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M's Public Art Story 23 : Gwanghwamun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09/30 14:52


GIM's Public Art Story 23 : Gwanghwa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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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은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1927년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신축하면서 광화문을 철거하려 했을 때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문화계도 강력하게 반발해 철거하지 못하고 위치만 북쪽으로 이전되었습니다. 광화문이 훼손된 지 80년만에 2006년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을 갖고 복원을 하게 되었지요.

오늘 김준기의 공공미술 이야기에서는 광화문 제자리 찾기 사업 중 하나인 광화문 공사현장 가림막을 소개합니다. 이 가림막은 단순히 공사 현장을 가리기 위해 설치된 것이 아니라 이 곳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앞으로 복원될 광화문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조선백자를 담은 벽자무늬를 모양의 작품들이 모여 광화문의 모습을 형상화 하는 강익중 씨의 작품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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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 Public Art Story 22 : Gojong Monument, Gwanghwamun Crossroads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09/28 17:24


GIM's Public Art Story 22 : Gojong Monument, Gwanghwamun Crossro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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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사거리 교보문고 건물 옆에 있는 정자처럼 생긴 자그만 건축물을 유심히 본 적이 있으세요? 늘 그자리에 있어 대수롭지 않게 보고 넘겼던, 의미가 부여되지 못했던 건축물이 바로 이 칭경기념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건축물은 1902년 고종황제의 등극 40주년을 축하하고 나라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유물입니다. 이 작품에는 역사적 사실 외에도 20세기 초반까지 남아있던 한국의 전통 조각의 면면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념 비각이 눈길을 줄 여지 없이 방치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 강력한 제국을 꿈꾼 고종황제의 꿈이 담겨 있는 건축물이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게 주변 환경 변화도 필요하겠지요. 오늘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게 된다면 칭경기념비를 살펴보세요. 칭경기념비각이 한층 더 크게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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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특정성과 실내공간 특정성의 간극 : 조루즈 루쓰 개인전 리뷰

critic & column | 2008/09/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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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특정성과 실내공간 특정성의 간극 : 조루즈 루쓰 개인전 리뷰

조루즈 르쓰가 여러 도시의 수많은 건물에서 실행한 공간작업 기록사진 열 세 점은 하나하나 흥미롭게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진과 행위의 병행을 통해서 원근법적 시선을 교란하여 착시를 일으키게 하는 루쓰의 작품들은 매우 각별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 두 점이 있다. 현장 설치 작업이다. 이른바 장소 특정적인 그의 작품이 조현화랑 현관과 복도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현관 유리에 설치한 작품은 'DREAM'의 스펠링을 적어 넣었다. 그동안 루쓰의 공간착시 작업들이 기하학적인 도상들로 일관해온 것에 비해서 특정한 개념을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문자를 집어넣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또 다른 한 점은 까페 옆 복도 공간에 검은 색 원을 새겨 넣은 작업이다. 현장의 설치 작업과 더불어 드로잉과 설치장면 등 일련의 프로세스를 함께 보여준 점도 흥미롭다.

조르주 루쓰는 경계 위의 작가이다. 그가 사진작가인지 아니면 행위미술가인지를 명확히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그의 작품은 기록사진과 연출사진의 경계 위에 있다. 그는 사진 작업을 위해서 연출을 하며, 동시에 연출의 결과를 기록하기 위해서 사진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루쓰의 사진은 건축물의 내부 공간을 기록한다는 데 일차적인 의미가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서 그는 그 공간의 안정적인 기호체계들을 교란하는 개입을 실행한다. 그것은 평면 위에 일루전을 가하는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는 평면 공간이 아닌 입체 공간 위에 평면 이미지와 같이 보이는 색채 작업을 실행한다. 그는 행위의 결과를 기록하며 동시에 기록을 전제로 행위한다. 따라서 그는 사진가이면서 동시에 행위예술가이며 설치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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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쓰의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카메라 렌즈의 시선이다. 삼각대를 설치해서 고정시킨 외눈박이 렌즈의 시선은 다양한 선과 면들의 연쇄를 조합해서 원근법적 시각으로 통일된 평면을 제시한다. 루쓰는 렌즈를 투과함으로써 평면으로 성립한 공간에 입체적으로 개입한다. 가령 소실점을 향해서 뒤로 물러나는 복도 공간을 따라서 긴 사선을 그음으로써 렌즈의 시선을 투과한 평면 이미지 위에 수평선을 연출하는 방식이다. 카메라 렌즈의 단일한 시선으로 특정 공간을 바라보는 루쓰는 렌즈를 투과한 평면 이미지 위에 점을 찍듯이 실재 공간 위에 점을 찍는다. 점들의 연쇄는 선을 이루고 면을 이룬다. 실재 공간의 평면들은 렌즈가 고정된 지점에서만 특정 도형으로 성립하며 이외의 공간에서는 단일한 도상의 지위를 상실한다. 따라서 루쓰의 작업은 렌즈로부터 출발하여 렌즈를 통해서 완성되는 렌즈 베이스드 아트이다.

