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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와 분권의 시대와 지역미술관

critic & column | 2009/11/29 01:23


자치와 분권의 시대와 지역미술관

바야흐로 국토균형발전론이 국가적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전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어서 지역성 논의 자체가 매우 버거운 형편에 미술관 문화의 지역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난 10여년간의 미술관 문화의 성장은 한국의 미술문화를 진일보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의 지자체 공공미술관들은 숫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으로 도약했다. 서울과 대전 부산 광주, 이들 네 도시의 공공미술관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지역미술관 시대가 본격화 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이다. 1998년에 부산시립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지자체 미술관의 시대가 본격화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88년에 개관했지만 2002년에 대법원 건물을 개조해서 현재 건물로 이사한 이후에 보다 본격적인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광주시립미술관도 1992년에 문을 열었지만 독립적인 미술관 건물을 갖추지 못하다가 2007년에 들어서야 현재의 건물로 옮겨서 새 출발을 했다.

경남과 전북의 도립미술관은 지자체로서는 한 발 앞선 2004년부터 독자적인 미술관을 설립해서 운영해 왔다. 후발주자이면서도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경기도미술관은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배후지역으로서 중심과 주변의 상황논리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그 향배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대구가 10년간의 논의를 거쳐 개관을 앞두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미술관이 없는 광역자치단체는 인천, 강원, 충북, 충남, 전남, 울산, (대구), 경북 등이다. 서울, 경기, 대전, 부산, 경남, 광주, 전북, 제주 등 8개의 미술관 있는 지자체와 8개의 미술관 없는 지자체가 반반 섞여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지역 미술관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역미술관 확산의 조짐은 중소도시의 미술관 설립에서 잘 드러난다. 서귀포시나 양구군 등의 기초 자치단체에서 만든 이중섭이나 박수근 등 작고작가 미술관은 매우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개관을 목전에 둔 포항시립미술관의 경우 인구50만의 도시에 걸맞은 미술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좋은 선례를 남겨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광역자치단체 뿐만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의 공공미술관 건립은 앞으로 비약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3백개의 넘는 공공미술관이 있다. 물론 경제위기에 따라 이들 미술관들도 안팎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는 하지만, 10여개 남짓한 한국의 공공미술관 수를 생각해보면 경이롭기만 하다.

전지구화의 호명이 개인에게 직접 투여되는 시대에 지역의 미술관이 독자적인 가치를 만들고 지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 부산과 대전은 해양도시의 개방성과 과학기술도시의 미래비전을 중심으로 소장품을 늘이고 기획전을 통해 미술문화를 확산하는 데 주력해왔다. 광주시립미술관은 하정웅 콜렉션을 바탕으로 예향광주의 위상을 찾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대법원 건물 이전 이후 정기적인 기획전으로 시민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 미술관이 지역성을 찾아가는 데 가장 큰 장애는 문화적인 보편주의가 지역적 특수성을 잠식한다는 점이다. 특히 블록버스터 전시의 포퓰리즘은 논란거리이다. 블록버스터는 1천만명이 줄 서서 보는 대박영화 한편으로 1년치 문화생활을 마감하는 대중들에게 누구나 아는 상투적인 서구 콘텐츠의 확대재생산한다. 대신에 미술관이 감당해야할 자생적인 에술을 소개하거나 활성화하는 일과는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시민에게 친숙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이 자칫 포퓰리즘의 폐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각이 많은 것은 이런 까닭에서이다.

아마도 기성의 편견에 따르자면 ‘지역미술관’이란 서울 이외의 지역에 존재하는 미술관을 가리키는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틀렸다.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으로 지역을 사유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가령 뉴요커의 시각으로 서울을 재단한다면 어떨까? 서울의 지역성과 서울지역미술관의 정체성을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것이 중소도시이건 거대도시이건 간에 혹은 수십개의 기초자치단체를 가진 광역자치단체이건 간에 특정 지역의 미술관은 해당 지역의 미술(관) 문화를 향한 분명한 미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시민, 또는 도민과 함께 호흡하는 미술관일 것이다. 어느 미술관이든 이러한 미션을 부인하는 곳은 없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지역에 관한 편견을 씻는 데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중앙과 지역을 나누는 이분법은 퇴행적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수도 서울 한복판에 있다고 해서 중앙미술관이고 국립현대미술관이 경기도 지역 과천에 있다고 해서 지역미술관인 것은 아니다. 지자체 미술관의 존재는 자치와 분권을 지향하는 시대정신의 소산이며 모든 지역에 예술 생산과 향유의 기회가 균등하게 존재하는 국토균등발전의 소명을 지니고 있다. 또 하나 염두에 둘 것은 미술관이 지역의 미술생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문화생산을 견인할지에 대한 것이다. 대안공간과 화랑, 언론 등의 활성화와 더불어 상생할 때 공공미술관의 지위와 역할이 더욱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10년의 짧은 역사 동안 쌓은 압축성장이 향후 독이 되지 않고 약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제 미술관 밖으로 눈을 돌려 도시생태 전체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준기(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 아트인컬쳐 2009년 12월호 기고문

2009/11/29 01:23 2009/11/29 01:23

낡고 낮은 곳의 예술 : 극장전 리뷰

critic & column | 2009/11/27 00:17


낡고 낮은 곳의 예술

산업사회 이후 영화는 거대한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20세기를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로 만드는 데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날까지도 영화는 강력한 흡인력으로 대중을 지배한다. 극장은 영화를 매개로 대중을 직조하는 대중적인 장소이다. 부산 범일동의 삼성극장은 6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대중들이 모여드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의 예전과 지금은 다르다. 재개봉이나 동시상영, 성인영화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 삼류극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공간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사실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존재방식은 거의 동일하다. 범일동 일대의 극장가가 이런 식으로 변모한 것은 부산의 도시 생태 변화에 따른 것이다. 흥행가도를 달리던 이 극장이 이리도 초라한 모습으로 쇄락한 데는 자본의 규모와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며, 구도심이 신도심에 중심적 지위를 빼앗겼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더 이상 대중이 찾지 않는 공간, 과거의 기억만이 존재하는 공간은 그래서 영화라는 산업이 얼마나 자본의 논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반증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전시는 일종의 기억투쟁이다. 잊혀질 것이 뻔해 보이는 마지막 남은 단막극장을 찾아 많은 예술가들과 관객들이 예술적 소통을 시도했다. 그것은 잊혀지기를 강요당하는 상황이나 공간을 잊지 않겠다는 소수자 개인들의 발언이다. 하여 이 전시는 ‘대중(The mass)’이 집결하는 극장이라는 장소에 관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을 문제 삼는 프로젝트로 성립한다. 잊혀질 것이 뻔한 역사를 주섬주섬 주워 모으는 일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라지는 도시의 역사적 공간에 대한 기억과 상황을 챙기는 일이다. 그것은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시민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간의 소외와 기억의 상실에 저항하는 일이다. 도시의 공간들은 사람들의 쓸모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자본이다. 예술은 큰 틀에서는 자본과 동행하면서도 지엽적으로 그것과 역행하곤 한다. 자본과의 동행보다는 역행에 예술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예술이 타율이 아닌 자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전시는 도시생태가 변동하는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그 속에 참여하고 개입하겠다는 예술적 실천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영화를 극장 상영물이 아닌 전시물로 대할 때는 사뭇 다른 소통 상황이 발생한다. 삼성극장 주변의 범일동의 상황과 사건을 다룬 김희진 감독의 영화 <범일동 블루스>는 텅 빈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매력을 제공했다. 출품작들은 낡은 극장의 남루함을 그대로 살려서 오래된 것의 매력을 살려내는가 하면, 도시 자체에 관한 기억을 공간 안으로 끌고 들어오기도 했다. 어두침침한 극장 공간의 한 구석을 차지한 고석근의 성적 이미지나 극장외벽에 그려진 구헌주의 그래피티, 객석에 측광조명을 비춘 임흥순의 작업은 매우 효율적으로 공간의 맥락을 타고 흐른다. 김경화나 나인주 등과 같이 화려한 거대도시의 언저리나 뒷골목의 상황/풍경을 다룬 구작들도 삼성극장의 너저분한 공간에서 새로운 맥락으로 다가왔다. 대부분 기획전들을 위해서 무리수를 두며 신작 강박에 시달리곤 하는 데 비해 이 전시는 구작들을 활용해서 효율성을 높였다. 여러 작가들의 구작을 모아서 공간 성격이나 전시 주제에 맞게 새롭게 맥락화 했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 열렸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 전시가 보여준 것은 거대한 힘의 논리와 동행하는 영화제의 행보와 반대 방향의 것이었다. 영화제가 부산의 구도심을 버리고 해운대로 행사장을 일원화 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관객의 동선을 고려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영화제는 남포동을 버림으로써 부산의 독특한 매력을 함께 버렸다. 그것은 관객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관한 헤아림이 부재했다는 면에서 매우 아쉽다. 그런 점에서 극장전은 퇴행적이다. 영화제의 선택과 달리 쇠락한 곳, 잊혀지는 곳을 찾아 퇴행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퇴행은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과 미래 비전을 만드는 밑거름이다. 시각예술이 영화산업과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예술적 실천이 낮고 낡은 곳에 머물 때 그 값이 배가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한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아트인컬쳐 2009.12 기고문

