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 씨발놈아!
artpd clip | 2005/10/18 20:56

위의 사진은 키스 헤링의 작품입니다. 그 유명하다고 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오케스트라 공연장이 뒤에 보이는 곳에서 파란색과 빨간색의 두 사람이 서로 몸통을 가로지르는 주먹을 내지르고 있습니다. 요즘 미술계 내에서 파란색과 빨간색이 선명하게 갈리는 상황을 종종 목격합니다. 구본주를 자살한 무직자로 만드는 삼성화재, 김인규를 음란교사로 단죄한 법원, 그리고 안창홍 작가를 오밤중에 거리로 내몬 부산시립미술관장.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오늘 한 선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 사건 어떻게 보세요?"
"엥? 사건은 무슨 사건?"
"아니 아직 모르셨어요. 씨발놈아 쓰리고 사건?"
"......"
"바쁘긴 바쁘신 모양이군요......"
아직 못보신 분들 위해서 퍼옮깁니다. 좁은 미술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것도 이런 말도 안되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바로 잡아야할지 그 방법이 잘 보이지 않고 있다니...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간만에 펌질 합니다. 저로서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중입니다. 아래의 글은 "야이, 씨발놈아! "라는 제목의 긴 글입니다. 미술인회의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길다고 해서 지겨운 것은 아니니까, 한 번 읽어보시길...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아래의 게시판으로 들어가세요.
미술인회의 www.misulin.org

야이, 씨발놈아!
박불똥
지지난 목요일 오전 10:00 , 서울역 발 KTX에 올랐다. 우리나라에 순전히 그림만 그려서 먹고사는 화가는 내가 알기로 몇 없다. 그렇게 드문 전업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 안창홍 선배다. 나는 그가 부럽다. 뿐만 아니라 서너 살 나이차이 이상으로 그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그래서 그의 부산나들이에 흔쾌히 동행한 것이다. 채희석 씨도 함께 갔다.
세 사람은 일부러 열차 복판의 4인용 좌석을 골랐다. 가는 동안 정담을 나눌 요량이다. 맞은 쪽 4인석에는 시강 내지 원생으로 보이는 남자 혼자다. 나머지 2인석들은 거의 비었다. 착석 하자마자 안 선배가 가방에서 청하를 한 병 꺼냈다. 맥주도 이동판매원한테서 세 깡통 샀다. 아침부터 술을 입에 대는 건 내 사전에 없던 일이나, 마셨다.
내일 개막할 <한국 현대미술 전>은 부산시립미술관의 야심찬 기획이다. 유영국 정상화 이우환 박서보 하인두 이강소 안창홍 김아타. 초대작가들의 면면이 중후하다. 그러나 부산서 열리는
물론 안창홍 선배는 이른바 거물들 반열에 나란히 이름이 오른 것만으로도 고무될 만하다. 더구나 부산은 그의 본토 아닌가. 친구로 보이건 시다바리로 보이건 아무튼 채희석 씨와 나는 시방 안 선배를 거들러 부산엘 가는 셈이다. 2박3일의 귀한 시간 쪼갠 우정에 비하면 ‘회 한 접시’는 아주 약소한 기대고 접대일 것이다.
승객이 드문드문해서 방심한 모양이다. 우리 떠드는 꼴을 더 못 견디겠다며 웬 사람이 주의를 준다. 보니, 시강 내지 원생의 대각선 자리에 한 사내가 어느새 들어앉았다. 발을 건너편 좌석 위로 쭉 뻗은 채 비뚜름히 눕다시피 한 자세로 우리를 째리고 있다. 그도 깡통맥주를 손에 들었다. 옆의 젊은이가 책과 노트 위에 엎드려 곯아떨어진 걸 보면 “잠 좀 잡시다” 는 억지지 싶다. 지정석 차량이 아니므로 아무데든 조용한 곳으로 옮겨가면 될 법한데 굳이 우리랑 어깨동무한 자리에 끼어들어, 그것도 나중에야 끼어들어 고약히 시비인 것이다.
어쩌면 함께 어울리고 싶어 건네는 수작일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반갑잖다. 김훈의 <칼의 노래> 식으로 ‘이걸 베어, 말어’ 잠시 갈등하다가 차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풍경은, 퍼붓는 눈발처럼 들이닥치는 것도 좋지만 변심한 애인처럼 별안간 멀어져가는 것도 볼만하다. 안창홍 선배와 채희석 씨에 맞앉은 나는 서울을 향해 부산으로 가고 있다.
