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움토크 3 녹취록 : 김범수, 이광호 + 이건수, 장윤현
project/시각서사 0414 | 2005/02/24 15:43
김준기 : 오늘 두 분 작가 그리고 두 분 초청패널을 모시고 뮤지움 토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작가들끼리의 대화를 하려고 했으나 여기 세분이 오셨기 때문에 좀 달라지겠습니다. 먼저 김범수 작가님이시고요. 이광호 작가님, 그 다음에 이건수 월간미술 편집장님, 장윤현 감독님 오셨습니다. 그러면 먼저 작품 보여주시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범수 : 저는 김범수라고 합니다. 오늘 보여드릴 제 작품은 최근의 작업으로 시작해서 7~8년 전의 작품까지 보여드릴 건데요. 제가 여러 가지 슬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건 한 작가가 하나의 오브제나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얼마나 변화되고 진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밑에 있는 작품은 원래 2003년도에 헤이리 페스티벌에 냈던 작품인데요. 작품이 놓일 장소가 원래 황인용 씨의 음악실이었거든요. 음악실의 이름이 카메라타였는데, 제 작품이 공간의 개념을 많이 이용하는데요. 그래서 그 음악실에 맞는 게 어떤 것이 있을까 해서 패턴중심의 파장의 효과, 음의 확장이라고 할까요. 그런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구성이 들어갔습니다. 정면이고요. 이런 어떤 패턴화 되어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는 확장이라는 의미하고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낱개의 패턴이 여러 개의 전체의 패턴하고 합성되면서 전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의미로부터 시작된 것이죠. 나중에 질문을 주시면 받겠습니다.
이건 드로잉 처음 시작했을 때 했던 거고요. 이 작품 역시 헤이리 페스티벌에 냈던 작품인데요. 이 작품 제목은 큐브라고 정했거든요. 이 디자인은 건축하시는 김기환 선생님이 해주신 것이고요. 가로 세로 공간의 크기가 3m, 3m여서 작은 우주공간을 염두에 두고 제작에 들어갔던 것인데요. 이 안에 들어가서 하늘을 바라보면 별을 볼 수 있고요. 제 작품과 자연이 동화되는 영역을 확장해보고 싶어서 이런 형식을 시도해봤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패턴화 시키는 앞의 파장의 작품과 상반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작품이 공간위주로 설정되었다면 이건 작은 45cm의 공간 안에서 패턴화 시키는 구상인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저게 패턴화 되면서 서로가 상반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런 패턴위주로 두 종류의 작업을 제가 하고 있어요.
이런 패턴화 된 과정이 예를 들면, 저는 이 작품을 하면서 우리가 이런 문양들을 흔히 우리 주위에서 봤을 수도 있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단청의 문양이라든가 격자문양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방법과 비슷한 내 몸에 배여 있는 문양위주로 문양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2002년도 작품인데요. 지금 시립미술관에 있는 작품이고요. 2002년 미디어시티에 참가하게 되어 가지고. 저 작품이 저기 없었을 때는 그냥 유리였는데 그 공간을 개인적으로 살려보고 싶은 생각에 안 쪽에 필름을 해서 붙인 것이죠. 안에서 조명을 만들어서 유리 밖으로 보이게 구성을 한 것인데요. 현재 시립미술관에 상설로 되어 있고요. 하나의 문제가 뭐냐면 안쪽이 모래 샌딩이 되어 있어서 웬만한 접착제로 붙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아픈데 조금 떠 있는 상태입니다. 처음엔 저걸 할 때는 영구적으로 저기 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3개월 정도의 기간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라서 제가 보기에 지금 흉할 정도로 지금 떠 있는데 조만간에 가서 보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시립미술관에 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저 사이즈가 가로 9m 60cm에 높이가 7m 90cm로 알고 있는데. 이건 다른 각도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 작품은 첫 개인전으로 2001년도 사간갤러리에서 한 것인데요. 한 6개월 제작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구조적인 작품을 시작한 것입니다.
김준기 : 안에는 아크릴구조물로 되어 있나요?
김범수 : 네, 안에는 아크릴로 일일이 구조물을 만들어서 제작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필름에 아크릴을 붙이지 않아서 저 상태는 그냥 필름상태입니다. 이것을 그때 당시작업을 찍은 것입니다. 이건 제가 아까 보여드렸던 콜로세움의 작업과정을 찍은 것인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만든 것을 세 피스를 엮어서 한 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저의 작업 베이스는 조각이기 때문에, 겉 모형을 만들어서 반대로 띄어내면 아까 그 흰 태가 남죠. 그 세 개를 이어 붙여서 하나의 콜로세움을 만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2002년도에 한국에 와서의 작업이고 이 작품이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처음에 필름을 만나면서 작업했던 결과를 전시했던 작품이에요. 이 때는 설치개념위주로 작업이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가볍게. 저것은 스카치테이프를 붙인 작업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전시장에 설치를 했어요. 이것은 아까의 디테일이고요. 이쪽이 벽이고 왼쪽부분이 작품이 되겠죠. 이건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졸업전으로 오픈스튜디오를 한 것이고요. 저기 보면 필름에 스카치테이프 붙인 자리가 있는데, 이 작품을 벽면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서 그것을 띄어내서 만들어진 작업입니다. 이것은 뉴욕에서 전시했던 작업이고요.
저 형태가 필름을 펼쳐놓으면 저렇게 곡면으로 변화가 되요. 그 형태가 재미있고 천장에 상승되는 효과, 벽면에 그림자가 형성되는 이미지도 흥미로웠어요. 이것 역시 하나하나 다섯 개를 만들어서 가로세로 180cm정도의 입체적인 회화작품 형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필름의 그림자가 천장에 비춰져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만들어내죠. 이것도 97년도 작품인데요. 오픈 스튜디오 할 때 두개의 화면으로 스크린을 만든다고 생각을 하고 제작을 했던 것이에요.
김준기 : 이건 지금 필름을 어떻게 이용한거죠? 부착을 한 것입니까?
김범수 : 그냥 필름만 부착을 해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인 거죠. 제가 초창기에 제작한 것입니다.
김준기 : 그럼, 보관상태는 굉장히 안 좋겠네요.
김범수 : 근데 지금도 괜찮아요. 접착력이 좋더라고요. 이건 아까 했던 것을 한국에 들고 와서 개인전을 한 것이고요. 이건 초창기에 스튜디오에서 설치한거고, 지금 보시는 작품이 처음에 영화필름을 만나면서 만들었던 작업입니다. 지금의 이런 형식과 비슷한데요. 이것 역시 필름하고 스카치테이프만 붙인 것이겠죠. 그 전에는 몰랐다가 이 전에 보여줬던 작업에서 빛을 받으면서 그림자가 형성되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까지 보여줬던 작업들이 여기서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부터 제 나름대로 가능성을 보고 지금까지의 작업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스튜디오필름을 펼쳐놓기만 했었는데 조금 전에 보여드린 형태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그것이 우연히 아침에 작업실에 가보니 태양광선에 그림자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조명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런 부분이 재미있어서 계속 만든 거죠. 처음엔 그냥 걸어놨다가 입체도 만들고, 그러면서 제가 원하는 형태가 나오기 시작한거죠. 그러면서 큰 회화작품으로도 발전이 되고요 그림자도 강해지고요. 그러다가 똑같은 형식을 입체설치로 작업을 하게 된 거죠. 다양한 형태의 구성이라고 할까요. 조명을 좀더 명확하게 하거나. 그 다음에 시간이 걸리지만 진화가 되면서 곡선을 만들게 되면서 복잡한 드로잉식의 형태가 나오게 되죠. 전체적으로 조명을 쓰면서요. 이러한 부분들이 재미있어서 파고 들어가는 과정이에요. 뉴욕에서는 시간하고 장소, 경제적인 면 등 여러 가지가 안 되서 아크릴을 사용 못했어요. 그러다가 이제 한국에 와서 큰맘 먹고 아크릴을 사용하게 된 거죠. 제가 원하는 형태의 거대함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이때부터 시작을 한 것이죠. 밑에서 천장으로 조명을 사용해서 지금 여기선 잘 안 보이는데 형태 색감 그런 전체적인 아우라를 형성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드로잉도 좀 여기에 맞는 그런 식으로 좀 더 구체화된 형식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초창기 작품에서 좀더 디자인화, 패턴화된 양식을 만들어간 거죠.
김준기 : 이상 김범수 선생님의 작품을 보았습니다. 초청패널의 총괄말씀은 이광호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함께 얘기해보겠습니다. 다음은 이광호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이광호 : 안녕하세요, 이광호입니다. 지금까지 제 작품들의 특징들을 정리해보면, 시기에 따라 또는 대상의 변화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96년 첫 개인전부터 99년 ‘삼인전 ’시기에는 주로 시선의 문제에 주목을 했고, 결혼 이후에 저의 개인사를 고백하는 그림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2002년 ‘이중간첩’전을 통해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시선을 세 가지 측면에서 주목합니다. 첫째로는 제가 시선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요,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봄과 보여짐의 관계입니다. 저는 오fot동안 짝사랑만을 해 와서 어떤 사람을 자신 있게 마주 본다는 것은 한때 저의 간절한 소망이었고, 이것은 그림을 그리게 한 동인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그림 상에서의 시선의 문제입니다. 제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대상들은 서술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고, 관객의 시선을 이동하게 함으로써 서술성을 갖게 됩니다. 세 번째로는 그림과 관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시선의 상호작용입니다. 관객은 그림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보는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봄과 보여짐의 복합적인 시각경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림을 통해 구체적인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림에 대한 착상은 무료함을 달래려고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스케치북에 끄적이는 과정에서 떠올랐습니다. 혼자 있다는 외로움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부재의 대상을 불러오기 마련이고 그래서 이 여인을 탁자 위에 있는 이 사진에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두 컵의 손잡이를 나와 그녀의 위치에서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였고 그 컵들 사이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라는 책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였습니다. 책의 제목에서 사랑이라는 글씨가 가려진 것은 그 글씨를 보여주고 싶다는 저 내면의 희망을 역설적으로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제가 말하는 방식입니다. 내면의 고백을 직접 말로 한다는 것이 저의 성격상 어려운 일이어서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 그림이 언어적이고 서술적인 성격을 띠는 것은 이러한 '자기고백적 성향' 에서 기인하는 것이 크고 또한 저의 언어적 콤플렉스를 그림을 통해서 극복하려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철심과 오른손은 드로잉을 캔버스에 옮기면서 등장한 것이고, 그림 전체를 마치 화면 속의 스케치북처럼 설정하는 증거가 되고, 화면 밖에는 실제로 저의 오른손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고백의 대상은 이 여인에게서 나 자신을 향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기를 계속해서 객관화하는 것이 이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의 특성은 시선의 존재에 대한 설정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먼저 그림 앞에서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나를 상정하고, 이 나를 그림 뒤에서 훔쳐보는 누군가가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저는 이 여인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상단의 카메라의 시선은 이런 나를 향한 것 같다고 느낍니다. 저는 카메라의 시선을 의식하자 피하듯이 시선을 이동하게 되는데, 화면을 거슬러 올라가 한 쌍의 인물에게로 향하면서, 연인처럼 보이는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불륜의 관계일 것이라는 불온한 상상을 해봅니다. 이것은 물론 저의 심리가 만들어 내는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일반관객은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이 카메라의 시선은 여인을 유심히 바라보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타자의 응시로서 작용했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욕망의 눈'과 이에 대응하는 '타자의 감시'였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더 진전되면서, 내 시선과 욕망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카메라의 눈은 '타자의 눈'이 아니라, 바로 나를 관찰하는 자로서의 '또 다른 나의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 뒤에 존재할 것 같은 그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물원 그림에 구멍을 뚫고 앞의 상황을 응시하는 이 남자의 뒷모습은 바로 '제 자신'입니다. 이것은 두 작품을 그림의 앞, 뒷면으로 가정하는 방식인데, 이 경우 두 그림은 시선이 존재하는 상황을 두 개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되며, 봄과 보여짐의 개념이 드러나는 상황을 재현한 것이 됩니다.
작품의 제목 '3초'는 그림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대충 보는 관객을 의미합니다. 등장인물들은 개인전에 오셨던 분들로 저의 은사님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은사님 중의 한 분은 '그림은 3초면 다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그 뜻을 조금은 이해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림을 너무 평가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가하는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그럴 경우 그림은 우리의 삶과는 별 상관없는 감상적 차원에 머물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에 그림을 본다는 것은 관객 자신의 기억과 경험, 지식, 의미 같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그림에 투사하는 행위이고, 그럼으로 해서 관객과 그림 더 나아가 관객과 화가가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대화의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3초라는 말에는 이렇게 서로 이해하려는 관용의 태도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림보기가 진정한 대화의 장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는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삼인이 모여서 삼년간 다른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했는데, 97년 ‘Inter-View’, 98년 ‘회화술’, 99년 ‘그리기/ 그림’ 전시입니다. 시선의 체계와 그것의 해석가능성에 대한 모색을 주제로 한 전시가 ‘Inter-View’전시고, ‘회화술’전에서는 관찰, 묘사, 재현의 방식에 대한 삼인의 태도와 실천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기/그림’전에서는 삼년간의 결과물들을 정리하면서 각자의 발전가능성을 점검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그림은 친구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렸습니다. 그림을 서술해보겠습니다. 리히터의 그림에서 인용한 촛불의 방향과 그 빛이 퍼지는 모습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책상 위의 물건들은 친구의 품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라이터와 담배꽁초가 배열된 모습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정리 정돈하는 친구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또한 문학 평론집과 국어사전은 언어적으로 정확하려는 그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 단어들은 그날 밤 그가 밤새 생각했을지도 모를 어머니에 대한 단상입니다. 여기까지의 설명은 제 의도에 의해 상황을 의식적으로 연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자의 관계와 대조되게 저는 꾸부정한 자세로 혼자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작업을 할 당시에는 조형적 구성의 이유 때문이거나, 실재의 경험에 비추어 대수롭지 않게 그린 겁니다. 그리고 저의 직접적인 의도와 무관하게 그려진 것들의 의미는 때로 관객에 의해 그 감춰진 속뜻이 해석되기도 합니다. 어느 관객은 이러한 모습을 친구에게 제가 어떤 식으로든지 의지하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또한 잠자는 포즈를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보면 저의 언어적 콤플렉스 같은 심리적인 고충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 그림은 의도된 상징과 의도되지 않은 무의식적 상징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인물들의 포즈에서도 느껴지듯이 저와 모델의 관계는 친형제 이상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제가 이 형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삶의 지혜가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무기둥에 걸려 있는 여러 가지 도구들은 실제로 물건 모으기를 좋아하는 형의 취향이자, 삶을 꾸려나가는 방법에 대한 저 나름의 존경의 표현입니다.