2009/11/27 00:17 2009/11/27 00:17

현장특정적인 예술 프로젝트와 양평환경미술제

critic & column | 2009/11/20 19:24


현장특정적인 예술 프로젝트와 양평환경미술제

<2009 양평환경미술제 : Echo of Eco>는 생활공간에서 열렸다. 여기서 말하는 생활공간이라는 것은 실재의 자연과 인간의 삶이 공존하는 장소이다. 전시장이나 조각공원 같은 미술문화공간뿐만이 아니라 경기도 양평군 일원의 한강생태학습장, 강하하수종말처리장, 강상체육공원 등과 같은 장소에서 생태적 의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들 공간에는 장소성과 의제가 매우 정교하게 얽혀있다. 양평의 지역적 가치를 생태로 파악한다면 이 공간들은 가장 유효적절하게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장소이다. 한강생태학습장은 보전, 완충, 탐방지구 개념의 생태교육 공간이며, 인공과 자연을 재생의 차원에서 결합시킨 하수종말처리장 또한 관념적인 생태 미학적 공간이 아니라 실질적인 생태적 가치를 담은 공간이다. 따라서 생태공간이라는 개념에는 생태적 가치와 그것을 지탱하는 장소성이 함께 들어있다. 프로젝트 현장의 작품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장소와 의제의 맥락에 접근하는 공공미술의 면면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이 프로젝트는 상호지역주의 관점에서 양평의 미술축제를 다룸으로써 열린 문화생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예술가들은 적극적으로 프로젝트 현장의 장소와 의제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출품작들은 영구설치 작품으로 남아 명실공히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일시적인 미술축제의 전시 프로젝트와 달리 영구설치를 염두에 둔 것이어서 지속적인 의미작용과 상호소통을 전제로 한 것이다. 생태학습장에는 권남희, 금중기, 김승영, 김태준, 안종연, 이재효, 이종빈, 최평곤, 양평미술인 1팀 등이 참가했고, 하수종말처리장에는 경희대학교 현대미술연구소와 양평미술인 2팀이 참가했다. 두 장소 이외에도 양평교 하단 강상체육공원 남한강변에 최평곤의 설치작품이 들어갔다. 또한 갤러리와에서는 야외 설치 작업의 도큐먼트 전시를 열어 사진 및 드로잉으로 현장의 기록을 정리해주었다. 이것은 현장의 작품들에 대한 예술적 이해를 높이고 관람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이외에도 마나스아트센터에는 양평의 미술인 54명이 실내전시를 가졌고, 닥터박갤러리에서는 도예체험교실을 진행함으로써 현장과 전시장 두 장소에서의 미술축제 균형을 맞추었다.

참여작가들에기 있어 프로젝트의 장소는 ‘작품을 놓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작품의 설치 현장은 곧 작품의 서사와 형식을 규정하며 작품과 공존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권남희의 간판 작업은 장소의 특성을 짧은 기호로 처리한 공공디자인 개념의 작품이다. 야외공간에서의 작품이란 감상의 대상일뿐더러 사용의 대상이라는 점을 잘 살린 작품이다. 금중기는 거북이나 개구리 같은 생명체를 색다른 질감의 조각으로 만들어 생태공간에서 만나는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각성시키고 있다. 장소에 대한 명상적이고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는 김승영은 생태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물과 섬의 존재를 재발견할 수 있는 작품을 설치했다. 김태준은 바위나 물 위에 유머러스한 동물들을 배치하여 자연환경과 친화하는 생명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안종연은 관람객과 하늘과 주변 풍경을 투영하는 수퍼밀러를 배치해 자연 속의 인간 존재를 성찰하게 한다. 태양열 전지를 써서 빛을 끌어들이는 조형물을 설치한 경희대 조형연구소의 작품 또는 생태적 가치를 중심에 둔 작업이다.

소재의 선택이나 창작 방식의 문제도 생태예술의 주요 변수이다. 나무를 이용한 작업은 자연환경에서의 바깥미술 프로젝트에 매우 효과적인 작업이다. 양평에 사는 작가인 이재효는 나무를 이용한 추상 조각을 설치했다. 이종빈은 나뭇가지들로 만든 두상 속에 나무를 심어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의 하나로 돌아갈 작품을 남겼다. 최평곤은 거대한 대나무 인간 작업으로 주민들에게 ‘어서오세요’라고 반갑게 손을 내밀거나 강나루를 지키는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주민 친화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작품을 설치했다. 공동작업을 통해서 주민참여와 상호작용을 지향한 점도 미 프로젝트의 큰 미덕이다. 양평작가 1팀(김창호, 안경문, 이정수)은 맑은 물의 가치를 상징하는 붕어를 만들고 비늘 부분을 주민들의 참여로 완성시키는 진행형 공공미술 작품을 진행했다. 양평작가 2팀(고봉옥, 김성일, 김승민, 김영리, 김용철, 김진화, 김철환, 김호순, 모지선, 박경인, 이봉임, 이흙, 찰스장, 황경혜)은 강하하수종말처리장 벽면에 공동벽화 작품을 제작했다.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작품이 그들로부터 더 적극적으로 사랑받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일이다.

이번 행사의 가장 기본적인 예술적 가치는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을 잘 살렸다는 데 있다. 짧은 기간에 행사를 조직해야 하는 미술축제가 장소특정성을 살린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성립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특히 공공미술이 공공의 기금과 장소와 의제를 필수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번화한 도심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공공미술 프로젝트 논의를 생태공간 개념으로 확장시키면서 시사적인 논점을 제공했다. 또한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장소에서 생태와 예술이라는 이슈를 가진 일련의 생태미술 프로젝트를 생활공간이라는 또 다른 거점으로 확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미술작품은 그것을 모시기 위한 별도의 공간을 원했다. 전시장이나 조각공원과 같은 공간이 대표적이다. 장소특정성 논의는 작품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장소의 맥락과 공존하는 작품 또는 장소를 위한 작품이라는 관점을 요청한다. 그것은 단순히 장소를 재해석하는 작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 장소의 특수한 성격, 가령 그 장소의 실질적인 활용도나 역사적 맥락 등을 작품의 내러티브로 끌어들이고, 주민이나 관객과의 상호소통에 적합한 형식을 추동하기도 한다.

그동안 일부 예술가들의 자율적인 예술운동차원에서 이뤄졌던 생태미술, 바깥미술 프로젝트가 바야흐로 제도 영역에서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진화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독일 뮌스터조각프로젝트나 인겔홈브로이, 일본의 에츠코 츠마리 등에서 볼 수 있는 장소특정적인 예술 프로젝트, 좋은 공공미술의 사례를 한국의 양평에서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생태공원과 하수종말처리장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생태적 가치 구현이라는 미션을 전제로 한 작업을 고민하게 했다. 그것은 주민의 삶과 예술을 연결하는 예술 프로젝트, 도시/자연환경을 재해석하고 맥락화 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서의 가능성을 키웠다. 생태공원이나 종말하수 처리장 같은 소외 공간이나 혐오 시설에서 예술작품을 만나게 했다는 점에서 예술이 박제화한 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에서 제 몫을 담당하는 기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 몫을 하는 예술’이라는 언급은 예술의 효용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모더니즘 미학에서 경원시하는 효율성을 비평언어로 등재할 수 있는 것이 공공미술이다. 요컨대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매우 효율적인 예술로 언급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살펴보아야 할 덕목은 의제특정성(issue-specificity)의 맥락이다. 장소의 맥락은 의제 설정에 의해 그 가치를 배가한다. 의제특정성의 문제는 특히 장소특정성의 맥락을 일관된 주제 의식 속에서 재배치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번 프로젝트는 특별히 ‘Echo of Eco(생태의 메아리)’라는 주제로 생태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 주제는 장소특정성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의제특정성을 강조한다. 기획자는 ‘생태/환경 특정적인(eco-specific)’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장소특정성과 의제특정성을 동시에 살려내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접근하고 있다. 이번 행사가 표방한 ‘에코-스페서픽(eco-specific) 예술 프로젝트’라는 개념도 결국은 양평환경미술제가 양평이라는 장소특정성 위에 생태적 가치라는 이슈를 더함으로써 양평이라는 도시에 반드시 필요한 예술행사로 자리잡기 위한 중요한 기초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상황 속에 놓인 장소에 참여하고 개입하여 예술적 소통을 시도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비평언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생태적 맥락을 ‘특별히 지정하는’ 목표 설정이야말로 양평에서 벌어지는 예술 프로젝트의 핵심 가치이다. 이러한 접근은 도시/자연과 예술 프로젝트의 만남, 장소특정성과 예술, 나아가 의제 특정성과 예술의 만남에 관한 매우 실질적인 사유지점을 형성한다. 이것은 현장특정적(insitu-specific) 예술 프로젝트라는 명제를 성립하게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개념의 설정뿐만 아니라 대상지에 대한 분석 및 해석, 나아가 참여작가들과 출품작들에 대한 분석 및 해석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가 이뤄질 현장에 대한 장소/의제 특정적인 예술이다. 여기서 말하는 현장은 장소의 공간성 개념에 시간성을 더한 개념이다. 시간과 공간은 상호의존적인 공존의 맥락 위에 놓여있다. 현장은 지금 여기의 시공간, 즉 생동하는 삶의 맥락 속에서 발견하는 동시대의 장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결합한 현장성은 특정한 상황 속에 놓인 역동적인 장소로서의 현장을 맥락화 하는 현장특정성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것은 상호지역성의 문제이다. 공공미술의 진정한 가치는 지역성을 살린 예술프로젝트의 가능성에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생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관념적인 수사를 지닌) 양평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중요한 사건인 이유는 예술언어를 가지고 양평이라는 도시의 현장이 뛰어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전시장에 일시적으로 작품을 설치했다가 철수하는 일, 즉 출품작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일시적인 공감대 형성만으로는 생태도시의 문화정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속가능한 미술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이번 프로젝트가 전시장이 아닌 생태공원 등을 선택한 것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동안 양평은 수백명의 작가가 거주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도시로 거론되곤 했다. 그러나 명실공히 문화도시의 면모를 확인할 시스템이 부재한 탓에 양평은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배후에서 예술가들의 거주와 개별 창작을 담보하는 배후도시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다.