부산역에 마중 나온 삼성카드 님의 ‘쌔’ 차를 타고 기장으로 이동했다. 단골횟집 <수림>서 돔과 우럭 저민 걸 안주로 부산지역소주 시원을 마셨다. 채희석 씨를 뺀 자리에 선배 J가 앉으면 이태 전 어느 이른 봄날의 꼭 그 짜임새다. 그때는 가오리 회였다. 화제가 자연히 J 얘기로 흐른다. 오늘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가 본류고 목요일과 금요일마다 수업에 묶여 어차피 동행 못한다가 지류라면, 딱 일주일 전 안창홍 선배의 양평 작업실서 돌출한 그의 취기를 3인이 동시에 상기한 건 급류다. 서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시선들이 창 밖 지척서 넘실대는 파도에 실려 표류한다. 때마침 J로부터 내게 휴대폰이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
광안리가 엄청 변했다. 수평선을 가로막아 볼썽사납다는 광안대교도 야경은 그럴싸하다. 커다란 수족관을 전면에 둔 퓨전레스토랑의 경박하고 난삽한 인테리어에 둘러싸인 느낌이다. 이런저런 시민들이 백사장을 거닐고 간간이 장난감 폭죽이 밤하늘을 찌른다. 서른 발에 이천 원이라며 행상아낙이 우리한테 다가왔으나 외면하였다. 발치께서 늙은이가 사주풀이를 하는데 젊은 처자 둘이 나란히 그이의 사설을 꽤 오랫동안 경청한 뒤 각자 만원 지폐 한 장씩 던지고 갔다.
아까부터 오줌이 마렵다. 채희석 씨는, 여기 가로수를 야자나무로 즐비하게 심은 게 자기 아이디어라 했다. 내년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 감독을 맡은 류병학 씨한테 자문해준 결과라는 것이다. 이미 여러해 전에 조경된 거라는 반박이 나왔다. 말라비틀어져 소생이 의심스러운 것도 여러 그루 보인다. 어쨌거나, 해변을 통 털어 하나뿐인 공중화장실은 너무 멀다. 터질듯 팽창한 오줌보를 조심스레 다스리며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인근 찻집 2층에 꼭꼭 숨은 변기를 찾아갔다.
안창홍 선배가 모종의 만남을 위해 근처로 공간 이동해버린 세 시간 가량 나는 달리 할 짓이 없으므로 채희석 씨와 많은 이야길 나눴다. 피차 거뜬히 밤도 샐만한 수다꾼인지라 지칠 리야 없으되 온통 말로만 황칠해버리기엔 모처럼 맞이한 밤바다의 여수가 좀 아깝다. 외롭기도 하다. 외로움을 떨칠 겸 같은 값이면 커피보다는 생맥주를 마셨다. 외모에 워낙 신경 안 쓰는 채희석과 신경 써봤자 별 수 없는 박불똥, 그 휘황한 불야성에서 어쩌면 외계인일 두 사람은 그렇게 우의를 돈독히 불가피 쌓았다.
<파라다이스>는 무궁화 다섯 개짜리 특급호텔이다. 여섯으로 늘어난 일행이 지하 바에 둘러앉았다. 벌써 새벽 두 시고 안창홍 선배는 취했다. 술잔들은 더 이상 비지 않는다. 채희석 씨가, 옆자리의 전**라는 사람이 서울대 입학동기임을 이윽고 알아챈다. 그는 작년에 광주비엔날레 가서도 그같이 또 다른 대학동기생 최** 씨를 건진 바 있다. “아이큐 161” 이라고 큰소리치더니 과연 비범한 기억력이다.
합석한 정신과 의사가 그림수집에 일가를 이룬 나머지, 소장한 40여 점 드로잉작품마다 200자 원고지 30매쯤 길이의 감상문들을 써 모았는데 곧 단행본으로 출판될 거란다. 그를 만나 바야흐로 채 씨의 박학다식이 종횡무진 진가를 발휘하나 안 선배는 의자 너머로 목을 젖힌 채 깊이 잠들었고 나도 그저 피곤하다. 대화든 토론이든 수준에 맞아야 유익한 법이다.
눈을 뜨니 정확히 06:00 . 국방의 의무 34개월을 통해 체득한 오래된 습관이다. 세 사람 모두 비슷하게 깼다. 커튼을 젖히고 해운대 앞바다에다 탄성을 한 움큼씩 토했다. 그리고 곧장, 뜻밖에도 격론이 벌어졌다. 요상하고 고상한 일이다. 불과 세 시간만 자고 일어나자마자 금세 진지한 토론에 휩싸인 것이다. 그것도 예술에 관한.
주로 채 씨가 안 선배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졌는데 그의 발뒤꿈치엔 굳은살이 이미 완고하여 채 씨의 부실한 치아만 괜히 아프다 만 꼴이 되고 말았다. 관전자로서 나는 양편 다 신통찮았다. 인간 채희석을 수습하자면 유난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인식에 골똘히 잠기느라 엘리베이터를 타고서도 운행 층을 지시하지 않은 채 1층에 당도하기를 한참동안 멍청히 기다렸다.
<금수복국 집>은 술꾼들의 조깅코스인 셈이다. 수십 년째 끊이지 않고 붐빈다. 반면 주변의 동종 음식점들은 죄 파리채 휘두를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 온통 뼈와 가시뿐이라 왜 이리 비싼지 궁금해지는 17,000원짜리 지리탕에 식은밥을 말고 모주를 곁들여 해장하였다. 하자니 또 J 선배가 떠오른다. 세 사람 다 뱃속이 편치 않다. 다투어 사방으로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
아직 오전이라 달맞이고개의 찻집
도 한적하다. 오륙도가 바라보이는 자리, 언제나 앉는 그 자리(이런, 또 J 생각이 절로 난다!)에서 피자를 허기 아닌 웬 살기로 뜯어먹으며 각각 맥주 커피 콜라를 마신다. J의 잔상에 부질없이 자꾸만 시달리느니, 또한 채희석 씨의 게게 풀린 한눈이 레지의 미모에 팔려가는 것을 묵과하느니 차라리 안창홍 선배가 웃기는 이야기 하나 꺼낸다.
