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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동백 - 이제하, 조영남, 김영호

songs | 2010/02/27 19:31



모란동백

작사, 작곡 : 이제하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꾹이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퍼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해도
또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아가씨
꿈속에 웃고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벌에
외로히 외로히 잠든다해도
또한번 동백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한번 모란이 필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이 노래, 모란동백.
모란과 동백처럼 명료함과 처연함을 넘어서는 꽃이 또 있을까?
토요일 오후. 꽃피는 동백섬을 한바퀴 돌다가
신옥진 선생님이 들려주었던 이 노래가 떠올랐다.

같은 노래라도 누가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정말 다르다.
'떠돌다'를 '뜨돌다'로 발음하는 이제하 버전의 발음에 유의하시길... ^^


* 이 노래의 작사 작곡가인 소설가 이제하 버전 노래 듣기
=>
http://www.meari174.net/meari/zboard.php?id=board2&no=22964

* 프로 카수 조영남 버전 노래 듣기
=> http://blog.daum.net/manrimuoun3638/8482230
=> http://blog.naver.com/dlatjdgh5984?Redirect=Log&logNo=40095278848&vid=0


* 아마추어 가수 김영호 버전 노래 듣기
=>
http://cafe.naver.com/frcamp.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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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7 19:31 2010/02/27 19:31

공공미술 개혁 입법 논의에 관한 리포트

critic & column | 2010/02/25 00:18


공공미술 개혁 입법 논의에 관한 리포트

제도라는 사회적 합의는 인식이나 관행에 후행한다. 한국사회는 1980년대 후반 이래 건축물미술장식품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지난 20여년간 실행해 왔다. 도시미관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과 예술가들의 창작을 지원한다는 취지 아래 유지해온 이 제도가 이제 대대적인 변화의 기로에 섰다. 사실 이 제도에 대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안팎의 목소리는 2000년대 접어들면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 변화를 개혁 드라이브로 실행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야했다. 변화에 관한 열망은 법제도의 정비를 통해서 실효를 발휘한다. 몇 년 전 이 제도와 관련하여 개혁입법을 만들고 국회에서 논의를 거쳤으나 계류 상태로 머물다가 세월만 흘려보내고 말았지만 공공미술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은 이미 대세를 이루었다. 문제는 그것을 법제도의 개정과 시행에까지 이르도록 사회적 합의로 구체화 하는 실질적인 개혁의 구상과 실천력이다. 지금 공공미술 제도개선을 위한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이다.

