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M's Public Art Story 26 : haliya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11/1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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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고 육중한 박홍순의 거대서사
예술가 개인의 소소한 사변을 담아내는 일이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소소함이 사소한 것의 재발견과는 달리 지루한 혼잣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변질했다는 것이 최근 비평계의 진단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현대미술계를 지배해온 일상담론의 미망은 미시서사의 섬세함에 도달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일상담론을 가장한 의사-일상성이 예술가의 자기체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결여한 채 상투적인 신변기록에도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담론이 지배하는 현대미술의 가벼움에 비해서 거대서사의 장중한 무게는 발걸음이 더디지만 세월을 더해가면서 가속도를 붙인다. 박홍순이 그런 경우이다.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굵은 행보를 이어왔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는 한 걸음씩 더 크게 성큼성큼 내딛으며 거대서사의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생태자연의 거대한 풍경 속에서 인공의 흔적을 담아내는 박홍순의 작업은 비판적 지식이다. 그것은 한순간 짧게 쓰일 보도사진이 아니라 수십년을 두고 쌓여서 우리 시대의 이 땅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중한 기록이다. 그의 거대서사는 묵직한 중량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예술이라는 비판적 지식 생산의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한다. 그의 성장기와 청년기는 한국사회의 그 어느 시대 못지않게 급격한 사회변동의 에너지로 가득 찬 시기였다. 하여 그의 감성과 의식 속에는 사회를 바라보는 명징한 관점이 자리 잡고 있는데, 박홍순 자신의 말을 빌자면, 그가 백두대간에서 한강을 거쳐 서해를 찍고 다닌 것은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이 땅은 한국사회의 거대한 행위자 주체들이 침입해서 조작과 훼손을 일삼고 있는 그 땅이다. 그 땅의 면면을 돌아보고 기록하는 일이 그가 선택한 이 시대에 우리사회를 만나는 방법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서정성과 서사성을 동시에 꿰뚫는 작업으로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을 회복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생태자연의 거대한 풍경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간의 흔적들을 들춰낸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문제의 지점을 찾아가 순발력 있게 고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관념적인 자연을 부르짖거나 전략적인 계몽의 서사를 남발하지 않는다. 자신의 보폭을 벗어나는 큰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매우 냉정하고 차분한 시선으로 현실을 재발견하게 한다. 그의 발걸음은 고독하다. 카메라를 든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곳, 화려한 예술상품 생산에 주력하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않는 곳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1997년부터 백두대간을 담아서 사진집을 낸 것이 1999년의 일이다. 이어서 몇 해 전에는 한강을 주제로 한 연작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마흔을 넘어서부터 그는 서해안을 오가기 시작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다양한 표정의 땅과 물을 만나게 해주었다. 길 떠난 사람이 부딪히는 새로운 장면과 상황들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그 자체로 기록이며 새로운 발견이자 세계에 대한 성찰이다. 애초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다가도 예측을 빗겨나는 또 다른 결과를 만나고 우연성에 이끌려 계획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탐험하기도 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다. 박홍순은 생태자연과의 만남을 위해 늘 길을 떠나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서도 인간 또는 사회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냈다.
뒤로 물러나 멀찍이서 느긋하게 바라보는 박홍순의 시선은 백두대간 곳곳을 파헤친 문명의 개발 논리를 낱낱이 드러낸다. 측광을 받아 극단적인 콘트라스트를 보이는 채석장의 부서진 바위 조각들, 마치 거대한 대지미술처럼 속살을 드러낸 도로공사의 절곡면, 아스라이 뒤로 물러서는 산맥의 흐름을 도도하게 바라보며 산하를 지배하는 산꼭대기 관측소와 철조망과 헬기 착륙장. 박홍순은 백두대간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이 모든 장면들은 모종의 상황을 포착하고 있다. 야만적인 상황을 매우 극적이면서도 담담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박홍순의 렌즈는 매우 안정적인 어법을 구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불안한 서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강을 거쳐 서해안으로 나아간 박홍순의 시선은 여전히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불안하다. 갯벌을 붉게 물들이는 칠면초 밭을 뿌연 단색으로 눌러주는가 하면, 갯벌 위를 지나간 자동차 바퀴자국의 거대한 드로잉을 회화적 분위기로 재현하기도 한다. 갯벌 위에서 스러져가는 목조 설치 작품들의 비장한 상황들이 있는가 하면, 그림 같은 갈대의 서정이 흐르기도 한다. 연한 톤으로 지긋이 눌러준 모래사장 위로 바람과 사람이 공동 제작한 흐릿한 선들이 아스라이 멀어져간다. 갯벌을 가로질러 섬으로 이어지는 철골 탑의 긴 행렬은 자연의 거대함을 압도하는 역설의 숭고를 낳는다. 생태자연의 스스로 그러함과 인공의 조악한 다스림이 공존하는 역설적인 상황. 이것이 박홍순 카메라가 고행에 가까운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만난 장면이자 상황이다.
하늘과 땅이 교차하는 거대한 풍경 가운데서 인공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생태자연에 인공적인 흔적을 가미한 인간의 행위를 드러내는 비판적 성찰의 시각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박홍순의 렌즈는 생태자연을 겨누고 있으면서 동시에 현대사회의 야만성을 겨냥하고 있다. 새만금 갯벌을 인공댐으로 막은 초대형 간척사업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씻을 수 없는 오류로 남을 것이다. 박홍순은 이 심난한 현장을 드나들며 최병수의 설치작품을 담았다. 나무 위에 새를 올리는 대신 짱뚱어를 깍아 올리고 어선을 하늘 방향으로 곤두세운 솟대 작품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황폐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는 점점 육지로 변해가는 그곳 갯벌의 현실을 착잡하게 목격하고 있다.
예술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과정은 지속성에 달려있다. 그는 오랫동안 축적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화면을 구획하고 빛을 빨아들이는 자신의 어법을 만들어왔다. 박홍순의 프레임 속에는 역광을 포착함으로써 얻어지는 강한 콘트라스트가 존재한다. 최저의 어두움과 최고의 밝음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는 극단적인 명암의 대비는 그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아날로그 작업에 의존하는 일 또한 박홍순 스타일의 결정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작업을 병행하지만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맥락을 형성하는 흐름은 아날로그이다. 디지털 프린트가 일반화한 지금, 그는 다시 대형 프린트 작업을 위해 어두운 암실에서 한줄기 빛을 좇아 긴 시간 작업에 매달린다.
그의 풍경 사진들 가운데는 하늘과 땅을 절반으로 가르는 수평구조의 작품들이 많다. 특히 서해바다를 담은 근작들이 그렇다. 수평선과 소실점이 정중앙으로 모인 작품들이 많다는 점에서 그의 시선이 원근법적인 시선에 충실한 다큐멘터리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그는 생태자연의 컬러풀한 표정들을 흑백으로 환원한다. 그가 평면위에 옮겨진 색채의 세계를 회피하는 이유는 매우 사실적인 표현방법을 쓰되 그것을 절제미 속에서 실행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형상을 옮겨 오고 색채도 재현하는 사진의 왜곡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서 흑백사진만을 전시장에 제시한다.
박홍순 카메라 워크의 매력은 밀착이 아니라 이탈에 있다. 그는 항상 멀리서 느긋하게 바라본다. 예를 들자면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의 현장에서 여느 사진가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박홍순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기름때를 닦아 내기에 여념이 없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카메라를 바짝 들이댄다. 반면에 박홍순은 그 현장에서 한참 뒤로 물러나 거대한 생태자연의 풍경 속에서 꼬물거리는 인간 존재의 행위 장면을 포착한다. 태안군 학암포에서 기름유출 사건이라는 대재앙을 맞아 갯벌을 갈아엎은 장면을 포착한 작품은 마치 대지미술의 현장을 담은 것 같은 역설을 감지할 수 있다. 사건의 현장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는 예술가 주체와 세계 사이를 매개하는 카메라 렌즈의 시선으로 장소와 상황이라는 실재의 면면을 흡착한다. 그의 사진은 몸으로 찍는 사진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발로 찍은 사진이다.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 서해안 곳곳을 누빈 박홍순의 순례는 강화도에서부터 안산과 변산, 태안을 거쳐 진도에까지 이른다. 그는 대자연의 숭고함과 인공의 사악함이 맞물리는 서해안의 시공간을 무던히도 드나들었다. 아무도 가라고 하지 않은 그 길을 걸어가는 일. 이것이 박홍순이 선택한 예술의 길이다. 그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포착하는 일은 사진의 현장성에 대한 강박, 그러니까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는 집착으로 직결할 수도 있다. 그는 다르다. 그가 장소성과 상황은 포착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느리고 길기 때문이다.