“낙오하여 외톨이가 된 대상이 있었는데 석 달 열흘이나 오직 낙타와 외로이 사막을 헤맸대. 그러자니 무엇보다 ‘살’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라. 참다못해 급기야 낙타 엉덩이에다 거시기를 밀어 넣었다는 거야. 짐승이 사람 고충을 어찌 알겠어. 그저 놀라서 뒷발질을 해댔지. 그 바람에 그만 십 미터 밖으로 나동그라졌지 뭐야. 얼굴에 발굽도장만 강력히 찍혔더래. 다시 덤비려 해도 원 겁이 나서 아무쪼록 독수리오형제 신세만 지면서 계속 길을 갔다지 아마.
그러던 어느 날, 땡볕에 혼절한 한 여체를 발견한 거야. 천만다행이도 숨이 붙어 있어 인공호흡과 전신마사지로 어렵사리 생기를 돌려놓았거든. 정신을 차린 여인이 생명의 은인께 뭐든 들어줄 테니 소원 한 가지를 말해보라 그랬다는구먼. 그게 정말이냐고 진짜냐고 거듭 다짐을 받고 또 받은 우리의 딸딸이 맨, 벌거숭이 아랫도리를 붉히며 반색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지. 그렇다면 이리 와서, 이놈의 낙타 뒷다리 좀 꽉 붙잡아 주시오!”
채희석 씨는 목구멍에 넘기던 콜라를 뱉어가며 웃었으나 나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는 내 친제의 영업점인 것이다. 사장님의 형이면 종업원들 앞에서 체통을 지켜야 옳다고 나는 믿는다. 내 무표정이 야속했는지 채 씨의 박장대소가 기꺼웠는지 안 선배는 웃기는 이야길 하나 더 꺼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청상과부가 딱 한사람 있었어. 다들 짝지어 화평한데 유독 그 과부만 독수공방이라, 고을백성 전원의 행복을 책임 진 원님이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거야. 그래서 이웃 고을 홀아비와 어떻게든 연을 맺어주고자 무지 애를 썼는데 아, 그 여인의 절개가 망부석인 거 있지. 아예 남정네 자체를 백안시 하더래. 우선 꽉 막힌 물길부터 터야겠다고 판단한 원님은 방방골골에 통문을 돌렸지. 저 열녀와 부디 합궁하는 남정네를 후히 포상하겠노라는.
봉이 김선달이란 자가 소문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들었겠다. 동헌은 젖혀두고 먼저 그 과수댁으로 찾아갔어. 마당에 우뚝 서서 인기척을 냈지. 과부가 내다보자 암 말 않고 그저 눌러쓴 삿갓 앞머리를 오른손 중지로 쓱 밀어올린 다음 담배 한 대 참이나 여인네 면상만 빠끔히 응시하고선 되돌아 나온 거야.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그렇게 매일 점심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무려 한 달 동안이나 그 싱거운 무언극을 계속하니까 그 과부도 호기심 반 호감 반으로 은근히 김선달을 기다리게 된 거지.
두 달째 접어드는 날 김선달은 일부러 어스름 녘에야 과수댁을 방문했어. 입회인으로 원님을 대동하고. 원님더러 사립문 틈으로 집안 동정을 잘 엿보라 이른 다음 김선달이 혼자 스스럼없이 마당에 들어섰지. 미처 인기척을 내기도 전에 과부가 먼저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을 열고 내다보더란 말씀이야. 배시시 쪼개면서. 그러나 김선달은 삿갓을 여느 때보다 더욱 눌러 쓴 채 미동도 않고 그야말로 돌부처인양 우두커니 서 있을 따름이거든. 뭔 일인가 싶어 원님도 과부도 마른침을 삼켰겠지. 그런데 아니, 한참을 그러다가 돌연 휙 돌아서서 그냥 나와 버리는 거 아니겠어. 그러자 그 과부가 황급히 김선달의 등에다 대고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묻더라는 거야. 이보오, 삿갓양반! 오늘은 이거, 안하시오? 원님은 허공을 찌르는 과부의 발기한 오른손 중지를 똑똑히 보았대나 어쨌대나”
그래도 나는 웃지 않았다. 나는 이미 중딩 때 세계문학전집 대신 동서고금소총을 베고 잔 사람이다. 하품이 절로 난다. 안창홍 선배도 더는 내 기품을 시험하지 않았다. 때마침 등장한 동생이 음식 값 수령을 고사하므로 비싸서 삼갔던 기네스를 두 병 더 마신 다음 마침내 일어섰다. 전망 좋은 자리인 건 틀림없으나 하마터면 엉덩짝이 짓무를 뻔했다. 운짱 삼성카드 님의 제안에 따라 동백섬을 한 바퀴 돌아보려했으나 ‘공사중, 개하마’다. 조용필 기념비가 어딘가 있을 텐데. 차를 돌려 곧장 부산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행사장에 일찌감치 나가 기다리는 것은 여유고 예의다.
