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낱의 집들을 호명하는 마을 그림 : 김윤희

critic & column | 2008/10/31 18:51


낱낱의 집들을 호명하는 마을 그림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 그림의 지리적 좌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동네의 번지수와 같이 명확한 숫자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김윤희에게 있어 그림 그리는 행위의 현장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가령 ‘부암동’이라는 제목을 단 그림은 ‘부암동 97’, ‘부암동 332’, ‘부암동 329’ 등과 같이 번지수를 붙여서 화가 주체의 시선이 머문 곳을 표기하는 섬세함으로 이어진다. 그는 서울성곽 안이나 부용정 등 서울의 문화유적지를 담았다. 평창동과 행촌동 같은 마을과 경남 남해의 바닷가 마을과 정선의 가수리와 같은 오지 마을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그림들에 구체적인 이름을 적시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단지 풍경화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을 자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김윤희의 마을 그리기 작업은 스케치 여행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동학들과 함께 수시로 길을 떠났다. 학부 재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난 수년간 전국의 곳곳을 다니며 현장에서의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려왔다. 그가 살고 있는 서울은 물론 백두대간 골짜기를 따라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마을을 발견하기도 하고 남해안을 따라 긴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는 그곳에서 자연을 만나고 마을을 만난다. 그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언제나 따끈따끈한 현장 스케치로 옮겨진다. 자연을 대하는 화가의 마음은 그림을 대하는 관객의 마음과는 또 다른 법이다. 거대하고 위풍당당한 자연, 또는 소박하고 따뜻한 자연 그 모두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숭고를 되새기 게 하는 것. 이것이 자연의 힘이다. 김윤희는 그 자연의 힘을 아는 예술가이다.

김윤희는 그러나 자연 풍경만이 아닌 마을 풍경을 그린다. 그 풍경은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현장에서 사생한 실경들이다. 그는 스케치 여행의 현장에 존재하는 실재로서의 마을 풍경을 회화적으로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마을 자체를 자신의 마음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그는 여행을 통해서 만나는 풍경의 낯선 느낌을 자신의 감성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으로 그림 그리기를 진행했다. 그 낯선 느낌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 자연과 인공의 공존이다. 김윤희가 포착한 마을 풍경은 자연 속에 들어 있는 인공의 흔적들이다. 하나의 집은 그 자체로 완결된 우주를 담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소우주들은 서로 닮은 모습으로 뭉쳐있기도 하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흩어져있기도 하다. 이질적인 소우주들의 결합은 하나의 마을을 만들고 그 마을은 필연적으로 자연의 품안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 속에 포착된 인공의 흔적을 드러내는 일. 김윤희의 회화 세계는 이 명쾌한 내러티브로부터 출발한다. 문명의 세계에 던지는 김윤희의 제안은 인간들의 서식처인 마을의 모습을 색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그가 채택한 마을 풍경은 풍경을 지배하는 인공의 흔적들 가운데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집들의 집합체이다. 문명의 시원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집은 인류 문화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한 집들의 집합체인 마을 풍경을 바라보는 화가 주체의 시선은 의도적으로 조작된 풍경을 만들어냈다. 김윤희 풍경화의 차별성은 그것이 실경을 바탕으로 하되 화가의 감성에 의해서 특정한 영역이 선택적으로 조작된 정보 값을 가진 풍경이라는 데 있다. 그의 그림은 실재의 재현과 실재의 변용 사이에 걸쳐있다. 김윤희의 마을 그림은 실재 풍경을 나름의 규칙에 따라 정연하게 재현한 그리기와 그 풍경의 색채나 형태를 이질적인 요소로 변용한 그리기가 공존하는 그림이다.

김윤희는 자신의 시선에 포착된 마을 풍경에 감정을 이입해서 평면 위에 고정시켜 놓고 있다. 우리가 보는 마을 풍경은 김윤희의 눈이 걸러낸 풍경이다. 거기에는 그가 선택한 기호의 세계가 가득 차 있다. 그 집들을 그는 사실적인 재현이 아니라 감성적인 변용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가 그려낸 집들은 레고 블록 같이 알록달록한 색과 단순한 평면의 연쇄로 이루어져있다. 형광색이나 미색 또는 원색에 가까운 색들을 구사함으로써 흑백으로 처리한 자연 풍경들과 극단적으로 대결하는 구도를 만들어 낸다. 그의 레고 블록 집들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평면의 꿈을 담고 있으며 화려한 색을 입고 있다. 그러한 색채의 세계는 배경을 이루는 옅은 먹의 자연이미지들과 대비를 이루면서 김윤희 회화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 풍경을 시각적 기호 인지하고 그것을 조작하는 일은 김윤희 그림을 차별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는 그 풍경에 개입해서 자신의 감성에 따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 기호 값들을 변형하고 조작함으로써 이질적인 풍경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김윤희는 열린 마음으로 마을 풍경을 담아냈다. 그러나 그 마음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그가 아무리 마음을 담아 색을 입혔다고 하더라도 김윤희와 마을 사이에는 예술가라는 주체와 풍경이라는 객체 사이의 간극이 남는다. 아직 그는 마을 속으로 뛰어들지 안/못했다. 나는 김윤희라는 예술가가 화가와 풍경, 주체와 객체의 간극을 좁힐 것이라는 예측을 가지고 그의 그림을 대면한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마을 그림이 회화적 재현과 기호의 변용 사이에 걸쳐 있지만, 향후에는 그의 그리기가 지금보다 더 치밀하고 적극적인 내러티브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상기해볼 점은 그의 그림이 상투성으로부터 거리 두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 값을 입력하는 눈과 그것을 화면위에 옮겨놓은 눈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이 바로 김윤희 풍경이 여느 상투적인 재현회화와 결별하는 대목이다. 그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거운 시선이 아니라 정반대의 뜨거운 시선이다. 그것은 자주 만나는 풍경이건 처음 만나는 낯선 풍경이건 간에 그 속에 담긴 낱낱의 서사들을 하나하나의 소우주로 새롭게 바라보려고 하는 섬세한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그 마음은 이름 없는 집 하나하나마다 일일이 각각 다른 색을 입히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가 알록달록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풍경을 그려내는 일은 마을 속에 담긴 소우주들 낱낱의 서사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하여 그는 이름 없는 낱낱의 집들을 호명하여 색을 입히고 말을 건네고 뜻을 더한다. 이 얼마나 마음 따뜻한 일인가.

* 김윤희 개인전 서문


액티비스트 박영균의 작업실 발(發) 명상

critic & column | 2008/10/29 10:35


액티비스트 박영균의 작업실 발(發) 명상

고전적 미디어인 회화를 통해서 뉴미디어 시대의 시각이미지를 포착하는 일이 박영균 근작의 핵심이다. 어느덧 40대 중반에 이르러 작업실에 앉아있는 작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며 그린 이 그림들은 그래서 ‘작업실로부터의 명상’이라는 언어에 제 값을 할 수 있는 그림들이다. 박영균이라는 예술가 주체와 사회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고 그 상태로부터 출발한 작업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회화라는 올드 미디어로 현실을 따라잡고 읽어내기란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들은 진솔하다. 그의 회화는 자기 고백을 담고 있다. 아파트 거실의 소파를 그릴 때도 그랬다. 지금의 박영균은 한 사람의 네티즌으로서 인터넷 창을 통해 세상과 만나며 동시대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서 마우스 클릭을 하고 앉아있는 자신의 시선을 오롯이 담고 있다.

