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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예술과 문화정치 :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critic & column | 2010/03/23 22:53


광장의 예술과 문화정치 :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가로변의 예술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예술이라면, 광장의 예술은 지나가는 사람들은 물론 모이는 사람들과 함께 마음과 몸을 나눔으로써 완성하는 예술이다. 광장의 예술은 그래서 그 어떤 바깥미술보다도 훨씬 더 깊고 넓게 우리의 사유와 감성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의식과 정서를 직조하는 공론의 장이다. 따라서 광장은 공공 장소(public site)일 뿐만 아니라 공공 영역(public sphere)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이 보다 분명히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이 살아있는 공론장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시민의 합의 없이 국가가 직조해놓은 광장의 일방적인 지배를 받아왔다. 권력은 항상 광장을 통해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거나 지배권력을 강화하는 문화정치의 장을 열었다. 광장의 커뮤니케이션은 지배자의 권력의지가 작동하는 공권력의 공간이지만, 피지배자들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집결하여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는 공공영역의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글은 오늘날 광장의 문화정치가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광장의 문화정치를 위한 전망의 단서를 찾아보기 위해서 서울의 광화문에서 서울역에 이르는 광장 공간들을 들여다 보려고 한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 맥락을 살펴보면 시민은 광장이라는 공론장을 새로운 합의를 위한 논의와 실천의 장으로 만들어왔다. 가령 서울역 광장을 놓고 시민과 공권력이 격렬하게 충돌하거나 아니면 평화롭게 공존했던 사건을 상개해보자. 박영균의 비디오 클립 <대한민국>(2002)은 1987년 유월항쟁의 무대였던 시청앞 광장과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시청앞  광장을 교차편집한 작업이다. 흰색 물결을 이룬 유월항쟁의 모토는 민주화였고, 붉은 색 물결을 이룬 월드컵의 이슈는 광장의 해방이었다. 두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를 한 장의 페인팅에 담은 <노랑건물이 보이는 풍경>은 붉은 색으로 뒤덮인 시청앞 광장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넥타이를 맨 김대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감각적인 색채와 날렵한 붓질로 2002년 월드컵 당시의 광장을 바라보는 80년대 세대의 심경을 담은 이 작품은, 80년대와 2000년대의 간극을 포착하고 있다. 광장을 가득 채운 주체들의 욕망이 상호 충돌하거나 비껴나는 이유는 당연히 광장을 둘러싼 문화정치의 차이에서 드러난다. 물론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일과 스포츠마케팅에 광분하는 일 사이에는 해방, 집단 등의 키워드들이 공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박영균의 비디오 클립과 페인팅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광장의 정치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시민사회의 발언을 억누르려는 공권력이 되었든, 민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가 되었든,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의 충실한 소비자 대중이 되었든 간에 광장을 이해하는 개별 주체들의 욕망은 광장을 소통공간으로 이해하고 그 공간을 통해서 자신들의 이애화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광장은 공동체의 합의를 공표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민주적 합의 수준이 일천한 사회에서는 권력의 일방적인 의지가 광장을 지배한다. 민주적 합의 수준이 훌륭한 사회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의지가 작동하는 장소가 광장이다. 광장의 정치에는 유형무형의 예술적 소통이 존재한다. 이들 광장의 예술들은 물론 권력의 의지를 반영하는 차원에서의 공공성을 표방한다. 문제는 누구의 권력의지이며 어떤 절차를 거친 합의인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전근대 시기의 공공성을 표방한 광장의 예술은 주로 모뉴먼트의 그것이었다. 한 도시의 공동체를 지배하는 영웅의 조상을 세우거나 권력의 건위를 세우기 위한 조형물을 세우는 것이 대표적인 전근대 시대의 공공미술이었다.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조형물이나 설치물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유럽의 도시가 교회 건물을 중심으로 광장을 조성하고 아시아 도시들이 사찰 중심에 탑을 세우고 주변에 마당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국의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는 네 개의 좌대가 있다. 그 가운데 세 개에는 19세기 식의 국왕이나 전쟁 영웅 기념상이 있다. 나머지 하나도 같은 방식으로 윌리엄 4세의 조상을 세우려다 실패했다. 170년이 지난 지금, 비어있는 좌대는 살아있는 조각 작품들을 통해서 훌륭한 동시대의 예술 공론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 좌대에서는 여러 작가들이 릴레이 식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설치하거나 퍼포먼스를 벌인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빈 좌대를 이용해서 쟁쟁한 예술가들이 동시대의 예술적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 사뭇 매력적인 예술적 소통의 장이 아닐 수 없다. 수백년간 광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역사를 축적해온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영웅 조상을 세워 자신들의 커뮤니티가 걸어온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일은 물론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고 소통할 수 있다. 오랜 민주주의 실험을 거친 런던의 광장에서 만나는 미술은 브론즈 대신에 폴리코트로 조형물을 만들어 분수대 위에 얹어 놓고 브론즈를 모방한 연녹색을 발라 오래된 작품인냥 위장하려 드는 서울의 미술과 아주 많이 다르다.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대학 앞 광장은 히틀러가 군중집회를 열어 대중연설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에서는 유태인 교수들이 지은 저작들을 모아서 불태운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공공미술 작품을 공모했는데, 슈트트가르트대학 교수로 있었던 이스라엘 작가 미하 울만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얻어 설치되었다. 그의 작품은 불타는 책의 형상이 아니라 지하의 빈 서고이다. 광장 한 가운데 강화유리로 지하의 빈 서고를 바라보도록 만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책꽂이. 그것이 전부다. 광장의 예술은 그렇게 절제된 언어의 낮은 공공미술일 수 있다. 동베를린 지역의 옛 동독 광장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 동상을 세울 당시 국가적 영웅이었을 두 인물의 조상을 좌대 없이 바닥에 세웠다는 것이다. 누구나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이 작품은 독일 사람들이 얼마나 낮은 공공미술로 광장의 문화정치를 펼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낮게 깔려 시민들과 가까이 만나는 공공미술 작품이 있는 베를린에도 브란덴부르그문과 같은 기념비적인 수직상승의 공공미술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이에 비해 서울의 광장과 예술은 어떠한가? 서울의 대표광장인 광화문 광장과 서울광장 ,그리고 서울역광장 등을 떠올리면 우리의 광장의 문화정치가 얼마나 진부한 수준인지를 알 수 있다. 23전 23승, 불패의 신화를 가진 전쟁 영웅 이순신 장군의 조상이 광화문에 자리 잡은 게 박정희 정권 시절 1968년의 일이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김경승 작 세종대왕 동상은 덕수궁 경내에 설치되었다. 40년이 흐른 후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고 세종로에 세종대왕 조상을 모시는 큰 프로젝트를 벌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40년 전의 방식과 거의 차별성이 없는 구태의연한 것이었다. 물론 새로 만든 세종대왕상은 완벽한 소조 기술을 동원한 최고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시대 최고의 구상조각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김영원의 작품이니 그 이상 더 완벽한 조형성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부드러움 가운데 카리스마를 내뿜는 성군의 이미지가 그의 자세나 표정에 잘 담긴 훌륭한 조각이다. 그러나 그 조각의 좌대나 배치 방식, 그리고 그 주변의 어수선한 동선 등에 있어서 구태가 의연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광화문 광장을 더욱 더 혼란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 행사들이다. 한 국가의 심장부로서의 상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각종 행사들로 부산하게 돌아가는 광장을 찾는 시민들은 과면 무엇을 생각하며 어느 정도의 문화적 수준으로 자신들의 사유와 감성을 가늠하겠는가?