다음 작품은 작업실 벽에 그림이 놓여져 있는 상황입니다. '그림 안의 그림'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의 작품들에서 보셨듯이 저는 생활 속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체험을 작업의 출발점이자 그림의 소재로 삼습니다. 이와 같은 작업은 제 경험을 타자의 입장으로 대상화하여 스스로를 성찰하려는 것이고, 그림을 삶과 밀착시킴으로써 저의 내면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희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지난 몇 년 동안 저와 가족의 삶을 소재로 하였던 작품들을 시기 순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결혼하기 이전의 그림에서 제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은폐적이고 훔쳐보기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처럼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을 그린 적이 없었습니다. 손을 맞잡고 서로 마주보는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은, 제가 오랫동안 짝사랑만을 해오다가 비로소 제 아내와 마주보게 된 온전한 사랑의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그림은 보는 동시에 보여 지는 이중적인 시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여 진다는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존재감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두 개의 거울을 장치했습니다. 아내의 손을 맞잡은 채, 제 왼손에는 손거울이 들려있고 제 등 뒤로 사각거울이 이젤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림은 제가 손거울을 통해 바라 본 풍경의 일부분을 확대해서 재현한 것입니다. 만약 관객이 책과 포스터 글씨의 좌우 뒤바뀜을 단서로 추측한다면 그림이 그려진 실제 상황을 상상하면서 손거울 안의 남자의 시선으로써 그림을 감상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안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하고 낯선 시선의 움직임을 연상시킵니다.
아내의 손에 저의 손을 살며시 얹고 있는 모습은 마주봄을 통한 교감의 의미를 함축합니다. 아내와 태국에 여행 갔을 때 한 호텔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그렸고 마주봄의 상황을 극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어떤 관객은 방 안의 이색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병실에서 영혼이 바라보는 풍경 같다고 얘기한 이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제 그림에 대한 오해가 그림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원래 저희 부부는 아기를 가지기 힘든 사정이 있었는데, 이 당시 의사로부터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 중에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다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그림이 떠올랐고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다른 어떤 화가의 그림보다 고귀한 성스러움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95년도에 이태리 여행을 했었고, 그때 안젤리코의 벽화를 직접 보면서 커다란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아기를 바라는 저의 간절한 바람에 이 그림이 떠올랐고 그림 상의 이오니아식 건축공간과 몇몇 상징물들을 자연스럽게 제 그림에 인용했습니다.
그림에서 아내는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작품을 보고 있으며, 성령을 상징하는 이 비둘기조각은 아내를 향해 있습니다. 이것은 아내에게 곧 기쁜 일이 있을 거라는 저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왼쪽에,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제 조카가 천사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반면에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저 은밀해 보이는 공간은 낯선 여자가 제 머리를 만질 때 느껴지는 야릇한 상상을 암시합니다. 여기 이 헝클어진 잡풀은 이러한 저의 복잡한 심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소망대로 아내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배가 어느 정도 불렀을 무렵의 모습입니다. 아내와 배속의 아가가 함께 제 그림을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가장 행복한 마주봄의 순간이자 그림과 삶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기에 제가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힘이 됩니다. 아기가 세상에 나온 바로 직후의 모습은 저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는 것을 강변합니다. 지금도 작업실에는 이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좀 전에 보신 <머리 깎기>의 연작으로서 그 이후의 변화된 현실상황을 이전 그림에 대신 넣었습니다.
그럼,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 <태몽>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님이 아기의 태몽을 대신 꿔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릴 당시에 어머님의 몸이 안 좋으셔서 빨리 쾌차하시라는 기원의 심정으로 그렸습니다. 호박 꿈을 꾸셨다고 하시기에 아버님이 대추나무에 매달려 있는 호박을 따는 상황으로 연출을 했고, 어머님은 그림에서 보시듯 그 꿈을 꾸고 계십니다. 어쩌면 저에 대한 기원을 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원래 호박은 남자아기를 상징한다는데 이점은 어머님의 기대를 벗어났습니다.
왼쪽은 그림이고 오른쪽은 사진입니다. 이놈이 그림을 그릴 당시 아기의 모습입니다. 꿈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마치 실재의 현실처럼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저는 이 그림을 한 여름에 선풍기를 쐬면서 근 한 달 반을 그렸습니다, 그림이 거의 완성되었을 무렵 그림을 멀리서 살펴보려고 뒤로 물러서는 순간, 우연히 선풍기가 어머님을 향해 바람을 보내는 광경을 발견했습니다. 선풍기의 시원한 바람이 어머님의 치유를 돕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저는 대단한 충만감을 느꼈고 이 영상을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이전의 사적인 그림과는 다르게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이야기에 접근하고 이를 통해서 좀 더 많은 관객들로 그 교감의 폭을 확장하자 하는 것이 이 전시의 기획의도 입니다. 그래서 영화사의 협찬을 받아 ‘이중간첩’이라는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고 거기에서 떠오르는 시각적인 잔상들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이중간첩’전 전시를 준비하면서 다음 전시에 대한 기획안이 떠올랐고 아직까지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현대음악 작곡가인 윤이상 선생님입니다. 그 분이 일생 동안 견지해 온 삶의 실천으로서의 예술관은 저에게 예술가의 초상 같은 것이고 만약에 전시를 한다면 윤이상 선생에 대한 헌정 전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저와의 어떤 감성적인 교차 지점을 찾아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보시는 그림은 윤이상 선생의 미망인인 이수자여사와의 첫 대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제 경우 결혼과 아내의 출산 등과 같은 제 삶의 환경이 바뀌면서, 그림의 구성형식도 단순하고 함축적인 양상으로 변화했습니다. 대상에 대한 정확하고 간명한 이해와 그것을 재현 하는 묘사의 방법으로서 유화기법에 대한 탐구와 실험을 계속해 왔습니다. 전통적 유화기법은 요즈음 제가 구사하는 방법이며, 최근에 이르러 나름대로 체계화된 방식입니다.
시대별 유화기법의 특징을 대략적으로 요약해 봤습니다. 예술가가 매체나 재료를 선택하고 그것을 다루는 방법은 단순한 테크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화가의 성격과 기질 등을 이해 할 수 있는 비밀 같은 것들이 숨어있습니다. 제가 요즈음 그리는 방법은 튜브 물감이 개발되기 이전의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격렬한 붓질에 의해 작가의 감성이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성격 탓도 있고 그렇게 하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전통유화기법은 우리가 흔히 그리는 식으로 대상을 보고 직접 화면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드로잉과 밑그림을 통한 일련의 준비과정을 거쳐 대상을 재현 해내는 일종의 계획된 그림입니다.
보시는 그림은 유화를 이용한 최초의 예술가중 한 사람인 로베르 캉팽의 부부초상화로,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과장된 표현이 없는 간소한 외양은 인간의 내면성까지도 전하는 듯 합니다. 초기의 유화기법은 템페라 위에 유화의 투명성을 이용해 여러 번 덧칠해져서 색이 우러나오는 효과를 줍니다.
그림은 제가 플랑드르의 미술과 한스 홀바인의 초상화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소품들은 제가 의뢰인에게 미리 부탁해놓은 것으로 의뢰인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입니다. 저는 이 소품들이 인물의 개성에 대한 어떤 의미를 갖도록 적절히 배치했습니다. 모짜르트에 관한 책, 캠브리지 대학을 상징하는 타올, 시가박스의 습도계, 러시아산 여우털 모자, 이런 것들은 모두 의뢰인의 지식과 교양, 고급취미와 같은 귀족적인 자부심을 상징합니다.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의 방향이나 주먹 쥔 손의 표정도 그러한 자긍심과 연관이 됩니다. 반면 오른쪽 그림의 여인은 이런 남편을 바라보는 상황으로 연출했습니다. 소품들은 기다림, 약속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유화기법을 지도하기 위해 작업과정의 변화를 모아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준비한 내용은 전통유화기법의 방식에 제 나름의 기법을 가미한 것입니다. 예, 그럼 여기까지 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김준기 : 김범수 선생님과 이광호 선생님을 모셔서 말씀 들어보았는데 많은 질문사항이나 얘깃거리가 많을 것 같은데, 어차피 정해진 시간이니까 정리를 잘 하면서 해야 하겠죠. 그래서 정리를 잘해주고 얘기를 잘해주실 두 분을 모셨습니다. 한 분은 장윤현 감독님이고 한분은 월간미술 이건수 편집위원장님이십니다. 두 분이 아무래도 영화나 미술, 서사 비주얼 이런 부분에 전문가들이시니까 두 분 작품을 주제로 중심으로 주제에 부합하는 말씀을 들려주시겠습니까?
이건수 : 일단 저는 전시가 시각서사라는 제목인데 전시에 맞는 컨셉과 전시를 이끌어가는 논의하고 출품된 작품과의 관계라 할까. 대개 서사적, 내러티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잘못하면 내러티브의 컨셉을 표피적이고 한정적인 요소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그것을 미술 속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을 애써서 하는데, 사실 그렇게 하다보면 보여 지는 것들이 대부분 구상적이랄지 미장센중심의 회화들이죠. 그러니까 도구나 설치 인물들을 동원하여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그것을 제시해가는 이러한 형태라는 거죠. 그것이 미술에서 영화나 다른 장르의 미술하고 만나면서 얘기를 풀어가는 방법은 조금 조심될 부분입니다. 또 미술 쪽의 입장에서 좀더 정체성이라 할까, 진정성 같은 것들을 좀더 고집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고요.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의미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학교강의를 하든지 밖에서 이렇게 보면 미장센의 그림, 이야기를 꾸며가는 내러티브의 그림들이 대게 다른 장르, 특히 영화나 어떤 사진이나 다른 비주얼한 매체에서 받은 영향을 입체적으로 풀어가는 경향을 굉장히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미술을 영화와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몇 가지 기초적인 방법론들이 있겠죠. 말하자면 영화의 매트박스 비율이라고 그럴까요? 일대 얼마라는 비율대로 해서 트리밍을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이나 사물들의 인물들을 영화적인 앵글과 비율대로 트리밍을 한다든지 이런 비율로서 회화에 적용시키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웃 포커싱을 하고, 줌인을 하고, 클로즈업을 하는 방법을 통해서 화면을 구성하는 방법, 또 어떤 사람들은 하이키하고 로우키를 작용을 해가지고 색깔이 날아간 듯한 효과를 줄 수도 있죠. 또 형체를 희미한 선만 남아 있으면서 추상성까지 구사하는 것이나, 로우키를 어떻게 해서 어둠 속에서 형체들을 확인하는 그런 방식이 있겠죠. 또 많이 행해지는 것은 하이퍼리얼리즘과 같이 거의 사진하고 맞먹는 초정밀하게 리얼하게 묘사하는 그런 것들을 꾀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거의 일차적으로 끝나버리고, 회화에서는 그런 것을 어떤 영화나 다른 매체를 해석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이퍼 리얼리즘 같은 경우를 들면, ‘아, 이사람 사진처럼 정확하게 그렸다’ 하는 문제를 갖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 사람이 기술이 있다’ 내지 ‘이 사람 그림 잘 그린다’라고 생각을 하죠. 그런데 사실 우리가 미술 쪽에서 봐야 될 입장은 이것이 정말 정밀하고 세밀하게 그려놨지만, 이것이 사진하고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그림이라고 하는 것을 갖고 있구나 하는 입장이 하이퍼리얼리즘이지, 그림이 추구하는 것이 똑같은 사물을 베끼고나 재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간과하기 쉽다는 거죠.
그래서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러티브를 가지고 미술에서 이야기한다는 컨셉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하는 것이고, 회화라는 입장에서 정체성을 가지고 시작하는 입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를 풀고 싶습니다.
김준기 : 일단 여기까지. 주로 회화를 중심으로 내러티브라는 문제를 어떻게 따져봐야 할 것인가를 문제제기해주셨고. 그러나 이제 회화에다가 플러스 미술 쪽에서 접근하는 영상작업 이랄지 설치작업 속에서 내러티브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 궁극적으로는 비주얼한 내러티브라는 것이 설정가능한지, 이런 문제까지 말씀해주시고 있고요. 문학적 서사나 영화적 서사와 다른 시각미술의 서사라는 것이 어떤 건지 어떻게 가능할지. 그런 것을 차후에 말씀할 수 있을 것 같고. 구체적인 작품에 관한 언급은 이제 장윤현 감독님께 듣고 나서 얘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윤현 : 어쨌든 작가님의 작품을 보고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희가 영화라는 작업을 할 때 필름은 생명과도 같은 중요한 재료예요. 필름 자체는 그 재료가 어디론가 투사된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거든요. 필름이 비쳐지는 스크린만을 보게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필름이 가지고 있는 재료가 다시 재 상영 될 수 있다는 것들이 굉장히 좋았고요.
