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에 관한 단상

critic & column | 2010/08/13 06:55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에 관한 단상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정치경제학’으로 불린다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는 ‘정치문화학’으로 불릴만하다. 이 책은 문화 혹은 예술의 장(場)이 계급과 권력의 문제와 얼마나 가깝게 붙어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부르디외는 ‘자본’을 경제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그는 문화-사회관계-상징 자본이 지배-중간-민중 계급을 구별짓는 차이를 만들고 지키는 뿌리임을 밝혔다.
2010/08/13 06:55 2010/08/13 06:55

새로운 주문예술

critic & column | 2010/08/11 14:38


새로운 주문예술

생명은 흐른다. 그것은 순환을 으뜸 원리로 한다. 새들의 생태는 생명의 흐름을 잘 드러낸다. 텃새는 텃새대로, 철새는 철새대로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맞게 삶을 꾸리는 지혜를 터득하고 그 순리에 맞게 흐르며 산다. 풍부한 자연생태는 새들과 같은 생명체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천혜의 서식처를 이룬다. 예술도 흐른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시대정신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감상과 새로운 예술이 흐른다. 그 예술가들에게 사회는 서식처이다. 메마른 하천에서 새와 물고기를 만날 수 없듯이 궁핍한 사회에서 예술가를 만날 수 없다.

자연생태계 속에서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서식처를 찾아 움직이듯이 사회적 장으로서 자리잡은 예술생태계의 예술가들 또한 서식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예술가들을 품어 안을 만한 서식처는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시민으로부터 나온다.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향유한다는 것을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애호가(愛好家, amateur)라는 말 속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술의 공공성에 동의하는 선의의 후원자(패트론, patron)가 필요하다. 애호가와 후원자가 많은 문화도시라는 서식처는 좋은 예술가들을 품어 안는다.

예술(가)의 거처인 예술생태는 곧 예술(생산과 교환)체제이다. 예술체제의 변화는 주문방식의 변화와 연관이 깊다. 주문방식의 변화가 예술체제의 변화를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 이전의 예술체제가 주문에 따라 생산해서 납품하는 주문생산방식이었다면, 근대 시기의 예술체제는 주문 없이 생산해서 ‘전시장이라는 시장’에 내다 놓고 화폐와 교환하는 시장체제로 바뀌었다. 비록 콜렉터들의 보이지 않는 주문을 추종하는 ‘시장미술’을 쏟아내는 부류도 있지만, 주문의 방식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전근대 시기의 패트론은 자신의 권력을 옹호하는 예술을 길러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지만, 근대 시기의 콜렉터는 예술가의 자율적인 창작세계와 시대정신을 갈무리한다는 차원에서 예술가들을 간접적으로 후원했다.

탈근대 시기의 예술체제는 점차 전근대나 근대와는 다른 방식의 새로운 주문체제로 바뀌고 있다. 근대 이후의 예술생태에서는 패트론이나 콜렉터와는 다른 종류의 문화생산자가 등장했다. 공공의 선을 위해 예술가들과 동행하는 공중(公衆)이 그들이다. 공공의 이름으로 예술가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주문을 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예술을 더 이상 감상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 소통기제로서 공동체에 참여하고 개입하는 공공영역의 행위자로 본다는 얘기다. 예술가 스스로 주민들의 요구를 끌어내는 방식, 또는 공동체 속에 개입하고 참여하는 ‘새로운 주문예술’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2010/08/11 14:38 2010/08/11 14:38

양계장 무정란과 창작스튜디오

critic & column | 2010/08/04 10:30


양계장 무정란과 창작스튜디오

닭은 길들여진 존재이다. 닭은 오랜 세월동안 인류와 함께 하며 가축으로 정착했다. 닭의 사육방식도 산업화에 따라 사뭇 달라졌다. 시골 마당과 그 주변을 돌아다니며 모이를 쪼아 먹는 닭의 모습은 이제 목가적 전원풍경을 대변하는 옛이야기다. 닭은 단기간 압축성장을 위해 빡빡한 우리, 즉 양계장 속에서 자란다. 이들은 생식 기능마저 원천 차단당한다. 따라서 그들이 쏟아내는 알은 유정란이 아니라 무정란이다. 현대예술을 여기에 빗대기도 한다. 야성을 상실한 예술상품 생산자들이 틀에 박힌 유사, 변종 예술을 ‘양계장 무정란’이라고 비판한다.