심각한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광장 가운데의 지하공간에 있는 해치광장이다. 광화문 바로 앞에 조선시대에 만든 탁월한 감각의 해치가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서울시의 상징적인 조형물로서도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디자인 서울의 이름으로 유포하려는 성급한 마음에 고만고만한 크기의 여러 마리 해치를 좌대위에 올망졸망 올려놓은 전시 광경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공공적인 시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이렇게 광장에 펼쳐놓고 물량공세를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광범위한 토론을 거쳐서 시민사회의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공공적인 예술적 소통인데, 그러한 문화민주주의적 절차나 방법론은 찾아볼 수가 없다. 광장 전체의 동선도 그렇다. 거대한 중앙분리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이 자자하다. 그것을 보완하려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재구성 논의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광화문 광장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광장의 문화정치는 철저히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적 합의를 상실한 주입식 문화정치는 곤란하다. 광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려는 발상은 민주주의 일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광장은 만인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마당은 공유와 공존의 장이지 소유와 배제의 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화문 네거리를 건너 청계점 시점부에 다다르면 몇 년 전의 악몽이 다시 떠오른다. 세계적인 명망을 가진 작가의 작품 모시기 프로젝트로 밀어부친 <스프링>이 버티고 있다. 팝아트의 거장이라 불리는 클래스 올덴버그의 골뱅이 탑은 비좁은 도시 건축물들 사이에 또 하나의 수직상승 구조물을 보탰을 뿐이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유명작가의 값비싼 작품을 기념비적인 토목공사 현장에 세우겠다는 의지 하나로 밀어부친 결과 21세기에 세워진 20세기의 진부한 공공미술로서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진부한 명물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세계 여러 도시를 다니며 올덴버그의 진면목을 접해본 이들은 청계천의 골뱅이 탑에 대해 조롱 섞인 비판을 숨기지 않는다. 무엇이 이런 부끄러움을 만들었는가? 일방주의 문화정치 때문이다. 광장의 소통은 민주적인 합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청계광장 조형물은 시민단체와 전문가집단의 의견을 배제한 밀어붙이기 행정의 전형이다. 시민의 참여가 없는 광장은 생동감을 상실하거나 시민을 우민화하는 일방소통의 공간으로 전락한다.

서울광장의 상황은 더욱 더 답답하다. 높은 빌딩들로 둘러쌓인 주변부 환경하며 차량들로 둘러쌓여 접근성이 떨어지는 서울광장은 살아있는 광장이라기보다는 박제화한 구경거리 같아 보인다. 다행인 것은 이 곳에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우뚝 세워놓는 일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광장의 생명은 그 공터를 메우는 사람들의 소통이다. 광장을 통해서 부대끼고 말을 나누는 과정에서 뜻을 현실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철저하게 차단된 채 싸늘한 겨울을 지나고 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대문을 만난다. 광장을 조성할 여유도 없이 빼곡한 그곳은 화마의 참극을 맞은 후 복원공사중이다. 이어지는 큰 공간이 서울역 광장이다. 서울역 광장은 그 상징성에 비해 지금은 광장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도로와 나무에 의해 광장으로서의 규모나 면모를 잃었다. 다만 그리고는 이어서 한강으로 내달리는 대로변에서 우리는 광장이라 할만한 광장을 만날 수 없다. 다만 옛 대우빌딩, 지금의 서울스퀘어 전면을 뒤덮은 LED 파사드가 서울역의 밤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LED 스크린을 통해서 투사되는 줄리앙 오피와 마그리트를 차용한 영상을 통해서 시민들은 거대도시 서울의 판타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울역 광장을 광장답게 만들어 준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광장의 역할이 점점 더 줄어드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인터넷 세상은 훨씬 더 넓디 넓은 광장을 펼쳐놓고 있지 않은가. 이제 수많은 네티즌들이 활동하는 무대인 아고라는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공간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상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대화방식으로 인해서 이제 오프라인 광장은 그 실효를 점점 상실해 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되면 될 수록 훨씬 더 강하게 실재공간에서 펼쳐지는 광장의 소통이 더 중요하게 평가받을 것이다. 우리의 신체를 온라인 상의 디지털 사이버 생명체로 전환하지 않는 한 우리는 광장에서 만나 대화하는 몸의 대화를 멈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에서의 예술을 다시 생각한다. 넓은 공간과 몇몇 시각예술 작품과 주변의 도로와 가로, 그리고 건축물에 둘러 쌓인 도시의 공간인 광장은 누군가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하여 공유하는 공간이다. 광장을 둘러싼 빌딩의 전광판을 바라보며 그곳이 소비사회의 욕망으로 가득 찬 거대도시의 중심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 오늘날의 광장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를 다시 생각해야한다. 광장에서 만난 우리가 예술을 매개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광장의 문화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한다.

이제는 한번쯤 이런 질문을 할 때가 되었다.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선 동상을 바라보면, 수백년전에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낸 이순신 장군이 떠오르는지 아니면, 군사정권의 정통성을 앞세우기 위해 세종대왕을 덕수궁으로 보내고 세종로에 이순신 장군을 세운 박정희 장군의 권력의지가 떠오르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2009년 이후부터는 저 뒤편에 세종대왕을 두고 여전히 거기 서 계신 이순신 장군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구한 민중의 영웅인지 아니면 6백년간이나 통치를 이어간 조선왕조의 수호대장인지를 말이다. 광화문 네 거리에서 장군과 임금과 궁궐에 이어 저 멀리 북악산을 바라보는 21세기 시민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볼 때가 되었다. 서울의 광장에서도 역사적 성찰과 예술적 소통의 의미와 맥락을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연녹색 안료로 폴리코트를 브론즈로 위장해야 했던 짝퉁 근대를 넘어서, 우리는 과연 서구의 민주주의가 이룩한 저 위엄있으면서도 유연성 있는, 고전과 동시대가 공존하는 광장의 문화정치에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인가?

김준기(미술비평)

*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 2010년 봄호 기고문.

