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매체의 경계, 김민정의 경우 : 고양창작스튜디오 어드바이징 프로그램
critic & column | 2008/04/14 00:07
국립고양창작스튜디오. 그곳은 태릉선수촌과 같은 곳이다. 국가대표 미술선수를 육성하는 엘리트 미술의 요람이다. 그곳에 입주해서 일년 동안 수많은 미술인들과 대면하는동안 그들은 엘리트 미술이 무엇인지를 몸소 체험한다.
그곳에서는 미술에 관한 현재의 합의가 자연스럽게 반복재생산된다. 미술장의 관행을 지탱하고 만들어나가는 곳. 그곳에 입주해 있는 한 작가에게 어드바이스를 하라는 요청을 받고 그를 만났다. 김민정 작가. 그와 나눈 이야기들을 다시 글로 풀었다. 역시 말과 글은 다르다.
미술...... 나는 그 끝모를 미로의 한 가운데 서서 '내도 모르고 니도 모르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모르는' 미술이라는 끈을 잡고 헤메고 있다. 
공간과 매체의 경계, 김민정의 경우
김민정과의 대화는 공간과 영역, 사회와 개인, 매체와 개념 등의 몇몇 가지 논점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논지는 김민정의 공간이 집과 작업실, 전시장 등과 같이 자신의 가시적인 생활영역에 국한된 것이라는 점, 따라서 비가시적이며 가시적인 체험과 상상의 공간이나 영역에 관한 관심으로 확장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김민정은 그것을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와 방법론에 대한 고민으로 풀이했다. 숨쉬는 벽과 문은 그에게 있어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러나 그 발견 이후 그는 예술가의 체험이 예술적 생산과 어떻게 결합해야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와 나의 관심사였다. 김민정과의 대화에서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혹은 내가 그와의 대화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는 나에게 (강변하지는 않았지만) 예술이란 꽉 짜여진 가치체계 안에 가둬진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이 바로 예술을 만드는 출발점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했다. 그는 초심을 가지고 출발선에 선 작가이다. 그의 고민은 곧 나의 고민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나를 어드바이징 했다.
90년대 이후 세대들 다수에게 있어서 사회적인 주제나 이데올로기의 문제 등은 다소간 거북한 것일 수밖에 없다. 어떤 작가들은 이 대목을 일종의 콤플렉스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어떤 작가들은 주목받기 위한 전술로 활용하기도 한다. 김민정은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김민정은 작업실용 사회비판과는 거리가 멀다. 전시장에 앉아 세계를 들었다가 놓는 상투적인 비판정신은 이제 아무런 자극과 상상을 주지 않는다. 상투적이고 관념적인 사회비판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빈곤에서 나온 무기력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 넋두리도 진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이른바 ‘사회적인 것’에 대한 우리시대의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또 다른 길로 나아가리라는 희망을 발견했다. 보편적인 것은 특수한 것의 발현이며, 글로벌한 것은 로컬한 것과 한 몸이다. 따라서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은 불이(不二)의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들을 집요하게 다루다보면 그 속에서 우리사회의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이 관점을 대부분 망각하거나 간과하고 있다. 심리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상호배타적일 것이라는 편견도 있다. 사회의 구조를 지탱하는 개인심리와 집단심리의 작동을 생각해보면 해답은 간단하다.
