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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궝 : 중국의 현대사회와 개인의 문제

critic & column | 2009/12/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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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궝 : 중국의 현대사회와 개인의 문제

퍼포먼스-사진-회화로 이어지는 첸궝(Chen Guang, 1971-)의 작업은 저항형식으로서의 예술을 지향하는 비판적 발언이다. 그는 퍼포먼스와 사진과 회화를 그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객관화 하는 미디어로 사용한다. 그에게 있어 사진과 회화는 자신의 퍼포먼스에 대한 기록이자 그의 삶 자체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자신과 타자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현대문명 속에 존재하는 개인의 위치를 탐구한다. 그는 중국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의 체험과 예술가로서의 행위 양자 모두를 예술적 표현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의 체험과 행위는 명확하고 공식적인 사회적 위치를 가진 것들과 불투명하고 은밀한 개인의 영역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그는 1989년의 천안문사태 때 군인의 신분으로 그 현장을 기록했는데, 그 사진을 그림으로 옮겨놓거나 그와 연관한 은유적 메시지를 담은 회화 작업들을 통해서 사회와 개인 사이의 간극에 관한 문명비판을 시도한다. 그것은 중국현대사의 격변을 체험한 개인으로서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공론장으로 끌어내려는 기억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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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첸궝(Chen Guang, 1971-)은 중국 허난성 출신으로 베이징의 중앙미술학원을 졸업한 후 베이징에 살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2009년에 부산의 오픈스페이스배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며, 부산시립미술관의 <아트인부산2009:인터시티>에 참가하기도 했다.
2009/12/28 18:45 2009/12/28 18:45

여기 현장미술이 있다 : 2009년 미술 뉴스

critic & column | 2009/12/17 14:14


여기 현장미술이 있다 : 2009년 미술 뉴스

미술은 우리사회의 거대한 흐름들과는 별개로 따로 노는 경향이 있다. 하여 전국민의 관심사와 동행하거나 거기에 참여하는 미술을 사소하게 넘겨 버리곤 함으로써 예술과 사회의 경계를 공고히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올 한 해의 주요뉴스들도 결국은 거대한 문화권력과 시장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정작 시민의 아픔과 상처, 그들의 삶의 현장에 뛰어드는 미술은 문화권력이나 화폐가치로 치환하는 미술시장과 별무관계다. 주류와 제도의 이름으로 현장미술을 철저히 외면하는 지금의 이 예술체제로는 감동을 주는 예술, 삶과 동행하는 예술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리 국가 기금을 들여서 공공미술 사업을 펼치고 공공미술관을 지어 문화권력을 공고히 한다고 해도 전위정신에 입각한 액티비스트들의 현장미술이 부재하다면 저항형식으로서의 예술은 무망한 구호에 그친다. 다행히도 우리는 도처에서 뛰어난 행동주의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세 가지 현장미술 사례를 짧게 소개한다.

용산참사는 2009년 한국사회의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이다. 그곳 아픈 상처의 현장에 많은 예술가들이 함께 하고 있다. 사건 발생 후 서울민미협(회장 전미영)은 망루전을 꾸렸다. 3월의 서울 평화박물관 전시를 시작으로 부산과 전주, 대구, 울산 등에서 전국 순회전을 열었다. 이후 지금까지도 용산참사 현장에서 돌아가신 이상림 열사가 운영하던 레아호프를 미술관으로 운영하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전미영, 이윤엽, 전진경 등의 미술가를 비롯해서 시인, 송경동, 가수 조약골 등 많은 예술인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올해의 걸작이 나왔다. 목판화 작품으로 많은 시민들에게 울림을 던진 이윤엽의 <여기 사람이 있다>가 있다. ‘그날 거기에’ 있었던 사진가 노순택의 <그날의 남일당>은 불탄 망루 현장을 강렬한 흑백대비로 표현해 감동을 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온 국민이 울었다. 예술가들도 그 현장에 함께 했다. 서거 소식 후 봉하마을에 대형 초상화를 그려서 들고 찾아간 이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화가 임영선이었다. 그는 49제 때도 노 전대통령이 웃으며 손을 흔드는 거대한 걸개를 그려 봉하마을에 내걸었다. 서울의 영결식 때 덕수궁 대한문에 붙어있던 걸개그림은 만화 작업을 하는 박건웅의 작품이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덕수궁 옆에서 걸개를 그렸다. 밀짚모자를 들고 웃는 노 전 대통령을 그린 <강물처럼>은 현장을 찾은 사람들과 방송을 지켜본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그는 49제 때도 부천과 일산에서 쓰인 걸개를 그리기도 했다. 한 시대에 대한 체험적 고백은 작업실에서 전시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화가 박영균은 광화문에서 영구차가 지나간 뒤 그 차를 바라보는 풍경을 그린 <잘가오>를 자신의 개인전에 출품하기도 했다.