김범수 작가의 작품은 결국 그림자와 빛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인해 제작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가 영화를 하다 보니까 말이지만, 지금 소재로 사용되었던 필름은 색감만으로 선택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나아가 아까 콜로세움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아 저게 어떻게 보면 20세기의 콜로세움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매체가 가지고 있는 민주적인 방식이라든지 콜로세움이 가지고 있는 의미라 할지... 제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을 저런 빛으로 보여줬다는 것이 내용이 가지고 있는 영화라는 매체가 일차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느낌이나 그런 것까지 같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작품을 설명해 주셨는데요. 홍콩영화하고 한국영화, 미국영화가 같이 섞여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그걸 보면서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조형적인 예술적인 느낌만 보다가 그 얘기를 듣고 보니까 디테일한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세히 필름을 봤는데 이게 비춰진 그림이 아니니까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게 어떤 작품형태로 크긴 하지만 좀 더 그 그림자가 디테일하게 잘 보이면 조형적인 그림의 느낌보다는 조금 더 이야기가 늘어가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앞으로 작업하시는 방식들이 더 확장될 수 있고 더 의미 있게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광호 작가님은 제가 계속 만나온 작가입니다. 제가 공교롭게도 영화 ‘접속’하고 ‘텔 미 썸싱’ 두 작품 다 이광호님의 작품을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만들었어요. 영화에서도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 시점의 문제, 시선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갖고 있긴 하지만, 누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느냐, 누가 그 이야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되느냐, 뭐 이런 거에 따라서 감동이 전해지는 느낌이나 서술하는 방식들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 화면을 놓고, 화면을 만드는 사람이 보는 시선과 거기에 대상이 되는 사람의 시선이 어떻게 교감을 하는가에 관심이 많이 있었어요.
실제로 ‘접속’을 할 때는 한 작품을 제방에 걸어놓고 그것을 계속 보면서 이야기를, 아까 말씀하신 약간의 오해와 같은 해석들을 계속 얘기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텔 미 썸싱’ 할 때는 제가 시나리오를 이광호 선생님께 드리고 그 안에 물론 주인공이 그림을 그려야하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부탁을 드린 것도 있었지만, 그림이 갖는 이미지, 또 그 영화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생각하고 계신지, 이런 부분들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까 티저광고를 말씀하셨는데 저한테 이미지로 그려주신 그림을 저희가 티저포스터로 사용을 했어요. 그 그림을 보고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른 말씀을 많이 하세요. 그 포스터를 못보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 포스터를 보신 분들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라고 할까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나 느낌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가 그 티저포스터와 연관을 지어서 많이 생각된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좀 전에 이광호 선생님의 여러 가지 지나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최근의 그림에 대해서 굉장히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그게 ‘이중간첩’전을 할 때 예전에 그리셨던 그림만을 상상하고 갔는데, 그 그림의 경향과 굉장히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아주 짧지만 짧은 순간에 지나가는 영상이 주는 느낌 그리고 저는 그 스토리를 알았기 때문에 스토리가 주고 있는 이미지와 묘하게 충돌하고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게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그것을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는 시점이나 관점이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많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미지는 굉장히 단순하고 평범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스토리를 알고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작가가 상상하고 있는 세계를 근접해 갈 수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그 전하고 다르게 제가 좀 더 가깝게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안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입니다.
김준기 : 진심으로 여쭤보는 건데요, 진짜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으셨나요? 왜냐하면 큐레이터 평론가 이런 사람들이 그림을 본다는 것은 직업적인 그런 일이 되어가지고 여쭤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극장에서는 스토리에 빠져들고 울기도 하고 몰입도 되거든요. 근데 회화작품 전시장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서는 사람을 좀처럼 보기가 힘들거니와 저로서도 이제 전통적인 의미의 미술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경우가 좀처럼 없어요. 그래서 저렇게 말씀 하시는 것이 좀 부럽기도 하고. 어떠세요, 이건수님?
이건수 : 장 감독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완곡하게 부드럽게 표현해 주셨습니다. 김범수 선생님은 제가 잘 모르니까 사실 작품은 미디어시티에 나온 거 보고 알고 있고, 이번에 월간미술에도 나옵니다. 첫 페이지에 크게 두 페이지에 걸쳐서 작품을 넣었어요. 근데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장 감독님이 완곡하게 말씀하셨지만, 이 ‘시각서사’라는 것이 영화적인 면을 미술에 부여할 때, 아까 김범수 선생님의 작품이 이 컨셉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냐 하는 것에 대해 저는 조금 부정적인 의견입니다. 왜냐하면 저건 설치이고 하나의 평면을 겸비한 입체 컨셉으로서의 그림이라는 거죠. 저것이 어떤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아니고 영화필름이라는 재료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 자체가 어떤 내러티브를 양산하는 그런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전시하고는 조금 색다른 작업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오히려 저런 작업은 만다라 같은 종교적인 의미의 구도자가 재료들을 배치시키면서 근원적인 형상을 찾아나가는 입장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필름을 사용했다고 영화하고 접목시키는 생각은 버려야할 것 같아요.
김범수 선생님 작품이 그 작품자체로는 굉장히 의미 있고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을 미디어 쪽에서 자꾸 건드리는 것들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그래서 미디어시티서울에서도 미디어시티하신 분들이 미디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냐에 모호한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전에 한 번 말씀을 나눠보았는데, 그 사람들이 미디어아트에 대한 개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디지털아트다 미디어아트다, 그러니까 우리가 회화를 브러쉬 아트라고 안 그러잖아요. 미디어아트라는 것에 미디어라는 개념을 너무 앞세워가지고 그런 상태에 있다는 거죠. 아무튼 그럼 면에서는 김범수 선생님을 그런 면으로 해석하는 것은 조금 안 좋다고 보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패턴화하고 만다라 같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가고, 조금 더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활용하는 기계가 어떻게 개입됨으로써 그림자 현상, 영화라는 비쳐진 그림자, 그림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더 폭넓게 영화와 접목시킬 수 있을 것 같네요.
김준기 : 다른 말씀을 또 해 주실 것 같은데, 일단은 그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말씀을 까먹지 말고 기억해주시면 좋겠고요. 저로서도 이제 이건수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이 작가가 이 작품을 출품한 것이 시각서사라는 전시에 적합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런 거죠. 그러니까 전통적인 의미의 시각예술 회화나 조각이 아닌 오브제를 이용한 설치작업 중에서 영화와 관련된 주제나 소재를 채택하고 있는 작품을 이 전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 작품이 지나치게 소재주의 쪽으로 소재만 영화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여기에 끌어들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지적해 주신 거고요. 저도 그 점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주얼 내러티브라는 주제와 연관해서 한번만 더 틀어보면 재미있는 지점이 생깁니다. 필름이라고 하는 것은 1초에 24컷이 지나가면서 움직이는 것으로 영상 잔상이 남게 되는데, 저 필름이라고 하는 것은 영화라는 물성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죠. 즉 서사를 감지한 물건, 물성 그 자체를 가지고 서사는 어디론가 증발하고 패턴이라 할지 비주얼요소로만 환원이 된다는 것이죠. 보통 이 전시 전체가 보여주려는 것은 비주얼로부터 내러티브로 확산되는 것 같은 그런 뉘앙스인데, 이 작가의 작품은 유독 내러티브자체를 꽁꽁 묶어가지고 비주얼로 환원시키려고 하는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어요.
작품 설치할 때 작가가 그런 말을 했었어요. 이 자체가 패턴이나 문양 색채로 존재하긴 하지만 서사적인 요소는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을 했더니, 안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주제의 어떤 영화의 필름을 가지고 작업을 할 때는 그 내러티브를 또 다른 조형요소로 끌어들이는, 그 영화의 내러티브가 시각장치로도, 단지 패턴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조형성 자체로 서사 내러티브구조를 가지는 쪽으로 업그레이드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렇다면 앞으로 좀더 비주얼과 내러티브라는 것에 대해 다음 작품부터 기대를 좀 해봐야 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지금 상태에선 확산이 아니라 환원이라는 정도의 재미로 작품을 보는 관람 포인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이건수 : 지금 말씀이 재미있는데, 지금 이미지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쪽으로 많이 해석하고 그림읽기를 시작하는데요. 만약에 거꾸로 이야기가 증발되어버리고 연결된 하나의 물건으로서의 옛날에 이미지를 가졌던 오브제로서의 필름 한 조각, 두 조각 이렇게 남아있는 쪽으로 환원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오히려 그런 부분들을 많이 확대 부각을 시키셔서 이미지가 완전히 증발되어서 하나의 신체 같기도 하고 박제된 것 같기도 한, 이미지로서의 필름의 모습으로 작업을 진행시킨다면 훨씬 더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해 준다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김준기 : 선생님은 어떠세요?
김범수 : 저는 작업을 하는 입장이니까 지금 말씀하신 부분들, 저번에 김준기 실장님하고 말씀드린 부분들이 앞으로의 제가 작업을 해나갈 과정이겠죠. 지금 작업을 한 7년 동안, 필름을 처음 손에 잡은 순간부터 제 나름대로 진화를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제적인 부분이 항상 걸려있기 때문에 기계장치나 새로운 그런 것을 어느 정도 제약을 받죠. 근데 저번에 말씀드린 것은 예를 들어, ‘텔 미 썸싱’을 제가 영화를 보고 필름을 구했다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숨겨진 감성들이 떠오를 것 아닙니까. 그런 부분들을 말씀드린 거죠.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분 역시도 공감하는 부분이고요. 작가로서 하나의 오브제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영화의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색감으로 보여 지는 부분들은 회화적인 요소, 조각적인 요소, 설치적인 요소가 가미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거죠.
김준기 : 네. 아까 하시려던 말씀 계속해서 부탁드립니다.
이건수 : 이광호 선생님은 제가 개인적으로 혼자 짝사랑하는 팬이었어요. 선생님께서 그림을 하시는 방법론들을 제가 굉장히 재밌어했고, 제가 기자생활을 처음 할 때부터 그림들을 찾아다니면서 잘 봤어요. 혼자서 잘 보고. 그래서 좋아하는 그림들이고요. 아까도 설명을 드리려고 했지만, 그림이 단순히 무엇을 재현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무언가를 만들고 과거역사와 맥락을 만들려고 하는 신호들이 좋아서 굉장히 좋았어요. 시점의 문제,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과의 관계의 문제로 그림을 활용하는 것도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전체적으로 관점이나 시점이 르네상스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은 또 아닌가하는 생각도 합니다. 르네상스 사람들도 시점의 문제를 굉장히 모색을 한거고 아까 말한 작품을 보면, 거기에 나오는 소품들을 통해서 얘기가 되고 시점과 보는 방법론에 대한 게임들을 했는데, 그것을 이제 우리의 현실 일상으로 바꿔서 표현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을 또 어떤 식으로 한 차원 더 진행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심이 있습니다.
역시 이광호 선생님의 특징이라 한다면 이전에 했던 자기의 일상서사들을 풀어가는 시선의 문제들인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궁금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광호 선생님 작품이 시선의 문제를 갖고 하는 우리나라의 몇몇 안 되는 작가 중 한분이기 때문에, 굉장히 이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나 서사성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몇몇 안 되는 작가 중에 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풀려가고, 또 어떤 식으로 회화의 정체성을 갖는 문제로 갈 것인가가 관심입니다. 그래서 시점의 문제는 모든 화가의 문제이고 옛날부터 화가들이 갖고 있는 문제로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제 생각을 조금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가 있잖아요. 미셀 푸코가 쓰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이 계속 연구를 하는 작품입니다. 제가 그 글을 조금 읽어 봤는데, 과연 <라스 메니나스>가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선의 문제가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요.
작품을 보면 이제 공주하고 시녀하고 개, 난쟁이도 있고 화가가 벨라스케스가 큰 캔버스를 걸고 바라보고 있는 장면도 있고 뒤에 거울에 비취진 왕의 근처의 그림도 있잖아요. 미셀 푸코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르네상스 고전주의 시점을 깨는 1호탄이라고 얘기하거나 바로크를 여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얘기해요. 재현의 성서라고까지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높이 찬사 받는 이유는 단순히 화면 안에 과거의 시점처럼 우겨넣어서 액자 속에다 만들어놓은 것에 있지 않고, 화면의 시점 교차와 이동과 공간의 트임을 통해서 계속 옆으로 확장하는 것에 있죠. 근데 대부분 미셀 푸코나 사람들의 관심은 공주와 주변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게 왕의 부처고, 화가도 또 왕의 부처를 바라보고 있고, 또 캔버스에 그려있는 것도 왕의 부처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 시점의 통일이 뭐가 중요하냐면 왕의 부처의 시점과 화가의 시점, 그 그림을 보는 관객의 시점이 일치해야 한다는 거죠.
대부분은 벨라스케스가 그 리고 있는 그림은 왕의 부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10년 전에 프라도미술관에 가서 한번 봤어요. 그 사이즈가 벨라스케스 앞에다 걸쳐놓은 캔버스사이즈하고 똑같더라고요. 거의 3m~4m에 달하고 가로가 169cm인데, 벨라스케스 앞에 있는 캔버스 크기가 <라스 메니나스>의 크기하고 똑같은 거예요. 저의 궁금증은 사람들이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그림의 캔버스 앞면엔 왕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저는 그게 아니고 그 자체가 <라스 메니나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얘기가 되어야지만 벨라스케스는 지금 자기가 그려놓은 그림의 풍경을 보고 있는 거고, 그 다음에 관객도 그 그림을 보고 있는 거고, 왕의 부처의 시선을 봐서도 그 그림이 지금 보이고 있는 거죠. 그래야 그 세 개가 일치가 되지, 안 그러면 일치가 안돼요. 만약 벨라스케스가 왕의 부처의 얼굴을 그렸다면 그 시점이 성립이 안돼요. 왕의 부처를 그렇게 크게 그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3m나 되게요. 그러니까 저는 제 얘기가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문제에 대한 해석들이 그림읽기의 하나의 방법이라는 거고, 이광호 선생님이 그런 재미난 작업을 하시는 거죠. 저는 아까 부인 손잡고 뒷거울을 보는 그런 장면들에서도 보았듯이 그림의 시점이나 이런 것들이 유익한 면이 있는데, 그것이 그 시점, 게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것과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하실 지가 궁금합니다.
