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비한의 지속가능한 이종교배
critic & column | 2006/05/17 08:22
데비한의 지속가능한 이종교배
데비한은 우리사회의 식민화한 미적 규범을 해체하고 변형함으로써 후기산업사회의 소비문화 아래서 점점 기형적으로 구조화하고 있는 지배적인 미의식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 2004년 이래 한국에 머물면서 작업하고 있는 그는 비너스라는 ‘이상화한 이상한 미적 기준’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왔다. 그것은 한국사회에 고착화한 기형적인 규범들을 비판하는 작업이자 문화식민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업이다. 지우개똥을 붙여 석고뎃생을 완성해내는 데서 출발한 이 작업은 청자비너스를 거쳐 한국여성의 몸과 비너스두상을 결합하는 합성사진 작업에까지 이르렀다. 데비한이 이렇듯 비너스의 상징가치에 대해 집요하게 테러를 가해온 것은 코메리칸의 눈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10대 초반에 한국 땅을 떠나 이민 1.5세대의 정체성을 가지고 성장했다. 그는 유럽의 변방에서 글로벌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중심으로 변모한 아메리카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적 혼성을 체험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의 정체는 환경과의 영향관계 속에서 형성된 한 개체의 전모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비판적인 시각의 예술가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데비한을 이주민의 전형적인 요소를 가진 재미교포 작가 그 자체로만 파악하는 것은 다소간 무리한 일이다. 이주와 정체성이라는 문제틀로만 그를 파악한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구조를 뛰어넘는 예술가의 창의력을 발견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주민 출신의 미술가로서 한국 사회에 몇 년간 머물면서 자신의 문화적 체험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그에게 있는 한국에서의 예술가 활동은 한국사회를 체험하는 일 그자체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과정 자체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체험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예술가의 시각으로 새롭게 한국사회를 체험하면서 우리사회의 의식과 무의식 수준에 광범위하게 걸쳐있는 미적 규범들에 대서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말하자면 적어도 절반 가까이 국외론자의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인지적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견고하게 구조화한 상징가치를 해체하고 재구조화하는 데비한의 문제의식은 초기작에 해당하는 오브제 설치 작업 <콘돔 시리즈> 이래 최근의 <미인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맥락 아래서 꾸준히 이어져왔다.
<콘돔 시리즈>(2001)는 섹스의 부산물인 쓰레기 콘돔을 다양한 물질로 옮겨놓음으로써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윤리의식 사이의 괴리감을 가시화하는 작업들이다. 그는 혐오스러운 오브제로 인식되는 콘돔을 브론즈나 은, 유리, 젤리 등으로 떠냈다. 욕망의 담지체로서의 신체와 그 행위의 부산물을 터부시하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으로써 이성중심주의에 근거한 육체와 욕망에 대한 가식적인 이중구조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육체의 숙명을 상징하는 콘돔의 메타포는 콘돔으로 만든 팬티 오브제 설치 작업(2003)로 이어졌다. 기성 오브제를 전혀 다른 맥락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은 뉴욕의 거리에서 채취한 개똥으로 음식물을 만든 작업 (1998)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뉴욕의 불량식품들이 내뿜는 시각적인 유혹을 개똥냄새와 공존하게 한다. 음식물과 배설물을 하나로 엮어냄으로써 극단적인 이분법을 불이(不二)의 것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들어가는 것과 나오는 것이 하나의 원을 이룬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데비한의 오브제를 통해서 섭취와 배설, 미와 추, 선과 악 등의 대립은 초월적 가치 아래 통합을 이룬다. 초콜렛으로 반든 변기인 와 핫도그(Hot dog)와 콘도그(Corn Dog)로 이루어진 또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오인체계를 형성하는 이분법들을 해체하는 개념적 오브제들이다. 미장원에서 나오는 쓰레기 머리카락으로 막대기 사탕을 만든 는 머리카락으로서의 물질의 속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신체로부터 단절되는 순간부터 쓰레기로 전락하는 다양한 색채의 머리카락을 이용한 페티시(fetish) 전략이다.