광주의 대인시장프로젝트는 새로운 예술체제의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 올해의 희망이다. 2008년 광주비엔날레의 특별전시 가운데 하나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올해 들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층 활성화 되었다. 예술가들의 장기 또는 단기 거주를 통해서 시장 자체를 삶의 공간이자 예술의 공간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광주에서 현장기획자로 활동해온 박성현 디렉터는 시장 구역에 매개공간미나리를 열고 대안적인 미술생산 체제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점공간 중심의 현장미술 활동은 인천의 스페이스빔, 안양의 스톤앤워터, 안산의 리트머스, 부산의 오픈스페이스배 등에서도 매우 활발하다. 바야흐로 도시공간과 시민의 삶의 현장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새로운 예술체제가 본격화 하고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한겨레21, <사소해서 더 가치있는 문화계 뉴스 결산> 기고문

2009/12/17 14:14 2009/12/17 14:14

島唄 시마우타, 섬의 노래

songs | 2009/12/1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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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노래, 島唄 시마우타

오키나와 섬(島)의 노래(唄)다. 20세기 중반 끔찍한 전쟁을 치뤘던 섬의 역사에 얽힌 노래다. 오카니와 특유의 음색이 살아있는 노래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담은 아름다운 음색과 노랫말 속에는 비극적인 정서가 들어있다. 오카나와를 첫 방문했던 Bopm의 리더 미야자와는 그 섬의 역사적 상처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노래로 만들어 일본 전체를 감동시켰다. 2006년 월드컵 때 아르헨티나 응원가로 쓰일 정도로 전세계에 잘 알려져있다. 한국의 부산에서 일하는 나는 일본 큐슈 지역의 큐레이터들을 통해 이 노래를 들었다. 예술은 열린 마음의 상호지역성을 통해서 소통의 힘을 극대화 한다.

이 노래는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야 했던 그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부른다. 바다와 우주와 신과 생명을 불러 '이대로 영원히 저녁의 고요함을' 달라고 말한다. 강렬한 일렉 기타와 오키나와 민속악기 샤미센 소리로 시작해 거친 샤우팅으로 끝나는 이 노래. 사탕수수(우지) 밭에서 만나 그 아래서 영원히 작별했야던 오키나와 민중의 삶이 여기 들어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n7ggJquImms&feature=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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島唄 시마우타

でいごの花がさき風を呼び嵐が來た 데이고 꽃이 피어 바람을 불러 폭풍이 왔네
でいごがさき亂れ風を呼び嵐が來た 데이고가 만발해 바람을 불러 폭풍이 왔네
くり返す悲しみは島渡る波のよう 반복되는 슬픔은 섬을 건너는 파도와도 같아
ウ-ジの森であなたと出會い 우지의 숲에서 너와 만나
ウ-ジの下で千代にさよなら 우지 아래에서 영원히 안녕

島唄よ風に乘り鳥とともに海を渡れ 시마우타여 바람을 타고 새와 함께 바다를 건너라
島唄よ風に乘り屆けておくれ私の淚 시마우타여 바람을 타고 전해 줘 내 눈물을
でいごの花も散りさざ波がゆれるだけ 데이고 꽃도 지고 잔물결이 흔들릴 뿐
ささやかな幸せはうたかたの波の花 자그마한 행복은 물거품 이는 파도의 꽃