분명 그의 작업은 생태적 가치를 옹호하는 환경운동의 맥락과 동행한다. 그러나 그는 사회참여적인 운동의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만든 사진 작업의 결과물은 전시장 전시뿐만 아니라 단행본 출판과 정간물, 그리고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서 증폭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당장 목전에 닥친 즉발적인 효과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만큼 긴 호흡으로 자신이 발 디딘 땅 전체를 담아내겠다는 원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에게는 예술생산의 필연성이라는 맥락이 있다. 그로서도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와 같은 거대한 대륙을 향한 동경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로부터, 더 좁게는 자기 자신의 체험과 내적 필연성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예술에 대한 진지하고도 성찰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박홍순의 고독한 순례에는 예술영역에 팽배한 식민주의 시각을 넘어서겠다는 구상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탈식민주의 관점의 첫출발로 그는 백두대간을 담기 시작했고, 한강을 거쳐 서해로 나아갔다. 조만간 그는 남해바다로 갈 계획이라고 한다. 몇 년 내에 끝나지 않을 긴 프로젝트도 구상중이다. 비무장지대를 담는 일이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다시 새로운 10년을 내다볼 줄 아는 긴 호흡의 예술가 박홍순의 프로젝트이다. 그의 스케일 큰 구상이 일단락을 이룰 때까지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고독한 발걸음에 정비례하는 예술의 길을 걸을 것이다. 예술은 대중의 기호취미를 충족시키는 일이 아니라 소수자의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 예술의 대사회적인 역할에 관한 질문에 대해 박홍순의 작업이 들려주는 해답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삶 속에 뿌리내리는 공공미술을 위하여 : 래미안의 경우
명품 아파트를 지향하는 래미안의 공공미술은 과연 명품인가? 누구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질문이다. 미술작품에 있어서의 명품 개념이 어떤 것인지, 특히 아파지 분야의 명품이 20세기 버전의 미술 개념과 어느 정도 일치할지에 관한 명확한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아파티와 마찬가지로 미술작품에 관한 개념도 변화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21세기 초반의 한국사회에서 미술계를 대표하는 이슈는 공공미술이다. 공공미술은 공공장소에서 이뤄지는, 공공기금으로 조성된, 공공의 이해와 요구에 수렴하는 미술작품을 말한다. 건축물 미술장식품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단지에 조성되는 공공미술 작품들은 생활공간이라는 장소성을 가지는 매우 중요한 공공미술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사회의 미술장식품 제도의 문제점을 반추해보고, 아파트 단지의 미술장식품이 차지하는 공공미술로서의 위치를 파악한 후에 공공미술의 개념 속에서 예술과 생활 영역을 매개하는 예술적 기능을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공공미술의 방향성을 얘기해보는 것이 이 글의 수순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를 둘러싼 수많은 불협화음과 제도적 모순과 미학적 결핍에 관해서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도시에 들어선 공공장소의 미술작품들의 면면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개별 작가들의 예술적 역량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한계와 미학적 인식 등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언급할 몇몇 문제들이 특정 지역이나 장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두에게 해당한다.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는 이미 미학적 결여를 지적 받았고, 제도적 파산을 선고받았다. 무슨 문제가 있기에 이렇게 존폐여부까지 언급되고 있는지를 알기위해서는 건축물 미술장식 이라는 제도의 출발과 진행과정 전체를 면밀히 분석해보는 것이 첫걸음일 것이다.
도심 속의 환경공해조각이라는 비난을 받기까지 하는 미술장식품에 관한 비관적 리포트는 이제 상식을 넘어 식상한 얘기가 됐다. 근대성의 덫에 걸린 미술장식품의 미학적 결여 때문이다. 미술장식이라는 개념은 근대성의 분화(分化) 과정에 근거를 두고 있는 모더니즘 예술의 이념으로부터 탄생했다. 특히 ‘건축물’ 미술장식이라는 명명은 이러한 정황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건축물을 미술품으로 장식하겠다’는 개념은 근대성의 본질인 체계적인 영역분할에 따른 기능적인 합리성일 뿐이다. 이것은 건축물이라는 선행 결과물에 미술장식품이라는 후행 첨가물을 부가하는 절차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건축과 미술의 만남을 상호 협업의 개념이 아닌 주종관계나 선후관계로 파악하도록 함으로써 심각한 장애요소를 만들고 있다.
미술장식이라는 개념은 근대적 미술개념의 오류에 입각해서 공공 영역에서의 미술을 소외시키고 있다. 광화문 네거리 한쪽에 있는 고종황제칭경기념비각은 기념비를 둘러싼 건축과 조각의 결합으로 구성되어있다. 그곳에는 서예와 전각과 목조건축과 조각이 한데 어우러져있다. 이것이 전근대적인 인식과 감성의 체계 속에서 이루어진 통합의 시선이다. 반면에 그 앞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거리 한가운데 우뚝 솟은 조각 오브제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전근대와 근대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동해서 서울역으로 이동해보자. 신축 서울역사 앞의 공공미술 작품은 역사 내부의 벤치들과 달리 인근 공간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누울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벤치의 기능성을 넘어서 미술작품의 예술적 자율성에 대한 합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작품은 스트리트 퍼니처와 결합한 조형물의 좋은 사례로 손꼽힌다. 작품의 의미와 더불어 사용의 맥락이 결합함으로써 근대적 미학 개념을 넘어 탈근대적인 예술의 맹아를 엿보게 하기 때문이다.
미술장식품이 미학적으로 조야한 것은 개별 작가의 역량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미술장식이라는 설정 자체가 안고 있는 한계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것은 건축과 미술의 협업, 미술과 장소의 만남, 역사와 작품의 동행, 생태와 미술의 공존, 예술과 의제의 결합을 가로막고 있는 악의 근원이다. 따라서 미술장식이라는 개념은 예술의 공공성을 오도하고 있다. 그것은 공공장소에서 공적인 재정으로 공적인 의제를 다루는 예술적 공공성과는 다른 논리로 움직이면서 건축물과 미술작품(장식품) 양자 간의 어색한 만남을 주선하고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술장식의 결여는 근대적 예술개념의 결여로부터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술장식이 이념적으로 결여한 통합의 정치학을 갈구하는 일일 것이다.
예술가 지원과 도시환경 미화. 이 두 가지 목표는 미술장식제도를 만든 가장 큰 명분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목표는 미술장식의 미학적 결여와 제도적 파산으로 인해 실종상태에 이르렀다. 분배의 정의를 상실한 부조리한 시장논리로 인해서 증발해버린 예술가 지원이라는 취지는 이 제도의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가장 큰 당위 가운데 하나이다. 부익부 빈익빈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는 현실은 미술장식에서도 마찬 가지다. 도시의 시각환경을 미화한다는 애초의 목표는 이미 실효를 상실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미술계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잘 만든 작품일지라도 작품의 보존과 관리 수준에 따라 죽고 산다. 동일한 작가의 작품도 관리 측의 관심 여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래미안의 공공미술 작품들도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2006년 이후 3년간 설치된 작품들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미술장식품-공공미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재료 면에 있어서 매우 다양해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석재와 철재 또는 브론즈 등의 전통적인 재료를 선택하는가 하면 그 밖의 재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수퍼 밀러와 같이 최근의 건축 경향과 어울리는 소재를 쓰기도 한다. 유리나 모자이크나 도자기와 같이 친밀감을 더해주는 재료도 많다. 컬러링 기법도 점점 다양해져서 우레탄 도장과 같은 특수한 재료로 마감을 해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통적인 조각 재료에 LED 조명을 사용해서 디지털 미디어를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재료뿐만 아니라 작품의 기본 개념에 있어서도 진화하고 있다. 아파트 거주민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안락하고 친숙한 이미지를 채택함으로써 예술가의 일방통행을 견제하고 있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주민들이 그저 바라보는 감상용 작품뿐만 아니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스트리트 퍼니처 형식의 작품들은 새로운 공공미술의 가능성을 넓혀주고 있다. 근대적 미학에 기초해서 관람자 위에 군림하는 권위적인 작품은 수직 상승의 조형성을 위주로 한다. 이에 비해 수평과 확장 개념의 낮은 공공미술은 관람자와의 교감을 통해서 생활 속 미술의 성찰적인 자세를 잘 보여준다. 제도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과정으로서의 공공미술이 부재한 것이 아쉽다. 작가는 작품을 만들고 관람자는 그 작품을 감상한다는 일방적인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작가와 주민이 함께 예술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통해 과정으로서의 공공미술을 실현하는 것이 향후 과제이다.