2010/03/23 22:53 2010/03/23 22:53

장소 안의 미술과 장소 밖의 미술

critic & column | 2010/03/22 23:17


장소 안의 미술과 장소 밖의 미술

근대 이후 예술의 문제에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예술 생산의 독립성, 또는 예술가 주체의 자율성이다. 그것이야 말로 예술을 예술로 성립시키는 근간이다. 20세기 후반 이후에 등장한 공공미술이 공공성 개념을 강조하면 할수록 자율성의 문제가 더욱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공 장소에서 공적 기금으로 공공의 의제를 다루는 미술로서의 공공미술이 전근대적인 주문 생산과는 다른 방식의 예술 생산으로 성립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예술의 자율성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예술가 주체의 자율성을 지키면서도 공공성을 지지하는 예술 생산으로 성립할 수 있을까? 장소의 문제는 이러한 질문에 중요한 해답을 제공한다. 공공미술에 있어 재원과 의제의 문제와 더불어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 장소의 문제이다.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고정불변의 절대적 영원성을 발산하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 장소라는 개념은 매우 근본적인 차원에서 시각예술의 논리에 질문을 던진다. 특히 장소특정성(site-specific)이라는 이슈가 예술 생산의 목표와 절차, 방법 등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이래 장소의 문제는 공공미술의 근본적인 주제로 부각하고 있다. 특히 공공장소에 설치할 목적으로 제작하는 공공미술 작품은 일반적인 ‘작업실-전시장’ 작업과는 다른 특수한 국면에 놓인다. 장소는 안팎으로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한다. 장소 안의 미술과 장소 밖의 미술(in-situ art & ex-situ art)은 공공미술의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비되는 논쟁점을 생성한다. 전자는 장소의 규정 속에 놓이고, 후자는 장소로부터 이탈한 독자적인 논리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은 공공장소에서의 장소특수성과 조응하는 미술개념이다. 공공장소는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와 요구가 집결하는 공간이자 서로 다른 감성과 정서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공공장소는 특정한 미학적 가치가 지배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그 장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차이를 인정하는 공존의 미학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공공미술은 배제의 미학이 아니라 공존의 미학을 추구한다. 그런데 공공장소에서의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공공미술은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매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전근대 시대의 공공장소는 특정한 지배자가 독점하는 공간이었지만 근대 시대의 공공장소는 시민 다수가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전근대 시대의 공공미술은 권력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었지만, 근대시대의 공공미술은 예술 자체의 미학적 논리에 충실한 자율적 영역의 그것이었다.

모더니즘 미학의 지배적인 논리는 배제이다. 새로움의 이데올로기는 형식적 아방가르드를 양산했다. 그것은 독창적이며 독창적이어야 했다. 따라서 그것은 공존이나 상생의 미학이 아니라 타자와의 차별성만을 강조하는 배제의 미학이었다. 예술가의 독보적인 조형언어를 통해서 그들이 결과론적으로 배제한 것은 다른 예술가의 진부한 언어가 아니라 예술 수용자들이었다. 모더니즘 미학을 일방적으로 관철시켜온 20세기 공공미술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천재적인 가치를 가진 예술가의 언어가 공공장소를 지배하는 독보적인 언어를 구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근대 시기의 종교나 정치를 대신하는 광장의 지배자로 등극했다. 전근대 시대의 공공장소의 작품들은 지배자의 언어였다면 근대 시기의 공공미술은 예술가의 언어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 차 있는 예술적 소통의 공간이었다.

여기 모인 네 예술가들은 모더니즘 미학의 긴 그림자 끝자락에 서있다. 그들은 각자 나름의 시각언어를 구축하는 데 매진 해온 중진과 신진 작가들이다. 만약 이들의 조형언어가 공공장소와 만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박정선은 선재의 부드러운 곡선을 이용해서 공간을 확장하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그는 판재의 팽창하는 기운을 담고 있는 곡선을 통해서 공간을 유영하는 선과 면과 색의 요소로서 공간의 시각적 흐름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유리캐스팅 오브제에 빛을 투사하고 그 그림자를 포착한 이미지들을 다시 가공하여 동영상으로 재구성한 안종연의 애니메이션은 우주를 집약한 만다라의 판타지로 공공장소의 맥락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조용준은 여러 개의 원들을 다양하게 겹친 드로잉들로부터 입체를 얻어내고 그 입체의 색채를 다양화 한 조용준의 작업은 절재된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해석의 여지를 넓히고 있다. 육면체의 입방체를 평명화한 한송준의 기하학적 패널은 면과 면 사이로 드러나는 여백에 마음의 문제를 담고 있다.

이 전시는 그 절차와 방식, 그리고 근본적으로 예술가의 고유한 조형언어와 장소의 만남에 관한 질문이다. 전시의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네 예술가들의 차별성과 유사성, 개별과 군집, 독보와 협업 등 다양한 가치와 개념들은 예술(가)의 자율성과 공공성에 관한 새로운 체험을 주었다. 이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협업이다. 탈근대시대의 공공미술은 공존과 상생을 최대의 미덕으로 삼는다. 예술가의 지위와 역할을 작품이라는 물질형식의 생산자로서 뿐만 아니라 공공영역의 예술적 커뮤니케이션을 조직하는 매개자로 전환하고 있다. 매개자로서의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협업이다. 예술가들 사이의 협업뿐만이 아니라 예술가와 타 분야의 전문가들, 그리고 수용자 또는 사용자들과의 관계를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과 수용의 관계가 아닌 상호작용의 관계성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협업의 힘이다. 그것은 생산을 위한 과정일 뿐만 아니라 예술적 가치의 사용을 창조적인 문화소비로 잇는 확대재생산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 [in-situ & ex-situ] (델아트, 2010.3.25-4.00) 전시 서문.

