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 삶은 예술

critic & column | 2010/07/21 15:57


삶은 계란, 삶은 예술

‘삶은 계란’이라는 말이 있다. 삶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해 ‘삶은 계란’이라는 말로 웃어넘기는 재치와 여유가 묻어나는 말이다. 정원이 아닌 타원, 껍데기와 알맹이, 노른자와 흰자 등의 구조나 관계를 가진 계란을 삶에 빗대어 ‘삶=계란’이라고 유추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의 핵심은 삶이라는 복잡다단한 상황에 대해 불가지(不可知)의 입장을 밝히는 데 있다. 그만큼 삶이란 어려운 문제다.

‘삶은 예술’이라는 말도 있다. 이 경우에는 삶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해 ‘삶=예술’이라는 명제는 훨씬 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예술이라는 매우 난해한 개념을 삶에 빗대어 놓고 보니 간극이 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연 삶을 예술에 갖다 대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삶과 예술이, 또는 예술과 삶이 서로 연관을 갖고 있기는 한 것인가? 우리의 삶이 과연 예술을 끌어안을 만큼의 여유와 풍요를 지니고 있는가?

인간의 삶은 사회를 매개로 존립가능하다. 예술은 사회 현상의 하나이다. 사회는 개인이 아닌 복수의 인간이 만들어낸 집단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인간 삶의 집합체인 사회 속에서 존립가능하다. 예술과 사회는 상동성을 갖는다. 사회의 정황과 예술의 면면이 서로 닮았다는 얘기다. 종교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중세 사회와 고딕이라는 예술은 수직상승이라는 동질의 코드를 가지고 있다. 불교사회인 고려의 화려함과 유교사회인 조선의 절제의 미학도 사회와 예술이 구조적으로 동행한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예술이 인간의 삶을 그 원천으로 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한다. 요컨대 예술은 삶으로부터 나왔다. 말하자면 ‘예술은 삶’인 것이다. 그런데 이 명제의 앞뒤를 바꿀 수 있을까? ‘삶은 예술’이다? 어려운 문제다. 예술이 삶을 배반해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으로부터 나온 예술이, 인간 삶의 총체인 사회와 동행해온 예술이 언제부터인가 삶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독자행보하기 시작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예술일 수는 없을까? 삶 그 자체가 예술일 수 없을까?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명제도 결코 삶을 도외시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와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나온 명제이지 예술을 삶으로부터 떼어내려는 속류 예술지상주의자들을 위해서 나온 말이 결코 아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들 듯이, 삶은 예술을 낳고, 예술은 삶을 살찌운다. 창의와 상상, 일탈과 환상, 성찰과 소통이 넘쳐나는 예술적인 삶을 생각한다. 삶 그 자체가 예술인, ‘삶은 예술’을 다시 생각한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2010/07/21 15:57 2010/07/21 15:57

큐레이터 집단지성,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07

artpd clip | 2010/07/19 17:41


큐레이터 집단지성,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07

행사명 :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07
주최 : 한국큐레이터협회
주제 : “미술관 교류와 큐레이터의 협업”
스페셜 게스트 : 조이스 판(Joyce Fan, 싱가포르)
장소 : 덕수궁미술관 세미나실
일시 :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오후3시-

한국큐레이터협회는 정기적인 토론 프로그램으로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월례행사로 <한국큐레이터협회 월례포럼 2010>을 엽니다. 이 행사는 해외 큐레이터들을 스페셜 게스트로 초청해서 다양한 주제의 토론을 벌임으로써 국내외 큐레이터들 사이의 공통 의제를 개발하고 상호 이해증진과 교류 증진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큐레이터들의 집단 지성을 활성화하기 위한 7월의 월례포럼 자리에 싱가포르의 큐레이터 조이스 판을 초청하여 대화의 자리를 갖고자 합니다. 이번 행사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협업으로 열리는 기획전 <아시아의 리얼리즘>전을 준비해온 조이스 판을 통해서 국제적인 미술관 교류 과정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듣는 자리입니다. 특히 그와 함께 일해온 국립현대미술관의 김인혜 큐레이터가 사회를 봄으로써 더욱 밀도있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 2010.2.20 동북아시아의 현대미술 네트워크 형성의 전망과 과제,
             차이 짜오이(국립타이완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2010.3.27 이가라시 리나(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큐레이터)
* 2010.4.10 리춘펑(독립큐레이터, 홍콩)
* 2010.5.15 한스 D. 크리스트(슈트트가르트 쿤스트페어라인 디렉터)
* 2010.6.12 하정웅(재일교포 콜렉터)
* 2010.7.24 조이스 판(싱가포르현대미술관 큐레이터)

 

July 2010 KorCA Forum for Curators' Collective Intelligence


Event Name: KorCA Forum

Host Organization: Korea Curators' Association

Collaborative Organization: Art-sociological Forum, Topic: 'Art Exchange and Collective Curating'

Special Guest: Joyce Fan, Curator at the Singapore Art Museum

Location: Seminar Room in Deoksugung Art Museum

Date: July 24th (Sat), 2010 @ 3 P.M.


The Korea Curators' Association is a regularly held discussion program and is holding an event, "KorCA Forum 2010", for its members' active participation. This event seeks to promote mutual understanding and international art exchange by discussing various topics with the special guests.


Joyce Fan, curator at the Singapore Art Museum, is joining KorCA Forum in order to enhance intellectual knowledge of the curators. She has worked on 'Realism in Asia', a special exhibition that KorCA Forum has collaborated with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Through this special event, the members of Korea Curators' Association will hear about the process of international art exchange. Her work partner, Kim In-hae, at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will be emceeing the event.


