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중의 ‘옛그림 다시 읽기’를 생각함 050225
critic & column | 2005/02/25 09:04
이희중의 ‘옛그림 다시 읽기’를 생각함
박제화한 옛것의 굴레를 벗고 당당하게 동시대의 새것으로 만나는 일. 이것이 이희중 예술의 진면목에 다가서는 지름길이다. 흔히 옛것을 가져다쓰는 경우에 과거의 것을 현재의 것으로 어떻게 이어낼 것인가에 관한 중압감으로 인해서 의지의 과잉에 빠진 나머지 그 조형예술 본연의 맛과 향을 살려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옛사람들의 문화예술을 다루는 적잖은 예술가들은 그것을 동시대 시각예술의 살아있는 언어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화석화한 과거로 박제하거나 단순 반복하는 데 그치기도 한다. 이희중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경지를 이루는 것에 자신의 목적을 뚜렷하게 설정해 두고 있다.
이희중은 구도자의 자세로 옛그림을 불러들여 새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생동하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생환하게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작가 본인이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화가로서의 유희를 한껏 구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하다. 지독한 그림그리기로 유명한 그의 작업은 전통계승이라는 역사적 사명감에 불타는 것이 아니라 회화의 유희적 요소를 동반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것은 그가 ‘옛것의 현대화’라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화가로서의 회화적 묘미를 찾는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옛사람들의 조형의식이 현대의 조형미로 살아 꿈틀거리기를 갈구하는 구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희중의 화면 속에서 조형적 요소로 사용한 도상들이 박제화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비결이다.
무릇 예술은 동시대의 흐름과 어울려 살아 꿈틀거리는 정신으로 자리 잡아야 생명력을 가진다. 이희중의 예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따뜻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작 수복도를 예로 들어보자면, 그의 그림은 (오래 살고 복 받기를 바라는) 옛그림의 미덕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가 가져온 과거의 요소들은 조형적인 요소로서의 과거뿐만이 아니다. 이것을 새롭게 해석해서 재배치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사를 규정하는 삶의 에너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결코 과거의 것으로 귀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래 살고 복 받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삶의 의지를 반영하는 변함없는 화제(畵題)가 아닐 수 없다. 화가 이희중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의 옛사람들이 즐겨 썼던 아이콘을 당대의 것으로 끌어내는 일을 화가로서의 천분으로 삼고 있다.
그가 옛그림의 기호들을 가지고 작업을 풀어내는 데는 해방 직후 세대로서의 실존적 배경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화가 이희중’과 ‘이희중 회화’의 내적 필연성을 찾아보는 데 있어서 그가 자라온 60년대의 흐름은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는 60년대 이후에 가속도를 붙인 한국사회의 전통해체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자라온 세대이다. 그는 집안 구석구석에 붙어있는 민화를 생생하게 목격했고, 경제개발로 인해 전통적 가치와 도상들이 벽지 속 도배지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본 세대이다. 유년시절 목격한 동네 굿판에서 작두 타는 무당을 목격한 세대이기도 하며, 성북동 걸인들이 삼청동으로 밥 동냥 다니던 시절에 각설이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담긴 미묘한 애환을 잊지 못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도상연구는 유년시절의 충격과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한 세대의 탄탄한 정서 속에서 나온 것이다. 육화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이희중 식의 과거 연구는 그의 회화세계를 다지는 기본이다. 이희중은 조선시대 이래 대대로 종로구 북촌 일대에 터를 잡고 살아온 역관이나 의원, 화원 출신의 중인집안 후손이다. 종로에서 5백년을 살아온 집안으로서, 화가였던 아버지, 삽화가로 유명한 작은 할아버지 이승만, 사돈댁 고희동 등이 유년 시절 이후 그가 자연스럽게 화가로서 성장하게 한 배경을 이룬다.