박영균 근작들은 작업실에 앉아있는 예술가 주체가 그 바깥과 만나는 방식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의 그는 인터넷을 통해서 광장을 만나왔다. 이미 잘 알려진 바대로 박영균은 거리에서 움직이는 거리의 화가였으며, 지난해에 완성한 대추리 영상 다큐 <들사람들>을 만들기까지 분주하게 현장을 드나드는 예술가이다.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미술운동 그룹의 일원으로서, 공동육아와 대안학교를 만들고 이끈 학부모로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감독으로서, 현장예술의 기록자로서 살아온 박영균은 386세대를 대표하는 반듯한 아트 액티비스트이다. 그런 그가 올해에 펼쳐진 일련의 광장 현상에 대해서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수용하면서 그것을 매우 객관화한 외부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올해에도 몇 차례 거리로 나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의 예술이 바깥을 바라보는 창으로서의 미디어 자체에 관한 흥미로운 해석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박영균의 근작은 스타일의 문제에 있어 이전과 다르다. 인간이 아닌 인형을 다룬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그동안 아크릴릭 페인팅을 주로 해왔던 그가 모처럼 끈끈한 유화로 그려낸 근작들은 솜씨 좋은 페인터 박영균의 회화적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그의 최근작들은 플라스틱의 매들맨들한 질감과 화려한 색채에 대한 탐닉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유년기 시절에 체험했던 나무나 흙으로 만든 물건들과 확연하게 차별화한 새로운 물건으로서의 플라스틱에 대한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의 심볼과도 같은 플라스틱은 인간의 형상을 재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매우 탁월했다. 플라스틱 인형의 등장으로 인해서 우리는 그 이전보다도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나왔다. 플라스틱 인형은 현실에 대한 재현 기제로 작동하는 것은 물론 그 너머의 판타지로 기능해왔다.

박영균이 주목하는 플라스틱은 바로 이 대목, 그러니까 인간의 형상을 재현하는 것은 물론 판타지를 조작하는 물질로서의 특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영균이 플라스틱 인형 그 자체에만 탐닉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 물건들의 문맥을 타고 넘어서 자신의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방법론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영균의 회화적 발언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동시대 인간에 대한 그의 진술을 위해서 등장하는 대리 표상인 셈이다. 그가 채택한 인형들은 레고 인형들을 비롯해서 카우보이, 솔저, 미미 등의 우리 눈에 많이 익은 인형들이다. 이들 대리 인간들이 펼치 보여주는 사건과 상황들은 현실에 대해 비판적 지식을 쏟아내려는 리얼리스트 박영균의 언어를 훨씬 더 풍부한 은유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근작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실재의 대리 표상이면서 동시에 그 물질 자체에 관한 기호학적 감성의 재발견이다. <초록 바탕 위에 플라스틱을 머금은 플라스틱 인형>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플라스틱 재료의 외형적 특징들을 표현하고 있다. 군인의 복장이 띄는 녹색의 색깔과 생명, 희망 등을 담을 법한 녹색의 공존, 이 아이러니를 그림으로 담은 것이다. <쫘아악> 연작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쏟아지는 물대포 이미지 앞에 등장하는 레고 인형들과 미미와 만화 캐릭터들 사이로 현실의 처절한 체험은 기억 저편 너머로 아스라이 미끄러진다. 중요한 것은 그 미끄러짐이 그의 예술적 성찰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작에서 박영균 내러티브의 다수를 이루는 것이 촛불 내러티브이다. 그는 작업실에 앉아 그 바깥을 중계하는 창을 통해서 촛불소녀 캐릭터를 만났다.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흥얼거리며 그는 대작 페인팅 촛불소녀를 그렸다. 그는 2008년에 만난 소녀들에 대한 기억을 이 캐릭터 속에 담고 있다. 한 시대를 대변하는 한 컷의 이미지를 회화 작품으로 남겨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 한 장의 대작 페인팅으로 남았다. 소녀를 데려가는 세월 속에서 촛불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윤곽선을 흐리게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뿌옇게 흐린 경계 속에 상호성이 부족한 우리사회의 구조적 소통부재의 상황이 담겨있다.

3미터가 넘는 대작 <분홍밤>은 플라스틱 인형들의 군상을 통해서 동시대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풍선을 들고 있는 아이와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도 있고, 의사도 있고 학생도 있다. 배경의 줄무늬는 올드 미디어인 회화의 뒷심 같은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줄무늬뿐만 아니라 인형을 등장시킨 것 자체부터 그렇다. 이 작업은 현실에 관한 재현일 뿐만 아니라 회화 자체에 관한 저항이기도 하다. 회화의 권위를 비틀고 뒤집어 버리는 것 말이다. 회화의 권력, 심미적 가치를 담보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마지않는 회화의 미학적 권위를 부정하는 일종의 키치 전략인 셈이다.

만화를 회화로 옮겼을 때의 역전 상황도 같은 맥락이다. <쫘아악> 연작들에서 보듯이 물줄기와 레고 블록들이 공존하는 상황이 그렇다. 카우보이 아가씨 인형과 풍경이 한 화면에 공존한다. 그는 난 데 없이 판타지를 가진 낯선 풍경들을 회화 작품 안에 끌어들이고 있다. 상투적인 풍경을 끌어들이고 인형과 만화 이미지를 배치한다. 세 가지의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마치 싸구려 그림을 재배치하고 확대했을 때 나타나는 묘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박영균의 전략이다. 물줄기에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급박한 긴장감을 끌어내기보다는 서로 밀착해있는 한 쌍의 남녀를 로맨틱한 시선으로 들춰내기도 한다.

그는 광고와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을 회화 작품으로 번역했을 때 나타나는 낯선 상황을 담아내곤 한다. 올드 미디어인 회화 작업을 하는 화가로서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는 다양한 시각 이미지들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재배치하는 작업들이다.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서 거리의 현실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마치 이라크 전쟁의 이미지를 불꽃놀이 정도의 상황으로 인식하며 CNN을 지켜봤을 때와 비슷한 심정으로 거리의 상황을 인터넷 방송으로 실시간 중계로 지켜보는 예술가 주체 박영균의 체험을 회화적으로 담고 있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는 나름의 일관성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2002년에 발표했던 <난 나를 모욕한 자들을 관대히 용서해주었지. 하지만 내겐 명단이 있어>를 레고 인형 버전으로 번안한 같은 제목의 작품을 통해서 여전히 자신의 심중에 자리 잡은 독백을 쏟아내고 있다.

예술가의 방, 작업실은 고독한 공간이다. 따라서 화가들의 작업실 작업은 종종 붓질의 본능에 따라 자폐적인 자기언어를 반복재생산하는 관행에 빠지곤 한다. 지난 몇 년간 본격적으로 회화작업에만 몰두하지 않았던 그에게 원초적 본능과도 같이 붓질의 추억을 되살린 공간 또한 그의 처소인 작업실이다. 그동안 공공미술의 현장과 대추리 현장을 누비면서 분주하게 세상과 만났던 그가 모처럼 차분하게 작업실에 앉아서 그 바깥을 바라보면서 붓질을 했다. 그의 작업실 발(發) 예술은 그래서 훨씬 더 성찰적이다. 그의 근작들은 충분하게 고인 우물에서 길러낸 매우 진솔한 자기언어로서 매우 강렬한 내적 필연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박영균 개인전(부산아트센터) 서문