2010/03/22 23:17 2010/03/22 23:17

[시장미술의 탄생] 리뷰 : 주문의 변동과 미술, 그리고 시장미술

critic & column | 2010/03/22 22:20


[시장미술의 탄생] 리뷰
주문의 변동과 미술, 그리고 시장미술

‘글로벌 아트마켓의 성장과 예술의 몰락’. 이 책의 표지에 담긴 시장미술 비판이다. 얼핏 보아 선동적인 수사 같아 보이는 이 언변 속에 사실은 저자가 바라보는 당대 시각예술에 관한 깊은 문제의식이 베어있다. 저자는 미술시장에 관한 그 많은 언설들을 단숨에 넘어서는 제도비평의 용어로서 ‘시장미술’이라는 말을 던졌다. 그것은 확연히 문제적이다. 그는 한국의 그 어떤 저서들도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미술시장을 다루고 있다.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시장은 시각예술의 생산과 매개와 소비를 구성하는 우리시대 최고의 가치이자 궁극의 목표이다. 시장체제 속에서 정교하게 얽혀있는 자본주의 메커니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비평가로서 그는 매우 과감하고 전향적으로 미술시장에 포획된 미술을 시장미술이라는 용어로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날카로운 비판의식보다 더 문제적인 대목이 있다. 미술시장이 탄생한 지 수백년이 지난 후에야 그 체제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미술이 탄생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중세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걷어낸 르네상스 예술이 세속주의(secularism) 작가로 불린 알베르티로부터 바로크 시대의 루벤스와 같은 당대 최고의 주문화가를 낳은 데에 이르기까지 미술시장은 이미 수백년 전부터 맹아적 형태로 발전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도 수백년 전부터 서울 광통교 인근에 (향이나 비단과 함께)그림을 파는 가게가 등장했으며, 궁정화가들의 그림이 시장에 나돌았는데, 김홍도와 정선과 같은 인기작가의 그림은 집한 채 값이었다고 한다. 구한말에 생긴 정두환서화포가 1930년대까지 성업을 했고, 해강 김규진은 고금서화관이라는 갤러리를 만들어 성업 하다가 평양에 기성서화관이라는 분점을 내기도 했다. 한성서화관은 도화서 출신의 안중식 조석진을 전속화가로 두기도 했다. 당대최고의 주문화가인 어용화사가 시장미술가인 화랑 전속화가로 전환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근대화에 뒤쳐진 한반도에서도 미술시장의 탄생은 전근대 또는 초기 근대 시대인 100년이 훨씬 넘은 일이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의 미술생산과 유통 체제가 본격화하거나 활성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장미술체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근대 이전의 미술,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 이전의 미술은 주문미술이었다. 시장경제를 주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주문미술의 시대를 넘어 시장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주문을 넘어서 자율적인 생산주체로서의 예술가 개념을 성립시킨 것은 신흥권력으로 떠오른 부르주아지의 ‘보이지 않는’ 주문체제, 즉 시장미술체제였다. 가령 인상주의 화가들이 파리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던 반면 뉴욕에서 환영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문화적 인식과 감성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그러한 차이를 반영한 것은 미술시장이었다. 뉴욕의 미술시장은 새로운 시대의 사유와 감성으로 새로운 미술을 선택했다. 주문생산으로부터 독립한 예술가들의 자율성은 근대를 일군 새로운 지식생산으로 크게 공헌했다. 미술시장은 근대적인 미술 체제를 견인한 핵심적인 장치이다. 모더니즘 미술의 역사는 미술시장의 역사 그 자체이다. 상투적인 관점에서 시장미술의 탄생을 이야기하려면, 미술시장의 태동과 발전 과정 속에서 초기와 당대를 비교 검토해야 할 것이다. 미술시장의 변화에 따라 예술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대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들여다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대목을 생략한 채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횡횡하고 있는 시장미술에 단도직입하여 ‘시장미술의 탄생’과 ‘예술의 몰락’을 언급하고 있다. 저자가 후기자본주의 시대인 동시대를 시장미술이 탄생한 시기라고 부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는 전지구화 시대의 아트마켓과 경매, 미디어 등 동시대의 다양한 지층들을 파헤치며 미술시장의 작동방식을 탐구한다. 이 가운데서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의 간접적인 주문이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주문으로 바뀌었으며, 예술의 자율성은 타락의 나락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에 도달한다. 저자는 자율성에 기반 한 예술가들이 20세기를 관통하며 이룩한 모더니즘의 성좌를 예술이라 인정하고 있다. 반면에 20세기 말 이후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아트마켓의 등장과 시장의 주문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시장미술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초기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시장을 통해서 보수적인 화단의 낡은 틀을 깨치고 새로운 시대의 예술을 쟁취한 모더니즘의 선구자들이 훌륭한 예술가로 미술사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반면,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시장에서 성가를 이루고 있는 예술가들은 필자의 용어대로 시장미술을 쏟아내는 타락한 예술가로 비판 받고 있다.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예술을 낳는다. 지금 당장 시장체제를 거부하거나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사회구성체는 변동할 것이며, 예술체제 또한 새로운 체제를 구축할 것이다. 그의 성실하고 진지한 진단과 비판은 섣부른 예견보다 훨씬 더 큰 신뢰를 가져다준다. 이미 예술체제의 변동을 읽어낼 수 있는 다양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술작품을 통해서 화폐가치의 확대재생산을 발견하려고 하는 보이는 손의 노골적인 주문을 넘어서 예술생산을 공동체와 공공, 생태, 도시, 소수자 등의 가치와 결부해 ‘새로운 주문’의 단계로 견인하고자 하는 저변의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저자의 당대비판이 미래에 관한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동시대 미술에 대한 우려가 깊으면 깊을수록 새로운 예술체제의 도래가 가까워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래에 대해 확언하지 않는다. 다만 동시대 예술생태의 다양한 지층들을 섬세하게 들춰 진단하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체제의 도래가 멀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따라서 이 책은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시장이 초래하는 노골적인 주문에 응대하는 시장미술을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체제의 도래가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고마운 책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아트프라이스 2010년 4월호 기고문 : 심상용 저, [시장미술의 탄생] 리뷰

2010/03/22 22:20 2010/03/22 22:20

김피디 늬우스 : 한큐협포럼 100320

critic & column | 2010/03/22 16:33


김피디 늬우스 : 한큐협포럼 100320

한국큐레이터협회(회장 박래경)는 3월27일에 아르코미술관 세미나실에서 한큐협월례포럼을 열었다. 이 행사는 매달 해외의 큐레이터를 초청하여 한국의 큐레이터들과 대화하는 자리로서 이달에는 일본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의 큐레이터 이가라시 리나를 초청하여 <문화인류학자로서의 큐레이터>라는 주제로 발제와 토론을 벌였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이가라시는 최근 한달 반가량 방글라데시에 체류하면서 현지의 미술계와 그 배경인 사회 전반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심층조사를 벌였는데, 그 과정과 결과를 소개함으로써 인류학자로서의 큐레이터의 위치와 방법론에 관한 토론장을 마련했다. 국내외 큐레이터들의 대화를 통해 공통 의제를 개발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이 행사는 지난 2월의 국립타이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차이 짜오이를 시작으로, 5월에 한스 D. 크리스트(슈트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 디렉터), 6월에 쿠로다 라이지(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7월에 조이스 판(싱가포르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등을 초청할 예정이다.

2010/03/22 16:33 2010/03/22 16:33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 최민화 심준섭

critic & column | 2010/03/22 14:54


최민화 : 靑春-Prologue
2010.3.10-3.30, 나무화랑

최민화의 청춘 이야기는 절망 속에서도 끊이지 않는 삶의 희망에 관한 방백이다. 흐릿하고 얇은 그의 그림 속에는 청춘의 동시대성이 담겨있다. 물감의 두께를 최소화는 얇은 붓질에 흐릿한 색채를 구사하는 최민화 특유의 그림에 동시대 청춘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는 ‘부랑’이나 ‘분홍’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텅비어있는 ‘청춘’의 공허함을 들춰낸다. 특히 인사동 거리로 오윤을 불어들이는 50대 화가 최민화에게 있어 청춘은 기억 너머 현실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심준섭 : Sound of Reaction

2010.3.4-3.21, 브레인팩토리

작가 자신을 괴롭히는 고질병인 이명현상을 가시적인 설치 작품으로 옮겨놓은 설치작업, ‘반응의 소리’에는 실재의 물소리와 재현된 물소리가 공존한다. 이른바 청각의 시각화이다. 그는 피스이씨 파이프를 연결해서 구조물을 만들고 그 메커니즘으로 실제의 물과 조작된 사운드를 흘려보냄으로써 실재와 가상을 공존하게 한다. 영상과 소리, 설치 등이 뒤섞인 복합매체 작업이다. 그것은 개인 신체의 문제로부터 사회 구조의 거대한 메커니즘을 은유하는 데에로 확장하는 예술적 소통이다.

