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론실론 2] 오상욱 : 장독대작업실에서 종합공작소까지
critic & column | 2005/09/24 18:21

오상욱 : 장독대작업실에서 종합공작소까지
오상욱 최초의 스튜디오는 ‘장독대작업실’이었다. 대학원을 마친 후 홍은동 본가의 장독대를 비우고 천막을 쳐서 야외작업실을 만든 것이다. 그때가 1986년의 일이었다. 집안 가득 FRP 가루가 날리면서 도저히 작업을 지속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일산에 지금의 작업실 터를 마련했다. 하지만 곧바로 일산 작업실로 이주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학을 마치는 1993년까지 기나긴 준비기간을 거쳤다. 그가 성석동(정확히는 사리현동) 작업실을 차린 것은 동문후배이며 동료작가이자 아내인 서옥재와 함께 파리 유학시절을 마감한 후였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이듬해에 일산에 작업실을 지었다. 10여년이 지나면서 그의 작업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미개발 지역의 한적한 전원에 자리 잡은 오상욱 스튜디오는 이제 일산 신도시의 팽창을 실감할 만큼 교통량이 많아진 성석동의 또 다른 모습에 점차 적응해 가고 있다.
예술가의 활동 적령기인 오십 줄에 다가선 조소작가 오상욱. 할아버지 오지호 이래 아버지 오승우에 이어 예술가 집안의 가계를 이은 그는 구상인체 작업에서 추상적인 매스와 공간 작업을 거쳐 최근에는 빛의 요소들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의 다매체 실험 작업을 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작업실 출근시간은 아침 9시. 저녁6시 퇴근시간까지 예술노동자로서의 일상을 소화하는 그의 일터는 구파발을 지나 통일로를 따라 금촌 쪽으로 올라가다가 관산삼거리에서 좌회전 하면 도착하는 펑퍼짐한 야산이 있는 고양시의 동쪽 동네에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작업실은 조소작업의 갖가지 공구들로 가득차있다. 자르고, 붙이며, 깎아내며, 구부러트리고, 펼치며, 두드리고, 어루만지는 그 모든 작업들이 펼쳐지는 장이다. 하여 그의 작업실은 돌과 흙은 물론 크고 작은 철조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최근에는 네온에 이르기까지 조소작가가 다루는 거의 모든 매체 작업을 해결할 수 있는 종합공작소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그 어떤 작가의 작업실에 비해서도 월등히 많은 수와 양의 작업도구들을 만날 수 있다. 벽면에 빼곡히 들어찬 공구함에 제 모양대로 외곽선을 그려놓고 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두었다. 공구의 특성이나 배치가 작가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오상욱은 공구의 종류와 수에 비해 비교적 가지런하게 잘 정돈 된 작업실 배치를 가지고 있다. 철판을 두드리는 망치 하나에서부터 쇠막대기를 휘어내는 밴딩기계에 이르기까지 작업도구들을 어루만지는 그의 모습에서 노동을 통해서 예술이 길에 다다르는 ‘작업실의 작가’의 진한 맛이 묻어난다.

작가들의 창작은 아이디어 스케치를 끝낸 후 작품의 재료를 구하고 작업 도구를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특히 조소작가는 재료의 규정성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어떤 재료를 선택하느냐는 어떤 작업을 하느냐와 직결된다. 그는 조소작업에 있어서 재료의 규정성을 요리를 위해 시장 보러 가는 것에 비유한다. 어떤 식재료를 구입하느냐에 따라 그날의 요리가 결정되듯이 물질성과의 대결 국면이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하는 조소작업에 있어서 재료선택은 작업의 실질적인 시작이다. 공구에 대한 비유 또한 그의 독특한 언변을 실감하게 한다. 새의 부리와 작가의 도구는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부리의 생김새에 따라서 어떤 먹이를 어떻게 먹는지가 달라지듯이 어떤 도구를 쓰는가에 따라 재료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고 결국 작품의 구성과 주고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는 재료 조달을 위해 청계천과 문래동 일대를 답사하는 일을 거치는데, 요즘은 작업실 주변에 공장들이 생기면서 예전보다는 쉽게 공구를 구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인터넷망이 발달하면서 전자상거래를 하거나 전화 한 통화로 많은 것을 해결하는 것도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오상욱은 작품 재료나 형상화 방법에 있어서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작가이다. 그의 작업 스타일은 특정 매체에 대한 완전정복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용맹정진하는 것. 요즘 그가 주로 다루는 매체는 스테인레스이다. 최근에는 네온작업으로 자신이 평창 작업실 겸 미술관에 조명을 설치했다. 모란갤러리에서의 지난 번 개인전 때 선보였던 네온 조명을 이용한 선적인 이미지의 입체작품들이다. 구상과 추상, 인체와 매스, 공간과 빛에 이르는 전방위의 다매체 작가 오상욱의 진수는 매체 정복의 순간까지 지난한 예술노동을 거듭하는 숙련된 손의 힘에서 나온다. 초기에는 아무래도 흙작업을 주로 했고 보존성이 없는 흙을 석고나 폴리코트로 옮기거나 브론즈로 떠서 영구보관 하기도 했다. 파리유학시절 이후에 사물을 이어 붙여 전혀 다른 형상을 만드는 앗상블라주 작업에 심취했는데, 그것은 오늘날 그가 다양한 방식의 철조작업으로 형상작업과 추상작업을 병행하는 첫걸음을 열어주었다. 그의 초기작들은 단지 중진작가 오상욱의 현재모습을 위한 준비기간인 것만은 아니다. 그의 20대와 30대 초반의 작품들은 오늘날의 다양한 철조작업과 모뉴멘탈한 대형 작업들을 뒷받침하는 소중한 재산들이다. 이후에 그는 흙작업은 물론, 석고, 시멘트 등의 성형 재료들과 각종 금속들을 다루는 작업을 해왔다.