그의 작품이 장소 특정적이라고 하는 언급은 다소간 논쟁적인 사안이다. 그는 특정한 장소에서의 연출 작업을 실행하고 그 결과를 사진으로 기록한다. 문제는 그의 장소 개념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데 있다. 그것은 루쓰 자신의 감성이나 관심이 지향하는 바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작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작품 해석의 문제일 수 있다. 특정 실내공간을 시각적으로 새로운 양상으로 뒤바꾼 작업들에 대해서 장소 특정적이라는 비평적 언술을 구사하는 일은 개념적으로 혼선을 줄 수 있다. 장소성에 관한 이러한 협의적인 해석은 루쓰가 부산을 방문해서 실행한 현장 작업을 장소 특정적 작업이라고 해석했을 때의 한계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작품 타이틀에 도시 이름을 붙인다. 부산에서의 작업이 장소성이나 지역성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을 선택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루쓰의 작업은 장소 특정적이라기보다는 실내공간 특정적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아트인컬쳐 2008년 10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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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공론장으로서의 국립묘지설치예술제

critic & column | 2008/09/24 09:19


예술적 공론장으로서의 국립묘지설치예술제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1.
한국사회에서 예술은 과연 공론장으로 기능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이번 국립묘지설치예술제는 매우 유의미한 논점을 제공하고 있다. 국립묘지설치예술제는 예술행위가 사회적 소통의 행위로 작동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일깨워준 사례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와 상징성 때문에 작품을 둘러싼 논쟁이 매우 격렬하게 벌어졌으며 갈등과 충돌을 통해서 새로운 합의에 도달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예술과 사회의 긴장관계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유익한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그동안 수많은 공공장소에서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김해곤을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은 본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국가적인 논쟁의 과정에 예술가로서 공론장에 참여함으로써 예술생산이 사회적 소통의 기제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이 프로젝트 또한 그 연장선상에 서 있는 일이다.

국립묘지설치예술제는 예술생산과 공공영역 사이의 민감한 관계를 보여주었다. 국립4·19민주묘지에서 무난하게 행사가 진행된 반면에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4.19가 하나의 역사로 굳어졌다면, 5.18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았다는 점 또한 뚜렷하게 드러났다.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소통이 해당지역의 관계자들과의 섬세한 소통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새삼 각성하게 했다.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던 ‘건국 60년’이라는 문구는 그 주변의 거대한 깃발 설치미술을 압도했다. 설치작품의 일부였던 문구는 설치작품 전체를 규정하는 듯했다.  시각언어와 문자언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술언어가 일반적인 생산 라인에 의해서 수용되는 언어가 아니라 머리와 가슴 속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서 뜻을 나누는 의사소통의 기제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단색의 절제미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국립묘지에서 단색이 아닌 다양한 색채의 깃발로 만든 설치작업을 선보인다는 것은 국립묘지 공간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다. 국립묘지를 방문한 시민들은 새로운 시도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신선한 발상에 공감했다. 국립묘지를 지나치게 딱딱한 공간으로만 여겨왔던 문화적 관행을 깨고 예술적 소통공간으로 재해석하려는 애초의 의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와 더불어 미완의 과제도 남겼다. 소통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는 보도와 더불어 일방적인 국가단위 소통체제로서 민주화운동의 성격과 상충한다는 비판이 공존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쟁과정은 비평적 성찰을 통해서 예술과 국가,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발전적인 관점에서 숙고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2.
국립4·19민주묘지의 최문수, 정명교, 김혜영 세 작가는 바람을 끌어들여 태극문양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최문수의 <History of Korea>는 잔디광장 좌우에 펼쳐졌다. 42미터 길이에 달하는 이 거대한 설치작업은 무궁화 모양에서 따온 바람개비 2천여개를 이용한 색면 작업이다. 태극문양의 청색과 적색을 따오고 백색 바탕 위의 건, 곤, 감, 리의 네 가지 흑색 선들을 변용하기도 했다. 이 작업은 개별의 바람개비 수천 개가 거대한 군집을 이루도록 했다. 김혜영의 <The national flag of Korea>는 묘지 입구에 자리잡은 설치작품이다. 태극기의 이미지를 6가지로 변형한 것이다. 바람 속의 자유로운 영혼처럼 바람에 의해 펄럭이는 깃발의 이미지는 자유와 민주를 염원했던 역사 속 인물들의 이데아를 연성화하고 있다. 부드러운 소재의 천이 실바람의 미동에 천천히 반응하면서 태극기 도상의 색채구성을 재해석해주었다.

정명교의 작품은 두 개의 연못에 설치되었다. 하나는 무궁화이고 다른 하나는 태극기이다. 특수 재질의 천으로 입체의 형상을 만들고 그 속에 공기를 불어 넣어서 입체조형물 상태를 유지하는 작품과 깃발을 이용한 설치작업이다. 작은 사물을 크게 해서 보여줬을 때의 충격을 제시하는 것이 이 작품의 출발점이다. 오랜 시간동안 국가공동체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나라꽃의 무궁화를 거대한 형상으로 확대함으로써 실재의 무궁화로부터 이탈한 이질적인 기표를 제시했다. 그 이질성은 역설적으로 이미지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다른 쪽 연못의 깃발 설치 작업은 한국의 문화적 전통 가운데 하나인 깃발을 통해서 역사 속의 이미지들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현재와 미래의 것으로 190개의 깃발을 배치한 3단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 회화적 도상을 설치작품으로 재구성한 깃발 작품이다.