ウ-ジの森で歌った友よ 우지의 숲에서 노래했던 친구여
ウ-ジの下で八千代の別れ 우지의 숲에서 영원한 작별을
島唄よ風に乘り鳥とともに海を渡れ 시마우타여 바람을 타고 새와 함께 바다를 건너라
島唄よ風に乘り屆けておくれ私の愛を 시마우타여 바람을 타고 전해 줘 내 사랑을

海よ宇宙よ神よいのちよ 바다여 우주여 신이여 생명이여
このまま永遠に夕なぎを 이대로 영원히 저녁의 고요함을

島唄よ風に乘り鳥とともに海を渡れ 시마우타여 바람을 타고 새와 함께 바다를 건너라
島唄よ風に乘り屆けておくれ私の淚 시마우타여 바람을 타고 전해 줘 내 눈물을
島唄よ風に乘り鳥とともに海を渡れ 시마우타여 바람을 타고 새와 함께 바다를 건너라
島唄よ風に乘り屆けておくれ私の愛を 시마우타여 바람을 타고 전해 줘 내 사랑을

2009/12/17 01:02 2009/12/17 01:02

빛을 모시는 성찰의 공간 : 안종연

critic & column | 2009/12/14 11:55


빛을 모시는 성찰의 공간

빛과 색의 에너지로 가득 찬 안종연의 세계가 깊은 산 속의 휴게 공간과 만나 환상적인 제의 공간을 연출했다. 그것은 빛과 바람을 모시는 제의 공간이며, 나아가 인간과 자연, 정신세계와 물질문명의 공존을 주선하는 소통의 장이다. 영상과 설치, 유리 캐스팅, LED 조명 등 전방위의 미디어를 집약하고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바닥에서 천정까지의 모든 공간을 아우른다. 물질과 비물질의 고정성과 유동성 사이를 오가며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의 세계가 총체적으로 결합한 것이다.

오르고 내리는 에스컬레이터 가운데의 다사리꼴 공간을 채운 유리의 성찬이 그 중심에 있다. 거울과 색유리를 접합 판 위에는 20cm 직경의 유리 구체가 하나씩 놓여있다. 그 속에는 갖가지 색과 환상적인 형상이 들어있다. 이 유리 구체들은 그 자체로 영롱한 빛을 발산하면서 주변의 유동하는 시선들을 사로잡을뿐더러 천정 공간에 환상적인 빛의 세계를 연출하는 필터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서 유리 구체 설치 작품은 그 자체로 정보의 발신자이자 매개자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 계단의 아래와 위에 있는 LED 영상이 또 다른 언어로 관객과의 소통을 매개한다. 입구 공간인 아래쪽에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반가운 마음과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산뜻한 문구들이 나온다. 위쪽에는 꽃이 피가 나비가 날아다니는 형상들과 문구들이 중첩된다.  이 LED 영상은 작은 유리 구슬이 펼치는 독특한 파장효과로 인해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한 색감을 표현하며,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천정에 매달린 구체는 제주도 섭지코지에 이은 두 번째 ‘광풍제월(光風霽月)’이다. 그것은 비 갠 뒤에 나타나는 달처럼 맑고 투명한 빛을 모시는 일이다. 강원도 홍천에 뜬 안종연의 달은 쇠가 아닌 유리로 만든 달이다. 1만개가 넘는 크리스털을 매달아 거대한 달을 띄우고 그 속에 LED 조명을 이용해 내부에서도 빛을 발산하도록 만들었다. 완벽한 구체는 이상이다. 안종연의 구체는 이상향의 판타지를 간직한 달이다. 따라서 빛과 바람이 머무는 시공간 위에 놓인 저 달은 삶을 성찰하게 하는 메신저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2009/12/14 11:55 2009/12/14 11:55