김준기 : 질문들이 재밌죠. <라스 메니나스>는 우리가 앞에 가져다 놓고 보면서 얘기를 들었으면 실감이 났을 텐데요. 지금 하신 말씀들은 새로운 학설이시죠?
이건수 : 네. 저 혼자 그냥.
이광호 : 근거를 한 번 찾아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증명만 된다면 굉장히 유명해지실 것 같은데요.
김준기 : 기존 미술사가들의 학술을 뒤집는 새로운 학설이죠.
이광호 : 저는 그 시녀들을 개념적으로만 이해를 하거든요. 그렇게 깊게 들어가지를 못하겠어요. 제가 <꿈의 세계>를 그리게 된 이유를 설명해드리자면, 과거 르네상스 시기 화가들이 도전했던 시선의 분배를 제가 다시 끄집어내서 나도 한 번 해 보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제가 그 당시 느꼈던 상황, 아내와 마주봄의 상황을 그리게 된 절실한 이유가 있었거든요. 마주본다는 자체가 저에겐 큰 의미였기 때문에 그것을 재현하고 싶은 욕망에서 처음엔 두 손을 그렸어요. 그러다가 이것을 조금 더 다른 관점에서 재현할 수가 없을까 해서 2개의 거울을 장치한거죠. 제가 그 작업을 하면서도 너무 머리가 아프고,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작업을 하면서도 너무 헷갈리는 거죠. 나중에는 제 그림을 글로 옮길 때도 굉장히 머리가 아팠어요. 몇 사람을 동원해서 가능한 이야기인지 확인을 하면서 정리된 것이 오늘 말씀드린 거예요.
김준기 : 좀 엉뚱하겠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을 드리고 싶은데요. 예를 들면 거울 그림이랄지, 수태고지를 사용한 글이랄지, 머릿속에 내러티브가 있잖아요. 그것을 시각이미지로 재현하겠다고 하면, 회화보다는 예를 들어서 동영상작업이 휠씬 더 효율적으로 내러티브를 구현하는 것이 수월하거나 혹은 보는 사람들에게 간명하게 내러티브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 굳이 한 폭에다가 구겨 넣으려고 애를 쓸까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저 그림도 ‘태몽’이예요. 그래서 ‘첫 번째 할머니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빠져든다. 그러고 이제 호박을 땁니다. 그리고 아이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3~4가지 정도로 잘라서 기승전결로 내러티브를 만들면 쉬울 텐데요.
이광호 : 쉬울까요?
김준기 : 아니 뭐 동영상 만드는 사람들에겐 쉬울 테니까요. 그런데 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캔버스위에다가 집약된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는 회화적 내러티브를 하는 건지, 해야 되는 건지 하는 생각들을 해보는 거죠. 거기서 회화의 독자적인 존재가능성이 나오는 거고요. 또 심지어는 저렇게 회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분도 나오고. 그런 점에서 저의 질문은 화가들보다는 영화감독께서 답을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윤현 : 말씀하신 부분에서 정말 회화가 가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데요. 영화의 가장 큰 한계는 감상의 시간입니다. 어떤 이미지를 감상하는 데에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감독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보면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작가와의 연관성을 찾아가는 작업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동영상작업이 굉장히 편하고 쉽다고 생각하지만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감독에 의해 선택된 이미지의 폭 같은 것이 대단히 협소해요. 그림은 몇 개월을 감상할 수도 있고, 가만히 앉아서 수 시간동안 볼 수도 있고, 또 아까 말했다시피 3초를 슬쩍 지나가면서 볼 수도 있는 거죠. 관람형태가 많이 다르고 그것으로부터 이미지를 생각해내는 나의 사고 작용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충분히 생기기 때문에 동영상을 보는 것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제가 한 그림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단순화시키고, 선택해서 어떤 이야기구절을 만들어 2시간이라는 시간 안에서 압축해서 집어넣는 과정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광호 선생님의 작품 중에 선풍기가 등장하는 작품을 처음 보면서, 저는 그게 동영상이라는 것보다는 뭔가 이 그림이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림에서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제가 볼 때는 내러티브의 전달이라는 것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어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음악이 주는 느낌, 또 다른 물체가 그림하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고 들어가느냐 하는 부분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동영상을 사용하는 내러티브와 회화에서 가져주는 내러티브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준기 : 우연히 올라가 있다가 관람객들이 있으면 말을 시켜요. ‘이 동영상은 어떻게 만든 것 같아요?’하고요. 다른 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이 오면 가끔 안내를 하니까요. 그러면 ‘뭐 이거 그냥 스틸컷에 동영상해서 만들었겠지, 기술적으로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나오지만, 일반 관람객들은 ‘그림 앞에 놓고 찍었네요’ 라고 바로 정답이 나오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의도하신 바가 상당히 많이 적중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요.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원래 그림 만져보면 안되는 거잖아요. 관객한테 지금 괜찮으니까 살짝 만져보라고 그래요. 회화작품은 캔버스위에 물감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이잖아요. 그 앞에 있는 건 만져도 안 만져지는 것이잖아요. 이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물질로서 존재하는 회화와 빛으로만 존재하는 가변적인 이미지의 동영상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고, 여러모로 그렇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인 것 같고요. 계속해서 이건수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건수 : 사실 서사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미술의 기원이랄까 미술의 가장 기초단계에서 시작하는 것은 서사성에 있죠. 애초의 미술의 탄생과 관련된 기록성 같은 문제들을 보면, 그 당시에 기록은 그림이나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이죠. 사실 이집트 상형문자나 라스코 동굴벽화,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같은 것들을 미술로 하느냐의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오늘날 파인아트로 생각하는 진정한 미술로 접근했겠는가 하는 거죠. 하나의 이미지로서 말을 전달하는 문장부호였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나 문자, 글이라는 것 과 이미지하고 회화 간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고, 거기에는 서사성이 개입되어 있죠. 그리고 로마나 그리스의 기록하는 벽화의 부조 같은 것에도 알렉산더 대왕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 전부다 거기에 기록되어 있는 거고요. 또 조각에 열주가 있잖아요. 올라가면서 얘기가 풀어가는 서사구조가 있어요. 러시아의 성상 같은 것을 보면 테두리그림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은 영화거든요.
김준기 : 영화필름처럼요.
이건수 : 그러니까 저는 그런 개념들을 지금 이 시대에 다시 해석해서 다시 재현한다고 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오히려 회화에서 그런 서사성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그런 역사적인 기초적인 소스들을 보면 예전에 다 해 놓은 게 있습니다. 영화도요. 그런 요소들을 찾아서 지금에 와서 다시 한번 보여주는 그런 의미들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영상에 관심이 있고 해서, 제가 충격을 받은 전시로서, 예전에 좋아했던 사진 작가 듀안 라이트라고 있었어요. 시퀀스 사진 4장을 가지고 1시간 30분짜리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더라고요. 딱딱 4장 찍어놓고 밑에다가 글을 쓰죠. ‘한 남자가 어디를 갔다’ 이런 식으로요. 그 방법이 4컷의 사진으로 하나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곤 하거든요. 컷과 컷 사이의 공간들을 우리가 상상하게 만드는 거죠. 충분히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영화라고 하는 것들이 극장에서 봐야만하고 또 영사기로 돌려서 틀어야하고 그런 영화적인 서사를 꼭 그런 공간에서만 체험할 것이 아니라,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영화의 서사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영화의 서사성을 획득을 하는데 미술의 입장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그것을 풀어나가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을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매체적인 특성이 회화는, 화가가 봤고 화가가 체험했고 화가가 생각했던 것들을 다 끌어 모아서 하나의 그림 한 장으로 만들어놓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동의를 구해야 하는 그런 입장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 미술이라는 것 자체는 사실 하나의 집약매체이지 확산매체가 아니거든요. 모든 것들의 경험 모든 시간과 운동 같은 것들도 하나의 화면으로 만들어 놓고 이것으로 귀착시키는 거지만, 음악이나 다른 멀티플 한 매체들은 시디 한 장에 찍고 그것을 백만 장을 찍어 확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것이 소통하는 시스템이나 그것이 풀어가는 이야기들이 달라진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훨씬 더 멀어지는 것이 더 회화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지금 미술관들이 전부다 대중 쪽으로 안가고 산으로 도망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미술이 자꾸 대중적이다 라고 하면서 소통 커뮤니케이션의 경로로 나가는데, 이게 루트가 맞아야 되는데 서로 결들이 다르니까 대중화가 안 되는 거예요. 세속화가 되고 상품화가 되는 것이지 대중화가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미술이 ‘너희들이 값어치를 몰랐다’는 식으로 화가들이나 미술관들은 전부 도망쳐서 산속으로 들어가고, 교회같이 너희들이 미술을 체험하려면 이렇게 고생을 하고 사막을 건너서 산 넘고 물 건너 와야지만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거죠. 이런 개념의 전복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럼 회화가 가지고 있는 매체적 특성들은 어떻게 풀어가고, 거기에 어떻게 서사성을 넣고, 어떻게 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만드느냐가 중요한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준기 : 그 질문 어떨까요. 지난번 뮤지움토크와 지지난번 뮤지움토크 때 나왔던 것인데요. 서사라는 것이 우리의 인식구조, 감상체계 속에서 텍스트로 존재하는 것 같다는 선입견이나 오해 같은 것이 혹시 있을 수 있어요. 문자로 존재하는 것이 내러티브라는 것이죠. 그것은 문학의 힘이 가장 크겠죠. 문학적 서사라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고, 영화도 사실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문학적 서사잖아요. 거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오히려 비주얼한 것은 부차적인 요소가 되는 거죠. 판소리 같은 경우는 음을 담아서 들려주는 것이고 회화는 문학적 서사를 한 화면에 배치하고 관계를 주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럼 과연 모든 서사는 문학으로 연결되는 것이냐는 거죠. 그랬을 때 문학으로부터 파생하는 모든 서사의 종속관계들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없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나 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거꾸로 돌?
김범수 : 저는 김범수라고 합니다. 오늘 보여드릴 제 작품은 최근의 작업으로 시작해서 7~8년 전의 작품까지 보여드릴 건데요. 제가 여러 가지 슬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건 한 작가가 하나의 오브제나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얼마나 변화되고 진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밑에 있는 작품은 원래 2003년도에 헤이리 페스티벌에 냈던 작품인데요. 작품이 놓일 장소가 원래 황인용 씨의 음악실이었거든요. 음악실의 이름이 카메라타였는데, 제 작품이 공간의 개념을 많이 이용하는데요. 그래서 그 음악실에 맞는 게 어떤 것이 있을까 해서 패턴중심의 파장의 효과, 음의 확장이라고 할까요. 그런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구성이 들어갔습니다. 정면이고요. 이런 어떤 패턴화 되어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는 확장이라는 의미하고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낱개의 패턴이 여러 개의 전체의 패턴하고 합성되면서 전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의미로부터 시작된 것이죠. 나중에 질문을 주시면 받겠습니다.
이건 드로잉 처음 시작했을 때 했던 거고요. 이 작품 역시 헤이리 페스티벌에 냈던 작품인데요. 이 작품 제목은 큐브라고 정했거든요. 이 디자인은 건축하시는 김기환 선생님이 해주신 것이고요. 가로 세로 공간의 크기가 3m, 3m여서 작은 우주공간을 염두에 두고 제작에 들어갔던 것인데요. 이 안에 들어가서 하늘을 바라보면 별을 볼 수 있고요. 제 작품과 자연이 동화되는 영역을 확장해보고 싶어서 이런 형식을 시도해봤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패턴화 시키는 앞의 파장의 작품과 상반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작품이 공간위주로 설정되었다면 이건 작은 45cm의 공간 안에서 패턴화 시키는 구상인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저게 패턴화 되면서 서로가 상반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런 패턴위주로 두 종류의 작업을 제가 하고 있어요.
이런 패턴화 된 과정이 예를 들면, 저는 이 작품을 하면서 우리가 이런 문양들을 흔히 우리 주위에서 봤을 수도 있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단청의 문양이라든가 격자문양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방법과 비슷한 내 몸에 배여 있는 문양위주로 문양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2002년도 작품인데요. 지금 시립미술관에 있는 작품이고요. 2002년 미디어시티에 참가하게 되어 가지고. 저 작품이 저기 없었을 때는 그냥 유리였는데 그 공간을 개인적으로 살려보고 싶은 생각에 안 쪽에 필름을 해서 붙인 것이죠. 안에서 조명을 만들어서 유리 밖으로 보이게 구성을 한 것인데요. 현재 시립미술관에 상설로 되어 있고요. 하나의 문제가 뭐냐면 안쪽이 모래 샌딩이 되어 있어서 웬만한 접착제로 붙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아픈데 조금 떠 있는 상태입니다. 처음엔 저걸 할 때는 영구적으로 저기 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3개월 정도의 기간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라서 제가 보기에 지금 흉할 정도로 지금 떠 있는데 조만간에 가서 보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시립미술관에 가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저 사이즈가 가로 9m 60cm에 높이가 7m 90cm로 알고 있는데. 이건 다른 각도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 작품은 첫 개인전으로 2001년도 사간갤러리에서 한 것인데요. 한 6개월 제작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구조적인 작품을 시작한 것입니다.