2010/03/22 14:54 2010/03/22 14:54

동아시아의 평화공존을 여는 예술공론장

critic & column | 2010/03/1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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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평화공존을 여는 예술공론장

제국주의가 동아시아에 암흑의 역사를 드리우기 시작한 지 한 세기가 지났다. 한반도에서 경술국치가 벌어진 것이 1910년의 일이다. 그 후로부터 100년이 지난 2010, 일본인 콜렉터 이토 토요키치와 이토 타미코 부부가 한국의 부산시립미술관에 기탁 및 기증한 호우에이 콜렉션 베트남 현대미술 작품들이 시민들과 만난다. 호우에이라는 콜렉션 이름은 한자 ‘豊英(풍영)’의 일본식 발음이다. 자신들이 기탁 및 기증한 이 작품들이 풍요로운 공동번영의 새 시대를 여는 데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콜렉터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풍요와 번영의 뜻을 담고 있는 호우에이 콜렉션이라는 이름 속에 한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일본인 콜렉터가 베트남 현대미술 작품들을 한국의 공공미술관에 기탁 및 기증한 했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예술작품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역사와 현실을 되돌아보려는 큰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호우에이 콜렉션은 100년전 태평양과 동아시아를 식민지배와 전쟁의 광란으로 내몰았던 대동아공영이라는 구호의 아픈 상처를 한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으로 이어지는 예술 네트워크로 넘어서려는 동북아 평화공영의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 콜렉터 이토 부부는 다수의 베트남과 타이랜드 현대미술 소장품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일본의 오키나와박물관과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에 기탁했다. 이어서 지난 2009년에 한국의 부산시립미술관에도 375점의 작품을 기탁했으며, 올해 들어 이번 전시를 계기로 기탁작품 가운데 74점을 기증했다. 호우에이 콜렉션은 수묵채색화, 유화, 수채화, 판화, 드로잉, 옻칠그림, 풍속화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다. 이 전시 <호우에이 콜렉션 특선전 : 베트남 현대미술>은 부산시립미술관에 기탁 및 기증한 호우에이 콜렉션 가운데 대표작 작품 100점을 엄선하여 베트남 현대미술의 다양한 면면을 소개한다. 이 전시의 출품작 100점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선보이는데, 1부에서는 베트남 현대미술 작가 25인의 작품을 한두 점씩 소개하고, 2부에서는 그 가운데 10인의 작가의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1부가 폭넓게 베트남 현대미술 전반을 소개하고 있는 반면, 2부는 뚜쭈엔, 링치, 르우반신 등 유명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묶어서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한국과 베트남, 나아가 한국과 일본의 20세기 역사를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고자하는 콜렉터 이토 부부의 오랜 염원이 이번 전시를 계기로 실질적인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베트남과 한국의 관계는 매우 특수하다. 한국이 20세기 제국주의의 역사 속에서 식민지와 내전전쟁을 겪었듯이 베트남도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베트남 참전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양국의 역사를 넘어 치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장을 마련해준 장본인이 일본인 콜렉터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20세기 제국주의 역사로 인해 여전히 치유해야할 과제들을 안고 있으면서도 상호 이해의 폭과 평화공존의 당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번 전시가 일본인 콜렉터가 주선하는 한국과 베트남의 만남이라는 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베트남의 풍경과 일상, 사건, 역사 등을 담고 있는 100점의 예술작품들을 만나는 이번 전시는 평화와 공영의 시대를 여는 공론장이다. 이 전시의 출품작들을 통해서 20세기 베트남의 자연과 인간, 역사와 현실을 돌아보는 일은 베트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이며, 그러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21세기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다시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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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는 인간의 삶이 처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으로서의 외부환경을 회화적 표현으로 기록하고 해석하는 사유의 세계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어서 풍경화와 인물화는 사실의 재현을 넘어 세계를 사유하는 장으로서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베트남 전통 회화가 서구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 어떻게 변모해나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영역이 풍경화이다. 이번 전시의 다수를 이루는 풍경화들은 베트남의 자연과 인공, 역사와 사건들을 전달하는 중요한 그림들이다. 당남(Dang Nam)의 수묵담채 풍경작업은 베트남이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다. 딩룩(Dinh Luc)은 강렬한 선의 맛과 원색을 사용한 판화작업으로 베트남의 풍경을 담았다. 응웬띠옌쭝(Nguyen Tien Chung)은 수묵담채 작업들로 풍경과 인물을 남겼는데, 베트남의 전통회화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관접에서 주목할만한 그림들이다. 응웬반끄엉(Nguyen Van Cuong)은 목판에 채색 작업을 가미해서 수묵화 전통을 살린 베트남 판화 작업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이공의 흰옷, 아오자이의 판타지는 베트남 여성 인물화를 통해 다양한 면모로 나타난다. 그것은 상투적인 인식을 넘어 독창적인 미감을 일깨우며, 획일화한 편견을 넘어 다채로운 삶의 현실을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쯔엉빅리엔(Duon Bich Lien)의 여성 인물화는 수채와 유화, 파스텔화 등 다양한 매체에 걸쳐있다. 링지(Linh Chi)는 특유의 화법으로 베트남의 풍경과 여성인물화를 남겼다. 그는 수채와는 물론, 유채, 파스텔, 사인펜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서 베트남의 독특한 삶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소수민족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은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풍부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흰색의 아오자이를 입은 인물을 다룬 또리엔(To Lien)의 그림들은 베트남 여성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쯔엉흐엉밍(Duong Huong Minh)의 여성게릴라 그림은 아오자이가 아닌 군복을 입은 여성인물화로서 베트남 여성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을 뛰어넘는 그림이다.

20세기 세계사를 통틀어서 베트남만큼 전쟁의 상처가 깊은 나라도 드물다. 베트남현대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처절한 고통 속에서 독립과 통일을 이룬 나라이니만큼 현대미술 속에서 전쟁의 상황과 장면을 접하는 것은 그 역사를 헤아릴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레휘화(Le Huy Hoa)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성과 아이 또한 마찬가지인데,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글을 쓰고 있는 여성의 옆에는 총이 놓여있다. 독립과 통일을 위해 전쟁을 치룬 베트남 현대사 속에서 여성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그림이다. 그는 특유의 선과 색으로 베트남의 마을 풍경과 여성인물 작업을 남겼다. 레뚜안(Le Toan)은 소수민족을 방문한 군인들의 모습과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있는 게릴라 등의 그림을 통해서 베트남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을 전달한다. 콜라주 방식의 전쟁이미지를 담은 응웬반찌예(Nguyen Van Chien)도 있다. 응웬띠옌봉(Nguyen Tien Bong)은 유려한 필치로 풍경 그림들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서도 도소호이병원 그림은 전쟁당시에 그린 현장그림으로서 베트남 현대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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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출품작가들은 대부분 20세기 초반부터 후반까지 오랫동안 활동한 작가들이어서 그들의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풍경이나 인물 위주의 단촐한 구성을 넘어 상황과 장면을 담거나 역사나 일상의 면면을 담은 그림들을 통해서 20세기 베트남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그림들이다. 뚜쭈엔(Tu Duyen)은 강렬한 필치의 수묵담채 작업으로 베트남의 풍경과 역사, 일상 등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모필에서 나온 선의 맛에 다양한 색채를 가미한 채색목판 또한 거장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르우반신(Luu Van Sin)의 수채화 작품들은 정교하고도 풍부한 붓질과 색채로 풍경과 인물, 정물, 그리고 종교적 소재들까지 다루는 대가의 풍모를 가지고 있다. 응웬상(Nguyen Sang)은 고양이와 소 등 동물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응웬쯔엉린(Nguyen Truong Lin)은 옷칠공예의 전통을 현대미술에 접목한 옻칠그림 작품들을 통해서 베트남의 전통과 역사, 생활상 등을 보여준다. 응웬뜨응이엠(Nguyen Tu Nghiem)은 호랑이와 말, 인물 등의 소재들을 다루는데,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형태의 생략과 색상의 대비를 보여주는 화가이다.