예술가가 각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내용과 형식을 가진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시장에서 요청하는 바, 또는 기성의 예술 트랜드에 충실한 작품을 내놓기 때문이다. 특히 창작스튜디오의 레지던시(residency, 임시거주) 프로그램들의 경우에 이러한 비판에 극심하게 노출되어 있다. 각 도시마다 앞을 다투어 창작공간을 만들고 있다. 10여년 전에는 문화부에서 폐교를 활용한 창작스튜디오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후 지자체와 기업에서도 임시거주 작업실들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보편적인 예술제도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예술가들이게 작업실 공간을 제공한다는 애초의 취지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1년이나 2년 단위로 작가가 교체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작업실 지원 프로그램으로서는 의미가 없다. 이 공간들은 예술가들이 폐쇄된 공간에서 자기 언어에 빠지지 않도록 다양한 주체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는 데 보다 큰 의의가 있다. 문제는 그 만남이 예술가들끼리의 만남, 또는 소수의 미술제도 엘리트들만의 만남에 그친다는 데 있다. 사회 전체와의 깊은 만남이 아닌 예술계 표피의 만남이 지속되다보니 어느덧 양계장 무정란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도 창작스튜디오의 진화과정에서 나오는 얘기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대안적인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들은 이미 새로운 미술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부산의 오픈스페이스배나 서울의 금천창작공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거점이자, 지역의 커뮤니티 아트의 거점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와 도시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를 빈번하게 오가는 예술가들이 그 도시공동체에 활력을 높이고 있다. 예술가들의 왕래는 문화적 개방성의 척도이다. 바야흐로 미술관, 화랑, 대안공간과 함께 창작스튜디오가 새로운 미술 담론과 실천을 견인하는 시대이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2010/08/04 10:30 2010/08/04 10:30

빛을 모시는 성찰의 공간 : 안종연, 좌화취월

critic & column | 2010/08/02 15:35


빛을 모시는 성찰의 공간

빛과 색의 예술가 안종연의 작품이 서울 광화문의 교보문고와 만나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물질과 비물질 사이를 오가며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다뤄온 안종연의 세계가 시민들의 일상문화공간과 결합한 것이다. 이 작품 <좌화취월(坐花醉月, Ezen of light)>은 빛을 모시는 제의 공간이며, 인간과 자연, 정신세계와 물질문명의 공존을 주선하는 소통의 장이다.

안종연의 세계는 예술과 기술, 물질과 비물질, 조형과 개념, 시각언어와 문자언어 등 다양한 영역과 범주들에 두루 걸쳐있다. 그는 예술 영역에 발 딛고 서서 그 범주를 확장하는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그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영역을 이어주는 메신저이다. 그는 예술의 안팎을 두루 관통하는 인터아트(Inter-art)의 영역으로 그 에너지를 무한히 확장한다.

<좌화취월>은 시간과 공간, 생성과 소멸의 문제를 하나의 화두로 집약하고 있다. 유리 캐스팅과 LED 조명 등의 멀티미디어를 집약한 이 작품은 교보문고 특유의 천정공간을 재해석한 빛과 색의 세계이다. 갖가지 색채와 형태를 가진 유리 구체들은 영롱한 빛을 발산하면서 '꽃밭에 앉아 달에 취하듯' 교보문고 공간에 판타지를 가미한다. 그것은 일상과 일탈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소통이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2010/08/02 15:35 2010/08/02 15:35

지역, 지역성, 지역주의

critic & column | 2010/07/28 14:29


지역, 지역성, 지역주의

일상과 정치, 예술 등 우리 삶의 여러 영역에서 지역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사회과학에서 쓰는 지역(地域, region)의 정의는 유사성이나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을 포괄한다. 지역의 범주는 클 것일 수도, 작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크면 클수록 명확한 구분이 적어진다. 가령 중부나 남부와 같은 지역 개념은 호남이나 영남 같은 지역 개념에 비해 그 개연성이 적다. 지역은 자연환경에 의해 구분되거나, 국가 단위의 행정구역 편재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역사 속에 축적된 문화적 차이에 근거한다. 자연과 문명, 이 두 가지 요소가 지역을 구분하는 중요한 축선이다.

