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훈 리뷰 : 개체와 구조체의 순환구조

critic & column | 2006/05/24 05:16



개체와 구조체의 순환구조

최태훈 : GALAXY, 김종영미술관, 2006.5.12-7.9

예술가에 대한 비평적 관점, 특히 조소예술가에 대한 관심은 작가의 개념으로부터 나오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체험은 지난한 수공작업을 거치는 작가의 육체적 행위와 그로부터 만들어진 물질의 가시적 존재로부터 나온다. 요즘처럼 개념미술이 너무나 교묘하고 세련되게 상품의 형태로 둔갑하는 시대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개념이술은 20세기 미술시장의 음습한 시도, 그러니까 모든 예술적 실천의 결과물들을 예술적인 상품으로 만들고자 했던 흐름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던가. 뒤샹의 변기는 오브제 그 자체로 전설이 되어 버렸다. 예술상품에 대한 저항형식으로부터 출발한 레디메이드 오브제 개념이 동물을 썰어서 포르말린 수족관에 담그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업에 이르러서는 수억의 화폐가치로 치환하는 가치전도의 시대이다. 리처드 롱의 돌무더기마저도 미술관에 고이 모셔지는 상황이고 보면, 뒤샹 이래 대부분의 개념적인 오브제들은 기념비적인 물질 덩어리로 변해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의 사물화를 벗어나려는 일체의 시도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 보다는 개념과 조형이라는 양극점에 서서 양자의 공존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태훈과 같이 지난한 노동과정을 통해서 작품을 생산해내는 예술가 앞에서 우리는 개념작업과 조형작업의 이분법을 넘어서 ‘인간의 행위를 증거하는 물질’로서의 조각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숙려해야 할 것이다. 한 토막 한 토막의 쇳덩어리를 용접하여 거대한 구조체를 만들어 나가는 그의 예술노동은 (가짜)개념미술에 비해 그 얼마나 리얼한가. 나는 예술노동 자체의 진정성이 그의 예술생산품 만큼이나 소중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용접작업 <블랙홀>은 개체로부터 군집으로, 그리고 다시 개체로 관객의 관심을 집중하고 분산하는 작업이다. 그는 작은 쇳덩이를 붙여서 구조체를 만듦으로써 개체로부터 구조체로 나아갔지만 관객의 궁극적인 시선은 구조체 속에 박혀있는 개체들의 표정에 몰입한다. 다시 말해서 개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구조체에 대한 관심은 다시 낱개의 금속 조각으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오로라>는 비정형의 물질 덩어리처럼 보이는 유연한 곡선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5미터 길이의 거대한 구조체로서, 내부의 조명으로 인해 공간을 휘감아 도는 구조체의 견고한 물질성과 더불어 빛의 요소를 공존시키고 있다. 나아가 이 작품은 이것은 공간을 유영하는 빛의 요소로 이루어진 오로라를 입체구조체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물질적 구조체로서 존재를 현현하는 조각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대립쌍의 순환관계는 빛과 금속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주는 우리에게 암흑 속에 존재하는 빛의 요소로 다가오며, 우리의 시지각이 허락하는 한계에 의해 1차원의 평면으로만 인식된다. 거대한 철판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뚫고 그 속에 조명을 설치한 <은하수>에서 반짝이는 빛으로 보이는 별들은 실재의 별과 허공의 관계, 즉 물질과 빗물질의 관계를 뒤집어 놓고 있다. ‘물질로 존재하는 별과 비물질의 암흑’의 관계가 ‘빛과 철판’의 관계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장 바깥에 놓여진 <갤럭시>는 짤막한 스테인리스 스틸 봉을 이어 붙여 만든 거대한 원반이다. 전명의 조명은 뒤편 벽면에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물질과 그림자의 공존은 여느 작품에서 보이는 밝음과 어두움, 개체와 구조체 사이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다르면서도 같고 둘이면서 하나이다.

김준기(미술비평)



* 이 글은 다음주 주간동아에 실릴 원고입니다.
2006/05/24 05:16 2006/05/24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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