부산시립미술관 10주년 심포지움 : 공공미술관의 처소와 향배를 묻다

artpd clip | 2008/10/28 14:58


부산시립미술관 10주년 심포지움
공공미술관의 처소와 향배를 묻다

부산시립미술관 강당 / 2008. 10. 30(목) 오후 2시-6시

■ 요네다 코지(나가사키미술관 관장)
   - 21세기 공공미술관의 지위와 역할
     질의 : 윤자정 (동의대 교수)
■ 김선희(샹하이크리에티브센터 관장)
   - 국가와 도시 사이의 공공미술관 교류
      질의 : 이권호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 최춘일(경기문화재단 문화협력실 실장)
   - 국내외 미술관의 운영 방안과 조직
      질의 : 이진철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한국사회에 공공미술관이 자리 잡은 지 이제 40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놓고 봐서 그렇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미술관이 제 집을 지어서 독자적인 시스템을 갖춘 것은 부산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올 해로 1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최근 미술시장의 활황과 공공미술의 활성화로 미술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된 분위기이지만, 기실 시민사회와 밀착한 공공적인 기관으로서의 미술관 문화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열악한 재정과 조직의 문제뿐만 아니라 미술문화를 통해서 시민사회의 공공영역을 형성해야할 미술관의 몫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공미술관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공공미술관은 어떻게 갈 것인가? 부산시립미술관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이 심포지움은 문화의 세기라고 말하는 21세기에 접어들어 공공미술관의 나아갈 길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공공미술관의 처소와 향배를 묻다’라는 주제는 근대와 탈근대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에서 공공미술관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탐색하는 공공미술관의 처소(處所)를 묻고 답한다. 동시에 공공미술관이 앞으로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그 향배를 묻고 답한다.

이 행사는 공공미술관의 정책 수립을 위한 세 가지 제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의 나가사키미술관 관장인 요네다 코지는 ‘공공미술관의 지위와 역할’을 묻는다.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큐레이터 김선희 관장은 ‘국가와 도시 사이의 공공미술관 교류’에 초점을 맞춘다. 경기문화재단의 최춘일 실장은 경기도미술관과 백남준아트센터 건립 및 재단 통합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외 미술관의 운영 방안과 조직에 대해 실질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공미술관 조직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이 행사는 한중일 3국의 미술관 문화 현황을 파악하고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장이다. 특히 수백개의 공공미술관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공공미술관의 운영을 맡고 있는 요네다 코지 관장이 시민사회와 미술관의 관계 설정이라는 큰 틀 안에서 미술관 문화의 진화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아직 공공미술관의 지위와 역할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한 우리의 미술관에 대해 좋은 논의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요네다 관장은 오랫동안 공공미술관에 몸담으면서 채득한 미술관문화에 간한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공공미술관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명쾌한 자기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이 심포지움은 또한 공공미술관의 국제 교류라는 틀에 있어서도 다양한 관점의 토론을 모색한다. 두 번째 발제를 맡는 김선희 관장은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지냈으며 도쿄의 모리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현재 샹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동아시아의 공공미술관 교류 방향에 관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가령 한국과 일본, 또는 한국과 중국의 미술관 교류라는 도식적인 틀 뿐만 아니라 부산과 샹하이, 광주와 타이페이, 서울과 베이징 등의 도시 개념으로 교류의 틀을 구체화하는 공공미술관 교류정책의 틀을 논점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공공미술관의 조직에 관한 첨예한 논점이 다뤄진다. 경기도 산하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경기문화재단 조직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성과와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그 통합과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최춘일 실장이 지자체와 문화재단과 미술관의 관계 설정에 관한 이슈를 다룬다. 따라서 부산문화재단의 설립을 앞두고 미술관의 조직 문제에 관해 초기 단계의 논의가 오가는 마당에 이 발제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조직 문제에 관해 매우 실질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에 이어 민영화 논의까지 있어온 마당에 미술관이라는 기구의 독자적인 운영방안과 조직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매우 시사성이 높은 논지이기 때문이다.


심포지움 진행 순서

사회 : 김준기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1. 발제

■ 요네다 코지(나가사키미술관 관장) 14:15-15:15
  - 21세기 공공미술관의 지위와 역할

■ 김선희(샹하이크리에티브센터 관장) 15:15-15:45
  - 국가와 도시 사이의 공공미술관 교류

■ 최춘일(경기문화재단 문화협력실 실장) 15:45-16:15
  - 국내외 미술관의 운영 방안과 조직

- 휴식 -

2. 질의 및 토론 (16:30-17:15)

3. 종합토론 17:15-18:00


현대미술의 처소와 향배를 묻는다

critic & column | 2008/10/24 18:19


현대미술의 처소와 향배를 묻는다

현대미술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현대미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현대미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미술의 처소(處所)와 존재방식에 대한 이러한 질문은 미술이 무엇인지를 캐묻는 매우 근본적인 명제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의 개념과 영역을 묻는 것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현대미술은 제도화한 미술문화공간 속에 존재한다. 미술문화공간은 미술관과 갤러리와 같은 전시공간이 주종을 이룬다.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일반에게 개방된 공간을 말하는 전시공간은 현대미술을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미술영역에 있어서의 근대성은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진 새로운 미술 언어게임을 통해서 무한히 팽창해왔다. 그것은 매체의 실험과 서사의 확장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감성의 영역을 넓히는 자율적인 언어로서의 시각예술 장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전시공간은 미술작품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장으로 기능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문화정치의 장을 만들었다. 항구적인 기관으로 출발한 미술관과 같은 근대적 기관은 미술을 자율성의 영역 안에 자리잡게 했다.

자본주의 시대와 조우한 현대미술은 전근대적인 힘의 원천이었던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을 이탈해서 시장권력에 포섭되었다. 근대적 의미의 예술적 공화주의는 자본주의 시장권력과 양립하는 듯하면서도 결과론적으로는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전시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대미술의 장은 그 권력중심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현대미술의 장은 그 바깥에서 벌어진 다양한 방식의 공격을 받아왔다. 근대적 시스템에 관한 총체적인 반성으로부터 포스트 모더니티 논의는 미술문화의 지형을 뒤흔들어왔다. 이 글은 근대적인 미술문화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태동하고 발전해왔는지를 간략히 짚어보고, 이어서 자본주의 시대 문화상품으로서의 미술작품의 면면을 언급한 후, 탈근대적인 미술문화가 어떻게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미술제도 분석의 시론(試論)이다.

1.
현대사회의 미술제도는 문화적 공화주의에 입각한 근대 문화정치의 산물이다. 근대기에 태동한 박물관 제도는 문화영역의 공화주의를 그 이념으로 한다. 전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독점해온 예술생산과 향유의 메커니즘은 근대 시기의 공화주의와 동행하면서 국가단위의 공공성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미술관 제도는 박물관의 역사와 그 궤적을 같이한다. 박물관이 과거의 유물을 통해서 동시대와의 소통을 지향한다면 현대의 미술관은 동시대의 미술문화와 동행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우리가 미술관 전시공간을 통해서 동시대 최전선의 미술담론을 확인할 수 있기까지 박물관/미술관 제도의 확립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실로 지대한 공헌을 했다.

