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공론장으로서의 국립묘지설치예술제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1.
한국사회에서 예술은 과연 공론장으로 기능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이번 국립묘지설치예술제는 매우 유의미한 논점을 제공하고 있다. 국립묘지설치예술제는 예술행위가 사회적 소통의 행위로 작동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일깨워준 사례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와 상징성 때문에 작품을 둘러싼 논쟁이 매우 격렬하게 벌어졌으며 갈등과 충돌을 통해서 새로운 합의에 도달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예술과 사회의 긴장관계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유익한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그동안 수많은 공공장소에서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해온 김해곤을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은 본인들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국가적인 논쟁의 과정에 예술가로서 공론장에 참여함으로써 예술생산이 사회적 소통의 기제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이 프로젝트 또한 그 연장선상에 서 있는 일이다.
국립묘지설치예술제는 예술생산과 공공영역 사이의 민감한 관계를 보여주었다. 국립4·19민주묘지에서 무난하게 행사가 진행된 반면에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4.19가 하나의 역사로 굳어졌다면, 5.18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았다는 점 또한 뚜렷하게 드러났다. 공공영역에서의 예술적 소통이 해당지역의 관계자들과의 섬세한 소통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새삼 각성하게 했다.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던 ‘건국 60년’이라는 문구는 그 주변의 거대한 깃발 설치미술을 압도했다. 설치작품의 일부였던 문구는 설치작품 전체를 규정하는 듯했다. 시각언어와 문자언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술언어가 일반적인 생산 라인에 의해서 수용되는 언어가 아니라 머리와 가슴 속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서 뜻을 나누는 의사소통의 기제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단색의 절제미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국립묘지에서 단색이 아닌 다양한 색채의 깃발로 만든 설치작업을 선보인다는 것은 국립묘지 공간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다. 국립묘지를 방문한 시민들은 새로운 시도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신선한 발상에 공감했다. 국립묘지를 지나치게 딱딱한 공간으로만 여겨왔던 문화적 관행을 깨고 예술적 소통공간으로 재해석하려는 애초의 의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와 더불어 미완의 과제도 남겼다. 소통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는 보도와 더불어 일방적인 국가단위 소통체제로서 민주화운동의 성격과 상충한다는 비판이 공존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쟁과정은 비평적 성찰을 통해서 예술과 국가,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발전적인 관점에서 숙고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2.
국립4·19민주묘지의 최문수, 정명교, 김혜영 세 작가는 바람을 끌어들여 태극문양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최문수의 <History of Korea>는 잔디광장 좌우에 펼쳐졌다. 42미터 길이에 달하는 이 거대한 설치작업은 무궁화 모양에서 따온 바람개비 2천여개를 이용한 색면 작업이다. 태극문양의 청색과 적색을 따오고 백색 바탕 위의 건, 곤, 감, 리의 네 가지 흑색 선들을 변용하기도 했다. 이 작업은 개별의 바람개비 수천 개가 거대한 군집을 이루도록 했다. 김혜영의 <The national flag of Korea>는 묘지 입구에 자리잡은 설치작품이다. 태극기의 이미지를 6가지로 변형한 것이다. 바람 속의 자유로운 영혼처럼 바람에 의해 펄럭이는 깃발의 이미지는 자유와 민주를 염원했던 역사 속 인물들의 이데아를 연성화하고 있다. 부드러운 소재의 천이 실바람의 미동에 천천히 반응하면서 태극기 도상의 색채구성을 재해석해주었다.
정명교의 작품은 두 개의 연못에 설치되었다. 하나는 무궁화이고 다른 하나는 태극기이다. 특수 재질의 천으로 입체의 형상을 만들고 그 속에 공기를 불어 넣어서 입체조형물 상태를 유지하는 작품과 깃발을 이용한 설치작업이다. 작은 사물을 크게 해서 보여줬을 때의 충격을 제시하는 것이 이 작품의 출발점이다. 오랜 시간동안 국가공동체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나라꽃의 무궁화를 거대한 형상으로 확대함으로써 실재의 무궁화로부터 이탈한 이질적인 기표를 제시했다. 그 이질성은 역설적으로 이미지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다른 쪽 연못의 깃발 설치 작업은 한국의 문화적 전통 가운데 하나인 깃발을 통해서 역사 속의 이미지들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현재와 미래의 것으로 190개의 깃발을 배치한 3단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 회화적 도상을 설치작품으로 재구성한 깃발 작품이다.
국립5·18민주묘지에 설치한 강술생, 김해곤, 최승훈의 <바람의 시(詩) - 거대한 부표>는 평면도상으로 보면 사람의 형상을 이루고 정면도로 보면 길과 치유와 조화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10여 미터에서 20여 미터에 달하는 3개의 거대한 깃발 설치 작품이다. 묘역의 출입구 좌우측에 흰색 깃발을 설치해서 방문객들이 메시지를 적을 수 있도록 4500장의 리본을 달았다. 장애인 이용 통로 좌우측에는 치유를 주제로 녹색 깃발을 설치했다. 추념문을 감싸고 있는 작품은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해서 피어난 거대한 꽃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예술적 핵심은 웅장한 조형물로 가득 찬 5.18묘지를 바람에 흩날리는 천으로 감싸는 설치 작품을 통해서 일시적으로나마 부드러운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데 있다. 육중한 단색조의 묘지가 새로운 형태와 색채를 만났을 때의 또 다른 시각 소통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3.
