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수와 현장미술을 다시 생각함 :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서평
critic & column | 2006/05/22 05:31
최병수와 현장미술을 다시 생각함
목수 김진송이 화가 최병수에게 말을 걸었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는 평론가 출신의 목수 김진송이 목수 출신의 예술가 최병수와 나눈 대화를 토대로 한 평전이다. 현장미술가의 격정과 지식인목수의 통찰이 만들어낸 귀한 책이다. 김진송은 10년 전에 최병수와 대담을 나누면서 그 내용을 죄다 녹음해 두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책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은 최병수가 나이 마흔 중반에 이르른 근1년의 일이다. 이 책은 최병수를 통해서 지난 20년간 쌓아온 그의 삶과 예술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시대정신과 현대미술의 변동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목해보아야 할 개념이 있는데, ‘현장미술‘이 그것이다. 1980년대라는 독특한 시공간은 우리미술계에 두 가지 미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현장미술이고 다른 하나는 전시장미술이다. 현장미술은 미술현장과는 다른 말이다. 현장미술은 ‘현장 속의 미술(insitu art)‘을 말하지만, 미술현장은 ’미술의 장(field of art)‘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자가 생생한 체험으로서의 삶의 현장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미술의 권력과 제도와 개념이 작동하는 시스템으로서의 가시적 혹은 비가시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장미술과 전시장미술의 구분은 미술작품이 쓰임을 당하는 공간이 어느 곳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현장미술이 전시장 바깥의 공간에서 장소와 상황의 맥락 속에서 생산과 향유를 한몸에 담고 있는 미술이라면, 전시장미술은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심미성을 근간으로 하는 감성적 체험으로써의 미술이다. 당시의 사회적 격동은 미술(가)로 하여금 운동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했는데, 그것은 미술 자체의 변동을 위한 운동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변혁을 지향하는 운동과 함께하는 미술로의 전환을 말한다. 체계적 영역분할에 따른 근대적 패러다임의 분화과정은 미술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공간과 같은 미술(만)의 장을 중심으로 작동하도록 했다. 탈근대적 맥락의 미술은 점점 이러한 삶의 영역과 미술의 영역의 구분을 통합의 정치학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최병수는 딱20년 전인 1986년에 정릉벽화사건으로 인해 화가의 길에 입문한 이후에 대형걸개 <한열이를 살려내라>(1987)를 시작으로 수많은 현장에서 활동해온 예술가이다. 그는 대학가와 노동현장의 이슈를 담아내던 80년대를 거쳐 생태적 가치가 집결하는 현장에 뛰어들며 저 팍팍한 90년대를 헤쳐 나왔으며, 2000년 이후에는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예술행동을 통해서 행동주의 예술가로서 살아왔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불러주지도 않았지만, 그는 미술로서 한 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한국미술계도 나름대로 많이 변해서 공공미술이니 사이트-스페서픽이니 프로젝트니 하는 말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병수가 걸어온 바깥미술의 가시밭길을 곰곰이 새겨볼 일이다. 많이 힘겨워진 몸을 다스리며 여수에 머물고 있는 최병수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게임이 아니야’라고 말이다.
김준기(미술비평)
목수 김진송이 화가 최병수에게 말을 걸었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는 평론가 출신의 목수 김진송이 목수 출신의 예술가 최병수와 나눈 대화를 토대로 한 평전이다. 현장미술가의 격정과 지식인목수의 통찰이 만들어낸 귀한 책이다. 김진송은 10년 전에 최병수와 대담을 나누면서 그 내용을 죄다 녹음해 두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책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은 최병수가 나이 마흔 중반에 이르른 근1년의 일이다. 이 책은 최병수를 통해서 지난 20년간 쌓아온 그의 삶과 예술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시대정신과 현대미술의 변동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목해보아야 할 개념이 있는데, ‘현장미술‘이 그것이다. 1980년대라는 독특한 시공간은 우리미술계에 두 가지 미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현장미술이고 다른 하나는 전시장미술이다. 현장미술은 미술현장과는 다른 말이다. 현장미술은 ‘현장 속의 미술(insitu art)‘을 말하지만, 미술현장은 ’미술의 장(field of art)‘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전자가 생생한 체험으로서의 삶의 현장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미술의 권력과 제도와 개념이 작동하는 시스템으로서의 가시적 혹은 비가시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장미술과 전시장미술의 구분은 미술작품이 쓰임을 당하는 공간이 어느 곳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현장미술이 전시장 바깥의 공간에서 장소와 상황의 맥락 속에서 생산과 향유를 한몸에 담고 있는 미술이라면, 전시장미술은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심미성을 근간으로 하는 감성적 체험으로써의 미술이다. 당시의 사회적 격동은 미술(가)로 하여금 운동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했는데, 그것은 미술 자체의 변동을 위한 운동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변혁을 지향하는 운동과 함께하는 미술로의 전환을 말한다. 체계적 영역분할에 따른 근대적 패러다임의 분화과정은 미술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공간과 같은 미술(만)의 장을 중심으로 작동하도록 했다. 탈근대적 맥락의 미술은 점점 이러한 삶의 영역과 미술의 영역의 구분을 통합의 정치학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최병수는 딱20년 전인 1986년에 정릉벽화사건으로 인해 화가의 길에 입문한 이후에 대형걸개 <한열이를 살려내라>(1987)를 시작으로 수많은 현장에서 활동해온 예술가이다. 그는 대학가와 노동현장의 이슈를 담아내던 80년대를 거쳐 생태적 가치가 집결하는 현장에 뛰어들며 저 팍팍한 90년대를 헤쳐 나왔으며, 2000년 이후에는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예술행동을 통해서 행동주의 예술가로서 살아왔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불러주지도 않았지만, 그는 미술로서 한 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한국미술계도 나름대로 많이 변해서 공공미술이니 사이트-스페서픽이니 프로젝트니 하는 말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병수가 걸어온 바깥미술의 가시밭길을 곰곰이 새겨볼 일이다. 많이 힘겨워진 몸을 다스리며 여수에 머물고 있는 최병수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게임이 아니야’라고 말이다.
김준기(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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