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M's Public Art Story 19 : Claes Oldenburg, SPRING, Seoul Ceong-gyeocheon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08/31 14:42


GIM's Public Art Story 19 : Claes Oldenburg, SPRING, Seoul Ceong-gyeo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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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공원의 개념을 넘어서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은 청계천, 특히 여러차례의 촛불문화제가 진행되며 청계 광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여러가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청계광장에 우뚝 솟아 있는 Claes Oldenburg의 작품 'SPRING'을 소개합니다. 작품의 이름처럼 청계천의 생명과 생태, 소생의 의미를 담고자 한 작품이지만 조개 껍데기의 형상이 의미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작품에 관한 여러가지 논란이 일기도 했던 작품입니다.

그리고 역시 거의 모든 공공미술 작품이 그러하 듯 이 작품 또한 시민들이 가까이, 친근하게 즐길 수 있는 대상이라기 보다는 20세기 근대적 개념으로 권위적으로 우뚝서서 광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스쳐 지나갔거나 주변에서 촛불을 밝혔을 작품 SPRING의 속내를 감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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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torycubic.co.kr/cubic?contents_id=294


도시의 콘텍스트와 동행하는 텍스트 생산을 위하여 - <아트 인 부산 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 서문

critic & column | 2008/08/28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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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콘텍스트와 동행하는 텍스트 생산을 위하여

<아트 인 부산 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 서문

부산시립미술관 개관 10년을 맞이하여 부산을 다루는 미술 프로젝트를 펼쳤다. 부산을 다루는 예술로서의 가치 지향을 담겠다는 의중을 표현하기 위해서 ‘아트 인 부산’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그것도 2008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부산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내러티브를 들여다본다는 데에 방점을 찍기 위해서 ‘아트 인 부산 2008’이라는 틀을 갖췄다. 나아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익숙한 문구를 캐치프레이즈로 달면서 개관 10주년을 맞아 부산 출신으로서 타지에 나가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부산으로 초청한 작가 구성을 반영했다. 이외에도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과 부산을 방문한 타 지역의 작가들, 그리고 부산 지역의 대학생들을 포괄해서 참여작가를 구성한 것은 단일한 주제 의식을 설정해서 계몽적 서사를 유포하기 보다는 10년의 역사를 가진 부산시립미술관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가져야 하겠는지를 큰 틀에서 가늠해보기 위함이었다.

이 전시는 작품의 생산과 소통 과정 전반에 상호 토론과 참여와 개입을 통해서 미술관 전시가 도시의 면면과 조우하고 관계 맺는 담론 생산의 장으로 기능하고자 했다. 부산의 생태와 풍경, 사람과 삶, 욕망과 사회를 읽어내겠다는 목표 설정에 접근하기 위해서 워크숍과 세미나를 열어 부산이라는 도시에 접근하기 위한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일어난 기획자와 작가의 소통 과정 또한 가능한 한 상호주관성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촉박한 시간과 빠듯한 예산을 가지고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토론 프로그램들을 진행한 것은 단기적인 실효를 거두는 것 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새로운 기획 패러다임을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토론의 자리는 미술작품 생산을 위한 비평적 담론의 자리인 동시에 예술이 도시와 조응하는 방식에 관해서 열린 자세와 방법론을 준비하는 자리기도 했다. 이러한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시 준비 과정에서 부산과 서울에서 워크숍을 열어 전시의 취지를 설명하고 작가들의 생각을 들어보았으며, 전시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논점들을 찾아 토론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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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 지역성 등과 동행하는 비평적 실천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미술관의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것 또한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미술관의 당면 현안이었다. 하여 이 전시는 ‘아트 인 부산 2008’이라는 타이틀 아래 부산의 지역성에 발견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연례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부산의 시간과 공간, 장소성과 역사성을 다루는 이 전시를 통해서 시민사회 속에 한 걸음 다가서는 미술문화의 장이 펼쳐지기를 기대했다. 물론 시각예술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많이 가지고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미술문화와 시민사회를 단선적으로 연결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예술가들이 고유의 아성 바깥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는 태도를 가지는 시발점으로 자리잡기를 바랐다.