조명은 작품을 죽이고 살리는 매우 결정적인 요소이다. 도시의 경관은 야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특히 생활공간에서 작품을 대하는 거주자들의 입장에서는 낮보다는 밤에 작품을 대할 일이 많다. 따라서 야간 조명을 통해서 어둠 속에서도 살아있는 작품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는 뉴데코레이션의 관점도 중요하다. 미술장식품이 건물과 공간을 장식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는 설정이 보다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 작품은 장소나 공간의 기본 개념을 적절하게 파악하고 그곳에 자리잡을 수 있는 명확한 공간 개념을 가져야 한다. 많은 작품들이 전시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와 공공장소에 놓일 때가 확연하게 다른데, 공공장소에 놓이는 작품은 장소나 공간의 맥락을 유연하게 타고 흐르는 것이어야 한다.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 방향은 미술장식품을 공공미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지름길이다. 기존의 미술장식품 프로세스는 거주자들의 면면과는 완전무관하게 이루어진다. 이것은 현 제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만약 방법이 있다면 사전에 입주자들의 정서와 관심사를 고려해서 작업 방향을 정하는 게 정말 필요하다. 만약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작품 설치 후에 거주민들이 그 작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미술에 관한 막연한 관행에 입각해서 미적 가치를 담고 있는 거대한 조형물을 정원 어딘가에 설치해두었다고 해서 그 미적 가치를 통해서 정서적인 소통과 교감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설정이 그리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이미 지난 수십년간의 체험을 통해서 밝혀졌다.
공공미술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미술장식품 제도 자체에 관한 개혁 논의와 더불어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방식의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새로운 공공미술이 강조하는 공동체 지향의 미술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거론되곤 한다. 아파트 단지는 매우 중요한 공동체이다. 구조상 한군데 밀집해 있지는 하지만 주민들 사이의 상호 소통이 차단된 차가운 공간이라는 점이 아파트 공동체의 한계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매개 역할로서의 공공미술을 꿈꾼다면 그것이야말로 예술을 통한 삶의 재발견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래미안의 미술장식품이 예술적 소통을 매개로 삶이 삶 속에 뿌리내리는 공공미술로 거듭나는 길은 먼 데 있지 않다. 미술장식이라는 개념과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실험정신이 필요하다. 현재의 관행과 제도를 넘어서는 작은 시도들이 예술을 바꾸고 삶을 바꿀 수 있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래미안 아파트 공공미술 자료집 기고문.
소비사회의 불꽃에서 물신을 포착하는 뜨거운 미디어
성속이체(聖俗二諦). 종교적 진리와 세속적 진리 두 가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두 가지를 상호 대립의 국면으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영혼과 육체 등의 이원론적인 구별을 넘어 변증법적 합일의 수준으로 이해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이 윤영화 자신의 예술 세계를 가늠하는 최전선의 화두였던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불꽃 - 레이싱 걸’ 연작들은 매우 도발적인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는 윤영화 내러티브의 결정판이다. 그의 최근작들 속에는 불꽃과 레이싱 걸 신체 사이의 간극을 무화함으로써, 성과 속이 합일 수준으로 공존하고 있는 윤영화의 세계관이 매우 예술적인 차원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터쇼의 레이싱 걸 이미지에서 소비문화의 물신을 끄집어내는 비판정신으로부터 출발해서 한 프레임 안에 이질적인 요소들이 서로 쌍을 이루도록 가두어 둠으로써 키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배치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윤영화의 미디어 전략은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넘어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레이싱 걸이라는 살아 움직이는 실재를 재발견함으로써 윤영화의 작업은 실재와 이미지의 간극을 눈에 띄게 줄였다. 실재의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최소화 하던 것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 이미지의 지시가능성을 재발견하고 그것의 서사적 국면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작품에서 그는 화면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상대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낸 실재의 섬세한 내러티브를 드러내는 데에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재현에 있어 최소주의를 선택해서 존재의 사라짐을 보여줌으로써 존재의 드러냄을 시도하는 역설의 상황이 그의 목표였다. 그의 작업들에 대한 비평적 언급들이 회화적 사진, 사진적인 회화, 이미지의 해체, 실재를 넘어서는 존재 등의 명제에 주목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윤영화의 작업은 빛을 빨아들이는 카메라 렌즈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의도적인 조작이든 우연에 의한 것이든 간에, 실재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카메라 렌즈의 시선을 화가 주체의 시선과 뒤섞어서 이른바 그림 같은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의 방법론이다. 그런 점에서 렌즈 베이스드 아트(lens based art)라는 맥락에서 윤영화의 작업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림 같은 사진일지 모르지만 윤영화의 작업은 엄연히 기계 조작의 결과로 탄생한 이미지이다. 다시 말해서 신체와 기계장치라는 두 가지 다른 경로를 관통한 이미지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A같은 B’라고 말하거나 ‘A와 B의 경계를 흐트러트렸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엄연히 A와 B는 서로 다른 개체이다. 따라서 윤영화의 사진이 렌즈를 투과한 기계조작의 이미지라는 점, 나아가 그 사진 이미지가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좀 더 명쾌한 비평적 관점을 세우는 데 유익할 것이다.
불꽃과 레이싱걸 이미지를 포착해서 재배치한 최근작들은 그의 미디어 전술을 차가운 것에서 뜨거운 것으로 전환시켜 놓았다. ‘그림 같은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 그는 미디어 자체를 차갑게 만들었다. 자신이 채택한 사진 미디어가 현대미술 속에서 점유하고 있는 위치를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배가시키는 좌표 확인 작업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따라서 그는 다양한 내러티브를 표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자체, 혹은 자신이 창조해낸 스타일 자체에 비중을 두고 집요하게 파고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 그가 미디어 바깥의 실재에 집중하고 그 실재의 면면들을 활용해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전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전조는 이전의 작업들에서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특히 2004년 작 <욕망의 변증법>(도판1)이나 <수퍼 파라다이스>(도판2) 같은 작품들은 성속합일을 이야기해왔던 자신의 서사와 고유의 스타일이 키치적인 전술 아래 잘 담겨져 있다. 따라서 그의 전환은 맥락 없는 분절이 아니라 키치를 다스릴 줄 아는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한 결과이다.
