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 기반의 다원예술
한국 예술계의 새로운 개척자들에 관한 리포트와 제언
1.
이 글은 2007년 한 해 동안 진행된 시각예술 기반의 다원예술 영역을 갈무리해서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한국 예술계의 개척자들의 면면을 들여다 볼 것이다. 특히 시각예술 기반의 다원예술을 다룰 텐데, 이때 전제로 삼아야 할 대목이 여기서 다룰 다원예술의 범위를 정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다원예술은 지원정책을 위한 범주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그러다보니 탈장르, 복합장르, 소외장르 등의 여러 가지 개념들이 섞여있다. 따라서 그러한 현상을 연보 수준으로 정리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문예연감에서 새로 만든 다원예술 분야의 기록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난점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분석 대상을 지원정책에 의해 노출된 프로젝트로 한정했다. 이 글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2007년 다원예술 공모를 거쳐서 진행된 프로젝트 55개이다. 다원예술로 분류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의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신뢰할만한 정보를 취합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이들 프로젝트들에 한정해서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다원예술을 다뤄볼 것이다.
다원예술 분야의 시각예술이란 어떤 것인지 그 영역을 가늠하는 일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다원예술 프로젝트들이 탈장르 또는 혼합장르를 지향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 시각예술 기반의 프로젝트들을 따로 분별해보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에 관해 나름의 선을 두고 가야할 것이다. 이 기록은 수많은 다원예술 프로젝트들 속에서 1) 시각예술 영역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예술가들이 고유의 영역을 벗어나서 벌이는 프로젝트, 2) 전시회 등과 같이 시각예술의 전형적인 장을 채택하면서도 그 바깥의 장르를 끌어들이고 있는 프로젝트, 3) 직업적인 시각예술가가 여는 전시회와 같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조형이나 영상 등과 같이 시각 미디어를 활용한 프로젝트 등을 중심으로 시각예술 기반의 다원예술을 찾아볼 것이다. 이때 시각예술적인 콘텐츠가 어느 정도의 예술적 가치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했음을 밝힌다. 기록과 비평의 간극에서 기록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2007년의 다원예술 일반의 지원은 55개 프로젝트인데,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수를 시각예술 기반의 프로젝트로 분류할 수 있다. 기금의 규모로 보면 총 8억원의 지원예산 가운데 절반을 상회하는 4억원 이상의 예산이 시각예술 관련 프로젝트에 투여되었다. 물론 시각예술의 요소를 가지고 있되 타 장르와의 혼합이나 특정 장르의 고유한 어법을 벗어나려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음은 다원예술의 특성상 기본적인 조건일 것이다. 여기에 언급하는 프로젝트들은 한국사회의 예술지형을 선도하는 사례들이다. 이들 프로젝트는 전시, 워크숍, 출판, 축제, 공연 등의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이 가운데는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데는 한계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다원예술의 가능성을 향해 나름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장점 부분을 주로 언급하고자 한다. 글의 후반부에서는 시각예술과 관련된 제도들, 가령 미술문화공간이나 미술시장, 미술대학, 미술가단체 등이 안고 있는 한계상황에 비해 시각예술 기반의 다원예술이 지금의 열악한 조건을 극복했을 때의 열린 가능성에 대해 언급할 것이며, 그 열린 가능성을 향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개척자들에 관한 나름의 제언도 덧붙일 것이다.
2.
전시 형태로 드러난 프로젝트들은 기존의 전시장을 비롯해서 생활공간으로 파고드는 데 이르기까지 그 진폭이 크다. 작품의 생산과 관람이라는 단선적인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주민이나 관람자와의 상호소통을 전제로 한 기획들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민예총대구지회의 <한 사진기 수리공의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또는 미래의 명장에게 바치는 종합예술 전시회’라는 부제를 가진 전시 프로젝트이다.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한 사진기 수리공 이야기를 모티프로 전시를 비롯해 출판에까지 이르는 사업으로 1차창작과 동행하는 예술 관련 노동에 관해 천착하는 기획이다. 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다방이 주최한 <SO.S 프로그램 2007>은 워크숍을 통해서 전시 콘텐츠를 창출하는 프로젝트이다. 소(小) 사루비아 공간을 꾸려서 디자인이나 패션 등 다른 장르의 콘텐츠를 다루는 장르간 협업을 시도해서 전시영역의 상투적인 소통 방식을 넘어서는 기획이 돋보였다.