각자 다른 입장을 가진 많은 주체들이 전시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일반 시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나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이 예술작품으로 등장했다는 점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많은 미술인들은 이렇게 많은 좋은 작가들이 부산과 인연을 맺고 있다는 데에 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산과 서울의 신문과 방송, 미술전문지 등 다양한 언론의 관심은 10년의 역사를 만들어온 부산의 미술문화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관료사회에 몸담고 있는 관객들은 부산의 문화, 생태적 가치를 재발견해낸 예술가들의 관점과 표현 방식을 문화정책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부산의 예술생태를 지키며 활동해온 선배세대들의 고군분투에 비해서 동시대의 미술문화는 한층 고무적인 것이라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참여 작가 62인(팀)은 전 장르에 걸쳐있다. 평면, 입체, 사진,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총망라했다. 부산출신으로 부산을 떠나 활동하고 있는 작가 29인이 78점을 출품했고,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 14인(팀)이 82점과 1건의 작품을 출품했다. 다른 지역에서 부산을 찾아 작업한 작가 14인이 26점을 냈으며, 경성대, 부산대, 동아대, 동의대, 신라대, 그리고 부산 인근 도시인 울산대 등 6개 대학의 교수와 학생이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술관 전관과 바깥 공간에 설치된 출품작들은 개별작품 186점과 공동작업 7건이었다. 출품작의 수와 규모가 막판까지 유동적이었던 점은 불안정 요소인 동시에 성공의 요인이기도 했다. 미술관이 제시한 개관 10주년 기념전이라는 외형적인 틀거리 뿐만 아니라 부산을 다루는 프로젝트라는 데에 동의한 작가들의 열정은 이 전시를 만든 커다란 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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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로비 공간과 2층, 3층 전시장 전관, 그리고 미술관 건물 외벽과 정원, 나아가 미술관 주변에 이르기까지 이 전시의 참여작가들은 가능한 모든 공간을 활용했다. 이 전시가 일정 정도의 외형적 규모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규모가 큰 작품들을 배치하기보다는 여러 공간에서 다양한 방식의 작품이 자리할 수 있도록 배치의 묘미를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 전시가 부산의 인물과 풍경을 다룬 미술관 소장품 전시와 병행했다. 소장품 전시와 신작들이 서로 다른 공간에 배치됨으로써 동반 상승 작용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미술문화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방법론 가운데 하나를 확인한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옛 것과 요즘 것, 기성의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전시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인물이나 풍경을 다루는 일은 부산 특정성에 접근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회화와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접근한 작가들의 부산 읽기는 동일한 내러티브일지라도 얼마만큼 차별화한 스타일로 다루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시각적 자극과 감동을 선사하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하철 입구에서 미술관에 이르는 바깥 공간에 조형 작품을 설치하거나 미술관 건물의 기둥과 난간을 플래카드로 둘러싼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옥외공간을 점유한 조형 설치 작업들은 이 프로젝트가 지향한 장소특정성이라는 이슈를 담고 있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은 영상과 퍼포먼스, 그래피티, 설치, 회화 등 매우 광범위한 접근으로 자신들의 현주소지인 부산에 접근했다. 리서치 베이스의 프로젝트들도 조형에 얽매인 작금의 흐름에 경종을 울려주었다. 많은 작가들이 부산의 면면을 섬세한 촉수로 깊게 들여다보았고, 그 결과 동영상 인터뷰와 사진, 개념 설치 등 다양한 방식의 도큐먼트가 이루어졌다.