국립5·18민주묘지에 설치한 강술생, 김해곤, 최승훈의 <바람의 시(詩) - 거대한 부표>는 평면도상으로 보면 사람의 형상을 이루고 정면도로 보면 길과 치유와 조화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10여 미터에서 20여 미터에 달하는 3개의 거대한 깃발 설치 작품이다. 묘역의 출입구 좌우측에 흰색 깃발을 설치해서 방문객들이 메시지를 적을 수 있도록 4500장의 리본을 달았다. 장애인 이용 통로 좌우측에는 치유를 주제로 녹색 깃발을 설치했다. 추념문을 감싸고 있는 작품은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해서 피어난 거대한 꽃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예술적 핵심은 웅장한 조형물로 가득 찬 5.18묘지를 바람에 흩날리는 천으로 감싸는 설치 작품을 통해서 일시적으로나마 부드러운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데 있다. 육중한 단색조의 묘지가 새로운 형태와 색채를 만났을 때의 또 다른 시각 소통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3.
이 프로젝트의 참여 작가들에게는 바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깃발의 감성학(aesthetic)으로부터 출발한다. 깃발의 감성학은 곧 바람의 감성학이다. 깃발은 예술가가 제작한 인공의 물질이지만 그 깃발을 움직이게 하고 시시각각 다른 시각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람이다. 인공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내는 감성의 세계가 바로 바람의 감성학을 실현하는 깃발설치예술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천 위에 새겨진 이미지를 매다는 방식의 깃발 설치미술은 김해곤을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이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장소에서 실험해온 방식이다. 제주도에 자리잡은 김해곤은 그 땅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바람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바람아트를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깃대 위에 바람에 흩날리는 깃발을 달아 군집의 미학을 실현하고 있다. 바람의 감성을 담은 이 프로젝트는 경건하고 엄숙하고 딱딱한 공간을 연성화 하는 데 있어 최적의 실마리로 작동했다.

국립묘지를 문화생산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일은 이 프로젝트 최대의 예술적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참여 작가들은 태극기나 무궁화라는 도상을 끌어들임으로써 매우 안정적인 입지를 가지고 확보했다. 국가단위 공공성이 별다른 갈등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매우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립묘지의 획일화한 단색 분위기를 컬러풀한 공간으로 재해석한 이 프로젝트의 시도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국립묘지를 경건한 성역이라는 이유로 단일한 소통방식만이 가능한 공간으로 방치해서는 역사의 박제화라는 도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립묘지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는 쪽으로 관심을 환기한 것은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이다. 삶과 죽음이 예술적 소통을 통해서 새롭게 만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국립묘지를 위한 첫걸음을 땐 것이다.

상징성과 상투성 논점 또한 상기해볼 대목이다. 국가가 보증하고 있는 상징도상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처리할 것인가? 이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최대 관건 가운데 하나이다. 대중적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사용하는 일은 예술의 입장에서 볼 때는 상투성에 경도되기 쉽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들이다. 이들은 태극기와 무궁화 같은 상징도상을 재해석하고 있다. 이들은 태극기의 도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그 컬러풀한 이미지를 배치의 미학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안정적이고 확고한 이미지를 가진 공공의 도상을 다양하게 재해석하고 변용해서 또 다른 시각언어로 배치하는 과정을 거친다. 국가적으로 공인된 상징들은 예술적 언어로 다루기에 매우 간편할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처리할 때는 매우 각별한 문맥을 가지고 있거나 조형적으로 뚜렷한 근거를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4.
상투성을 채택할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예술적 언어를 생산해야 하는 것이 공공예술프로젝트의 숙명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예술생산은 종종 식상함과 상투성을 재생산하는 것에 그치거나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국가적 행사에 등장한 태극기와 무궁화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고착화한 이미지로 만들어버렸다. 상투적이고 식상한 도상을 새롭게 변용하는 일은 그래서 더 어려운 일이다. 올해의 광복절을 전후해서 광화문 앞에 설치되었던 대형 무궁화와 태극문양 또한 같은 맥락에서 상투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립묘지라는 장소적 특성은 더욱 더 이러한 어려움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그 경계 위에서 남긴 예술적 실험은 예술의 영역이 자신의 보호막을 걷어내고 바깥으로 나갔을 때의 지난한 국면에 대한 경험과 정보를 제공했다.