‘생태 행복 도시 양평’에서 벌어지는 미술 프로젝트, 예술과 자연이 결합된 문화특구로서 양평의 지역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지역주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만들어야하는 당위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성은 폐쇄적인 지역성이 아닌 상호지역성(inter-locality)이다. 그것은 우리를 주목함으로써 우리의 바깥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남, 우리와 그들, 우리 지역과 다른 지역이 공존하는 서로-지역성 개념이다. 양평의 지리적 조건은 거대도시의 상수원으로서 불가피하게 청정수역을 유지해야 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양평이 생태적 가치를 살린 도시로 굳어진 것은 서울의 상수원확보라는 필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태가치는 상당히 박제화한 관념 속의 가치였다. 생태적 가치를 불가피한 수동적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미래 발전 가능성으로 끌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다른 도시와의 관계성으로 인해 그 가능성이 부각된 생태도시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양평 바깥과의 협업을 통해서 서로-지역성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예술체제는 고립된 섬과 같은 예술가 정체성으로부터 상호 협력하고 연대하는 네트워크 시대의 예술가 상을 요청한다.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서 생태적 가치를 성찰하며, 지역의 공동체 성을 재발견하고, 나아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재구성하는 일이 하나둘씩 좋은 사례로 드러나고 있다. 양평이 지금 그 전환점에서 의미심장한 과정과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양평환경미술제는 본격적으로 양평의 문화적 자원을 지역사회와 공유할 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예술과 그 바깥의 협업은 도시/자연 환경을 생태적 관점에서 재발견하는 일이다. 나아가 양평과 양평바깥의 예술가들이 폐쇄적인 예술 담론과 실천으로부터 열린 가치의 예술 담론과 실천에 참여하면서 예술체제의 전환을 예고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볼 게 있다. 양평의 지역성이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규명되는 것이 아닌 이웃 지역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예술 안팎에서 불고 있는 지역성 논의의 핵심은 상호주의 관점의 열린 마음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2009/11/20 19:24 2009/11/20 19:24

큐레이터의 소명과 숙명

critic & column | 2009/11/18 02:39


큐레이터의 소명과 숙명

미술계에서 일을 시작한 지 13년째다. 미술전문지 기자로 가나아트에 입사한 게 1997년의 일이다. 그동안 미술계는 참 많이 변했다. 미술계가 변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한국사회가 변했다. 나는 그 극심한 변동의 과정에서 30대 청년기를 보내면서 미술계의 다양한 직업군을 경험했다. 미술전문지 기자, 갤러리 전시기획자, 건축물미술장식품 컨설턴트, 사립미술관 큐레이터, 비엔날레 전시팀장, 공공미술 프로젝트 매니저, 독립큐레이터, 그리고 공공미술관 큐레이터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다. 앞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지나온 길에도 많은 위기와 기회, 좌절과 희망이 교차했다. 미술관 큐레이터가 되기 전까지 나는 미술제도의 호명 체계에 있어 다소간 애매한 입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신입기자에서 미술관 큐레이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을 거치면서도 내가 꼭 이루고 싶었던 일은 가치 지향이 뚜렷한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나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원칙으로 삼은 것은 역시 예술로서 세상을 사는 삶, 특히 예술생산을 매개하는 지식노동자로서의 삶에 관한 소명의식을 키우는 것이었다.

기자를 사회 첫경험으로 삼은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미학과 미술사, 그리고 예술학 등의 기초학문을 접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글쓰기로 처신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기자 신분을 벗어난 이후, ‘미술평론가’라는 직함을 쓸 수 없어 ‘예술학’이라는 대학 전공이름을 쓰기도 했다. 박사과정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석남미술상 젊은이론가상을 수상하면서 미술평론가라는 직함을 쓰기 시작했다. 비평영역의 진입장벽에 대해 나름의 자기 검열을 통과한 과정을 생각하면 이렇게 평론가 연하는 자신이 멋쩍기도 하다. 학력자본도 쌓이고 이른바 수상제도를 통해 인정 시스템 속에 들어갔으니 평론가일 수 있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심중의 심지로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평론가 연하는 게 아니라 좋은 생각을 가다듬고 현장으로 뛰어들어 실천하는 일이다. 평론가를 자임하거나 호출당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라는 가치경쟁의 장에서 어떤 입장으로 유의미한 실천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미술에 관해 공부하고 글쓰고 기획하는 나의 삶에 대해서 고정적이고 단일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해 보인다.

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 시절,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전시에 매달렸다. 이응노, 박생광, 권진규 등의 대가 전시에서부터 <동강별곡>과 같은 기획전에 이르기까지 그 짧은 기간동안 나는 전시기획자로서의 삶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 일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2001년 여름, 나는 성곡미술관 별관에서 독립전시를 기획했다. 윤상진 큐레이터가 외부기획안을 연결시킨 이 전시는 <건너간다>라는 제목으로 1990년대를 지나오면서 지난 시대의 정신을 계승한 386세대 작가들을 조망해보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가나아트 기자 겸 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로 일하다가 잡지 폐간 이후에 환경조형물 컨설팅 일을 하는 팀에 속해 있었던 고로 전시를 기획할 일이 없었다. 1998년부터 ’99년까지의 짧지만 굵직했던 전시기획 이후 2000년 한 해 침묵해야 했다. 그 침묵이 두려워 여름 휴가와 사비를 바쳤다.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전시기획자로서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독립기획을 한 것이다. 전시에 대한 평가도 엇갈려서 현장미술의 정신을 재발견하려는 기획의도를 긍정하는 리뷰도 있었고, 퇴행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언론과 미술계의 관심은 전시기획자로서의 길을 걷게 한 불씨였다.

글쓰기를 전제로 한 전시기획 이력은 오늘날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나의 밑거름이다. 기자나 특정 전시공간의 기획자로서 주어진 일이 아닌 독자적인 활동은 힘겹지만 보람있는 일이었다. 월드컵 직후 쌈지스페이스에서 연 <로컬컵>, 카페시월에서의 <대통령 선거前>, <A4반전> 등의 전시기획으로 나는 시사기획자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사립미술관에서의 2년 재직 후에 부산비엔날레와 공공미술추진위원회의 프로젝트 매니저 경험은 미술계에 대한 나의 안목을 넓혀주었다. 2006년 말에 전시기획자 최금수와 공동기획한 <아시아의 지금>전은 동아시아 전체로 눈을 돌릴 기회를 주었다. 세계화와 지역성이라는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베이징에서 싱가포르까지 여러 도시를 돌면서 나는 조금씩 나름의 화두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대추리현장미술은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다. 대추리 아카이브를 진행하면서 비로소 제도와 비제도, 주류와 비주류, 전시장과 현장, 관념과 실재 사이에 선 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007년 가을 이후 지난 2년간 나에게는 학예연구사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것도 지방계약직 ‘나’급이라는 급수가 매겨진 계약직 공무원 신분이다. 큐레이터는 보물창고를 가진 큰 집의 일꾼이다. 특히 그 보물창고에 있는 물건들에 관해 아는 게 많은 지식노동자이다. 근대 이전의 큐레이터들은 권력자를 섬겼지만, 근대 이후의 큐레이터들은 이른바 공화주의에 입각해서 공공을 섬기는 일꾼들이다. 그러나 한국 뮤지움 10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술 관련 뮤지움에서 종사하는 전문 지식인으로서의 큐레이터의 지위와 역할은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아직 지자체가 설립한 미술관을 갖지 못한 도시가 허다하고, 기존의 미술관들도 콜렉션의 수나 양으로 보아 갈 길이 멀다. 전문직업인으로서의 큐레이터의 역할 또한 초보적인 수준이다. 그만큼 미술관 종사자로서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쌓일 시간적 거리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체계적인 직제 분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술관의 업무는 전시기획 뿐만 아니라 작품 수집, 보존수복, 교육, 자료 등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 한다. 직제 분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학예직 인원 확보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직제의 거의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해야 하는 초기 증상은 축적된 역량 강화와는 거리가 먼 만능인 학예연구사를 양산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안팎의 인식으로 인해 조금씩 해결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일례로 내가 몸담고 있는 미술관도 올해 들어 학예연구실을 전시교육과 소장품 두 분야로 나누고 인력을 보강했다. 그러나 앞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것 같다. 경기도미술관에 이어서 국립현대미술관도 법인화를 예고하고 있어 안정적인 재원조달 등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공공미술관 뿐만 아니라 사립미술관들의 열악한 조건도 미술관문화의 정착과 큐레이터라는 직군의 전문화 과정에 있어서 큰 숙제이다. 사립미술관은 공공미술관이 채우지 못하는 풀뿌리 수준의 미술관 문화를 활성화하는 초석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미술관을 꾸리느라 여러 가지 부침이 있기는 하지만, 몇몇 사립미술관들의 고군분투가 돋보인다. 특히 간송미술관의 체계적인 소장품 수집과 깊이 있는 학예연구 역량은 한국을 대표할만한 사례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립미술관 큐레이터란 환상 속의 그대일 수밖에 없다.

큐레이터라는 직군은 순발력과 진중함을 동시에 요한다. 물론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기는 쉽지 않다. 어느 것에 비중을 두느냐 하는 것도 각자의 체질과 지향에 따라 다르다. 새로운 담론과 동시대성을 좇아 치열한 예술담론의 현장에 뛰어드는 것이 전자의 가치라면, 과거를 정리해서 동시대의 길을 밝히는 연구자의 길이 후자에 가깝다. 근대성에 입각한 미술관 모델이라면 당연히 후자의 역사성을 우선시해야 하지만, 탈근대적 개념의 새로운 미술관 모델에 따르자면 전자의 동시대성을 앞세울 수 있다. 바야흐로 분화에서 통합으로 이행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체계적인 전문 영역의 분화를 전제하지 않은 채 탈근대적 통합을 꿈꾸는 망상은 금물이다. 역사성과 동시대성, 근대성과 탈근대성이 공존하는 지금 여기의 미술관 문화를 고려했을 때, 큐레이터들은 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각자의 전문성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이것이 근대와 탈근대가 공존하는 시대에 이제 막 전문성을 찾아가고 있는 한국 큐레이터들의 소명이자 숙명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 예술경영 2009.11 기고문

2009/11/18 02:39 2009/11/18 02:39

주문생산과 예술노동, 그리고 새로운 예술체제

critic & column | 2009/11/16 20:02


주문생산과 예술노동, 그리고 새로운 예술체제

새로운 예술체제로의 이행은 어느 대목에서 변곡점을 형성할 것인가?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의 예술생산이 주문생산 체제와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음을 들여다보면 그 해답의 실마리 하나를 찾을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 한국의 현대미술은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미술이라는 예술장르 본연의 시각적 소통을 매개하는 ‘의미 사용의 확산’에 따른 것이 아니라, 화폐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교환가치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이 문제는 미술이 사적으로 소유가능한 물질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가령 소설이나 시를 사적으로 소유하여 독점할 수 없으며, 콘서트나 연극을 개인의 사유구조 속에서 사고팔 수 없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음반이라는 물질 그 자체를 천정부지의 가격으로 환산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미술작품이 가진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으로서의 지위는 매우 독특하다. 물론 여타의 장르에서도 예술 콘텐츠의 상업주의적 파행이 심난한 지경이라는 게 공통된 진단이기는 하다. 팔려야만 하는 상품으로서의 예술콘텐츠의 운명은 장르를 불문하고 같은 처지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술작품의 경우 화폐와 작품의 관계가 매우 심각하게 종속적인 관계에 놓이거나 아예 극단적인 물신주의의 길을 걷는다는 데 있다.