부산 출신 작가들의 옛작업들도 감동적이었다. 60년대나 70년대에 그린 오래된 그림들을 선보인 부산출신 작가들의 구작은 예술가를 길러낸 삶의 터전 부산의 과거를 동시대의 미술공론장으로 발신했다. 부산을 찾은 타지역의 작가들은 독특한 시각으로 부산을 읽어냈다. 바다의 도시, 항구 도시 부산을 찾은 이들은 바다뿐만 아니라 산동네에 이목을 집중했다. 산으로 둘러 쌓인 도시의 풍경, 산허리를 굽이치는 산복도로 마을의 정취는 부산이 소중하게 다루어야할 가까운 과거의 유산을 재발견하게 했다. 부산과 인근에 있는 대학 교수들이 디렉터를 맡아서 학생들의 작업 과정에 동참해서 만든 학생들의 공동작업은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이웃도시 울산에서 부산을 찾은 미대생들이 부산의 과거와 미래를 성찰하는 도큐멘터리 작업을 선보였다. 미술관 바깥 공간이 유쾌한 웃음의 조형공간으로 변모하기도 했으며, 안창마을에서 벌어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아카이빙 전시도 열리고, 영상이나 사진, 설치 작업으로 부산을 새롭게 보여주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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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가 의도하는 ‘도시의 콘텍스트와 동행하는 텍스트 생산’은 필연적으로 지역성 논의와 만난다. 중앙과 지역, 글로벌과 로컬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 시도는 글로컬리즘이라는 절충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 대안으로 ‘지역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을 견인하는 예술전략’이 필요하다.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think global, act local)'는 이 언명은 지역과 세계의 유기적인 연대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세계화의 위계화 전략이 숨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성을 성찰하는 예술, 지역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지평 속에서 예술적 실천을 가늠해온 성과들에 대해 집중함으로써, 예술 영역에 있어서 ‘지역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을 강조하는 새로운 전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지역성 논의는 중앙과 지방이라는 낡은 이분법을 넘어설 때 새로운 문화생산의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성이라는 이슈는 동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제반 영역에 걸쳐 전지구적인 변화는 물론 개인의 삶의 질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동시대 최전선의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로컬한 삶의 단위 속에서 벌어지는 삶의 정황들에 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하는 작업 태도를 담고 있어야 한다. 예술적 지역성은 이런 방식의 체험을 통해서 내적 필연성으로 가득 차있는 진정성을 관통하지 않고는 공허한 상상적 허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역성 논의를 통해서 부산의 정체성을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원적인 것으로 재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일한 정체성을 고집하는 폐쇄적인 지역성 논의는 또 다른 중심주의 사고를 고착화하곤 한다.

폐쇄적인 지역성 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상호지역주의(inter-localism)에 관한 비상한 관심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상호(inter-)’란 중심과 주변,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의 이분법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상호성을 말한다. 한국의 경우 서울과 부산이라는 이분법에 입각하자면 중앙과 지방, 1등과 2등이라는 고착화한 구도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상호지역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부산은 서울과 관계맺는 동시에 대구나 대전, 광주와 만날 수 있고, 베이징과 도쿄를 만나는 동시에 상하이와 후쿠오카를 만날 수 있다. 이렇듯 상호지역성에 입각한 다차원적인 시각이야말로 오늘날 ‘지역’이라는 개념아래 숨어있는 폐쇄성을 극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아트 인 부산’이라는 프로젝트도 상호지역주의의 틀을 가지고 부산의 내부와 부산의 외부를 부지런히 넘나들면서 부산을 재발견하는 예술생산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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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성 담론은 나아가 예술의 공공성 논의와 동행한다. 공공성이란 공공장소라고 할 때의 물리적 공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생산과 향유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예술적 소통을 시도하며 이를 통해서 문화생산의 맥락까지도 끌어들이려는 공공영역의 문제이다. 조금 더 확대해서 해석해보자면 예술에 있어서의 공공성이란 ‘예술적인 공론의 장’을 형성하려는 시도이다. 예술공론장은 오늘날 국가 공권력이 대변하고 있는 공공성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공공영역의 범주는 극히 한정적이다. 부산의 현실정치세력과 언론, 시민사회의 현실이 말해주듯이 부산은 개방적인 가능성을 가진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매우 완고한 틀이 지속가능한 도시이다. 시민들의 생활문화 속에도 프로야구와 같은 스포츠 마케팅이 부산의 이미지를 대변할 정도로 초보적이고 말초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예술을 통해서 공공영역을 말하는 일이란 쉽지 않아 보인다.

예술적 공공영역은 매스 미디어가 토해내고 있는 여론이라는 극악한 형태의 공공성과 판이하게 다르다. 이들의 공공적인 예술은 거대하게 우뚝 서서 대중들을 향해 웅변하지 않으며 현란한 색채와 조명과 몸짓으로 빈곤한 컨텐츠의 공허함을 위장하려 들지 않는다. 예술이란 익명의 대중을 향해 카리스마 넘치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크던 작던 공공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매우 낮은 목소리의 소통일수도 있다. 예술공론장은 국가나 언론처럼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대규모의 정치적 맥락을 가진 것이라기보다는 지역 공동체 단위의 예술적 소통을 통해서 그 모습을 가늠해볼만한 소규모의 정치적 맥락을 가진 것이다. 생산과 소비가 대량화 되고 정보양식의 변천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지구적인 차원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상호연관이 옥죄어 오는 상황 속에서 예술의 이름으로 소통 가능성을 지향하는 일은 앞서 말한 지역성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예술적 실험에 직면해 있다. 예술에 있어서의 지역성 논의는 문화적 세계화에 대안이자 근대를 넘어서 탈근대적 지평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공영역의 황폐화를 극복하는 대안이기도 하다.