옛그림에 담긴 몽환의 세계를 탐색하는 그는 초월의 세계를 향하는 구도적 자세로 예술적 상상력을 결합한다. 현실 삶을 넘어서는 판타지를 갈구하는 삶은 예술가 본연의 것일 텐데, 이 때 이희중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방법이 도상연구자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이다. 이희중은 과거의 도상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여 현대회화 작업으로 번역해내고 있는데, 이러한 작업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것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실험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렇듯 도상연구자로서의 화가 이희중은 옛그림 속에서 현대미술로 끌어들일 가치가 있는 조형적 요소들을 뽑아내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옛그림들 가운데서도 설화적 요소를 담고 있는 민화의 풍부한 자산을 갈고 닦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십장생, 물고기, 소나무, 돌, 구름, 산하, 용과 호랑이 등과 더불어 산수와 문자도 등이 담고 있는 고유한 형상을 복원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상징들을 동시대의 것으로 만들어내며, 나아가 조형적 기호로서의 가치를 재발견 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 속에는 패턴화 한 장식적 요소들이 두드러지는데, 이것은 생략을 통한 형상의 단순화의 원리와 강렬한 색채의 요소 등 옛그림의 미덕을 살려낸 데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때 표현주의 회화에 매료되어 독일 유학길에 오른 그는 ‘유럽 화가들의 그림을 닮으려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여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이것을 자신의 회화 전략으로 채택했다. 그 이후 20여년 화력을 가진 그가 이루어낸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독창적인 그의 회화들이다.
이희중의 근작은 크게 네 가지로 묶어볼 수 있다. 문자도와 민화를 재해석해낸 수복도, 옛그림의 문양과 현대적 조형 요소들을 결합해낸 우주 연작, 민화의 회화적 요소를 다시 읽어낸 풍경 연작, 먹그림으로 명상적 통찰을 일구어낸 기운 연작들이 그것이다. 최근작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무수한 점묘들은 특히 지난한 작업 여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색면을 이루는 무수한 점(點)들은 회화적 맛을 더해주는 요소일뿐더러 화가의 부지런한 손길을 드러내는 장치인 것이다.
“수복”(壽福)그림은 복 받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문자도의 대표자 격인 수(壽)와 복(福)의 두 가지 도상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장수(長壽)와 기복(奇福)은 옛그림 속에서 가장 널리 쓰인 과거의 아이콘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 삶을 좌우하는 살아있는 아이콘이다. 20cm짜리 정방형 그림 63개를 이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대작 수복도(壽福圖)는 장수를 기원하는 수(壽)와 복(福)의 두 가지 문자도를 배열하고 그 사이에 갖가지 옛그림 문양을 차용한 그림을 교차해 넣은 작품이다.
“우주” 연작은 다양한 문양을 통해서 기하학적인 추상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그는 옛그림의 문양들뿐만 아니라 우주선과 낙하산, 행성, 달, 북두칠성, 비, 바람, 뇌우, 구름, 별, 잉카문명의 도상 등 동서고금의 여러 도상들을 혼재함으로써 혼돈 속에 흐르고 있는 우주적 질서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우주 연작은 지역적 요소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인 문명의 요소들을 가지고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우주 연작들 가운데서 특히 근작들은 점묘의 방법으로 색다른 화면 구성을 이루고 있다. 선으로부터 출발해서 색면에 이르는 방법의 골간은 유지하되, 뚜렷한 윤곽선의 내부를 매끈한 단색으로 처리하던 방법에서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진 화면 구성으로 전환한 변화가 역력하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와 짝을 맞춰 나온 그림 포도 연작들도 마치 모자이크 벽화를 보는 것 같은 독특한 화면 구성과 무수히 많은 점묘의 섬세함으로 회화적 재미를 더하는 근작들이다.