02.22.2010 Chai Chaoi, Curator at the National Palace Museum

03.27.2010 Igarashi Rina, Curator at the Fukuoka Asian Arts Museum

04.10.2010 Lee Chunfung, Freelance curator in Hong Kong

05.15.2010 Hans D. Christ, Director of the 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 Stuttgart

06.12.2010 Ha Jung Woong, Art collector residing in Japan

07.24.2010 Joyce Fan, Curator at the Singapore Art Museum

2010/07/19 17:41 2010/07/19 17:41

재생의 예술

critic & column | 2010/07/14 18:21


재생의 예술

도시는 움직인다. 그것은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와도 같아서 태동과 성장과 낙후를 반복한다. 이러한 도시의 움직임에 따라 붙는 검은 그림자가 있다. 도시 재개발이다. 대부분의 도시 재개발은 파과와 건설 중심이어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곤 한다.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인 재개발이 아닌 재생 개념이다. 도시 재생은 오래된 것들을 하나의 문화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그 가치를 높이는 프로젝트이다. 도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들의 유기적인 관계설정과 사회적 합의도출이 필요하다.

우선은 관의 행정력이 무차별적인 난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의 차원에서 긴밀하게 각 부처의 역량을 조직화해야 한다. 여기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와 개입이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과의 접점을 형성하는 일인데, 이 대목에서 절실한 것이 바로 인문학적 접근이다. 도시생태와 자연생태, 재생의 문화, 나아가 역동하는 우리의 삶을 헤아릴 가슴과 머리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시민들의 각자 다른 이해와 요구를 수렴해 가면서 프로젝트를 실행할 실천적 동력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법이 예술적 접근이다. 예술은 이미 상당히 적극적인 방식으로 삶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공공미술이나 커뮤니티 아트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예술은 가치의 생산을 제일 큰 덕목으로 삼는 소통 기제이다. 예술적 소통은 합리성 너머의 감성적 소통을 매개한다. 예술은 갈등과 조화를 모색하는 문화생산의 전초기지이다.

오래된 도심지에는 예술이 넘쳐난다. 그곳에는 전시장과 극장이 있다. 과거와 미래를 매개하는 서사가 넘쳐난다. 부산의 동광동이나 대구의 동성동, 대전의 대흥동 등 대도시들의 원도심들이 예술을 매개로 활성화 하고 있다. 원도심의 예술적 진화는 그만큼 오래된 도심지가 가진 문화적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그것은 건축, 도시계획, 디자인, 생태, 주거, 복지 등 다양한 의제들이 공존하는 통합적인 재생 프로젝트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예술은 다른 영역들을 두루 꿰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고독한 창조자로서의 예술가 개념은 20세기 모델이다. 이제 예술가는 작업실 바깥의 실재공간에서 전문가와 시민, 예술과 사회를 매개하는 창조적인 행동가로 전환하고 있다. 예술이 공동체와 만나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는 협업의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도시를 예술이 꽃피는 삶의 터전으로 만들려는 예술의 에너지를 도시재생에 접목하는 슬기가 필요한 때이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2010/07/14 18:21 2010/07/14 18:21

미술, 듣는 만큼 보인다

critic & column | 2010/07/07 19:18


미술, 듣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예술 작품에 대한 지식이 작품의 감상에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안다는 것과 본다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예술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삶과 제작 의도 등 작품 바깥의 이야기들을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와 해석의 지평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명제는 위험한 말이기도 하다. 미술을 지식권력의 장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이 명제를 뒤집어보면 ‘모르면 안 보인다’는 얘긴데, 바로 이 점 때문에 미술을 모르는 시민들은 미술관을 찾는 일을 기피하곤 한다.

이러한 난점을 풀어주는 해결사가 있다. 도슨트(Docent)다. 미술관 도슨트는 미술관의 전시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작품해설사로 통용되기도 하는 이 말이 이제는 시민들의 문화소비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요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우리시청의 한 공무원은 제주도 이중섭미술관을 방문했다가 눈물을 흘리며 전시를 관람했다고 한다. 도슨트의 감동적인 작품해설 때문이었다. 단체관람이든 개인관람이든 시민과 학생들은 전시장을 찾아 도슨트와 함께 전시장 도는 일을 자연스러운 문화향유 코드로 활용하고 있다. 미술, 이제는 ‘듣는 만큼 보인다’.

대전시립미술관의 도슨트들은 문화도시 대전의 자랑이다. 전문가 못지않은 열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타도시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뛰어나다. 내가 이전에 일했던 부산에서도 대전 도슨트들의 열정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미술 전공자도 있지만 비전공자도 상당수인 이들은 도슨트 경험을 거치면서 미술애호가, 콜렉터가 된 이도 있고, 직접 그림 그리기는 이도 있다. 한 과학전공자 도슨트는 관련 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취직을 했다고 한다. 외국인 작가나 관람객과도 통역 없이 소통하는 이들도 많다.

미국 체제 시절에 낯선 도시의 미술관에서 만난 할머니 도슨트가 선사한 신선한 충격을 고맙게 기억하며, 자신도 할머니 도슨트로 활동할 꿈을 꾸는 이도 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최근에 평일 오후 3시를 약속의 시간으로 정했다. 그동안 주말 2시와 4시에만 하던 도픈트 프로그램을 평일 오후 3시에도 실행하기로 한 것. 사전 예약 없이도 평일 오후에 미술관을 찾으면 도슨트를 만날 수 있다. 문화도시 대전의 풍부한 문화 코드들이 하나하나 쌓여가고 있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100707

2010/07/07 19:18 2010/07/07 19:18

월드컵과 로컬컵

critic & column | 2010/06/30 17:35


월드컵과 로컬컵

월드컵이 한창이다. 월드컵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은 건 2002년의 일이다. 붉은 악마 신드롬으로 거리가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그해의 한국 첫 경기는 폴란드전이었다. 손석희와 브리짓 바르도의 개고기 논쟁이 있었던 터라, 나는 주변 사람들과 ‘개고기 월드컵’이라는 파티를 벌였다. 개고기와 월드컵이 엮이는 게 싫었다. 문화적 차이를 경멸하는 1세계의 저주를 조롱하고 싶었다. 그 다음 경기는 거리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서 봤다. 공놀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거리의 사람들이었다.