시각예술이 근대적 시스템을 갖추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탈근대를 이야기하는 지금도 여전히 미술관은 주요한 공론의 장이다.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형성되는 공공영역으로서의 미술관은 근대의 약속을 담고 있는 보수적인 기관이며, 동시에 미술관 바깥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문화정치를 견인하는 진보적인 기관이기도 하다. 부산시립미술관이 처한 입장은 매우 양가적일 수밖에 없다. 이 양면성 가운데 어떤 가치를 옹호할 것인가를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구분할 여력이나 근거도 없어 보인다. 새로운 10년의 길목에 서서 뒤를 돌아보며 동시에 앞을 내다보는 시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부산이라는 거대도시의 콘텍스트와 동행하는 텍스트 생산이 필요하다. <아트 인 부산 2008 :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돌아보는 이 카탈로그에서 프로젝트 자체의 성과나 한계를 발견하기보다 부산이라는 거대도시가 처한 문화정치적 맥락에서 공공미술관이 감당해야할 역할을 재발현해주기를 기대한다. 지난 80년의 미술문화 속에서 지역성과 보편성을 발견하는 일과 동시대의 문맥 속에서 예술적 실천을 가늠하고 미래비전을 만드는 일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한 몸으로 붙어있기 때문이다.

김준기 (부시미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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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섭지코지에 달떴다 : 휘닉스아일랜드 공공미술

critic & column | 2008/08/2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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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섭지코지에 달떴다 : 휘닉스아일랜드 공공미술


제주도에 새로운 달이 떴다. 아름다운 남도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달이 떴다. 광풍제월(光風祭月). 안종연의 달이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 옆의 섭지코지, 바다와 땅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공공미술 작품이다. 안종연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을 차용했다.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한 인품을 형용한 말’이 광풍제월(光風霽月)이다. 인왕제색(仁王霽色)과 같은 ‘갤 제(霽)’자를 쓴다. 그런데 안종연은 이 글자를 ‘제례(祭禮)의 제(祭)’자로 고쳐 썼다. 광풍제월(光風祭月). 빛과 바람을 모셔두는 제단에 떠오른 달이다. 안종연은 피라미드 제단 형상의 마리오 보타 건축에 제의적 서사를 가미해서 건축과 미술의 동행을 실행했다.

마리오 보타의 건축물 속에 자리잡은 안종연의 이 작품은 바다와 만나는 땅에 덩그러니 떠있는 '지상의 달'이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지키는 '푸르른 달'이다. 마리오 보타는 철재구조물로 피라미드를 만들고 유리로 마감한 공간의 천정부분을 열어두었다. 그 아래 안종연의 달이 떴다.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와 판재를 이용해 만든 지름 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달이다. 얼마나 섬세한 미학적 배려와 촘촘한 구조 계산과 지난한 노동을 투여했을까. 그러나 안종연의 작품은 노동과 물질에 머무르지 않는다. 거대한 자연과 만나는 예술적 소통을 위해 제단 위에 달을 띄운 안종연은 물질로서의 예술 저 너머로 시선을 돌릴 줄 아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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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축소판으로서 좁은 땅(협지, 狹地)을 뜻하는 '섭지'와 곶(串)을 뜻하는 '코지'라는 말이 합쳐진 섭지코지에 새로 들어선 대규모 휴양관광단지 휘닉스아일랜드가 들어섰다. 이곳의 모든 시설 배치는 땅의 기운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땅 위에 집을 짓는 것 자체가 이미 땅을 파헤쳐 인공을 얹는 것이니 자본 증식을 위한 개발 논리가 제아무리 자연에 대한 순응을 이야기한다고 한들 그 말이 곶이 들릴 리 없다. 땅에 대한 사적 소유권 인정은 자연 풍경에 대한 배타적인 사적 소유권을 인정으로 직결하기 때문이다. 땅의 주인은 풍경의 주인이 아니던가. 역설적인 얘기지만, 이 관광단지의 숙박 시설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일반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 다행스러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등대와 작은 성당이 있는 섭지코지에 들어선 건축과 조경, 조형물들은 근래 보기 드물게 엄격한 절제와 조화를 염두에 둔 프로젝트로 평가할 만하다. 단지 내부에는 숙박시설 안쪽으로 더 파크(THE PARK)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내부에 마리오 보타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있다. 안도의 건축물 글라스하우스와 지니어스로사이(Genius loci)는 보타의 건축과 함께 섭지코지 일대를 문화명소로 바꿔 놓은 결정적 장면이다. 절제의 미덕을 십분 발휘해서 집이라기보다는 기하학적 추상의 조각과 같은 글라스하우스는 동쪽의 망망대해와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절경에 자리잡고 있다. 그 안에 화가 이진경의 그림과 내촌목공소의 목수 이정섭의 가구를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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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로사이는 그 땅의 수호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입구에서 깊숙한 내부에 이르기까지 극적인 구성으로 의외의 장면과 상황을 만나도록 지어졌다. 집지을 땅에서 나온 현무암을 캐서 만든 돌길을 지나고 폭포 물길을 지나면 그림 같은 파노라마 성산 일출봉을 만난다. 내부에는 명상의 방이 있고 그 안에 문경원의 영상 작품이 있다. 나무의 생장과 소멸을 통해서 존재와 시간에 관한 성찰을 담은 영상설치작업 <Diary>와, 하루 전의 제주도 하늘을 보여주는 <어제의 하늘>, 그리고 실시간 동영상으로 바깥을 비추는 <섭지의 오늘>이 있다. 지하로 파고든 명상적인 침묵의 공간에서 만나는 문경원의 영상들은 시간의 간극 속에서 삶을 반추하고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사유와 감성을 깊어지게 한다. 자연과 동행하는 건축과 그 속에서 만나는 미술의 공존이야말로 통합의 정치학을 말하는 탈근대적 사유의 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월간미술 2008년 9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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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 Public Art Story 18 : 국립묘지예술제 - 수유리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08/26 20:22