예술의 공공성과 자율성 논점은 국립묘지예술제가 만들어낸 최대의 논쟁적 이슈이다.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과 사건들은 국가단위의 공공성과 시민사회의 공공성이 충돌하고 갈등할 때 예술은 어떠한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가 분명해졌다. 공공예술이 공적 자금을 이용해서 공공의 장소에서 공공의 이슈를 다루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언제나 국가단위의 공공성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기본 인식이 존재한다. 국립묘지예술제는 국가보훈처가 주최하는 국가단위의 공공예술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기관과의 합의를 거쳤으며, 국가 단위의 공공성을 작품의 내러티브로 채택했다. 이 행사가 표방한 대한민국 건국 60년이라는 슬로건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기념하는 명제로 떠올랐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4.19와 5.18이라는 두 개의 거대서사는 국가적인 기념행사를 하기에 적절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경축과 경건이 상호 충돌하지 않게 하겠다는 기획자의 바람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민주화의 성지에서 벌어지는 예술 프로젝트가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역사해석과 관련한 논쟁에 휩싸이면서 예술과 사회, 예술과 국가의 관계에 관한 성찰을 제공했다. 그것은 예술이 대사회적인 소통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예술생산을 통한 소통이라는 것이 화폐가치를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는 교환가치에 종속되고 있는 근 몇 년간의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국가와 시민사회의 충돌과 갈등을 야기했던 이 프로젝트는 역설적으로 예술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주었다. 국립묘지는 상징 정치의 공간이다. 그 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역사의 맥락을 이어나갈 수 있으며, 특히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묘역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가진 두 국립묘지는 한국의 현대사를 가늠하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재생산하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민주화 투쟁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한 것이라는 점에서 출발부터가 매우 비상한 것이었다. 민주화와 정부는 어느 시기도 예외 없이 길항관계에 놓여있는 이항대립쌍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화 투쟁을 기념하는 두 국립묘지에서 벌어지는 예술행위는 현실을 해석하는 매우 첨예한 논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란과 사건을 유익한 경험으로 삼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끌어않는 성찰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국가와 시민과 예술가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예술적 소통을 둘러싼 각자의 역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소통 기제이다. 그 소통을 위해서 생산자와 매개자와 수용자 작가의 역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우리사회를 한 단계 성숙한 문화사회로 이끌 것이다.

* 2008년 국립묘지설치예술제 카탈로그 서문.


껍데기의 감성학과 서사 : 송명수 개인전 서문

critic & column | 2008/09/2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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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의 감성학과 서사 : 송명수 개인전 서문

송명수는 사물의 형상을 변용하고 왜곡함으로써 사물의 본질과 외피를 둘러싼 새로운 관계항을 만든다. 그는 공산품의 껍데기를 거대한 크기의 합성수지 패널로 만듦으로써 사물의 알맹이와 껍데기의 주종관계를 뒤집어 껍데기의 서사(narrative)를 형성한다. 껍데기의 형상을 견고한 볼륨과 화려한 색채의 알맹이로 전환시킴으로써 낯선 시각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 송명수 작업의 첫 단계이다. 그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껍데기를 확대해서 독자적인 알맹이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그 형상으로부터 새로운 형상을 유추해내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호기심과 관찰. 그것은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상상력을 발동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예술가는 일상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사물에서 조형적인 미감을 발견하고, 단순한 사건으로부터 출발해서 풍부한 내러티브를 구축하기도 한다. 송명수의 시각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상상으로 충만해있다. 그는 도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의 껍데기를 확대하여 재현함으로써 사물의 기억과 흔적을 드러낸다. 그는 현대사회의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도구의 외피들로부터 동시대의 감성학(aesthetic)을 발견해낸다.

송명수의 도구 껍데기에 대한 호기심은 학부시절의 기계 작업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를 완전해체해서 전혀 새로운 조형적 요소로 재구성한 입체작업 <SUZUKI상의 변절>(2000)이나 소형 자동차를 네 덩어리로 절단한 <막다른 그곳>(2000)과 같은 초기 작업들은 송명수의 원초적 감성 지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후 그는 청소기, 턴테이블, 라디오, 스티로폼 박스 등 각종 기계와 부품들을 해체하고 절단하고 재구성하는 작업들을 해왔다. 자전거를 앞바퀴에서 뒷바퀴에 이르기까지 절반으로 쪼개서 두 대의 자전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실험들을 토대로 송명수는 공산품 도구의 알맹이를 둘러싸고 있는 껍데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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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최근작들은 물건을 포장할 때 쓰는 플라스틱 소재의 껍데기들을 큰 사이즈로 부풀린 것들이다.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껍데기는 사물의 형상을 닮았다. 그는 사물의 형상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껍데기 자체를 시각적 탐구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것은 예술가, 특히 조각가가 사물을 재발견하는 특이한 관점 가운데 하나이다.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가 언젠가는 버려지는 존재, 즉 사물의 흔적을 담고 있는 사물로서의 껍데기에 주목한 송명수의 성찰은 주변부, 변방, 외피 등 마이너리티 관점과 연결된다. 그는 버려지는 껍데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엄청나게 고된 조형 작업의 모티프로 선정했다.

합성수지 소재의 거대한 껍데기는 화려한 색채를 입은 새로운 오브제로 다시 태어났다. 장난감 M-16 소통이 케이스를 약간 변용시킨 작품 <M-16A1>은 1960년대에 나온 엠16 소총의 원본 박스를 이용했다. 니퍼나 바이스플라이어 같은 공구들의 껍데기들은 그 자체로 독자적인 사물로 다가온다. 사물의 이미지를 직접적인 지시 대상으로 삼지 않고도 사물과 사물, 형상과 형상의 관계를 통해서 관계를 암시하는 경우도 있다. <married couple>은 검은색 두 패널을 한 작품으로 엮어서 부부의 관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기계의 매력을 탐닉해온 송명수는 도구 껍데기의 감성학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그는 도구 껍데기에 담긴 화려한 선과 면과 볼륨의 감성학을 독자적인 조형의 세계로 구축했다.