시민들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월드컵 이벤트는 위험한 흐름을 동반했다. 전지구를 들었다 놓는 월드컵은 가면 갈수록 공놀이가 아니라 돈놀이에 힘자랑으로 번져가고, 상업주의와 국가주의가 급부상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뒤돌아볼 틈도 없이 온국민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의 소비 대중으로 직조되고 있었다.

월드컵의 일방주의를 성찰하는 의미로 <로컬컵>(쌈지스페이트, 2002)을 기획했다. 많은 작가들이 월드컵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이한열을 패러디한 조습의 퍼포먼스 사진과 1987년과 2002년의 거리를 교차편집한 박영균의 영상과 페인팅 등 명작들이 탄생했다. 매스미디어와 대중, 광장의 문화정치, 국가와 자본 등 다양한 이슈들 속에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에 관한 성찰이 녹아들었다.

다시 월드컵을 넘어 로컬컵을 생각한다. 월드컵이 전지구적인 차원의 뜬구름 같은 놀이라면 로컬컵은 우리동네 차원의 몸에 와 닿는 삶 그 자체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전지구적 소통이나 국가적 의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터에서 벌어지는 나날의 상황과 풍경이다. 국민으로서 행복을 찾는 것보다 가까운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생활 속의 행복을 발견하는 일이다. 나라사랑을 선언하기 보다는 동네사랑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최근에 <넥스트 코드> 참여작가 5인을 선정, 발표했다. 김미소, 이원경, 김훤환, 신성호, 조경란.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새 얼굴들이다. 전국적인 예술가, 세계적인 예술가의 출발점은 여기 대전이다. 대전을 위한, 대전에 의한, 대전의 예술가를 주목하는 것이 문화민주주의를 향한 첫걸음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도시의 예술가를 따뜻하게 품어 안을 때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예술가가 나올 수 있다.

염홍철 시장의 취임 첫날 오후 일정에 대전시립미술관 전시 개막식 참석이 있다. 첫 현장 방문지로 미술관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문화시장으로서의 지향성을 감지할 수 있다. 문화정치는 관과 민의 협업에 의해 완성된다. 관료의 통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관민협치(Governance)이다. 문화도시 대전의 로컬컵을 월드컵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상의 축제로 완성하는 일은 시민의 몫이다. 월드컵에서 뛰는 선수들도 어릴 적 동네 축구부터 시작한다. 대전발 예술이 세계적인 예술의 출발점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2010/06/30 17:35 2010/06/30 17:35

남경민의 호시우행접영(虎視牛行蝶泳)

critic & column | 2010/06/30 08:32


남경민의 호시우행접영(虎視牛行蝶泳)

산업재해보험 처리도 안되는 자영업자 같은 처지의 화가에게 있어 어깨와 팔의 통증 같은 직업병은 스스로 관리하고 치유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천형이다. 예술창작. 그 얼마나 진하게 몸과 마음을 다바쳐 부딪혀야만 하는 일이던가. 남경민은 최근의 개인전 이후 관절과 근육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소시적에 접배평자에 잠영과 입영까지 뗀 나로서는 이제 막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음~파~’ 수준의 초보학습생이 대견해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큰 것은 부러움이었다. 나로서는 한 10년 이상 실감하고 있지 못한 몸의 실존을 나날이 재발견하고 있는 그에 대한 부러움이다. 운동은 직업병을 완화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몸을 재발견하는 매우 값진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그는 얼마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그가 당분간 나비처럼 행복하게 유영하는 접영(蝶泳)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를.

고장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운동을 해야만 하는 남경민은 지난 10년간 무섭게 질주했다. 고흐와 자신을 동일시하기까지 했던 30대 초반의 그는 지난 10년간 그는 1백점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 그 가운데 절반은 그림 그리는 것을 생의 목표로 정한 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지낸 세월이었다. 그는 실내공간과 나비를 그리다가 어느날 문득 작업실을 그리기 시작했다. 2004년 작 <고흐의 방>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생각한 실존적 자화상에 가깝다. 안양 석수동 작업실에서 예술가의 작업실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예술가 주체로서의 남경민 자신을 향한 투명한 고백이었다. 그 이후에 송은미술상 우수상을 받았고, 스톤앤워커와 브레인 팩토리에서 현대화랑에 이르기까지 개인전을 연 공간의 폭도 다양해졌다. 그동안 그의 그림은 한결같이 작업실 이야기였다. 석수동(안양) 작업실에서 출발한 그는 고양창작스튜디오와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를 거쳐 지금은 청계동(의왕) 작업실에 자리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남경민과 나는 나이가 같다는 점 이외에 또 한 가지 닮은 점이 있다. 작업실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작업실 그림으로 나는 작업실론으로 작업실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작업실 그림으로 브레인팩토리에서 개인전을 가지기 얼마전, 나는 <작업실 리포트>(2003)를 기획했다. 작품론이나 작가론의 관점이 아닌 작업실론의 관점으로 예술을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작업실의 변동 양상을 가지고 예술의 변화를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지난 5년여동안 서양미술의 대가들의 작업실 공간을 통해서 예술가와 예술작품들의 면면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업실 그림은 대가들의 작업실에 빗대어 남경민 자신의 실존을 들여다보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대가에 대한 오마주이자 예술에 대한 예술이다. 작업실 그림은 예술가 그림이나 마찬가지이다. 작업실의 주인인 예술가의 몸을 제외한 공간의 구성과 기물들을 비롯한 온갖 상징 장치들을 통해서 그 예술가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남경민의 작업실 그림이다.

