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부산미술 다시 읽기 18 에필로그 : 과거의 역사를 미래의 비전으로 재생산하기
critic & column/부산미술 다시 읽기 | 2008/08/05 16:16

김준기의 부산미술 다시 읽기 18 : 에필로그
과거의 역사를 미래의 비전으로 재생산하기

처음 이 꼭지 제안을 받았을 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수십년간 부산미술계를 지켜온 쟁쟁한 선배들이 있는데, 2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젊은 큐레이터가 새로 듣고 보고 깨치며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 여간 두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옆에서 도움말을 준 이가 있다. 박천남 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다. 오랫동안 필자를 지켜봤던 그는 비평적인 인물학의 관점으로 부산미술을 새롭게 읽는 일에 뛰어들 것을 권유했다. 이상수 큐레이터도 힘을 실어 주었다. 주요작가 리스트를 놓고 일일이 조언해주었다.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스승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나는 많은 스승을 새로 만났다. 저변의 맥락을 짚어주거나 사실관계의 오류를 바로잡아준 옥영식 미술평론가는 필자로 하여금 매회 한층 긴장 속에서 글쓰기를 지속하게 했다. 주정이 작가와 신태범 문학인 등의 칼럼은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역사의 면면을 헤아리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는 지난 수십년간 부산화단을 지켜며 쌓아온 경륜으로 필자의 한걸음 한걸음에 격려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부산시립미술관 조일상 관장의 관심과 조언은 든든한 뒷심을 주었다. 김귀교, 이진철 등 미술관 학예연구실 식구들도 이 연재의 숨은 공로자들이다.

김창섭의 책 ‘미의 사제들 : 부산의 미술인과 그 주변’(태화출판사, 1972)은 부산미술을 증거하는 생생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잊혀져 가는 부산근대미술계의 구석구석에 대해 섬세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일반적인 작품론이 아니라 미술계 전반에 관한 인물학적 관점에서 부산미술계 전반을 다루고 있었다. 작품을 중심으로 신화화하기 쉬운 미술사 기술에 비해 인물학적 관점의 기술로 당시의 미술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은 서양화가 22인을 비롯해 15인의 조각가, 동양화가 서예전각가, 평론가를 소개한 후, 애호가 23인을 담고 있다. 특히 애호가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데, 거의 문화운동가 수준에서 갤러리스트로 활동했던 필자가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부산의 미술생태를 이루는 저변의 맥락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평생 동안 모은 미술자료를 부산시립미술관에 기증해서 부산미술정보센터를 만들게 한 이용길 기증 자료들은 그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보물이다. 전후 부산미술계를 이끌어온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낱낱의 증거물들이 한 데 모여 있기 때문이다. 1938년에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해방 후 부산에서 학교를 다닌 그는 김종식과 임호의 제자로서 청소년기 때부터 전시장을 드나들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방대한 자료들은 부산의 미술사를 사실에 기초한 학문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밑거름을 이룬다.
그 풍부한 사료를 한 사람이 감당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자료들은 그냥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체계적인 관점아래 일목요연하게 분류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 가치가 높다. 그가 펴낸 ‘부산미술사료’(부산발전연구원, 2006)는 10년 단위로 부산미술계의 흐름을 정리하고 있다. ‘부산미술일지(I) 1928-1979'(1995)는 일제시대 이후의 거의 모든 정보들을 기록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전시를 열었는지, 글을 썼는지, 한해에 몇 회의 전시가 열렸고 누가 차가했는지 등을 헤아려 볼 수 있다.

연재를 마무리하는 마당에 짧게라도 꼭 언급해 두어야할 작가가 있다. 근대화단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서성찬을 다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는 1906년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부산 근대화단을 견인한 눈부신 활동을 펼쳤다. 1958년에 50대 초반의 한창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많은 아쉬움을 남긴 작가다. 일제강점기의 미술가 그룹인 춘광회 이래 부산작가들의 자생성을 목표로 한 토벽회에 이르기까지 그가 남긴 족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는 일생의 단 한번 개인전을 열었다. 1956년 미국공보원 전시장에서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산미전과 조선미술전람회 등에 여러 차례 입선과 특선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해방 후에는 부산미술전람회 심사위원, 경남미협 회장 등을 맡았으며, 경남여고 강사를 지냈으고, 1957년에 부산시문화상을 받았다.
작품 자료가 적어서 본격적인 작품세계의 조명이 어렵기는 하지만, 서성찬은 부산미술계가 잊지 말고 챙겨야할 중요한 작가이다. 특히 정물화에 매우 각별한 재능을 보였다. 전근대적인 기명절지의 가치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소화해낸 그의 정물화들은 초기의 부산화단에 있어서 매우 수준높은 기량을 선보인 작품으로 남아있다. 가면과 안경, 각종 야채들이 늘어져 있는 1956년작 ‘가면 있는 정물’(부산시립미술관 소장)은 차분한 색감과 필선에 안정적인 구도로 일관하는 여느 정물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힘을 가진 작품이다.