조만간 공공미술 제도개선을 위한 법 개정이 구체적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자료조사와 연구용역 등을 거쳐 새로운 법안을 손질하고 있다. 논의 중인 개정안은 몇 년 전의 논의 수준과 유사하다. 가장 큰 의미는 공공미술 개념을 도입하는 데 있다. 건축물미술장식품이라는 용어를 공공미술작품으로 대체하는 일이다. 기존의 개념에 따르면 미술작품은 건축물의 환경을 시각적으로 환기하는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장식품이었다. 물론 미술작품이 건축물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랜드마크 기능을 한다거나 건축물과 조화를 이뤄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천편일률적인 장식품 개념이 무개념 장식품들을 양산함으로써 유의미한 예술적 소통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다. 그것은 시각예술의 존재 기반을 스스로 배반한 20세기 모더니즘 예술의 실패로 귀착했다. 미학적 파산에 이른 공공공해물이라는 안팎의 비판은 공공미술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규정을 달리하도록 만들었다. 이번 법개정의 가장 큰 의미는 공공미술개념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선택적 기금제이다. 그동안 이 제도는 건축비용의 0.7%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건축물을 장식하는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이른바 퍼센트법에 의존해왔다. 개정안도 여전히 건축주가 비용을 출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존 법안과의 차이점은 기금 출연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건축주가 건물 앞에 작품을 설치하는 대신 일정정도의 금액을 공공미술 기금으로 출연하는 것이다. 기존의 0.7% 규정을 기금으로 출연하면 0.5%로 낮추는 방법으로 기금출연을 유도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요율을 낮춰서 간접적인 세제혜택을 부여함으로써 기금 출연 비율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 작품 설치와 기금 출연 사이의 요율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아직 더 논의를 해야하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공공미술 시장 규모의 축소를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을 공공성에 입각한 예술과 사회의 접점 형성이 아니라 이윤창출을 위한 채널로 생각하는 시장주의적 시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는 공공미술 기금관리 주체의 문제이다. 몇 년 전의 거센 제도 개혁 반대 논의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대목이다. 당시의 반대 논리 가운데 하나가 공공미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러한 논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어서 공공미술 기금을 관리하게 한다는 계획은 이번 논의에서 빠졌다. 대신에 예술위원회에서 공공미술 기금을 관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기금 관리를 위해 별도의 조직을 만들 경우, 권력의 독점문제, 조직 관리의 효율성 문제, 지역별 위원회 구성의 인적 한계 등 여러 문제들을 지적 받았던 이 사항은 예술위원회의 기금관리로 잠정 합의를 이룬 상태이다. 이 경우 불필요한 논란 없이도 기금을 관리 운용할 수 있고, 프로세스 아트와 같은 새로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여지도 넓어져 실질적인 제도개혁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넓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부문의 공공미술도 여전히 난제이다. 예술의 공공성이냐 개인의 사유재산권이냐 하는 해묵은 문제도 있다. 건축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을 가진 몇몇 주체는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측면에서 공공미술제도의 도입과 실행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간 1천억을 밑도는 공공미술 시장을 두고 이렇게 논란이 큰 것은 그만큼 제도 실행에 관련한 주체가 다양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문제는 공공기제로서의 공공미술제도를 놓고 어떤 방식으로 합의를 도출하느냐 하는 데 있다. 사실상의 민간 영역인 민간건축을 놓고 공공성과 사유재산권 논의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귀결일 수 있다. 공공미술의 핵심은 민간건축부문이 아니라 공공건축부문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경우 0.7%의 요율을 1%로 상향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아쉬운 것은 공공건축 부문의 규정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학교와 병원 등을 비롯한 공공건축 부문이 공공미술을 실행하는 핵심 시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공공부문의 제도시행의 대상을 좀더 명확하게 규정해야 할 것이다.

남은 문제들도 많다. 공공미술 기획대행자 등록 의무화 조항이 위헌소지를 지적받아 개정안에서 빠진 점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개인이나 단체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인데, 그 정황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만성적인 부정과 비리가 횡횡하는 관행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수수료율을 규정하는 논의도 빠졌다. 시장 자율성에 맡길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기존의 이른바 꺾기 관행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브로커들의 터무니없는 브로킹을 막을 수 없다면 제도 개혁은 하나마나이다. 절차적 투명성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법개정은 무용지물이다. 법 개정 후에 시행령을 만들어서 섬세하게 세부 지침을 만드는 일들이 많이 남았다. 몇 년 전의 개혁 논의가 무산된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곤 한다. 그 시절에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던가! 좀 더 세월이 필요한 일이었던가! 새로운 합의 도출이란 얼마나 지난한 일이던가! 이제라도 하나씩 쟁점들을 챙기고 중론을 모아서 좋은 제도와 관행을 만들도록 안팎의 지혜를 모을 때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월간미술 2010년 3월호 기고문

2010/02/25 00:18 2010/02/25 00:18

새들이 겨울 창밖에서 기다리네 - 브레히트

artpd clip | 2010/02/24 15:39


새들이 겨울 창밖에서 기다리네

브레히트

1
나는 참새란다.
얘들아, 먹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작년에 나는 채소밭에 까마귀가 내려앉을 때마다
짹짹거리며 너희들에게 알려 주었지.
조금만 도와다오.
 참새야, 이리로 오너라.
 참새야, 여기 네가 먹을 낟알이 있다.
 좋은 일을 해주어서 참으로 고맙다!

2
나는 청딱다구리란다.
얘들아, 먹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여름 내내 나무를 쪼아대며 나는
모든 해충들을 없애 버렸지.
조금만 도와다오
 청딱다구리야, 이리로 오너라.
 청딱다구리야, 여기 네가 먹을 벌레가 있다.
 좋은 일을 해주어서 참으로 고맙다!