큐레이터와 평론가 질을 겸하고 있는 나는 작가와 만나면 인터뷰로 시작해 카운슬링에 주제넘는 컨설팅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경민과 나는 동갑의 부담없음을 배경으로 비교적 신랄하게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지금까지의 남경민 그림은 실존적 고백으로부터 대가에 대한 오마주로 옮겨왔다.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그는 지난 5년여동안 매우 빠르게 압축성장했다. 그동안 그는 다양한 변주를 풀어낼 시간도 없이 대가들의 작업실 탐방으로 일관해야했다. 그러다보니 그가 좋아하는 연구와 탐색을 거친 프로젝트성 작업을 풀어낼 시간이 없었다. 아직 남은 것들이 있다. 좀더 크리티컬하거나 좀더 시티컬해질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령 일생의 야심작으로 자신의 아틀리에를 그린 리얼리스트이자 액티비스트, 쿠르베는 어떤가? 거리의 예술가 바스키아나 키스 헤링도 있다. 잡동사니 고물상 같은 백남준 작업실도 이미 그의 머리 속에 있다. 그 다음은 유럽미술에 심취해 있는 지금의 멘탈리티를 한국의 고전과 근대 화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보는 일이다.

올여름 제주도 서귀포에서 임시거주 작업을 할 예정이니 이중섭 작업실 그림이 나올 것이고, 창신동의 박수근, 수덕사나 파리의 이응노 등도 나름 가능할 것 같은데, 문제는 조선 이전의 예술가들이다. 남경민 당사자가 아닌 내 머릿 속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왜일까? 먹그림 화가들을 유화로 그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 아니면 우리 고전에 대한 무지와 몽매? 아니면 자국의 과거를 찌질한 것으로 폄하하는 식민성? 아무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문득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렸던 <한국미술사 +화가의 초상>(2009)이 떠올랐다. 그 전시를 기획한 최열 선배와 소개팅을 시키는 것으로 한국 고전에 대한 얘기를 매듭지었다. 선배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법. 올해가 호랑이 해라며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되 한걸음씩 내딛는 소걸음)이라는 신년문자를 보낸 그에게 ‘호시탐탐 우측보행하는 이 시대를 반영한 멘트’라는 답문을 보냈던 바 있다. 호랑이-소와 나비의 만남이다. 유럽을 유영하고 있는 남경민의 나비 날개 짓이 최열 선배의 호랑이 눈에 소걸음과 만나면 뭔가 아름다운 말씀이 오갈 것 같다.

지금 우리 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예술가들은 어떨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다. 치열한 전장과도 같은 양평의 안창홍 작업실은 어떨까? 작업실의 예술가 자신을 성찰했던 최진욱 작업실도 있다. 포르노그라피 공장 최경태 작업실은 또 어떨까? 빈 건물을 점거해서 작업실 공간으로 사용하는 점거아틀리에도 있고, 문래동 공장지대나 대인시장 같은 상가에 자리잡은 뜨거운 공간도 있다. 고전적인 작업도구들 대신에 영상과 컴퓨터 장비로 가득찬 액티비스트 아트스트의 작업실도 있다. 여기저기 떠도는 레지던시 작가가 있는가 하면 붙박이 작업실에 온갖 물건들을 빼곡히 모아놓는 넝마주이 작가도 있다. 남경민의 공간탐사는 유럽예술가들에서 전지구의 예술가들로, 고전이나 모던에서 컨템포러리로, 아티스트의 공간에서 아티스트 아닌 사람의 공간으로까지 무한히 넓어질 ‘착한 아이템’임에 틀림없다. 공간의 상징을 통해서 인간의 내포와 외연을 담아낸다는 것.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남경민은 근대 시기의 거장들을 그들의 작업실로 불러 세워 그들과 대화한다. 그들의 작품 이미지를 등장시키는 것은 물론 주인공의 세계를 상징하는 도상들을 보여준다. 그는 예술가 주체의 몸을 배제한 상태에서 그 예술가의 세계를 집약적인 상징언어들로 예술가의 세계를 표현한다. 남경민의 회화에는 예술가의 면면을 꿰뚫는 상징들이 가득 담겨있다. 그는 작업실 공간을 통해서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은유한다. 작업실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예술가를 공간의 기억을 통해서 재현하는 남경민의 회화는 그래서 실재 넘어서는 실재로 작동한다. 남경민의 그림은 주인공의 부재나 결핍을 대신해서 채워주는 상징들을 통해서 더 넓은 해석의 지평을 열어준다. 남경민의 서사는 그림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림으로 끝난다. 그의 그림은 그림에 의한 그림을 위한, 그림에 대한 그림이다. 따라서 그가 그림 내부가 아닌 그림 외부로부터 서사를 끌어오는 변화의 지점에 서 있다. 예술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즉자적인 자세에서 예술 바깥의 리얼리티로부터 지금 여기의 서사를 발견하는 자세가 필요하는 얘기다.