예술의 시장 종속은 예술노동의 소외 상황을 자본주의 시스템의 만성적인 문제로 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과 관습을 구조화한다. 미술작품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행위를 우리는 작품 소장(collection)이라고 말한다. 특정 작품을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서 특정 개인이 지속적으로 사적 소유물로 삼는 일이 시민사회의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아 나가는 과정이 곧 근대적 예술노동의 교환체제이며, 특정 공간에 비치할 특수목적의 공예품이나 장식품이 아닌 예술작품을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 사적 소유를 전제로 한 미술작품의 생산 구조에서 기인한다. 근대 이전의 모든 예술노동의 직접적인 주문생산에 따른 것이었다. <나폴레옹 대관식>을 그린 주문 생산의 대가 다비드는 솜씨좋은 궁정화가로서 당대의 영화를 누렸지만, 부르주아의 위선을 까발린 <풀밭위의 식사>를 그린 마네는 낙선을 거듭하다가 그 가치를 발견한 뉴욕의 미술시장에 의해 모더니즘을 개척한 선구자로 인정받았다. 조선의 마지막 궁정화가인 오원 장승업은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얻은 후 광통교 인근에서 오늘날의 화랑과 같은 역할을 한 공간을 통해서 작품을 거래할 수 있었다.

특히 유럽의 경우 오늘날 남아있는 대부분의 명화들이 특정 공간을 위한 주문생산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물론 다빈치는 주문생산품인 모나리자 한 작품을 여러 해 동안 붙잡고 있으면서 새로운 세계관을 열었으며, 주문 회화의 대가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그려 예술가로서의 자아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동북아시아 권에서는 주문생산과 관계없이 자신의 사유와 감성을 표현하는 독자적인 세계로서의 풍경화나 사군자 같은 회화가 일찍이 성립했다는 점에서 주문생산 시스템의 예외적 경우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생산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주문에 다른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근대 이후의 예술 생산은 확연히 독자적이다. 예술가는 스스로 자신의 작업실에서 창의적인 세계를 추구할 자유를 얻었다. 당대의 새로운 이슈를 개발하고 그것을 발표할 장으로서의 전시장이 독자적인 공론의 장으로 성립했기 때문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장이 과거의 미술작품에 대한 체계적인 수집과 보존, 연구, 전시, 그리고 교육을 목표로 하는 항구적 비영리기관이라면, 살롱과 갤러리는 동시대의 미술작품이 서로 다른 가치를 경쟁하면서 진일보하려는 아방가르드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새로움의 신화를 추구한 전위의 전위가 20세기를 지배했다. 조선미술전람회가 제도화한 1920년대부터 조선반도에서도 미술작품 전람회를 관람하는 일이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등장했다. 전시장이라는 약속된 공간에서의 작품감상행위라는 문명사회의 약속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100년 가까운 전시관람 행위가 아직도 제대로 된 문화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영화에 있어 1000만명이 보는 대박 영화의 대열에 끼어 1년간의 영화감상 대열에 동참하는 대중들은 미술에 있어서도 동일한 현상을 유발한다. 피카소나 샤갈, 르누아르 등의 서구 블록버스터 전시에 길게 줄을 서서 상투적인 미술을 반복재생산하는 데 동원되는 거대한 무리로서의 대중을 확인할 뿐이다. 이것이 이른바 미술문화 대중화의 실체이다. 대중화한 미술(관람)문화 이면에 존재하는 것이 미술작품의 사적 소유에 근거한 콜렉션이다. 공공미술관의 콜렉션을 제외하면 사적인 목적에 기반한 장식취미가 작품 소장의 대세를 이루는데,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미술시장이라는 메커니즘 아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술시장은 작품 소장을 작품 투자로 변환한다. 투자는 소정의 화폐를 특정 가치에 묶어 두었다가 차후에 이득을 남기기 위한 것인데, 미술작품 소장을 화폐재생산의 수단으로 삼는 이러한 일들은 지난 몇 년간 한국미술시장에 심한 거품현상을 유발했다. 거의 돈놓고 돈먹는 수준의 투기현상이 일어나면서 비평적 가치는 실종했고, 예술가들은 근대적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따른 주문 생산에 골몰해야 했다. 미술시장이라는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주문자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술적 가치 생산을 위한 예술가의 삶은 증발해버리고 미술작품 생산자는 화폐를 획득하기 위한 다양한 직업군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예술노동의 사회화는 곧 시장질서와의 타협을 의미한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길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시장경제를 통해서 예술노동의 가치를 화폐와 교환해야만 하는 지배질서는 동시대를 헤쳐 나가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피할 수 없는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질서의 구조를 다른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화폐권력이 요청하는 주문에 응대하지 않으려는 예술가들의 움직임이 다른 질서를 요청하고 있다.

새로운 예술체제의 동력은 매우 역설적이게도 예술노동을 주문생산으로부터 독립시켰던 ‘예술가 주체의 자율성’ 개념이다. 문제는 그 자율적인 예술가 주체들이 어떻게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각성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에게는 80년대 현장미술이라는 소중한 유산이 있다. 지난 시대가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남겨진 자산 가운데 당장 빛이 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갈고 닦아 새로 만들어야 빛이 나는 게 있다.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운동의 역사도 그렇다.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새로운 미술운동은 급변하는 사회 현실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태도를 현실과 매우 긴밀하게 접점을 형성하려는 실천적 대응으로 가져갔다는 점에서 이전의 모더니즘 시대가 견지했던 탈접점의 미학과 변별한다. 특히 그것은 현장미술이라는 매우 진보적인 실천과 담론을 낳았다. 현장미술은 투쟁의 현장, 삶의 현장에서 예술적 참여와 개입을 전제로 사회적 실천과 예술적 실천을 창의적으로 결합하고자 했던 리얼리스트들의 미술운동이다. 그들은 노동현장과 정치투쟁의 현장에서 그리고 시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예술적 실천을 나누고자했던 미술 장(場) 바깥의 예술가들이다. 그 장본인들, 또는 그 후배세대들이 1990년대 중반기의 잠복기를 거쳐 2000년대 들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의 공공성과 현장성을 되살리고 있다.

몇 해 전에 수많은 미술가들이 액티비스트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각성한 일대 사건이 있었다. 2003년부터 2007년 사이에 대추리 마을에서 벌어진 현장예술 활동은 시각예술 뿐만 아니라 문학과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총집결해서 국가단위 공공성과 마을단위 공공성의 간극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대추리를 통해서 함께 만난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들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들사람들은 조직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토선 없는 네트워크였다. 그 네트워크는 900일 가까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켠 주민들과 동행했으며 대추리의 현장에 참여하고 개입했다. 결과적으로 마을은 파괴되었지만, 그 현장을 통해서 새롭게 각성한 주체들이 새로운 예술 실천을 체험했다. 그것은 주민 공동체와 함께한 커뮤니티 아트이자, 사회적 의제를 다룬 액티비스트 아트이며, 과정과 상호작용을 확인한 새로운 공공미술이었으며, 동시대의 투쟁 현장을 외면하지 않은 21세기 버전의 현장미술이었다. 대추리에서의 경험은 우리에게 예술은 화폐를 발견하는 물신을 넘어 시대의 가치를 성찰하는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메커니즘이어야 한다는 점을 각성하게 했다.

공공미술 논의도 새로운 예술체제의 신호탄이다. 이 개념은 1960년대 후반의 유럽에서 문화혁명의 흐름 속에서 나왔다. 그 이전의 미술이 그 생산과 향유, 소비 과정에 있어서 사사성(私事性) 편향적이었다는 반성으로서 나온 것이 공공성에 기반한 예술체제로서의 공공미술 개념이다. 공공미술은 공적 기금으로 공공의 장소에서 공공의 의제를 다루는 미술을 말한다. 한국에서의 공공미술 실천과 담론은 근자에 들어 활성화 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원초적인 방식의 공공미술은 1960년대 후반부터 기념조상이나 기록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국가적 영웅을 기리거나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기 위한 이 프로젝트들은 그러나 예술적 가치를 논하기에는 지나치게 문화정치적인 잣대로 일관했다. 공공미술의 두 번째 변곡점은 1980년대 후반 이후의 건축물 미술장식품 제도 시행이다. 도시환경을 미화하기 위해서 건축주가 건물 안팎에 미술장식품을 설치하도록 한 이 제도는 그러나 제도적 결여와 미학적 파산을 결과했다. 장소성과 역사성 등의 공공재적 가치보다는 예술가의 개별적인 표현 결과물을 도시공간에 대입함으로써 공공미술로서의 자질과 효과에 심각한 문제제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수준의 공공미술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것이 새로운 공공미술 개념이다. 그것은 예술의 공공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예술적 실천의 대상과 과정, 그리그 그 결과에 대한 총체적인 재검토이다. 그것은 공공의 의제라고 하는 새로운 주문을 예술적 에너지로 전화하기 위한 창작이념이자 미술제도이며, 새로운 인식과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 그 자체기이고 하다. 새로운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대안적인 공공예술 운동인 뉴 장르 퍼블릭 아트(New Genre Public Art)에서 나온 말이다. 수잔 레이시에 따르면, 그것은 과정으로서의 미술, 예술가와 관객의 상호작용, 미술행위의 효율성에 관한 비평적 개념을 포괄하며, 특히 1)경험자로서의 예술가가 만들어낸 예술작품에 대해 감성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수준의 사사미술(Private Art)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상황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2)보고자 혹은 3)분석가로서의 예술가 지위를 넘어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게 하는 4)행동가로서의 예술가 지위에 이르러 공공미술(Public Art)의 수준을 획득한다.