박물관/미술관 제도의 확립을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논의 틀은 미술문화를 공론장의 일환으로 해명해보는 일이다. 그것은 문화/예술 콘텐츠가 공공영역을 형성하는 과정에 기여함으로써 발생한 공론장으로서의 예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태동하던 근대기의 유럽에서는 소설 등과 같은 출판물과 더불어 전람회장과 공연장이 주요한 공론장으로 기능했다. 소설과 전시와 공연을 소비하는 대중을 일컬어 ‘le publique’라고 명명했던 19세기 프랑스의 사례로 보건대, 문화/예술 콘텐츠의 수취인은 전근대 시기에 볼 수 없었던 공공영역을 만들었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근대적 의미의 공론장을 문예적 공론장으로 명명했다. 문화/예술을 통해서 발생한 공공영역인 문예적 공론장은 근대성을 전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문예적 공론장은 강력한 체제를 갖춘 근대국가의 확립과 더불어 그 영향력이 퇴조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가 안착하면서 국가단위 공공성과 여론의 주도권을 장악한 언론의 영향력이 막강해짐으로써 문예적 공론장의 지위는 급격하게 낮아졌다. 전근대 시기의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에 포섭되어 있던 문화/예술 영역은 근대시기에 접어들어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전취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외치며 주문생산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근대시기 예술가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예술을 자율성의 영역으로 자리잡게 했다. 정치와 종교, 건축과 연회, 예배 등에 부수적인 요소로 포섭되어있던 예술이 독자적인 장을 마련하고 예술생산과 향유의 체제를 공화주의에 입각한 문화정치의 영역으로 전환한 것은 공론장으로서의 예술이 획득한 예술혁명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의 예술은 또 다른 권력 아래 포섭되었다. 시장권력이다. 미술과 시장의 관계는 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제도를 규명하는 중요한 논제이다. 시장권력은 예술제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힘의 원천으로 작동해왔다. 자본주의 시대 미술제도는 미술작품의 사적소유라는 관계항 속에서 성립가능하다. 미술작품을 교환가치의 틀 아래에 두고 작품을 상품으로 만들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대, 즉 자본주의 시장 체제 아래로 미술 작품의 생산과 유통이 포섭된 시대에 이르러 미술 작품/상품의 생산은 비약적인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시장권력은 근대적인 미술제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 의미의 예술적 자율성을 반쪽짜리로 만든 거대한 힘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미술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 소통의 기틀을 확보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은 모든 종류의 생산을 상품 생산으로 환원하고 모든 종류의 가치를 교환가치로 소급하는 데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예술작품의 생산은 예술작품이라는 상품 생산으로 직결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율성의 영역에 위치한다고 자부하는 예술가들의 노동이 상품의 생산과 교환 방식에 의해 사회화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의 기능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힘에 따른 예술가들의 주문생산을 시장권력의 힘에 따른 주문생산으로 대체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아니면 비판적으로 거리두기를 하던 간에 예술노동이 상품생산으로 직결하고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힘이 자본권력에 달려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자리잡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논지가 공화주의 문화정치와 시장권력이 양립한 상황을 점검해보는 일이다. 얼핏 보기에 공화주의와 시장권력은 상호 대립하는 요소로 양립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아 근대의 공화주의가 자본주의 체제를 잉태하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술문화와 관련한 공화주의와 자본주의 시장체제는 한 몸에서 나온 두 개의 머리에 불과하다. 문예적 공론장 시기를 거치면서 자리잡은 공화주의 문화정치와 이후에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통어하는 힘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시장권력의 편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 위에 놓여있다. 요컨대 근대적 문화정치의 산물인 문예적 공론장에 연이은 미술시장의 태동과 발전은 자본주의 시대 미술 제도의 태동과 발전을 견인한 두 축이며 그것은 오늘날까지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두 가지 미술문화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다.

2.
미술작품은 시각적 기호들을 조작해서 만든 하나의 정보 체계이다. 시각예술의 영역에서 통용되는 이러한 시각정보를 생산하는 이를 시각예술정보생산자, 줄여서 예술가 또는 미술가라고 부른다. 예술가가 생산한 물질은 예술작품으로 성립한다. 예술작품은 전문적인 전시공간에서 전람회라는 형식을 통해서 작품발표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세상에 공개된다. 관람객은 전문화한 전시공간의 권능을 토대로 예술작품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작품 속에 담긴 의미의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려한다. 이것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인류사회가 합의한 문화적 관행이자 시각적 소통을 위한 기호론적인 합의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관행과 합의는 시각예술문화를 둘러싼 인정시스템을 구성하는 절대적인 요소이다. 한 인간을 예술가로 인정하고 그가 생산한 시각정보체제를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예술을 사회적 관행이자 제도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예술은 인정시스템으로 구축된 영역이다. 그 인정시스템의 완고한 벽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엄격한 구분을 만들고 고급문화와 하위문화를 구별짓는다. 학력과는 무관해 보이는 예술계에서조차 학위조작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예술계야말로 얼마나 확연하게 학력자본에 의존해서 인정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역으로 말하자면 예술계야말로 인정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학력과 같은 비가시적인 상징자본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정시스템이 지탱하고 있는 미술제도 아래서 미술작품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메커니즘으로 기능하는가? 미술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 작품의 의미작용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미술작품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관객과 만나는가? 이제 미술 제도가 어떻게 소통 영역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여타의 경로를 통해서 전시공간에 진입한 미술작품은 감상의 대상이다. 미술작품의 감상은 오래된 약속이다. 회화작품의 경우 프레임 속에 담긴 형태와 색채는 기호작용을 통해서 관람객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우리는 하나의 그림을 보면서 'A공간에 B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김홍도의 <미인도>를 보면서 ‘저기 가채를 쓰고 한복을 입은 조선의 미녀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그 작품에는 한지 위에 먹으로 그은 선들과 채색안료를 입힌 평면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우리가 그 종이 위에 칠해진 선과 색들을 통해서 조선시대 미인을 떠올리는 것은 일련의 정보들이 시각적인 일루전(illusion)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인물화나 풍경화와 같이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호체계를 가진 작품들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게 제시된 일루전 효과를 통해서 단박에 시각적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때 그 작품이 담고 있는 시각 정보가 얼마만큼 격조 있는 선과 색, 구도와 서사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예술작품의 높낮이를 구분하는 잣대로 작동한다. 근대시기 이전가지의 모든 미술작품들은 안정적인 기호체계 안에서 작동했다. 초상화나 풍경화화 같이 사실에 근거하거나 또는 그것을 변용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상상을 통해서 조작된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들까지도 오랜 시간동안의 반복학습을 통해서 나타난 도상의 세계 속에 존재한다. 나아가 그 작품 속에 담긴 스타일과 내러티브가 얼마나 상투적인 표현 수준을 넘어서 독창적인지를 따지는 것이 예술계의 인정시스템에서 중요시하는 요소이다.

단원과 혜원의 그림이 정조시대의 새로운 지식생산으로서 어떻게 기능했는지, 다빈치의 그림 속 ‘모나리자’가 어떤 방식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는지,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는 왜 근대사회의 발전에 있어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헤아려봄으로써 우리는 전근대에서 근대에로의 이행 시기에 얼마나 치열하고 혁명적인 지식생산이 이루어졌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인류의 시각을 얼마나 뒤바꿔 놓았으며, 고암 이응노의 예술세계는 얼마나 처절하게 20세기 한국의 뼈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새로운 매체 시대의 예술을 어떻게 견인했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모두 기존의 관념을 깨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독창성을 발휘했다. 풍부한 상상력을 토대로 한 창의력의 향연장, 그것은 미술작품을 떠받히는 근저의 힘이다.