화려한 색채의 “풍경” 연작은 최근 들어 더욱 깊은 몽환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푸른 밤에 피어난 흰 매화, 둥근 산의 흐름을 리드미컬하게 구성한 구릉의 중첩된 곡선들, 화려한 진달래, 살구꽃과 나비가 어우러진 몽환적 풍경 등은 정점에 달한 이희중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업실은 구파발 위쪽 벽제의 조용한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데, 구릉에 살짝 얹혀있는 그의 소탈한 작업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와 구릉과 사시사철 한국의 생태를 담아내는 주변 풍광들은 마치 그의 그림을 대하는 듯하다. 소나무, 달, 구릉, 진달래, 매화, 살구꽃, 나비, 새, 노인, 정자, 절, 탑 등 전통 산수화의 요소들과 그것들을 배치하고 운용하는 옛그림의 맛을 캔버스 위에 기름물감으로 그린 유화로 마주하게 한다는 점. 이희중 풍경이 보여주는 통쾌한 맛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민화적 요소의 도식을 넘어서는 회화적인 성취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먹그림으로 심상을 드러낸 “기운” 연작은 먹선의 옛그림의 농담과 발묵의 조절이나 화면 운용에 이르기까지 완숙하게 종이와 붓을 다루는 ‘이른바 서양화가’ 이희중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먹과 담채를 가지고 바탕에 무늬가 새겨진 종이위에 그림을 그려 독특한 맛을 이끌어내는 그의 먹그림들은 이희중이 얼마나 철저하게 옛것을 탐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유화물감을 다루는 자세와는 전혀 다른 붓의 속도와 힘의 조절을 요청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세심하게 눈길을 끄는 그림들이다.
이희중은 소탈하면서도 세련된 미감을 가진 예술가이며, 동시에 엄청난 삶의 에너지와 예술적 에너지를 가진 화가이다. 형상의 사실적 묘사를 넘어서는 화려한 색채로 일반적인 재현회화 이상의 묘미를 살리는 그의 독특한 회화 세계는 몽환적 초현실의 세계와도 맞닿아있으며, 동시에 현실 삶의 고뇌를 위무하는 예술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희중의 ‘옛그림 다시 읽기’를 생각해 본다. 과거의 조형미 속에서 동시대 인간 삶의 보편성을 끌어내는 이희중의 그림들은 우리가 여기 이 땅에서 여전히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증거하는 실존의 흔적인 것이다. 진정으로 과거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이희중의 깊은 그림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2005. 2. 25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박제화한 옛것의 굴레를 벗고 당당하게 동시대의 새것으로 만나는 일. 이것이 이희중 예술의 진면목에 다가서는 지름길이다. 흔히 옛것을 가져다쓰는 경우에 과거의 것을 현재의 것으로 어떻게 이어낼 것인가에 관한 중압감으로 인해서 의지의 과잉에 빠진 나머지 그 조형예술 본연의 맛과 향을 살려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옛사람들의 문화예술을 다루는 적잖은 예술가들은 그것을 동시대 시각예술의 살아있는 언어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화석화한 과거로 박제하거나 단순 반복하는 데 그치기도 한다. 이희중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경지를 이루는 것에 자신의 목적을 뚜렷하게 설정해 두고 있다.
이희중은 구도자의 자세로 옛그림을 불러들여 새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생동하는 현대미술 작품으로 생환하게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작가 본인이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화가로서의 유희를 한껏 구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하다. 지독한 그림그리기로 유명한 그의 작업은 전통계승이라는 역사적 사명감에 불타는 것이 아니라 회화의 유희적 요소를 동반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것은 그가 ‘옛것의 현대화’라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화가로서의 회화적 묘미를 찾는 즐거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옛사람들의 조형의식이 현대의 조형미로 살아 꿈틀거리기를 갈구하는 구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희중의 화면 속에서 조형적 요소로 사용한 도상들이 박제화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비결이다.
무릇 예술은 동시대의 흐름과 어울려 살아 꿈틀거리는 정신으로 자리 잡아야 생명력을 가진다. 이희중의 예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따뜻한 인간애를 바탕으로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작 수복도를 예로 들어보자면, 그의 그림은 (오래 살고 복 받기를 바라는) 옛그림의 미덕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가 가져온 과거의 요소들은 조형적인 요소로서의 과거뿐만이 아니다. 이것을 새롭게 해석해서 재배치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사를 규정하는 삶의 에너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결코 과거의 것으로 귀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오래 살고 복 받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삶의 의지를 반영하는 변함없는 화제(畵題)가 아닐 수 없다. 화가 이희중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의 옛사람들이 즐겨 썼던 아이콘을 당대의 것으로 끌어내는 일을 화가로서의 천분으로 삼고 있다.