최근에는 이 두 가지 요소에 따른 지역 개념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지역과 지역 사이의 차이를 확인하기보다는 동질성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과 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는 첨단의 문명 덕분이다. 한국에서도 지역간 경계는 점점 옅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지역 개념은 완고하기만 하다. 문제는 그것이 건강한 공동체 기반의 지역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변방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서울이라는 지역은 지방이 아닌 중앙이고, 서울 이외의 지역은 주변으로서의 지방이라는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도 못한 법. 지역 개념을 오남용하는 사례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시민이라고 부르면 될 일은 지역민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비롯해서 정치에서의 개념없는 지역주의를 비롯해 불필요하게 지역을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건강한 의미의 지역 개념이라기보다는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서의 지역 개념을 근저에 깔고 있는 변방의식의 산물이다. 지역간의 경계가 줄어들고 동질성의 범위가 점점 커지는 마당에 아직도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지역 개념을 쓸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지역의 특성을 규명한다는 차원에서의 지역성 논의는 예술 영역에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전지구화의 여파로 전지구적인 보편성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개인에게까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시대에 글로벌리즘의 상대개념으로서의 지역주의(localism)는 예술적 실천의 범위와 방법을 규명하는 데도 매우 강력한 이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예술을 전지구적인 보편언어가 아니라 지역성을 발화하는 특수성의 국면으로 이해하는 태도이다. 자치와 분권의 시대정신에 맞게 예술영역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할 시점이다.

김준기(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문

2010/07/28 14:29 2010/07/28 14:29

수광영월(水光寧月)

critic & column | 2010/07/27 18:56


수광영월(水光寧月)

물은 생명을 안고 흐르며, 길은 문명을 실어 나른다. 물과 빛과 영월의 서사를 담고 있는 이 작품 <수광영월>은  동강 어라연 계곡의 길목에 위치한 생태정보단지의 랜드마크이다. 예술가 안종연은 평면과 입체, 회화와 영상 등 전방위의 매체를 두루 엮어 빛과 색의 세계를 탐구한다. 이 작품은 금속과 유리, LED 전광판, 디지털 비디오 인터페이스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예술이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생명 순환의 법칙을 형상화 하고 그 속에 빛의 파노라마를 넣었다. <수광영월>은 ‘물빛영월’을 밝히는 생명의 달이며, 문명의 달이다.

2010/07/27 18:56 2010/07/27 18:56

인식의 진화와 회화 : 홍원석

critic & column | 2010/07/26 16:5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식의 진화와 회화 : 홍원석


야간운전이라는 작가 특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트라이트 불빛의 매력에 천착했던 홍원석이 불빛의 비중을 줄이고 그 대신에 현실 속의 사건과 정황들을 담아냈다. 홍원석의 그림들에는 불안한 주거의 현실 문제가 많이 나타난다. 재개발, 철거, 폭력 등이 난무하는 현대도시의 실상은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삶, 특히 주거의 문제와 직결한다. 그가 스스로 원했기 때문이겠지만, 홍원석 그 자신도 대전을 떠나 지난 몇 년간 비정주, 임시거주 방식으로 떠돌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렇듯 인간의 거주지를 둘러싼 문제들을 다루는 화가의 마음이 어떤 것일지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기념비적인 대작 <용산 미스터리>는 커다란 색면으로 분할한 화면의 한 구석에 용산의 남일당 건물과 그 앞에서 낙하하는 인물을 담아 도시의 비정한 위기상황을 포착했다. 남일당 건물 안에는 전투 경찰과 책읽는 아이들, 섹스하는 남녀 등 여러 가지 장면들이 얽혀있다. 부드러운 표면 대신에 빠른 속도의 거친 붓질이 돋보인다. 매끈한 완결미 대신에 부분적인 생략과 과장된 표현을 가미한 회화적 표현, 거기에다 강렬하고 대범한 원색의 색면으로 불온하고 불안한 동시대의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담은 그림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왜 용산인가 하는 문제이다. 용산은 2009년 한 해 동안 한국사회의 극단적인 모순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낸 문제의 진원지이다. 현대사회의 배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용산참사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한국사회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삶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홍원석은 그 실상을 기념비적인 회화로 남겼다. 회화는 순발력이 떨어지는 대신에 그 화면 속에 담긴 꽉찬 짜임새와 밀도있는 표현 등이 장점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장점이 있다. 이 그림은 지금 당장 보다는 10년 후, 20년 후 더욱 가치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2010년을 살아나가고 있는 우리시대의 불안, 우리시대의 공포가 압축적이면서도 풍부한 서사구조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탐조등 불빛을 변용한 그림들도 다수 있다. 군용 앰뷸런스 차량의 해트라이트가 맥도널드의 'M'으로 바뀌기도 한다. <샷~>은 황재형의 1980년대 명작 <앰뷸런스>에 대한 오마주이다. 그는 황재형의 그림에 담겨있는 위기상황 표현의 특징적인 부분을 따다 썼다. 나무와 길, 불빛 등 황재형을 옮겨 쓴 그림 위로 전투기의 발사 장면을 담았다. 불안과 공포의 현재성을 담은 그림이다. 나이 서른의 젊은 화가로서 가까운 과거에 관한 경의와 재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의 진보가 아니라 인식의 진화이다. 바야흐로 홍원석의 그림이 단일한 아이템으로부터 다양한 서사와 표현으로 진화하고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 2010년 8월호 월간미술 기고문

