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예술과 문화정치 :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critic & column | 2010/03/23 22:53
광장의 예술과 문화정치 :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가로변의 예술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예술이라면, 광장의 예술은 지나가는 사람들은 물론 모이는 사람들과 함께 마음과 몸을 나눔으로써 완성하는 예술이다. 광장의 예술은 그래서 그 어떤 바깥미술보다도 훨씬 더 깊고 넓게 우리의 사유와 감성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의식과 정서를 직조하는 공론의 장이다. 따라서 광장은 공공 장소(public site)일 뿐만 아니라 공공 영역(public sphere)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이 보다 분명히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이 살아있는 공론장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시민의 합의 없이 국가가 직조해놓은 광장의 일방적인 지배를 받아왔다. 권력은 항상 광장을 통해서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거나 지배권력을 강화하는 문화정치의 장을 열었다. 광장의 커뮤니케이션은 지배자의 권력의지가 작동하는 공권력의 공간이지만, 피지배자들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집결하여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는 공공영역의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글은 오늘날 광장의 문화정치가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광장의 문화정치를 위한 전망의 단서를 찾아보기 위해서 서울의 광화문에서 서울역에 이르는 광장 공간들을 들여다 보려고 한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 맥락을 살펴보면 시민은 광장이라는 공론장을 새로운 합의를 위한 논의와 실천의 장으로 만들어왔다. 가령 서울역 광장을 놓고 시민과 공권력이 격렬하게 충돌하거나 아니면 평화롭게 공존했던 사건을 상개해보자. 박영균의 비디오 클립 <대한민국>(2002)은 1987년 유월항쟁의 무대였던 시청앞 광장과 2002년 월드컵 당시의 시청앞 광장을 교차편집한 작업이다. 흰색 물결을 이룬 유월항쟁의 모토는 민주화였고, 붉은 색 물결을 이룬 월드컵의 이슈는 광장의 해방이었다. 두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를 한 장의 페인팅에 담은 <노랑건물이 보이는 풍경>은 붉은 색으로 뒤덮인 시청앞 광장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넥타이를 맨 김대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감각적인 색채와 날렵한 붓질로 2002년 월드컵 당시의 광장을 바라보는 80년대 세대의 심경을 담은 이 작품은, 80년대와 2000년대의 간극을 포착하고 있다. 광장을 가득 채운 주체들의 욕망이 상호 충돌하거나 비껴나는 이유는 당연히 광장을 둘러싼 문화정치의 차이에서 드러난다. 물론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일과 스포츠마케팅에 광분하는 일 사이에는 해방, 집단 등의 키워드들이 공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박영균의 비디오 클립과 페인팅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광장의 정치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시민사회의 발언을 억누르려는 공권력이 되었든, 민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가 되었든,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의 충실한 소비자 대중이 되었든 간에 광장을 이해하는 개별 주체들의 욕망은 광장을 소통공간으로 이해하고 그 공간을 통해서 자신들의 이애화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광장은 공동체의 합의를 공표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민주적 합의 수준이 일천한 사회에서는 권력의 일방적인 의지가 광장을 지배한다. 민주적 합의 수준이 훌륭한 사회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의지가 작동하는 장소가 광장이다. 광장의 정치에는 유형무형의 예술적 소통이 존재한다. 이들 광장의 예술들은 물론 권력의 의지를 반영하는 차원에서의 공공성을 표방한다. 문제는 누구의 권력의지이며 어떤 절차를 거친 합의인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전근대 시기의 공공성을 표방한 광장의 예술은 주로 모뉴먼트의 그것이었다. 한 도시의 공동체를 지배하는 영웅의 조상을 세우거나 권력의 건위를 세우기 위한 조형물을 세우는 것이 대표적인 전근대 시대의 공공미술이었다.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조형물이나 설치물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유럽의 도시가 교회 건물을 중심으로 광장을 조성하고 아시아 도시들이 사찰 중심에 탑을 세우고 주변에 마당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국의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는 네 개의 좌대가 있다. 그 가운데 세 개에는 19세기 식의 국왕이나 전쟁 영웅 기념상이 있다. 나머지 하나도 같은 방식으로 윌리엄 4세의 조상을 세우려다 실패했다. 170년이 지난 지금, 비어있는 좌대는 살아있는 조각 작품들을 통해서 훌륭한 동시대의 예술 공론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 좌대에서는 여러 작가들이 릴레이 식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설치하거나 퍼포먼스를 벌인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빈 좌대를 이용해서 쟁쟁한 예술가들이 동시대의 예술적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 사뭇 매력적인 예술적 소통의 장이 아닐 수 없다. 수백년간 광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역사를 축적해온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영웅 조상을 세워 자신들의 커뮤니티가 걸어온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일은 물론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고 소통할 수 있다. 