상황과 사건을 다룬 김희진 감독의 영화 <범일동 블루스>는 텅 빈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매력을 제공했다. 출품작들은 낡은 극장의 남루함을 그대로 살려서 오래된 것의 매력을 살려내는가 하면, 도시 자체에 관한 기억을 공간 안으로 끌고 들어오기도 했다. 어두침침한 극장 공간의 한 구석을 차지한 고석근의 성적 이미지나 극장외벽에 그려진 구헌주의 그래피티, 객석에 측광조명을 비춘 임흥순의 작업은 매우 효율적으로 공간의 맥락을 타고 흐른다. 김경화나 나인주 등과 같이 화려한 거대도시의 언저리나 뒷골목의 상황/풍경을 다룬 구작들도 삼성극장의 너저분한 공간에서 새로운 맥락으로 다가왔다. 대부분 기획전들을 위해서 무리수를 두며 신작 강박에 시달리곤 하는 데 비해 이 전시는 구작들을 활용해서 효율성을 높였다. 여러 작가들의 구작을 모아서 공간 성격이나 전시 주제에 맞게 새롭게 맥락화 했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 열렸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 전시가 보여준 것은 거대한 힘의 논리와 동행하는 영화제의 행보와 반대 방향의 것이었다. 영화제가 부산의 구도심을 버리고 해운대로 행사장을 일원화 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관객의 동선을 고려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영화제는 남포동을 버림으로써 부산의 독특한 매력을 함께 버렸다. 그것은 관객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관한 헤아림이 부재했다는 면에서 매우 아쉽다. 그런 점에서 극장전은 퇴행적이다. 영화제의 선택과 달리 쇠락한 곳, 잊혀지는 곳을 찾아 퇴행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퇴행은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과 미래 비전을 만드는 밑거름이다. 시각예술이 영화산업과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예술적 실천이 낮고 낡은 곳에 머물 때 그 값이 배가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한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아트인컬쳐 2009.12 기고문

2009/11/27 00:17 2009/11/2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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