송명수는 껍데기의 모양을 특정 대상의 모양에 빗대어 명명함으로써 껍데기의 이미지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상상력의 폭을 넓혔다. 고정된 의미 작용을 비틀어서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그는 전지가위 껍데기를 큰부리새의 이름 ‘투칸’으로 명명했다. 4미터 길이에 가까운 이 껍데기는 큰부리새로 치환한다. 안정된 기표를 가진 사물의 포장 껍데기를 거대한 크기로 확대하고 약간씩 변용하는 과정에서 본래 사물의 이미지는 탈색되고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스테이플러를 제거하는 작은 기계 이미지는 바나나와 연결된다.

껍데기 조각이 다른 이미지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크기는 매우 미묘하게 반응의 차이를 일으킨다. 동일한 형상이라도 크기의 여하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 체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송명수의 몇몇 작품들은 껍데기 형상으로부터 또 다른 형상을 뽑아내고 있다. <hips>는 개뼈다귀 모양의 개 간식을 여성의 엉덩이 모양으로 변용한 작품이다. 길쭉한 스누피 얼굴 부분이 사각 모양으로 만들어진 껍데기는 사각 스누피(square snoopy)로 다시 태어났다. 강아지 모양으로 된 전선줄 당기는 도구의 껍데기는 <dog>로 치환한다. 정면이 아닌 측면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측면에서 보면 영국신사 이미지가 나오는 작품 <silk hat -gentleman>는 중절모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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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형상이 다른 형상으로 치환하는 과정은 일정한 문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껍데기 형상을 가져가가 만든 입체 작품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매개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문맥을 가지지 않은 것은 송명수가 선택한 내러티브 구성의 방법이다. 만약 그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사물의 치환관계를 설정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송명수가 다루고자 한 것은 내러티브가 아니라 껍데기라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감성 그 자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를 정해놓고 형상을 다룬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형상을 다루는 과정에서 파생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구 껍데기의 선과 볼륨들은 근대적 감성을 집약하고 있다. 공산품 도구는 근대의 이데아와 판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송명수는 도구에 담긴 미적 요소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만든 도구 껍데기는 도구의 그림자이다. 우리는 그가 만든 껍데기를 통해서 사물의 형상을 유추할 수 있다. 껍데기 자체가 사물의 형상을 닮게 만든 것이니 당연한 이치이다. 만약 송명수가 껍데기 자체를 모방하는 데에 그쳤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의 범주에서 평범하고 밋밋한 재현미술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크기가 달라지고 화려한 색을 입었다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상상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의 외형적인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중요한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지 않은 채 작품을 온전히 이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송명수는 화려한 컬러에 엄청난 크기로 확대한 이 도구의 껍데기들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인가? 그의 최종적인 목표는 도구 껍데기를 통해서 도구의 존재를 드러낸다거나 껍데기 자체의 미감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다. 그는 설정의 따른 내러티브를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껍데기의 감성을 통해서 마이너리티의 메시지를 자극함으로써 의미 해석의 지평을 넓힌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사물의 본질을 탐문하는 실험가이며,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또 다른 내러티브를 생성하는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송명수 개인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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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다면성을 드러내는 한송준의 마음 조각

critic & column | 2008/09/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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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다면성을 드러내는 한송준의 마음 조각

마음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한송준의 독백은 매우 성찰적이다. 삶이 무엇인지, 인간 존재는 무엇인지, 특히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예술적 성찰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근작의 주종을 이루는 <Facet of my mind> 연작들은 다중적인 마음의 갈래가 담겨있다. 그것은 그리드를 형성하는 판재의 나열로 나타나기도 하고, 비어있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든 정육면체로 표현되기도 하며, 굴곡 있는 판재의 연쇄로 드러나기도 하고, 서로 어긋나도록 배치한 판재의 나열로 이뤄지기도 한다. 판재의 접촉과 이완을 통해서 마음과 마음의 관계를 말하기도 하고, 아크릴 채색 위에 투명 우레탄 도장으로 마감한 서로 다른 색채를 이용해서 마음의 표정을 말하기도 한다.