오랜 민주주의 실험을 거친 런던의 광장에서 만나는 미술은 브론즈 대신에 폴리코트로 조형물을 만들어 분수대 위에 얹어 놓고 브론즈를 모방한 연녹색을 발라 오래된 작품인냥 위장하려 드는 서울의 미술과 아주 많이 다르다.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대학 앞 광장은 히틀러가 군중집회를 열어 대중연설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곳에서는 유태인 교수들이 지은 저작들을 모아서 불태운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공공미술 작품을 공모했는데, 슈트트가르트대학 교수로 있었던 이스라엘 작가 미하 울만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얻어 설치되었다. 그의 작품은 불타는 책의 형상이 아니라 지하의 빈 서고이다. 광장 한 가운데 강화유리로 지하의 빈 서고를 바라보도록 만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책꽂이. 그것이 전부다. 광장의 예술은 그렇게 절제된 언어의 낮은 공공미술일 수 있다. 동베를린 지역의 옛 동독 광장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 동상을 세울 당시 국가적 영웅이었을 두 인물의 조상을 좌대 없이 바닥에 세웠다는 것이다. 누구나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이 작품은 독일 사람들이 얼마나 낮은 공공미술로 광장의 문화정치를 펼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낮게 깔려 시민들과 가까이 만나는 공공미술 작품이 있는 베를린에도 브란덴부르그문과 같은 기념비적인 수직상승의 공공미술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이에 비해 서울의 광장과 예술은 어떠한가? 서울의 대표광장인 광화문 광장과 서울광장 ,그리고 서울역광장 등을 떠올리면 우리의 광장의 문화정치가 얼마나 진부한 수준인지를 알 수 있다. 23전 23승, 불패의 신화를 가진 전쟁 영웅 이순신 장군의 조상이 광화문에 자리 잡은 게 박정희 정권 시절 1968년의 일이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김경승 작 세종대왕 동상은 덕수궁 경내에 설치되었다. 40년이 흐른 후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고 세종로에 세종대왕 조상을 모시는 큰 프로젝트를 벌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40년 전의 방식과 거의 차별성이 없는 구태의연한 것이었다. 물론 새로 만든 세종대왕상은 완벽한 소조 기술을 동원한 최고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시대 최고의 구상조각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김영원의 작품이니 그 이상 더 완벽한 조형성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부드러움 가운데 카리스마를 내뿜는 성군의 이미지가 그의 자세나 표정에 잘 담긴 훌륭한 조각이다. 그러나 그 조각의 좌대나 배치 방식, 그리고 그 주변의 어수선한 동선 등에 있어서 구태가 의연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광화문 광장을 더욱 더 혼란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 행사들이다. 한 국가의 심장부로서의 상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각종 행사들로 부산하게 돌아가는 광장을 찾는 시민들은 과면 무엇을 생각하며 어느 정도의 문화적 수준으로 자신들의 사유와 감성을 가늠하겠는가?
심각한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광장 가운데의 지하공간에 있는 해치광장이다. 광화문 바로 앞에 조선시대에 만든 탁월한 감각의 해치가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서울시의 상징적인 조형물로서도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디자인 서울의 이름으로 유포하려는 성급한 마음에 고만고만한 크기의 여러 마리 해치를 좌대위에 올망졸망 올려놓은 전시 광경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공공적인 시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이렇게 광장에 펼쳐놓고 물량공세를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광범위한 토론을 거쳐서 시민사회의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공공적인 예술적 소통인데, 그러한 문화민주주의적 절차나 방법론은 찾아볼 수가 없다. 광장 전체의 동선도 그렇다. 거대한 중앙분리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이 자자하다. 그것을 보완하려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재구성 논의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광화문 광장 프로젝트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광장의 문화정치는 철저히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적 합의를 상실한 주입식 문화정치는 곤란하다. 광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려는 발상은 민주주의 일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광장은 만인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마당은 공유와 공존의 장이지 소유와 배제의 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화문 네거리를 건너 청계점 시점부에 다다르면 몇 년 전의 악몽이 다시 떠오른다. 세계적인 명망을 가진 작가의 작품 모시기 프로젝트로 밀어부친 <스프링>이 버티고 있다. 팝아트의 거장이라 불리는 클래스 올덴버그의 골뱅이 탑은 비좁은 도시 건축물들 사이에 또 하나의 수직상승 구조물을 보탰을 뿐이다.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유명작가의 값비싼 작품을 기념비적인 토목공사 현장에 세우겠다는 의지 하나로 밀어부친 결과 21세기에 세워진 20세기의 진부한 공공미술로서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진부한 명물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세계 여러 도시를 다니며 올덴버그의 진면목을 접해본 이들은 청계천의 골뱅이 탑에 대해 조롱 섞인 비판을 숨기지 않는다. 무엇이 이런 부끄러움을 만들었는가? 일방주의 문화정치 때문이다. 광장의 소통은 민주적인 합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청계광장 조형물은 시민단체와 전문가집단의 의견을 배제한 밀어붙이기 행정의 전형이다. 시민의 참여가 없는 광장은 생동감을 상실하거나 시민을 우민화하는 일방소통의 공간으로 전락한다.