새로운 예술 실천과 담론은 다양한 주체들이 공통분모를 향해 나아가면서 형성하고 있는 하나의 사회적 합의이다. 그것은 담론 차원의 비평적 언설이나 제도적 뒷받침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20세기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총체적 반성이자 지난 세기의 경험을 토대로 한 대안적인 미술 개념이기도 하다. 예술노동의 시장 종속을 극복하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가 공공의 의제를 예술적 에너지로 채택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공미술로 수렴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미술은 그 대안적 개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가령 커뮤니티 아트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매우 대안적인 예술소통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예술생산을 세계적 보편성의 실현보다는 지역적 특수성의 가치를 발현하는 지역주의 예술과도 직결한다. 나아가 그것은 또한 물질적 결과보다는 개념 그 자체를 중요시 하는 개념미술과도 연결된다. 영상과 디지털, 인터넷 등의 새로운 매체환경에 의해 떠오르고 있는 뉴미디어 아트 또한 20세기 모더니즘 미술의 물질 기반 미술 개념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미래의 비전을 현실화하고 있다. 이 모든 실천과 논의들은 전근대의 직접주문 생산체제와 근대의 간접주문 생산체제가 제3의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미 우리시대 예술은 공공의 의제라는 주문에 응대할 새로운 예술체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 실천문학 기고문 2009.11

2009/11/16 20:02 2009/11/16 20:02

김홍희, 포스트 미디어 시대의 개념예술

critic & column | 2009/11/10 18:03


김홍희, 포스트 미디어 시대의 개념예술

새로운 정보통신 수단이 발전하면서 우리의 소통 체제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정보화 사회의 메커니즘은 21세기 문명사회를 견인하는 핵심이다. 디지털과 인공위성,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인터넷 등과 같은 첨단의 정보통신 기술은 미디어 시대의 패러다임을 후기 미디어 시대로 인도하고 있다. 그것은 신문이나 방송 등이 지배하던 제1 미디어 시대의 매체 환경을 근본적으로 대체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바야흐로 포스트 미디어 시대의 도래는 우리의 인지와 감각, 사유와 성찰의 세계를 그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고 있다. 그것은 하이퍼링크와 쌍방향성이 인도하는 하이퍼텍스트의 세계를 열며, 사이버 공간에서의 가상현실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정보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 일상적인 상호 작용은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현대인과 현대사회의 사유와 감성, 나아가 그 정체성까지 새롭게 직조해내는 데이터베이스의 존재는 인간 또는 인간사회가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인간이나 인간사회를 직조하고 통어하는 수퍼 판옵티콘 그 자체이다.

포스트 미디어 시대 혹은 제2 미디어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메커니즘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인간의 실존 그 자체를 바꾸어놓고 있으며 우리의 인지와 감각을 재구조화 하고 있다. 특히 구글어스Google Earth는 제2 미디어 시대를 대변하는 희대의 메커니즘이다. 인공위성의 막강한 정보 입력과 송출 능력, 인터넷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3D 그래픽의 재현 시스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샅샅이 계량화하는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한 구글어스는 전 지구를 낱낱이 얽어서 완벽한 재현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다. 구글어스가 재현해내는 시뮬레이션의 세계, 그것은 완벽한 사이버스페이스로서 실재 세계를 전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다. 한숨에 지구표면으로 내리꽂혀 험산준령을 넘나들고 광활한 대륙을 비행하며 지구의 스킨을 낱낱이 훑고 다니는 구글어스의 판타지를 보라. 그것은 지구라는 실재를 재현representation하는 가짜실재pseudo-reality이다. 동시에 그것은 실재 지구에 대한 우리의 인지와 감각의 한계를 초월하는 극실재Hyper-reality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현현presentation하고 있다. 우리의 신체는 단 한 번도 전 지구를 단일한 객체로 인지하거나 초시공간적으로 감각할 수 없지만, 구글어스는 너무나 심플하게 그 간극을 넘어서며 초극적인 실재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김홍희의 사진은 후기 미디어 시대 문명과 관련하여 각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사진은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문명과 깊은 친연관계에 놓여 있다. 동서남북을 종횡무진하는 김홍희의 신체는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김홍희는 구글어스 시대의 사진찍기에 관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새로운 미디어 시대에 사진가로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좌표설정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전지구를 떠도는 여행은 김홍희의 삶 그 자체이다. 그의 예술은 그의 삶으로부터 나온다. 국경을 지나 대륙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일이 그의 삶의 한 방식이 되었다. 그는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수행성을 기반으로 하는 김홍희의 서사는 매우 문학적이다. 그의 문학은 시어이다. 그는 카메라로 시를 쓴다.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은 르포르타주이거나 소설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김홍희의 이번 작업은 고비사막이라는 한정된 처소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래 언덕을 대상으로 동일률이 지배하는 시적 언어라는 점에서 사뭇 다르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고비사막에서 시를 썼다.

김홍희의 사진은 매우 충실한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특히 몽골의 고비사막을 담은 이번 작업들은 일종의 풍경 사진이다. 거대한 사막의 전모를 단일화면 안에 드러낼 수 없다는 한계점은 오히려 새로운 장점으로 살아났다. 부분에 주목하고 그 부분들 속에서 자연과 인간, 시간과 공간, 과정과 결과 등의 메타포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신작들은 폭넓은 해석의 지평 위에 놓인다. 그의 사진은 문명사회의 척박함을 넘어서려는 정신적 도피의 일환으로 비칠 법도 하다. 또는 자연의 숭고함에 기대어 문명사회의 비루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나아가 그것은 자연의 곡선을 끌어들여 인체의 곡선을 은유함으로써 자연과 인간 신체 사이에 흐르는 교감을 관능의 서사로 표현한 풍경-누드이다. 김홍희는 사막의 모래언덕에서 신체의 관능미를 포착한다. 부드러운 곡선이 신체 구석구석에 자리한 유려한 곡선을 은유한다. 바람이 실어 나르는 낱알의 모래들이 시간의 주름을 만들고 그 주름들 너머로 한 고비 두 고비 숭고한 자연의 깊이가 우러난다. 이렇듯 김홍희의 사진은 1차적으로 매우 충실한 자연 다큐멘터리 사진이며, 그것도 매우 풍부한 신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사진 예술이다.

김홍희는 자신의 사진찍기에 관한 반성적 성찰의 일환으로 카메라에 GPS를 장착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사진 평면 위에 GPS로부터 얻은 사진의 위치 정보값을 토대로 해당 장소의 인공위성 사진을 따다 붙였다. 김홍희가 몸으로 만난 사막과 디지털 정보로 처리된 인공위성 시각의 사막을 한 화면 안에서 만나는 것은 낯선 일이다. 그것도 위도와 경도 관련 정보가 나열된 이미지의 정사각형 박스가 부드러운 곡선과 뿌연 색면의 흐름을 깨며 화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 화면은 정말 낯설기 그지없다. 완만한 곡선들로 이루어진 절대 순수의 자연 이미지 가운데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 정사각형 박스 안의 인공위성 사진은 같은 사진 이미지임에도 매우 이질적이다. 그것은 불가에서 행하는 연비燃臂 의식과 같은 것이다. 불가에서는 득도를 위해 삭발을 하고 신체의 일부를 태우는 연비 의식을 행하는데, 이것은 신체에 고통과 위해를 가함으로써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다. 매끈하게 잘 빠진 풍경-누드 위에 문자정보를 수있는인공위성 사진을 끼워 넣는다는 것은 이미지의 고렠운 논리를 깨는 행위이다. 따라서 GPS 정보값을 풍경-누드 위에 삽입하는 김홍희의 행위는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사진찍기를 성찰하는 예술 행위이다.

중요한 것은 사진작품이라는 결과 그 자체만이 아니다. 그 사진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태도에 의해 김홍희의 작업은 개념예술로 성립한다. 김홍희는 사진가로서의 포지셔닝에 관해 문명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는 사진작품이라는 결과를 얻기까지 자신의 신체가 어떠한 수행성을 거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진작업의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현재의 문명 시스템 속에 자리매김할지에 관해 명확한 의제설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홍희는 첨단의 디지털 문명 아래서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 몸을 움직여서 촬영한 사진 이미지가 과연 어떤 울림을 가지고 있는지, 그 아날로그 시스템이 완벽한 디지털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인공위성 사진과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 묻고 답하고 있다. 이런 맥락 속에서 김홍희의 사진과 인공위성의 사진을 병치하는 행위는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문명의 논리를 이탈하려는 개념을 담고 있다. 요컨대 김홍희의 사진은 구글어스 시대의 사진찍기이며, 나아가 포스트 미디어 시대의 예술에 관한 개념적 예술 실천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2009/11/10 18:03 2009/11/10 18:03

전정호 : 현실 참여와 현실 비판의 간극을 넘어

critic & column | 2009/11/05 20:10


현실 참여와 현실 비판의 간극을 넘어

현대미술처럼 정보의 양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평준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예술적 기호를 생산하는 주체에 관한 헤아림은 매우 중요하다. 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작품을 생산한 예술가 주체의 삶의 궤적을 작품과 함께 매우 근본적인 요소로 설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 삶이 어떤 가치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 속에서 지행합일의 길을 찾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전정호는 1980년대 후반 이후의 리얼리즘 미술운동에 있어 매우 중요한 활동을 전개한 작가이다. 인권과 통일, 민족해방 등은 그가 미술가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중심의제였다. 그가 세상에 눈뜨고 그림으로 그 세상의 격랑 속으로 뛰어든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었다. 1992년에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그는 조직미술운동을 하면서 무수히 많은 걸개와 판화를 제작했다. 대형 걸개작업 등 많은 일들이 집단창작 방식으로 이뤄졌다. 전투적 신명, 시민미술학교, 집단창작 등의 뚜렷한 현장미술운동 기풍 속에서 전정호는 미술로서 거리에 선 액티비스트로서 격동의 시대를 가로질렀다.