부산시립미술관엔 초행이다. 외관상 서시미에 비하니 부시미는 짱짱하다. 이런데서 개인전 하면 좋겠다니까 이구동성으로 너무 넓단다. 넓긴. 1층 로비서 강선학 학예실장과 이상수 학예사와 악수하다. 역시 초면들이다. 이상수 씨는, 그의 인도기행문을 일부 읽은 바 있어 구면인 듯 반갑다.
3층에 올라서 맨 먼저 마주친 공간이 하필 안창홍/ 김아타 방이다. 안으로 들어섰는데 사방이 너무 헐렁하다. 개인전 규모라더니 겨우 11점만 걸렸다. 말이 11점이지 <파리대왕>이나 <49인의 명상>은 연작 서너 점씩을 한데 묶은 터라 실지로는 도합 6점뿐인 빈약한 전시로 비친다. 그나마 대작은 <봄날은 간다-양귀비 언덕> 한 점이고 나머진 다 40호 이내 소품들이다. 100호조차 소품으로 느껴질 만큼 천정이 워낙 높고 벽면도 꽤 넓어서 30호짜리 <순돌이의 바캉스>는 그야말로 손바닥만 해 보인다. 조명마저 어둑한 게 전시장 분위기가 영 아니올씨다다. 200호 크기 <꽃밭에서>와 60호짜리 <봄날은 간다 I>은 아예 빠졌다. 내가 안창홍 선배라면 눈앞이 캄캄했겠다.
처음엔 아직 디스플레이를 덜 끝낸 줄 알았다. 개막식 불과 20분 전인데 뭐 이런 엉터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상수 학예사의 얘길 듣고 경악했다. 이게 최종판이란다. 실무진이 진즉에 설치 완료한 것을 관장이 손수 작품을 떼고 빼고 옮기고 걸어 현재 이 모양으로 ‘망쳐’ 놓았다는 것이다. 저런 고약할 데가 있나. 칸막이 너머 김아타 씨의 공간은 그런대로 분위기가 맵짜 보인다. 거기는 관장 손을 전혀 안탔단다. 왜냐면 유리액자 낀 작품들이 혼자 감당 못할 만큼 무겁기 때문에.
관장이 대체 누군가 물었다. 김용대라는 사람인데 ‘삼성 출신’이란다. 쉰한 살, 내 또래다. 그 나이에 부시미 관장이라. 대단한 인물인가 보다. 물론 관장이라고 못과 망치 들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그 솔선수범의 결과가 근사해야지 이처럼 실무자와 작가와 관람객 모두에게 낭패감을 맛보인다면 곤란하다. 나는 그만 객 주제에 당사자인 작가 안창홍 씨나 학예사 이상수 씨보다 훨씬 불쾌해지고 말았다. 이따 축하연 때 관장 후미에 슬그머니 다가가 집단방뇨를 해버리자고 선동했으나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나는 감정이 고조된 채 나머지 방들도 유심히 둘러보았다. 헐렁함은 네 개 방 여덟 명 작가 모두에 일관된 분위기다. 일종의 유니폼 형 디스플레이를 꾀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김용대 관장은 공평무사라는 알리바이를 마련한 셈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물론 전시장 전체의 가닥을 주름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각 작가별 작품성격이 존중되는 한도 안에서 융통성 있게 접근해야할 일이다.
추상이든 구상이든 대작이든 소품이든 감안 않고 출품작 숫자만 균등하게 조절하는데 주안점을 뒀다면 그 발상이나 안목은 가히 미개에 가깝다. 그다지 무지몽매한 자가 어떻게 부시미 관장자리를 차지했는가? 아닐 것이다. 그럴 리 없다. 김용대 관장은 간특할지언정 미개하지 않다. 짐작컨대 그는 작가 안창홍을 반기지 않는 듯하다. 싫되 아주 내쳐버릴 길 없으므로 맘 부득이 초대작가 명단에 남겨놓고선 못내 마뜩찮아 하는 것이리라.
<한국 현대미술 전> 기획을 초안한 부시미 학예사 이상수 씨에 따르면 본디는 박고석(정통구상) 유영국(색채추상) 김홍석(백색추상) 안창홍(신형상) 이렇게 4인을 집중조명 해볼 작정이었다. 안창홍이 가장 젊고 유일한 생존 작가인 점으로 미루어 이상수 학예사가 그에게 거는 기대나 애착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유족들에게 출품 승낙까지 얻은 상태인 박고석 김홍석을 무례히 삭제하면서 김용대 관장은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하인두 이강소 등으로 대폭 작가구성을 변경해버리는 독단을 행사한 것 같다.
공공미술기관의 수장이 얼마나 막강한 권한서부터 별 시시콜콜한 권한까지 두루 갖는지 나는 잘 모른다. 따라서 <한국 현대미술 전>의 기획단계나 제반실행에 관련해 김용대 씨가 관장으로서 수행한 노릇들이 적절한 거였는지 어땠는지 나로선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개 작가 내지 관람객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 현대미술 전>은 아주 실패작이다. 그 책임의 상당부분을 관장이 져야할 걸로 보인다.
관장의 책임은 실무진을 짓누르는 관료주의나 권위주의에 있지 않고 실무진이 기획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신뢰와 격려로써 자율을 보장하는 리더십에 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획전의 실패는 곧 김용대 관장의 리더십의 실패에 다름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뭘 몰라서 하는 소린가?