부산미술계에 추상회화의 씨앗을 뿌린 하인두의 활약은 당대의 미술흐름을 제대로 읽고 새로운 실험을 모색한 매우 진취적인 것이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가교역할을 했던 하인두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미술운동의 조직가로서 뛰어난 활동을 펼친 지식인이었다. 경남과 부산으로 갈린 지금과 달리 경남의 도청소재지였던 부산은 마산과 통영, 진주 등 경남의 도시들과 한 묶음으로 네트워크 영역에 있었다는 점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문신이다. 마산 사람인 그는 회화와 조각 분야에서 부산미술의 역사와 동행한 예술가로서 부산미술계의 역사와 동행했다.
윤재 이규옥을 미처 못 다룬 것은 ‘지면관계상’이라는 핑계로 얼버무릴만한 문제가 아니지만, 여하튼 다른 기회를 찾아서 조망해야할 작가이다. 수채화와 조각은 이번 연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 받은 분야이다. 예술의 문제를 매체의 문제로 귀속시켜 배려차원에서 안배하는 관행에 찬성하지 않는 필자의 시각은 결과론적으로는 역설적인 역차별을 하고 만 셈이다. 수채화와 분야의 정상복과 황규응, 조각 분야의 염태진과 심봉섭 등은 조금만 더 여건이 허락했다면 도전해 보았어야할 작가들이다.
본격적인 추상미술의 단계를 펼친 김동규와 김홍석은 그 작품의 면면을 헤아리고 앞뒤 맥락을 검토하기까지 역사적 시간거리가 조금 더 필요한 작가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원이나 전혁림, 최민식에 이르기까지 지난 반세기동안 부산미술계를 지켜온 원로작가들에 대한 미술사적인 검토와 비평적인 조망 또한 한편으로는 시급한 문제이다. 이들에 대한 구술 채록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사료를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역사는 과거와 대화하는 동시대의 상상력이다. 앞으로 그 어떤 잊혀진 역사가 새로운 시대와 만나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 낼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허민과 김원명 등과 같이 그동안 미술계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잊혀진 작가를 찾아 쓴 꼭지가 상대적으로 더 큰 반향을 얻었던 것처럼 새로운 역사가 우리미술계를 더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한국사진계의 선구자 임응식을 미술계의 일원으로 읽어본 것은 미술의 범주를 회화와 조각 등으로 한정하는 데에서 오는 한계를 벗어나 사진과 영상, 설치 등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시각예술 범주로 확장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임응식의 예술적 동지인 정인성(1911-1996)을 비롯해 원로 작가 최민식 등은 부산의 대표적인 시각예술관련 예술가로 기록하고 기념할 만한 작가이다.
김종근과 김청정, 이용길 등 최근까지도 당대의 역사를 만들어온 원로들은 부산미술생태를 헤아리는 데 더없이 귀한 증언들을 해줄 것이다. 역사는 항상 새로운 상상과 해석을 통해서 그 풍부한 가치를 드러내는데, 그 젖줄을 이루는 것이 사람의 말이며 글이다. 아직 다하지 못한 말과 남기지 못한 글들을 담아내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산미술을 다시 읽기의 최대 과제는 과거의 역사를 미래의 비전으로 재생산하는 일이다. 우선 당면한 일은 작고 미술인들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하는 일이다. 그들의 사후 주기를 따져 기념하는 일에 공공미술관을 비롯한 미술계 전체가 힘과 뜻을 모아야 한다. 2009년에는 서성찬 50주기를 비롯해 김원명 15주기, 양달석 25주기, 김윤민과 오영재 10주기, 임호 35주기를 맞이한다. 2010년에는 김강석 35주기, 김남배 30주기, 이규옥 10주기, 박생광 25주기가 있다. 2011년에는 김동규 10주기, 우신출 20주기, 임응식 10주기, 2012년에는 김홍석 10주기, 이석우 25주기 등 굵직한 작가들의 세계를 기념할 수 있는 계기가 해마다 몇 건씩 다가온다.
부산미술을 다시 읽기는 새로운 문화생산을 위한 밑작업이다. 올해로 20주기를 맞은 김종식 기념사업에 관한 얘기가 미술계의 이슈로 부상했다. 부산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김종식 20주기가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했던 점은 이래저래 부산미술계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한다. 다소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부산시립미술관과 화랑과 학계가 소장품 기획전과 학술세미나 등을 준비하고 있어 작고작가를 기념하는 데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나저나 내후년 김강석 35주기에는 그의 비평들이 단행본 출판물로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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