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론 3] 서옥재 : 틈새 작업실에서 ‘쪼쪼쪼’
critic & column | 2005/09/24 21:24

서옥재 : 틈새 작업실에서 ‘쪼쪼쪼’
서옥재에게 있어서 작업실은 기다림의 세월 끝에 얻은 값진 공간이다. 1986년에 결혼해서 이듬해 유학을 떠났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삶은 온전히 두 사람의 빠듯한 의무를 이행할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서옥재의 삶은 작가보다는 주부로서의 역할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남편 오상욱은 귀국 후 1년 만에 일산 성석동에 작업실을 지었다. 그 무렵은 일산 신도시 건설계획이 발표된 직후였기 때문에 살림집까지 작업실 근처로 옮기지는 못하고 우선 작업실부터 꾸렸다. 처음에는 살림집을 함께 꾸리려고 했지만, 당시의 성석동은 주변이 대부분 논밭인 시골마을이었던 터라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서울에서 살다가 신도시 건설 이후 일산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일산으로 간 것이 곧바로 독립적인 작업실을 가진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공간을 마련하기까지 적지 않은 기다림의 세월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서 조금씩 여력이 생길 무렵부터 그는 성석동 작업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석조작업을 하는 그의 작업공간은 휴게공간 건물과 철조작업공간 건물 사이의 뚫린 공간이었다. 두 건물 사이의 천장을 막은 틈새 작업실. 그는 그곳에서 묵묵히 돌을 쪼았다. 그 후로 철조작업공간에 딸린 작은 공간을 실내 석조작업공간으로 만들기까지도 몇 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심난한 요청 끝에 드디어 독립된 실내공간을 만들어 낸 그는 작가 남편 오상욱을 작업을 하는 데 커다란 힘이 되는 사람으로 내세우는 데 주저함이 없게 되었다. 그는 남편 오상욱의 부지런함을 강조한다. 그 부지런함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바깥에서의 남편의 부지런함은 역으로 안에서의 아내의 부지런함을 필요로 했다. 그는 지금 고3과 중3의 아이들을 키우는 수험생의 어머니이다. 이제 곧 어머니의 손을 벗어날 아이들이지만, 마지막 정성스러운 손길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 사람의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20년간 유지해온 가정에서의 역할분담은 이제 작업실에서도 서로 나누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작업실에서도 서로 도와주는 분업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들 부부의 최대 장점이다. 특히 공동협업체제를 중요시 하는 조소작가들의 경우에 더욱 절실한 것이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일이다. 작업 자체를 돕는 것도 돕는 것이지만, 예술가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돕는 마음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는가.

운보 김기창과 우향 박래현은 서로 작업에 대해 존중하며 침범하지 않았다. 하여 두 작가 모두 (물론 친일 문제는 빼고) 성공적인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부부 예술가의 경우 작업을 하기에 절대 불리한 여건을 가진 쪽은 여성이다. 서옥재 오상욱 부부가 유학을 위해서 파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거처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예정인 조소작가 김진영이 머무르던 곳이었다. 살던 집을 물려주고 온 김진영은 아이 키우랴 공부하랴 고생 많았던 당시의 새댁 유학생 서옥재를 떠올렸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유학을 마쳤다. 결혼한 여성이, 특히 여성 작가가 자신을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 남성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경제적 자활을 토대로 해야만 지속가능한 작업을 한다는 일이 부인으로서 어머니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넘어서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어려움을 오히려 남성작가의 고단함을 헤아리는 쪽으로 돌린다. 남자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것과 동시에 생계를 꾸리기 위해 작업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그의 반문이다. 그러고 보니 사실 대부분의 남성작가들이 봉착하는 예술적 위기라는 것도 사실은 경제적 위기의 이면이고 보면 여성작가 서옥재의 느린 걸음은 오히려 그를 건강한 예술가로 자리 잡게 하는 밑거름일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따끈따끈한 최근작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완성작은 물론 제작중인 작품을 대하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그런데 작업실이 그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작업실은 곧 수장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초기작에서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한 작가의 예술세계를 꿰뚫어 볼 수도 있는 살아있는 아카이브이다. 나아가 작업실은 수십 년 전부터 쌓아올린 작가적 삶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미래를 열어가는 공간이다. 그곳은 예술가 주체가 삶과 예술 사이에서 전투를 벌이는 곳이다. 작업의 치열한 여정이 베어있는 곳이자, 작업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다. 작업실은 작가로서의 삶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단서공간이다. 따라서 작업실은 새로운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작업장에서 만나는 작품은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품과는 다른 맛이 있다. 전시장에서 만났던 작품을 그의 작업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돌덩어리에 드로잉을 하고 그 선을 단서로 형태를 찾아나가고, 다시 드로잉하고 쪼아 나가기를 반복하는 그 어느 순간, 그러니까 돌덩어리가 형상을 찾아나가는 과정의 그 어느 대목에서 만나는 작업 중인 돌은 마치 새 생명이 껍데기를 벗고 나오다가 멈춰진 것 같은 정적의 형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술노동자의 공장, 작업실에는 작업도구들과 제작중인 작품들로 가득하다. 예술노동의 진한 체취가 묻어있는 곳이다. 작가 작업실에서 작업도구와 재료들, 진행 중인 작품들을 만나는 일은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이해의 국면을 열어준다. 그것은 재료의 특성과 제작 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돌 작업은 속도가 없어서 느긋하고 진득하게 작업을 해야만 하는 재료인데, 서옥재는 초지일관 돌을 다루는 작가이다. 모자를 눌러쓰고 ‘쪼쪼쪼’ 돌을 쪼는 서옥재의 모습은 그의 스승인 노대가 전뢰진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석조작가의 전형적인 아우라를 떠오르게 한다. 70대 중반의 노대가가 신림동 지하작업실에서 수십 년간 돌알 쪼아오고 있는 것처럼, 거대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틈새 작업실에서 묵묵하게 돌을 쪼며 강아지며 부엉이를 찾아내는 서옥재에게 있어 틈새 작업실의 뽀얀 돌가루들은 향후 그의 수십 년 삶에 있어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의 흔적으로 쌓여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는 30년 후에도 성석동 작업실에 가면 돌을 쪼는 서옥재를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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