나는 김용대 관장이 궁금해졌다. 중앙 홀 가장자리의 나무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서 행사장으로 서서히 모여드는 인사들의 면면을 살핀다. 출품작가 외엔 낯익은 이가 아무도 없다. 올림픽공원 야외조각 심포지엄 때 통성명 했던 신라대 ***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 그마저도 황급히 달려가 인사를 차릴 사이는 아니다. 피차 친근하지 않은 사람끼리 우두커니 안부나 묻는 일처럼 따분한 고역도 없다. 오늘, 가을 날씨 치고는 덥다. 아침에 샤워를 했건만 몸과 옷 사이로 피어오르며 코를 찌르는 땀내가 신경 쓰인다.
일순 내 안광이 빛났다. 계단을 오르는 중절모, 김용대 관장임을 직감했다. 그는 겨드랑이를 바바리코트자락만큼 벌리고서 느릿느릿 걸었다. 비록 수십 분 사이에 급조된 감정이지만 나는 그에 대한 일단의 선입견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선지 그의 첫인상은 거만하였다.
그는 스스로 부시미라는 왕국의 제왕인 것 같았다. 오늘은 이 웅장한 왕국에 성대한 잔치가 벌어지는 날, 그는 지금 행사장 중심에 있는 왕좌를 향해 한발 한발 당도해가는 중이다. 각종 축하객들이 도처에서 그를 주시하면서 다투어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건넨다. 그의 표정은 근엄하면서도 인자하다. 재빠르게 사방을 살피되 신중하기 짝이 없는 동작으로 그 모든 손길을 응대하고 기억한다. 쉰한살도 적은 나이는 아니나 더욱 노숙해 보이고자 그는 마치 저속촬영한 영상처럼 그 간단한 거리를 복잡하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누군가 그 행진을 가로막았다. 달갑잖은 ‘안창홍’이다.
잠깐 할 얘기가 있다고? 나 아직 갈 길이 먼데. 등에 얹은 당신의 손, 이 뜨뜻한 육체의 일부라도 좀 치워줬음 좋겠는데. 애초 합의한 작품들이 왠지 다 안 걸려 불만이라고? 아, 그런 거야 아랫사람들한테 말해야지. 나는 층층시상, 관장이거든. 그럼, 이만 실례. 뭣이라? 아랫것들 다 거쳐 왔다고? 끄응. 하여튼 나는 저쪽으로 얼른 가봐야 하거든. 그러니 썩 물러서 줘. 제발.
김 관장의 김새는 소리를 나는 하필 바로 코앞에서 소상히 들었다. 그가 돌연 제 빠르기로 돌아간 필름처럼 재빨리 움직여 저만큼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방금 완료된 ‘안의 태클’에 대꾸하는 ‘김의 태클’이 머지않아 닥치리라 나는 충분히 예감하였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서둘러 왔다. 게다가 지독히 거칠고 저급해서 곁다리인 나조차 이런 목격담을 써 올리지 않을 수 없는 바, 이 글은 이를테면 심판 아닌 관중이 뽑아든 옐로카드 같은 것이다. 그러니 아예 무시해도 그만이다. 나 역시 실속 없는 짓인 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명백히 결례하고 무례했던 에피소드, 이왕지사를 수습함에 있어 인간 김용대든 관장 김용대든 그가 프로이기를 바란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원활을 기대한다.
안정된 숙소를 졸지에 ‘삭제’ 당한 안창홍 외 3인의 나이를 다 더하면 자그마치 150살도 넘는다. 그렇게 고령자들이 꼭두새벽 세 시부터 부산역전 일대를 다섯 시 다 되도록 헤맸다. 물론 그 주변에 여관은 많고 우리 주머니에 돈도 있었다. 그러나 분해서,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자빠져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말 세상은 전업작가 알기를 개좆으로 아는 걸까. 정말 세상은 국공립미술관 관장 알기를 하느님 똥구녕으로 아는 걸까. 상놈들 개좆으로 몸보신하듯 양반들 서푼으로 맘보심하는 데 작가는 영혼이고 나발이고 죽 쒀서 갖다 바쳐야만 하는가. 그것도 모자라 하느님 똥구녕까지 수시로 핥아야 하는가.
노래방에서 한 시간 남짓 노래 몇 곡씩 부르느라 잠자리에 좀 늦게 든 게 대죈가. 우리가 무슨 규정된 취침시간을 엄수해야 하는 훈련병인가 말이다.
부시미의 <한국 현대미술 전>개막식이 다과연까지 끝난 뒤 작가들은 각자 나름의 또 다른 회식자리를 가졌다. 나는 이상수 학예사의 안내로 안창홍 선배와 채희석 씨 그리고 삼성카드 님과 함께 송정시장통의 <완도횟집>에 갔다. 가는 길 한 어귀서 걸음을 멈추더니 여기가 피난지 시절의 풍경을 일각이나마 유일하게 간직한 곳이라고 이 씨는 간단한 설명을 해주었는데, 우리를 굳이 그리로 이끈 그의 세심한 배려에 나는 술잔보다 먼저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술도 안주도 허튼 농담들도 다 좋았다. 담배 한 개비와 일회용 라이터를 빌려주면서 여주인이 한 말, “불통은 돌리주소” 때문에 대미는 더 한층 유쾌하였다. 이름이 참말로 불통인교? 옴마야, 이름을 우찌 그리 지았시꼬.
