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은, 노재운, 양아치, 전준호

critic & column | 2012/09/16 21:00


김태은, 노재운, 양아치, 전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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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 드로잉>에서 김태은은 레코드판이라는 오브제를 사용하여 원을 그리는 기계장치를 구동한다. 그는 레코드판의 트랙을 재현하는 드로잉을 만들어내는 이 기계장치는 청각이 아닌 시각적 결과물을 도출한다. 관객이 직접 핸들을 돌려 원운동을 시각적으로 접하는 방식이다. 청각을 시각화하는 이 작품은 소리를 그리는 작업이다. 이 작품은 소리의 복제인 레코드판을 드로잉으로 풀어냄으로써 원복과 복제본에 관한 미묘한 울림을 제시해준다. 판문점 연작은 분단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며 냉전의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 공간에 대한 블랙유머이다. 그는 판문점 세트장의 장치들을 끌어들여 그것의 무게를 덜고 관광객 모드의 상호소통을 시도한다. 이 작품 또한 원본과 복제본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실 속의 비현실의 문제를 다룬다. 김태은의 작품들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 사회의 구조와 그 속의 행위방식 등을 놓고 양쪽을 동시에 건드리는 메시지를 제시한다. 이러한 작업들 속에서 그가 제시하는 미디어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 기술결정론적인 미디어아트 담론을 훌쩍 넘어선다.

노재운은 매우 감성적인 코드의 영상언어를 구사하는 작가이다
. 그는 <여성의 정체>에서 한 젊은 과학도와 천재 수학자가 나누는 가벼운 대화를 통하여 정신분열적이고 히스테리컬한 현대인의 정체성을 다룬다. <얼음여왕> 또한 비극적 상황에 빠진 주인공을 통하여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담았다. 그의 영상들은 문학적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야기 자체로서가 아니라 시각적 서사의 수준에서 다룬다. <오 솔레 미오><캐롤 앤을 찾아서> 등과 같은 비디오클립 또한 줄거리자체가 아니라 줄거리를 구성해주는 시각적 정보들의 변화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노재운 특유의 영상언어를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 서사란 문학적 서사 그 자체로서만 의미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야기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시지각적인 자극이 더욱 강렬하고 심원하게 관객의 인지체계를 뒤흔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노재운의 영상에 있어 시각서사의 문제를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과 디지털을 비롯한 첨단의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노재운의 영상언어는 그것의 속도를 좀 더 느긋하게 대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성찰의 힘이 들어있다.

양아치의 비디오 클립
<스테레오>는 한 여성 퍼포머의 마임으로 시작된다. David Devora, 심보선, 성계, 배윤호, 이길, 홍희진 등이 차례로 등장해서 각자 주어진 대사를 읽거나 건반을 연주하며, 손짓만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차이만큼이나 이들이 제시하는 메시지들 또한 일관된 맥락에 놓인 것이라기보다는 파편화한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이 작품들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영상에서 양아치는 이른바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상황에서의 영상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그것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양아치의 영상언어는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몇몇 가지 특징들, 가령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피사체를 촬영하는 카메라워킹이나 한 번 봐서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중의적이고 난해한 메시지들 등의 요소들 때문이다. 인터넷과 영상의 시대를 맞이한 이 시대의 미디어아티스트로서의 양아치는 첨단의 문명이 제시하는 무언의 약속들에 균열을 내며 거대한 구조 속에서 꿈틀거리는 행위주체서의 예술가이다.

준호는 자신의 가장 대표적인 연작인 화폐 시리즈를 통하여 정지상태의 인지에 새로운 자극을 주곤한다. 2007년 작 <Hyper Realism(North Korean Bill)>은 북한 화폐 속에 등장하는 스틸컷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이다. 그는 이 화폐 연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화폐 속 풍경을 대형 스크린에 투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화면 속에서 움직임이 발생한다는 데 있다. 영상 속의 정지된 화면들은 화폐라는 특정한 공간 속에 한정되어 있는 고정적이고 구축적인 구조이다. 그런데 이러한 안정적인 이미지의 힘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움직임은 대부분 사람의 움직임에 의해 발생한다. 풍경 속의 사람은 행위를 통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전준호의 화폐 시리즈가 함의하는 바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화폐라는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 도저히 바뀔 수 없는 풍경이나 장면으로서의 화폐 이미지에 변형을 가함으로써 전준호는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고정관념을 공격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팍팍한 상황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상상의 힘을 제공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2012/09/16 21:00 2012/09/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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