아트파크의 <ART IN PHILOSOPHY "철학 & 예술">은 철학과 예술의 상호 소통을 모색하는 전시 프로그램이다. 예술 속 철학을 다루는 세미나를 열고 철학의 대중화를 위한 워크숍과 미술심리치료 프로그램, 철학만화 상영 등 다양한 시각예술 콘텐츠로 철학을 다루고 전시 프로그램으로 연결시킨 기획이다. 홍대앞을 중심으로 대안미술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갤러리킹의 <Com Com-‘디지털 확성기‘전>은 시각예술 관련 작가들과 대중들을 연결시키는 전시 프로그램이다. 작품 감상이라는 단일한 채널이 아니라 작업실, 전시장, 토론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회화, 사진, 설치, 일러스트, 영상, 애니메이션, 사운드아트 등 다양한 매체의 예술을 체험하는 생산적인 소통의 장이다.
노동문화네트워크의 <2007 노동만화전 '들꽃'>은 만화 전시 프로그램이다. 노동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활동한 창작 성과를 전시하는 것이 기본 포맷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하며, 일하는 사람들, 이웃의 이야기를 아마추어의 시각으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빡빡한 예술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신선한 프로젝트이다. 예술의 생산자와 향유자를 구분하는 경계를 허물고 예술교육을 문화생산의 차원으로 한 단계 성숙시킨 기획이다. 대안공간미끌의 <ARTIST'S DIY MANUAL>은 전시 프로젝트이다. 스스로 만들기(DIY : Do It Yourself) 개념을 끌어들여서 미술가, 음악가, 영화감독, 디자이너, 문화경영인 등 다양한 분야의 참가자들이 모여서 예술작품을 생산하고 매뉴얼을 작성한 기획이다. 자가제작의 트렌드를 새로운 예술창작의 계기로 삼았으며, 탈장르적인 작가선정과 소통방식이 돋보인 기획이다.
안양의 대안예술공간스톤앤워터의 <기억프로젝트_사람을 찾습니다>는 시각예술 기반의 프로젝트이자만 사실은 인류학이나 사회학적 이슈를 다루는 일종의 리서치 프로그램이다. 물론 그 결과를 전시 프로그램으로 연결시킨 것이 최종 결과물이다. ‘안양통학생일동 1941년 2월 11일’이라는 문구가 있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가지고 그 속의 28인을 찾아 릴레인 인터뷰를 가지고 그 자료들을 아카이빙해서 전시 콘텐츠로 엮는 기획이다. 역사 속에 묻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한국 현대사에 담긴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성찰적인 기획의도와 인터뷰 방식의 과정이 아름다운 기획이었다. 퍼슨웹의 <80바이트>는 전시와 출판을 아우르는 프로젝트이다. 디지털 환경의 글쓰기에 대해 묻는 작업이다. 사진가, 국문학자, 디자이너, 시인 등의 협업이 돋보이며, 미디어 아트를 시각적 측면에서만 사고하는 관행을 깨고 문자언어 소통의 장으로 보고 타이포그라피의 인문학적 역할을 성찰하는 프로젝트이다.
사례발표, 학술토론,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의 워크숍들도 좋은 성과들을 남겼다. 민예총충북지회의 <문화예술경영아카데미>는 강연 중심의 아카데미 프로그램인데, 문화지형연구, 문화예술정책을 비롯해 공동체예술, 공공미술 등과 관련한 사례발표의 장을 가짐으로써 작품 위주의 비평적 담론이 아니라 공공영역에서의 실천을 통해서 시대와 동행하는 예술가의 역할모델을 탐구하는 장을 만드는 기획이다. 한국사회에서 지역문화예술운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꼽히는 충북 청주에서 열린 이 프로그램은 장르개념에 갇힌 예술을 사회적 활동의 역장으로 끌어내려는 기획의도를 담고 있다. 사비나미술관의 <아티스트 프로젝트2>는 미술관과 KIST가 협업을 통해서 새로운 미디어 아트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워크숍 프로젝트이다. ArtiST(Art in Science & Technology)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듯이 과학기술과 예술을 상호소통의 지평에서 만나게 하는 이 프로젝트는 2006년의 전시 프로젝트 성과를 바탕으로 두 영역의 전문가 집단이 모여 세미나를 가지고 학술연구 성과물을 내는 사업이다.