GIM's Public Art Story 17 : 국립묘지예술제 - 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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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주년을 맞아 국립묘지 설치예술제가 서울 수유리와 광주 망월동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그 중 4.19 국립묘지의 김혜영, 정명교, 최문수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주로 태국기와 무궁화 깃발등 변형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징적인 대상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재배치 하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이 행사는 '광복 64주년'을 '광복 60주년'으로 표기한 현정부의 8.15 행사와 맞물려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국가단위 공공성과 예술가의 창의적 표현이 만나는 한 방식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태극기와 무궁화 등 이미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있는 상징들을 처리하는 예술가들의 새로운 해석이 '광복'과 '건국'이라는 이슈를 둘러싼 역사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정치적 파장과 맞물리면서 어떠한 효과를 발산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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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torycubic.co.kr/cubic?cur_page=1&contents_id=289


시스템을 연성화하는 유기체의 사유와 감성 : 박은하에 대한 독해와 질문

critic & column | 2008/08/1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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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을 연성화하는 유기체의 사유와 감성 : 박은하에 대한 독해와 질문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박은하는 시스템이 직조해내는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은하의 회화작품에 등장하는 플라나리아는 그 공간을 유영하면서 시스템과 그 바깥의 이분법적인 이항대립 구조를 생성한다. 박은하는 사유와 직관을 동반 관계에 놓고 있다. 구조와 개인, 시스템과 판타지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그는 이성적 사유와 감성적 표현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앞세우지 않고 병행하도록 하고 있다. 사무실 공간은 박은하가 생각하는 시스템의 공간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공간이다. 딱딱하게 구조화한 시스템을 파고드는 플라나리아의 부드러움은 이 작가가 시스템을 공격하는 인식론과 감성학을 대변하는 하나의 아이콘이다. 박은하의 회화는 구조화한 공간과 그 공간을 연성화하는 패턴의 유영이 대결하면서 동시에 공존하는 세계이다.

그는 구조와 개인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탈현대의 사회학을 담고 있다.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구조의 견고함과 그 속으로 파고드는 박은하 패턴의 유연함은 그가 시스템에 대한 관심을 풀어나가는 실마리이다. 그는 자신의 패턴을 플라나리아로 설정한다. 플라나리아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예술가 주체의 자아를 대변하는 유기체이다.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을 공유하는 자웅동체로서 자생력이 매우 강한 플라나리아는 박은하 예술가 주체의 감성과 사유를 대변하는 분신이다. 그는 구조와 개인, 시스템과 인간의 이항대립을 공간과 플라나리아로 치환한다. 그는 플라나리아를 통해서 무기물의 세계를 연성화하는 유기체로서의 예술가를 꿈꾸고 있다. 박은하의 플라나리아는 구조를 파고드는 개인이며, 안정을 파괴하는 불안이자, 사회를 견제하는 예술이다.