한송준의 판재 조각들은 마음 조각들이다. 그는 ‘무수히 많은 자신의 마음이 그 자신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마음 조각들로 표현하고 있다. 단일한 마음이 아니라 자아의 분열을 유도하는 여러 개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얘기다. 그것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만드는 마음의 조각들이 미세한 간극을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는 마음의 풍경이다. 그는 몇 차례 인도 여행을 하면서 접한 명상의 힘을 작품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는 양평 지제면의 한적한 작업실에서 차분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차분한 작가이다. 그의 마음 조각들에는 매우 예민한 감성이 묻어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은근히 자극적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반짝이는 표면 질감이 살아있는 <The bell>은 판재의 배치를 이용한 평면 조각이다. 나아가 그것은 청각 파장과 시각 파장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살짝 건드리면 미세한 떨림을 보이면서 맑은 종소리를 내는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종은 둥근 외형에 내부가 비어 있어 소리의 공명이 나는 것을 상상하겠지만 한송준의 종은 마치 편경(編磬)과 같이 평면의 판재를 쳐서 소리를 내는 종이다. 더군다나 공중에 떠 있지 않고 바닥에 놓인 좌대 위에서 지그재그 모양으로 연결된 판재 조각이라는 점에서 뜻밖의 결과를 발산한다. 면의 떨림이 청각과 더불어 시각적 파장을 제공하는 공감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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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질료에 관한 관심은 회화의 물감과 천에 대한 관심 이상으로 집요하고 강력하다. 한송준 또한 여러 매체를 거쳐서 철을 만났을 때 높은 집중도를 보이며 철에 몰입했다. 차가운 성질의 철을 갈고 닦는 과정에서 빛을 만나고 색을 만났다. 특히 색을 입은 철은 매우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뒤바뀌는데, 한송준의 근작들은 면과 더불어 색에 의해서도 독창성을 발휘한다. 철을 다루는 한송준의 솜씨가 잘 드러나는 구상작품들도 있다. 구체적으로 형상을 드러내는 구상 작품들이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입체의 하트에 곡선의 절단면들 내부가 보이도록 하고 그 속에 LED를 넣어 심장의 아이콘을 이용해 마음의 형상을 드러낸 작품도 있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사람이나 손과 손이 맞닿아 있는 작업 등 형상을 변용한 작품들도 있다.

근작의 주종을 이루는 마음 조각들은 정사각형의 판재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맞닿은 면과 면의 어긋남이 미묘한 여운을 남기며 회화적인 구성을 이루는 작품이다. 대표작 <Facet of ma mind (b)>는 55개의 판재를 서랍장 조립하듯 이어붙인 4미터 대작이다. 그는 반듯하고 엄격하게 그리드를 형성하는 정사각형의 배열을 채택하지 않았다. 정사각의 판재들을 약간씩 어긋나게 배치함으로써 단일한 정체성으로 존재하지 않는 마음 조각들의 면면을 표현하고 있다. 이때 ‘마음을 표현했다’는 이 문장은 상당히 문제적이다. 마음이라는 비가시적인 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어떠한 경로로 성립하는지에 관해 질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평면을 일컬어 ‘숭고’라는 심상을 재현한 것이라고 말했을 때의 비평적 논쟁거리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색을 입힌 한송준의 조각은 마음을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 조각들은 엄격하게 중립적인 형태와 색채를 가진 기하학적 추상 작품이다. 그의 마음 조각은 감각 너머 지각의 세계에 다가서고 있다. 지적인 성찰을 동반해서 정신세계의 면면을 들여다보려는 한송준의 작품은 그래서 환원적인 모더니즘의 어법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의 조각이 재현미술과 결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마음이라는 '실재’와 마음 조각이라는 '기표’, 그리고 마음의 다면성이라는 '의미’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간극은 완벽한 분화(分化)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송준은 실재와 기표와 의미의 삼각축을 탈분화(脫分化)의 통합적 수준에서 다루고 있다. 그는 명상을 통해서 심상을 설정하고 그 심상을 마음 조각으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루는 한송준의 조각은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과 동행하는 동시대 미술의 행보를 시사하고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한송준 개인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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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 Public Art Story 21 : Jonathan Borofsky, Hammering Man, Heung-guk sangmyeong Bd.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09/16 11:25


GIM's Public Art Story 21 : Jonathan Borofsky, Hammering Man, Heung-guk saengmyeong 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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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앞에는 거대한 움직이는 조형물이 있지요. 망치를 내려치고 있는 모습이 흡사 노동하는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아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조형물입니다.

해머링 맨(Hammering Man)은 망치질 하는 사람의 실루엣을 조형물로 형상화 한 것인데요, 미국의 설치미술 작가인 조너선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작품입니다. 작가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들은 친절한 거인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단순하게 실루엣으로 표현된 노동하는 사람은 철을 이용해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현대 노동자의 고독을 상징화 했습니다.

최근 흥국생명에서는 '해머링 맨'을 도로 앞으로 4.8m 옮기는 작업과 문화광장 조성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조정 전에는 '해머링 맨'이 건물쪽으로 너무 붙어 잘 보이지 않았지요. 이번 작업으로 해머링 맨은 더 눈에 잘 보이고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기능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해머링 맨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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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 Public Art Story 20 : GIM Sejung, I Sunsin statue, Seoul Gwanghwamun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09/11 17:11


GIM's Public Art Story 20 : GIM Sejung, I Sunsin statue, Seoul Gwanghwa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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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에 자리잡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소개합니다. 천하를 호령하듯 위엄한 자태로 복잡한 세종로 네거리에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얼마전에는 콘테이너 장벽에 의해 가려지기도 했으며, 수많은 촛불들 가운데 우뚝 서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시민들 곁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요즘 이순신 장군 동상에 대한 여러가지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왜 세종로에 세종대왕 동상이 아닌 이순신 장군이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부터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는 곳의 위치적 상징성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1968년에 세원진 이래 동상은 한치의 흔들림 없이 그곳에 서있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가 담고 있는 의미 또한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장군 동상 앞에서는 공사가 한참 진행중입니다. 동상 앞 공원이 조성되면 조금 더 가까이 이순신 장군과 눈을 맞출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세종대왕 동상이 세종로로 올 수 있을지에 대한 여론조사도 진행되고 있어 더욱 기대가 됩니다. 온몸으로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굳건히 세종로를 지키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그 안에 담겨진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보세요!