1980년대 중반 이후의 본격적인 사회변혁운동 에너지는 전정호를 리얼리즘 미술운동의 격랑 속으로 인도했다. 1987년에 친구 이상호와 함께 그린 대형 걸개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는 민중미술 진영 안팎에서의 첨예한 논쟁을 촉발했다. 1989년을 뒤흔든 <민족해방운동사> 연작 걸개에도 참가했다. 그는 소그룹 땅끝, 일과 놀이, 광주시각매체연구회(시매연), 현장미술연구소 등에서 활동을 했다. 특히 선후배, 동료들과 함과 함께 시각매체연구소(시매연) 활동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화풍과 예술적 에너지를 생성한 중요한 자산으로 남았다. 이후 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민미련) 활동에 이르기까지 전정호는 1980년대 이후의 광주지역 리얼리즘 미술운동사에 동참했다. 그러나 사회변혁운동의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그는 미술가로서 살아남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지 못/아니 하였다. 1994년의 <민중미술15년전>이라는 매우 상징적 사건을 계기로 1980년대 이후의 리얼리즘 미술운동은 한 시대의 열정을 서서히 접었다.

예술의 장은 더 이상 액티비스트를 원하지 않았다. 마치 새 세상이 열린 듯, 세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변혁운동의 에너지가 끓어서 넘치던 시절이 지나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가 더 이상 공론장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미술운동에 매진하던 예술가들도 산개하여 각자 나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시장 미술을 지향한 미술운동가들은 일부나마 명망을 획득했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상징자본이 튼튼한 예술가들은 제도 안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수의 액티비스트들은 미술을 중심에 두지 않고 생활 속으로 뛰어들었고, 한동안 우리는 조직적인 미술운동을 접할 수가 없었다. 전정호의 삶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겪었다. 열정적인 현장미술 운동의 과정에서 뒤로 미뤘던 첫 개인전을 그는 이래저래 자신을 추슬러서 30대 후반에 들어서야 열었다. 미술운동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1996년의 일이었다. 이후 삶을 꾸리던 그가 나이 50에 들어 다시 개인전을 갖는다. 첫 개인전 이래 13년만인 2009년 올해의 일이다. 그는 개인전을 열기 위해서 광주 유동 작업실에서 두문불출 회화작업에 열중했다. 걸개와 판화, 만장, 깃발을 제작하던 현장미술가가 캔버스 페인팅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접고 다시 미술언어 게임의 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의 이번 개인전 출품작들에 대해서 언급하기 이전에 그의 과거를 들춰본 것은 전시장과 현장의 간극을 넘어서려는 그의 고심을 헤아려보기 위해서이다. 광장의 중심에 섰던 그가 광장의 서사를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회화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다. 현실 정치의 이슈들도,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와 생명의 의제들도 실재를 반영하거나 현실을 전유하는 예술적 표현들이다. 과거의 그가 현장에 뛰어들었다면 지금의 그는 현장을 성찰하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현장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광장뿐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 이슈가 종횡무진하는 공론의 장이다. 그는 비판적 리얼리스트의 시각을 가진 예술가로서 현실 세계의 다양한 가치들을 끌어들여 자신의 언어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회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전정호의 비판적 시각은 서울과 광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절망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는 광장의 서사를 중심으로 시공간의 확장을 시도한다. 특히 그가 광주와 촛불을 비교선상에 놓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동시대에 관한 상황인식의 일단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적 현실을 회화 작품의 의제로 끌어들인다. <나는 불 가운데 눕고> 연작 석 점은 그의 스타일에서 보이는 독창성, 전형성이 도드라지는 그림이다. 인체와 불과 꽃을 결합한 이 그림들은 숭례문 화재 사건과 용산참사 현장의 불꽃을 인체와 결합한 그림에서 머리 부분만을 불꽃으로 대신함으로써 우리시대의 모순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진달래 꽃과 천을 든 여인이 살품이 춤을 추는 그림으로 연작을 완성한다. 정치적 현실을 냉소하고 풍자하는 시각도 담겨있다. <국회-가결되었답니다!>는 물리적 충돌 과정에 있는 국회의 군상들 한가운데 아기를 배치하고 윗부분에는 혀를 내밀고 있는 개를 통해서 정치현실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월오행악행도(대운하)>는 전통회화 스타일을 따서 대운하 사업에 관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화면을 꽉 채운 섬세한 구성과 꼼꼼한 필치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노작이자 역작이다. <지금 흐르는 강물이 아름답다>는 금강전도를 끌어들여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림의 가장자리 곳곳에 허수아비를 띄워서 허깨비처럼 떠도는 현실의 모순과 그것에 관한 비판의 유약함을 숨기지 않는다.

민주화운동과 예술적 실천을 병행했던 그는 민주주의적 가치의 퇴행에 대해 깊은 우려와 새로운 희망의 시선을 회화 작품에 담아냈다. 공권력과 민중의 관계를 그린 여러 그림들은 매우 신랄한 현실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눈> 연작은 1980년 5월과 2008년 5월을 교차한 그림이다. 분노와 슬픔을 절반씩 섞은 채 부릅뜬 눈 주변에 각각 횃불과 촛불을 배치하고 그 아래 광주와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권력의 폭행 장면을 담고 있다. 팔방으로 둘러쳐진 방패 안에 피 흘리며 모로 누운 인물로 ‘부를 위해 민을 버린’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고, 전경방패 앞에 선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시대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현실 인식과 비판의 시각은 촛불의 의미를 되새기는 연작으로 이어진다. <촛불 - 작음에서 큰 빛으로>는 크고 작은 회화 작품들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배치해서 촛불의 현실과 의미를 되새기는 연작이다. 촛불 소녀 아이콘에서 촛불 군중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촛불의 서사로 시대정신을 밝히는 ‘큰 빛’으로서의 촛불의 힘을 그리고 있다.

최근 들어 그는 현실의 모순을 바라보는 관점을 대한민국 내부에서 전지구로 확대하고 있다. 국가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모순까지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꿈1(사람이 사랑이다)>는 9.5미터 대작이다. 액자를 하지 않은 캔버스 천에 그린 걸개그림이다. 가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고통을 긴 파노라마 형식의 가로그림에 담고 있다. 이밖에도 <아프리카의 꿈2> 연작과 <절망> 연작과 같은 액자그림에서 고통과 절망에 빠진 아프리카 민중을 그리고 있다. 아프리카 연작들에는 판화와 걸개그림에서 보이는 전정호 스타일이 압축되어 있다. 굵은 윤곽선과 단색 계열의 채색을 결합한 회화 양식이다. 휴머니즘의 맥락을 잇고 있는 <생명> 연작에서는 캔버스 위에 아크릴과 황토를 이용해 밥, 땅, 얼굴, 들, 곡식 등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부조 방식으로 평면을 탈출하려는 그의 황토 그림들은 표현의 방식을 확장하려는 부단한 실험의 결과들이다.

전정호의 이번 전시는 그의 과거 현장미술운동 경력과 앞으로의 예술적 행보를 잇는 복귀무대이다. 전정호의 이력은 현장미술가로서의 치열한 활동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그가 전시장미술에서 관람객과 소통하기 위해 타블로 페인팅을 하고 있다. 수많은 주체들의 이념과 감성, 가치 등이 상호 충돌하는 사회적 공간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의제를 가지고 예술창작과 사회적 실천을 결합하는 현장미술과 예술가의 개별창작을 비평적 가치 경쟁의 장 위로 올려놓는 전시장미술은 같은 미술이면서도 그 메커니즘이 상당히 다르다. 현장미술의 생동감 넘치는 예술 생산과 문화 생산의 메커니즘을 그는 동시대의 제도미술 버전으로 옮겨 놓고 싶을 것이다. 사회적 연대로서의 예술 활동을 열망하면서 시대정신의 구현으로서의 예술을 실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현장미술활동의 초심을 바탕으로 하되 그의 작업 방식이나 태도는 상당히 달라졌다.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나 세상이 변하였다. 그는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식, 달라진 세상에서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방식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적 전위로서의 현장미술운동이 예술의 장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아직 결론을 얻지 못했다. 전정호 케이스는 매우 상징적인 비평적 위치에 놓였다. 학생미술운동을 거쳐 현장미술운동을 했던 386세대 예술가 전정호의 향배는 변화하는 미술흐름을 짚어보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정호는 사회적 이슈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보는 회화 작업으로 권력의 폭력성을 비판한다. 나아가 전지구적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를 다룬다. 현장미술가들의 예술실천은 대중적 소통 가능성을 최대의 덕목으로 삼는 것이었다. 반면에 예술적 전위는 예술의 장 내에서 통용되는 언어게임의 영역이기 때문에 현장미술과는 또 다른 게임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전정호의 예술이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바로 여기에 뭉쳐있다. 현장과 전시장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의 신작들은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고심들이 몇 갈래로 나뉘어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야흐로 전정호의 예술적 실천이 새로운 장으로 접어들고 있다. 현실 참여와 현실 비판의 간극을 넘어 표현의 지평을 넓히는 예술의 장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2009/11/05 20:10 2009/11/05 20:10

김준기 이력서 071115

gim story | 2009/11/02 13:43


김준기(1968-)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예술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미술전문지 가나아트 기자 일을 시작으로 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 공공미술팀장으로 일했으며, 사비나미술관에서 학예연구실장으로 일했다. 2006년 부산비엔날레 조각프로젝트 전시팀장으로 일했으며, 공공미술추진위원회 팀장으로서 <아트인시티 2006> 프로젝트 매니저 일을 했다. 2007년에 석남미술상 젊은 이론가상을 받았으며, 경희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건너간다(2001). 작업실 리포트(2003), 리얼링15년(2004), 아시아의 지금 : 세계화와 지역성(2006), 분지의 바람(2007), 대추리현장예술아카이브 : 들 가운데서(2007), 돌아와요 부산항에(2008), 액티비스트 리포트(2008), 인터시티(2009)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1980년대 이후 한국리얼리즘미술에 나타난 현장성과 공공성의 문제’, ‘구본주론’, ‘정정엽론’, ‘박경주론’,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실천과 새로운 공공미술' 등의 글을 썼다.