3
나는 지빠귀란다.
얘들아, 먹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여름동안 한결같이 이웃집 정원에서
새벽녘에 노래부른 것이 바로 나였단다.
조금만 도와다오
 지빠귀야, 이리로 오너라.
 지빠귀야, 여기 네가 먹을 낟알이 있다.
 좋은 일을 해주어서 참으로 고맙다!

2010/02/24 15:39 2010/02/24 15:39

KorCA Forum 1002 : The Art network of North-east Asia, with TSAI Chaoy

lense & world | 2010/02/2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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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CA Forum 1002 : The Art network of North-east Asia, with TSAI Chaoy
2010/02/22 18:04 2010/02/22 18:04

대안공간의 대안성은 어디에 있을까

critic & column | 2010/02/21 11:28


대안공간의 대안은 어디에 있을까

대안공간들이 10년의 실험을 거쳐 한국 시각예술계의 근간을 이루는 풀뿌리공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안공간들이 전국적으로 고루 자리잡으면서 문화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어가는 전환의 시기가 도래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예술창작 및 발표공간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 시각예술창작 및 전시공간 지원사업 정기공모 심의결과를 발표했다. 5억의 예산으로 16개의 대안공간을 지원했던 기존의 사업 틀이 9억원으로 대안공간 18개, 사립미술관 13개 공간을 지원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대안공간의 명단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10년의 역사를 넘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10여 년 전부터 대안공간 활성화를 주도했던 공간들이 여전히 좋은 공간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각 공간의 차별화를 위해 변화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각 지역의 거점 도시들을 중심으로 한 대안공간의 활동이 도시의 예술적 활동과 더불어 도시 전체의 문화적 맥락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어서 대안공간 활동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몇 몇 개의 공간은 활동의 방식이나 결과가 다소간 열악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지역 거점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위해서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곳이어서 향후 대안공간이 전국적으로 고루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서울의 대안공간루프, 대안공간풀, 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 부산의 대안공간반디 등과 같은 대표적인 대안공간들은 지난 10년의 역사를 통해서 젊은 작가들을 제도권으로 올려놓는 매개 역할을 충분히 해냈을 뿐더러 여전히 미술생태의 한 축을 형성하는 중심적인 공간들이다. 여기에 대안영상문화발전소아이공, 아트스페이스휴, 갤러리팩토리, 브레인팩토리, 갤러리정미소 등의 후발 대안공간들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대전의 반지하와 대구의 대안공간스페이스가창 같은 경우 아직 이렇다 할 활동이 두드려져 보이지는 않는다. 때로는 열악하다거나 상투적이라는 평가를 받기까지 하지만, 지역도시의 대안공간으로서의 성장가능성을 염두에 지켜보아야 할 곳으로 보인다.

몇몇 공간들은 한정적인 작가군들을 위한 폐쇄적인 커뮤니티 공간으로서만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갖기도 한다. 물론 한 공간이 독창적인 색채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가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포인트가 어긋난 비판으로 보인다. 다만 그러저러한 생각이나 태도를 가진 대안공간이 폐쇄적인 제도미술권의 권력중심에만 관심을 가졌을 때의 위험성에 관해서는 숙고해볼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미 권력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대안성을 이야기하기란, 그것도 제도 안에서의 대안적인 지위를 획득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술위의 지원대상에 진입한 신규 선정 공간들에 관한 관심도 크다. 서울과 안산, 수원, 진안 등에서 대안공간으로서의 정착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온 공간들이다. 서울의 팀프리뷰와 수원의 대안공간눈은 젊은 작가들 또는 경기도 지역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목표를 두고 꾸준히 활동해왔다. 진안의 계남정미소를 오래된 정미소를 이용한 커뮤니티스페이스로서 지역공동체와 동행하는 대안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안산의 리트머스 또한 이주노동자들의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포함해서 체계적인 대안적 예술행동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도 아직 예술위 지원대상은 아니지만 충분히 자질을 인정받고 있는 많은 공간이 있다.