국내외 지인들의 작업실인 카페공간을 통해서 그는 동시대의 공간 풍경들이 국경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질서나 정서를 만들어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플라나리아는 어느 곳 하나 예외 없이 존재하는 빡빡한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판타지이다. 공간을 휘돌며 곡선과 색채를 드리우며 일정한 규칙이 아니라 유동적인 불규칙을 양산하고 다니는 플라나리아는 작가의 판타지를 실현하는 대리주체로 작동한다. 그것은 일상의 메커니즘으로부터 탈출하고자하는 일탈의 꿈을 담고 있다.

스타일의 묘미를 캐내는 일도 중요하다. 기표와 기의의 연동을 이끌어내는 일과 더불어 실재와 의미작용의 구체성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는 장면과 상황을 설정하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법론, 즉 스타일의 문제에 매우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박은하의 플라나리아는 서사적이기 이전에 심미적이다. 플라나리아는 박은하 스타일을 견인하는 하나의 패턴이다. 그의 플라나리아는 마블링 패턴에서 나왔다. 그것은 화려한 색채를 가진 대리석 무늬(marble pattern)이다. 플라나리아는 매우 감각적인 선과 색의 운율로 이루어진 시각적 장치물 그 자체로도 매우 커다란 비중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문양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박은하에게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대학시절의 드로잉들이 판타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점도 그러하거니와 그것이 머리카락이나 물결 무늬, 또는 마블링과 드로잉의 결합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작업 메모에서  알 수 있듯이 애초에 그는 사무실 공간과 자신의 플라나리아가 일탈의 관점에서 공존하면서 시각적인 조화를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플라나리아는 실내 공간의 식물 이미지를 잠식하기도 한다. 인물이 부재한 공간에서 인물의 등장하는 공간으로 변화해 나간 그의 공간 작업은 공간의 구석구석은 물론 인물과 상호 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데로 진화했다.

이러한 작업은 사물 자체에 마블링 패턴을 입히는 그림으로 나아갔다. 테이블이며 의자, 스텐드 안경 등 화려한 마블링 패턴의 옷을 입은 사물은 그 자체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으며 공간과 사물의 돌연변이가 만들어내는 화면의 스펙터클은 그 자체로 회화적 상상력을 발현한다. 그는 캔버스 안의 플라나리아를 전시장 바깥 공간으로 확장하기도 했다. 작업실에서 완성한 캔버스 그림과 전시장에서의 월-페인팅을 결합한 작업으로 그는 자신의 플라나리아를 더욱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동시에 자신이 의도하는 일상 공간으로부터의 일탈이라는 이슈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최근에 나타나는 플라나리아의 보다 다이내믹한 형태와 색채들은 공간을 감싸고 도는 마블링 패턴의 심미성이 절정에 도달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박은하는 자신의 패턴을 인물 작업에 대입하고 있다. <in a row>는 PC방에 앉아서 컴퓨터와 1:1 커뮤니케이션 중인 일곱 사람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PC방 칸막이의 반복되는 구조와 그 앞에 앉은 인물들이 비정형의 마블링 패턴으로 녹아서 컴퓨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미지의 변형은 현대사회의 단면을 그려내는 데 있어서 박은하의 플라나리아가 매우 유효한 스타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스타일의 독창성을 탁월한 의미작용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 이르러 박은하는 득의(得義)를 획득했다. 가장 최근작인 인물 그림 <Fatigue-Man>은 플라나리아의 향배를 가늠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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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간략한 독해를 전제로 다음의 몇 가지 토론 거리를 던진다.

1.
박은하의 스타일과 그의 내러티브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의미작용을 남기고 있는가? 만약 박은하가 설정한 장면이나 상황이 플라나리아라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요즘 작가들이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는 일상담론에 포박된 채 그 이상의 의미를 생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플라나리아라는 박은하의 스타일은 무의미한 일상담론의 한계를 벗어나 일탈의 담론으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 결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과연 박은하의 플라나리아는 마블링 패턴이라는 조형적 장치 이상의 의미생산을 결과하고 있는지 따져볼 문제다.

