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은 내러티브를 잠식한다
3명의 심사위원이 자율 추천 방식으로 11명의 작가를 1차 토론 대상으로 올린 후, 그 가운데 6명의 작가를 선정, 작가 후보로 올려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선정 작가 1명과 또 한 명의 전시 후보 작가를 선정했다. 심사의 가장 큰 관건은 지금까지 작품을 발표해온 이력과 그 결과물인 기존 작품들에 관한 자료들을 검토하는 것이었고, 나아가 반디 공간에서 진행할 전시의 계획을 검토해보는 것이었는데, 전시 개념과 그것의 전개과정에 관한 일관된 맥락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가장 큰 기준이었다. 35세 미만의 젊은 작가들은 동시대 시각예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의 흐름을 예측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토론 대상자로 올린 11명의 작가들에 관해 짧게 언급함으로써 젊은 작가들의 면면을 검토하면서 언급한 내용들을 소개함으로써 심사과정의 일단을 공유하고자 한다.
김선좌은 ‘검은 우유’라는 개념을 설정한 후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서 드로잉, 사진, 영상, 설치 등에 이르기까지 다매체에 걸친 전개과정을 거치고자 했던 기획안을 제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쾌한 손맛이 두드러져 보이는 김청신의 작업계획은 낱장의 드로잉에서 공간 전체를 장악하는 능력에 이르기까지 좋은 느낌을 주었다. 다만 서구의 대중문화 스타들을 등장시키는 대목에 있어서 상투성 논란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지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민예진의 페인팅은 여성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중심주의 전통인 제사에 참가하는 방식에 관해 문제제기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주제설정이 돋보였으며, 제사상이 차려져있는 장면을 다양한 방식의 그림그리기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도 돋보였는데, 그림의 스타일에 비해 장면을 설정하는 방식이 좀 더 다각적일 필요가 있겠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으로 언급되었다.
박경선은 여성 이미지에 관한 자신의 구작들을 토대로 반디 공간의 특성을 여탕이라는 주제로 풀어내겠다는 계획을 밝혀 주목 받았다. 학부생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프로젝트에 참가한 경력을 갖고 있는 박민지는 페인팅과 퍼포먼스,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주제를 풀어내려는 접근방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양보현은 마치 반디 건물을 그린 것 같은 페인팅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그것을 담고 있는 기억의 문제를 풀어내는 드로잉과 페인팅을 제시했다. 아이스크림 막대기와 같은 사소한 사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한 이슬기의 작업에 대해서는 재료의 문제를 넘어선 차원의 ‘예술적 소통’에 관한 새로운 접근과 성찰을 가미한다면 한 차원 높은 작업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많겠다는 언급이 있었다.
이현지의 작업은 스타일리쉬한 도시공간의 표현 방식이 관심을 모았다. 체험을 근거로한 예술가로서의 자기발언이 좀 더 가다듬어진다면 충만한 자기 서사를 가진 작가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종이박스들을 파란색으로 칠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설치 작업을 하고자 했던 조은필의 작업에 대해서는 개념설정과 과정에 관한 계획이 보완된다면 좋은 프로젝트로 성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자작 소설을 제시하고 그 소설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의 시각예술 작품으로 풀어내고자 한 임종광은 2명으로 좁혀진 최종 선정 작가 후보에 들어 경합을 벌일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입체와 오브제, 그리고 영상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선보여온 작업 역량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매체 장악력뿐만 아니라 문제제기 방식과 개념적인 전개 과정 또한 돋보였다. 아쉽게도 최종 선정 작가로 선택되지 않았지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이 작가에게도 전시기회를 부여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테이프를 이용해서 파도, 집, 인체 등의 형상을 만드는 김덕영의 작품은 고르게 주목을 받았다. 그는 테이프를 말아서 작은 단위의 덩어리를 만들고 그것을 군집의 미학으로 끌어올리는 노동집약적인 작업으로부터 출발해서 랩과 테이프를 이용해서 신체를 캐스팅하는 작업에 이르러서는 실재와 허상, 알맹이와 껍질의 관계에 관한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재료를 선택하고 그것을 자신의 내러티브로 연결시켜 구조화 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시계획 부분에 있어서 전시장 공간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조사와 연구 과정을 거친 후에 기획과 실행단계에서 짜임새 있는 상호 토론이 필요하겠다는 점을 전제로 김덕영을 선정 작가로 결정했다.
대안공간반디의 기획전시 공모에 참가한 작가들의 경향을 근거로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흐름을 언급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뚜렷한 개념 설정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공모의 대전제가 주제를 제시하고 거기에 따른 계획을 제출하는 것이었으므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공모에 참가한 많은 작가들이 주제를 결정하고 그것을 풀어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비교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다매체적인 접근방식이다. 단일한 매체 구사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러티브를 구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매체를 동시에 펼쳐 보이는 매체장악력의 성장이 두드려져보였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미술에 관한 정보가 차고 넘치다보니 다양한 방식의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신예들이 많은 반면에 자신의 몸에 맞는 자기언어의 개발과 예술가 주체의 밀도 있는 체험을 토대로 한 자기발언이 아쉽다는 점이다. 스타일에 관한 과도한 집착은 예술가의 진솔한 내러티브를 잠식한다. 예술은 창작에 관한 기술이면서 동시에 삶에 관한 성찰을 담은 지식이 아니던가. ■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대안공간반디 전시기획 공모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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