김준기 이력서 07020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명 : 김준기(金俊起, GIM, Jun-Gi)
생년월일 : 1968년 6월12일
주소 : 서울시 성내동 235-16
연락처 : artpd68@naver.com

학력 및 경력 사항
1968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남
1987년 부산 대동고등학교 졸업
1988년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입학
1989-92년 육군 제3사단(철원) 복무
199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졸업
1995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입학
1996년 제7대 홍익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 회장 역임
1997년 《월간 가나아트》 편집부 기자 역임(97년 5월호-12월호, 총7권 취재 및 편집)
1998년- 〈가나미술연구소〉 연구원
《계간 가나아트》 편집부기자 (98년 봄호-00년 여름호, 총10권 취재 및 편집)
1998-99년 〈가나아트센터〉전시기획자(98년 9월- )
2000년- 《매거진&웹진 가나아트 www.ganaart21.com》 수석기자
2001년- 가나아트갤러리 환경조형팀
2002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졸업
2002년 가나아트갤러리 공공미술팀장
2002년 목원대학교 학부 <예술경영> 대학원 <박물관학> 강의 (가을학기)
2003년-2005년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
2003년 성신여대 대학원(봄-가을학기), 단국대 대학원(가을학기) 강의
2003년- 미술인회의 운영위원
2004년 성신여대 동양화과(봄), 대학원 조소과(가을), 조형대학원 서양화과(가을) 강의 / 서울시립대 대학원 강의(봄학기)
2005년 성신여대, 중앙대 봄학기 강의 / 경희대, 서울산업대, 성신여대, 세종대 가을학기 강의
2005년- 부산비엔날레 부산조각프로젝트 전시팀장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위원회 위원
2006년-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2006년- 공공미술위원회 사무국 팀장
2007년 석남미술상 젊은이론가상 수상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매개공간 운영단장
2007년-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논문 및 역서
▶ 〈예술학방법론 정초를 위한 기호학적 접근 - 벨라스께스의 ‘라스 메니나스’에 대한
의미분석을 중심으로〉, 《와우논총》, 홍대대학원, 1997.
▶ 김준기·이미옥 공역, 《제2미디어 시대》, 민음사, 1998.
(원저 Mark Poster, The Second Media Age, 1995)
▶ 〈1980년대 이후 한국 리얼리즘 미술에 나타난 현장성과 공공성의 문제>,
홍대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1.12
▶ <공론장과 예술가 주체의 문제>, 인물미술사학회, 2005.

주요 기획전
▶ 아트 인 부산 2009 : 인터시티, (부산시립미술관, 2009.9.12-11.22)
▶ 액티비스트 리포트, (대안공간반디, 2008.12)
▶ 아트 인 부산 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산시립미술관, 2008.5.29-7.6)
▶ 아트 인 대구 2007 : 분지의 바람 (우리들병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복합문화공간댓, 삼덕맨션, 2007.102-10.19)
▶ 아시아의 지금 : 세계화와 지역성, (서울 : 쌈지스페이스, 대안공간루프, 갤러리숲 2006.12. / 베이징 : 아라리오베이징 2007.1)
▶ 시각서사 (사비나미술관 2004.12.31-2005.2.26)
▶ 구본주, 별이되다 (사비나미술관, 인사아트센터, 덕원갤러리, 2004.12.8-12.28)
▶ 리얼링 15년 (사비나미술관 2004.6.18-8.6)
▶ 작업실 리포트 (사비나미술관 2004.1.7-2.25)
▶ 현장2003:A4反戰 (까페시월 2003.3.29-4.30)
▶ 현장2002:대통령 選巨前 (까페시월 2002.12.10-19)
▶ 현장2002:로컬컵 (쌈지스페이스 2002.8.6-8.20)
▶ 현장2001:건너간다 (성곡미술관 2001.7.24-8.16)
▶ Art Side Video : 김세진 김지현 김창겸 이중재 (아트사이드넷 99.11.4-11.28)
▶ 환경기획전 : 동강별곡(東江別曲) (가나아트센터 99.7.27-8.8)
권태균 박홍순 배병우 정동석 박한수 김세진 김창겸 박현선 이중재 김준권 이인철
박대성 박병춘 사석원 이종목 권순철 김재홍 양만기 임옥상 최진욱 홍성담 (이상 21인)
▶ 고암 이응노 10주기전 : 統一舞 (가나아트센터․조선일보미술관 99.4.2-4.22)
* 전국 순회전 기획 및 진행 : 광주시립미술관, 부산 국제신문사갤러리,
울산 현대아트갤러리, 대전시립미술관전관, 수원 경기도문화예술회관
▶ 돌아봄 : 관조와 응시 - 구본주, 김덕기 / 화랑미술제 (예술의 전당 98.10)
▶ 가나아트센터 개관기념전 : 거장의 향기 - 장욱진,박생광, 권진규 (98. 9.1-20)
▶ 오치균 개인전 5대도시 순회 기획(1998년)
(신세계 가나아트,서울/ 맥향화랑,대구/ 공간화랑,부산/ 신세계갤러리-광주,인천)
▶ 인사동 문화발전을 위한 명사100인전 (노화랑, 동문당, 가나아트스페이스 98.4.9-13)

사비나미술관 전시들
▶ 김준 : tattoo you (사비나미술관, 2005.4.27-5.29)
▶ 이희중 개인전 (사비나미술관, 2005.3.9-4.17)
▶ 유근택 : 일상 너머 일탈의 서사 (사비나미술관, 2004.10.6-10.24)
▶ 김재홍 : 야만의 흔적 (사비나미술관, 2004.11.1-11.24)
▶ 원혜연 : 지상(地上)의 시간들 (사비나미술관, 2004.5.14-2004.6.9)
▶ 김영종 : 난곡 이야기 (사비나미술관, 2004.4.13-2004.5.13)
▶ 권여현 :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다 (사비나미술관, 2004.3.7-2004.4.7)
▶ 신장식 : 10년의 그리움, 금강산 (사비나미술관, 2003.11.17-2003.12.27)
▶ 김명숙 개인전 (사비나미술관, 2003.9.24-2003.10.19)

가나아트센터 전시들
▶ 하인두 10주기전 : 혼불, 그 빛의 회오리 (가나아트센터 99.11.12-11.28)
▶ 이영배, 숯의 감성 (예술의 전당 99.10.2-10.10)
▶ 1999 脫獄, 홍성담 (가나아트센터 99.8,12(목)-8.29)
▶ 이종상 한그림 40년 (99.5.4-5.19)
▶ 김병종 : 생명의 노래 (99.3.4-3.15)
▶ 그림 속 문자 : 남관, 이응노, 김창렬, 오수환, 조선시대 고미술품 (99.1.26-2.17)
▶ 김종영상 수상작가전 : 박희선 윤영석 정현도 (98.11.26-12.6)
▶ 김종영 특별전 : 그림과 조각 (98.11.26-12.6)
▶ ’98 고영훈 : 솔거를 위하여 (98.11.12-11.22)
▶ 최종태 : 不惑에서 耳順까지 (98.10.29-11.8)
▶ 한국의 美 : 조선공예 (98.10.15-10.25)
▶ 文信, Wooden Symmetry (98.10.15-10.25)
▶ 개관기념전 2부 : 가나화랑 전속작가전 (98.9.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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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학력
2006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 전공 박사과정 수료
2002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과 졸업
1995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경력
1997-2002 가나아트 기자, 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 공공미술팀장
2003-2005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
2003-2006 미술인회의 운영위원, 이사
2005-2006 부산비엔날레 부산조각프로젝트 전시팀장
200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위원회 위원
2006 공공미술위원회 사무국 팀장
2006-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2007 석남미술상 젊은이론가상 수상
2007-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논문 및 번역
김준기·이미옥 공역, 《제2미디어 시대》, 민음사, 1998
1980년대 이후 한국 리얼리즘 미술에 나타난 현장성과 공공성의 문제, 홍대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1.12
공론장과 예술가 주체의 문제, 인물미술사학회, 2005