동시대의 미의식은 탈색된 미적 범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정의되고 변형된다. 그 가운데서도 식민화 한 감성의 생명력은 미학적 변태를 거듭하며 새로운 층위의 변주를 재생산해낸다. 캐논과 변주곡의 완벽한 조화가 문화식민지의 자양분 속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되어온 바, 우리는 그것은 거의 무의식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체내 깊숙이 각인하고 있다. 한국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래 지난 몇 년간 데비한의 작업에 실마리를 제공한 비너스 연작들도 ‘규범과 변주를 넘어서는 하이브리드’라는 탈이분법적인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미의 조건> 연작들(2004-2005)은 갖가지 형태로 변형된 청자비너스들이다. 그의 청자비너스는 서구의 고전적인 미의 규범으로 자리잡은 비너스의 상징가치를 해체하고 재맥락화하는 작업이다. 데비한은 한국미의 규범인 청자와 서구적인 미의 규범인 비너스를 결합하여 하이브리드 미인을 만든다. 그것은 혼성을 통한 오래된 규범의 해체이자 다양한 가치의 재결합이다. <적자생존>(2006)은 비너스 두상을 부분적으로 변형한 디지털 합성작업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해낸 비너스의 얼굴은 더 이상 고정된 얼짱각도의 비너스가 아니다. 그가 포착해낸 평면 이미지의 비너스 얼굴은 미적 규범에 변형과 위해를 가하기 위한 좋은 재료이다. 그는 마치 성형수술을 위해 얼굴 위에 드로잉을 하듯 선묘를 남기기도 하고, 이상화한 그리스적 리얼리즘의 높은 콧대를 갸름한 곡선으로 깎아내기도 한다.
비너스 두상으로부터 출발한 데비한의 전복적인 혼성은 한국여성의 몸의 문제로까지 확장했다. 최근작 <일상의 비너스>(2006) 연작은 한국여성의 몸과 비너스의 두상을 결합한 합성사진 작업이다. 한국적인 몸매와 서구의 미적 전형을 결합한 이 작업은 언어적으로 매개되는 신체와 의식의 괴리를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냄으로써 ‘언어와 개념의 시각화’라는 비평적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나아가 이 작업은 한국 여성누드와 비너스 두상의 결합이라는 서구와 한국, 서구적인 미의식과 한국적인 신체구조 사이의 괴리를 즉물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우리 안에 숨어있는 미적 감성의 오리엔탈리즘을 시각적으로 구조화하고 있다. ‘미인80’, ‘미인89’ 등과 같은 <미인 시리즈>(2006)들은 80세, 89세에 이른 고령의 할머니들을 모델로 캐스팅해서 광고사진과 같은 화려한 연출을 거쳐 주름진 얼굴의 노령의 여성들을 세련된 메이크업과 감각적인 카메라 샷, 그리고 배경의 화려한 형광색을 동원해 현대소비문화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하게 한다. 평범한 시골 노인정의 할머니들을 광고모델로 변모시킨 데비한은 표피적인 시각효과에 의해 재단되는 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대략 60년 전 즈음에는 탄력있는 피부를 가졌을 법한 할머니들에게 화장품 모델 역할을 맡김으로써 흐르는 세월에 따라 유한성을 가진 몸의 미감과 그것의 상대적 가치를 역설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무명의 비전문가 모델들과 협업한 <식(食) & 색(色)> 연작(2005)은 식 재료를 가지고 젊은 여성들을 장식한 연출사진 작업이다. 그는 갖가지 색과 형태를 가지고 있는 파,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등의 음식재료들을 헤어스타일, 목걸이, 립스틱과 스타킹 등의 패션 관련 아이콘으로 대체한다. 이들 음식물 오브제와 결합한 모델들은 ‘고귀한 향기, 미끈한 경치, 부드러운 유혹, 상큼한 미소, 에로틱 레드’ 등과 같은 감각적인 언어들의 담지체로 재탄생한다. 식재료와 모델을 매개하는 세련된 패션관련 오브제들의 목록은 ‘마늘 목걸이, 참기름 스타킹, 참깨 메이크업, 쪽파 머리, 고춧가루 립스틱’ 등이다. 패션과 음식, 패션오브제와 음식재료 들의 유사성을 절묘하게 엮어낸 데비한은 궁극적으로는 보는 것과 먹는 것 사이의 상동성을 끄집어냄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첨예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재확인하게 한다. 그는 식과 색의 욕망을 담고 있는 광고사진의 현실을 예술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오늘날 비판적 성찰의 기재로서의 역할을 점점 상실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데비한은 백인남성주의 패권이 지배하는 아메리카에서의 성장과정에서 그들(만)의 문화다원주의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작가이다. 그가 겪어온 아메리카의 문화적 정체성은 철저하게 유럽이라는 원전을 모방해야만 하는 신대륙의 정신적 결핍과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배태한 정신적 파산이 결합한 아메리칸 하이브리드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 데비한이 기성의 상징가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것은 아메리카의 이종교배적인 혼성의 그림자를 아시아의 동쪽 한국 땅에서 재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있어 고전과 현대, 서구와 비서구, 미적인 것과 추한 것, 주류와 비주류 등의 이분법들은 고정불변의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예술적 행위를 통해 교배가능한 가변적인 대립쌍들이다.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을 거쳐 온 예술가로서 구조화된 문화적 억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는가 하는 문제 또한 그의 예술을 바라보는 유력한 비평적 관점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고정된 규범과 그 규범을 변주하는 변종들보다는 유동하는 가치에 의해 미끄러지는 의미의 가변성을 스스로 창출하는 예술가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혼성의 아이콘을 쏟아내는 데비한이라는 예술가 주체를 통해서 중심과 주변, 패권과 탈식민, 이주와 정주 사이에서 쉼없이 변모하는 문화적 정체성, 지속가능한 이종교배를 진지하게 성찰해볼 일이다.