미술작품은 정보의 생산과 소통 기제 안에서 작용한다. 모든 예술작품은 정보의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의미작용을 일으킨다. 작품 속에 존재하는 갖가지 요소들이 발생시키는 정보들을 분석하고 조합해서 인지작용이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의미가 발생하는 또는 발생한다고 믿는 것이다. 회화뿐만이 아니라 조각이나 입체 설치, 사진 등과 같은 예술작품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독자적인 시각정보체제 속에서 정보를 생산하고(coding) 그 정보 속에 담긴 약호들을 풀어내는(decoding) 과정에서 예술적 소통이 발생한다. 거기에는 각각의 장르적 속성들과 더불어 공통적인 요소들이 존재한다. 가령 어떠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지, 어떠한 내러티브를 구사하고 있는지, 나아가 그 서사체계를 어떤 스타일로 표현하고 있는지 등이 주요한 작품 비평의 잣대이다. 이러한 일련의 시각예술 소통행위를 담보하는 공간이 바로 미술관과 갤러리 같은 전시공간이며, 미술언론과 미술시장 등과 같은 제도영역이다.

3.
미술은 고급문화 영역으로써 상류계층의 문화소비 영역일 뿐인지, 아니면 대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매개하는 사회적 소통의 장인지를 두고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아무래도 미술영역 바깥의 시각적 소통체제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전시공간은 대중적인 소통공간으로서는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기성의 권위를 공고하 다지는 데 기여하는 매우 보수적인 기관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오늘날 미술관이나 기타 미술문화 관련 제도/기구의 역할이다. 격년제로 열리는 미술축제를 의미하는 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를 필두로 지난 100여년동안 미술의 담론을 주도해왔다. 비엔날레를 통해서 동시대 최첨단의 미술담론을 확인하고 동시대 전세계의 미술경향을 일변해보는 시각언어 게임의 장으로 기능해왔다. 이러한 비엔날레라는 제도는 각 국가별로 국가관을 만들어서 경쟁적인 내셔널리즘의 일환으로 작동하면서 미술문화와 관련한 보수적인 시각을 유포하고 있다.

제도화한 미술문화공간들이 보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비해서 전시공간 바깥에서 벌어지는 미술문화는 훨씬 더 역동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탈중심적인 공간 개념을 드러내는 예술행위들이 어떻게 작품으로 성립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몇몇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도 공간 바깥에서 벌어지는 미술행위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는 것이 공공미술이다. 공공미술은 예술작품의 생산과 향유를 사적인 영역으로부터 공적인 영역으로 되돌리는 미술이다. 그것은 전문화한 전시공간의 바깥, 즉 생활영역과 공존하는 도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미술이다. 그것은 전근대시기부터 존재해왔던 기념비적인 동상이나 벽화와 같은 미술작품에서부터 오늘날 거리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방식의 공공미술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층위를 가지고 있다. 가령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 선 이순신장군의 동상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통치자 박정희가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세운 무인상으로서 호국의 전쟁영웅을 통해서 국가공동체 구성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의도로 세워졌다.

공공미술작품의 출발은 이렇듯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선전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도식공간 속에서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기능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 현대미술로서의 공공미술의 추세이다. 서울역 앞에 자리잡고 있는 박기원의 <자-넓이>와 같은 작품은 서울역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광장 중앙에 우뚝 솟아서 그 공간을 지배하고 호령하는 영웅의 일루전을 갖추지 않은 이 작품은 널찍한 공간에 기하학적인 ‘ㄱ’자 모양의 육면체들을 눕히고 세워놓음으로써 스트리트 퍼니처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노숙자들이 눕지 못하도록 촘촘하게 손잡이를 만들어 놓은 서울역 벤치들과는 달리 마이너리티를 수용해주는 유일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문병탁, 박봉기, 안시형 세 작가가 만든 APEC 나루공원의 <동시상영>은 시멘트 덩어리로 재현한 주변의 건축물 이미지로 도시공간을 집약한다. 센텀시티의 높다란 주상복합건물과 수영강 너머의 80년대식 성냥곽 아파트, 그리고 초대형 콘벤션센터인 벡스코를 축소 제작함으로써 부산의 과거와 현재를 압축적인 시각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라고 불리우는 본격적인 거리의 미술 또한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도시의 곳곳에 스프레이 캔 안료로 낙서를 하듯 그림을 그린 그래피티를 비롯해서 스티커를 붙이거나 유인물을 나눠주는 방식의 스트리트 아트는 유럽이나 미주의 도시공간을 뒤덮은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출발해서 세계적인 스타로 활약했던 바스키아 같은 미술가나 얼굴 없는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잘 알려진 영국의 뱅크시 같이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대인시장 프로젝트에서 셔터에 장미란 선수 이미지를 그려 넣어서 검색사이트에 오르기도 했던 구헌주와 같이 부산에서 활동하는 젊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도 있다. 부산대역 일대에서 만나는 그래피티 이미지들은 세계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특정 구역에서만 활성화 되어 있을 뿐 도시공간 자체를 가로지르는 문화적 충격으로 자리잡고 있지는 못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액티비즘의 경우 미술영역 바깥과의 적극적인 조우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한 예술실천의 모델로 언급할 만하다.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의 공유를 실천하는 액티비즘은 물질형식으로서의 미술작품 생산은 물론 비물질적인 예술행위들, 가령 퍼포먼스나 발언, 대화, 조직 등 모든 형식의 정보소통체제를 동원한다. 60년대 반전 이슈에 동참했던 비틀즈 멤버 존 레논과 전위예술가 오노 요꼬 부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침실에서 베드 피스(bed peace) 퍼포먼스를 벌였다. 작가 자신이 사회조각이라고 명명한 요셉 보이스의 녹색당 창당운동 같은 정당 활동도 액티비스트 영역에 들어간다. 한국의 경우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벌인 목동예술인회관 점거 프로젝트의 경우 사회적 이슈를 예술적 이슈로 부각한 좋은 사례이다. 비어있는 공간을 점거해서 예술적 공간으로 만드는 스쾃 아트 또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위해 마을을 빼앗긴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서 벌어진 수많은 예술가들의 활동 또한 예술행동의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를 남겼다.

큰 틀에서 이러한 변화를 집약할 수 있는 개념이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 즉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미술이다. 20세기 모더니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미술은 회화나 조각 등과 같이 미술작품이라는 물질형식에 의존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미술의 생산과 향유는 미술작품이라는 물질적 존재를 벗어나고 있다. 탈근대 시기의 현대미술은 심미적 가치를 담은 물질형식 중심의 소통방식을 벗어나는 일이며, 모더니즘 시기를 거치면서 상호 분리된 현실과 예술의 간극을 복원하고 있다. 퍼포먼스와 같은 인간의 행위 자체까지도 미술작품의 범주에 포괄하는가하면 디지털 정보화와 동영상, 인터넷 등과 같은 새로운 정보생산과 소통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뉴미디어 영역에 이르기까지 미술작품의 생산과 소비가 넓어지고 있다. 정보의 생산과 소비가 비약적인 수준으로 발전함에 따라, 또는 전시공간과 같이 제도화한 미술문화공간이 예술 소통의 장으로 작동하기에는 뚜렷한 한계를 보임에 따라 기성의 광행과 제도를 이탈하는 예술행위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미술은 현대사회 속에서, 동시대 정보양식과 동행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소통방식을 향해서 진화하고 있다. 예술은 언제나 변화는 사회의 맥락과 동행하기 때문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경성대 교지 기고문. 2008. 10.15


GIM's Public Art Story 25 : the bridge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10/15 18:38


GIM's Public Art Story 25 : the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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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작가 리위의 작품 다리.
현수교 모양의 조각 상판은 군함 두척이 충돌한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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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 Public Art Story 24 : the same time projecting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10/15 18:35


GIM's Public Art Story 24 : the same time projec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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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탁, 박봉기, 안시형. 세 작가가 만든 동시상영.
수영강변의 나루공원 주변 건물 모형을 본뜬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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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이슈 특정적인 공론장으로서의 충무 아트 프로젝트

critic & column | 2008/10/14 13:03


장소/이슈 특정적인 공론장으로서의 충무 아트 프로젝트

충무갤러리의 기획공모가 ‘황학동-만물시장’에 이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다시 한번 지역성과 동행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실천하기 위해서 여러 작가들의 작업계획을 듣고 보았다. 공공예술 프로젝트라고 해서 이번 기획의 참여작가들이 실재의 공공공간을 대상으로 미술작품을 설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프로젝트는 전시장 전시를 최종목표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을 띠는 이유는 그것이 공론장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공공공간은 공공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가능성을 가진 곳이다. 그러나 물리적 공간을 지향하는 공공공간의 미술만이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아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공영역과 공공공간은 분명이 다르다는 점이다. 공공영역은 비가시적인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포함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지식과 감성의 생산과 향유 체제를 말한다. 이 프로젝트가 작동하기를 희망하는 지점은 공공공간이라는 한정된 장소개념이 아니라 장소성과 의제가 활성화하는 공공영역이다.