주요기획전
아트 인 부산 2009 : 인터시티, (부산시립미술관, 2009.9.12-11.22)
액티비스트 리포트, (대안공간반디, 2008.12)
아트 인 부산 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산시립미술관, 2008.5.29-7.6)
아트 인 대구 2007 : 분지의 바람 (우리들병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복합문화공간댓, 삼덕맨션, 2007.102-10.19)
아시아의 지금 : 세계화와 지역성, (쌈지스페이스, 대안공간루프, 갤러리숲 2006.12. / 아라리오베이징 2007.1)
구본주, 별이되다 (사비나미술관, 인사아트센터, 덕원갤러리, 2004.12.8-12.28)
리얼링 15년 (사비나미술관 2004.6.18-8.6)
작업실 리포트 (사비나미술관 2004.1.7-2.25)
A4反戰 (까페시월 2003.3.29-4.30)
로컬컵 (쌈지스페이스 2002.8.6-8.20)
건너간다 (성곡미술관 2001.7.24-8.16)
동강별곡(東江別曲) (가나아트센터 99.7.27-8.8)
거장의 향기 : 장욱진, 박생광, 권진규 (가나아트센터, 98. 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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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1968-)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1988-1995)와 같은 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1995-2002)을 마친 후 예술학 전공 박사과정(2004-)을 수료했다. 미술전문지 ≪가나아트≫ 기자(1997-2000)로 일했고, 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1998-1999), 공공미술팀장(2001-2002)으로 일했으며, 사비나미술관에서 학예연구실장(2003-2005)으로 일했다. 2006년 부산비엔날레 조각프로젝트 전시팀장으로 일했으며, 공공미술추진위원회 팀장으로서 <아트인시티 2006> 프로젝트 매니저 일을 했다. 2007년에 석남미술상 젊은 이론가상을 받았으며, 경희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건너간다’(2001). ‘작업실리포트’(2003), ‘리얼링15년’(2004), '아시아의 지금 : 세계화와 지역성'(2006) , 아트인대구2007 : 분지의 바람(2007)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1980년대 이후 한국리얼리즘미술에 나타난 현장성과 공공성의 문제’, ‘구본주론’, ‘정정엽론’, ‘박경주론’, '박이창식론'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실천과 새로운 공공미술' 등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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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 Jungi

Curator, Busan Museum of Art
40 APEC-Ro Haeundae-Gu Busan 612-022 Korea
artbusan.go.kr
T. +82 (0)51 740 4245 / F. +82 (0)51 740 4281

www.gimjungi.net
C.P. +82 (0)11 9500 9000
artpd68@naver.com


Born at June 1968

B.A from Hong-Ik University (1988-1995)
M.A from the Graduate School of Hong-Ik University (1995-2002)
Finished working for Ph.D in Hong-Ik University (2004-2006)

Curator in Busan Museum of Modern Art(2007-)
Team leader in Public Art Comitee(2006)
Exhibition team leader of Sculpture Project in Busan Biennale(2005-2006)
Chief curator in Savina Art Museum (2003-2005)
Public art team leader in Gana Art Gallery (2001-2002)
Exhibition planner in Gana Art Center (1998-1999)
Reporter for the art magazine Gana Art(1997-2000)

'Cross over' (2001), Atlier Report (2003), Real -ing(2004)
A thesis titled as 'Issues on the public and the site in Korean Realism Art since the 1980s' Criticisms on Gu Bon-ju, Jung Jung-yup, Park Kyung -ju, and Park Lee Chang-shik.

1987 : Graduated from Busan Daedong high school
1988 : Entered Art Department of Hong-Ik University
1989-92 : Served as a military man in the third army division(Cholwon)
1992 : Worked for the planning team in Mirae Event(Busan)
1995 : Graduated form Hong-Ik University
1995 : Entered the Graduate School o f Hong-Ik University
1996 : Served as a chair for the student's Union
1997 : Worked as a reporter for the monthly art journal (May. '97 t- Dec. in total for seven issues, in charge of reporting and editing)
1998 : Worked as a researcher
1998 : Worked for the quarterly art journal (Spring. '98- Summer. '00, in total for ten issues, in charge of reporting)
1998-99 : Worked as an exhibition planner for Gana Art Center(from Sep. '98)
2000 : Worked as a chief reporter for a web magazine (www.ganaart21.com)
2001 : Worked in an environmental art team in Gana Art Gallery
2002 : Graduated from the graduate school of Hong-Ik University
2002 : Worked as a leader for the public art team in Gana Art Gallery
2002 : Lectured on in the graduate school for art management in Mokwon University (Fall)
2003 : Worked as a chief curator at Savina Art Museum
2003 : Worked as a commissioner Misulin Group
2003 : Lectured in the graduate school of Sungshin Women's University(Spring, Fall), Dankook University(Fall)
2005 : Lectured in Sungshin Women's University, Dankook University, Chung-ang University, Sejong University
Korean Painting Department, Sculpture Department, in the graduate school(Fall) the graduated school of University of Seoul(Fall)
2005 : Working as a team leader in Sculpture Project in Busan Biennale

Thesis and Translation

▶ The Second Media Age written by Mark Poster, 1995 (translated with Lee Mi-ok in 1998) for the thesis of the degree of M.A in the graduate school of Hong-Ik University
▶ 'Issues on the public and the site in Korean Realism Art since the 1980s' Dec. 2001

Major Exhibitions

▶ Visual Narrative(Savina Art Museum, Dec. 31st 2004 to Feb. 26th. 2005)
▶ Gu Bon-ju, an everlasting star(Savina Art Museum, Insa Art Center, Dukwon Gallery, Dec. 8th. 2004 to Dec. 28th)
▶ Real-ing the fifteen years(Savina Art Museum, June 18th. 2004 to Aug. 6th)
▶ The site 2003: A4 anti-war(the Cafe October, Mar. 29th 2003 to April. 30th)
▶ The site 2002: President 選巨前 (a mockery on the presidential election) (the Cafe October, Dec. 10th to 19th)
▶ The site 2001: Cross over (Sunggok Art Museum, July. 24th 2001 to Aug. 16th)
▶ Art Side Video : Kim Se-jin, Kim Ji-hyun, Kim Chang-gyum, Lee Jung-jae(Art Side Net, Nov. 4th 1999 to Nov. 28)
▶ Exhibition for the environment: A Farewell Song for Dong gang(Gana Art Center, July 27th. 1999 to Aug. 8th) - Kwon Tae-kyun, Park Hong-sun, Bae Byung-woo, Jung Dong-suk, Park Han-su, Kim Se-jin, Kim Chang-gyum Park Hyun-seon, Lee Jung-jae, Kim Jun-kwon, Lee In-chol, Park Dae-seong Park Byung-chun, Sa Seok-won, Lee Jong-mok, Kwon Sun-chol, Kim Jae-hong, Yang Man-gi, Yim Ok-sang, Choi Jin-wook, Hong Seong-dam (in total twenty one persons)
▶ Exhibition for the 10th anniversary of Koam Lee Eung-no's death :統一舞(a dance for the unity) (Gana Art Center/ChosunIibo Museum April 2nd 1999 to 22nd)
* Kwangju Art Museum, Busan International Shinmun Gallery, Ulsan Hyundae Art Gallery, Daejeon Art Museum, Suwon Gyeonggido Art Center
Road Exhibition across the country
▶ Looking back : Contemplation and Gaze -Gu Bon-ju, Kim Deok-gi / Hwarang Art Festival (Seoul Art Center Oct. 1998)
▶ The Grand Open Exhibition for the Gana Art Center: The Fragrance of Masters -Jang Wook-jin, Park Saeng-kwang, Kwon Jin-gyu (Sep. 1st, 1998 to 20th)
▶ Oh Chi-kyun's road exhibition around five big cities (1998) (Shinsegae Gana Art, Seoul/ Machyang Gallery, Daegoo/Space Gallery, Busan/ Shinsegae Gallery-Kwangju, Inchon)
▶ Exhibition of the one hundred celebrities developing the culture of Insadong (No Gallery, Dongmundang, Gana Art Space April 9th 1998 to 13th)

Exhibitions in Savina Art Museum

▶ Kim Jun: Tatto You (April. 27th. 2005 to May. 29th)
▶ Solo Exhibition of Lee Hee-jung (Mar. 9th. 2005 to April. 17th)
▶ Ryu Keun-tak : Deviant Narration Beyond Daily Lives (Sep. 24th. 2003 to Oct. 19th)
▶ Kim Jae-hong: Traces of Brutality (Nov. 1st to Nov. 24th)
▶ Won Hye-yeon : Time on the Earth (May. 14th. 2004 to June. 9th)
▶ Kim Young-jong : Nangok Story (April. 13th. 2004 to May. 13th)
▶ Kwon Yeo-hyun : Traversing between the West and the East and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Mar. 7th. 2004 to April. 7th)
▶ Shin Jang-shik : Missing Mt. Kumkang over the past ten years (Nov. 17th. 2003 to Dec. 27th)
▶ Kim Myung-sook solo Exhibition (Sep. 24th. 2003 to Oct. 19th)


Exhibitions in Gana Art Center

▶ Exhibition for the tenth anniversary of Ha In-doo's death : A Spiritual Flame: The whirlwind of the glow(Nov. 12th. 1999 to Nov. 28)
▶ Lee Young-bae, Sensibility of Charcoal (Oct. 2nd 1999 to Oct. 10th)
▶ 1999 Prison Breach , Hong Seong-dam (Aug. 12th. 1999 to 29th)
▶ Lee Jong-sang The Great Painting over the forty years(May. 4th. 1999 to May. 19th)
▶ Kim Byung-jong: A Song for a Life(Mar. 4th. 1999 to 15th)
▶ Letters in Painting : Nam Kwan, Lee Eung-no, Kim Chang-ryul, Oh Su-whan, Chosun Era Antique Artworks (Jan. 26th. 1999 to Feb. 17th)
▶ Exhibition for the awardees for Kim Jong-young Award: Park Hee-sun, Yoon Young-seok, Jeong Hyeon-do (Nov. 26th. 1998 to Dec. 6th)
▶ Special Exhibition of Kim Jong -young : painting and sculpture (Nov. 26th. 1998 to Dec. 6th)
▶ '98 Ko Young-hoon : Commemorating Solger (Nov. 12nd 1998 to 22nd)
▶ Choi Jong-tae : From 不惑(the forty years old) to 耳順(the sixty years old) (Oct. 29th. 1998 to Nov. 8th)
▶ Beauty of Korea : Art Craft of Chosun Era (Oct. 15th. 1998 to 25th)
▶ Moon Shin, Wooden Symmetry (Oct. 15th. 1998 to Oct. 25th)
▶ The Second Part of Grand Open Exhibition for the Gallery Gana : Exhibition for the Artists attached to The Gallery Gana (Sep. 24th. 1998 to Oct. 11th)

2009/11/02 13:43 2009/11/0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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