그음공간의 <그음공간>은 강연과 워크숍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이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전신과학 등 예술 영역 바깥과의 교류를 시도함으로써 쌍방향 소통을 시도하고 결과발표 전시회를 열고 결과물을 남기는 것이 이 기획의 목표이다. 양평을 비롯해서 경기도 인근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프로젝트로서 중심권력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영역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 각별하다. 19557의 <모바일 해킹 워크샵>은 해킹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컴퓨터 보안 전문성이라는 면에 초점을 맞췄다. 핸드폰을 가지고 상식과 일상을 넘는 쓰임을 만들고, 새로운 예술창작을 실험하는 일이 이 워크숍의 목표이다. 이들의 해킹 워크숍이 의미있는 것은 전시장 콘텐츠로 꽂히기만을 학수고대하는 미디어 아트의 권력의지가 팽배한 현실에 비해서 변화해가는 정보 생산과 소통 방식에 유쾌하게 적응하면서 창의력의 새로운 원천을 발견하려는 미디어아트 본연의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영의 <연희동 195 레지던시>는 임시 거주를 통해서 생활공간에 파고드는 프로젝트이다. 베를린, 뉴욕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내외 작가들이 연희동 195번지에 거주하면서 소통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미술가들과 건축가들이 ‘A hundred ideas and ten thousand combination’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건축적 개입과 벽화, 드로잉, 페인팅 등 다양한 방식의 협업과 워크숍을 펼쳤다.
출판을 최종 콘텐츠로 제시한 프로젝트들도 많았다. 우리만화연대의 <우리만화>지 발간사업은 시각예술과 연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성의 예술영역에 편입하지 못하고 다원예술 영역의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는 만화 영역의 기획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만화가들이 극만화, 만평, 컬럼, 인터뷰 등 다양한 만화 콘텐츠를 다루었다. KOPAS영상제작소의 <비쥬얼 한국의 퍼포먼스아트(40년 역사 속으로)>는 출판을 통해서 퍼포먼스 아트의 역사를 정리한 기획이다. 특히 이 기획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의 퍼포먼스 아트를 총 정리한 전시 프로그램과 미묘한 대비를 나타냈는데, 퍼포먼스를 그룹 활동을 지속해온 현장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권위적인 시각예술의 권력에 의해 박제화하지 않은 야성이 살아있는 콘텐츠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사업이었다. 국가단위의 상징권력으로 직조하는 미술의 시각이 아닌 퍼포먼스 아트 자체의 생동감 있는 시각을 경청할 수 있는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
넥스아트의 <커뮤니티페이퍼 "넥스아트_NEXTART" 발행> 프로젝트는 주로 홍대앞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원예술의 콘텐츠들을 모아서 정기간행물을 발행하는 출판 프로젝트이다. 이 출판물은 커뮤니티 페이퍼를 지향한다. 이른바 동네사람들이 나눠볼 수 있는 무가지를 발행하여 서울이라는 거대도시, 또는 한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큰 목소리를 내는 매체가 아니라 홍대앞이라는 장소를 하나의 지역으로 인식하고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탈장르, 복합장르 경향의 예술을 조망하는 따뜻한 매체이다. 대안공간루프의 <동양적 시각성 포럼집 출간> 프로젝트는 워크숍 성과를 집대성한 출판 사업이다. 심포지움을 열고 그 결과를 출판물로 묶어내는 이 기획은 동양미학의 가능성을 재발견하기 위해서 각계 학자들의 견해를 듣고 토론한 자리이다. 20세기 버전의 동도서기를 넘어서 도와 기의 합일을 지향하는 21세기를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동양화’라는 범주 개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볼 때 이 프로젝트는 미술의 논리에 갇힌 영역다툼을 넘어서기 위한 진지한 성찰이 담긴 기획이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의 <뉴미디어 실크로드>는 뉴미디어 기반의 액티비스트 콘텐츠를 공모를 통해서 조명하는 출판 프로젝트이다. 서울 뉴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는 기획자가 세계의 뉴장르 공공예술 관련 행사들을 참관하고 정보를 가공해서 연구자료를 구축하고 아카이브를 만드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주노동자방송국의 <'아시아의 친구들" 아동 동화 기획출판>는 시각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적 소통으로서의 예술적 실천에 초점을 맞춰온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출판으로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직접 작가로 참가해서 각 나라별로 주요 이슈로 부각하는 사안들을 이야기 주제로 선정하고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 동화책을 만들었다. 