물론 지금까지 그가 천착한 고전 속의 상징게임들과 그 속에 개입하는 나비로서의 예술가 주체의 문제는 충분히 흥미롭게도 진지한 성찰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하는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가 안양 석수동 작업실에서 절치부심했던 30대 중반의 그 어느 대목에서 작업실을 지키고 있는 자신으로부터 조용필보다 더 고독하게 살다가 고흐라는 사나이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절절한 실존의 문제로 되돌아가 작업실 바깥의 꿈틀거리는 리얼리티와 대면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아마도 나보다 그 자신이 더욱 깊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작업실을 통해서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는 성찰의 메시지도 가능할 것이다. 작업실의 심리학과 작업실의 사회학을 오가는 분주한 발걸음 속에서, 고독한 창작의 산실로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작업실 담론을 생각한다. 부디 남경민의 예술이 예술 너머의 예술을 향해 호시우행접영(虎視牛行蝶泳)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를.

2010/06/30 08:32 2010/06/30 08:32

전문성과 지역성의 동행

critic & column | 2010/06/24 18:25


전문성과 지역성의 동행

지금으로서는 한 시대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공미술은 10년 전만 해도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는 공공미술보다는 환경조형물이라는 이름이 공공장소에서의 미술을 대변했다. 1986년 이래 건축물미술장식품으로 대한민국 도처에 자리 잡은 미술작품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정작 시민사회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을 찾아보기는 드물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 공공미술 논의가 일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한 세미나에서 공공미술 논의에 대해 부분적으로 반대한 적이 있다. 건축물미술장식품 제도를 공공미술제도로 바꾸자는 데는 완전하게 찬성이었다. 그러나 전국 각 지역에 공공미술위원회를 설치하여 이 제도를 운영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즈음에 영리법인에서 공공미술, 정확히 말하면 건축물미술장식품 컨설팅 일을 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각 도시의 특성들을 잘 알고 있었다.
요즘은 많이 나아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건축물미술장식품은 좋은 작품을 세우기보다는 각 도시에서 힘자랑, 돈자랑 하는 각 지역의 유력 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복마전이었다. 지역성이나 전문성은 안중에도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한 도시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열심히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백방에 수소문해서 가능성이 높은 젊은 작가 몇 명과 인터뷰를 마친 상태였는데, 본부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그 도시의 유력자 모씨와 통화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 이러한 작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고 설명했지만 그 유력자의 답변은 단호했다. 뜻밖의 일을 당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중진작가를 만나 일을 치르고 말았지만, 지금까지도 당시 공공기관의 장이었던 그의 행동을 잊을 수가 없다.
각 지역 단위에 공공미술위원회를 설치하고 공공기금을 조성해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어떻게 돌아가게 될지 뻔한 일이었다. 각 지역의 예술가 혹은 기획자들이 지역 전문가와, 주민, 건축가 등과 협업의 차원에서 대화하고 타협해서 공공영역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역부족인 상황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다. 물론 그 사이에 한국 사회는 공공미술 부문의 좋은 경험들을 많이 축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일어난 공공미술 담론, 2006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문화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각 지역 자치단체와 문화재단 등에서 진행하고 있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들은 이전의 양상과는 사뭇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지역별 편차는 극심하다. 전문성에 입각한 일처리보다는 정치나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지배하는 예술경영/매개 분야의 현실은 여전히 희뿌연 안개속이다.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절차적 합리성이 절실하다. 한국의 지역 도시들은 아직 체계적인 영역분할을 통한 예술계 생태의 성립을 이루지 못했다. 인구 1백만이 넘는 거대도시가 다섯 개나 되는데도 서울을 제외한 지역 거점도시에서 예술생산과 매개가 자생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예술경영/매개자 인력의 전문성 문제는 더 심각하다. 각 도시별로 예술 영역의 전문인력 양산 시스템은 이미 수요를 초과할 정도로 공급 과잉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예술생산을 소비로 연결할 매개자 전문인력을 양산하는 시스템은 태부족이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예술 매개자를 길러내는 교육 시스템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예술 관련 대학의 학부나 대학원에서 매개자를 길러내는 데 매우 인색한 형편이다. 실기 관련 교수들의 자리를 줄이고 이론/경영 부분의 학제를 만드는 일이니, 문제제기는 있으되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매개자들을 수용할만한 기관이 없다는 게 악순환의 연속을 만드는 이유이다. 물론 매개자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인력의 지위와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전문 인력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전문가의 영역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실력을 갖춘 인재를 채용해서 제대로 일을 풀어나가기보다는 학연과 지연, 인맥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지방도시의 예술 관련 매개 인력들의 전문성은 그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예술매개자 전문인력이 일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는 강력한 중심주의 프레임 속에 있다. 물론 개발경제의 추진에 필요한 몇몇 지역은 경제적으로 수혜를 누린 사례도 있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제반 영역에 있어 결핍과 부재의 상황이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난 10여 년 전부터 도시 간 소통의 활성화,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른 제도의 정비 등에 따라 지역 간 편차가 줄어들 기미가 보인다. 이러한 조짐이 확고하게 자리 잡으려면 개별 주체들뿐만 아니라 공론장 차원의 각성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경영/매개 관련 전문가들이 제자리를 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기한 바와 같이 각 지역의 예술경영 전문 인력이 부재하거나 부족하다는 인식은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을 모색하게 한다. 아직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사례를 일반적인 관행으로 바꾸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역 활동가로서의 예술인들을 들 수 있다. 각 지역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대안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예술가, 예술 매개자들이 해당 지역은 물론 전국적인, 또는 국제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례들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하고 있는 이들 공간들만 해도 인천과 서울, 안양, 안산, 수원, 원주, 청주, 청송, 부산, 광주, 진안, 대전, 공주 등 전국 각지에 분포해있다. 오히려 이들 공간은 벌써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한 공간들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공간과 개인들이 각 지역을 기반으로 커뮤니티 아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서울이라는 단일한 중심을 벗어나서 각 지역의 다양한 거점을 중심으로 국내외를 오가며 지역 간 교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역의 예술을 얘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것이 인프라의 부재이다. 하지만 물리적 인프라보다 중요한 것인 인적 인프라이다. 좋은 공간보다 중요한 것이 좋은 경영인/매개자를 세우는 일이다. 전국에 산재한 문화공간들이 제 기능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프로그래머/큐레이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전문인력의 부재나 결핍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지역간 연대가 있다. 각 지역의 예술 전문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넘치는 것을 나누고 모자라는 것을 채우는 것이다. 디지털과 인터넷, 그리고 영상이 매개하는 정보양식의 비약적인 발전은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는 데 큰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더 이상 지역의 경계가 치명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정보양식 아래의 예술경영/매개자들은 서로의 부재와 결핍을 보충하고 대리하는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 열린 《A4Demo》전은 각 지역의 작은 힘이 열배 이상의 확산을 만들어냈다. 각 지역에서 섭외한 예술작품들을 함께 나눔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경우이다. 아트포액트(www.art4act.net) 주최로 열린 이 전시는 전국의 13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는데, 오프라전시공간을 기반으로 디지털 데이터를 공유한 온라인 네트워크 프로젝트로까지 확장됐다. 서울의 Lab39, 청주의 톡톡, 광주의 미나리, 부산의 아지트, 수원의 대안공간눈 등 익히 알려진 공간도 있지만, 각 도시의 풀뿌리 문화지형을 이루는 새로운 공간들도 대거 참여해 변화 양상을 실감하게 했다. 의정부의 문화살롱공과 대구의 작은공간이소, 제주의 이디가갤러리, 대전의 카페이데, 춘천의 스페이스공 등 새로운 매개공간/매개자들의 활동이 눈에 띄었다. 안산의 스푼빌, 전주의 남부시장하늘정원 등과 같은 커뮤니티스페이스도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퍼져나가고 있다. 예술 영역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변화의 양상이다. 각 지역에서 나고 자란 예술인 또는 예술경영/매개자가 그 지역의 전문가로서 도시나 공동체 차원의 예술적 소통을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는 것을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주의(localism)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지역의 예술 전문가들이 다른 지역과의 네트워킹을 통해서 사유와 실천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을 상호지역주의(inter-localism)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소수의 운동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관행과 제도의 차원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교육과 시장, 개인, 기관, 관료사회가 예술분야의 지역 전문가들과 협업하려는 자세를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전지구화가 개인에게 내리 꽂는 보편언어가 횡횡하는 시대이다. 지역성과 전문성의 동행은 지역적 사유와 지역적 실천에서 나온다. 그것이 전지구적 보편언어 속에서 지역 공동체의 지방언어를 살리는 길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예술경영지원센터 웹진 기고문 100623