세 컷의 사진을 옆으로 나란히 이어붙인 대작 <Flame-Ray 神 Girl>은 파란 불꽃과 빨간 불꽃을 사이에 둔 레이싱 걸 이미지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맥락의 <Flame - Racing Hera>는 다섯 개의 레이싱 걸 다리 사진과 다섯 개의 컬러풀한 불꽃 사진이 각각의 독자적인 프레임을 가진 채 나열된 작품이다. <Grid-Ray 神 Hera>는 위아래 두 컷의 이미지를 겹친 작품이다. 레이싱 걸의 다리와 붉은 불꽃의 결합으로 이뤄진 이 한 프레임의 이미지는 키치적인 소비문화와 미의 여신을 한 프레임 안에 가두어 역설적인 서사를 제시하고 있다. 윤영화 스타일의 카메라 워킹으로 인해 윤곽선이 흐트러진 이 이미지들은 그것이 불꽃인지 옷깃인지를 굳이 분간할 필요 없이 빛의 유영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화면 속 색채의 유희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작품을 읽는 데 있어 첫 시작일 뿐 그 뒤의 해석적 지평을 두루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불꽃과 레이싱 걸 사이의 의미 작용은 이미지의 유희를 넘어서는 세계 이해의 지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꽃은 윤영화가 추구해온 사진 이미지의 회화성을 드러내기에 매우 좋은 피사체이다. 그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의 네 가지 불꽃을 나란히 피우고 그 불꽃들을 겹쳐 보이도록 배치해서 카메라 렌즈 속으로 그 빛을 빨아들였다. 우리는 그의 불꽃 이미지들 가운데 몇 가지 색이 겹쳐 보이는 상황을 접하는데, 이것들은 컴퓨터합성이 아니라 현장에서 연출한 실재의 상황을 포착한 이미지들이다. 그의 사진들이 이렇듯 디지털 조작을 거치지 않은 날것이라는 점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불꽃(flame) 사진을 둘러싼 프레임(frame) 또한 윤영화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진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액자를 끼움으로써 그는 레이싱 걸(Ray神 girl)의 키치적 맥락을 완성하고 있다. 나아가 그의 프레임은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배치의 미학을 완성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racing girl’을 ‘Ray 神 Girl’로 비틀어버렸을 때의 이 키치적 상황은 윤영화 스타일과 내러티브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레이 신 걸(Ray 神 Girl)’은 모터쇼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광고모델인 ‘레이싱 걸’이라는 말을 자신의 작업 개념에 맞게 조작한 언어유희이다. 그가 말하는 레이 신 걸(Ray 神 girl)은 빛을 의미하는 레이(ray)와 신(神), 그리고 여성을 말하는 걸(girl)의 합성어이다. 이 짧은 말 속에 윤영화 작업의 형식과 내용이 온전히 들어있다. 우선 그는 ‘레이(Ray)’라는 말 속에 자신의 작업 도구인 사진이 빛의 세계를 조율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신(神)’이라는 언어 속에는 성과 속, 종교와 사회 등의 갈등과 대결을 화해와 합일로 이끌고자 하는 자신의 화두를 내비치고 있다. ‘걸(girl)’은 빛과 신(Ray 神)을 인도하는 인격체이며 동시에 ‘Ray 神’을 레이싱(racing)으로 전환하여 근작의 내러티브를 주도하는 단어이다.
모터쇼 현장에서 그는 불꽃을 발견해냈다. 현란한 조명아래서 유동하는 빛의 세계에 따라 소비사회의 축소판인 모터쇼 현장 공간을 유영하는 존재. 레이싱걸들이다. 자동차라는 물신을 대리하는 레이싱 걸들의 이미지를 그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윤영화는 레이싱 걸들을 통해서 자동차 물신의 현현을 발견했다. 현대 소비문화의 정점에 서 있는 자동차 문화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빠른 속도로 편안하게 이동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탈 것이라는 본연의 목표를 넘어 자신의 취향을 소비하면서 재구축하는 기호의 세계로 전환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동차에 ‘물신(物神)’의 지위를 부여한다. 인격화한 자동차를 대리하는 신체가 있다. 레이싱 걸이다. 레이싱 걸은 자동차의 물신화를 대변하는 신체이다. 도색 잡지를 도배하는 레이싱 걸의 키치 이미지가 물신화한 소비문화를 대표하듯이 윤영화가 말하는 ‘Ray 神 Girl’ 속의 레이싱 걸 신체 이미지는 세속을 대리 표상한다. 불꽃과 레이싱 걸의 다리 이미지는 신을 가운데 두고 공존하고 있다.
윤영화의 근작들에서 보이는 모종의 변화는 미디어 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쿨 미디어에서 핫 미디어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전까지의 윤영화가 사진과 회화 사이의 공통점과 차별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디어 자체를 이야기했다면, 지금부터의 윤영화는 자신의 스타일에 가장 잘 부합하는 내러티브를 찾아나서는 것을 제일의 전략적 목표로 삼는다. 불꽃을 포착한 사진들과 레이싱 걸들을 포착한 사진이 황금빛 액자 속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윤영화의 미디어 전략이 쿨 미디어가 아닌 핫미디어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파란 불꽃 너머 저편의 빨간 불꽃을 발견하듯이 모터쇼 현장의 레이싱 걸들의 다리에서 상품화한 여성 신체라는 불꽃을 발견하는 순간 윤영화의 렌즈는 쿨 미디어의 덫을 풀고 핫 미디어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낱낱의 집들을 호명하는 마을 그림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 그림의 지리적 좌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동네의 번지수와 같이 명확한 숫자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김윤희에게 있어 그림 그리는 행위의 현장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가령 ‘부암동’이라는 제목을 단 그림은 ‘부암동 97’, ‘부암동 332’, ‘부암동 329’ 등과 같이 번지수를 붙여서 화가 주체의 시선이 머문 곳을 표기하는 섬세함으로 이어진다. 그는 서울성곽 안이나 부용정 등 서울의 문화유적지를 담았다. 평창동과 행촌동 같은 마을과 경남 남해의 바닷가 마을과 정선의 가수리와 같은 오지 마을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그림들에 구체적인 이름을 적시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단지 풍경화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을 자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김윤희의 마을 그리기 작업은 스케치 여행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동학들과 함께 수시로 길을 떠났다. 학부 재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난 수년간 전국의 곳곳을 다니며 현장에서의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려왔다. 그가 살고 있는 서울은 물론 백두대간 골짜기를 따라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마을을 발견하기도 하고 남해안을 따라 긴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는 그곳에서 자연을 만나고 마을을 만난다. 그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언제나 따끈따끈한 현장 스케치로 옮겨진다. 자연을 대하는 화가의 마음은 그림을 대하는 관객의 마음과는 또 다른 법이다. 거대하고 위풍당당한 자연, 또는 소박하고 따뜻한 자연 그 모두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숭고를 되새기 게 하는 것. 이것이 자연의 힘이다. 김윤희는 그 자연의 힘을 아는 예술가이다.
김윤희는 그러나 자연 풍경만이 아닌 마을 풍경을 그린다. 그 풍경은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현장에서 사생한 실경들이다. 그는 스케치 여행의 현장에 존재하는 실재로서의 마을 풍경을 회화적으로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을 자체를 자신의 마음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그는 여행을 통해서 만나는 풍경의 낯선 느낌을 자신의 감성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으로 그림 그리기를 진행했다. 그 낯선 느낌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 자연과 인공의 공존이다. 김윤희가 포착한 마을 풍경은 자연 속에 들어 있는 인공의 흔적들이다. 하나의 집은 그 자체로 완결된 우주를 담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소우주들은 서로 닮은 모습으로 뭉쳐있기도 하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흩어져있기도 하다. 이질적인 소우주들의 결합은 하나의 마을을 만들고 그 마을은 필연적으로 자연의 품안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 속에 포착된 인공의 흔적을 드러내는 일. 김윤희의 회화 세계는 이 명쾌한 내러티브로부터 출발한다. 문명의 세계에 던지는 김윤희의 제안은 인간들의 서식처인 마을의 모습을 색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그가 채택한 마을 풍경은 풍경을 지배하는 인공의 흔적들 가운데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집들의 집합체이다. 문명의 시원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집은 인류 문화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한 집들의 집합체인 마을 풍경을 바라보는 화가 주체의 시선은 의도적으로 조작된 풍경을 만들어냈다. 김윤희 풍경화의 차별성은 그것이 실경을 바탕으로 하되 화가의 감성에 의해서 특정한 영역이 선택적으로 조작된 정보 값을 가진 풍경이라는 데 있다. 그의 그림은 실재의 재현과 실재의 변용 사이에 걸쳐있다. 김윤희의 마을 그림은 실재 풍경을 나름의 규칙에 따라 정연하게 재현한 그리기와 그 풍경의 색채나 형태를 이질적인 요소로 변용한 그리기가 공존하는 그림이다.
