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바란다
critic & column | 2005/09/23 09:05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바란다
자치분권과 정보화시대의 예술공론장을 향하여
문화예술진흥원이 민간의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했다. 국가공동체 단위의 문화예술을 다루는 민간 기구라면 보다 유연하게 창작지원사업과 민간네트워킹을 연동하는 정책기조를 세워야 한다. 지금까지의 문예진흥원이 장르와 권역과 세력들 간의 안배를 중심으로 잘 짜여진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면, 앞으로는 큰 틀의 정책기조를 중심에서 주변으로 옮겨서 작은 것들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문화예술 네트워킹을 만드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과 사회의 자율성과 공공성의 공존 모색, 탈중심적인 자치분권의 시대정신, 정보화시대의 네트워킹. 이 세 가지가 민간 위원회 시대의 문화예술 네트워킹의 요체이다. 민간 기구로 거듭나는 위원회의 정책기조 수립을 위해서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대두하는 양대 축선은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의 문제이다. 자율성과 공공성의 공존 모델을 만드는 일을 예술과 사회의 통합적 관점에서 숙고해야 할 것이다. 양자를 상호 배치되는 개념으로 둘 것이 아니라 공존 가능한 가치로 설정하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예술의 대사회적 자율성을 옹호하여 예술가들의 창의력 상상력을 실천적 차원에서 지켜내고, 예술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예술영역을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공존의 모델 위에 세워두기 위한 새로운 합의가 있어야한다.
민간의 합의체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위원회는 자치와 분권이라는 탈근대적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지방문화예술위원회를 설정해 두고 있는 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심과 변방의 논리가 자치와 분권의 시대의 탈중심적인 구도로 변모할 것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기획이다. 비단 문화예술 분야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변화는 이 시대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 영역의 지방 분권화는 발걸음이 더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방대한 규모와 역학관계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강고한 기득권의 저항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문화예술 영역에 있어서는 오히려 새롭게 토양을 다지고 씨앗을 뿌려서 열매를 얻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인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자리 잡을 여력이 없었던 탓에 다른 영역에 비해 다소 완고해 보이는 각질의 지층 아래는 풍부한 연성의 토양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지원금 분배 방식에 있어서 중앙집중식 방식을 탈피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지원과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권 옹호를 지자체 단위의 지방위원회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역분산의 묘미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적 자치와 분권의 실현이 당장은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창의적인 향유자 계층과의 접점을 형성하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방향이라는 점 깊이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자치분권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중심의 해체와 맞물려 돌아가야 할 사안이 있다. 문화예술 공동체라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주의 문화예술은 그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이론이자 실천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지역주의 문화예술운동은 이제 맹아기를 지나 발아기를 넘어서고 있다. 이것은 절대다수의 예술가들을 허망한 인터내셔널 추종 시스템 속으로 몰아넣거나 인사동과 같은 특구 속의 미술계를 지향하도록 하는 무기력하면서도 무책임한 대한민국 미술계로부터 구출해내는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시각예술가 지망생들을 보유한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넘어서는 길은 그들의 관심사를 인터내셔널의 미망으로부터, 혹은 자본주의 미술시장의 환상으로부터 생기발랄한 삶의 현장으로 인도하는 데 있다. 국제비엔날레나 인사동을 선망하지 않고서도 지역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함께 시각예술의 생동감을 바탕으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 토양은 문화예술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한국사회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최강의 정보화 사회를 향해 내달음질 하고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양대 축으로 굴러가는 정보화 시대의 예술전략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네트워킹 마인들에서 나온다. 하지만 예술정보화 전략부재 현상은 여타의 분야와 마찬 가지로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문화예술의 정보화에 관해서는 수많은 기관 단체나 거대기구, 소수집단들이 각자 다른 모양으로 접근해왔다. 수많은 문화예술 컨텐츠가 생산된다. 고뇌하는 영혼과 노동하는 손길이 빚어낸 우리시대의 예술 생산물들이 쏟아지곤 명멸해간다. 이들 정보들을 축적하는 창고 수준이라도 좋다. 문화예술 컨텐츠 네트워킹의 첫걸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놀랍게도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인터넷 그물망을 형성하는 일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산발적으로 흩어진 정보를 집결할 수 있는 시각예술 분야의 독립서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시각예술 컨텐츠의 공공영역 확보를 위해서 인터넷 상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작가들의 개별 인터넷 사이트에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엮어내는 네트워킹 대안을 마련하고, 전통적인 매체의 시각예술 작품들을 전산화하고,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구축하여 아카이브화 해야 한다.