영상 보러 스토리큐빅쩜씨오쩜케이알 바로가기

http://www.storycubic.co.kr/cubic?cur_page=1&contents_id=299


그것은 적혈구이며 동시에 적혈구가 아니다 : 채미지 개인전 서문

critic & column | 2008/09/1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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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적혈구이며 동시에 적혈구가 아니다


비가시적인 물질세계의 감성적인 움직임(emotional motion)을 포착하는 일은 채미지 작업의 처음과 끝을 이룬다. 그는 시각적 결과물을 생산하는 예술가의 숙명 앞에서 작의적인 의도에 따라 조형 행위를 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물질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시각예술의 자율적인 조형원리에 기대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려하는 관행을 뒤집고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발견하여 그 순간을 포착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는 유동하는 물질의 형태 변형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감성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요컨대 물질의 구조적 형태미나 우연성에 의존하면서 매우 체계적인 법칙을 가지고 있는 물질세계의 감성을 재발견하는 것이 채미지 작업의 근간이다.

기름방울의 움직임을 포착한 후 그 색채를 바꿈으로써 전혀 다른 시각적 판타지를 생산한다거나 적혈구 세포 모양으로 만든 입체를 바닥에 둠으로써 유기적인 형상을 가진 벤치로 기능하도록 하는 대목에서 비가시적인 이미지의 세계를 변용하고 전환하는 채미지의 예술노동을 확인할 수 있다. 채미지는 인체에 부착된 렌즈, 즉 눈의 시각적 한계 이상의 것을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카메라 렌즈의 기능이 우리 몸의 렌즈를 통해서 또 다른 체험으로 진화하도록 만든다. 접사 렌즈를 활용해서 거대한 크기로 확장한 세포의 이미지를 입체로 옮기는 과정에서 채미지는 시각적 관찰과 촉각적 접촉까지 끌어들여 예술적 체험을 극대화 한다.

그는 형태와 색채와 입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작가 주체의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이나 현상의 이미지를 끌어들인 후에 그것을 처리하면서 몇 가지 다른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다. 그는 사진과 입체, 영상에 이르는 다매체의 상황을 연출한다. 식자재 기름이 물 위 떠서 갖가지 형상을 만들어 내는 장면을 지켜보던 그는 물과 기름의 이질성에 따른 덩어리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작가의 의도가 배제할 여지없이 스스로 형상과 배열을 창출하는 우연성의 미학을 재발견한 것이다. 그는 물질의 감성적인 움직임을 포착함으로써 물질의 구조적인 미학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 그 너머의 메시지를 담고자 한다.

채미지가 포착한 움직임은 색을 입음으로써 감성적인 움직임으로 전환한다. 노랑과 빨강과 파랑으로 전환한 물질의 세계는 전혀 다른 시각적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움직임을 보다 극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 그는 동영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분열하는 세포들의 움직임을 가시화한 동영상이다. 이 작업은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덩어리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감성적인 움직임의 판타지를 제시한다. 실재 존재하는 물질의 움직임을 재현하고 있지만 기계를 관통한 동영상 이미지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세상을 시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가상세계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전자적으로 부호화한 뉴미디어의 미학이 제공하는 판타지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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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각적 경험 이상의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렌즈의 세계이다. 그것은 육안으로 경험하고 손으로 재현한 세계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따라서 렌즈를 관통함으로써 우리 앞에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은 시각예술에 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았다. 따라서 렌즈를 관통한 예술, 즉 렌즈 베이스드 아트(Lens Based Art)의 관점에서 채미지의 작업은 단순한 재현 사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미세한 시각적 체험을 하나의 지시가능성으로 묶어두지 않고 오히려 원래의 형상으로부터 이탈하여 새로운 의미생산을 가증하도록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렌즈와 그 바깥의 유리로 만든 렌즈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채미지의 작업은 훨씬 몸에 가까운 감성을 보여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혈액세포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써 그는 ‘모더니즘 이후의 현대미술에 있어서 재현의 문제’라고 하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다. 그는 혈액세포 확대사진을 입체로 옮겼다. 채미지는 가운데가 움푹하게 패인 둥근 원반 모양의 입체들에 색을 입혔다. 전시장 바닥에 놓여있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는 원반 모양의 덩어리들은 얼핏 보아 기하학적 추상 작업인 것처럼 보인다. 감각적으로 처리한 곡선들이 돋보이는 이 조형 작업의 첫 출발은 적혈구의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적혈구 이미지를 커다랗게 제작해서 바닥에 배치하거나 공중에 매다는 방식으로 혈액세포의 형상을 전시장에 옮겨놓는다. 비정형적인 형태로 배치된 이 형상들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적혈구의 이미지를 확대한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형상을 들여다보며 비가시적인 영역에 있는 혈액세포의 형상과 배치를 추상할 수 있다.