김준기(미술비평)
데비한은 우리사회의 식민화한 미적 규범을 해체하고 변형함으로써 후기산업사회의 소비문화 아래서 점점 기형적으로 구조화하고 있는 지배적인 미의식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 2004년 이래 한국에 머물면서 작업하고 있는 그는 비너스라는 ‘이상화한 이상한 미적 기준’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왔다. 그것은 한국사회에 고착화한 기형적인 규범들을 비판하는 작업이자 문화식민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업이다. 지우개똥을 붙여 석고뎃생을 완성해내는 데서 출발한 이 작업은 청자비너스를 거쳐 한국여성의 몸과 비너스두상을 결합하는 합성사진 작업에까지 이르렀다. 데비한이 이렇듯 비너스의 상징가치에 대해 집요하게 테러를 가해온 것은 코메리칸의 눈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10대 초반에 한국 땅을 떠나 이민 1.5세대의 정체성을 가지고 성장했다. 그는 유럽의 변방에서 글로벌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중심으로 변모한 아메리카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적 혼성을 체험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의 정체는 환경과의 영향관계 속에서 형성된 한 개체의 전모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비판적인 시각의 예술가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데비한을 이주민의 전형적인 요소를 가진 재미교포 작가 그 자체로만 파악하는 것은 다소간 무리한 일이다. 이주와 정체성이라는 문제틀로만 그를 파악한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구조를 뛰어넘는 예술가의 창의력을 발견하는 일을 포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주민 출신의 미술가로서 한국 사회에 몇 년간 머물면서 자신의 문화적 체험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그에게 있는 한국에서의 예술가 활동은 한국사회를 체험하는 일 그자체이다. 그는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과정 자체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체험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예술가의 시각으로 새롭게 한국사회를 체험하면서 우리사회의 의식과 무의식 수준에 광범위하게 걸쳐있는 미적 규범들에 대서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말하자면 적어도 절반 가까이 국외론자의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인지적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견고하게 구조화한 상징가치를 해체하고 재구조화하는 데비한의 문제의식은 초기작에 해당하는 오브제 설치 작업 <콘돔 시리즈> 이래 최근의 <미인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맥락 아래서 꾸준히 이어져왔다.
<콘돔 시리즈>(2001)는 섹스의 부산물인 쓰레기 콘돔을 다양한 물질로 옮겨놓음으로써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과 윤리의식 사이의 괴리감을 가시화하는 작업들이다. 그는 혐오스러운 오브제로 인식되는 콘돔을 브론즈나 은, 유리, 젤리 등으로 떠냈다. 욕망의 담지체로서의 신체와 그 행위의 부산물을 터부시하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으로써 이성중심주의에 근거한 육체와 욕망에 대한 가식적인 이중구조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육체의 숙명을 상징하는 콘돔의 메타포는 콘돔으로 만든 팬티 오브제 설치 작업
동시대의 미의식은 탈색된 미적 범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정의되고 변형된다. 그 가운데서도 식민화 한 감성의 생명력은 미학적 변태를 거듭하며 새로운 층위의 변주를 재생산해낸다. 캐논과 변주곡의 완벽한 조화가 문화식민지의 자양분 속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되어온 바, 우리는 그것은 거의 무의식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체내 깊숙이 각인하고 있다. 한국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래 지난 몇 년간 데비한의 작업에 실마리를 제공한 비너스 연작들도 ‘규범과 변주를 넘어서는 하이브리드’라는 탈이분법적인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미의 조건> 연작들(2004-2005)은 갖가지 형태로 변형된 청자비너스들이다. 그의 청자비너스는 서구의 고전적인 미의 규범으로 자리잡은 비너스의 상징가치를 해체하고 재맥락화하는 작업이다. 데비한은 한국미의 규범인 청자와 서구적인 미의 규범인 비너스를 결합하여 하이브리드 미인을 만든다. 그것은 혼성을 통한 오래된 규범의 해체이자 다양한 가치의 재결합이다. <적자생존>(2006)은 비너스 두상을 부분적으로 변형한 디지털 합성작업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해낸 비너스의 얼굴은 더 이상 고정된 얼짱각도의 비너스가 아니다. 그가 포착해낸 평면 이미지의 비너스 얼굴은 미적 규범에 변형과 위해를 가하기 위한 좋은 재료이다. 그는 마치 성형수술을 위해 얼굴 위에 드로잉을 하듯 선묘를 남기기도 하고, 이상화한 그리스적 리얼리즘의 높은 콧대를 갸름한 곡선으로 깎아내기도 한다.