서구 미술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국의 전통을 접목한 베트남 현대미술은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독특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풍경화와 인물화와 더불어 민속문화의 요소나 종교적 도상 등을 포괄하는 베트남 전통미술은 현대미술로의 계승과 혁신을 이루었다. 베트남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유럽미술의 재료와 기법을 흡수했다. 20세기 초반에 완숙한 기량을 표출한 새로운 회화작품을 남긴 베트남 현대미술은 전통미술의 회화전통은 물론 공예전통까지도 접목함으로써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수용을 자국의 새로운 미술문화로 연결시켰다. 미술의 논리를 넘어서 사회현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베트남 현대미술은 매우 소상하고 다채롭게 자국의 풍경과 역사, 현실과 일상을 다룸으로써 한 시대를 기록하고 성찰하며 생활정서와 이상향을 담은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남겼다. 수천년간 한자문화를 중심으로 문화권을 형성했던 동북아시아 지역이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역개념으로 경제적 교류와 문화적 공감대를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베트남 현대미술 작품들은 21세기 동북아시아 담론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한 자산이다. 가까운 이웃에 대한 해석과 이해의 지평을 넓히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여는 예술적 소통이 여기 우리 앞에 놓여있다.

김준기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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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北アジアの平和共存を導く芸術公論の場

 

20世紀の帝主義により、東アジアが暗の時代になってから一世紀が過ぎた。朝鮮半島で庚戌恥が起きたのが1910年のことである。それから100年が過ぎた2010年、日本のコレクタ伊藤豊吉多美子夫妻が「豊英コレクション(ホウエイコレクション)」を、韓の釜山市立美術館に寄託及び寄贈され、そしてそのベトナム現代美術作品と釜山市民が出う。ホウエイというコレクション名は、漢字の「豊英」の日本語の音である。夫妻が寄託及び寄贈された作品が、豊かな共同繁の新しい時代を開くことに寄するようにと願ってつけた名前である。コレクタは、コレクション名として、自分の名前ではなく豊饒と繁の意味を持つ豊英コレクションという名前を用い、それに韓と日本、そしてベトナムの史的な係を省みる、という意味をめた。日本のコレクタが、ベトナム現代美術作品を韓の公立美術館に寄託及び寄贈したことは一つの事件である。芸術作品を通して東北アジアの史と現を返り見ようとする重要な意味がめられているからだ。豊英コレクションは、100年前に太平洋と東アジアを植民地支配し、戦争の狂へと追いやった大東というスロガンがもたらした痛みを、韓と日本、そしてベトナムへとがる芸術ネットワクによって、り越えようとする北東アジアの平和共という新しいビジョンを持っているのである。

 

日本のコレクタ伊藤夫妻は、多のベトナムとタイの現代美術所品を、さらに体系的に究し、保存するために、日本の福岡アジア美術館と沖繩県立博物館美術館に寄託された。いて 2009年には、韓の釜山市立美術館にも375点の作品を寄託され、今年に入ってからは、今回の展覧会をきっかけとして、寄託作品の中から、74点を寄贈された。豊英コレクションには、水墨彩色油彩、水彩、版、ドロイング、漆、風俗など多なジャンルの作品がある。今回の展覧会<豊英コレクション特選展:ベトナム現代美術>は、釜山市立美術館に寄託及び寄贈された豊英コレクションのなかから代表作100点を選したもので、ベトナム現代美術の多な面を紹介する。本展の出品作100点を1部と2部に分け、1部ではベトナム現代美術の25作家の作品を、作家ごとに点ずつ紹介し、2部ではそのなかから10作家の作品を取り上げて紹介する。1部ではくベトナム現代美術を全般的に紹介し、2部ではTuDuyenLinhChiLuuVanSinなど有名な作家に焦点を絞ることによって、ベトナムの代表的な作家の作品世界を理解できるようにしている 。

とベトナム、ひいては韓と日本の20世紀の史を省みるきっかけを作ろうとするコレクタ伊藤夫妻の長年の念願が、本展を通して具体的にを結び始めた。ベトナムと韓係は非常に特殊である。韓20世紀の帝主義の史のなかで植民地と内戦経験したようにベトナムも同じような史を持っている。特に、韓国にはベトナム参戦という痛恨の史がある。本展には、このような両国史をり越え、関係の回復と平和を願うメッセジがめられている。それをもたらした人が、日本人のコレクタなのである。韓と日本の係は、20世紀の帝主義の史を負い、未だり越えなければ成らない課題を持っているが、同時に相互理解の幅をげ、平和共存をすすめている。本展が、日本人のコレクタが橋渡しをした韓とベトナムの出いであるという点を、考えてみる必要がある。20世紀のベトナムの風景と日常、事件、史などが描かれた100点の作品を紹介する本展は、平和と共の時代を開く公的な議論の場だ。なぜなら、本展の出品作品を通して、20世紀のベトナムの自然と人間、史と現を目にすることは、ベトナムにする理解の幅をげることであり、また、そうした深い理解を土台として、21世紀の東アジアの平和と共存を再び考える機会与えてくれるから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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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景は、人間の生の一番根本的な件としての外部の環境を絵画的な表現で記し、解する思惟の世界である。東アジア文化において風景と人物は、際の姿を再現するだけではなく、世界について思いを巡らせる場という長い史を持っている。つまり、ベトナム絵画が西美術の影響を受けながらどうやって貌していったのかが、よくわかるジャンルが風景画なのである。本展に多く出品されている風景は、ベトナムの自然と人工、史と事件を伝える重要な作品ある。DangNamの水墨淡彩の風景は、ベトナムが東北アジア文化統を持っていることを感じさせる。DinhLucは、烈な線と原色を使った版画作品でベトナムの風景をえる。NguyenTienChungは、水墨淡彩による風景と人物したが、ベトナムの絵画の現代的な承という点で注目に値する。NguyenVanCuongは、木版に彩色を施しており、水墨画の伝統をいかしたベトナム版画というを見せてくれる。 