그가 옛그림의 기호들을 가지고 작업을 풀어내는 데는 해방 직후 세대로서의 실존적 배경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화가 이희중’과 ‘이희중 회화’의 내적 필연성을 찾아보는 데 있어서 그가 자라온 60년대의 흐름은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는 60년대 이후에 가속도를 붙인 한국사회의 전통해체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자라온 세대이다. 그는 집안 구석구석에 붙어있는 민화를 생생하게 목격했고, 경제개발로 인해 전통적 가치와 도상들이 벽지 속 도배지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본 세대이다. 유년시절 목격한 동네 굿판에서 작두 타는 무당을 목격한 세대이기도 하며, 성북동 걸인들이 삼청동으로 밥 동냥 다니던 시절에 각설이의 구성진 노랫가락에 담긴 미묘한 애환을 잊지 못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도상연구는 유년시절의 충격과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한 세대의 탄탄한 정서 속에서 나온 것이다. 육화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이희중 식의 과거 연구는 그의 회화세계를 다지는 기본이다. 이희중은 조선시대 이래 대대로 종로구 북촌 일대에 터를 잡고 살아온 역관이나 의원, 화원 출신의 중인집안 후손이다. 종로에서 5백년을 살아온 집안으로서, 화가였던 아버지, 삽화가로 유명한 작은 할아버지 이승만, 사돈댁 고희동 등이 유년 시절 이후 그가 자연스럽게 화가로서 성장하게 한 배경을 이룬다.
옛그림에 담긴 몽환의 세계를 탐색하는 그는 초월의 세계를 향하는 구도적 자세로 예술적 상상력을 결합한다. 현실 삶을 넘어서는 판타지를 갈구하는 삶은 예술가 본연의 것일 텐데, 이 때 이희중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방법이 도상연구자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이다. 이희중은 과거의 도상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여 현대회화 작업으로 번역해내고 있는데, 이러한 작업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것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실험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렇듯 도상연구자로서의 화가 이희중은 옛그림 속에서 현대미술로 끌어들일 가치가 있는 조형적 요소들을 뽑아내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옛그림들 가운데서도 설화적 요소를 담고 있는 민화의 풍부한 자산을 갈고 닦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십장생, 물고기, 소나무, 돌, 구름, 산하, 용과 호랑이 등과 더불어 산수와 문자도 등이 담고 있는 고유한 형상을 복원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상징들을 동시대의 것으로 만들어내며, 나아가 조형적 기호로서의 가치를 재발견 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 속에는 패턴화 한 장식적 요소들이 두드러지는데, 이것은 생략을 통한 형상의 단순화의 원리와 강렬한 색채의 요소 등 옛그림의 미덕을 살려낸 데서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때 표현주의 회화에 매료되어 독일 유학길에 오른 그는 ‘유럽 화가들의 그림을 닮으려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여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이것을 자신의 회화 전략으로 채택했다. 그 이후 20여년 화력을 가진 그가 이루어낸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독창적인 그의 회화들이다.
이희중의 근작은 크게 네 가지로 묶어볼 수 있다. 문자도와 민화를 재해석해낸 수복도, 옛그림의 문양과 현대적 조형 요소들을 결합해낸 우주 연작, 민화의 회화적 요소를 다시 읽어낸 풍경 연작, 먹그림으로 명상적 통찰을 일구어낸 기운 연작들이 그것이다. 최근작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무수한 점묘들은 특히 지난한 작업 여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색면을 이루는 무수한 점(點)들은 회화적 맛을 더해주는 요소일뿐더러 화가의 부지런한 손길을 드러내는 장치인 것이다.