적혈구의 형상을 따서 만든 입체 작품과 입체설치 작품은 구상 작업이면서 동시에 비구상 작업이다. 렌즈라는 물질을 통해서 기계적인 방식으로 재현된 세포들은 실재를 지시하는 재현미술의 어법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채미지의 세포 덩어리들은 재현 그 이상의 것으로 전환한다. 현미경 렌즈를 통해서 평면 이미지로 재현된 세포 사진을 토대로 만든 입체는 그것이 적혈구 사진을 보고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재현과 비재현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채미지의 작품이 적혈구 형상이라 점에 대한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적혈구이다’라는 문장과 ‘그것은 적혈구가 아니다’라는 문장이 동시에 성립한다. 채미지의 작업은 무언가를 지시하면서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일탈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적혈구이며 동시에 적혈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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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탈각한 기표의 자율성은 오늘날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서도 여전히 유효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경향들은 그러나 본격 모더니즘 시기의 작가들과는 명확한 변별점을 가지고 있다. 모더니스트들이 실재와 기표와 의미의 삼각 축선을 탈접점의 관계로 만들었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기표의 자율성을 충분히 인정하되 그 출발점을 실재와 결합하고 나아가 의미의 생성과 연결하려고 하는 통합의 정치학을 구사한다. 채미지는 작업의 시작을 실재와 관계 맺는 것으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기표의 자율성과 지시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것으로 만든다. 요컨대 그는 렌즈를 관통한 이미지들을 일관된 문맥 속에서 구사하는 멀티플 레이어이며 본격 모더니스트의 감성을 이어 받으면서도 포스트모더니스트 세대의 어법을 구사하는 경계 위의 작가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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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식생산으로서의 예술과 이원석의 작품 세계 : Essay for I Wonseok Solo Show

critic & column | 2008/09/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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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지식생산으로서의 예술과 이원석의 작품 세계

작가의 문제의식이 명쾌하게 드러나는 의도적인 설정과 충격적인 장면에서 결정적인 요소를 드러내려는 센세이셔널리즘은 자칫 경박한 작업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원석의 작업이 채택하고 있는 결정적 장면 포착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문제적이다. 그는 여하한 방법으로 금기를 넘어서는 표현을 일삼아 왔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상당히 자극적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극을 위한 자극과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오히려 그는 객기에 찬 설정과 표현을 배제하는 편이다. 그의 자극은 매우 이지적인 성찰로부터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적인 체험을 끌어들이는 대목에서도 동시대의 역사적인 맥락에 관한 성찰을 동반한다.

그가 여타의 경향들로부터 자신의 작업을 차별화하는 길은 뚜렷한 세계관과 탄탄한 방법론이다. 그의 세계 인식과 표현 방법은 동시대 작가들 가운데서도 확연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세계관을 규정하는 가장 큰 차별성은 사회변동에 대해 민감하게 촉수를 뻗고 있는 리얼리스트이며, 더욱 각별한 것은 80년대 세대 정체성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현대사에 있어 매우 각별하게 사회변동의 에너지를 발산했던 1980년대를 관통하며 당대의 시대정신과 동행한 청년시기를 거친 이원석은 예술가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거리두기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저에 깔린 인간소외의 현상들을 파고든다. 그는 사회로부터 고립된 개인의 고독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다. 때로는 세월 앞에 가려진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성찰적 태도를 취하기도 하며, 우리 사회가 양산하는 이데올로기를 역설적으로 비꼬는 작업을 선보이기도 한다. 오늘날 현대미술은 사회와의 긴장관계를 놓쳐버리고 있다. 예술가의 대 사회적 태도가 온건함과 편안함을 선사할 것은 직간접적으로 강요하는 미술시장 중심의 흐름은 예술가의 존재 이유를 비판적 지식인이 아닌 현실과 타협하는 예술상품 생산자로 규정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자본주의적 작품 생산과 교환 시스템에서 이원석도 예외일 수 없겠지만,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불편함과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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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은 사회와 개인의 대립구도를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낸다. 때로는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며, 또 다른 경우에는 사회 구조에 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적 직관을 동원하기도 한다. 인체와 동물을 망라한 그의 결정적 순간 포착들은 그동안 이원석의 작업이 사건과 상황의 표현에 있어서 보다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동안 이원석이 채택해온 인간이나 동물 표현은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를 기본으로 하되 설정 자체를 매우 결정적인 순간의 포착에 의존해왔다. 근작의 흐름들은 그러한 정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판적 지식생산으로서의 예술가 정체성이 위기에 처한 시대를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여전히 패권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시장논리에 포박된 미술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시대이다. 예술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길조차 아득하게 멀어지는 시대이다. 이럴 때 이원석이 놓치지 않는 비판적 지식생산자로서의 자존감이야말로 혼돈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원칙일 것이다. 이원석이 솜씨 좋은 조각가에 머물지 않고 지성과 감성을 동반한 참된 지식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치를 지켜내는 것은 작가 자신의 몫이기도 하거니와 그를 둘러싼 예술생태의 몫이기도 하다는 점. 예술이 생산과 매개와 향유의 삼태극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유이다.

김준기(www.gimjungi.net)

* 이원석 개인전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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