최근 들어 사회에 대한 직간접적인 개입과 참여의 영역으로 예술의 지평을 확장하는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실천이 많아지고 있다. 공동체적 가치를 옹호함으로써 특정장소나 상황에 대한 맥락화와 예술적 개입으로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미술행위와 더불어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의 예술의 한계상황을 각성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각예술의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으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뉴미디어 아트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시각예술 매체들의 소통 가능성을 배가하려는 창작자들과 향유자들의 시도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막연한 구호를 앞세워 예술의 대중화를 부르짖는 일보다 훨씬 간결한 구체성을 가지는 예술정책의 기조로 삼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떨리는 손길로 붓을 잡고 화폭을 마주하는 작업실의 화가에서 삭막한 벽에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벽화를 그리는 현장의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전시장을 찾아 작품 앞에서 영혼의 울림을 주고받는 관람객에서 도심 속 어디에선가 답답한 도시에 구멍 뚫린 듯 마음 문을 열어주는 예술작품을 만나는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국제비엔날레에 뽑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에서 후미진 마을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민간의 합의체 문화예술위원회의 자상하면서도 너른 마음이 머무르기를 기대한다. 자본과 권련의 논리로 문화예술의 가치를 가늠하는 어려운 시대에 문화예술위원회야말로 새로운 가치정향을 가지고 예술 창작과 향유를 공리적 차원에서 융합하여 열린사회의 문화예술적 생산의 관점을 세워줄 새로운 희망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예술학)
자치분권과 정보화시대의 예술공론장을 향하여
문화예술진흥원이 민간의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했다. 국가공동체 단위의 문화예술을 다루는 민간 기구라면 보다 유연하게 창작지원사업과 민간네트워킹을 연동하는 정책기조를 세워야 한다. 지금까지의 문예진흥원이 장르와 권역과 세력들 간의 안배를 중심으로 잘 짜여진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면, 앞으로는 큰 틀의 정책기조를 중심에서 주변으로 옮겨서 작은 것들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문화예술 네트워킹을 만드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과 사회의 자율성과 공공성의 공존 모색, 탈중심적인 자치분권의 시대정신, 정보화시대의 네트워킹. 이 세 가지가 민간 위원회 시대의 문화예술 네트워킹의 요체이다. 민간 기구로 거듭나는 위원회의 정책기조 수립을 위해서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대두하는 양대 축선은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의 문제이다. 자율성과 공공성의 공존 모델을 만드는 일을 예술과 사회의 통합적 관점에서 숙고해야 할 것이다. 양자를 상호 배치되는 개념으로 둘 것이 아니라 공존 가능한 가치로 설정하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예술의 대사회적 자율성을 옹호하여 예술가들의 창의력 상상력을 실천적 차원에서 지켜내고, 예술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예술영역을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공존의 모델 위에 세워두기 위한 새로운 합의가 있어야한다.