인터넷 방송국 활동의 방식을 출판과 교육으로 확장함으로써 오프라인 기반의 활동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축제의 방식은 다원예술 다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특정 공간의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다문화 양상을 반영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DMZ-KOREA의 <역의 정점>은 시각예술 기반의 축제 프로그램이다. 전시, 세미나, 퍼포먼스, 미디어/필름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분단국가의 상징인 DMZ를 모티프로 동아시아의 현실을 담아내는 기획이다. 시각예술이 빠져들기 쉬운 감상적 접근의 오류와는 정반대로 정치적 이슈를 다루며 전지구화 시대의 소통 구조를 거시적인 안목에서 다루는 기획의 배치가 돋보였다. 아트포럼 일상의 예술의 <골목설치 해프닝 : 삼덕동 골목 퍼포먼스 -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는 대구 삼덕동을 중심으로 지속되어온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예술의 공공성 논의를 기반으로 다원예술의 영역을 넓히는 사업이다. 골목설치에 참여한 미술가들과 그곳에서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벌인 배우들 그리고, 마을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통합 개념의 마을 축제이다.
일상예술창작센터(프리마켓사무국)의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은 조형예술 생산품의 일반적인 소통 경로를 거리의 일시적인 축제 방식으로 뒤바꾼 사업이다. 일상예술창작센터 광주지부의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무등골 예술시장 프리마켓>은 지역의 도시에서 마켓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 펼치는 문화장터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시민들이 일상용품들을 거래하는 장터의 개념을 끌어들여 예술작품을 거래하는 서울 홍대 앞의 작은 장터에서 출발해서 각 도시로 확장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한 생활예술운동으로 자리잡았다. 테러제이(TerrorJ)의 <제6회 제주 '머리에 꽃을' 거리 예술제>는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비가시적인 행위의 형태로 과정으로서의 예술, 또는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예술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기획이다. 텐트를 치고 특정 장소를 방문해서 일정기간 기거하는 방식의 퍼포먼스를 비롯해서 공연과 설치, 전시, 영상 등 다양한 예술 콘텐츠들을 가지고 제주도 곳곳을 방문하는 프로젝트의 배치가 돋보인다.
공연장이나 전시장에서 열린 공연들도 다원예술의 맥락을 향해 진화하고 있다. Sun Day Project Group의 <Sun Day Project in Berlin - 안방>은 시각예술 기반의 공연 프로그램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이 행사는 시각예술과 무용, 음악, 디자인 등의 통합장르로 구성된 공연으로서 안방이라는 한국적 맥락의 공간 개념을 다룬다. 세계의 예술이 집결하고 있는 소통의 창구, 베를린에서 한국의 독창적인 예술적 에너지를 소개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신기운의 <"335_Orch"_갤러리에서 만나는 크로스오버 현대 예술의 만남>은 음악 콘텐츠를 갤러리 프로그램으로 연결한 공연 사업이다. 영상 작가 신기운이 갤러리 공간을 이용해서 여러 음악가들과 협업한 프로젝트이다. 영상이 음악과 만나는 일이 주로 음악의 서사를 보조적으로 후행하거나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주지위한 도구로 치부되는 반면에 이 프로젝트는 영상 작가를 중심으로 공연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홍성민의 <Palimpsest;Operalara (오페라의 요령)>은 연국과 춤, 퍼포먼스, 뮤지컬, 영상 등 거의 모든 예술영역을 총체적으로 결합시킨 다원예술 프로젝트이다. 모든 장르와 요소들을 해체해서 새로운 장에서 융합하도록 한다는 목표에 걸맞게 공연 자체의 스케일이나 상투성을 벗어난 서사의 구성으로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시나리오, 안무, 무대, 연출 등 모든 영역을 총괄한 예술감독의 창의력이 돋보였다. 특히 공연을 앞두고 벌어진 사회적 사건을 다루기도 함으로서 동시대의 서사를 순발력 있게 도입하는가 하면, 그와 정반대로 사건과 사건의 맥락을 철저하게 분절적인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일관된 서사체계에 입각한 플롯의 구성을 파괴함으로써 서사가 주도하는 극적 구성의 한계를 벗어난 점은 시각예술을 비롯해 문학과 음악, 무용 등 다장르를 섭렵하면서도 어느 한 곳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으려는 태로도 읽혔다.