안양의 대안예술공간스톤앤워터, 부산의 오픈스페이스배, 인천의 스페이스빔, 안산의 커뮤니티스페이스리트머스 등은 대안공간의 대안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기성의 미술제도가 허락하는 단선적인 활동방식을 넘어서서 새로운 대안으로서 행동주의예술을 펼치고 있다. 대안공간 뿐만 아니라 다원예술매개공간들도 주목해볼만 하다. 광주의 대인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매개공간미나리, 부산의 부산대앞을 거점으로 독립문화활동을 하고 있는 독립예술공간아지트, 그리고 청주의 복합문화체험장 하이브를 거점으로 하는 다원예술매개공간톡톡 등도 장르혼융과 복합장르실험을 벌이고 있는 좋은 거점공간들이다. 바야흐로 대안공간의 대안성이 지역성, 공동체성, 예술행동 등의 화두와 만나 상승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2010/02/21 11:28 2010/02/21 11:28

정광식, 이광기

critic & column | 2010/02/21 09:34


정광식
2.11-2.17, 인사아트센터

물질의 규정을 넘어서는 일은 새로운 감성을 개발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석 판재를 그라인더로 갈아서 반추상의 부조 풍경을 만들어온 정광식의 작품이 완숙한 변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의 조각은 무수히 교차되는 선들은 돌판에 새긴 선 그 자체로서 회화성을 획득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산이나, 바다, 그리고 도시의 풍경으로 확산함으로써 조각의 회화성이라는 감성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광기
2.19-3.5, 대안공간반디

20만원의 현금을 5백원짜리로 바꿔서 인형뽑기놀이에 소진하는 ‘인풋 아웃풋’의 블랙유머. 엄마의 한탄과 아이의 원망이 교차하는 한국의 현실은 ‘내가 니를 어찌 키웠는데’와 ‘나는 엄마에게 속았어요’라는 상반된 언어로 만난다. 그는 이 모순을 두 가지의 속이 빈 책으로 만들어 출판했다. 무심하게 흘려버리는 삶 속에서 들어있는 모순을 캐내는 이광기의 일상비판은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 [서울아트가이드] 미술평론가가 평가한 2월의 전시, 기고문

2010/02/21 09:34 2010/02/21 09:34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 - Ver.1

artpd clip | 2010/02/16 18:12


큐레이터 집단지성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 - Ver.1

행사명 :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 - Ver.1
주최 : 한국큐레이터협회
주제 : 동북아시아의 현대미술 네트워크 형성의 전망과 과제
스페셜 게스트 : 차이 짜오이(국립타이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장소 : 성곡미술관 세미나실
일시 : 2010년 2월 20일 토요일 오후3시-

한국큐레이터협회는 정기적인 토론 프로그램으로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월례행사로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을 시작합니다. 이 행사는 해외 큐레이터들을 스페셜 게스트로 초청해서 다양한 주제의 토론을 벌임으로써 국내외 큐레이터들 사이의 공통 의제를 개발하고 상호 이해증진과 교류 증진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큐레이터들의 집단 지성을 활성화하기 위한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 첫 번째 자리에 국립타이완미술관의 학예연구실장인 차이 짜오이를 스페셜 게스트로 초청하여 대화의 자리를 갖고자 합니다. 동북아시아의 네트워크를 주제로 한 차이 짜오이의 발제를 토대로 심도 깊은 토론을 벌이는 이 자리에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2010.2.20 동북아시아의 현대미술 네트워크 형성의 전망과 과제, 차이 짜오이(국립타이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2010.3.27 이가라시 리나(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큐레이터)
2010.5.15 한스 D. 크리스트(슈트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 디렉터)
2010.7.24 조이스 판(싱가포르현대미술관 큐레이터)