민간의 합의체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위원회는 자치와 분권이라는 탈근대적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지방문화예술위원회를 설정해 두고 있는 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심과 변방의 논리가 자치와 분권의 시대의 탈중심적인 구도로 변모할 것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기획이다. 비단 문화예술 분야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변화는 이 시대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 영역의 지방 분권화는 발걸음이 더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방대한 규모와 역학관계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강고한 기득권의 저항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문화예술 영역에 있어서는 오히려 새롭게 토양을 다지고 씨앗을 뿌려서 열매를 얻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인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자리 잡을 여력이 없었던 탓에 다른 영역에 비해 다소 완고해 보이는 각질의 지층 아래는 풍부한 연성의 토양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지원금 분배 방식에 있어서 중앙집중식 방식을 탈피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지원과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권 옹호를 지자체 단위의 지방위원회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역분산의 묘미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적 자치와 분권의 실현이 당장은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창의적인 향유자 계층과의 접점을 형성하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방향이라는 점 깊이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자치분권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중심의 해체와 맞물려 돌아가야 할 사안이 있다. 문화예술 공동체라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주의 문화예술은 그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이론이자 실천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지역주의 문화예술운동은 이제 맹아기를 지나 발아기를 넘어서고 있다. 이것은 절대다수의 예술가들을 허망한 인터내셔널 추종 시스템 속으로 몰아넣거나 인사동과 같은 특구 속의 미술계를 지향하도록 하는 무기력하면서도 무책임한 대한민국 미술계로부터 구출해내는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시각예술가 지망생들을 보유한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넘어서는 길은 그들의 관심사를 인터내셔널의 미망으로부터, 혹은 자본주의 미술시장의 환상으로부터 생기발랄한 삶의 현장으로 인도하는 데 있다. 국제비엔날레나 인사동을 선망하지 않고서도 지역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함께 시각예술의 생동감을 바탕으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 토양은 문화예술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한국사회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최강의 정보화 사회를 향해 내달음질 하고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양대 축으로 굴러가는 정보화 시대의 예술전략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네트워킹 마인들에서 나온다. 하지만 예술정보화 전략부재 현상은 여타의 분야와 마찬 가지로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문화예술의 정보화에 관해서는 수많은 기관 단체나 거대기구, 소수집단들이 각자 다른 모양으로 접근해왔다. 수많은 문화예술 컨텐츠가 생산된다. 고뇌하는 영혼과 노동하는 손길이 빚어낸 우리시대의 예술 생산물들이 쏟아지곤 명멸해간다. 이들 정보들을 축적하는 창고 수준이라도 좋다. 문화예술 컨텐츠 네트워킹의 첫걸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놀랍게도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인터넷 그물망을 형성하는 일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산발적으로 흩어진 정보를 집결할 수 있는 시각예술 분야의 독립서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시각예술 컨텐츠의 공공영역 확보를 위해서 인터넷 상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작가들의 개별 인터넷 사이트에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엮어내는 네트워킹 대안을 마련하고, 전통적인 매체의 시각예술 작품들을 전산화하고,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구축하여 아카이브화 해야 한다.
최근 들어 사회에 대한 직간접적인 개입과 참여의 영역으로 예술의 지평을 확장하는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실천이 많아지고 있다. 공동체적 가치를 옹호함으로써 특정장소나 상황에 대한 맥락화와 예술적 개입으로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미술행위와 더불어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의 예술의 한계상황을 각성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각예술의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으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 뉴미디어 아트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시각예술 매체들의 소통 가능성을 배가하려는 창작자들과 향유자들의 시도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막연한 구호를 앞세워 예술의 대중화를 부르짖는 일보다 훨씬 간결한 구체성을 가지는 예술정책의 기조로 삼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떨리는 손길로 붓을 잡고 화폭을 마주하는 작업실의 화가에서 삭막한 벽에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벽화를 그리는 현장의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전시장을 찾아 작품 앞에서 영혼의 울림을 주고받는 관람객에서 도심 속 어디에선가 답답한 도시에 구멍 뚫린 듯 마음 문을 열어주는 예술작품을 만나는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국제비엔날레에 뽑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에서 후미진 마을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민간의 합의체 문화예술위원회의 자상하면서도 너른 마음이 머무르기를 기대한다. 자본과 권련의 논리로 문화예술의 가치를 가늠하는 어려운 시대에 문화예술위원회야말로 새로운 가치정향을 가지고 예술 창작과 향유를 공리적 차원에서 융합하여 열린사회의 문화예술적 생산의 관점을 세워줄 새로운 희망이기 때문이다.
김준기 (예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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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임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바란다
자치분권과 정보화시대의 예술공론장을 향하여
문화예술진흥원이 민간의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했다. 국가공동체 단위의 문화예술을 다루는 민간 기구라면 보다 유연하게 창작지원사업과 민간네트워킹을 연동하는 정책기조를 세워야 한다. 지금까지의 문예진흥원이 장르와 권역과 세력들 간의 안배를 중심으로 잘 짜여진 지원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면, 앞으로는 큰 틀의 정책기조를 중심에서 주변으로 옮겨서 작은 것들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문화예술 네트워킹을 만드는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과 사회의 자율성과 공공성의 공존 모색, 탈중심적인 자치분권의 시대정신, 정보화시대의 네트워킹. 이 세 가지가 민간 위원회 시대의 문화예술 네트워킹의 요체이다. 민간 기구로 거듭나는 위원회의 정책기조 수립을 위해서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대두하는 양대 축선은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의 문제이다. 자율성과 공공성의 공존 모델을 만드는 일을 예술과 사회의 통합적 관점에서 숙고해야 할 것이다. 양자를 상호 배치되는 개념으로 둘 것이 아니라 공존 가능한 가치로 설정하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예술의 대사회적 자율성을 옹호하여 예술가들의 창의력 상상력을 실천적 차원에서 지켜내고, 예술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예술영역을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공존의 모델 위에 세워두기 위한 새로운 합의가 있어야한다.