김윤희는 자신의 시선에 포착된 마을 풍경에 감정을 이입해서 평면 위에 고정시켜 놓고 있다. 우리가 보는 마을 풍경은 김윤희의 눈이 걸러낸 풍경이다. 거기에는 그가 선택한 기호의 세계가 가득 차 있다. 그 집들을 그는 사실적인 재현이 아니라 감성적인 변용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가 그려낸 집들은 레고 블록 같이 알록달록한 색과 단순한 평면의 연쇄로 이루어져있다. 형광색이나 미색 또는 원색에 가까운 색들을 구사함으로써 흑백으로 처리한 자연 풍경들과 극단적으로 대결하는 구도를 만들어 낸다. 그의 레고 블록 집들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평면의 꿈을 담고 있으며 화려한 색을 입고 있다. 그러한 색채의 세계는 배경을 이루는 옅은 먹의 자연이미지들과 대비를 이루면서 김윤희 회화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 풍경을 시각적 기호 인지하고 그것을 조작하는 일은 김윤희 그림을 차별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는 그 풍경에 개입해서 자신의 감성에 따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 기호 값들을 변형하고 조작함으로써 이질적인 풍경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김윤희는 열린 마음으로 마을 풍경을 담아냈다. 그러나 그 마음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그가 아무리 마음을 담아 색을 입혔다고 하더라도 김윤희와 마을 사이에는 예술가라는 주체와 풍경이라는 객체 사이의 간극이 남는다. 아직 그는 마을 속으로 뛰어들지 안/못했다. 나는 김윤희라는 예술가가 화가와 풍경, 주체와 객체의 간극을 좁힐 것이라는 예측을 가지고 그의 그림을 대면한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마을 그림이 회화적 재현과 기호의 변용 사이에 걸쳐 있지만, 향후에는 그의 그리기가 지금보다 더 치밀하고 적극적인 내러티브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상기해볼 점은 그의 그림이 상투성으로부터 거리 두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 값을 입력하는 눈과 그것을 화면위에 옮겨놓은 눈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이 바로 김윤희 풍경이 여느 상투적인 재현회화와 결별하는 대목이다. 그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거운 시선이 아니라 정반대의 뜨거운 시선이다. 그것은 자주 만나는 풍경이건 처음 만나는 낯선 풍경이건 간에 그 속에 담긴 낱낱의 서사들을 하나하나의 소우주로 새롭게 바라보려고 하는 섬세한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그 마음은 이름 없는 집 하나하나마다 일일이 각각 다른 색을 입히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가 알록달록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풍경을 그려내는 일은 마을 속에 담긴 소우주들 낱낱의 서사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하여 그는 이름 없는 낱낱의 집들을 호명하여 색을 입히고 말을 건네고 뜻을 더한다. 이 얼마나 마음 따뜻한 일인가.
* 김윤희 개인전 서문
액티비스트 박영균의 작업실 발(發) 명상
고전적 미디어인 회화를 통해서 뉴미디어 시대의 시각이미지를 포착하는 일이 박영균 근작의 핵심이다. 어느덧 40대 중반에 이르러 작업실에 앉아있는 작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며 그린 이 그림들은 그래서 ‘작업실로부터의 명상’이라는 언어에 제 값을 할 수 있는 그림들이다. 박영균이라는 예술가 주체와 사회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고 그 상태로부터 출발한 작업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회화라는 올드 미디어로 현실을 따라잡고 읽어내기란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들은 진솔하다. 그의 회화는 자기 고백을 담고 있다. 아파트 거실의 소파를 그릴 때도 그랬다. 지금의 박영균은 한 사람의 네티즌으로서 인터넷 창을 통해 세상과 만나며 동시대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서 마우스 클릭을 하고 앉아있는 자신의 시선을 오롯이 담고 있다.
박영균 근작들은 작업실에 앉아있는 예술가 주체가 그 바깥과 만나는 방식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의 그는 인터넷을 통해서 광장을 만나왔다. 이미 잘 알려진 바대로 박영균은 거리에서 움직이는 거리의 화가였으며, 지난해에 완성한 대추리 영상 다큐 <들사람들>을 만들기까지 분주하게 현장을 드나드는 예술가이다.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미술운동 그룹의 일원으로서, 공동육아와 대안학교를 만들고 이끈 학부모로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감독으로서, 현장예술의 기록자로서 살아온 박영균은 386세대를 대표하는 반듯한 아트 액티비스트이다. 그런 그가 올해에 펼쳐진 일련의 광장 현상에 대해서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수용하면서 그것을 매우 객관화한 외부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올해에도 몇 차례 거리로 나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의 예술이 바깥을 바라보는 창으로서의 미디어 자체에 관한 흥미로운 해석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박영균의 근작은 스타일의 문제에 있어 이전과 다르다. 인간이 아닌 인형을 다룬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그동안 아크릴릭 페인팅을 주로 해왔던 그가 모처럼 끈끈한 유화로 그려낸 근작들은 솜씨 좋은 페인터 박영균의 회화적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그의 최근작들은 플라스틱의 매들맨들한 질감과 화려한 색채에 대한 탐닉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유년기 시절에 체험했던 나무나 흙으로 만든 물건들과 확연하게 차별화한 새로운 물건으로서의 플라스틱에 대한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의 심볼과도 같은 플라스틱은 인간의 형상을 재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매우 탁월했다. 플라스틱 인형의 등장으로 인해서 우리는 그 이전보다도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나왔다. 플라스틱 인형은 현실에 대한 재현 기제로 작동하는 것은 물론 그 너머의 판타지로 기능해왔다.
박영균이 주목하는 플라스틱은 바로 이 대목, 그러니까 인간의 형상을 재현하는 것은 물론 판타지를 조작하는 물질로서의 특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영균이 플라스틱 인형 그 자체에만 탐닉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 물건들의 문맥을 타고 넘어서 자신의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방법론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영균의 회화적 발언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동시대 인간에 대한 그의 진술을 위해서 등장하는 대리 표상인 셈이다. 그가 채택한 인형들은 레고 인형들을 비롯해서 카우보이, 솔저, 미미 등의 우리 눈에 많이 익은 인형들이다. 이들 대리 인간들이 펼치 보여주는 사건과 상황들은 현실에 대해 비판적 지식을 쏟아내려는 리얼리스트 박영균의 언어를 훨씬 더 풍부한 은유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근작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실재의 대리 표상이면서 동시에 그 물질 자체에 관한 기호학적 감성의 재발견이다. <초록 바탕 위에 플라스틱을 머금은 플라스틱 인형>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플라스틱 재료의 외형적 특징들을 표현하고 있다. 군인의 복장이 띄는 녹색의 색깔과 생명, 희망 등을 담을 법한 녹색의 공존, 이 아이러니를 그림으로 담은 것이다. <쫘아악> 연작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쏟아지는 물대포 이미지 앞에 등장하는 레고 인형들과 미미와 만화 캐릭터들 사이로 현실의 처절한 체험은 기억 저편 너머로 아스라이 미끄러진다. 중요한 것은 그 미끄러짐이 그의 예술적 성찰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작에서 박영균 내러티브의 다수를 이루는 것이 촛불 내러티브이다. 그는 작업실에 앉아 그 바깥을 중계하는 창을 통해서 촛불소녀 캐릭터를 만났다.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흥얼거리며 그는 대작 페인팅 촛불소녀를 그렸다. 그는 2008년에 만난 소녀들에 대한 기억을 이 캐릭터 속에 담고 있다. 한 시대를 대변하는 한 컷의 이미지를 회화 작품으로 남겨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 한 장의 대작 페인팅으로 남았다. 소녀를 데려가는 세월 속에서 촛불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윤곽선을 흐리게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뿌옇게 흐린 경계 속에 상호성이 부족한 우리사회의 구조적 소통부재의 상황이 담겨있다.
3미터가 넘는 대작 <분홍밤>은 플라스틱 인형들의 군상을 통해서 동시대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풍선을 들고 있는 아이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도 있고, 의사도 있고 학생도 있다. 배경의 줄무늬는 올드 미디어인 회화의 뒷심 같은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줄무늬뿐만 아니라 인형을 등장시킨 것 자체부터 그렇다. 이 작업은 현실에 관한 재현일 뿐만 아니라 회화 자체에 관한 저항이기도 하다. 회화의 권위를 비틀고 뒤집어 버리는 것 말이다. 회화의 권력, 심미적 가치를 담보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마지않는 회화의 미학적 권위를 부정하는 일종의 키치 전략인 셈이다.