김준기 : 안에는 아크릴구조물로 되어 있나요?
김범수 : 네, 안에는 아크릴로 일일이 구조물을 만들어서 제작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필름에 아크릴을 붙이지 않아서 저 상태는 그냥 필름상태입니다. 이것을 그때 당시작업을 찍은 것입니다. 이건 제가 아까 보여드렸던 콜로세움의 작업과정을 찍은 것인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만든 것을 세 피스를 엮어서 한 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저의 작업 베이스는 조각이기 때문에, 겉 모형을 만들어서 반대로 띄어내면 아까 그 흰 태가 남죠. 그 세 개를 이어 붙여서 하나의 콜로세움을 만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2002년도에 한국에 와서의 작업이고 이 작품이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처음에 필름을 만나면서 작업했던 결과를 전시했던 작품이에요. 이 때는 설치개념위주로 작업이 진행되었던 것 같아요. 가볍게. 저것은 스카치테이프를 붙인 작업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전시장에 설치를 했어요. 이것은 아까의 디테일이고요. 이쪽이 벽이고 왼쪽부분이 작품이 되겠죠. 이건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졸업전으로 오픈스튜디오를 한 것이고요. 저기 보면 필름에 스카치테이프 붙인 자리가 있는데, 이 작품을 벽면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서 그것을 띄어내서 만들어진 작업입니다. 이것은 뉴욕에서 전시했던 작업이고요.
저 형태가 필름을 펼쳐놓으면 저렇게 곡면으로 변화가 되요. 그 형태가 재미있고 천장에 상승되는 효과, 벽면에 그림자가 형성되는 이미지도 흥미로웠어요. 이것 역시 하나하나 다섯 개를 만들어서 가로세로 180cm정도의 입체적인 회화작품 형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필름의 그림자가 천장에 비춰져서 드라마틱한 효과를 만들어내죠. 이것도 97년도 작품인데요. 오픈 스튜디오 할 때 두개의 화면으로 스크린을 만든다고 생각을 하고 제작을 했던 것이에요.
김준기 : 이건 지금 필름을 어떻게 이용한거죠? 부착을 한 것입니까?
김범수 : 그냥 필름만 부착을 해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인 거죠. 제가 초창기에 제작한 것입니다.
김준기 : 그럼, 보관상태는 굉장히 안 좋겠네요.
김범수 : 근데 지금도 괜찮아요. 접착력이 좋더라고요. 이건 아까 했던 것을 한국에 들고 와서 개인전을 한 것이고요. 이건 초창기에 스튜디오에서 설치한거고, 지금 보시는 작품이 처음에 영화필름을 만나면서 만들었던 작업입니다. 지금의 이런 형식과 비슷한데요. 이것 역시 필름하고 스카치테이프만 붙인 것이겠죠. 그 전에는 몰랐다가 이 전에 보여줬던 작업에서 빛을 받으면서 그림자가 형성되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까지 보여줬던 작업들이 여기서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부터 제 나름대로 가능성을 보고 지금까지의 작업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스튜디오필름을 펼쳐놓기만 했었는데 조금 전에 보여드린 형태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그것이 우연히 아침에 작업실에 가보니 태양광선에 그림자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조명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런 부분이 재미있어서 계속 만든 거죠. 처음엔 그냥 걸어놨다가 입체도 만들고, 그러면서 제가 원하는 형태가 나오기 시작한거죠. 그러면서 큰 회화작품으로도 발전이 되고요 그림자도 강해지고요. 그러다가 똑같은 형식을 입체설치로 작업을 하게 된 거죠. 다양한 형태의 구성이라고 할까요. 조명을 좀더 명확하게 하거나. 그 다음에 시간이 걸리지만 진화가 되면서 곡선을 만들게 되면서 복잡한 드로잉식의 형태가 나오게 되죠. 전체적으로 조명을 쓰면서요. 이러한 부분들이 재미있어서 파고 들어가는 과정이에요. 뉴욕에서는 시간하고 장소, 경제적인 면 등 여러 가지가 안 되서 아크릴을 사용 못했어요. 그러다가 이제 한국에 와서 큰맘 먹고 아크릴을 사용하게 된 거죠. 제가 원하는 형태의 거대함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이때부터 시작을 한 것이죠. 밑에서 천장으로 조명을 사용해서 지금 여기선 잘 안 보이는데 형태 색감 그런 전체적인 아우라를 형성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드로잉도 좀 여기에 맞는 그런 식으로 좀 더 구체화된 형식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초창기 작품에서 좀더 디자인화, 패턴화된 양식을 만들어간 거죠.
김준기 : 이상 김범수 선생님의 작품을 보았습니다. 초청패널의 총괄말씀은 이광호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함께 얘기해보겠습니다. 다음은 이광호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이광호 : 안녕하세요, 이광호입니다. 지금까지 제 작품들의 특징들을 정리해보면, 시기에 따라 또는 대상의 변화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96년 첫 개인전부터 99년 ‘삼인전 ’시기에는 주로 시선의 문제에 주목을 했고, 결혼 이후에 저의 개인사를 고백하는 그림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2002년 ‘이중간첩’전을 통해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시선을 세 가지 측면에서 주목합니다. 첫째로는 제가 시선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요,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봄과 보여짐의 관계입니다. 저는 오fot동안 짝사랑만을 해 와서 어떤 사람을 자신 있게 마주 본다는 것은 한때 저의 간절한 소망이었고, 이것은 그림을 그리게 한 동인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그림 상에서의 시선의 문제입니다. 제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대상들은 서술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고, 관객의 시선을 이동하게 함으로써 서술성을 갖게 됩니다. 세 번째로는 그림과 관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시선의 상호작용입니다. 관객은 그림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보는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봄과 보여짐의 복합적인 시각경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림을 통해 구체적인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림에 대한 착상은 무료함을 달래려고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스케치북에 끄적이는 과정에서 떠올랐습니다. 혼자 있다는 외로움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부재의 대상을 불러오기 마련이고 그래서 이 여인을 탁자 위에 있는 이 사진에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두 컵의 손잡이를 나와 그녀의 위치에서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였고 그 컵들 사이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라는 책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였습니다. 책의 제목에서 사랑이라는 글씨가 가려진 것은 그 글씨를 보여주고 싶다는 저 내면의 희망을 역설적으로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제가 말하는 방식입니다. 내면의 고백을 직접 말로 한다는 것이 저의 성격상 어려운 일이어서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 그림이 언어적이고 서술적인 성격을 띠는 것은 이러한 '자기고백적 성향' 에서 기인하는 것이 크고 또한 저의 언어적 콤플렉스를 그림을 통해서 극복하려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철심과 오른손은 드로잉을 캔버스에 옮기면서 등장한 것이고, 그림 전체를 마치 화면 속의 스케치북처럼 설정하는 증거가 되고, 화면 밖에는 실제로 저의 오른손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고백의 대상은 이 여인에게서 나 자신을 향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자기를 계속해서 객관화하는 것이 이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의 특성은 시선의 존재에 대한 설정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먼저 그림 앞에서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나를 상정하고, 이 나를 그림 뒤에서 훔쳐보는 누군가가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저는 이 여인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상단의 카메라의 시선은 이런 나를 향한 것 같다고 느낍니다. 저는 카메라의 시선을 의식하자 피하듯이 시선을 이동하게 되는데, 화면을 거슬러 올라가 한 쌍의 인물에게로 향하면서, 연인처럼 보이는 그들을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불륜의 관계일 것이라는 불온한 상상을 해봅니다. 이것은 물론 저의 심리가 만들어 내는 개인적인 해석이므로 일반관객은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이 카메라의 시선은 여인을 유심히 바라보는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타자의 응시로서 작용했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욕망의 눈'과 이에 대응하는 '타자의 감시'였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더 진전되면서, 내 시선과 욕망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카메라의 눈은 '타자의 눈'이 아니라, 바로 나를 관찰하는 자로서의 '또 다른 나의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 뒤에 존재할 것 같은 그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물원 그림에 구멍을 뚫고 앞의 상황을 응시하는 이 남자의 뒷모습은 바로 '제 자신'입니다. 이것은 두 작품을 그림의 앞, 뒷면으로 가정하는 방식인데, 이 경우 두 그림은 시선이 존재하는 상황을 두 개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되며, 봄과 보여짐의 개념이 드러나는 상황을 재현한 것이 됩니다.
작품의 제목 '3초'는 그림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대충 보는 관객을 의미합니다. 등장인물들은 개인전에 오셨던 분들로 저의 은사님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은사님 중의 한 분은 '그림은 3초면 다 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그 뜻을 조금은 이해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림을 너무 평가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가하는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그럴 경우 그림은 우리의 삶과는 별 상관없는 감상적 차원에 머물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에 그림을 본다는 것은 관객 자신의 기억과 경험, 지식, 의미 같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그림에 투사하는 행위이고, 그럼으로 해서 관객과 그림 더 나아가 관객과 화가가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대화의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3초라는 말에는 이렇게 서로 이해하려는 관용의 태도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림보기가 진정한 대화의 장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는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삼인이 모여서 삼년간 다른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했는데, 97년 ‘Inter-View’, 98년 ‘회화술’, 99년 ‘그리기/ 그림’ 전시입니다. 시선의 체계와 그것의 해석가능성에 대한 모색을 주제로 한 전시가 ‘Inter-View’전시고, ‘회화술’전에서는 관찰, 묘사, 재현의 방식에 대한 삼인의 태도와 실천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기/그림’전에서는 삼년간의 결과물들을 정리하면서 각자의 발전가능성을 점검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그림은 친구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렸습니다. 그림을 서술해보겠습니다. 리히터의 그림에서 인용한 촛불의 방향과 그 빛이 퍼지는 모습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책상 위의 물건들은 친구의 품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라이터와 담배꽁초가 배열된 모습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정리 정돈하는 친구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또한 문학 평론집과 국어사전은 언어적으로 정확하려는 그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 단어들은 그날 밤 그가 밤새 생각했을지도 모를 어머니에 대한 단상입니다. 여기까지의 설명은 제 의도에 의해 상황을 의식적으로 연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자의 관계와 대조되게 저는 꾸부정한 자세로 혼자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작업을 할 당시에는 조형적 구성의 이유 때문이거나, 실재의 경험에 비추어 대수롭지 않게 그린 겁니다. 그리고 저의 직접적인 의도와 무관하게 그려진 것들의 의미는 때로 관객에 의해 그 감춰진 속뜻이 해석되기도 합니다. 어느 관객은 이러한 모습을 친구에게 제가 어떤 식으로든지 의지하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또한 잠자는 포즈를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보면 저의 언어적 콤플렉스 같은 심리적인 고충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제 그림은 의도된 상징과 의도되지 않은 무의식적 상징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인물들의 포즈에서도 느껴지듯이 저와 모델의 관계는 친형제 이상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제가 이 형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삶의 지혜가 뛰어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무기둥에 걸려 있는 여러 가지 도구들은 실제로 물건 모으기를 좋아하는 형의 취향이자, 삶을 꾸려나가는 방법에 대한 저 나름의 존경의 표현입니다.
다음 작품은 작업실 벽에 그림이 놓여져 있는 상황입니다. '그림 안의 그림'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앞서의 작품들에서 보셨듯이 저는 생활 속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체험을 작업의 출발점이자 그림의 소재로 삼습니다. 이와 같은 작업은 제 경험을 타자의 입장으로 대상화하여 스스로를 성찰하려는 것이고, 그림을 삶과 밀착시킴으로써 저의 내면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희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지난 몇 년 동안 저와 가족의 삶을 소재로 하였던 작품들을 시기 순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결혼하기 이전의 그림에서 제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은폐적이고 훔쳐보기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처럼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을 그린 적이 없었습니다. 손을 맞잡고 서로 마주보는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은, 제가 오랫동안 짝사랑만을 해오다가 비로소 제 아내와 마주보게 된 온전한 사랑의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그림은 보는 동시에 보여 지는 이중적인 시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여 진다는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존재감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두 개의 거울을 장치했습니다. 아내의 손을 맞잡은 채, 제 왼손에는 손거울이 들려있고 제 등 뒤로 사각거울이 이젤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림은 제가 손거울을 통해 바라 본 풍경의 일부분을 확대해서 재현한 것입니다. 만약 관객이 책과 포스터 글씨의 좌우 뒤바뀜을 단서로 추측한다면 그림이 그려진 실제 상황을 상상하면서 손거울 안의 남자의 시선으로써 그림을 감상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안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하고 낯선 시선의 움직임을 연상시킵니다.
아내의 손에 저의 손을 살며시 얹고 있는 모습은 마주봄을 통한 교감의 의미를 함축합니다. 아내와 태국에 여행 갔을 때 한 호텔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그렸고 마주봄의 상황을 극명하게 표현했습니다. 어떤 관객은 방 안의 이색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병실에서 영혼이 바라보는 풍경 같다고 얘기한 이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제 그림에 대한 오해가 그림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원래 저희 부부는 아기를 가지기 힘든 사정이 있었는데, 이 당시 의사로부터 희망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 중에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다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그림이 떠올랐고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다른 어떤 화가의 그림보다 고귀한 성스러움이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95년도에 이태리 여행을 했었고, 그때 안젤리코의 벽화를 직접 보면서 커다란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아기를 바라는 저의 간절한 바람에 이 그림이 떠올랐고 그림 상의 이오니아식 건축공간과 몇몇 상징물들을 자연스럽게 제 그림에 인용했습니다.