이중성을 사유하는 최태훈의 빛조각

critic & column | 2009/12/04 14:33


이중성을 사유하는 최태훈의 빛조각

최태훈은 조각에 관한 상투적인 논리와 감성을 뒤흔들며 조각 고유의 가치들을 교란한다. 그는 견고한 물질세계로서의 조각, 다시 말해서 매스의 물성과 볼륨의 환영 사이를 오가는 조각 개념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시도한다. 그의 근작은 주거공간 안팎의 사물들, 그러니까 자동차와 소파, 욕실, 침실에 이르기까지의 사물들을 용접조각 작품으로 재현한 것이다. 그의 용접 조각들은 일상의 평범한 사물에 시각적 판타지를 부여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근작들은 금속 조각의 안과 밖에서 조명을 비춤으로써 조각의 물성을 교란한다. 최태훈 스타일 특유의 구멍 뚫린 철판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철판의 물질적 특성과 볼륨을 통해서 일루전을 생성하는 용접조각의 안정적인 기표체계를 넘어선다. 그는 여타의 사물들과 그 사물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매스와 볼륨, 바깥과 내부, 있음과 없음 등의 이원적 구조가 공존하는 변증법적 관계에 놓여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출품작들은 각각의 공간 특성에 맞게 입체와 빛의 만남을 이룬다. 비스듬한 사선으로 잘려나간 자동차 앞부분이 전시장 입구의 유리공간 안에서 도입부 역할을 한다. 실내의 첫 번째 공간은 소파와 테이블, 재떨이 담배, 자켓 등이 등장하는 거실이다. 거대한 선인장은 개방된 2층 공간까지 뻗어 올라간다. 두 번째 층은 욕실이다. 그곳에는 욕조와 거울과 세면대가 있다. 그는 이 사물들을 잘라냈다. 물론 잘려나간 공간은 정직한 수직, 수평선이 아니다. 비스듬하고 불안하게 잘라놓은 구획선이 안정성을 거부하는 작가의 감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세 번째 공간은 침실이다. 슬리퍼와 옷걸이 그리고 침대가 등장한다. 사선으로 잘려진 침대라는 물질과 금속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텔레비전 속의 영상, 그리고 외부와 내부의 조명이 교차하는 빛의 언어가 매우 감각적이면서도 묵직한 시각체험을 제공한다.

빛은 사물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근본 요소이다. 최태훈은 빛을 조작함으로써 사물의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뒤바꾼다. 그는 시각적 환영 이면의 물성과 빛의 존재를 성찰하도록 해준다. 그는 조각의 안팎 조명을 극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조각 작품에 대한 몰입의 강도를 높이다. 용접조각을 밝히는 외부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동시에 조각 내부에서 나오는 빛을 밝게 조정함으로써 외부의 조명을 받았을 때의 조각과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조각 사이의 극적인 대비효과를 살리는 것이다. 조각 작품 감상이라는 행위가 관람객 주체의 자의적인 동선에 따라 산만하게 유동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최태훈의 조명 조절 전략이 상대적으로 작품에 대한 몰입의 강도를 높여준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외부 조명을 줄이면서 내부 조명을 밝히는 방식의 조각 보여주기는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언어로부터 이탈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그 조각언어의 본질을 매우 극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빛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물질이 아닌 이중적인 존재이다. 빛의 이중성은 때로는 입자로 존재하고 때로는 파동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빛의 특성에서 나온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을 통해서 최태훈이 보여주는 것은 이중성의 문제이다. 그는 빛을 끌어들여 조각의 겉모습에만 주목하는 시각적 획일성을 비판한다. 견고한 금속과 유동적인 빛, 물질과 비물질을 교차하는 그의 전략은 두 가지의 요소들이 공존하는 세상의 이치, 즉 이중성의 문제를 담고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조각 작품은 불변의 물질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매우 안정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키며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질이다. 조각이라는 물질의 견고한 안정성을 지탱하는 것은 볼륨이다. 풍부한 볼륨감을 가진 그의 조각들은 특히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에 흠집을 내고 그 조각들을 이어붙인 독특한 표면질감으로 인해 더욱 더 매력적인 방식으로 사물의 존재를 재현한다.

