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있음과 없음, 그리고 공간 : 김현호
critic & column | 2008/06/13 19:15

안과 밖, 있음과 없음, 그리고 공간 : 김현호
매스나 볼륨과 결별할 수 없었다는 점, 물질적인 구조물을 생산하는 일 또한 그의 작업을 구성하는 중심축이었다는 점에서 김현호는 우리가 합의하고 있는 조각의 관행으로부터 이탈한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더 치밀하고 치열하게 물질과 대결하는 과정을 거쳐 매우 견고한 물질의 세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나아가서 그는 본격 모더니즘 세대와 공유하는 감성을 소유하고 있다. 소리와 파동과 공간과 같은 의제들을 향해서 예술적 환원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현호는 조각의 본령이 매스와 볼륨에 있다는 낡은 생각을 오래전에 지워버린 작가이다. 그는 오랫동안 사운드와 오브제를 이용해서 공간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는 가시적인 구조물 자체를 보여주기보다는 시각과 청각을 동원해서 비가시적인 영역인 공간을 사유하는 작업을 해왔다. 따라서 김현호에게 있어서 조각은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구조물을 만드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그 너머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영역을 드러내는 일이다.
김현호 신작들은 스테인리스 스틸 판재를 잘게 잘라서 선재로 형상을 구성하는 용접조각 기법을 사용해서 형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공간을 발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관된 의제를 탐색하면서도 본격 모더니즘 세대와 차별화하는 전환적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그의 신작이 새로이 도입한 요소들은 형상과 내러티브 두 가지이다. 이전의 그는 환원론적인 명제들을 길어 올리기 위해 최소주의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형상과 내러티브를 철저히 줄였다. 지금의 그는 형상을 빌어 내러티브를 발산하고 있다. 
김현호의 신작들은 거대한 철재 용접 작업들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판재를 자르고 두드리고 이어붙여 거대한 조각을 만든 김현호는 사물의 특성을 뒤집어 활용하고 있다. 반짝이는 표면과 대상을 투영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불에 달구어 잿빛으로 바꾼다는 것은 녹슬지 않는 철의 특성을 역이용하는 시도이다. 반짝이는 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김현호의 작업은 그래서 매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역발상의 차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기하학적 추상과 소리를 이용한 최소주의 작업 방식 또한 형상을 다루는 것으로 전환했다. 그는 거대한 선재 구조물 내부에 인간의 형상을 배치함으로써 두 형상 사이의 공간을 재발견하려는 의도를 담아냈다. 꿈틀거리는 정자의 형상과 인간의 형상이 결합하거나 구체나 범종 형상 내부에 불상의 형상을 결합한 대형 용접 조각 작품들이다. 물고기 안에 누워있는 인간의 모습을 결합한 것도 동일한 맥락 위에 있다. 대형투구 한 점도 공간의 문제를 안고 형상에 접근하고 있다.
형상의 문제는 내러티브로 이어진다. 김현호 신작들이 가장 크게 전환하고 있는 점은 자신의 초기작에서 나타났던 서사를 회복했다는 데 있다. 그동안 일관되게 추구해온 공간에 관한 관심을 지속하면서도 자신의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현호의 변모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김현호 내러티브는 삶을 성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 존재와 생명에 관한 명상을 끌어들이는 그의 신작들은 종교의 도상들을 끌어들이고,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조형적 요소들을 도입하면서 동시에 공간과 구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중의적인 독해를 요청하고 있다. 공간으로부터 삶으로, 기하학적 구조로부터 사물이나 인간의 형상으로 전환하는 단계에서 나름의 일관성을 찾으려는 시도를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범종은 무수히 많은 직선들의 연쇄로 이뤄졌다. 유려한 곡선의 당초문과 원을 나열한 열주문을 제외한 모든 요소들은 짧은 직선들의 만남일 뿐이다. 그 짧은 직선들을 이어붙여 만든 삼각형과 사각형들은 범종의 볼륨을 표상한다. 실재의 볼륨을 상실한 채 범종의 껍질만을 제시하고 있는 김현호의 이 선재 용접 범종은 그래서 실재를 가장한 허구이다. 그의 전략은 범종을 표상하는 철골구조를 뚫고 내부로 들어가서 또 다른 형상을 만나게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내부에는 가부좌를 튼 불상의 형상이 들어있다. 그 불상마저도 볼륨을 상실한 선재용접조각이다.
범종의 프레임 사이를 뚫고 들어간 우리의 시선은 불상(프레임)을 만난 다음 다시 그 내부를 만난다. 강한 발색의 주황색 안료를 바른 불상의 안쪽 선들에 이르러 김현호는 이중삼중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물고기 속에 누워있는 와불과 구체 안에 들어있는 불상도 구조 속의 구조라는 이중의 구조와 서사를 가지고 있다. 정자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 안에 들어있는 인간의 형상 또한 인간존재의 근원을 캐는 생명의 성찰을 담고 있다. 사람 키를 훨씬 넘는 투구 프레임은 인류사를 지배해온 폭력의 역사에 대해 침묵으로 저항하는 기표이다.
형상과 서사의 문제는 다시 공간이라는 김현호의 숙명적인 화두와 만난다. 그는 형상의 바깥뿐만 아니라 그 내부에서까지 공간을 발견하고자 한다. 그의 작품이 평면이 아니라 입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고정된 단 하나의 시각이 아닌 움직이는 여러 가지 시각으로 그의 작품을 대면할 때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의 작품은 고정시점이 아닌 이동시점으로 관찰할 때 더욱 선명하게 형상과 공간을 드러낸다.
철재 단조와 용접의 과정을 거친 김현호의 거대한 구조물은 역설적이게도 있음과 비어있음을 동시에 보여준다. 바깥의 모습과 안쪽의 비어있음, 바깥의 바깥과 그 바깥의 안쪽의 비어있음을 동시에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찾는 것은 안과 밖, 있음과 없음이며 나아가 그 사이의 비가시적인 공간이다. 그의 작업은 바로 이 대목에서 물질과 비물질,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엄밀한 경계를 넘어 형상과 내러티브와 공간의 문제를 관통하면서 김현호의 독자성을 발현한다.
김준기(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