공모에 참여한 다수의 작가들이 이러한 기획공모의 면면을 잘 헤아렸다. 대상을 수상한 우상호는 이미 90년대 이후부터 활동해온 중견작가로서 이번 공모에서 단연 두각을 타나낸 작가이다. 그동안 폐광촌의 이미지를 회화작업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기억을 회화라는 물질형식의 예술작품으로 남기는 일을 해왔던 그는 동대문의 안과 밖, 과거와 현재의 풍경과 기억들을 담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작가로 평가받기에 충분했다. 그가 말하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 고리 속에 존재하는 동대문운동장의 운명을 담은 회화의 기억에 관해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동대문운동장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물들 가운데 우상호의 회화적 표현이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그가 화가로서 걸어온 성찰적 자세에 대한 믿은 때문이었다.

우수상을 받은 김강박씨, 김문경, 김영경, 차지량 등 4인(팀)의 작가들도 많은 기대를 모았다. 김강박씨는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동대문운동장의 운명을 영화간판 페인팅과 지우기 작업으로 표현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스스로 지워버림으로써 실재 영역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동행하는 예술 영역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수행성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김문경은 2007년 기획공모 ‘황학동-만물시장’에서 좋은 작품을 남긴 데 이어 올해에도 동대문의 역사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진이미지들을 제시해 눈길을 모았다. 리서치 베이스의 이미지 아카이빙과 취재 및 가공 단계를 거치는 그의 작업에서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시장을 동시에 성찰하는 반짝이는 성찰이 돋보였다.

김영경은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자체를 카메라에 담아내되 그 주변의 풍경들을 동시에 포착함으로써 오랜 세월동안 동대문운동장을 둘러싸고 땅의 역사를 만들어온 시간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사라지는 것에 관한 판타지를 담은 기억투쟁으로서의 다큐멘타리로 남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차지량은 동대문운동장의 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유폐된 삶의 흔적들을 추적하고 그 면면을 사진과 텍스트로 담아냄으로써 화려한 재개발 프로젝트 속에 담긴 도시의 배리를 들춰내고자했다. 동시대 현실 영역을 들여다보는 리얼리스트의 면모가 보였다.

특정 지역의 장소성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동시대의 이슈를 발굴하는 프로젝트야말로 공공영역을 형성하는 매우 빼어난 기획이다. 예술작품을 매개로 하는 공공영역, 다시 말해서 예술공론장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수준에서 발생하는 공공적 커뮤니케이션을 만든다. 그것은 작가의 체험을 표현한 예술작품들이 감성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동시대의 이슈에 대해 새로운 합의를 생성하는 데로까지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모에 참가해서 전시 프로젝트에까지 도달한 신진 및 중견 작가들은 지역 공동체의 담론과 동행하면서 의미있는 예술공론장을 형성할 것이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장소성과 역사성을 토대로 한 예술적 의제 설정과 소통이 창의적으로 결합하는 '장소/이슈 특정적인 충무 아트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2008 충무갤러리 기획공모 심사평


비정주의 만남이 주선하는 따뜻함과 불편함 : 김순임의 자기 언어

critic & column | 2008/10/09 10:22



비정주의 만남이 주선하는 따뜻함과 불편함 : 김순임의 자기 언어


김순임은 자신과 그 바깥 세계와의 만남을 기록하고 기억을 시각화 하는 예술가이다. 그는 부드러운 소재의 따뜻함과 더불어 그 속에 담긴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는 점에서 비판적 지식 생산으로서의 예술이 가져야할 처신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진솔한 자기언어를 구사하는 작가이며, 그러한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비정주의 숙명을 타고난 작가이다. 지금까지 그가 만나온 세계와 예술적 소재들은 이후의 새로운 만남에 의해 새롭게 변화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누구를 만나는지, 그가 언제 어디를 가는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헤아려보는 일이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김순임의 스타일이나 내러티브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그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 장소, 시기 등과 같은 그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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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
그는 인간과 물질, 개인과 세계의 만남을 매개하고 증거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그가 작업실 작업에서 사람을 다루는 것과 바깥 공간에서 사물을 다루는 작업은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인다. 그가 생산하는 인물의 형상은 흙으로 만들어 합성수지로 떠내는 인물 조상과 마찬가지로 특정 인물의 형상을 지닌 재현미술의 범주에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정작 다루고자 하는 것은 만남이라는 자신의 일관된 문제 의식을 표출하는 것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연물을 다루는 관점도 늘 만남에 방점을 찍고 있다. 따라서 김순임에게 있어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신이 만난 대상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는 철저하게 체험에 근거한 자기언어에 포커스를 두고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서 스타일을 확장하면서 내러티브의 진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휴머니즘은 김순임 작업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자신이 만난 인간의 면면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화려하게 꾸미거나 심난하게 과장하지 않는 진솔한 자세로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난 인간을 이야기한다. 김순임의 휴머니즘은 체험적이며 자기고백적이다. 그는 범신론의 관점에서 인간애를 다룬다.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재현하는 김순임의 작업은 삶을 성찰하는 휴머니즘의 관점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는 유신론자에서 범신론자로 종교적 입장을 전환한 사람이다. 범신론자는 무신론자와 다르다. 그러나 그는 종교의 영영과 예술의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작가이다. 이런 이유로 휴머니즘을 채택하고 있는 김순임은 종교적 범신론과 철학적 휴머니즘을 동시에 가진 것이기는 하되 예술가로서의 실천 범주를 체험적 현실 세계에 두고 있다.

물질과의 만남 또한 김순임의 작업을 독해하는 데 있어 매우 결정적인 변수이다. 나무, 천, 실 등 비교적 인공의 흔적이 적은 소재들과 생활 주변의 소재들을 작품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물질의 결정력을 매우 부드럽게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품안으로 바짝 끌어당길 줄 아는 작가이다. 그는 물질의 텍스트를 자신의 콘텍스트로 끌어들이는 좋은 재주를 가지고 있다. 김순임은 물질의 특성을 화려한 수사로 변용하지 않는다. 그는 물질의 본성을 살리면서 그 속에서 톡특한 스타일을 창출한다. 따라서 김순임에게 있어 물질은 만남의 대상이면서 조형의 질료이다.