2010/02/16 18:12 2010/02/16 18:12

죽음을 넘어 삶을 이야기하는 예술

critic & column | 2010/02/15 16:01


죽음을 넘어 삶을 이야기하는 예술

타인의 죽음을 목도한 개인들의 인식과 감성은 제각각일 수 있다. 누군가는 가슴깊이 밀려오는 슬픔과 분노를 삭이며 말없이 마른 눈물을 삼키는가 하면, 누군가는 통곡으로 북받쳐오는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개인의 감성 표출 차원을 넘어서 그 죽음을 공유하는 방식으로서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 자리 잡은 애도의 형식이 장례이다. 우리는 장례라는 의식, 즉 죽음을 애도하는 형식적 의례를 통해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공유한다. 장례라는 의례 속에는 다양한 양식의 소통 기제가 들어있다. 물론 거기에는 말과 노래와 퍼포먼스가 있고, 패션과 그림과 조각이 함께 한다. 죽음에 대해 조의를 표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이 문화 속에 자리 잡는 데 있어 이러한 예술적 언어들이 함께 한 것 자체가 문화적 동질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근대 이전의 예술이 공예 개념과 한 몸으로 붙어 있었던 점을 고려해볼 때, 우리의 장례문화에는 예술적 표현들이 풍부하게 들어있음을 가늠해볼 수 있다. 문제는 근대 이후의 예술이 어떻게 죽음을 다루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근대 이후의 예술은 쓸모와 결별한 예술이다. 따라서 장례를 둘러싼 다양한 소통형식으로서의 문학적 서사와 몸짓, 노래를 비롯해서 그림과 조각 등의 일체의 표현 방식들은 예술의 범주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렇다고 해서 근대 이후의 예술이 죽음과 무관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죽음의 문제를 통해서 인간의 삶을 꿰뚫은 빼어난 예술 작품이 나왔다. 근대 이후의 예술은 죽음을 통해서 역사와 현실을 기록하고 발언했다. 이들의 예술언어는 죽음의 애도를 넘어서 현실의 문제를 각성하고 비판하는 강력한 공론장으로 자리잡았다.

근대기의 문예적 공론장은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했다. ‘마라에게, 다비드가 바친다’는 텍스트가 들어있는 그림 <마라의 죽음>(1793)은 혁명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화가의 마음을 담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1849-50)은 ‘오르낭의 장례식에 참가한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들의 그림’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시골의 평범한 사람들의 장례 장면을 통해서 삶 속에 들어있는 생활문화로서의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게르니카>(1937)는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공군이 자행한 학살을 그린 피카소의 그림이다. 그는 1951년에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리기도 했다. 평범한 죽음을 기념비적인 회화양식으로 남긴 쿠르베의 리얼리즘 전략, 혁명적 낭만주의 시기의 예술가 다비드, 전쟁이 남긴 죽음의 상처를 고발한 피카소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애도의 예술로 근대 이후의 이성과 감성의 영역에 예술적 발언의 폭을 넓혀나갔다.

공공미술은 단연 그 기념비성을 앞세워 죽음을 애도하는 예술형식으로 설립되곤 한다. 대체로 관변의 기념비들이 상투적인 표현방식으로 예술적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죽음을 정치화하는 과정에 개입한 권력의지 때문이다. 역사에 남는 명작이 권력 의지를 타고 넘나들면서 훌륭한 공론장으로 작동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영웅적인 기념비가 그 영웅의 죽음을 다루기보다는 삶을 다룸으로써 권력의 재생산에 복무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의 일이다. 반면에 로댕은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한 걸작을 남겼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1886-88)은 시민들을 대신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여섯 명의 생명을 구한 생 피에르 외슈타스의 의로운 죽음에 대한 애도의 예술이다. 로댕은 이 작품에서 예의 기념조각의 상투성을 벗어나는 인상주의적 표현으로 시대의 한계를 한 걸음 앞서 나갔다.