그림에서 아내는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작품을 보고 있으며, 성령을 상징하는 이 비둘기조각은 아내를 향해 있습니다. 이것은 아내에게 곧 기쁜 일이 있을 거라는 저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왼쪽에,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제 조카가 천사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반면에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저 은밀해 보이는 공간은 낯선 여자가 제 머리를 만질 때 느껴지는 야릇한 상상을 암시합니다. 여기 이 헝클어진 잡풀은 이러한 저의 복잡한 심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소망대로 아내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배가 어느 정도 불렀을 무렵의 모습입니다. 아내와 배속의 아가가 함께 제 그림을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가장 행복한 마주봄의 순간이자 그림과 삶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기에 제가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힘이 됩니다. 아기가 세상에 나온 바로 직후의 모습은 저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는 것을 강변합니다. 지금도 작업실에는 이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다음 그림은 좀 전에 보신 <머리 깎기>의 연작으로서 그 이후의 변화된 현실상황을 이전 그림에 대신 넣었습니다.
그럼,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 <태몽>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님이 아기의 태몽을 대신 꿔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릴 당시에 어머님의 몸이 안 좋으셔서 빨리 쾌차하시라는 기원의 심정으로 그렸습니다. 호박 꿈을 꾸셨다고 하시기에 아버님이 대추나무에 매달려 있는 호박을 따는 상황으로 연출을 했고, 어머님은 그림에서 보시듯 그 꿈을 꾸고 계십니다. 어쩌면 저에 대한 기원을 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원래 호박은 남자아기를 상징한다는데 이점은 어머님의 기대를 벗어났습니다.
왼쪽은 그림이고 오른쪽은 사진입니다. 이놈이 그림을 그릴 당시 아기의 모습입니다. 꿈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마치 실재의 현실처럼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저는 이 그림을 한 여름에 선풍기를 쐬면서 근 한 달 반을 그렸습니다, 그림이 거의 완성되었을 무렵 그림을 멀리서 살펴보려고 뒤로 물러서는 순간, 우연히 선풍기가 어머님을 향해 바람을 보내는 광경을 발견했습니다. 선풍기의 시원한 바람이 어머님의 치유를 돕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저는 대단한 충만감을 느꼈고 이 영상을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이전의 사적인 그림과는 다르게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이야기에 접근하고 이를 통해서 좀 더 많은 관객들로 그 교감의 폭을 확장하자 하는 것이 이 전시의 기획의도 입니다. 그래서 영화사의 협찬을 받아 ‘이중간첩’이라는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고 거기에서 떠오르는 시각적인 잔상들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이중간첩’전 전시를 준비하면서 다음 전시에 대한 기획안이 떠올랐고 아직까지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현대음악 작곡가인 윤이상 선생님입니다. 그 분이 일생 동안 견지해 온 삶의 실천으로서의 예술관은 저에게 예술가의 초상 같은 것이고 만약에 전시를 한다면 윤이상 선생에 대한 헌정 전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저와의 어떤 감성적인 교차 지점을 찾아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보시는 그림은 윤이상 선생의 미망인인 이수자여사와의 첫 대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제 경우 결혼과 아내의 출산 등과 같은 제 삶의 환경이 바뀌면서, 그림의 구성형식도 단순하고 함축적인 양상으로 변화했습니다. 대상에 대한 정확하고 간명한 이해와 그것을 재현 하는 묘사의 방법으로서 유화기법에 대한 탐구와 실험을 계속해 왔습니다. 전통적 유화기법은 요즈음 제가 구사하는 방법이며, 최근에 이르러 나름대로 체계화된 방식입니다.
시대별 유화기법의 특징을 대략적으로 요약해 봤습니다. 예술가가 매체나 재료를 선택하고 그것을 다루는 방법은 단순한 테크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화가의 성격과 기질 등을 이해 할 수 있는 비밀 같은 것들이 숨어있습니다. 제가 요즈음 그리는 방법은 튜브 물감이 개발되기 이전의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격렬한 붓질에 의해 작가의 감성이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성격 탓도 있고 그렇게 하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전통유화기법은 우리가 흔히 그리는 식으로 대상을 보고 직접 화면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드로잉과 밑그림을 통한 일련의 준비과정을 거쳐 대상을 재현 해내는 일종의 계획된 그림입니다.
보시는 그림은 유화를 이용한 최초의 예술가중 한 사람인 로베르 캉팽의 부부초상화로,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과장된 표현이 없는 간소한 외양은 인간의 내면성까지도 전하는 듯 합니다. 초기의 유화기법은 템페라 위에 유화의 투명성을 이용해 여러 번 덧칠해져서 색이 우러나오는 효과를 줍니다.
그림은 제가 플랑드르의 미술과 한스 홀바인의 초상화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소품들은 제가 의뢰인에게 미리 부탁해놓은 것으로 의뢰인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입니다. 저는 이 소품들이 인물의 개성에 대한 어떤 의미를 갖도록 적절히 배치했습니다. 모짜르트에 관한 책, 캠브리지 대학을 상징하는 타올, 시가박스의 습도계, 러시아산 여우털 모자, 이런 것들은 모두 의뢰인의 지식과 교양, 고급취미와 같은 귀족적인 자부심을 상징합니다.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의 방향이나 주먹 쥔 손의 표정도 그러한 자긍심과 연관이 됩니다. 반면 오른쪽 그림의 여인은 이런 남편을 바라보는 상황으로 연출했습니다. 소품들은 기다림, 약속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유화기법을 지도하기 위해 작업과정의 변화를 모아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준비한 내용은 전통유화기법의 방식에 제 나름의 기법을 가미한 것입니다. 예, 그럼 여기까지 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김준기 : 김범수 선생님과 이광호 선생님을 모셔서 말씀 들어보았는데 많은 질문사항이나 얘깃거리가 많을 것 같은데, 어차피 정해진 시간이니까 정리를 잘 하면서 해야 하겠죠. 그래서 정리를 잘해주고 얘기를 잘해주실 두 분을 모셨습니다. 한 분은 장윤현 감독님이고 한분은 월간미술 이건수 편집위원장님이십니다. 두 분이 아무래도 영화나 미술, 서사 비주얼 이런 부분에 전문가들이시니까 두 분 작품을 주제로 중심으로 주제에 부합하는 말씀을 들려주시겠습니까?
이건수 : 일단 저는 전시가 시각서사라는 제목인데 전시에 맞는 컨셉과 전시를 이끌어가는 논의하고 출품된 작품과의 관계라 할까. 대개 서사적, 내러티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잘못하면 내러티브의 컨셉을 표피적이고 한정적인 요소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그것을 미술 속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을 애써서 하는데, 사실 그렇게 하다보면 보여 지는 것들이 대부분 구상적이랄지 미장센중심의 회화들이죠. 그러니까 도구나 설치 인물들을 동원하여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그것을 제시해가는 이러한 형태라는 거죠. 그것이 미술에서 영화나 다른 장르의 미술하고 만나면서 얘기를 풀어가는 방법은 조금 조심될 부분입니다. 또 미술 쪽의 입장에서 좀더 정체성이라 할까, 진정성 같은 것들을 좀더 고집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 같고요.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의미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학교강의를 하든지 밖에서 이렇게 보면 미장센의 그림, 이야기를 꾸며가는 내러티브의 그림들이 대게 다른 장르, 특히 영화나 어떤 사진이나 다른 비주얼한 매체에서 받은 영향을 입체적으로 풀어가는 경향을 굉장히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미술을 영화와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몇 가지 기초적인 방법론들이 있겠죠. 말하자면 영화의 매트박스 비율이라고 그럴까요? 일대 얼마라는 비율대로 해서 트리밍을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이나 사물들의 인물들을 영화적인 앵글과 비율대로 트리밍을 한다든지 이런 비율로서 회화에 적용시키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웃 포커싱을 하고, 줌인을 하고, 클로즈업을 하는 방법을 통해서 화면을 구성하는 방법, 또 어떤 사람들은 하이키하고 로우키를 작용을 해가지고 색깔이 날아간 듯한 효과를 줄 수도 있죠. 또 형체를 희미한 선만 남아 있으면서 추상성까지 구사하는 것이나, 로우키를 어떻게 해서 어둠 속에서 형체들을 확인하는 그런 방식이 있겠죠. 또 많이 행해지는 것은 하이퍼리얼리즘과 같이 거의 사진하고 맞먹는 초정밀하게 리얼하게 묘사하는 그런 것들을 꾀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거의 일차적으로 끝나버리고, 회화에서는 그런 것을 어떤 영화나 다른 매체를 해석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이퍼 리얼리즘 같은 경우를 들면, ‘아, 이사람 사진처럼 정확하게 그렸다’ 하는 문제를 갖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 사람이 기술이 있다’ 내지 ‘이 사람 그림 잘 그린다’라고 생각을 하죠. 그런데 사실 우리가 미술 쪽에서 봐야 될 입장은 이것이 정말 정밀하고 세밀하게 그려놨지만, 이것이 사진하고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그림이라고 하는 것을 갖고 있구나 하는 입장이 하이퍼리얼리즘이지, 그림이 추구하는 것이 똑같은 사물을 베끼고나 재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간과하기 쉽다는 거죠.
그래서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러티브를 가지고 미술에서 이야기한다는 컨셉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하는 것이고, 회화라는 입장에서 정체성을 가지고 시작하는 입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를 풀고 싶습니다.
김준기 : 일단 여기까지. 주로 회화를 중심으로 내러티브라는 문제를 어떻게 따져봐야 할 것인가를 문제제기해주셨고. 그러나 이제 회화에다가 플러스 미술 쪽에서 접근하는 영상작업 이랄지 설치작업 속에서 내러티브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 궁극적으로는 비주얼한 내러티브라는 것이 설정가능한지, 이런 문제까지 말씀해주시고 있고요. 문학적 서사나 영화적 서사와 다른 시각미술의 서사라는 것이 어떤 건지 어떻게 가능할지. 그런 것을 차후에 말씀할 수 있을 것 같고. 구체적인 작품에 관한 언급은 이제 장윤현 감독님께 듣고 나서 얘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윤현 : 어쨌든 작가님의 작품을 보고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희가 영화라는 작업을 할 때 필름은 생명과도 같은 중요한 재료예요. 필름 자체는 그 재료가 어디론가 투사된 그림을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거든요. 필름이 비쳐지는 스크린만을 보게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필름이 가지고 있는 재료가 다시 재 상영 될 수 있다는 것들이 굉장히 좋았고요.
김범수 작가의 작품은 결국 그림자와 빛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인해 제작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가 영화를 하다 보니까 말이지만, 지금 소재로 사용되었던 필름은 색감만으로 선택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나아가 아까 콜로세움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아 저게 어떻게 보면 20세기의 콜로세움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매체가 가지고 있는 민주적인 방식이라든지 콜로세움이 가지고 있는 의미라 할지... 제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을 저런 빛으로 보여줬다는 것이 내용이 가지고 있는 영화라는 매체가 일차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느낌이나 그런 것까지 같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작품을 설명해 주셨는데요. 홍콩영화하고 한국영화, 미국영화가 같이 섞여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그걸 보면서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조형적인 예술적인 느낌만 보다가 그 얘기를 듣고 보니까 디테일한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세히 필름을 봤는데 이게 비춰진 그림이 아니니까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게 어떤 작품형태로 크긴 하지만 좀 더 그 그림자가 디테일하게 잘 보이면 조형적인 그림의 느낌보다는 조금 더 이야기가 늘어가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앞으로 작업하시는 방식들이 더 확장될 수 있고 더 의미 있게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광호 작가님은 제가 계속 만나온 작가입니다. 제가 공교롭게도 영화 ‘접속’하고 ‘텔 미 썸싱’ 두 작품 다 이광호님의 작품을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만들었어요. 영화에서도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 시점의 문제, 시선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갖고 있긴 하지만, 누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느냐, 누가 그 이야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되느냐, 뭐 이런 거에 따라서 감동이 전해지는 느낌이나 서술하는 방식들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당시에 화면을 놓고, 화면을 만드는 사람이 보는 시선과 거기에 대상이 되는 사람의 시선이 어떻게 교감을 하는가에 관심이 많이 있었어요.
실제로 ‘접속’을 할 때는 한 작품을 제방에 걸어놓고 그것을 계속 보면서 이야기를, 아까 말씀하신 약간의 오해와 같은 해석들을 계속 얘기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텔 미 썸싱’ 할 때는 제가 시나리오를 이광호 선생님께 드리고 그 안에 물론 주인공이 그림을 그려야하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부탁을 드린 것도 있었지만, 그림이 갖는 이미지, 또 그 영화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생각하고 계신지, 이런 부분들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까 티저광고를 말씀하셨는데 저한테 이미지로 그려주신 그림을 저희가 티저포스터로 사용을 했어요. 그 그림을 보고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른 말씀을 많이 하세요. 그 포스터를 못보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 포스터를 보신 분들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라고 할까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색깔이나 느낌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가 그 티저포스터와 연관을 지어서 많이 생각된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좀 전에 이광호 선생님의 여러 가지 지나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최근의 그림에 대해서 굉장히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그게 ‘이중간첩’전을 할 때 예전에 그리셨던 그림만을 상상하고 갔는데, 그 그림의 경향과 굉장히 다른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아주 짧지만 짧은 순간에 지나가는 영상이 주는 느낌 그리고 저는 그 스토리를 알았기 때문에 스토리가 주고 있는 이미지와 묘하게 충돌하고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게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그것을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는 시점이나 관점이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많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미지는 굉장히 단순하고 평범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스토리를 알고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작가가 상상하고 있는 세계를 근접해 갈 수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그 전하고 다르게 제가 좀 더 가깝게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안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입니다.