그의 작품들은 생태론적 논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살면서 만난 소재들로 작업에 끌어들인다. 작업을 위해서 소재를 찾아다니지 않는다는 얘기다. 금강자연미술제와 같은 야외공간에서 자연환경 속에서 제작 가능한 작업을 만들어 내는 것은 물론 특정 장소를 방문하면 반드시 돌멩이를 주워서 기록하고 채집하는 작업을 하기도 한다.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와 같은 오브제 채집은 그가 가장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는 작업이다. 작업의 장소의 문맥을 타는 것도 장점이다. 그는 작품이 자리하는 공간 자체의 분위기를 매우 중요시 한다. 주어진 공간에 맞춰서 작업하는 것에 매우 익숙한 설치 작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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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떠돌아다님
떠돌아다님. 그것은 김순임을 곧추세우는 매우 중요한 행위이다. 그는 새로운 장소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서 체험을 얻는다. 그의 체험은 따라서 예술적 실천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는 새로운 체험으로부터 삶을 배우고, 예술적 에너지를 얻는다. 그는 주기적으로 또는 비정기적으로 떠도는 운명에 처해있다. 몇 차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그에게 임시 정주의 묘미를 알게 했을 것이다. 옮겨 다니는 장소로부터 받는 새로운 체험은 한 장소에서 정주하며 작업하는 작가들에 비할 바 아닌 엄청난 에너지이다. 그는 새로운 장소를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세계를 성찰한다.

비정주(非定住)는 김순임의 숙명이다. 그것은 예술가에게 주어진 천형과도 같은 것이다. 비정주 개념의 예술가 김순임은 새로운 만남을 통해서 일탈의 서사를 직조한다. 한 장소에만 머물러 있으면 자기복재를 하거나 자기 속을 후벼 팔 수밖에 없다. 떠돌아다니는 김순임은 무한한 변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돌을 만나면 돌을 줍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추스르고, 솜을 만나면 그 솜을 어루만지는 작가가 김순임이다. 제도화한 창작공간에서도 그는 떠돌아다님의 숙명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소화하고 있다. 만약 그가 문래동 철공소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망치와 용접봉을 잡을 것이다. 이것이 머무르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김순임의 숙명 같은 것이다.

떠돌아다니는 김순임을 가장 효율적으로 대변하는 작업은 돌멩이 작업이다. 김순임은 돌멩이를 발견한 장소의 정황을 그대로 담고 있는 사진과 실재의 돌멩이를 함게 보여준다. 최초의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한 후 그는 사물을 만난 날짜와 장소를 돌멩이 위에 적은 후 채집한다. 돌멩이와 자신의 만남을 하나의 사건으로 간주하고 그 기록과 실물을 전시장에 투척한다. 사진 미디어에 의한 사물의 이미지와 사물 그 자체는 작가의 행위를 증거하는 두 갈래 길이다. 사물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사진과 채집된 사물로서의 돌멩이 사이에는 만남의 기억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존한다.

사진 미디어가 기록한 사물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채집된 오브제가 담고 있는 실재 사물 그 자체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그는 낯선 장소에서 만난 사물의 기억을 제시한다. 그가 만난 돌멩이는 수원과 안양, 공주, 서울을 비롯해서 미국의 버몬트, 일본의 도쿄, 후쿠시마를 잇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록과 채집 행위는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예술가 주체 김순임의 여정을 증거한다. 그가 채집한 돌멩이들은 심미적 가치를 담보하기 위해서 허구적인 수사를 입은 미적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엄밀하고 객관적인 문자 정보만을 담고 있는 평범한 돌멩이일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돌멩이들의 연쇄는 예술가의 행위를 증거하는 대리물로 작용함으로써 예술적 오브제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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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따뜻함과 불편함
김순임은 따뜻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제공하는 예술가이다. 그의 작업들 가운데 다수의 근작들이 천이나 실 등의 섬유 소재를 이용한 인간의 형상인데, 이때 그의 인(간형)상이 상투적인 설정과 표현에 머문 것이었다면 우리는 그의 작업을 키치의 일환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이다. 그가 다루는 인간의 면면이나 형상 표현의 방식이 매우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그의 독특함은 천과 솜과 실이 만나는 방식에 관한 김순임 나름의 어법에서 기인한다. 나아가 그것은 자신의 만남을 효과적으로 형상화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면이 있는가 하면 차갑고 무서운 면이 동시에 드러나기도 한다. 예쁘고 아름답기만 한 인물 형상이 아니고 회한과 시름에 잠긴 것이기도 하다. 때로 그는 인물 아래에 주렁주렁 바늘을 달기도 한다. 아프고 시린 상처를 담아내는 것도 그의 진솔한 인간 이해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는 꾸며진 아름다움의 허구를 회피한다. 부드러움 속에 세월의 상처와 처연함이 공존하는 것이다. 온화한 표정과 자세로 잠든 것 같은 인물은 어떻게 보면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불에 들러붙을 것 같은 할머니의 피곤한 모습은 편안한 휴식인 것 같지만 노구의 처연한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것이 김순임 작업에서 친근함과 불편함이 같이 묻어나는 까닭이다. 부드러운 재료를 이렇게 불편하게 사용하는 일은 참 드문 일이다. 대체로 섬유 소재를 선택하는 작업들이 여성성 운운하며 작위적인 감상을 불어넣는 것에 비해서 그 부드러움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에 김순임의 매력이 있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와 더불어 그의 감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진솔한 자기표현이라는 것은 그가 구사하는 서사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그의 스타일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볼만한 것이 인공적인 물질이나 행위를 제작하고 수행하는 예술가의 존재 이유와 방식이다. 예술가는 숙명적으로 꾸민다. 예술가의 존재와 예술작품의 생산물이 따로 노는 상황이 발생하는/할 수도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술가 주체의 존재와 결별한 예술 작품은 매력 없는 공산품과 다를 바 없다. 매우 단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따뜻하면서도 불편한 작품들의 면면은 그의 작업을 단숨에 규정할 수 없게 하는, 그래서 해석의 여지를 풍부하게 만드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김순임에게 있어서 그 ‘꾸민다’는 행위는 자신의 체험을 자신의 감성으로 드러낸다는 것으로 직결한다. 이것이 내적 필연에 근거한 예술행위를 수행하는 김순임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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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적 필연과 자기 언어
그는 특정 매체에 묶이지 않고 다양한 매체로 접근하는 멀티플레이어이다. 그가 구사하는 작업 재료는 섬유소재에 집중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다양하다. 그는 거의 모든 작업의 초기에 드로잉을 한다. 특히 인간의 형상을 입체화 하기 전에 하는 드로잉 작업은 소조 작업과 캐스팅, 실이나 천 작업으로 이어진다. 천에 바느질을 하고, 종이로 입체조형을 하는 일, 실을 이용해서 입체를 감싸는 일, 울로 바느질하고 덩어리를 만들기, 실로 설치하기 등 섬유 소재를 가지고 평면과 조형과 설치를 두루 관통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록을 넘어서 그 자체로 설치작업의 일부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는 행위와 드로잉, 조형 작업과 설치 작업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커다란 천 하나를 펼치고 그 속에서 부분적으로 입체의 인물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방식이다.

