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의 감성학과 서사 : 송명수
critic & column | 2008/09/20 14:36

껍데기의 감성학과 서사 : 송명수
송명수는 사물의 형상을 변용하고 왜곡함으로써 사물의 본질과 외피를 둘러싼 새로운 관계항을 만든다. 그는 공산품의 껍데기를 거대한 크기의 합성수지 패널로 만듦으로써 사물의 알맹이와 껍데기의 주종관계를 뒤집어 껍데기의 서사(narrative)를 형성한다. 껍데기의 형상을 견고한 볼륨과 화려한 색채의 알맹이로 전환시킴으로써 낯선 시각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 송명수 작업의 첫 단계이다. 그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껍데기를 확대해서 독자적인 알맹이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그 형상으로부터 새로운 형상을 유추해내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호기심과 관찰. 그것은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상상력을 발동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예술가는 일상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사물에서 조형적인 미감을 발견하고, 단순한 사건으로부터 출발해서 풍부한 내러티브를 구축하기도 한다. 송명수의 시각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상상으로 충만해있다. 그는 도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의 껍데기를 확대하여 재현함으로써 사물의 기억과 흔적을 드러낸다. 그는 현대사회의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도구의 외피들로부터 동시대의 감성학(aesthetic)을 발견해낸다.
송명수의 도구 껍데기에 대한 호기심은 학부시절의 기계 작업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완전해체해서 전혀 새로운 조형적 요소로 재구성한 입체작업 <SUZUKI상의 변절>(2000)이나 소형 자동차를 네 덩어리로 절단한 <막다른 그곳>(2000)과 같은 초기 작업들은 송명수의 원초적 감성 지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후 그는 청소기, 턴테이블, 라디오, 스티로폼 박스 등 각종 기계와 부품들을 해체하고 절단하고 재구성하는 작업들을 해왔다. 자전거를 앞바퀴에서 뒷바퀴에 이르기까지 절반으로 쪼개서 두 대의 자전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실험들을 토대로 송명수는 공산품 도구의 알맹이를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의 최근작들은 물건을 포장할 때 쓰는 플라스틱 소재의 껍데기들을 큰 사이즈로 부풀린 것들이다.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껍데기는 사물의 형상을 닮았다. 그는 사물의 형상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껍데기 자체를 시각적 탐구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것은 예술가, 특히 조각가가 사물을 재발견하는 특이한 관점 가운데 하나이다.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가 언젠가는 버려지는 존재, 즉 사물의 흔적을 담고 있는 사물로서의 껍데기에 주목한 송명수의 성찰은 주변부, 변방, 외피 등 마이너리티 관점과 연결된다. 그는 버려지는 껍데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엄청나게 고된 조형 작업의 모티프로 선정했다.
합성수지 소재의 거대한 껍데기는 화려한 색채를 입은 새로운 오브제로 다시 태어났다. 장난감 M-16 소통이 케이스를 약간 변용시킨 작품 <M-16A1>은 1960년대에 나온 엠16 소총의 원본 박스를 이용했다. 니퍼나 바이스플라이어 같은 공구들의 껍데기들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사물로 다가온다. 사물의 이미지를 직접적인 지시 대상으로 삼지 않고도 사물과 사물, 형상과 형상의 관계를 통해서 관계를 암시하는 경우도 있다. <married couple>은 검은색 두 패널을 한 작품으로 엮어서 부부의 관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기계의 매력을 탐닉해온 송명수는 도구 껍데기의 감성학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그는 도구 껍데기에 담긴 화려한 선과 면과 볼륨의 감성학을 독자적인 조형의 세계로 구축했다.
송명수는 껍데기의 모양을 특정 대상의 모양에 빗대어 명명함으로써 껍데기의 이미지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상상력의 폭을 넓혔다. 고정된 의미 작용을 비틀어서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그는 전지가위 껍데기를 큰부리새의 이름 ‘투칸’으로 명명했다. 4미터 길이에 가까운 이 껍데기는 큰부리새로 치환한다. 안정된 기표를 가진 사물의 포장 껍데기를 거대한 크기로 확대하고 약간씩 변용하는 과정에서 본래 사물의 이미지는 탈색되고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스테이플러를 제거하는 작은 기계 이미지는 바나나와 연결된다.
껍데기 조각이 다른 이미지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크기는 매우 미묘하게 반응의 차이를 일으킨다. 동일한 형상이라도 크기의 여하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 체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송명수의 몇몇 작품들은 껍데기 형상으로부터 또 다른 형상을 뽑아내고 있다. <hips>는 개뼈다귀 모양의 개 간식을 여성의 엉덩이 모양으로 변용한 작품이다. 길쭉한 스누피 얼굴 부분이 사각 모양으로 만들어진 껍데기는 사각 스누피(square snoopy)로 다시 태어났다. 강아지 모양으로 된 전선줄 당기는 도구의 껍데기는 <dog>로 치환한다. 정면이 아닌 측면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측면에서 보면 영국신사 이미지가 나오는 작품 <silk hat -gentleman>는 중절모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껍데기 형상이 다른 형상으로 치환하는 과정은 일정한 문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껍데기 형상을 가져가가 만든 입체 작품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매개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문맥을 가지지 않은 것은 송명수가 선택한 내러티브 구성의 방법이다. 만약 그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사물의 치환관계를 설정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송명수가 다루고자 한 것은 내러티브가 아니라 껍데기라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감성 그 자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를 정해놓고 형상을 다룬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형상을 다루는 과정에서 파생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구 껍데기의 선과 볼륨들은 근대적 감성을 집약하고 있다. 공산품 도구는 근대의 이데아와 판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송명수는 도구에 담긴 미적 요소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만든 도구 껍데기는 도구의 그림자이다. 우리는 그가 만든 껍데기를 통해서 사물의 형상을 유추할 수 있다. 껍데기 자체가 사물의 형상을 닮게 만든 것이니 당연한 이치이다. 만약 송명수가 껍데기 자체를 모방하는 데에 그쳤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의 범주에서 평범하고 밋밋한 재현미술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크기가 달라지고 화려한 색을 입었다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상상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의 외형적인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중요한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지 않은 채 작품을 온전히 이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송명수는 화려한 컬러에 엄청난 크기로 확대한 이 도구의 껍데기들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인가? 그의 최종적인 목표는 도구 껍데기를 통해서 도구의 존재를 드러낸다거나 껍데기 자체의 미감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다. 그는 설정의 따른 내러티브를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껍데기의 감성을 통해서 마이너리티의 메시지를 자극함으로써 의미 해석의 지평을 넓힌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사물의 본질을 탐문하는 실험가이며,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내러티브를 생성하는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송명수 개인전 서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