케테 콜비츠는 모자상으로 전쟁의 상처를 담았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만큼 전쟁의 상처를 깊이 담을 수 있는 것이 그 무엇이 있겠는가”. 전쟁의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이 작품에 대해 초라해 보인다거나 비극의 처절함이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논평들에 대해 콜비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자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식상한 주제인가. 서구의 피에타 조상들만 해도 얼마나 애절하게 수 천년동안 관람자들의 마음을 동하게 했겠는가. 부산 태종대의 자살바위 위에 있는 모자상은 또 얼마나 많은 힘겨운 이들에게 삶의 따뜻함을 전달했겠는가. 하지만 대다수의 모자상들은 종교 이데올로기와 가족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신파적 내러티브 자체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콜비츠의 모자상이 각별한 이유는 모자상의 신파적인 내러티브를 현대미술의 미니멀한 조형언어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옛 동베를린 지역의 한 근대건축물 한 동 전체를 사용하고 있는 콜비츠의 이 작품은 독특한 어법을 가지고 있다. 텅 빈 공간 속 한 가운데에 아들을 안고 웅크리고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덩그마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도 처연하게 비를 맞고 있었다. 건물 천정이 뻥 뚫린 상태여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 것이다. 바깥이었다면 이런 감동이 없거나 덜했을 것을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건물 안에 모자상을 두고는 천정을 뚫어 눈비를 맞게 했다. 텅 빈 공간 한가운데 바닥에 놓인 브론즈 조상이 있고 그 위에 빛을 떨어뜨리는 천정의 구멍. 그것은 빛과 눈과 비를 끌어들인다. 광장에 우뚝 선 높은 좌대 위의 영웅적 인물상에 대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이렇게 낮은 곳에 임한 인간적인 모습의 공공미술 작품을 대하는 마음이 열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본디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20세기 기념비 예술의 절정판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은 중국계 미국인 마야 린이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공모를 거쳐 설치한 것이다. 너른 잔디밭에 브이(V)자 홈을 파서 대지 아래로 내려가면서 벽면의 이름들을 만나도록 디자인한 이 작품은 낮은 공공미술 방식의 인터페이스로 여느 전쟁기념비와는 차원이 다른 숙연함을 안겨준다. 5만 8천명의 베트남전 전사자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매끈한 검은 돌에 새겨 넣어 전쟁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 대한 애도의 기억을 미니멀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건축을 전공한 이 작가의 감각적인 언어는 모더니즘 미학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우뚝 선 기념비의 남성중심주의 시각으로 수직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적 감성으로 수평확장하면서 낮고 너르게 품어 안아주는 그의 언어는 진정한 절제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오랫동안 죽음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을 거친 20세기 한국에서 죽음을 비판적 성찰로서의 표현 대상으로 삼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겠지만, 엄청난 역사적 비극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예술작품들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현대미술을 둘러싼 안팎의 여건이 성숙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죽음의 문제를 포함해서 사회의 현실을 다루는 미술은 198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광주항쟁은 수십 년 간 이어온 정치적 합의체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을 촉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시민들의 인식과 감성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역사적 사건이었다. 죽음을 다루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백색의 시대를 지나서 1980년 이후의 경험은 수많은 시민과 학생, 지식인 계층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에게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 선 한국의 현실을 주목하게 했다.

광주의 죽음을 시각예술로 다룬 그룹은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즉 광자협이 거의 처음이다. 특히 홍성담은 광주민중항쟁 판화연작으로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저항과 죽음을 다루었다. 현장에서 목도했던 여러 가지 사건과 정황들에 관한 기록적인 가치는 물론 간결한 목판 선으로 사건과 상황의 핵심을 전달하는 예술가의 시선으로 인해서 한국현대미술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애도와 저항의 예술로서 기록할만한 작품이다. 강요배의 제주도 4.3항쟁 연작 또한 잊혀진 죽음의 기억을 되살린 중요한 작품이다. 당시로서는 40년 동안 묻혀있었던 제주도에서의 학살 문제를 다룬 4.3연작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망각을 강요하는 권력의 의지를 예술적 표현으로 맞선 아름다운 기억투쟁이다. 1980년대의 새로운 리얼리즘 미술운동은 이른바 민중미술의 이름으로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거대한 상징투쟁을 벌였다. 민주화라는 정치적 에너지가 넘쳐나던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현장에 뛰어들었다. 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에서 애도와 저항의 예술을 펼친 것이다. 당시의 예술가들 현장미술이라는 개념으로 역사적 현장에 참여하고 개입했다.

1987년의 6월항쟁은 박종철에서 이한열에 이르는 죽음의 서사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격동하는 사회는 명작을 남긴다. 연세대 학생 이한열 열사는 최병수라는 걸출한 현장미술가의 명작으로 부활했다. 최병수는 최루탄을 맡고 쓰려져 친구의 부축을 받고 있는 이한열의 모습을 판화로 제작해 배포했다. 이어 그것을 거대한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로 옮겨 그렸다. 현장미술 작품들 가운데 드물게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뿐만 아니라 이한열 영정과 최민화의 열사부활도 등 다수의 미술작품이 제작되었으며, 장례식 자체가 수만의 군중이 운집한 거대한 퍼포먼스로 진행되는 과정에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이 함께 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열사정국은 예술가들을 시대와 동행하는 행동주의자들로 만들었다. 영정과 열사부활도, 만장, 걸개 등의 현장미술 작품들을 생산해낸 눈부신 예술행동의 주역들이 한 시대의 정치적 에너지와 예술적 실천을 창조적으로 결합시켰다.