초대작가가 원행이라 묵어가야할 때 숙소를 마련하는 일은 대개 관장 아닌 직원의 몫이다. 그러나 특별히 박서보 선생 내외분 등을 위하여 그 역할을 자임한 김용대 관장은 번잡한 시내를 좀이라도 벗어나 송정 청사포라는 한적한 항구 쪽 호텔을 손수 예약하였다.
우리가 이제 막 <블루비치>에 도착한 것이 밤 아홉시쯤이었을 게다. 프론트에서 그와 마침 마주쳤다. 서로 악수를 나눴고 방 홋수를 아니까 이따가 잠시 들러마 하는 가외 인사말까지 우리는 똑똑히 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두 시간 후, 그는 박서보 정상화 유민자 이강소 선생의 해변 산책을 수행하고서 그들을 침소까지 배웅한 다음 호텔을 나서면서 ‘안창홍과 그 시다바리 두 사람이 들기로 예약된 방’을 대실취소 해버린 것이다. 뭐야, 도대체.
빈방이야 있다지만 이런 개 같은 경우를 당하고서 묵묵히 잠을 이룰 수는 없다. 게다가 서울행 정오 열차표를 미리 끊어뒀으므로 어차피 부산역까지 나가야 할 터, 자더라도 그 근처 가서 자는 게 옳지 싶었다. 택시로 한 시간 가량 달리는 동안에도 우리의 공분은 삭지 않았다. 나는 운전기사한테 상황을 대강이나마 들려주고 그 ‘중절모에 바바리코트를 입은 사내’가 왜 그런 짓을 한 것 같으냐고 물어보았다.
“밤이 이슥한데도 선생님들이 안보이니까 아마 딴 데 가서 주무시는 걸로 잘못 이해한 모양이지요.”
아니, 밤 열한시도 채 안된 시간이 오밤중인가요. 또, 오밤중 아니라 오오는 이십오 밤중이더라도 세상에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부산역전에 떨어져서야 마침내 안창홍 선배와 김용대 관장의 전화가 어렵사리 통하였다.
나는 나지막이 ‘욕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 여보세요. 관장님이세요.
채희석과 내가 곁에서 듣기에 안 선배의 태도는 괘씸할 정도로 공손하였다. 개통 직전까지 그 씩씩거리던 노기는 다 어디로 갔는가.
우리가 노래방에서 좀 놀다가 자러갔더니만, 방이 없어요. 취소됐대요. 중절모 쓰고 바바리코트 입은 남자가 취소했대요.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 호텔 종업원 말이, 방 네 개 값은 계산하고 한 개는 취소했다는 거예요. 바로 관장님이 말이지요. 열시 사십 몇 분에. .... 뭐라고요. 아니, 지금 관장님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예요. 관장님이 그 방을 잡았었고 또 취소했다니까, 그러니까 관장님한테 이렇게 전화 한 거 아닙니까. 이 일을 그러면 관장님 말고 누구한테 얘기 합니까.
나는 전화기를 빼앗고 싶었다. 저런 씨팔새끼를 그냥....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안 선배의 언성이 팍 튀었다.
....
“야이, 씨발놈아!”
....
“녹음해라, 씨발놈아!”
....
“그래, 끊어라 씨발놈아!”
통화는 끝났다. 세 번의 ‘씨발놈아’ 앞에 들어 간 김 관장의 대사는 이렇다.
“저한테 그 얘기 하려고 자는데 전화걸었습니까” ....
“이 목소리, 지금 녹음 합니다” ....
“전화 끊겠습니다”
이건 역지사지를 도통 할 줄 몰라서 순전히 내 멋대로 가정해보는 소리다. 나라면, 곤히 자던 새벽 세 시에 웬 전화를 받아서 아무리 화딱질 나더라도 불쾌감을 지그시 누르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 선생님. 그거 참 희한한 일이네요. 저는 아까 숙소서 선생님 뵙고 그럴 때 숙박료 계산한 뒤로는 아무 것도 변경한 것 없습니다.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정말이지 취소한 적 없습니다. 저가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뭐가 잘못됐나본데,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가 그 호텔에다 당장 알아보고 곧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우선 지금 계신데서 가까운 호텔로 좀 들어가 계시지요.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김용대 관장은 자기가 총책임자로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의 기획전시에 초대받은 작가 및 ‘그 시다바리들’이 얼마나 중요한 ‘손님’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기가 초대한 손님이 ‘새벽 세 시’에 침대 위가 아닌 길바닥에서 안타까이 전화를 걸어와 나 어떻게 하냐고 하소연을 하건만, 그는 단지 자다 깬 제 잠만 아쉬울 뿐인 것이었다?