최태훈은 그동안 간간이 형상재현으로서의 조각을 보여주었지만, 이번 작업들처럼 구체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재현하지는 않았다. 근 몇 년간 그는 반추상이나 기하학적 추상의 방식으로 용접조각의 본질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번 작품이 담고 있는 일상 사물의 구체적인 형상들은 사뭇 이질적이다. 그의 조각은 우리에게 저기 선인장이 있고 침대가 있고, 그리고 소파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선인장과 침대와 소파를 본 딴 용접조각들을 바라보면서 각각의 사물들을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환영과 미술 사이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언어구사 방식이다. 최태훈의 조각도 충실하게 이런 단계를 거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사물의 형상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것을 넘어는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한다.

변수는 그의 빛 전략에 있다. 그는 빛을 조작함으로써 안정적인 일루전 체계를 해체한다. 빛과 함께하는 최태훈의 조각은 두 가지 요소의 공존과 병행을 일깨워준다. 축 처진 옷주름의 일루전을 부각시키는 내부의 조명은 옷이라는 사물의 비어있음을 각인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옷은 신체와 결합했을 때의 옷과 그냥 옷걸이에 걸려있을 때의 옷은 천양지차로 다르다는 점을 일깨움으로써 이 작가가 왜 일상 속의 사물을 다시 들여다보는지를 잘 알려준다. 그는 금속을 용접하는 물질기반의 조각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그가 사용하는 빛 또한 하이테크 미디어 아트의 범주에 들지는 않는 것들이다. 그는 조각의 외부와 내부에 각각 조명을 설치하고 그것을 상호 교차하는 매우 간단한 메커니즘의 로우테크로 조각술의 상투적인 언어를 넘어선다.

그는 외부에서 조각의 표면을 비추는 조명을 줄이고 대신에 조각의 내부에서 그 바깥으로 빛을 내보냄으로써 안과 바깥의 논리를 뒤집어버린다. 조각의 내부에서 발산하는 빛은 견고한 볼륨을 해체한다. 빠르게 금속 표면을 지나가는 용접의 흔적으로 인해서 생긴 작은 구멍들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게 만드는 그의 조명술(照明術)로 인해 그의 조각술(彫刻術)은 일루전에 의존하는 재현미술의 단계를 넘어선다. 빛을 조각 작품 안으로 끌고 들어감으로써 그는 사물의 존재에 관한 우리의 믿음이 말 그대로 일루전에 의존하고 있음을 각성하게 한다. 조각을 비추는 외부 조명의 일방성을 내부 조명과 교차시킴으로써 그의 조각은 이중성으로 가득한 세계에 관한 은유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다시 말해서 최태훈은 금속과 빛의 관계를 끌어들은 은유적인 언어를 통해서 자연과 문명, 그리고 우리 삶 속에 베어있는 이중성을 말하고 있다.

기성의 사유와 감성은 언제나 새로운 실험에 의해 또 다른 가치로 전환하곤 한다. 최태훈은 사물을 바라보고 인지하는 데 있어 기성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개념을 갖게 해주는 감성 리더이다. 그는 관람객과 대상물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개입을 통해 조각이라는 상황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유도한다. 하여 하여 그는 견고한 물질적 존재인 조각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물질과 빛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든다. 이를 통해서 최태훈은 자기 작업의 목표를 조각 자체에 관한 반성적 성찰로 이어간다. 물질과 비물질, 볼륨과 빛, 안과 밖, 가득참과 비어있음 등의 요소들이 상호출동하면서 새로운 조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최태훈의 조각은 이중성의 사유와 감성을 획득한다. 요컨대 최태훈은 용접조각을 빛의 조각으로 확장하면서 조각(이라는 상황)을 조각함으로써 이중성의 사유를 획득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2009/12/04 14:33 2009/12/0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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