2010/07/26 16:50 2010/07/26 16:50

개념+예술+행동 : 주재환 임옥상 이태호 안규철 박불똥

critic & column | 2010/07/25 01:29


개념+예술+행동 : 주재환 임옥상 이태호 안규철 박불똥

1980년대에 현실과 발언 동인들이 보여준 새로운 시도와 1990년대 이후의 진화 양상은 평면과 입체를 중심으로 한 물질구조의 예술생산을 다양화 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이 섹션 <개념+예술+행동>의 다섯 작가들은 개념예술로부터 출발해서 예술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진화해왔다. 이들은 예술적 표현을 감상의 대상으로 고착화하지 않고, 참여와 개입을 통해 상호작용을 매개하고자 했다.

이들은 개념예술이나 새로운 공공미술, 또는 행동주의예술의 경향을 보이면서 미술제도가 한정한 경계를 넘나들었다. 주재환과 박불똥은 비가시성, 복제성, 개념적 퍼포먼스 등으로 비물질적인 예술 소통의 폭을 넓혔다. 임옥상, 이태호, 안규철은 회화나 조각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전시장미술의 한계를 넘어 예술행동의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이들은 전문적인 미술문화공간의 관객뿐만 아니라 삶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시민과 예술로서 소통하기를 원했다.

이들의 작업은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치환하는 시장중심의 예술체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다. 시장중심의 예술체제는 교환가능한 물질로서의 미술작품 중심으로 작동함으로써 사유와 성찰을 주선하며 공동체의 새로운 합의 생산을 매개하는 데 있어 한계를 보인다. 그것은 예술생산의 목표를 교환가치에 천착하게 함으로써 본연의 소통기능에 역행하곤 한다. 개념예술에서 예술행동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작가들은 한국의 현대미술이 물질생산으로서의 예술창작을 넘어 소통기제로서의 예술적 표현으로 진화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이정표를 만들고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현발30 섹션 텍스트, 줄임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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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예술+행동 : 주재환 임옥상 이태호 안규철 박불똥

1980년대에 현실과 발언 동인들이 보여준 새로운 시도와 1990년대 이후의 진화 양상은 평면과 입체를 중심으로 한 물질구조의 예술생산을 다양화 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이 섹션 <개념+예술+행동>의 다섯 작가들은 개념예술로부터 출발해서 예술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진화해왔다. 이들은 예술적 표현을 감상의 대상으로 고착화하지 않고, 참여와 개입을 통해 상호작용을 매개하고자 했다.

주재환은 오브제, 꼴라주, 패러디 등을 두루 관통하면서 삶의 면면을 통찰하는 유머와 시니시즘을 보여줌으로써 시각예술의 표현 방식을 확장하는 데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이태호는 1980년대의 입체와 프린트, 꼴라주 작업에서 최근의 기념패, 패러디 영상 등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으로 특유의 언어감각을 풀어냈다. 박불똥은 콜라병과 성조기로 만든 오브제 설치 작품을 비롯해 다수의 꼴라주 작품과 개념적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서 문자언어와 시각언어를 두루 넘나드는 개념예술을 선보였다. 안규철은 물질 그 자체보다는 상황의 표현에 중심을 둔 조각으로부터 절제된 언어로 풍부한 서사를 이끌어내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개념예술 경향의 작업을 해왔다. 임옥상은 초기의 회화나 입체 작업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1990년대 후반 이후 참여와 공공의 개념을 끌어들여서 예술적 소통의 장을 제도미술 바깥으로 넓혀왔다.

이들은 개념예술이나 새로운 공공미술, 또는 행동주의예술의 경향을 보이면서 미술제도가 한정한 경계를 넘나들었다. 주재환과 박불똥은 비가시성, 복제성, 개념적 퍼포먼스 등으로 비물질적인 예술 소통의 폭을 넓혔다. 임옥상, 이태호, 안규철은 회화나 조각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전시장미술의 한계를 넘어 예술행동의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이들은 전문적인 미술문화공간의 관객뿐만 아니라 삶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시민과 예술로서 소통하기를 원했다.