그의 하드코어 작업장 옆방은 작은 갤러리이다. 소품 작업들과 에스키스들이 가득 차 있고, 드로잉들로 벽면이 빼곡하다. 옆 공간이 공작실이라면 내실은 휴식과 준비의 공간이다. 휴게공간은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작가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밤늦은 시간까지 후배 작가들과 함께 고양시에서 열리는 고양조각가협회 전시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그의 작업실은 작품 창작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지역문화 교류와 행정의 산실이기도 한 셈이다. 그는 30대 후배작가들과 함께 성석동 일대는 물론 고양시 전체의 작가들과 함께 여러 가지 미술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문화행정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는 파리 유학시절을 거치면서 터득한 특유의 유연한 문화 마인드로 다양한 예술적 장치를 만들고 있다. 파리의 바스티유 오픈 스튜디오를 예로 들면서 관람객이 찾는 작업실 개념을 적극 옹호하는 그는 일산오픈스튜디오의 이모저모에 대해 세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동네작가들의 네트워킹에 관한 그의 관심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외부와 나누고자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데, 그런 점에서 오상욱은 일산오픈스튜디오 작가들에게 있어 좋은 선배 작가이자 동시에 좋은 동료작가이다. 오상욱의 문화행정 마인드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세운 무이조각공원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는 폐교를 조각공원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자신의 초기작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대표작들을 그곳 야외조각공원에 설치해두었다.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그는 성실하고 진지하게 자신을 투여했고, 성공적인 지역의 문화명소로 자리 잡았다. 근간에는 중국 칭따오에서도 작업장과 전시장 개념을 겸비한 대규모 공간을 기획하고 있다. 일산에 자리잡고 있는 작가 오상욱은 그냥 그곳 주거공간과 작업실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강원도에도 있고, 칭따오에도 있으며, 온라인에도 있다. 따라서 그는 발달한 교통망과 통신망으로 이루어진 현대사회의 네트워킹 시스템을 십분 활용하는 빠른 발과 너른 발을 가진 작가이다.
그에게 있어 최근의 정력적인 활동에는 개인적인 변모 한 가지가 또 다른 에너지로 작동하고 있다. 그동안 오상욱이라는 작가에게 있어서 음주활동은 빼놓을 수 없는 화제였다. 홍대 조소과 동문이자 소조각회 동인이었던 작고작가 류인과 쌍벽을 이루었다고 전해질 정도의 음주활동이었다. 류인은 오랜 음주 끝에 이승과의 인연을 끊었고, 오상욱은 이승에서 음주와의 인연을 끊었다. 음주활동을 접기 위해 금주학교에 수개월을 다니면서 끝내 금주에 성공한 얘기는 그를 아는 미술인들이면 하나같이 입을 모으는 입지전적인 성공담이다. 몇 해 전 강원도 평창 그의 작업실에서 매우 인상적인 음주의 밤을 함께 한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약간의 불편함은 없지 않지만) 그의 따뜻한 마음과 성실한 손길이 음주활동을 접은 이후에도 더욱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으므로 그의 금주가 마냥 서운하지만은 않다. 일산오픈스튜디오 작가들의 실험이 또 다른 형태의 예술공동체의 모습으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건강한 삶이 후배 작가들에게 희망으로 존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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