만화를 회화로 옮겼을 때의 역전 상황도 같은 맥락이다. <쫘아악> 연작들에서 보듯이 물줄기와 레고 블록들이 공존하는 상황이 그렇다. 카우보이 아가씨 인형과 풍경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그는 난 데 없이 판타지를 가진 낯선 풍경들을 회화 작품 안에 끌어들이고 있다. 상투적인 풍경을 끌어들이고 인형과 만화 이미지를 배치한다. 세 가지의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마치 싸구려 그림을 재배치하고 확대했을 때 나타나는 묘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박영균의 전략이다. 물줄기에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급박한 긴장감을 끌어내기보다는 서로 밀착해있는 한 쌍의 남녀를 로맨틱한 시선으로 들춰내기도 한다.
그는 광고와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을 회화 작품으로 번역했을 때 나타나는 낯선 상황을 담아내곤 한다. 올드 미디어인 회화 작업을 하는 화가로서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는 다양한 시각 이미지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재배치하는 작업들이다.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서 거리의 현실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마치 이라크 전쟁의 이미지를 불꽃놀이 정도의 상황으로 인식하며 CNN을 지켜봤을 때와 비슷한 심정으로 거리의 상황을 인터넷 방송으로 실시간 중계로 지켜보는 예술가 주체 박영균의 체험을 회화적으로 담고 있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는 나름의 일관성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2002년에 발표했던 <난 나를 모욕한 자들을 관대히 용서해주었지. 하지만 내겐 명단이 있어>를 레고 인형 버전으로 번안한 같은 제목의 작품을 통해서 여전히 자신의 심중에 자리 잡은 독백을 쏟아내고 있다.
예술가의 방, 작업실은 고독한 공간이다. 따라서 화가들의 작업실 작업은 종종 붓질의 본능에 따라 자폐적인 자기언어를 반복재생산하는 관행에 빠지곤 한다. 지난 몇 년간 본격적으로 회화작업에만 몰두하지 않았던 그에게 원초적 본능과도 같이 붓질의 추억을 되살린 공간 또한 그의 처소인 작업실이다. 그동안 공공미술의 현장과 대추리 현장을 누비면서 분주하게 세상과 만났던 그가 모처럼 차분하게 작업실에 앉아서 그 바깥을 바라보면서 붓질을 했다. 그의 작업실 발(發) 예술은 그래서 훨씬 더 성찰적이다. 그의 근작들은 충분하게 고인 우물에서 길러낸 매우 진솔한 자기언어로서 매우 강렬한 내적 필연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박영균 개인전(부산아트센터) 서문
현대미술의 처소와 향배를 묻는다
현대미술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현대미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현대미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미술의 처소(處所)와 존재방식에 대한 이러한 질문은 미술이 무엇인지를 캐묻는 매우 근본적인 명제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의 개념과 영역을 묻는 것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현대미술은 제도화한 미술문화공간 속에 존재한다. 미술문화공간은 미술관과 갤러리와 같은 전시공간이 주종을 이룬다.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일반에게 개방된 공간을 말하는 전시공간은 현대미술을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미술영역에 있어서의 근대성은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진 새로운 미술 언어게임을 통해서 무한히 팽창해왔다. 그것은 매체의 실험과 서사의 확장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감성의 영역을 넓히는 자율적인 언어로서의 시각예술 장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전시공간은 미술작품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장으로 기능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문화정치의 장을 만들었다. 항구적인 기관으로 출발한 미술관과 같은 근대적 기관은 미술을 자율성의 영역 안에 자리잡게 했다.
자본주의 시대와 조우한 현대미술은 전근대적인 힘의 원천이었던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을 이탈해서 시장권력에 포섭되었다. 근대적 의미의 예술적 공화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권력과 양립하는 듯하면서도 결과론적으로는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전시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대미술의 장은 그 권력중심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현대미술의 장은 그 바깥에서 벌어진 다양한 방식의 공격을 받아왔다. 근대적 시스템에 관한 총체적인 반성으로부터 포스트 모더니티 논의는 미술문화의 지형을 뒤흔들어왔다. 이 글은 근대적인 미술문화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태동하고 발전해왔는지를 간략히 짚어보고, 이어서 자본주의 시대 문화상품으로서의 미술작품의 면면을 언급한 후, 탈근대적인 미술문화가 어떻게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미술제도 분석의 시론(試論)이다.
1.
현대사회의 미술제도는 문화적 공화주의에 입각한 근대 문화정치의 산물이다. 근대기에 태동한 박물관 제도는 문화영역의 공화주의를 그 이념으로 한다. 전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독점해온 예술생산과 향유의 메커니즘은 근대 시기의 공화주의와 동행하면서 국가단위의 공공성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미술관 제도는 박물관의 역사와 그 궤적을 같이한다. 박물관이 과거의 유물을 통해서 동시대와의 소통을 지향한다면 현대의 미술관은 동시대의 미술문화와 동행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우리가 미술관 전시공간을 통해서 동시대 최전선의 미술담론을 확인할 수 있기까지 박물관/미술관 제도의 확립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실로 지대한 공헌을 했다.
박물관/미술관 제도의 확립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논의 틀은 미술문화를 공론장의 일환으로 해명해보는 일이다. 그것은 문화/예술 콘텐츠가 공공영역을 형성하는 과정에 기여함으로써 발생한 공론장으로서의 예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태동하던 근대기의 유럽에서는 소설 등과 같은 출판물과 더불어 전람회장과 공연장이 주요한 공론장으로 기능했다. 소설과 전시와 공연을 소비하는 대중을 일컬어 ‘le publique’라고 명명했던 19세기 프랑스의 사례로 보건대, 문화/예술 콘텐츠의 수취인은 전근대 시기에 볼 수 없었던 공공영역을 만들었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근대적 의미의 공론장을 문예적 공론장으로 명명했다. 문화/예술을 통해서 발생한 공공영역인 문예적 공론장은 근대성을 전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문예적 공론장은 강력한 체제를 갖춘 근대국가의 확립과 더불어 그 영향력이 퇴조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가 안착하면서 국가단위 공공성과 여론의 주도권을 장악한 언론의 영향력이 막강해짐으로써 문예적 공론장의 지위는 급격하게 낮아졌다. 전근대 시기의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에 포섭되어 있던 문화/예술 영역은 근대시기에 접어들어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전취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치며 주문생산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근대시기 예술가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예술을 자율성의 영역으로 자리잡게 했다. 정치와 종교, 건축과 연회, 예배 등에 부수적인 요소로 포섭되어있던 예술이 독자적인 장을 마련하고 예술생산과 향유의 체제를 공화주의에 입각한 문화정치의 영역으로 전환한 것은 공론장으로서의 예술이 획득한 예술혁명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의 예술은 또 다른 권력 아래 포섭되었다. 시장권력이다. 미술과 시장의 관계는 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제도를 규명하는 중요한 논제이다. 시장권력은 예술제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힘의 원천으로 작동해왔다. 자본주의 시대 미술제도는 미술작품의 사적소유라는 관계항 속에서 성립가능하다. 미술작품을 교환가치의 틀 아래에 두고 작품을 상품으로 만들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대, 즉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로 미술 작품의 생산과 유통이 포섭된 시대에 이르러 미술 작품/상품의 생산은 비약적인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시장권력은 근대적인 미술제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 의미의 예술적 자율성을 반쪽짜리로 만든 거대한 힘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 소통의 기틀을 확보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은 모든 종류의 생산을 상품 생산으로 환원하고 모든 종류의 가치를 교환가치로 소급하는 데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예술작품의 생산은 예술작품이라는 상품 생산으로 직결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율성의 영역에 위치한다고 자부하는 예술가들의 노동이 상품의 생산과 교환 방식에 의해 사회화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의 기능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힘에 따른 예술가들의 주문생산을 시장권력의 힘에 따른 주문생산으로 대체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아니면 비판적으로 거리두기를 하던 간에 예술노동이 상품생산으로 직결하고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힘이 자본권력에 달려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자리잡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논지가 공화주의 문화정치와 시장권력이 양립한 상황을 점검해보는 일이다. 얼핏 보기에 공화주의와 시장권력은 상호 대립하는 요소로 양립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아 근대의 공화주의가 자본주의 체제를 잉태하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술문화와 관련한 공화주의와 자본주의 시장체제는 한 몸에서 나온 두 개의 머리에 불과하다. 문예적 공론장 시기를 거치면서 자리잡은 공화주의 문화정치와 이후에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통어하는 힘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시장권력의 편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 위에 놓여있다. 요컨대 근대적 문화정치의 산물인 문예적 공론장에 연이은 미술시장의 태동과 발전은 자본주의 시대 미술 제도의 태동과 발전을 견인한 두 축이며 그것은 오늘날까지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두 가지 미술문화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다.