김준기 : 진심으로 여쭤보는 건데요, 진짜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으셨나요? 왜냐하면 큐레이터 평론가 이런 사람들이 그림을 본다는 것은 직업적인 그런 일이 되어가지고 여쭤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극장에서는 스토리에 빠져들고 울기도 하고 몰입도 되거든요. 근데 회화작품 전시장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서는 사람을 좀처럼 보기가 힘들거니와 저로서도 이제 전통적인 의미의 미술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경우가 좀처럼 없어요. 그래서 저렇게 말씀 하시는 것이 좀 부럽기도 하고. 어떠세요, 이건수님?
이건수 : 장 감독님이 말씀해 주셨는데 완곡하게 부드럽게 표현해 주셨습니다. 김범수 선생님은 제가 잘 모르니까 사실 작품은 미디어시티에 나온 거 보고 알고 있고, 이번에 월간미술에도 나옵니다. 첫 페이지에 크게 두 페이지에 걸쳐서 작품을 넣었어요. 근데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장 감독님이 완곡하게 말씀하셨지만, 이 ‘시각서사’라는 것이 영화적인 면을 미술에 부여할 때, 아까 김범수 선생님의 작품이 이 컨셉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냐 하는 것에 대해 저는 조금 부정적인 의견입니다. 왜냐하면 저건 설치이고 하나의 평면을 겸비한 입체 컨셉으로서의 그림이라는 거죠. 저것이 어떤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아니고 영화필름이라는 재료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 자체가 어떤 내러티브를 양산하는 그런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전시하고는 조금 색다른 작업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오히려 저런 작업은 만다라 같은 종교적인 의미의 구도자가 재료들을 배치시키면서 근원적인 형상을 찾아나가는 입장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필름을 사용했다고 영화하고 접목시키는 생각은 버려야할 것 같아요.
김범수 선생님 작품이 그 작품자체로는 굉장히 의미 있고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을 미디어 쪽에서 자꾸 건드리는 것들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그래서 미디어시티서울에서도 미디어시티하신 분들이 미디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냐에 모호한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전에 한 번 말씀을 나눠보았는데, 그 사람들이 미디어아트에 대한 개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디지털아트다 미디어아트다, 그러니까 우리가 회화를 브러쉬 아트라고 안 그러잖아요. 미디어아트라는 것에 미디어라는 개념을 너무 앞세워가지고 그런 상태에 있다는 거죠. 아무튼 그럼 면에서는 김범수 선생님을 그런 면으로 해석하는 것은 조금 안 좋다고 보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패턴화하고 만다라 같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가고, 조금 더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활용하는 기계가 어떻게 개입됨으로써 그림자 현상, 영화라는 비쳐진 그림자, 그림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더 폭넓게 영화와 접목시킬 수 있을 것 같네요.
김준기 : 다른 말씀을 또 해 주실 것 같은데, 일단은 그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말씀을 까먹지 말고 기억해주시면 좋겠고요. 저로서도 이제 이건수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이 작가가 이 작품을 출품한 것이 시각서사라는 전시에 적합하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런 거죠. 그러니까 전통적인 의미의 시각예술 회화나 조각이 아닌 오브제를 이용한 설치작업 중에서 영화와 관련된 주제나 소재를 채택하고 있는 작품을 이 전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 작품이 지나치게 소재주의 쪽으로 소재만 영화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여기에 끌어들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지적해 주신 거고요. 저도 그 점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주얼 내러티브라는 주제와 연관해서 한번만 더 틀어보면 재미있는 지점이 생깁니다. 필름이라고 하는 것은 1초에 24컷이 지나가면서 움직이는 것으로 영상 잔상이 남게 되는데, 저 필름이라고 하는 것은 영화라는 물성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죠. 즉 서사를 감지한 물건, 물성 그 자체를 가지고 서사는 어디론가 증발하고 패턴이라 할지 비주얼요소로만 환원이 된다는 것이죠. 보통 이 전시 전체가 보여주려는 것은 비주얼로부터 내러티브로 확산되는 것 같은 그런 뉘앙스인데, 이 작가의 작품은 유독 내러티브자체를 꽁꽁 묶어가지고 비주얼로 환원시키려고 하는 그런 경향을 보이고 있어요.
작품 설치할 때 작가가 그런 말을 했었어요. 이 자체가 패턴이나 문양 색채로 존재하긴 하지만 서사적인 요소는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을 했더니, 안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주제의 어떤 영화의 필름을 가지고 작업을 할 때는 그 내러티브를 또 다른 조형요소로 끌어들이는, 그 영화의 내러티브가 시각장치로도, 단지 패턴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조형성 자체로 서사 내러티브구조를 가지는 쪽으로 업그레이드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렇다면 앞으로 좀더 비주얼과 내러티브라는 것에 대해 다음 작품부터 기대를 좀 해봐야 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지금 상태에선 확산이 아니라 환원이라는 정도의 재미로 작품을 보는 관람 포인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이건수 : 지금 말씀이 재미있는데, 지금 이미지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쪽으로 많이 해석하고 그림읽기를 시작하는데요. 만약에 거꾸로 이야기가 증발되어버리고 연결된 하나의 물건으로서의 옛날에 이미지를 가졌던 오브제로서의 필름 한 조각, 두 조각 이렇게 남아있는 쪽으로 환원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오히려 그런 부분들을 많이 확대 부각을 시키셔서 이미지가 완전히 증발되어서 하나의 신체 같기도 하고 박제된 것 같기도 한, 이미지로서의 필름의 모습으로 작업을 진행시킨다면 훨씬 더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해 준다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김준기 : 선생님은 어떠세요?
김범수 : 저는 작업을 하는 입장이니까 지금 말씀하신 부분들, 저번에 김준기 실장님하고 말씀드린 부분들이 앞으로의 제가 작업을 해나갈 과정이겠죠. 지금 작업을 한 7년 동안, 필름을 처음 손에 잡은 순간부터 제 나름대로 진화를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제적인 부분이 항상 걸려있기 때문에 기계장치나 새로운 그런 것을 어느 정도 제약을 받죠. 근데 저번에 말씀드린 것은 예를 들어, ‘텔 미 썸싱’을 제가 영화를 보고 필름을 구했다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숨겨진 감성들이 떠오를 것 아닙니까. 그런 부분들을 말씀드린 거죠.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분 역시도 공감하는 부분이고요. 작가로서 하나의 오브제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영화의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색감으로 보여 지는 부분들은 회화적인 요소, 조각적인 요소, 설치적인 요소가 가미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거죠.
김준기 : 네. 아까 하시려던 말씀 계속해서 부탁드립니다.
이건수 : 이광호 선생님은 제가 개인적으로 혼자 짝사랑하는 팬이었어요. 선생님께서 그림을 하시는 방법론들을 제가 굉장히 재밌어했고, 제가 기자생활을 처음 할 때부터 그림들을 찾아다니면서 잘 봤어요. 혼자서 잘 보고. 그래서 좋아하는 그림들이고요. 아까도 설명을 드리려고 했지만, 그림이 단순히 무엇을 재현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무언가를 만들고 과거역사와 맥락을 만들려고 하는 신호들이 좋아서 굉장히 좋았어요. 시점의 문제,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과의 관계의 문제로 그림을 활용하는 것도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전체적으로 관점이나 시점이 르네상스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은 또 아닌가하는 생각도 합니다. 르네상스 사람들도 시점의 문제를 굉장히 모색을 한거고 아까 말한 작품을 보면, 거기에 나오는 소품들을 통해서 얘기가 되고 시점과 보는 방법론에 대한 게임들을 했는데, 그것을 이제 우리의 현실 일상으로 바꿔서 표현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을 또 어떤 식으로 한 차원 더 진행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심이 있습니다.
역시 이광호 선생님의 특징이라 한다면 이전에 했던 자기의 일상서사들을 풀어가는 시선의 문제들인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궁금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광호 선생님 작품이 시선의 문제를 갖고 하는 우리나라의 몇몇 안 되는 작가 중 한분이기 때문에, 굉장히 이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나 서사성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몇몇 안 되는 작가 중에 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풀려가고, 또 어떤 식으로 회화의 정체성을 갖는 문제로 갈 것인가가 관심입니다. 그래서 시점의 문제는 모든 화가의 문제이고 옛날부터 화가들이 갖고 있는 문제로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제 생각을 조금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가 있잖아요. 미셀 푸코가 쓰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이 계속 연구를 하는 작품입니다. 제가 그 글을 조금 읽어 봤는데, 과연 <라스 메니나스>가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선의 문제가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요.
작품을 보면 이제 공주하고 시녀하고 개, 난쟁이도 있고 화가가 벨라스케스가 큰 캔버스를 걸고 바라보고 있는 장면도 있고 뒤에 거울에 비취진 왕의 근처의 그림도 있잖아요. 미셀 푸코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르네상스 고전주의 시점을 깨는 1호탄이라고 얘기하거나 바로크를 여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얘기해요. 재현의 성서라고까지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높이 찬사 받는 이유는 단순히 화면 안에 과거의 시점처럼 우겨넣어서 액자 속에다 만들어놓은 것에 있지 않고, 화면의 시점 교차와 이동과 공간의 트임을 통해서 계속 옆으로 확장하는 것에 있죠. 근데 대부분 미셀 푸코나 사람들의 관심은 공주와 주변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게 왕의 부처고, 화가도 또 왕의 부처를 바라보고 있고, 또 캔버스에 그려있는 것도 왕의 부처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 시점의 통일이 뭐가 중요하냐면 왕의 부처의 시점과 화가의 시점, 그 그림을 보는 관객의 시점이 일치해야 한다는 거죠.
대부분은 벨라스케스가 그 리고 있는 그림은 왕의 부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10년 전에 프라도미술관에 가서 한번 봤어요. 그 사이즈가 벨라스케스 앞에다 걸쳐놓은 캔버스사이즈하고 똑같더라고요. 거의 3m~4m에 달하고 가로가 169cm인데, 벨라스케스 앞에 있는 캔버스 크기가 <라스 메니나스>의 크기하고 똑같은 거예요. 저의 궁금증은 사람들이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그림의 캔버스 앞면엔 왕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저는 그게 아니고 그 자체가 <라스 메니나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 얘기가 되어야지만 벨라스케스는 지금 자기가 그려놓은 그림의 풍경을 보고 있는 거고, 그 다음에 관객도 그 그림을 보고 있는 거고, 왕의 부처의 시선을 봐서도 그 그림이 지금 보이고 있는 거죠. 그래야 그 세 개가 일치가 되지, 안 그러면 일치가 안돼요. 만약 벨라스케스가 왕의 부처의 얼굴을 그렸다면 그 시점이 성립이 안돼요. 왕의 부처를 그렇게 크게 그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3m나 되게요. 그러니까 저는 제 얘기가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문제에 대한 해석들이 그림읽기의 하나의 방법이라는 거고, 이광호 선생님이 그런 재미난 작업을 하시는 거죠. 저는 아까 부인 손잡고 뒷거울을 보는 그런 장면들에서도 보았듯이 그림의 시점이나 이런 것들이 유익한 면이 있는데, 그것이 그 시점, 게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것과 앞으로는 어떤 작업을 하실 지가 궁금합니다.
김준기 : 질문들이 재밌죠. <라스 메니나스>는 우리가 앞에 가져다 놓고 보면서 얘기를 들었으면 실감이 났을 텐데요. 지금 하신 말씀들은 새로운 학설이시죠?
이건수 : 네. 저 혼자 그냥.
이광호 : 근거를 한 번 찾아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증명만 된다면 굉장히 유명해지실 것 같은데요.
김준기 : 기존 미술사가들의 학술을 뒤집는 새로운 학설이죠.
이광호 : 저는 그 시녀들을 개념적으로만 이해를 하거든요. 그렇게 깊게 들어가지를 못하겠어요. 제가 <꿈의 세계>를 그리게 된 이유를 설명해드리자면, 과거 르네상스 시기 화가들이 도전했던 시선의 분배를 제가 다시 끄집어내서 나도 한 번 해 보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제가 그 당시 느꼈던 상황, 아내와 마주봄의 상황을 그리게 된 절실한 이유가 있었거든요. 마주본다는 자체가 저에겐 큰 의미였기 때문에 그것을 재현하고 싶은 욕망에서 처음엔 두 손을 그렸어요. 그러다가 이것을 조금 더 다른 관점에서 재현할 수가 없을까 해서 2개의 거울을 장치한거죠. 제가 그 작업을 하면서도 너무 머리가 아프고,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작업을 하면서도 너무 헷갈리는 거죠. 나중에는 제 그림을 글로 옮길 때도 굉장히 머리가 아팠어요. 몇 사람을 동원해서 가능한 이야기인지 확인을 하면서 정리된 것이 오늘 말씀드린 거예요.
김준기 : 좀 엉뚱하겠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을 드리고 싶은데요. 예를 들면 거울 그림이랄지, 수태고지를 사용한 글이랄지, 머릿속에 내러티브가 있잖아요. 그것을 시각이미지로 재현하겠다고 하면, 회화보다는 예를 들어서 동영상작업이 휠씬 더 효율적으로 내러티브를 구현하는 것이 수월하거나 혹은 보는 사람들에게 간명하게 내러티브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 굳이 한 폭에다가 구겨 넣으려고 애를 쓸까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저 그림도 ‘태몽’이예요. 그래서 ‘첫 번째 할머니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빠져든다. 그러고 이제 호박을 땁니다. 그리고 아이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3~4가지 정도로 잘라서 기승전결로 내러티브를 만들면 쉬울 텐데요.
이광호 : 쉬울까요?