2010/06/24 18:25 2010/06/24 18:25

배달래와 홍상식 :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critic & column | 2010/06/22 20:08


배달래
6.16-29, 팔레 드 서울

배달래의 보디페인팅 퍼포먼스는 몸과 벽과 바닥 전체에 열정적인 에너지의 흔적을 남긴다. 모델의 몸을 따라 흐르는 그의 격렬한 붓질은 퍼포먼스, 사진, 페인팅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원소스 멀티유즈로 진화한다. 근엄한 백학도와 봉황도, 송죽문호 등의 고전 이미지들과 뒤섞인 남녀의 누드들은 시공을 초월해서 새로운 만남을 주선한다. 거리에서 만난 예술가, 직장인, 음악가 등과 펼치는 프로젝트도 이 작가의 넓은 운신 폭을 잘 보여준다.

홍상식
2010.6.10-6.23, 모리스갤러리

속이 텅 빈 길다란 원통 모양의 빨대 더미에 볼륨을 더해서 부조형식의 일루전을 창출하는 홍상식의 작품이 빛을 만났다. 프레임 속에서 비치는 조명으로 인해서 입술과 꽃잎, 구두, 그리고 누드에 이르기까지 송상식의 빨대부조는 빛의 세계로 진화했다. 정형화한 스타일로부터 한걸음 이탈해 변주를 감행한 이번 전시는 한 작가에게 있어 스타일과 내러티브가 얼마나 지난하게 얽혀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 서울아트가이드, 평론가가 선정한 6월의 전시 기고문

2010/06/22 20:08 2010/06/22 20:08

상호지역주의가 싹트고 있다

critic & column | 2010/05/28 21:26


상호지역주의가 싹트고 있다

한국의 여러 도시 미술문화공간들이 함께 만든 온-오프라인 네트워크 전시 [A4 DEMO]가 열리고 있다. 전시제목은 ‘민주주의를 위한 예술(Art for Democracy)'과 'A4 시위(Demonstration)'의 뜻이 담긴 중의어이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한 이들은 각 도시의 오프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하되 사안별로 연대하는 예술인 네트워크 ‘아트포액트’이다. 웹사이트
www.art4act.net은 행동하는 예술(Art for Act)을 표방하는 이들의 아지트이다.

온라인 전시에는 5월 25일 현재 174명의 작가가 작품을 올렸다. 추가 등록을 마치면 참여작가는 2백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13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리는 오프라인 전시들도 개막을 마친 상태다. 신학철, 임옥상, 홍성담 등과 같은 중진에서 김성연, 임영선, 박영균, 노순택 등의 중견, 그리고 구헌주, 전준모, 서평주 등과 같은 신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예술가들이 참가했다.