2.
미술작품은 시각적 기호들을 조작해서 만든 하나의 정보 체계이다. 시각예술의 영역에서 통용되는 이러한 시각정보를 생산하는 이를 시각예술정보생산자, 줄여서 예술가 또는 미술가라고 부른다. 예술가가 생산한 물질은 예술작품으로 성립한다. 예술작품은 전문적인 전시공간에서 전람회라는 형식을 통해서 작품발표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세상에 공개된다. 관람객은 전문화한 전시공간의 권능을 토대로 예술작품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작품 속에 담긴 의미의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려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인류사회가 합의한 문화적 관행이자 시각적 소통을 위한 기호론적인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관행과 합의는 시각예술문화를 둘러싼 인정시스템을 구성하는 절대적인 요소이다. 한 인간을 예술가로 인정하고 그가 생산한 시각정보체제를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예술을 사회적 관행이자 제도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은 인정시스템으로 구축된 영역이다. 그 인정시스템의 완고한 벽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엄격한 구분을 만들고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를 구별짓는다. 학력과는 무관해 보이는 예술계에서조차 학위조작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예술계야말로 얼마나 확연하게 학력자본에 의존해서 인정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역으로 말하자면 예술계야말로 인정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학력과 같은 비가시적인 상징자본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정시스템이 지탱하고 있는 미술제도 아래서 미술작품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메커니즘으로 기능하는가? 미술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 작품의 의미작용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미술작품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관객과 만나는가? 이제 미술 제도가 어떻게 소통 영역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여타의 경로를 통해서 전시공간에 진입한 미술작품은 감상의 대상이다. 미술작품의 감상은 오래된 약속이다. 회화작품의 경우 프레임 속에 담긴 형태와 색채는 기호작용을 통해서 관람객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우리는 하나의 그림을 보면서 'A공간에 B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김홍도의 <미인도>를 보면서 ‘저기 가채를 쓰고 한복을 입은 조선의 미녀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그 작품에는 한지 위에 먹으로 그은 선들과 채색안료를 입힌 평면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우리가 그 종이 위에 칠해진 선과 색들을 통해서 조선시대 미인을 떠올리는 것은 일련의 정보들이 시각적인 일루전(illusion)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인물화나 풍경화와 같이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호체계를 가진 작품들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게 제시된 일루전 효과를 통해서 단박에 시각적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때 그 작품이 담고 있는 시각 정보가 얼마만큼 격조 있는 선과 색, 구도와 서사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예술작품의 높낮이를 구분하는 잣대로 작동한다. 근대시기 이전가지의 모든 미술작품들은 안정적인 기호체계 안에서 작동했다. 초상화나 풍경화화 같이 사실에 근거하거나 또는 그것을 변용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상상을 통해서 조작된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들까지도 오랜 시간동안의 반복학습을 통해서 나타난 도상의 세계 속에 존재한다. 나아가 그 작품 속에 담긴 스타일과 내러티브가 얼마나 상투적인 표현 수준을 넘어서 독창적인지를 따지는 것이 예술계의 인정시스템에서 중요시하는 요소이다.
단원과 혜원의 그림이 정조시대의 새로운 지식생산으로서 어떻게 기능했는지, 다빈치의 그림 속 ‘모나리자’가 어떤 방식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는지,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는 왜 근대사회의 발전에 있어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헤아려봄으로써 우리는 전근대에서 근대에로의 이행 시기에 얼마나 치열하고 혁명적인 지식생산이 이루어졌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인류의 시각을 얼마나 뒤바꿔 놓았으며, 고암 이응노의 예술세계는 얼마나 처절하게 20세기 한국의 뼈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새로운 매체 시대의 예술을 어떻게 견인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모두 기존의 관념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독창성을 발휘했다. 풍부한 상상력을 토대로 한 창의력의 향연장, 그것은 미술작품을 떠받히는 근저의 힘이다.
미술작품은 정보의 생산과 소통 기제 안에서 작용한다. 모든 예술작품은 정보의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의미작용을 일으킨다. 작품 속에 존재하는 갖가지 요소들이 발생시키는 정보들을 분석하고 조합해서 인지작용이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의미가 발생하는 또는 발생한다고 믿는 것이다. 회화뿐만이 아니라 조각이나 입체 설치, 사진 등과 같은 예술작품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독자적인 시각정보체제 속에서 정보를 생산하고(coding) 그 정보 속에 담긴 약호들을 풀어내는(decoding) 과정에서 예술적 소통이 발생한다. 거기에는 각각의 장르적 속성들과 더불어 공통적인 요소들이 존재한다. 가령 어떠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지, 어떠한 내러티브를 구사하고 있는지, 나아가 그 서사체계를 어떤 스타일로 표현하고 있는지 등이 주요한 작품 비평의 잣대이다. 이러한 일련의 시각예술 소통행위를 담보하는 공간이 바로 미술관과 갤러리 같은 전시공간이며, 미술언론과 미술시장 등과 같은 제도영역이다.
3.
미술은 고급문화 영역으로써 상류계층의 문화소비 영역일 뿐인지, 아니면 대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는 사회적 소통의 장인지를 두고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아무래도 미술영역 바깥의 시각적 소통체제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전시공간은 대중적인 소통공간으로서는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기성의 권위를 공고하 다지는 데 기여하는 매우 보수적인 기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오늘날 미술관이나 기타 미술문화 관련 제도/기구의 역할이다. 격년제로 열리는 미술축제를 의미하는 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를 필두로 지난 100여년동안 미술의 담론을 주도해왔다. 비엔날레를 통해서 동시대 최첨단의 미술담론을 확인하고 동시대 전세계의 미술경향을 일변해보는 시각언어 게임의 장으로 기능해왔다. 이러한 비엔날레라는 제도는 각 국가별로 국가관을 만들어서 경쟁적인 내셔널리즘의 일환으로 작동하면서 미술문화와 관련한 보수적인 시각을 유포하고 있다.
제도화한 미술문화공간들이 보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비해서 전시공간 바깥에서 벌어지는 미술문화는 훨씬 더 역동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탈중심적인 공간 개념을 드러내는 예술행위들이 어떻게 작품으로 성립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몇몇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도 공간 바깥에서 벌어지는 미술행위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는 것이 공공미술이다. 공공미술은 예술작품의 생산과 향유를 사적인 영역으로부터 공적인 영역으로 되돌리는 미술이다. 그것은 전문화한 전시공간의 바깥, 즉 생활영역과 공존하는 도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미술이다. 그것은 전근대시기부터 존재해왔던 기념비적인 동상이나 벽화와 같은 미술작품에서부터 오늘날 거리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방식의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층위를 가지고 있다. 가령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 선 이순신장군의 동상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통치자 박정희가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세운 무인상으로서 호국의 전쟁영웅을 통해서 국가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의도로 세워졌다.