サイゴンの白い衣装、幻想的なアオザイは、ベトナム女性の人物
を通して多な姿で表わされる。それはベトナムによくありがちな認識を越えて創的な美しさをえ、一化した偏見を越えて多な生の現を見せてくれる作品である。DuonBichLienの女性人物は水彩と油彩、パステルなど多なメディアで描かれている。LinhChiは、自の法でベトナムの風景と女性人物を描いた。彼は、水彩はもちろん、油彩、パステル、サインペンなど多なメディアを用いてベトナムに特な人の生の姿を描いた。特に少民族の女性達の姿を描いた作品は、文化人類的な点からも豊かな容をもつものである。白いアオザイを着ている人物を描いたToLienの作品は、ベトナム女性の典型的な美しさを見せてくれる。DuongHuongMinhの女性ゲリラのはアオザイではなく軍服を着た女性人物であり、ベトナム女性にする一般的な認識を越えるような作品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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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紀の世界史をすべて見てみても、ベトナムのように戦争の傷が深いも珍しい。ベトナムの現代史とはすなわち戦争史だと言えるほど悽絶な苦痛のなかから立と統一を果たした国である。そのため、現代美術には戦争況や場面が描かれ、ここから史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ことも重要な点である。LeHuyHoa作品に登場する女性と子供も同じである。幼に添え乳をしながら手紙を書いている女性のには、砲が置かれている。立と統一のために戦争をしたベトナム現代史のなかで女性の位置を象的に描き出している作品である。彼は特的な線と色でベトナムの村の風景と女性人物の作品をした。LeToanは少民族を訪問した軍人たちの姿や村人とともにいるゲリラなどのを通じてベトナム現代史の重要な場面をえている。コラジュ方式戦争イメジを盛ったNguyenVanChienもいる。NguyenTienBongは流麗な筆遣いで風景したが、そのなかにもドンホイ病院を描いた作品は、戦争当時に描いた現場の作品としてベトナム現代史をいきいきと伝えている 

本展の出品作家は、その多くが
20世紀前半から後半までの長いあいだ活動した作家たちであり、彼らの作品の素材と主題は多である。風景や人物を中心にした純な構成の作品だけではなく、況や場面を描きんだり、史や日の生活の子を取り込んだ作品を通して、20世紀のベトナムを深く覗いて見ることのできる作品である。TuDuyenは、烈な筆遣いの水墨淡彩の作品でベトナムの風景と史、日常などの多な面を見せてくれるし、毛筆から出た線に多な色彩を加味した彩色木版もこの巨匠のおもかげを十分にえてくれる。1950年代に遡ると、LuuVanSinの水彩の作品は、精巧かつ豊かな筆遣いと色彩で風景と人物、物、そして宗的な素材までを扱っており、大家の作家であることを感じさせる。NguyenSangは、猫や牛などの動物ので有名な家である。また、NguyenTruongLinは、漆工芸の統を現代美術に組み合わせた漆作品を通してベトナムの統と史、生活などを見せてくれる。NguyenTuNghiemは虎と馬、人物などの素材を扱うが、純で烈な省略された形態と色彩の比を見せてくれる家である。

西美術を受け入れながら自統を組み合わせたベトナム現代美術は、東アジア現代美術の史のなかでも非常に特である。風景や人物とともに民俗文化の要素と宗な要素などをも包括するベトナムの統美術は、現代美術へ承され、革新を成しとげた。ベトナムは比較的早い時期に西美術の素材と技法を吸した。20世紀前半には完成度の高い技術を習得し新しい絵画作品をしたベトナム現代美術は、統美術における絵画の伝統だけではなく、工芸の統をも取り入れることによって、つまり20世紀のモダニズム美術を、自の新しい美術文化に統合させることによって、受容したのである。 美術の論理を越えて社との係においても、ベトナム現代美術は非常に詳細にまた多に自の風景と史、現と日常を扱うことで一つの時代を記し、省察し、生活情と理想を描いた立派な芸術作品をした。長いあいだ漢字文化を中心にして文化を形成した東北アジア地域が、家と民族の境界を越えて新しい地域念で経済的な交流と文化的な共感をめようとする動きがある。ベトナム現代美術作品は、21世紀の東北アジアの話を具体化するにあたって非常に有用な資産である。近くの隣人にする認識と理解をげ、新しい時代精神を開く芸術的な話の場が、今ここに、私たちの前にある。

 

金俊起 (釜山市立美術館 芸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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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7 15:43 2010/03/17 15:43

문화인류학과 학예연구 :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03

artpd clip | 2010/03/15 18:12


행사명 :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03
주최 : 한국큐레이터협회
주제 : “문화인류학자로서의 큐레이터”
스페셜 게스트 : 이가라시 리나 (五十嵐理奈,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큐레이터)
장소 : 아르코미술관 세미나실
일시 : 2010년 3월 20일 토요일 오후3시-

한국큐레이터협회는 정기적인 토론 프로그램으로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월례행사로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을 엽합니다. 이 행사는 해외 큐레이터들을 스페셜 게스트로 초청해서 다양한 주제의 토론을 벌임으로써 국내외 큐레이터들 사이의 공통 의제를 개발하고 상호 이해증진과 교류 증진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큐레이터들의 집단 지성을 활성화하기 위한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03> 자리에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큐레이터 이가라시 리나를 초청하여 대화의 자리를 갖고자 합니다. “문화인류학자가 학예원이 될 때 : 방글라데시 미술계 조사로부터”라는 발제를 토대로 심도 깊은 토론을 벌이는 이 자리에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2010.2.20 동북아시아의 현대미술 네트워크 형성의 전망과 과제, 차이 짜오이(국립타이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2010.3.27 이가라시 리나(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큐레이터)
2010.5.15 한스 D. 크리스트(슈트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 디렉터)
2010.7.24 조이스 판(싱가포르현대미술관 큐레이터)

******************************************

* 다음은 발제자가 보내온 발제 아웃라인입니다.

문화인류학자가 학예연구원이 될 때 : 방글라데시 미술계의 조사로부터

이가라시 리나 五十嵐理奈(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두꺼운 묘사(thick description)"라고 하는 것은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아츠의 표현이며, 어떤 인간의 행동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며, 그 행동이나 발화(이야기 함)가 그 사회 속에 놓여있는 문맥까지 포함하여 설명하는 것을 가리킨다. 인류학이 이러한 인간과 사물을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와도 겹치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조사의 자세이다.
후쿠오카 미술관은 설립 당초(1999년, 전신 후쿠오카시미술관 1979년 설립)부터 현지에서의 조사를 중요시 해 왔다. 미술관의 전람회라고 하는 특정의 목적을 위해서 현지조사를 하는것도 있지만, 이번에 내가 행했던 것처럼 학예연구원 개인이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현지조사를 하기도 한다.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이 지금까지 가능한 한, 현지에서 작가가 속해있는 현장과 함께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려고 해왔던 태도가 아시아 미술계와의 네트워크를 가꾸며, 또한 미술업계 뿐만 아니라 기타 학문 영역까지 관심을 불러 일으켜 왔다.