“수복”(壽福)그림은 복 받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문자도의 대표자 격인 수(壽)와 복(福)의 두 가지 도상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장수(長壽)와 기복(奇福)은 옛그림 속에서 가장 널리 쓰인 과거의 아이콘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 삶을 좌우하는 살아있는 아이콘이다. 20cm짜리 정방형 그림 63개를 이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대작 수복도(壽福圖)는 장수를 기원하는 수(壽)와 복(福)의 두 가지 문자도를 배열하고 그 사이에 갖가지 옛그림 문양을 차용한 그림을 교차해 넣은 작품이다.
“우주” 연작은 다양한 문양을 통해서 기하학적인 추상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그는 옛그림의 문양들뿐만 아니라 우주선과 낙하산, 행성, 달, 북두칠성, 비, 바람, 뇌우, 구름, 별, 잉카문명의 도상 등 동서고금의 여러 도상들을 혼재함으로써 혼돈 속에 흐르고 있는 우주적 질서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우주 연작은 지역적 요소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인 문명의 요소들을 가지고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우주 연작들 가운데서 특히 근작들은 점묘의 방법으로 색다른 화면 구성을 이루고 있다. 선으로부터 출발해서 색면에 이르는 방법의 골간은 유지하되, 뚜렷한 윤곽선의 내부를 매끈한 단색으로 처리하던 방법에서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진 화면 구성으로 전환한 변화가 역력하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와 짝을 맞춰 나온 그림 포도 연작들도 마치 모자이크 벽화를 보는 것 같은 독특한 화면 구성과 무수히 많은 점묘의 섬세함으로 회화적 재미를 더하는 근작들이다.
화려한 색채의 “풍경” 연작은 최근 들어 더욱 깊은 몽환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푸른 밤에 피어난 흰 매화, 둥근 산의 흐름을 리드미컬하게 구성한 구릉의 중첩된 곡선들, 화려한 진달래, 살구꽃과 나비가 어우러진 몽환적 풍경 등은 정점에 달한 이희중 풍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업실은 구파발 위쪽 벽제의 조용한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데, 구릉에 살짝 얹혀있는 그의 소탈한 작업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와 구릉과 사시사철 한국의 생태를 담아내는 주변 풍광들은 마치 그의 그림을 대하는 듯하다. 소나무, 달, 구릉, 진달래, 매화, 살구꽃, 나비, 새, 노인, 정자, 절, 탑 등 전통 산수화의 요소들과 그것들을 배치하고 운용하는 옛그림의 맛을 캔버스 위에 기름물감으로 그린 유화로 마주하게 한다는 점. 이희중 풍경이 보여주는 통쾌한 맛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민화적 요소의 도식을 넘어서는 회화적인 성취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먹그림으로 심상을 드러낸 “기운” 연작은 먹선의 옛그림의 농담과 발묵의 조절이나 화면 운용에 이르기까지 완숙하게 종이와 붓을 다루는 ‘이른바 서양화가’ 이희중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먹과 담채를 가지고 바탕에 무늬가 새겨진 종이위에 그림을 그려 독특한 맛을 이끌어내는 그의 먹그림들은 이희중이 얼마나 철저하게 옛것을 탐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유화물감을 다루는 자세와는 전혀 다른 붓의 속도와 힘의 조절을 요청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더 세심하게 눈길을 끄는 그림들이다.
이희중은 소탈하면서도 세련된 미감을 가진 예술가이며, 동시에 엄청난 삶의 에너지와 예술적 에너지를 가진 화가이다. 형상의 사실적 묘사를 넘어서는 화려한 색채로 일반적인 재현회화 이상의 묘미를 살리는 그의 독특한 회화 세계는 몽환적 초현실의 세계와도 맞닿아있으며, 동시에 현실 삶의 고뇌를 위무하는 예술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희중의 ‘옛그림 다시 읽기’를 생각해 본다. 과거의 조형미 속에서 동시대 인간 삶의 보편성을 끌어내는 이희중의 그림들은 우리가 여기 이 땅에서 여전히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증거하는 실존의 흔적인 것이다. 진정으로 과거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이희중의 깊은 그림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2005. 2. 25 김준기 사비나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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