비너스 두상으로부터 출발한 데비한의 전복적인 혼성은 한국여성의 몸의 문제로까지 확장했다. 최근작 <일상의 비너스>(2006) 연작은 한국여성의 몸과 비너스의 두상을 결합한 합성사진 작업이다. 한국적인 몸매와 서구의 미적 전형을 결합한 이 작업은 언어적으로 매개되는 신체와 의식의 괴리를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냄으로써 ‘언어와 개념의 시각화’라는 비평적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나아가 이 작업은 한국 여성누드와 비너스 두상의 결합이라는 서구와 한국, 서구적인 미의식과 한국적인 신체구조 사이의 괴리를 즉물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우리 안에 숨어있는 미적 감성의 오리엔탈리즘을 시각적으로 구조화하고 있다. ‘미인80’, ‘미인89’ 등과 같은 <미인 시리즈>(2006)들은 80세, 89세에 이른 고령의 할머니들을 모델로 캐스팅해서 광고사진과 같은 화려한 연출을 거쳐 주름진 얼굴의 노령의 여성들을 세련된 메이크업과 감각적인 카메라 샷, 그리고 배경의 화려한 형광색을 동원해 현대소비문화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하게 한다. 평범한 시골 노인정의 할머니들을 광고모델로 변모시킨 데비한은 표피적인 시각효과에 의해 재단되는 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대략 60년 전 즈음에는 탄력있는 피부를 가졌을 법한 할머니들에게 화장품 모델 역할을 맡김으로써 흐르는 세월에 따라 유한성을 가진 몸의 미감과 그것의 상대적 가치를 역설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무명의 비전문가 모델들과 협업한 <식(食) & 색(色)> 연작(2005)은 식 재료를 가지고 젊은 여성들을 장식한 연출사진 작업이다. 그는 갖가지 색과 형태를 가지고 있는 파,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등의 음식재료들을 헤어스타일, 목걸이, 립스틱과 스타킹 등의 패션 관련 아이콘으로 대체한다. 이들 음식물 오브제와 결합한 모델들은 ‘고귀한 향기, 미끈한 경치, 부드러운 유혹, 상큼한 미소, 에로틱 레드’ 등과 같은 감각적인 언어들의 담지체로 재탄생한다. 식재료와 모델을 매개하는 세련된 패션관련 오브제들의 목록은 ‘마늘 목걸이, 참기름 스타킹, 참깨 메이크업, 쪽파 머리, 고춧가루 립스틱’ 등이다. 패션과 음식, 패션오브제와 음식재료 들의 유사성을 절묘하게 엮어낸 데비한은 궁극적으로는 보는 것과 먹는 것 사이의 상동성을 끄집어냄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첨예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재확인하게 한다. 그는 식과 색의 욕망을 담고 있는 광고사진의 현실을 예술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오늘날 비판적 성찰의 기재로서의 역할을 점점 상실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데비한은 백인남성주의 패권이 지배하는 아메리카에서의 성장과정에서 그들(만)의 문화다원주의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작가이다. 그가 겪어온 아메리카의 문화적 정체성은 철저하게 유럽이라는 원전을 모방해야만 하는 신대륙의 정신적 결핍과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배태한 정신적 파산이 결합한 아메리칸 하이브리드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 데비한이 기성의 상징가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것은 아메리카의 이종교배적인 혼성의 그림자를 아시아의 동쪽 한국 땅에서 재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있어 고전과 현대, 서구와 비서구, 미적인 것과 추한 것, 주류와 비주류 등의 이분법들은 고정불변의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예술적 행위를 통해 교배가능한 가변적인 대립쌍들이다.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을 거쳐 온 예술가로서 구조화된 문화적 억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는가 하는 문제 또한 그의 예술을 바라보는 유력한 비평적 관점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고정된 규범과 그 규범을 변주하는 변종들보다는 유동하는 가치에 의해 미끄러지는 의미의 가변성을 스스로 창출하는 예술가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혼성의 아이콘을 쏟아내는 데비한이라는 예술가 주체를 통해서 중심과 주변, 패권과 탈식민, 이주와 정주 사이에서 쉼없이 변모하는 문화적 정체성, 지속가능한 이종교배를 진지하게 성찰해볼 일이다.
김준기(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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