새벽 다섯 시 무렵 모텔 <파라다이스>에 들어가 지친 몸을 뉘었는데 눈알이 쓰려도 잠은 이루기 어렵다. 걱정이 태산 같아서다. 김 관장은 단호히 자신의 무관 무책임을 선언하였다. 우리의 경거망동을 오히려 나무라기까지 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는 날이 새기를 뜬 눈으로 기다렸다가 부리나케 달려가 그의 대문 앞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 해야 한다. 하물며 씨발놈 이라는 쌍욕을 거푸 세 차례나 퍼부었으니, 자칫하면 소송에 걸릴 수도 있는 사태다.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어디서 어떻게 꼬여 이 지경이 되었는지 한숨이 절로 났다.
이부자리도 시원찮은 맨 방바닥에 모로 누워 깜박 졸았던가, 동침한 두 양반의 코고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일곱 시가 채 더러 되었다. 텔레비전을 켰다. 해병대 최초의, 10인의 여전사 이야기가 눈물겹다. 잘난 집안의 여식이면 저런 고초를 자초했을 리 없다는 생각에 자꾸 마음이 에인다. 채널을 돌렸더니 박영희의 문학건축론과 김기진의 문화건축론에 대한 교육 강좌다.
채희석 씨는 그런 상식수준의 방송보다 훨씬 고도의 독서중이고 안창홍 선배도 일어나 이상수 씨와 연신 통화중이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사건의 진상이 확인되었다. 나는 손뼉을 치면서 어린애마냥 기뻐하였다. 김용대 관장한테 사과하러 갈 일 없이 예정대로 귀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관장을 성토하기보다는 사태가 역전된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득의만만하며 이제 살았구나 싶어 그를 너그러이 용서하여도 괜찮겠다는 여유마저 생겼다.
이상수 학예사가 최종 종합하여 전화로 알려온 김용대 관장의 주장은 차마 유치찬란하다. 신용카드로 진즉 결제했던 예약 방 다섯 개의 숙박비를 23시경 전액 취소하고 그 즉시 그 중 네 방만 현찰로 다시 계산하면서 나머지 방 하나는 아예 없던 걸로 처리했다. 어쩔래. 내가 내 돈으로 한 일인데 취소를 했건 말소를 했건 너희가 웬 상관이야. 빙신들.
나는 김용대 씨가 안창홍 씨한테 어떤 식으로든 정중히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내겐 미안해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여러 날 정성들여 달여 낸 이 보약을 입에 쓰더라도 부디 달게 드시기만 하여도 고맙겠다.
*** 일 주 전에 위 글의 절반쯤을 먼저 올린 적이 있다. 안창홍 선배와 채희석 씨가 읽어보고는 불만이 대단했다. 특히 안 선배는 몹시 언짢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나는 일단 글을 내렸다가 그 후반까지 완결하여 이제 다시 올린다. 미안하지만 안 선배의 주문을 나는 거의 무시할 수밖에 없다. 글은 내 것이고 내 시각일 뿐이다. 이런 고집 때문에 안 선배나 여타 등장인물께 어떠한 누를 끼친다면 온/오프라인 양면으로 꾸중을 달게 받겠다.
한가지,에서의 ‘웃기는 이야기’를 듣고 웃다가 나는 소파에서 미끄러져 탁자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를테면 그렇다는 말이다. 나를 미화한 반면 안창홍 선배와 채희석 씨를 아래로 내려 보는듯한 시선이 곳곳에 묻어있는 걸 안, 채 두 분은 제 삼자들 보다 훨씬 민감히 느끼실 줄 안다. 글이 서투른 탓이기도 하고 그것이 글 쓰는 맛이기도 하다.
아내는, 그런 걸 써서 무슨 이득이 있냐고, 무심하던 이들을 왜 ‘적’으로 만들려느냐고 핀잔이 대단했다. 나도 모르겠다. 좆도. 당신은 자신이 하는 짓을 다 아는 겨? 다 아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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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 (2005-10-13 23:32:30)
요점만 말하지 웬 새살을 그리 떠느냐 하는 불만, 새살 중에서도 ㅇㄷㅍㅅ 그건 정말 싫더라 하는 독후감이 있다. 대중에게 잘 인식된 예술가 이미지에 먹칠하는 거 아니냐 하는 지적, 평소 순수의 표상으로 광빨 내다가 이젤 앞만 벗어나면 그리 질퍽거리는 화가들이 정말 가증스럽다 하는 독후감도 있다.
내가 그 '웃기는 이야기'를 굳이 배치한 것은 예상 외로 심오한 배려에서였다. 안창홍 선배가 문득 꺼낸 그 이야기를 듣고 하나만 더 하나만 더 졸라댄 건 나였다. 나는 짚신도 격이 있고 잡설도 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고전해학은 상생의 격조를 갖춘 게 대부분이다. 반면 외래의 와이담은 너죽고나살기 식 독설이 많다.
<미녀와 낙타>에서 대상이 미녀의 샅을 그냥 지나쳐 낙타의 엉덩이에 집착하는 건 등장 인물 및 동물 모두 '죽음'에 이르게 하는 꼴이며 씁쓸한 웃음에 머물고 만다.
<열녀와 중지>에서 원님과 김선달, 열녀는 공히 상생을 꾀하며 따라서 훨씬 따듯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 차이, 세상을 삶을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가 있고 없음의 차이는 곧 '일반명사' 김용대 부시미관장의 진정한 성공과 실패에 관한 은유일 수 있다고 나는 보았던 것이다.