출품작들은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작품을 비롯해서 동시대 정치 현실을 비판하거나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을 모색하는 작품들이 다수를 이룬다. 생태, 소수자 등 생활세계 속의 민주주의 가치를 들여다보는 작품들도 많다. 정치적 사건을 통해서 민주주의에 접근하는 시각이 있는가하면, 우리의 의식이나 생활 속에 담겨있는 민주주의에까지 눈길이 넓어진 것이다.

각 공간의 디렉터와 큐레이터, 그리고 독립큐레이터, 작가 등이 참가한 17인의 공동기획자들은 각 도시의 작가를 섭외하고 그 원본을 해당공간에 전시했다. 타 도시의 작가들의 작품은 A4 사이즈로 프린트해서 전시했다. 디지털과 인터넷 환경을 활용한 네트워킹으로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참여 공간들도 매우 다양하다. 서울의 Lab39, 청주의 톡톡, 광주의 미나리, 부산의 아지트, 수원의 대안공간눈 등 활발하게 움직이는 거점공간들이 참가했다.

각 도시의 풀뿌리 문화지형을 새롭게 구축할 변화 양상들도 눈에 띈다. 의정부의 문화살롱공과 대구의 작은공간이소, 제주의 이디가갤러리, 대전의 카페이데, 춘천의 스페이스공 등 낯선 공간들도 많다. 안산의 스푼빌, 김해 봉하마을의 노사모전시관, 전주의 남부시장하늘정원 등과 같은 커뮤니티스페이스도 있다. 생활과 예술, 일상과 문화를 접목하려는 시도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사회 현실을 다룬 비판과 풍자, 해학 등의 예술적 가치를 넘어선다. 13개 도시 공간들이 예술의 생산과 매개를 공유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각 도시의 공간들이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는 지역간 네트워크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일한 중심을 넘어서는 다원화한 분극의 네트워킹이다. 자치와 분권의 가치로 21세기 문화민주주의 시대를 여는 소중한 씨앗이 여기에 있다. 바야흐로 폐쇄적 지역주의를 넘어 상호지역주의(inter-localism)가 싹트고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세계일보 기고문

2010/05/28 21:26 2010/05/28 21:26

동아시아 담론이라는 거대서사, 홍성담

critic & column | 2010/05/28 21:25


홍성담은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의 흐름을 대변하는 실천적인 예술가이다. 현실과 발언, 임술년 등 일련의 예술가 그룹들이 주도한 전시장미술운동 진영은 매체의 확장과 형상미술의 방법론을 가지고 당대의 현실을 다룬 비판적 리얼리즘 경향의 작가들이다. 반면에 광주자유미술인협회와 두렁과 같은 그룹들이 주도한 현장미술운동 진영은 걸개그림, 공동창작, 시민교육 등의 새로운 미술운동을 내세우며 당대의 현실 속으로 뛰어든 행동주의 경향의 작가들이다. 홍성담은 광주자유미술인협회의 리더였다. 그는 80년 광주항쟁의 현장에 붓을 들고 뛰어 들었으며, 이후에 목판화 연작으로 참혹한 살육의 현장과 시민들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널리 알렸다. 80년대 후반에는 민미련을 결성해서 전국적인 현장미술운동을 주도했으며 89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루었다.

홍성담의 작품에 대한 이해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예술가의 몸으로 치러낸 격동의 시대에 대한 대응은 냉철한 자기와의 투쟁과 혹독한 고통을 동반해야만 했다. 그는 투쟁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 차분한 성찰의 시기를 보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들은 그 성찰의 시기에 제작한 작품들이다. 홍성담의 작품 경향을 분기하는 현장미술과 전시장미술의 간극을 넘어선다. 그의 2000년대 이후의 근작들은 90년대 중반까지의 전투적인 리얼리즘 미술운동을 저항과 명상이라는 주제의식 아래 성찰적 자세로 승화한 결과물들이다. 2000년대 이후 그는 현장과 전시장의 경계를 넘어서는 비판적 성찰을 통해서 동아시아 담론을 이야기하는 예술가로 활동해왔다.

이번 전시는 2000년대 이후 10여년에 걸친 홍성담의 근작들을 모아 선보인 대규모 기획전이다. 전남도시사 공관으로 쓰이던 건물을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으로 바꾼 상록전시관에서 열린 이 전시는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예술가의 근작들을 돌아봄으로써 민주주의와 동북아시아 평화체제의 의미를 새긴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홍성담 개인전이 518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라는 역사의 주기 계산에 따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열렸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전시의 핵심은 성찰의 메시지를 담은 예술가의 실천이 자기세계의 자장 안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사유와 실천의 결과라는 점을 홍성담이라는 예술가를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여 우리는 홍성담의 체험이 어떠한 실천을 매개했는지 그리고 그 실천은 어떤 경로로 또 다른 체험과 실천을 매개했는지를 차분하게 살펴봄으로써 그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 광주 오월은 한국사회를 민주주의 시대로 변환한 분수령이다. 그 역사의 현장을 예술적 실천의 영역으로 이끌어냈던 홍성담은 1999년의 개인전 <탈옥> 이후 동아시아 담론을 다뤄왔다. 이 전시는 그의 2000년대 이후 근작들을 모아 흰 것과 검은 것, 빛과 물 등의 이원적 요소를 변증법적 통합의 차원에서 다뤘다. 두 가지 요소를 상호대립의 차원이 아니라 상호보완의 차원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제국주의 비판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평화체제에 관한 그의 메시지는 역사 성찰과 현실비판의 두 축이 함께하는 큰 이야기이다. 미소설화를 중얼거리는 이 시대에 거대서사를 펼치는 예술가 홍성담에게서 거장의 풍모가 드러나는 이유이다.