3.
문화권력의 인정 시스템과 미술시장, 미술관련 교육기관과 전문가 그룹의 조합주의 등은 시각예술 기반의 다원예술이 넘어야할 거대한 과제이다. 시각예술의 완고한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시도들이 파편화한 실험으로 그칠 공산도 없지 않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결함 탓이겠지만, 문화예술위원회 차원에서 고려해야할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언급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기존의 시각예술이 그 너머의 세계를 열고자하는 시도들을 적극 권장하는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 그 조건이란 정보 생산과 소통의 방식이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뉴미디어 분야의 이론적 배경과 기술적 재생산 구조가 결여한 한국의 예술계에서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하다. 기성의 작가들은 물론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교육과 발굴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 큐레이터, 미디어 작가, 과학자, 음악가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나는 장을 만들고 전시 및 기록물 제작에 이르기까지 후속작업을 벌여서 학제간 교류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커다란 과제이다.
다원예술이라는 지원정책 개념과 시각예술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난 몇 년간 이 문제를 두고 다원예술위원회 차원에서도 많은 논의를 거쳤지만, 지원정책의 개념과 예술학적 분류 개념 사이의 간극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이론적 설정을 앞세운 후에 실제의 사례들을 분석했을 때의 오류와 마찬가지로 실재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론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 또한 위험천만하다. 아직 이론과 실재를 상호성의 관점아래서 가늠할 만큼의 풍부한 사례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린 자세의 논의를 위해서 이 글이 주목하고 있는 문제, 즉 시각예술 기반의 다원예술에 관한 논의를 위해서 시각예술의 장이 그 바깥의 장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해명하는 것이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단순히 어느 분야에서 지원예산을 받아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느냐의 구분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시각예술은 미술이라는 용어로 굳어진 예술영역이다. 역사상 시각 정보의 생산과 향유를 통해서 소통기제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구상은 문화권력의 중심화와 시장권력의 비대화로 인해서 사실상 박제화 되어 버렸다. 그것은 근대적 의미의 미술제도가 꿈꿨던 독자적인 지식 영역으로의 자리매김이라는 이념을 근본적으로 폄훼했다. 미술제도는 이제 더 이상 동시대의 현실과 시대정신을 갈파하는 지식생산의 영역으로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주문생산의 방식이 현대미술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다는 비평계의 자성이 나온 지 오래다. 이전처럼 직접적인 주문생산이 아니더라도 미술제도의 가시권의 진입했거나 그러기를 원하는 예술가들은 문화권력과 시장권력의 호명에 복종하는 문화재생산자나 상품생산자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원예술의 논점에서 기성의 제도화한 시각예술/미술의 한계를 넘어서서 변별점을 형성할 가장 큰 이슈가 여기에 있다. 다시 시각예술이 어떻게 자신의 영역을 변별하는지에 주목해보자. 시각예술은 지난 1세기동안 고유의 역장을 확고하게 안착시켰다. 그 정점에 미술관과 미술시장이 있다. 그 배후에 미술교육과 미술가조합이 있다. 시각예술은 미술관의 보수적인 권위와 미술시장의 화폐권력, 그리고 미술교육 기관의 재생산 구도, 미술가단체의 기득권 등이 창출해낸 이 시대의 합의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지탱되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각예술 기반의 다원예술이 새로운 영역을 형성할 당위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지원정책의 개념이든 새로운 미학/예술학적 개념이든 간에 다원예술은 기성의 고정된 가치 주변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진단과 해답의 제시는 위의 언급을 통해서 더욱 분명해졌다. 첫째, 미술관의 인정 시스템을 뒤흔드는 예술생산과 향유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미 대안공간 실험들을 통해서 상당 부분 가능성을 보인 듯한 이 문제는 그러나 그리 간단하지 않다. 대안공간의 제도화 과정에서 이미 그 역할을 다했다는 자성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동네의 시각에서 보자면 아직도 대안공간은 걸어온 길보다 가야할 길어 더 많이 남았다. 그러나 다원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판이하게 다르다. 집이 부족하다. 아니 거의 없다. 기존 제도로부터의 이탈을 꿈꾸는 예술가들이 활동하면서 시민들과 접점을 형성할 다원예술의 집말이다. 다원예술매개공간 활동이 그 해소 방법을 일부 제시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지속적인 프로그래밍과 네트워킹이 있어야 한다. 각 도시별로 자생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나 대안적인 공간 운동에 주목하고 주체들을 네트워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도 매우 시급하다. 그 네트워크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을 마련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공간의 교류와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프로그램의 네트워크를 이루기까지 가야할 길이 멀다.