서울광장의 상황은 더욱 더 답답하다. 높은 빌딩들로 둘러쌓인 주변부 환경하며 차량들로 둘러쌓여 접근성이 떨어지는 서울광장은 살아있는 광장이라기보다는 박제화한 구경거리 같아 보인다. 다행인 것은 이 곳에 기념비적인 조형물을 우뚝 세워놓는 일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광장의 생명은 그 공터를 메우는 사람들의 소통이다. 광장을 통해서 부대끼고 말을 나누는 과정에서 뜻을 현실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철저하게 차단된 채 싸늘한 겨울을 지나고 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대문을 만난다. 광장을 조성할 여유도 없이 빼곡한 그곳은 화마의 참극을 맞은 후 복원공사중이다. 이어지는 큰 공간이 서울역 광장이다. 서울역 광장은 그 상징성에 비해 지금은 광장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도로와 나무에 의해 광장으로서의 규모나 면모를 잃었다. 다만 그리고는 이어서 한강으로 내달리는 대로변에서 우리는 광장이라 할만한 광장을 만날 수 없다. 다만 옛 대우빌딩, 지금의 서울스퀘어 전면을 뒤덮은 LED 파사드가 서울역의 밤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LED 스크린을 통해서 투사되는 줄리앙 오피와 마그리트를 차용한 영상을 통해서 시민들은 거대도시 서울의 판타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서울역 광장을 광장답게 만들어 준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광장의 역할이 점점 더 줄어드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인터넷 세상은 훨씬 더 넓디 넓은 광장을 펼쳐놓고 있지 않은가. 이제 수많은 네티즌들이 활동하는 무대인 아고라는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공간의 이름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상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대화방식으로 인해서 이제 오프라인 광장은 그 실효를 점점 상실해 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되면 될 수록 훨씬 더 강하게 실재공간에서 펼쳐지는 광장의 소통이 더 중요하게 평가받을 것이다. 우리의 신체를 온라인 상의 디지털 사이버 생명체로 전환하지 않는 한 우리는 광장에서 만나 대화하는 몸의 대화를 멈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에서의 예술을 다시 생각한다. 넓은 공간과 몇몇 시각예술 작품과 주변의 도로와 가로, 그리고 건축물에 둘러 쌓인 도시의 공간인 광장은 누군가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하여 공유하는 공간이다. 광장을 둘러싼 빌딩의 전광판을 바라보며 그곳이 소비사회의 욕망으로 가득 찬 거대도시의 중심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이외에 오늘날의 광장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를 다시 생각해야한다. 광장에서 만난 우리가 예술을 매개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광장의 문화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한다.
이제는 한번쯤 이런 질문을 할 때가 되었다.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선 동상을 바라보면, 수백년전에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낸 이순신 장군이 떠오르는지 아니면, 군사정권의 정통성을 앞세우기 위해 세종대왕을 덕수궁으로 보내고 세종로에 이순신 장군을 세운 박정희 장군의 권력의지가 떠오르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2009년 이후부터는 저 뒤편에 세종대왕을 두고 여전히 거기 서 계신 이순신 장군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구한 민중의 영웅인지 아니면 6백년간이나 통치를 이어간 조선왕조의 수호대장인지를 말이다. 광화문 네 거리에서 장군과 임금과 궁궐에 이어 저 멀리 북악산을 바라보는 21세기 시민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볼 때가 되었다. 서울의 광장에서도 역사적 성찰과 예술적 소통의 의미와 맥락을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연녹색 안료로 폴리코트를 브론즈로 위장해야 했던 짝퉁 근대를 넘어서, 우리는 과연 서구의 민주주의가 이룩한 저 위엄있으면서도 유연성 있는, 고전과 동시대가 공존하는 광장의 문화정치에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인가?
김준기(미술비평)
*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 2010년 봄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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