동일한 형상을 지녔을지라도 그 형상을 구성하고 있는 질료의 디테일이 어떠한지, 그 질료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었는지에 따라 관객에게 전달되는 울림은 매우 다를 수 있다. 명주실을 한 올 한 올 입체 위에 붙여 나가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거치는 김순임의 작업은 과정의 지난함을 통해서 한층 더 깊은 감성의 울림을 제시한다. 근간 그가 가질 개인전은 천상의 공간 정도로 번역 가능한 “ethereal space”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실을 붙여서 만든 인물과 배경의 소백산 풍경이 공존하는 설치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옷고름처럼 긴 천에다가 붉은 실로 하지 못한 말들을 213개 적어서 매달아서 흩날리게 만드는 설치 작업도 나온다. 일본에서 만난 할머니를 울로 만든 작품도 있다. 작품의 소재가 가벼우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김순임은 소백산 자락 풍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그의 품성은 작업의 주제나 소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발언이 내적 필연성으로부터 발현하는 진솔한 자기언어일 때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예술 작품의 생산과 소비가 의미의 생산과 소통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교환가치의 극대화나 공허한 언어 게임으로 귀착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장 속에서 김순임과 같은 예술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삶을 배우면서 한 인간으로 성장했으며, 예술가로 살아가는 오늘날까지도 원천적인 에너지를 수혈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땅에 관한 기억을 소중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가 김순임으로부터 예술 생산이 소통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만든 예술 작품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김순임이라는 한 인간이 만들어낸 자기언어에 대한 신뢰 덕분일 것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2008년 10월 10일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 토론 프로그램을 위한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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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명품, 리움

critic & column | 2008/10/08 09:49


4년 전, 나는 리움의 탄생을 맞아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그러니까 2004년 10월 30일에 쓴 글이다. 아트인컬쳐 기고문이었다. 도하 언론들이 극찬해 마지 않았던 리움. 김준기도 마찬가지로 '하등의 망설임이 없이 찬사와 찬양을 드린다'는 을 전제로 몇 마디 말해야만 했던 그 리움. 지금 리움은 현대미술을 접었다고 한다. 쟁쟁한 큐레이터들을 내 보내고 새로운 기획전 같은 거 안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발 이 안타까움이 짧게 끝나기를... 문화명가의 새출발에 환호를 보냈던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주는 일이 빨리 멈취지기를... 그리하여 자본권력이 현대미술을 악세사리로 취급하고 있다는 세간의 비판이 잦아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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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명품, 리움

또 하나의 명품이 탄생했다. 한남동에 자리 잡은 리움이다. 한국의 고미술품들과 동서의 현대미술을 망라한 한국 초유의 삼성 컬렉션들이 한 자리에 모인 수퍼울트라매머드급 미술관이 새 출발을 했다. 삼성미술관의 변신에 대한 세간의 평판들은 문화명가의 탄생에 대해 경의와 존경을 한껏 표하는 데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한 언론에는 신(神)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나 또한 저 웅장한 프로젝트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런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두 가지의 미술관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삼성미술관이고 다른 하나는 기타 미술관들이다. 그만큼 삼성미술관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얘기다. 리움의 탄생은 국가 차원에서도 못하는 일을 한 기업이 해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리움 개관 이후 찬사일색의 기사들을 읽으면서 리움의 위용을 상찬하는 여론에 ‘이거 같이 엎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송구스러운 마음까지 들 정도다. 하여 나로서도 이 지면을 이용해 찬사와 찬양을 드리는데 하등의 망설임이 없음을 전제로, 몇 가지 다른 말을 보태려고 한다.

명가의 탄생을 공표하다

리움의 개관은 한국 최초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응하는 근대적 의미의 미술관의 전형성을 이룬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상찬에 상찬을 거듭해도 모자랄 일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근대성의 실현에 있어서 특히 문화적 근대성이라는 것이 한참 뒤진 나라 아닌가. 특히 예술영역에 있어서 고전과 당대의 심각한 단절 현상을 넘어서 양자를 공존하게 한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를 저렇게 떡하니 큰 판을 벌여놨으니 이 얼마나 폼나는 일인가. 이제 비로소 ‘대한민국에도 문화명가가 존재한다’고 말할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 명가를 떠받드는 방식이 다소 마음에 걸린다. ‘리움’이라는 이름에 관한 얘기다. 뮤지엄(museum)이라는 명사에 담긴 ‘um'을 따서 'leeum'이라는 이름을 지은 삼성미술관으로서는 적잖이 고심했을 것이다. 뮤지엄이라는 것이 미의 여신인 뮤즈(muse)를 찬미하기 위해 지은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움이라는 명사는 삼성그룹의 창업주와 소유주 일가를 미의 여신인 뮤즈(muse)와 같의 반열에 올려놓은 셈이다. 하기야 뮤즈라는 신이 우리에게 신이라고 인지되지도 않는 바에야 ‘이병철-이건희 뮤지엄’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하니 수사적으로 리움이라고 줄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리움이라는 이름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명가의 탄생을 공공연히 표방한(공표한)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이유, 이름은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성 있는 실천을 잇지 않으면 자칫 뜻하지 않게 손해볼 경우가 생기는데, 리움이라는 이름에 깃든 명가의 기풍에 행여 잔바람 일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남동에 깃든 엘리티즘의 먹구름

다음은 삼성의 엘리티즘에 관한 일말의 우려에 대해 짧게나마 전언하고자 한다. 원래 담화 가운데서도 뒷담화(일명 뒷다마)가 때로는 진짜 도움되는 얘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움이 열리기 훨씬 전부터 미술계에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특히 회원제로 운영하는 엘리트 미술관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소문이 횡횡했다. 소문은 소문에 그치지 않았다. 뚜껑을 열고보니 하루에 전화 예약한 1백명의 관객만 받는다는 것이었다. 황망한 마음에 연유를 알고 보니 모종의 이유 때문에 오픈을 앞당기느라 아직 정상적인 운영시스템을 갖추려면 멀었으니 시스템을 정비하고 나면 정상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그 찬연한 유산들을 하루 1백명 관람객에게만 연다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그동안 리움의 엘리트주의를 우려한 일각의 뒷다마꾼 여러분. 안심하시라. 그런데 한남동에 깃든 엘리티즘의 먹구름은 관객제한에서 끝나지 않는다. 개관을 기념한 전시에 관해서도 이견이 분분하다(참고로 이 역시 목하 언론의 찬양과는 다른 뒷담화들이다). 삼성의 컬렉션의 면면에 대해서야 뭐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드러내 보이는 전시라는 실천적 차원의 얘기다. 고전과 당대의 만남에서 우러나는 고도의 정신적 교감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있어 리움의 전시는 지나치게 교과서적이다. 소장품 위주의 상설 전시장만 운영하는 엘리트 미술관이 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기에는 좀 밋밋한 전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는 말이 있잖은가. 아무리 찬란한 컬렉션이라도 명품진열장으로는 곤란하다. 삼성미술관이 어떤 미술관인가. 최고의 컬렉션으로 최고의 기획을 할 수 있는 막강 파워를 가진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감성적이면서도 이지적인 게임을 기대한다.

보물창고를 넘어서 문화생산의 기지로

개관기념전에 나열된 한국현대미술 컬렉션의 특정 취향 편식 현상은 무소불이의 삼성 파워가 한국미술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삼성의 컬렉션 기능은 너무나 소중하고 막중한 장치이다. 좀더 섬세하고 신중하게 헤아릴 부분이 많다. ‘삼성은 미니멀이다’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90년대 이후 한국미술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삼성의 컬렉션이 다소 주춤한 상태라는 일각의 풍문이 그냥 풍문이기를 바란다. 문화명가의 리움이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공공적 자산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취향의 정치학을 넘어서는 미술관 정책이 절실하다. 한남동 보물창고가 그저 명품의 위세를 만방에 떨치는 데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문화생산을 지속하는 기지가 되어야 한다. 명품 컬렉션을 바탕으로 시민의 시각문화예술 교육의 장을 열어나가고 고전과 당대의 시대정신을 융합하여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내는 적극적인 경영 마인드. 그것이 진정한 문화명가의 향기를 만방에 퍼뜨리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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