김준기 : 아니 뭐 동영상 만드는 사람들에겐 쉬울 테니까요. 그런데 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캔버스위에다가 집약된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 있는 회화적 내러티브를 하는 건지, 해야 되는 건지 하는 생각들을 해보는 거죠. 거기서 회화의 독자적인 존재가능성이 나오는 거고요. 또 심지어는 저렇게 회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분도 나오고. 그런 점에서 저의 질문은 화가들보다는 영화감독께서 답을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윤현 : 말씀하신 부분에서 정말 회화가 가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데요. 영화의 가장 큰 한계는 감상의 시간입니다. 어떤 이미지를 감상하는 데에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감독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보면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작가와의 연관성을 찾아가는 작업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동영상작업이 굉장히 편하고 쉽다고 생각하지만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감독에 의해 선택된 이미지의 폭 같은 것이 대단히 협소해요. 그림은 몇 개월을 감상할 수도 있고, 가만히 앉아서 수 시간동안 볼 수도 있고, 또 아까 말했다시피 3초를 슬쩍 지나가면서 볼 수도 있는 거죠. 관람형태가 많이 다르고 그것으로부터 이미지를 생각해내는 나의 사고 작용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충분히 생기기 때문에 동영상을 보는 것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제가 한 그림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단순화시키고, 선택해서 어떤 이야기구절을 만들어 2시간이라는 시간 안에서 압축해서 집어넣는 과정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광호 선생님의 작품 중에 선풍기가 등장하는 작품을 처음 보면서, 저는 그게 동영상이라는 것보다는 뭔가 이 그림이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그림에서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제가 볼 때는 내러티브의 전달이라는 것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의 확장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어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음악이 주는 느낌, 또 다른 물체가 그림하고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고 들어가느냐 하는 부분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동영상을 사용하는 내러티브와 회화에서 가져주는 내러티브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준기 : 우연히 올라가 있다가 관람객들이 있으면 말을 시켜요. ‘이 동영상은 어떻게 만든 것 같아요?’하고요. 다른 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이 오면 가끔 안내를 하니까요. 그러면 ‘뭐 이거 그냥 스틸컷에 동영상해서 만들었겠지, 기술적으로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나오지만, 일반 관람객들은 ‘그림 앞에 놓고 찍었네요’ 라고 바로 정답이 나오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의도하신 바가 상당히 많이 적중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요.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원래 그림 만져보면 안되는 거잖아요. 관객한테 지금 괜찮으니까 살짝 만져보라고 그래요. 회화작품은 캔버스위에 물감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이잖아요. 그 앞에 있는 건 만져도 안 만져지는 것이잖아요. 이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물질로서 존재하는 회화와 빛으로만 존재하는 가변적인 이미지의 동영상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고, 여러모로 그렇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인 것 같고요. 계속해서 이건수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건수 : 사실 서사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미술의 기원이랄까 미술의 가장 기초단계에서 시작하는 것은 서사성에 있죠. 애초의 미술의 탄생과 관련된 기록성 같은 문제들을 보면, 그 당시에 기록은 그림이나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이죠. 사실 이집트 상형문자나 라스코 동굴벽화,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같은 것들을 미술로 하느냐의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오늘날 파인아트로 생각하는 진정한 미술로 접근했겠는가 하는 거죠. 하나의 이미지로서 말을 전달하는 문장부호였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나 문자, 글이라는 것 과 이미지하고 회화 간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고, 거기에는 서사성이 개입되어 있죠. 그리고 로마나 그리스의 기록하는 벽화의 부조 같은 것에도 알렉산더 대왕이 어디에 가서 무엇을 했는지 전부다 거기에 기록되어 있는 거고요. 또 조각에 열주가 있잖아요. 올라가면서 얘기가 풀어가는 서사구조가 있어요. 러시아의 성상 같은 것을 보면 테두리그림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은 영화거든요.
김준기 : 영화필름처럼요.
이건수 : 그러니까 저는 그런 개념들을 지금 이 시대에 다시 해석해서 다시 재현한다고 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오히려 회화에서 그런 서사성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그런 역사적인 기초적인 소스들을 보면 예전에 다 해 놓은 게 있습니다. 영화도요. 그런 요소들을 찾아서 지금에 와서 다시 한번 보여주는 그런 의미들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영상에 관심이 있고 해서, 제가 충격을 받은 전시로서, 예전에 좋아했던 사진 작가 듀안 라이트라고 있었어요. 시퀀스 사진 4장을 가지고 1시간 30분짜리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더라고요. 딱딱 4장 찍어놓고 밑에다가 글을 쓰죠. ‘한 남자가 어디를 갔다’ 이런 식으로요. 그 방법이 4컷의 사진으로 하나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곤 하거든요. 컷과 컷 사이의 공간들을 우리가 상상하게 만드는 거죠. 충분히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영화라고 하는 것들이 극장에서 봐야만하고 또 영사기로 돌려서 틀어야하고 그런 영화적인 서사를 꼭 그런 공간에서만 체험할 것이 아니라,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영화의 서사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영화의 서사성을 획득을 하는데 미술의 입장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그것을 풀어나가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을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매체적인 특성이 회화는, 화가가 봤고 화가가 체험했고 화가가 생각했던 것들을 다 끌어 모아서 하나의 그림 한 장으로 만들어놓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동의를 구해야 하는 그런 입장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 미술이라는 것 자체는 사실 하나의 집약매체이지 확산매체가 아니거든요. 모든 것들의 경험 모든 시간과 운동 같은 것들도 하나의 화면으로 만들어 놓고 이것으로 귀착시키는 거지만, 음악이나 다른 멀티플 한 매체들은 시디 한 장에 찍고 그것을 백만 장을 찍어 확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것이 소통하는 시스템이나 그것이 풀어가는 이야기들이 달라진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훨씬 더 멀어지는 것이 더 회화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지금 미술관들이 전부다 대중 쪽으로 안가고 산으로 도망가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미술이 자꾸 대중적이다 라고 하면서 소통 커뮤니케이션의 경로로 나가는데, 이게 루트가 맞아야 되는데 서로 결들이 다르니까 대중화가 안 되는 거예요. 세속화가 되고 상품화가 되는 것이지 대중화가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미술이 ‘너희들이 값어치를 몰랐다’는 식으로 화가들이나 미술관들은 전부 도망쳐서 산속으로 들어가고, 교회같이 너희들이 미술을 체험하려면 이렇게 고생을 하고 사막을 건너서 산 넘고 물 건너 와야지만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거죠. 이런 개념의 전복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럼 회화가 가지고 있는 매체적 특성들은 어떻게 풀어가고, 거기에 어떻게 서사성을 넣고, 어떻게 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만드느냐가 중요한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준기 : 그 질문 어떨까요. 지난번 뮤지움토크와 지지난번 뮤지움토크 때 나왔던 것인데요. 서사라는 것이 우리의 인식구조, 감상체계 속에서 텍스트로 존재하는 것 같다는 선입견이나 오해 같은 것이 혹시 있을 수 있어요. 문자로 존재하는 것이 내러티브라는 것이죠. 그것은 문학의 힘이 가장 크겠죠. 문학적 서사라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고, 영화도 사실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문학적 서사잖아요. 거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오히려 비주얼한 것은 부차적인 요소가 되는 거죠. 판소리 같은 경우는 음을 담아서 들려주는 것이고 회화는 문학적 서사를 한 화면에 배치하고 관계를 주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그럼 과연 모든 서사는 문학으로 연결되는 것이냐는 거죠. 그랬을 때 문학으로부터 파생하는 모든 서사의 종속관계들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없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나 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거꾸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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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 우선미씨가 말씀 좀 이어주실래요. 그리고 뭐 오랜 시간동안 말씀 들으셨는데,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고요. 대체로 평소에 우리가 쓰지 않던 개념들을 많이 구사해서 얘기를 해서, 영화랄지 미술이랄지 그들의 관계라고 할지에 대해 편하게 말씀 좀 해주시면 좋겠네요.
우선미 : 저는 전반적인 것을 좀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전시진행단계를 지켜보면서 실장님께서 기획을 하셨기 때문에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러니까 영화라는 장르가 있고 미술이라는 장르가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서사구조라는 것은 솔직히 별로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어떤 특유한 서사구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죠. 매체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회화라고 해서 어떤 특유한 서사구조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영화나 미술이 나아가서 충돌할 때 또 여러 가지 의미가 생기는데요. 처음에 기획단계에서 의도하셨던 미술에서 차용되는, 그러니까 영화 쪽에서 차용되는 어떤 서사구조라던가 이런 개념에 대해서 조금 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주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김준기 : 간략하게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서사, 내러티브라는 게 시각예술에 있어서 가당키나 하냐는 거예요. 아까 말씀하신 것이 그거예요. 그림을 가지고 설명을 하려고 드는 것에 반대하던 시대가 있었단 말이에요. 엄중하게... 그리고 시각예술에서 서사를 빼는 것이 생존의 전략이었다고 아까 이 선생님이 설명주셨고요. 그랬을 때 20세기 후반 이후 한국현대미술에 있어서 특히 8,90년대를 지나면서 내러티브라고 하는 게 시각예술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데 그것의 다양한 면모를 한번 보자는 거죠. 그래서 ‘시각서사’라는 주제를 갖고 와서 그것에 맞게 그려달라고 하지 않고, 그동안 해놓은 작업들 중에서 한국현대시각예술에 있어서 내러티브라고 하는 것을 나름대로 연동시킬 수 있는 것을 말씀드린 거죠. 3층만 말씀드리자면, 여기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어요. 대상들을 왜곡시키고 편집방식도 영화적 방식이 아닌 것을 이용한 박화영 작가가 있죠. 다음으로 이광호 작가처럼 도전적인 의미의 내러티브, 회화적 내러티브 압축해서 시간과 공간에 딱 그러내는 회화적 내러티브가 있고, 박경주 작가처럼 액티비즘에 근접하는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그것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다큐로 남겨서 말 그대로 상영이 아니라 전시를 하는 작품도 있죠. 시각예술이 내러티브를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를 다양한 모습으로 한 번 펼쳐놓고 보면서, 오늘처럼 한번 얘기를 해보자 이런 것이었어요.
우선미 : 정리된 정의 같은 것을 해주시면 어떻게 말씀하실 수 있는지요?
김준기 : 앞에 말씀드린 분이 동시대 현대미술에 나타난 내러티브구조를 한번 보자라고 하는 게 기획의도라고 얘기하고. 그 다음에 답이라고 하는 건 제가 내린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이런 자리를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는 거죠. 저도 그 과정을 갖고 있는 것이고... 시간적인 관계로 초청 패널 분들께 마무리 말씀을 부탁드려야겠네요. 못 다한 이야기가 있으시면 이후 마련된 자리에서 편안하게 나누시겠지만, 오랫동안 함께 해주신 분들도 계시니까 요점을 정리해서 관객들에게 따뜻한 말씀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극장을 갔을 때 무엇인가를 보잖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저것을 상영하지 않고 전시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시선이거든요. 우리가 같은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이라도 극장에서 보면 상영을 하는 거고 전시장에서는 전시 관람을 하는 건데, 전시 관람을 할 때는 전시 관람을 하고 있는 나를 완벽하게 인식을 하고 보게 되지만 극장에서는 몰입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차이 같은 것들도 재미있게 지적을 해주셨는데요. 하여튼 계속 시각예술 쪽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시고 있는 것 같아서 저 같이 미술 쪽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매우 특이하고 반가운 관심사를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장윤현 : 저도 오늘 제가 모르는 부분도 많이 듣게 됐어요. 영화라는 것이 아까도 나왔지만 어쨌든 회화로 출발해서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되는 매체인데요. 그 매체를 바라보고 만들어가는 입장에서 근본적인 질문이나 문제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부족했던 것 같아요. 내러티브라는 것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그 쪽에서 자꾸 매몰되는 현상도 있었던 것 같고요. 또 영화를 하다보면 영화라는 게 대규모 자본이 소요되는 작품이다 보니까 그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질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조금은 저와는 거리가 멀고 저보다 더 깊숙한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는 회화와 영화라는 대중적인 미술과의 접목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든지 계속 관심을 가져야된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어떤 동기를 유발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고요.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저에겐 굉장히 유익했습니다.
이건수 : 지금 시각서사라고 제목도 짓고 내러티브에 대해서 이야기도 했는데, 아마 여기 감독님이 생각하신 것은 영화적인 내러티브구조, 영화적 서사구조를 염두에 두고 계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꼭 영화적인 서사구조가 아니더라도 초현실적인 서사구조, 시적인 서사구조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초현실주의 작품도 마그리트의 작품처럼 이상한 것들을 같이 붙여놓고 이상하고 기묘한 시적인 얘기를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오늘은 이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과거의 좋은 전통들이나 그런 문제들을 좀 이 시대에 다시 한번 부활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북부르네상스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사실 우리도 그 당시에 단원 김홍도의 작품도 있고 기록화 같은 것을 보면 기가 막히지 않나요? 행렬도 같은 걸 보면 등장인물이 몇 천 명이 등장하는데 전부다 얘기를 풀어간다는 거죠. 중국에서도 전통 두루마리 그림을 보면,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쭉 가면서 등장인물이 계속 나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전부 다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는 전통이 있죠. 그런 것들을 새롭게 풀어가는 방법들도 미술계에 많았으면 좋겠고요. 또 한편으로는 서사구조를 깨는 탈 서사의 논의들, 김 선생님처럼 서사구조를 벗어나서 물질적으로 가자는 작품들을 다음에 한 번 더 기획을 하시면, 오히려 탈 서사구조를 통해서 서사구조를 드러낼 수 있는 개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도 이번에 전시를 관심 있고 재미있게 봤는데 다음번에 하실 때는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들을 종합하여 전시를 하시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김범수 : 저도 뭐 다들 말씀을 잘 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김준기 : 예, 오랫동안 시간을 같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녹취를 잘 풀어서 웹에도 올리고 나중에 자료집도 만들 겁니다. 다른 토론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도 나중에 유익한 자료가 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