본 보고에는 2010년 1월~2월 중순에 걸쳐서, 1개월 반 동안 방글라데시의 미술형성사 및 현대미술동향의 조사경험에 근거하여, 학예연구원이 조사자로서의 중요성과 '두꺼운 묘사'가 아닌,'두꺼운 조사(thick research/ fieldwork)'에 의거한 전람회나 미술관활동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 Geertz, Clifford. "Thick Description: Toward an Interpretive Theory of Culture". In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Selected Essays. (New York: Basic Books, 1973)


文化人類学者が学芸員になる時:バングラデシュ美術界の調査から」

五十嵐理奈(福岡アジア美術館)

 「厚い記述(thick description)」とは、文化人類学者のクリフォード・ギアーツの言葉で*、ある人間の行動だけを記述するのではなく、その行動や発話がその社会の中で置かれている文脈まで含めて説明することをさす。人類学のこうした人間や物事を理解していこうとする態度と重なる姿勢をもっているのが、福岡アジア美術館の調査のあり方である。

 福岡アジア美術館(以下、アジ美)は、その設立当初(1999年、前身の福岡市美術館は1979年設立)から、現地での調査を重要視してきた。美術館の展覧会という特定の目的のために現地調査をすることもあれば、今回私が行ったように学芸員個人が、比較的長期の現地調査を行うこともある。アジ美がこれまで、できうる限り現地におもむき、作家がおかれている現場とともに作家や作品を理解しようとしてきた姿勢が、アジアの美術界とのネットワークを培い、また美術業界だけではない他の学問領域からの関心を引きつけてきた。

 本報告では、2010年1月〜2月半ばにかけて、一ヶ月半行ったバングラデシュの美術形成史、および現代美術動向の調査の経験に基づき、学芸員がよき調査者であることの重要性と「厚い記述」ならぬ「厚い調査(thick research / fieldwork)」に基づいた展覧会や美術館活動の可能性について述べたい。

* Geertz, Clifford. "Thick Description: Toward an Interpretive Theory of Culture". In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 Selected Essays. (New York: Basic Books, 1973)

2010/03/15 18:12 2010/03/15 18:12

김구의 사진술

lense & world | 2010/03/1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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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의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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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세계를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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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들을 나란히 눞여 놓은 인스톨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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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커피, 종이 등으로 케이크를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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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들을 업고 거리에 나선 김구.

2010/03/13 18:44 2010/03/13 18:44

호우에이 콜렉션 특선전을 위한 텍스트들

critic & column | 2010/03/09 22:28


동아시아 예술 네트워크의 이정표
2009년 초겨울, 일본 군마현의 누바타시에 있는 콜렉터의 수장고를 방문해서 이토 부부가 오랫동안 소장해온 작품들을 처음 만났습니다. 낯설면서도 친근한 베트남 미술 작품들이 한국의 부산과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만남을 주선한 주체가 일본인 콜렉터라는 점을 생소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때, 이토 부부는 저희 일행들에게 일본과 한국의 불행과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호우에이 콜렉션의 한국행을 추진하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생소한 만남을 끈끈한 우정으로 바꾼 그 말씀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두 분의 말씀대로 이번 전시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문화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를 찍었습니다. 나아가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역사적 관계를 반추하는 뜻깊은 자리라는 점도 매우 소중한 의미를 만들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풍경과 인물과 역사를 통해서 한국의 시민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이웃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호우에이 콜렉션은 세 나라 사이의 예술적 소통을 매개한 동아시아 예술 네트워크의 이정표입니다.
이제 일본인 콜렉터 이토 토요키치와 이토 타미코는 한국의 부산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친구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네트워크라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문화적 차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딛고 오늘의 전시를 이루기까지 이토 부부는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소중한 작품들을 부산시립미술관에 맡겨 주시고 좋은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신 콜렉터 부부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호우에이 콜렉션의 진면목을 더욱 널리 알리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경계를 넘어 새로운 인연으로
지난 한 평생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만, 한국은 저희 부부에게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이었습니다. 이제 저희는 한국 사람들을 한없이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웃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한국의 부산시립미술관의 관계자들과 일하면서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 준 것이 베트남 현대미술 작품입니다. 예술은 시대와 장소의 차이를 넘어 새로운 만남을 주선합니다.
미술작품들은 저희에게 베트남과 일본의 만남을 주었듯이 여기 한국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과 베트남의 새로운 만남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역사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를 재발견하도록 가르침을 줍니다. 일본과 한국,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아픔이 있습니다. 그 아픔을 넘어 새로운 미래의 만남을 여는 데 저희가 보낸 예술작품들이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저희 부부가 수십년동안 간직해온 베트남 미술작품들을 가지고 베트남 현대미술전을 꾸려주신 조일상 관장님과 부산시립미술관의 여러 관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이 부산과 인연을 맺도록 소개해주신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 관계자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부산시립미술관을 통해서 호우에이 콜렉션을 만나실 부산시민 여러분들께서 베트남 현대미술 작품과 좋은 인연을 맺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0/03/09 22:28 2010/03/09 22:28

사회와 불화하는 액티비스트, 나규환

critic & column | 2010/03/05 20:30


사회와 불화하는 액티비스트, 나규환

예술가의 가치 지향과 창작 방향은 그의 처소와 처신을 규정한다. 나규환은 제도가 허락하는 공간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제가 집결하는 현장을 주요 무대로 활동해온 예술가이다. 그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여러 기획전에 출품함으로써 다양한 의제를 다루어왔을 뿐더러, 그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한 현장의 상황과 조건에 맞게 작업 방식을 개발함으로써 창작의 영역을 넓혔다.그는 미군기지 확장으로 쫒겨난 평택 대추리 마을과 태안 기름유출 사고 현장, 기륭전자 비정규직 농성현장, GM대우 비정규농성현장, 용산참사 현장 등의 사회적 의제가 돌출하는 첨예한 공론의 장에서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을 해왔다. 그는 예술가로서 세상의 문제를 바라보는 비판적 리얼리즘의 입장을 넘어, 예술가로서 세상에 뛰어드는 행동주의 예술가(activist artist)이다.

그는 현장에서 발견하는 다양한 오브제들을 즉흥적으로 조합하여 새로운 형상과 장면을 만드는가 하면, 목조 작업이나 소조 작업을 현장의 오브제들과 결합하기도 한다. 또한 일인시위 형식을 띈 퍼포먼스와 그래피티,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방식의 작업들을 통해서 장소의 특징뿐만 아니라 그 장소의 의제를 갈파하는 의제 특정적 예술(issue specific art)을 해왔다. 그는 예술의 숙명을 사회와의 불화로 설정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의 면면을 성찰하는 관찰자의 자세와 그 너머 첨예한 의제의 현장에 뛰어드는 참여자의 태도를 가진 그는 제도 예술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공론장을 만드는 자율적 주체로서의 예술가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 GIM Jungi (art critic)

* 상상마당 서교60 작가 추천사

2010/03/05 20:30 2010/03/0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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