공공미술작품의 출발은 이렇듯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선전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도식공간 속에서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기능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 현대미술로서의 공공미술의 추세이다. 서울역 앞에 자리잡고 있는 박기원의 <자-넓이>와 같은 작품은 서울역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광장 중앙에 우뚝 솟아서 그 공간을 지배하고 호령하는 영웅의 일루전을 갖추지 않은 이 작품은 널찍한 공간에 기하학적인 ‘ㄱ’자 모양의 육면체들을 눕히고 세워놓음으로써 스트리트 퍼니처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노숙자들이 눕지 못하도록 촘촘하게 손잡이를 만들어 놓은 서울역 벤치들과는 달리 마이너리티를 수용해주는 유일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문병탁, 박봉기, 안시형 세 작가가 만든 APEC 나루공원의 <동시상영>은 시멘트 덩어리로 재현한 주변의 건축물 이미지로 도시공간을 집약한다. 센텀시티의 높다란 주상복합건물과 수영강 너머의 80년대식 성냥곽 아파트, 그리고 초대형 콘벤션센터인 벡스코를 축소 제작함으로써 부산의 과거와 현재를 압축적인 시각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라고 불리우는 본격적인 거리의 미술 또한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곳곳에 스프레이 캔 안료로 낙서를 하듯 그림을 그린 그래피티를 비롯해서 스티커를 붙이거나 유인물을 나눠주는 방식의 스트리트 아트는 유럽이나 미주의 도시공간을 뒤덮은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출발해서 세계적인 스타로 활약했던 바스키아 같은 미술가나 얼굴 없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잘 알려진 영국의 뱅크시 같이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대인시장 프로젝트에서 셔터에 장미란 선수 이미지를 그려 넣어서 검색사이트에 오르기도 했던 구헌주와 같이 부산에서 활동하는 젊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도 있다. 부산대역 일대에서 만나는 그래피티 이미지들은 세계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특정 구역에서만 활성화 되어 있을 뿐 도시공간 자체를 가로지르는 문화적 충격으로 자리잡고 있지는 못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액티비즘의 경우 미술영역 바깥과의 적극적인 조우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한 예술실천의 모델로 언급할 만하다.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의 공유를 실천하는 액티비즘은 물질형식으로서의 미술작품 생산은 물론 비물질적인 예술행위들, 가령 퍼포먼스나 발언, 대화, 조직 등 모든 형식의 정보소통체제를 동원한다. 60년대 반전 이슈에 동참했던 비틀즈 멤버 존 레논과 전위예술가 오노 요꼬 부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침실에서 베드 피스(bed peace) 퍼포먼스를 벌였다. 작가 자신이 사회조각이라고 명명한 요셉 보이스의 녹색당 창당운동 같은 정당 활동도 액티비스트 영역에 들어간다. 한국의 경우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벌인 목동예술인회관 점거 프로젝트의 경우 사회적 이슈를 예술적 이슈로 부각한 좋은 사례이다. 비어있는 공간을 점거해서 예술적 공간으로 만드는 스쾃 아트 또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위해 마을을 빼앗긴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서 벌어진 수많은 예술가들의 활동 또한 예술행동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를 남겼다.
큰 틀에서 이러한 변화를 집약할 수 있는 개념이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 즉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미술이다. 20세기 모더니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은 회화나 조각 등과 같이 미술작품이라는 물질형식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미술의 생산과 향유는 미술작품이라는 물질적 존재를 벗어나고 있다. 탈근대 시기의 현대미술은 심미적 가치를 담은 물질형식 중심의 소통방식을 벗어나는 일이며, 모더니즘 시기를 거치면서 상호 분리된 현실과 예술의 간극을 복원하고 있다. 퍼포먼스와 같은 인간의 행위 자체까지도 미술작품의 범주에 포괄하는가하면 디지털 정보화와 동영상, 인터넷 등과 같은 새로운 정보생산과 소통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뉴미디어 영역에 이르기까지 미술작품의 생산과 소비가 넓어지고 있다. 정보의 생산과 소비가 비약적인 수준으로 발전함에 따라, 또는 전시공간과 같이 제도화한 미술문화공간이 예술 소통의 장으로 작동하기에는 뚜렷한 한계를 보임에 따라 기성의 광행과 제도를 이탈하는 예술행위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미술은 현대사회 속에서, 동시대 정보양식과 동행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소통방식을 향해서 진화하고 있다. 예술은 언제나 변화는 사회의 맥락과 동행하기 때문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경성대 교지 기고문. 2008. 10.15
GIM's Public Art Story 25 : the bridge
현수교 모양의 조각 상판은 군함 두척이 충돌한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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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 Public Art Story 24 : the same time projecting
수영강변의 나루공원 주변 건물 모형을 본뜬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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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이슈 특정적인 공론장으로서의 충무 아트 프로젝트
충무갤러리의 기획공모가 ‘황학동-만물시장’에 이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다시 한번 지역성과 동행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실천하기 위해서 여러 작가들의 작업계획을 듣고 보았다. 공공예술 프로젝트라고 해서 이번 기획의 참여작가들이 실재의 공공공간을 대상으로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프로젝트는 전시장 전시를 최종목표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을 띠는 이유는 그것이 공론장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공공공간은 공공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가능성을 가진 곳이다. 그러나 물리적 공간을 지향하는 공공공간의 미술만이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아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공영역과 공공공간은 분명이 다르다는 점이다. 공공영역은 비가시적인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포함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지식과 감성의 생산과 향유 체제를 말한다. 이 프로젝트가 작동하기를 희망하는 지점은 공공공간이라는 한정된 장소개념이 아니라 장소성과 의제가 활성화하는 공공영역이다.
공모에 참여한 다수의 작가들이 이러한 기획공모의 면면을 잘 헤아렸다. 대상을 수상한 우상호는 이미 90년대 이후부터 활동해온 중견작가로서 이번 공모에서 단연 두각을 타나낸 작가이다. 그동안 폐광촌의 이미지를 회화작업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기억을 회화라는 물질형식의 예술작품으로 남기는 일을 해왔던 그는 동대문의 안과 밖, 과거와 현재의 풍경과 기억들을 담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작가로 평가받기에 충분했다. 그가 말하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 고리 속에 존재하는 동대문운동장의 운명을 담은 회화의 기억에 관해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동대문운동장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물들 가운데 우상호의 회화적 표현이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그가 화가로서 걸어온 성찰적 자세에 대한 믿은 때문이었다.
우수상을 받은 김강박씨, 김문경, 김영경, 차지량 등 4인(팀)의 작가들도 많은 기대를 모았다. 김강박씨는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동대문운동장의 운명을 영화간판 페인팅과 지우기 작업으로 표현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스스로 지워버림으로써 실재 영역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동행하는 예술 영역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수행성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김문경은 2007년 기획공모 ‘황학동-만물시장’에서 좋은 작품을 남긴 데 이어 올해에도 동대문의 역사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진이미지들을 제시해 눈길을 모았다. 리서치 베이스의 이미지 아카이빙과 취재 및 가공 단계를 거치는 그의 작업에서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시장을 동시에 성찰하는 반짝이는 성찰이 돋보였다.
김영경은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자체를 카메라에 담아내되 그 주변의 풍경들을 동시에 포착함으로써 오랜 세월동안 동대문운동장을 둘러싸고 땅의 역사를 만들어온 시간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사라지는 것에 관한 판타지를 담은 기억투쟁으로서의 다큐멘타리로 남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차지량은 동대문운동장의 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유폐된 삶의 흔적들을 추적하고 그 면면을 사진과 텍스트로 담아냄으로써 화려한 재개발 프로젝트 속에 담긴 도시의 배리를 들춰내고자했다. 동시대 현실 영역을 들여다보는 리얼리스트의 면모가 보였다.
특정 지역의 장소성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동시대의 이슈를 발굴하는 프로젝트야말로 공공영역을 형성하는 매우 빼어난 기획이다. 예술작품을 매개로 하는 공공영역, 다시 말해서 예술공론장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수준에서 발생하는 공공적 커뮤니케이션을 만든다. 그것은 작가의 체험을 표현한 예술작품들이 감성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동시대의 이슈에 대해 새로운 합의를 생성하는 데로까지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모에 참가해서 전시 프로젝트에까지 도달한 신진 및 중견 작가들은 지역 공동체의 담론과 동행하면서 의미있는 예술공론장을 형성할 것이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장소성과 역사성을 토대로 한 예술적 의제 설정과 소통이 창의적으로 결합하는 '장소/이슈 특정적인 충무 아트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2008 충무갤러리 기획공모 심사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