1980년대 후반 이후에 지속된 이른바 열사 정국은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바치고서야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말해준다. 다시는 거리에서 만장과 영정을 기다리지 말자던 1990년대 정태춘의 노래는 부질없는 허사였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도 공론장에 떠오른 정치적 죽음이 끊어지지는 않았다. 노무현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맞아 예술가들의 역동적인 현장미술이 되살아났다. 박건웅 등의 만화가들이 대한문 광장 앞에서 그린 걸개그림은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졌다. 밀짚모자를 들고 웃고 있는 고인의 얼굴은 장례식 날 방송국 카메라가 포착한 이미지로 전국으로 송출됐다. 사실을 전달하는 사진과는 다른 풍부한 디테일로 인간의 실존을 재현하는 그림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임영선은 서거 직후 영정그림을 그려 봉하마을로 달려갔다. 장례식에 맞춰 대형 걸개그림을 그려서 봉하마을에 내걸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2009년은 전직 대통령들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정치학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 용산참사 현장예술이 있다. 지난 1년간 용산참사 현장에서 벌어진 예술 공론장은 그들의 죽음을 망각하지 않기 위한 기억투쟁이었다. 화가와 시인, 음악가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망각을 강요받는 그들의 죽음을 위해 기억투쟁을 벌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망루에 올랐다. 삶을 선택하고 했던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죽음은 단지 그들 몇몇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시대의 자화상의 그곳 용산에 집약되어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곧 공론장으로 떠올랐다. 예술이 거기에 함께 했다. 시각예술가들은 참사 직후 사적소유, 재개발, 생존권, 자본과 권력 등의 의제를 다룬 <망루전>을 꾸리고 전국 6개 도시 순회전으로 이어갔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남일당 뒷 건물에 만든 레아미술관에서 지난 1년 동안 22회의 전시가 열렸다. 이윤엽의 <여기 사람이 있다>는 판화, 걸개, 달력, 티셔츠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퍼져갔다. 전진경이 그린 열사들의 영정은 장례식 행렬 때 거대한 프린트로 옮겨지기도 했다. 노순택의 <그날의 남일당>은 일그러진 망루를 포착해서 흑백대비로 갈등의 양상을 극대화화한 걸작이다.

다섯 분의 장례식을 치렀던 2010년 1월 9일. ‘꽃상여 타고 그대 잘 가라.’ 안치환의 가녀리게 떨리는 음색이 서울역 광장을 맴돌았다. 남편을 떠나보내면서 동시에 아들을 감옥에 보내야하는 유가족의 참담한 심정이 심금을 울렸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세상의 한 복판에서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재개발의 칼날이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고 하고 있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남일당 건물 꼭대기에 망루를 짓고 그것에 의존해 삶을 지탱하려고 했던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허망한 죽음이었다. 거리에서 죽은이의 영정과 만장과 열사부활도를 만나는 일은 기억 속의 과거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근자에 들어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말았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다. 정치적 공론장으로 떠오르는 죽음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저기 광주에서 여기 용산에 이르는 기억투쟁으로서의 예술을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과 죽음이 맞붙은 경계선 위에서 잠시 살고 있는 우리는 언제든지 죽음을 통해서 삶을 들여다볼 준비를 하고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B-art, 2010년 3월호 특집 원고.