민간의 합의체로 이루어지는 문화예술위원회는 자치와 분권이라는 탈근대적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틀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지방문화예술위원회를 설정해 두고 있는 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심과 변방의 논리가 자치와 분권의 시대의 탈중심적인 구도로 변모할 것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기획이다. 비단 문화예술 분야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변화는 이 시대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 영역의 지방 분권화는 발걸음이 더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방대한 규모와 역학관계로 인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강고한 기득권의 저항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문화예술 영역에 있어서는 오히려 새롭게 토양을 다지고 씨앗을 뿌려서 열매를 얻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인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자리 잡을 여력이 없었던 탓에 다른 영역에 비해 다소 완고해 보이는 각질의 지층 아래는 풍부한 연성의 토양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지원금 분배 방식에 있어서 중앙집중식 방식을 탈피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지원과 국민의 문화예술 향유권 옹호를 지자체 단위의 지방위원회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지역분산의 묘미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적 자치와 분권의 실현이 당장은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창의적인 향유자 계층과의 접점을 형성하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방향이라는 점 깊이 헤아려봐야 할 것이다. 자치분권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데 있어서 중심의 해체와 맞물려 돌아가야 할 사안이 있다. 문화예술 공동체라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주의 문화예술은 그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이론이자 실천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지역주의 문화예술운동은 이제 맹아기를 지나 발아기를 넘어서고 있다. 이것은 절대다수의 예술가들을 허망한 인터내셔널 추종 시스템 속으로 몰아넣거나 인사동과 같은 특구 속의 미술계를 지향하도록 하는 무기력하면서도 무책임한 대한민국 미술계로부터 구출해내는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시각예술가 지망생들을 보유한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넘어서는 길은 그들의 관심사를 인터내셔널의 미망으로부터, 혹은 자본주의 미술시장의 환상으로부터 생기발랄한 삶의 현장으로 인도하는 데 있다. 국제비엔날레나 인사동을 선망하지 않고서도 지역공동체의 구성원들과 함께 시각예술의 생동감을 바탕으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 토양은 문화예술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한국사회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최강의 정보화 사회를 향해 내달음질 하고 있다.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양대 축으로 굴러가는 정보화 시대의 예술전략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네트워킹 마인들에서 나온다. 하지만 예술정보화 전략부재 현상은 여타의 분야와 마찬 가지로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문화예술의 정보화에 관해서는 수많은 기관 단체나 거대기구, 소수집단들이 각자 다른 모양으로 접근해왔다. 수많은 문화예술 컨텐츠가 생산된다. 고뇌하는 영혼과 노동하는 손길이 빚어낸 우리시대의 예술 생산물들이 쏟아지곤 명멸해간다. 이들 정보들을 축적하는 창고 수준이라도 좋다. 문화예술 컨텐츠 네트워킹의 첫걸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놀랍게도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인터넷 그물망을 형성하는 일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산발적으로 흩어진 정보를 집결할 수 있는 시각예술 분야의 독립서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시각예술 컨텐츠의 공공영역 확보를 위해서 인터넷 상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작가들의 개별 인터넷 사이트에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엮어내는 네트워킹 대안을 마련하고, 전통적인 매체의 시각예술 작품들을 전산화하고,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구축하여 아카이브화 해야 한다. 최근 들어 사회에 대한 직간접적인 개입과 참여의 영역으로 예술의 지평을 확장하는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실천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의 열정 위에 민간의 합의체 문화예술위원회의 자상하면서도 너른 마음이 머무르기를 기대한다. 자본과 권련의 논리로 문화예술의 가치를 가늠하는 어려운 시대에 문화예술위원회야말로 새로운 가치정향을 가지고 예술 창작과 향유를 공리적 차원에서 융합하여 열린사회의 문화예술적 생산의 관점을 세워줄 새로운 희망이다.
김준기 (예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