미술시장의 호명에 순응하지 않는 새로운 교환 체계를 만드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예술노동을 사회적 노동으로 용인하고 사회적 교환 체계로 편입할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기존의 예술시장은 철저하게 상품교환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거의 대다수의 예술작품들은 생산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상업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시장과의 접촉이 다소간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시각예술 영역에서도 시장의 간접적인 호명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예술작품이라는 상품을 낱개의 콘텐츠로 파편화시키는 교환 시스템을 대체할 다른 방식을 찾아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공미술 방식처럼 공공의 기금을 쓰는 일이니 공공의 요청을 수용해서 주문생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가시적인 비인격적인 시장 시스템을 대체할 가시적이며 인격적인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특히 미술제도 바깥에 위치한 다원예술가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문제이다. 예술노동을 소외의 국면에서 구출할 대안으로 거론되는 공공예술, 사회적 기업, 예술교육 등 다양한 모색이 필요하다.
대학의 일방적인 재생산 구조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 대안적인 교육 시스템은 다원예술의 가치를 확산하고 안착화 할 거대한 밑그림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원의 특별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 물론 오늘날의 대학들 가운데 일부가 탈 전공으로 입시를 치르고 열린 교육을 지향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어디까지나 입시 얘기다. 좁은 시야의 장르 예술가들을 위한 전문가 재교육 시스템이 절실하다. 시각예술 관련 예술가들이 변화하는 정보양식에 창의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축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어쩌면 교육기관이 아닌 작가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훨씬 강력하고 신속한 해답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인 교육 영역을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특정 매체만을 위해 태어난 듯 착각하는 예술가를 양산한다면 다원예술은 제 자리를 잡기 힘들 것이다.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윤리의식과 전문성을 상실한 조합주의의 병폐에 물들지 않는 새로운 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요하다. 생활협동조합이 생활의 필요에 따라 교환방식을 재구조화했듯이 예술 영역에서도 예술 생산과 매개와 향유가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네트워크 방식이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특히 시각예술 기반의 예술가들은 공연이나 음악 쪽 작가들에 비해서 등단의 방식이 매우 개방적이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데, 이러한 자율적이면서도 혼란한 방식이 공존하는 이러한 분위기를 넘어서는 것이 제일의 관건이다. 이미 자생적인 소모임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생산자와 향유자 사이의 거리 좁히기가 좀더 체계적으로 자리잡아야한다. 독일과 같이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예술가를 후원하고 연구하는 예술조합 방식도 있다. 여기에는 예술가의 윤리의식과 전문성을 꼼꼼하게 따지는 자구노력과 더불어 시민사회화 동행하려는 낮은 마음이 필수적이다. 다원예술가협회와 같은 네트워크가 탄생할 가능성은 매우 적을뿐더러 현재의 통념상 사회에 뿌리내릴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그러나 다원예술의 맥락으로 만나는 예술가와 시민은 예술의 이름으로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전문가 집단의 정보독점 시대가 지나고 생산과 매개와 향유가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문화민주주의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 2007년 문예연감 기고문
trackback :: http://gimjungi.net/blog/trackback/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