이 프로젝트의 참여 작가들에게는 바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깃발의 감성학(aesthetic)으로부터 출발한다. 깃발의 감성학은 곧 바람의 감성학이다. 깃발은 예술가가 제작한 인공의 물질이지만 그 깃발을 움직이게 하고 시시각각 다른 시각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람이다. 인공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내는 감성의 세계가 바로 바람의 감성학을 실현하는 깃발설치예술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천 위에 새겨진 이미지를 매다는 방식의 깃발 설치미술은 김해곤을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이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장소에서 실험해온 방식이다. 제주도에 자리잡은 김해곤은 그 땅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바람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바람아트를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깃대 위에 바람에 흩날리는 깃발을 달아 군집의 미학을 실현하고 있다. 바람의 감성을 담은 이 프로젝트는 경건하고 엄숙하고 딱딱한 공간을 연성화 하는 데 있어 최적의 실마리로 작동했다.
국립묘지를 문화생산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일은 이 프로젝트 최대의 예술적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참여 작가들은 태극기나 무궁화라는 도상을 끌어들임으로써 매우 안정적인 입지를 가지고 확보했다. 국가단위 공공성이 별다른 갈등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매우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립묘지의 획일화한 단색 분위기를 컬러풀한 공간으로 재해석한 이 프로젝트의 시도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국립묘지를 경건한 성역이라는 이유로 단일한 소통방식만이 가능한 공간으로 방치해서는 역사의 박제화라는 도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립묘지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는 쪽으로 관심을 환기한 것은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과이다. 삶과 죽음이 예술적 소통을 통해서 새롭게 만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국립묘지를 위한 첫걸음을 땐 것이다.
상징성과 상투성 논점 또한 상기해볼 대목이다. 국가가 보증하고 있는 상징도상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처리할 것인가? 이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최대 관건 가운데 하나이다. 대중적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사용하는 일은 예술의 입장에서 볼 때는 상투성에 경도되기 쉽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들이다. 이들은 태극기와 무궁화 같은 상징도상을 재해석하고 있다. 이들은 태극기의 도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그 컬러풀한 이미지를 배치의 미학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안정적이고 확고한 이미지를 가진 공공의 도상을 다양하게 재해석하고 변용해서 또 다른 시각언어로 배치하는 과정을 거친다. 국가적으로 공인된 상징들은 예술적 언어로 다루기에 매우 간편할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처리할 때는 매우 각별한 문맥을 가지고 있거나 조형적으로 뚜렷한 근거를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4.
상투성을 채택할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예술적 언어를 생산해야 하는 것이 공공예술프로젝트의 숙명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예술생산은 종종 식상함과 상투성을 재생산하는 것에 그치거나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국가적 행사에 등장한 태극기와 무궁화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고착화한 이미지로 만들어버렸다. 상투적이고 식상한 도상을 새롭게 변용하는 일은 그래서 더 어려운 일이다. 올해의 광복절을 전후해서 광화문 앞에 설치되었던 대형 무궁화와 태극문양 또한 같은 맥락에서 상투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립묘지라는 장소적 특성은 더욱 더 이러한 어려움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그 경계 위에서 남긴 예술적 실험은 예술의 영역이 자신의 보호막을 걷어내고 바깥으로 나갔을 때의 지난한 국면에 대한 경험과 정보를 제공했다.
예술의 공공성과 자율성 논점은 국립묘지예술제가 만들어낸 최대의 논쟁적 이슈이다.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과 사건들은 국가단위의 공공성과 시민사회의 공공성이 충돌하고 갈등할 때 예술은 어떠한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가 분명해졌다. 공공예술이 공적 자금을 이용해서 공공의 장소에서 공공의 이슈를 다루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언제나 국가단위의 공공성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기본 인식이 존재한다. 국립묘지예술제는 국가보훈처가 주최하는 국가단위의 공공예술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기관과의 합의를 거쳤으며, 국가 단위의 공공성을 작품의 내러티브로 채택했다. 이 행사가 표방한 대한민국 건국 60년이라는 슬로건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기념하는 명제로 떠올랐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4.19와 5.18이라는 두 개의 거대서사는 국가적인 기념행사를 하기에 적절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경축과 경건이 상호 충돌하지 않게 하겠다는 기획자의 바람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민주화의 성지에서 벌어지는 예술 프로젝트가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역사해석과 관련한 논쟁에 휩싸이면서 예술과 사회, 예술과 국가의 관계에 관한 성찰을 제공했다. 그것은 예술이 대사회적인 소통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예술생산을 통한 소통이라는 것이 화폐가치를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는 교환가치에 종속되고 있는 근 몇 년간의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국가와 시민사회의 충돌과 갈등을 야기했던 이 프로젝트는 역설적으로 예술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주었다. 국립묘지는 상징 정치의 공간이다. 그 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역사의 맥락을 이어나갈 수 있으며, 특히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묘역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가진 두 국립묘지는 한국의 현대사를 가늠하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재생산하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민주화 투쟁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한 것이라는 점에서 출발부터가 매우 비상한 것이었다. 민주화와 정부는 어느 시기도 예외 없이 길항관계에 놓여있는 이항대립쌍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화 투쟁을 기념하는 두 국립묘지에서 벌어지는 예술행위는 현실을 해석하는 매우 첨예한 논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논란과 사건을 유익한 경험으로 삼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끌어않는 성찰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국가와 시민과 예술가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예술적 소통을 둘러싼 각자의 역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소통 기제이다. 그 소통을 위해서 생산자와 매개자와 수용자 작가의 역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우리사회를 한 단계 성숙한 문화사회로 이끌 것이다.
* 2008년 국립묘지설치예술제 카탈로그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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