그는 스스로 매체장악력을 넓혀왔으며 그것이 점점 미술계에서의 인정투쟁 과정에서 생존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는 점을 감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가능성을 확장하는 만큼 자신이 삶의 체험을 통해서 메시지의 발신자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김민정은 최근 무대에서 무용가의 안무와 결합하는 영상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신체가 만들어내는 전위적인 음향도 가미된다. 오픈스튜디오를 위한 작업에서는 작업실 공간 가운데서도 창에 주목한다. 그는 창을 대치하는 영상을 만들고 그 영상이 창 틀 밖으로 나와 전시장 공간을 유영하도록 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그 영상의 이미지들이다. 그는 지금까지 공간 내부에 집중한 나머지 공간 바깥을 다루는 데 인색했다. 그것은 자신의 사유와 체험을 근거로 하는 작업 태도 때문인데, 최근에 그가 구상하고 있는 작업은 자신이 머무르는 물리적 공간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공간 개념이다. 공간을 가시적인 공간(space)로 한정하지 않고 비가시적인 영역(sphere)의 문제로까지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최근작 이전부터 김민정은 경계 위에 서 있었다. 그는 실재와 가상, 물질과 비물질, 개념과 조형, 시각과 청각 등 여러 가지 대립항들 위에 서서 경계를 타넘는 작가이다. 그는 빈번히 실재공간과 가상공간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실재 공간을 왜곡하고 변형하는 일루전의 세계. 그것은 영상을 통해서 가상의 실재를 창출하는 김민정의 세계이다. 그의 작업을 통해서 집과 작업실, 전시장 공간이 숨을 쉰다. 고정된 틀이 움직이며 숨을 쉰다. 자신의 신체에서 나오는 다양한 음향들이 영상과 더불어 숨을 쉰다. 김민정의 작업이 공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작가 자신을 비롯해 여러 큐레이터와 비평가들이 공통적으로 입을 모으는 진단이다. 최정희는 장소 특정적인 영상작업이라고 했다. 고유의 프레임 밖으로 나와 전시장 공간으로 확장하는 영상이라는 것이다. 벽과 벽 사이, 문과 틀 사이 등 틈새를 파고드는 영상이 장소의 맥락을 타는 작업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최은하가 지적한 포인트는 물질 구조의 실재 공간과 비 물질의 영상을 결합하는 작업이다. 김윤옥은 전시장공간과 영상공간,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결합을 통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언급했다. 임정희는 전시장 공간에 집이라는 공간을 투여함으로써 기억과 경험의 확장을 불러온다고 보았다. 김민정에 대한 이러한 비평적 언술들은 그를 공간 지각과 체험을 통해서 새로운 가상의 세계를 창출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공간을 전유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전업미술가로 자리잡아가는 시각이미지생산자들에게 있어 작업이란 우물에 물이 고이기를 기다렸다가 길러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전동모터로 지하수를 퍼올리듯 뽑아내야하는 경쟁 그 자체에 가깝다. 김민정의 장점은 자신의 작업을 언어게임의 장을 관통하는 트렌드를 발견하고 거기에 기대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감성들을 소통가능한 언어로 생산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적 필연성으로부터 발화하는 작업. 진정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작가의 삶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작업. 그것이 지금 김민정이 찾고 있는 길이다.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는 의제 허백련의 명제가 치열한 시각언어 게임의 장인 고양스튜디오에 입주해있는 지금의 김민정에게 절실한 화두라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일이다.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것이 박제화한 언어게임의 장에서 장의 논리에 함몰되는 언어생산에 몰두하는 것으로 한정될 수 없다는 그의 생각은 따라서 매우 이례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인정투쟁에 몰두해서 일시적인 성공을 거둘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불안하고 허황된 위치에 작가라는 존재를 자리매김하게 하는지 말이다.
그는 조각가 정체성에서 예술가 정체성으로 확장된 영역을 설정해왔다. 그는 오프라인 기반의 작업 뿐만 아니라 온라인 기반의 작업까지 두루 관통할 수 있는 작가이다. 그는 모델링과 드로잉, 3D 애니메이션과 구조물 설계, 인테리어, 웹디자인과 웹프로모션 그리고 사진에까지 전방위의 관심과 능력을 갖췄다. 그것이 완벽한 능력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전방위에 관심을 두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능한 모든 매체를 선택한다는 점에 있다. 매체선택과 관련한 김민정의 행보는 정보와 통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정보화 사회의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매체를 장악하는 능력. 그것으로부터 작가 고유의 스타일이 나온다. 예술은 정신이면서 동시에 물질형식이다. 따라서 그것이 개념적이든 조형적이든,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심지어는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작가는 자신의 이념과 감성을 실현할 물질적 기반이 필요하다. 그 물질적 기반의 현현이 스타일이다. 김민정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명쾌한 스타일을 만들어 왔다. 매체를 장악한 예술가는 그 이후 무엇을 잡아야 하는가? 지금 김민정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김민정은 이미 그 해답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처음 출발할 때부터 이미 경계 위에 자리 잡고 있지 않았던가. ■ 김준기(미술평론가, 부시미 큐레이터)
* 고양스튜디오 어드바이징 프로그램 기고문.





치열한 '경쟁의 장'속에서 저는 계속 '여유'를 부르짖고 있습니다..이유는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또하나의 살아남으려는 외침이겠지요..^^ 글 감사드려요~~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라고
의제 허백련 선생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여유롭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