이들의 작업은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치환하는 시장중심의 예술체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다. 시장중심의 예술체제는 교환가능한 물질로서의 미술작품 중심으로 작동함으로써 사유와 성찰을 주선하며 공동체의 새로운 합의 생산을 매개하는 데 있어 한계를 보인다. 그것은 예술생산의 목표를 교환가치에 천착하게 함으로써 본연의 소통기능에 역행하곤 한다. 개념예술에서 예술행동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작가들은 한국의 현대미술이 물질생산으로서의 예술창작을 넘어 소통기제로서의 예술적 표현으로 진화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이정표를 만들고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 현발30 섹션 텍스트, 안줄임 버전

2010/07/25 01:29 2010/07/25 01:29

40*40*40*40, 홍원석 - 탐조등 : 서울아트가이드 이달의 전시

critic & column | 2010/07/22 18:20


40*40*40*40, 대안공간 솜씨

서울 영등포의 문래동에 대안공간이 생겼다. 솜씨. 목화 ‘솜’의 ‘씨’앗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기술로서의 예술 개념과 관련이 있는 ‘솜씨’라는 말이 섞인 곳이다. 개관기념전으로 열린 이 전시에는 40명의 작가들이 출품했다. 40cm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소품들이다. 작가의 이름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익명성에 가려진 작품들 앞에서 머뭇거리게 하는 흥미로운 장치이다. 이 공간이 향후 문래동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를 대략 가늠할 수 있게 한다.

홍원석 : 탐조등, 대전롯데갤러리

홍원석의 자동차 불빛 그림이 한 단계 진화했다. 매끈한 완결미 대신에 부분적인 생략과 과장된 표현을 가미한 회화적 표현이 돋보인다. 야간운전이라는 작가 특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트라이트 불빛의 매력에 천착했던 그가 불빛의 비중을 줄이고 그 대신에 현실 속의 사건과 정황들을 담아냈다. 기념비적인 대작 <용산 미스터리>는 커다란 색면으로 분할한 화면의 한 구석에 용산의 남일당 건물과 그 앞에서 낙하하는 인물을 담아 도시의 비정한 위기상황을 포착했다.

2010/07/22 18:20 2010/07/22 18:20

개념+예술+행동 : 주재환 임옥상 이태호 안규철 박불똥

critic & column | 2010/07/21 16:19


개념+예술+행동 : 주재환 임옥상 이태호 안규철 박불똥

1980년대에 현실과 발언 동인들이 보여준 새로운 시도와 1990년대 이후의 진화 양상은 평면과 입체를 중심으로 한 물질구조의 예술생산을 다양화 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이 섹션의 다섯 작가들은 개념예술로부터 출발해서 예술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진화해왔다. 주재환은 오브제, 꼴라주, 패러디 등을 두루 관통하면서 삶의 면면을 통찰하는 유머와 시니시즘을 보여줌으로써 시각예술의 표현 방식을 확장하는 데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이태호는 1980년대의 입체와 프린트, 꼴라주 작업에서 최근의 기념패, 패러디 영상 등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으로 특유의 언어감각을 풀어냈다.

박불똥은 콜라병과 성조기로 만든 오브제 설치 작품을 비롯해 다수의 꼴라주 작품과 개념적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서 문자언어와 시각언어를 두루 넘나드는 개념예술을 선보였다. 안규철은 물질 그 자체보다는 상황의 표현에 중심을 둔 조각으로부터 절제된 언어로 풍부한 서사를 이끌어내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개념예술 경향의 작업을 해왔다. 임옥상은 초기의 회화나 입체 작업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1990년대 후반 이후 참여와 공공의 개념을 끌어들여서 예술적 소통의 장을 제도미술 바깥으로 넓혀왔다.

<개념+예술+행동> 섹션의 작가들은 예술적 표현을 감상의 대상으로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와 개입을 통해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단계로까지 진화해왔다. 이들은 공공미술 개념을 넘어 행동주의 경향을 보이면서 미술제도가 한정한 경계를 넘나들었다. 주재환과 박불똥은 비가시성, 복제성, 개념적 퍼포먼스 등으로 비물질적인 예술적 소통의 폭을 넓혔다. 안규철, 이태호, 임옥상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전시장의 관객이 아닌 생활공간 속 시민과의 소통을 모색해왔다.

이들의 작업은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치환하는 시장중심의 예술체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다. 시장중심의 예술체제는 교환가능한 물질로서의 미술작품 중심으로 작동함으로써 사유와 성찰을 주선하며 공동체의 새로운 합의 생산을 매개하는 데 있어 한계를 보인다. 그것은 예술생산의 목표를 교환가치에 천착하게 함으로써 본연의 소통기능에 역행하곤 한다. 개념예술에서 예술행동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과 발언 동인은 한국의 현대미술이 물질생산으로서의 예술창작을 넘어 소통기제로서의 예술적 표현으로 진화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이정표를 만들고 있다.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현실과 발언 30년을 위한 메모

2010/07/21 16:19 2010/07/2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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