한 예술가에 관한 온전한 이해는 특정한 형식이나 도식으로 그 작가를 규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가령 ‘5월광주작가 홍성담’이라는 명명은 광주항쟁정신이나 홍성담이라는 예술가 모두에게 유익한 표현이 아니다. 특히 예술가가 역사 속의 한 시점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당대의 실천 결과를 평생의 업적이나 업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술가 스스로 퇴행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비상한 노력을 하지 않고는 벗어나기 힘든 굴레일 수 있다. 우리가 홍성담에게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행동주의자의 면면을 발견하는 것은 스스로 광주탈출을 감행하여 그 굴레를 벗었기 때문이다. 물론 홍성담 이외의 많은 예술가들이 광주라는 도시의 역사성과 동시대성을 안고 부단한 자기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홍성담의 경우 스스로 그 상징성의 무게를 덜어놓음으로써 또 다른 경로의 사유와 실천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홍성담이 동아시아 담론을 표방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광주라는 도시, 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체제 안쪽에 한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 동아시아 평화체제에 대한 열망을 근저에 깔고 동아시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영역들을 다뤄왔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 비판 연작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한국의 문제에서 동아시의 문제로 확산하는 창구역할을 했다. 제국주의 비판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뿐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 비판은 한국과 미국, 나아가 중국까지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을지에 관한 열렬한 갈망을 담고 있기도 하다.

홍성담은 일본 제국주의 비판이라는 특수성을 국가주의 비판이라는 보편성의 차원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의 국가주의 비판은 아나키즘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삶에 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권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아나키즘의 사유와 실천은 홍성담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 때 진보의 모든 것을 민족주의 담론과 등치시켰던 한국사회의 특수성은 홍성담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어왔다. 그것은 마치 일제강점기의 신채호가 아나키즘과 민족주의라는 상반된 가치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과도 유사하다. 그것은 20세기 초의 신채호가 처해있던 동아시아의 상황과 21초의 홍성담이 맞이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현실 사이에 흐르는 유사성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민족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치열한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그 모순을 넘어서려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운명일 것이다. 문제는 민족주의 담론이 민족국가의 국가정체성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사유와 실천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데 있다. 신채호가 그랬던 것처럼 홍성담 또한 국가의 테두리는 넘어서는 평화체제를 꿈꾸고 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 중국, 나아가 대한민국 안에 도사리고 있는 국가주의의 위험성을 비판한다.

홍성담의 서사 구성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20세기의 문화식민 상황을 거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있어 수천년동안 이어온 신화의 그 넓고 깊은 이야기들은 삶 속에 녹아있는 흔적들은 있으되 큰 뿌리를 이루는 원형은 낯선 것이기만 하다. 그는 이 신화의 원형을 찾아 자신의 독창적인 시각언어로 재구성했다. <신몽유도원도>나 <가화> 등의 대작들은 전통회화의 서사구성 방식을 차용해 삶과 죽음, 실재와 가상, 과거와 현재의 틀을 넘어서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야스쿠니 연작은 동아시아 담론을 풀어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시나리오는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그는 일본의 국가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야스쿠니를 통해서 상징투쟁을 벌여왔다. 그는 이 연작을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심지어는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전지구적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일체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확산해왔다.

<야스쿠니의 미망-5>는 임신한 여성과 할복한 미시마 유키오, 수탈당한 일본 여성, 온갖 잡귀 등을 등장시켜 국가주의의 미망이 도사리고 있는 야스쿠니의 위험성을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간코쿠 야스쿠니-1>은 박정희 전두환, 삽, 경찰, 청화대, 용산 남일당 등의 상징들 동원해서 한국사회에 퍼져있는 국가주의를 들춰내고 있다. <아리랑을 부르는 탁경현>은 가미가제로 산화하기 전에 마지으로 아리랑을 불렀다는 조선인의 영혼이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에 묶여 있다는 점을 폭로하는 입체 설치 작품이다. 홍성담은 1993년 출옥 이후 매일 매일 그림일기를 그리고 있다. 대작 페인팅이 아니라 소품 드로잉에 해당하는 이 작품들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의 예민한 촉수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분단상황을 압축한 <평양소견>, 광주항쟁의 주역인 선배를 그린 <합수 윤한봉>, 국가주의의 그림자를 포착한 <태안반도>, 국가폭력의 실상이 드러난 <용산참사> 등에 관한 그의 단상들이 담겨있다.

10년여에 걸친 홍성담의 근작들은 87체제 이후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리얼리즘 예술가의 고심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87년 이전의 리얼리스트들이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서 현실 비판과 참여를 실천했다면, 이후의 예술가들에게 있어, 특히 홍성담에게 있어 보다 중요한 쟁점은 도시나 국가, 민족 등의 규정을 넘어서는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는 일이었다. 특히 민족주의가 진보적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던 점, 특히 홍성담의 경우 진영테제 속에서 민족주의 담론과 가까웠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2000년대 이후 근작들이 국가주의 비판을 통해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 담론은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 지속되는 한 영원한 난제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분단으로부터 유래한 이 복잡다단한 모순을 관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국가, 자본, 개인, 생태, 문화 등의 문제들이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담론을 지향하는 홍성담의 거대서사는 광주와 한반도의 특수성을 동아시아와 세계의 보편성으로 확산했다. 광주 문제가 민족, 국가, 동아시아, 세계의 문제로 확산하면서 특수와 보편의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홍성담은 현실의 매우 구체적인 상황에 관한 예술적 실천이라는 미시적 담론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동아시아의 문화적 원형과 평화체제라는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홍성담을 민족과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아나키스트로 재발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2010/05/28 21:25 2010/05/2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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