박불똥 (2005-10-14 08:56:17)
그리고 밝혀둬야 할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
애초 올렸다 내린 반절글은 현재 모양과 꼴 줄거리 다 같으나 군데군데 거친 표현이 없지 않았다. 신경 써서 매끄럽게 다듬었는데, 그래서 안 선배도 이젠 좀 봐줄 만하다며 누그러졌는데 글 말미에다 '안선배가 심히 언짢아 했다' 함으로써 그의 반응이 과민한 걸로 비칠 소지가 과연 있다. 이렇게 늦게나마 바로 잡는 셈이니 양해를....
박불똥 (2005-10-14 09:06:36)
마지막 사족:
박서보 선생은 나의 지도교수였다. 개막식 다과연에서 간발의 거리를 두고 눈이 딱 마주쳤건만 차마 인사 차리지 못한 채 얼른 포도주를 벌컥 들이키며 딴전을 부렸다. 최근 무슨 수술 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사 들었는데 진작 알았더라면 인내심을 갖고 최소한 목례라도 드렸을 텐데. 이 버거운 세상 살다보니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무례 실례 결례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미안해 죽겠다.
나 (2005-10-11 09:05:38)
남이 글을 어떻게쓰든 불만하나도없다. 불만은 글이 왜이리 산만하냐는것이다. 박불똥씨는 어쩔때는 기가막히게 멋진글을 쓰면서, 가령예를 들면 우일민으로 변신해서 쓴글처럼,
요렇게 산만한 글도 쓸수이다는 능력을 보여줄려고하능가?
물 (2005-10-11 09:53:25)
소설 한편 자알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지요? 김용대라는 화상의 행색이 하나도 특이할 것이 없어, 화가 치밀어오르지 않고, 담담한거요. 이상수 학예사가 겪을 고생만 실루엣처럼 남네요...
이런! (2005-10-11 12:59:41)
가제놀이에 애꿎은 새우 등만 터지는 군..끌끌
키득키득 (2005-10-11 15:29:54)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면 욕 하시려나. 하지만 재미있는 걸 어떻게 합니까.
암튼 눈 앞에 훤히 그려집니다. 그날의 상황이.
김용대라는 양반, 참 꼴불견이군요.
최진욱 (2005-10-12 00:04:05)
작가생활 하다 보면 이런 더런 꼴 숱하게 본다.
작가의 자존심은 사실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작가는 대수롭지 않은 존재들이다.
미술관 관계자들이 보기엔 그냥 '업자'들이랑 동급이다.
이렇게 된 데는 선배, 원로작가들의 책임이 크다.
물론 박서보가 대접을 받은 건 전혀 다른 맥락이다.
그냥 오야붕을 최고로 아는 조폭문화로 보면 된다.
작가로서 대접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대한민국 작가의 적나라한 대접은 바로 안창호이 받고 왔다.
작가로서의 대접은 오로지 작품의 수준에 따른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술관에서 일하는 자들이 작품수준을 어떻게 알겠는가?
아무도 모른다. 비평이 없는 곳에서 작품의 수준을 알 수는 없다.
그냥 개인의 취향만 있을 뿐이다.
취향에 맞는 작가라면 약간의 대접을 받게 된다는 얘기다.
해서 전체적으로 업자 수준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김용대란 자가 어떻게 부산시립미술관의 관장자리에 앉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가 미술 이론가라면 글을 쓴 게 있을 텐데,
읽어본 일이 없다.
작가가 작품으로 수준을 평가받듯,
이론가는 글로 수준을 평가 받아야 마땅하지만,
이 자는 삼성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관장이 되었다.
정당한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 걸 아는 사람이 있다면
밝혀주기 바란다.
해서 별 이유없이 높은 자리에 오른 자에겐 별난 퍼스낼리티가 있기 마련이다.
윗 글에서 보듯, 거들먹거리는 거며, 뻔히 들통 날 일을 태연히 해내는 능력이 그런 것이다.
부산도 대한민국 땅인데,
왜 대한민국 미술인들을 졸로 보는 이런 자가 미술관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는지 울화가 치민다.
안창홍이 누구인가?
대한민국 미술인으로선 최상위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분통터지는 일을 당했다.
이 일은 대한민국 모든 작가들이 당한 일로 보아도 무방하다.
반이정 (2005-10-12 08:17:43)
- 실은 미술인회의 보드에 거의 오질 않다가, 얼마전 누가 박불똥 선생님 글이 재밌다기에 요새 가끔와 읽는데, 문장구성부터 상황에 대한 재현까지, 필력이 타고나셨네요.
- 김용대로 인해 불쾌한 건 비단 작가 만이 아니에요. 머리털 하나 없는 그 단조로운 얼굴에 오만과 위선만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걸로 나는 그의 인상을 기억해요. 물론 나와 그를 잇는 직접적 만남은 아니었지만 불쾌하기로 치면 이를데 없었죠.
본노 (2005-10-12 10:37:10)
화난다! 그런 관장이 있는 부산 시립미술관 언제든 꼬리가 잡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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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죄송함돠. 그동안 제 컴에 문제가 생겨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줄이지 않고 올렸던 관계로... 보시기 불편하셨지요. 오늘 새로 깔고, 이미지 줄여서 올렸습니다. 가을은 가을인데, 어째 후덥지근한 게... 영...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