2.
총체성을 상실한 시대, 미시적 서사의 창궐. 1990년대 중후반 이후의 한국현대미술을 가장 포괄적으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들이다. 거대 서사의 난망함을 익히 경험한 바, 우리는 미시 서사를 통해서 현실을 읽어내는 새로운 길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난무하는 일상담론은 밋밋하고 수평적인 나열과 상투적인 재현을 반복하고 있다. 박은하의 작업은 이러한 현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우리 시대의 예술은 이 지루한 여정의 한가운데서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볼 일이다.

3.
박은하의 공간과 구조와 인물과 대상에는 특정성이 결여해있다. 박은하는 익명화한 지인의 공간이나 익명의 현대인들의 공간을 회화적 재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박은하가 그려내는 공간과 패턴이 환기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명쾌한 전략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특정 인물의 특정 공간이 우리에게 일상과 일탈의 경계에서 어떤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있는지가 보다 명확하게 다가설 수는 없는지, 혹은 그 특정성을 완전히 소멸시킴으로써 또 다른 효과를 가져올 수는 없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나아가 장소 특정성을 넘어 의제 특정성을 획득하는 길은 없겠는지 작가와 여느 패널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스튜디오 입주작가 토론회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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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 Public Art Story 17 : I Jaehyo, 0121-1110=107042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08/19 17:34


GIM's Public Art Story 17 : I Jaehyo, 0121-1110=107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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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 사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이재효 작가의 "0121-1110=107042".
작품 제목에 있는 '0121-1110=1'는 '이재효'라는 이름을 수수께끼처럼 숫자로 풀어슨 코드이다. '07042'는 제작 연월과 일련번호.

잣나무를 태우고 이어붙이고 갈아내는 과정을 통해서 거대한 구체를 만들어냈다. 물질과의 대결을 일삼는 집요한 노동. 이재효 작품의 제1 미덕이다. 공공조형물로서는 보기드물게 나무소재라는 점도 특이하다. 보존의 관건은 얼마나 자주 만져주느냐에 달려 있다. 작가가 스스로 방부처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영상 보러 스토리큐빅쩜씨오쩜케이알 바로가기
http://cubic.simonsearch.co.kr/cubic?contents_id=284


정관 김복진의 무덤에 다녀옴

lense & world | 2008/08/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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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TY FREE.
면세 봉투에 담은 책 한 권이 무덤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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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사학자 윤범모. 그이가 박사학위논문인 <김복진연구>를 무덤 앞에 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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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김복진의 무덤. 나이 마흔에 돌아가신 큰 어른이다.
그를 찾아뵌 나의 나이 마흔 하나......
모든 것을 앗아간 황폐한 시대에 살아간 지식인 김복진.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의 이번 생, 이 부질없는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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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윤범모, 최열, 김종길, 김준기... 찍새는 정현 샘 제자 유정현. 6인이 청주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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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의 속리산 법주사 앞에 섰다. 중학교 때 보았던 시멘트 부처가 알고보니 김복진 선생님의 것이었다. 옛것을 브론즈로 옮긴 것이 지금 저 뒤에 보이는 청동여래입상이다. 열다섯 나이에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격세지감에 빠졌다.

한국의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거장 김복진. 그이가 앞길이 보이지 않는 저 캄캄한 일제시대에 미래를 여는 부처 미륵대불을 세웠다. 생각해 볼수록 두려운 일이다. 그 시대에 예술가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김복진 홈피 바로 가기
                =>
http://www.forumcjc.com/kbj/kbj.php


과연 혁명은 단호한 것인가?

artpd clip | 2008/08/1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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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주는 말했다.
혁명은 단호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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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묻고 싶다.
과연 혁명은 단호한 것인가?


GIM's Public Art Story 16 : Still Movie_OLYMPIC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08/12 22:12


GIM's Public Art Story 16 : Still Movie_OLYM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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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종합운동장에서부터 올림픽공원 정문 앞에 이르기까지 긴 도로 중앙에 놓인 조각들. 동영상보다 훨씬 더 강렬한 자극을 주는 스틸 컷들의 연속. 뜨거운 햇볕 아래서 열심히 촬영한 김기환 감독의 노작이다.

동영상 보러 스토리큐빅쩜씨오쩜케이알 바로가기
http://cubic.simonsearch.co.kr/cubic?cur_page=1&contents_id=279


액티비스트 포럼 부산 080801

lense & world | 2008/08/0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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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비스트 포럼 부산. 세번째 모임 뒤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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