2010/02/15 16:01 2010/02/15 16:01

봉화산 보살

lense & world | 2010/02/13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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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선 정상의 호미든 보살상 아래에 머리와 팔만이 있는 소살상이 있다. 호미든 보살상의 파격을 넘어서는 파격이다. 무얼까? 좌대도 없이 땅에 놓인 이 보살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2010/02/13 01:04 2010/02/13 01:04

東京にもあったんだ

songs | 2010/02/12 19:10


東京にもあったんだ

福山雅治, 후쿠야마 마사하루, Fukuyama Masaharu

유튜브에서 이 노래 듣기
=>
http://www.youtube.com/watch?v=24Cc06z8Trs

東京にもあったんだ こんな綺麗な夕日が
도쿄니모 앗딴다 코음나키레이나유우히가
도쿄에도 있었네 이렇게 아름다운 석양이
うれしいな 君に見せたいな 君は元気かな
우레시이나 키미니미세타이나 키미와겡키카나
기뻐- 너에게 보여주고싶은데 넌 잘지내고 있는거니
東京にもあったんだ こんな綺麗な月が
도쿄니모앗딴다 코음나키레이나 쯔키가
도쿄에도있었네 이렇게 예쁜 달이
うれしいな 君も見てるかな 君に会いたいな
우레시이나 키미모미테루까나 키미니아이따이나
기뻐 너도 보고있는거니 너를 만나고 싶은데

今以上 自分以上に なりたかったんだよ
이마이죠우 지분이죠우니나리타깟타다요
지금 이 이상으로 더 나은 나 자신이 되고 싶었어
急いで 急いで 勝つために覚えたこと
이소이데 이소이데- 카쯔타메니오보에타코토
서두르고 서둘러 이기기위해서 기억한
この街のルールに 少しだけ 染まったよ
코노 마치노고루니 스코시다케 소맛타요
이 거리의 룰에 조금은 물들었어

お願いだ涙は 隠さないでくれ
오네가이다 나미다와 카쿠사나이데쿠레
부탁할께 눈물은 감추지말아줘
お願いだ心は 失くさないでくれ
오네가이다코코로와 나쿠사나이데쿠레
부탁할께 마음은 잃지말아줘
ほら ごらん 一緒に探してた明日に
호라- 고랑 잇쇼니사가시테타아시타니
이렇게봐바- 함께 찾고있던 내일에
僕は まだ走ってるんだよ
보쿠와 마다하싯테룬다요
난 아직도 달리고있는걸


東京にもあったんだ こんな綺麗な夜空が
도쿄니모앗딴다 코음나 키레이나요조라가
도쿄에도 있었네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이
おかしいね 涙こぼれてる 君に会いたいな
오카시이나 나미다코보레테루 키미니아이타이나
이상해- 눈물이 넘처흘러 너를 만나고 싶은데

時々 忙し過ぎて 僕に迷ったり 君にも怒ったり
토키도키 이소가시스기테 보쿠니마욧타리 키미니모오콧타리
때론 너무 바빠서 나자신에게 헤매이거나 너에게도 화를내
生きるために傷つくこと
이키루타메니이키쯔츠쿠코토
살아가기위해서 상처받는 일
この街のルールに もう少し逆らうよ
코노마치노루루니 모- 스코시사카라우요
이 거리의 룰에 조금만 더 반항한다면

お願いだ涙は 隠さないでくれ
오네가이다 나미다와 카쿠사나이데쿠레
부탁할께 눈물은 감추지말아줘
お願いだ心は 失くさないでくれ
오네가이다코코로와 나쿠사나이데쿠레
부탁할께 마음은 잃지말아줘
ありがとう 一緒に泣いてくれた君はね 青春のゴールだったよ
아리가또오- 잇쇼니나이테쿠레타 키미와네 세이슌노고루닷따요
고마워 함께 울어준 넌말야 청춘의 도착점이었어
ねぇ わかってたんだよ ねぇ わかってたんだよ わかってるんだよ
네- 와깟텐다요 네- 와깟테탄다요 와깟테룬다요
있잖아- 알고있니- 알고있니- 알고있니


東京にもあったんだこんな綺麗な夜明けが
도쿄니모앗탄다 코음나키레이나요와케가
도쿄에도 있었네 이렇게나 아름다운 새벽이

うれしいな 君に見せたいな 君は元気かな
우레시이나 키미니미세타이나키미와겡키까나
기뻐- 너에게 보여주고싶어 넌 잘있는거니-

2010/02/12 19:10 2010/02/1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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