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발견 2008_뮤지움 토크

artpd clip | 2009/01/05 13:58


부산의 발견 2008_뮤지움 토크
부산시립미술관 지하 1층 강당, 2009.1.8(목) 오후 2시-5시

2008년에 첫 발을 내딛은 부산시립미술관의 기획전 <부산의 발견_Boosting the Mid>은 부산을 기반으로 왕성한 활동해오고 있는 중견 중진작가를 새롭게 조명하고 이들의 현재 모습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전시는 중견 중진 작가의 작가로서의 삶을 점검하고, 앞으로 여정을 이야기하기 위한 장이기도 하다. 전시와 연계한 뮤지움 토크를 통해 <부산의 발견 2008>의 주인공인 박재현, 심점환, 왕경애, 하용석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서 네 명의 큐레이터가 비평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에 대해서 네 명의 초청 패널들이 메타 크리틱 수준에서 다양한 논의를 제시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번 뮤지움 토크가 서로 다른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예술적 담론의 장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 참여작가 : 박재현, 심점환, 왕경애, 하용석
○ 큐레이터 : 강선주, 김준기, 이진철, 이상수
○ 지정토론자 : 김성연(작가, 대안공간 반디 디렉터)
                      이태호(미술평론, 경희대 객원교수)
                      임종업(한겨레 문화부 기자)
                      김찬동(미술평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사회 : 이지훈(미학)

○ 진행순서
  14:00 - 14:20        사전 행사(인사 및 소개)
  14:20 - 15:40        작가 프리젠테이션 및 큐레이터 발제
  15:40 -  15:50       중간 휴식
  15:50 - 17:00        패널발제 및 종합토론

2009/01/05 13:58 2009/01/05 13:58

스타일은 내러티브를 잠식한다

critic & column | 2009/01/05 11:12


스타일은 내러티브를 잠식한다

3명의 심사위원이 자율 추천 방식으로 11명의 작가를 1차 토론 대상으로 올린 후, 그 가운데 6명의 작가를 선정, 작가 후보로 올려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선정 작가 1명과 또 한 명의 전시 후보 작가를 선정했다. 심사의 가장 큰 관건은 지금까지 작품을 발표해온 이력과 그 결과물인 기존 작품들에 관한 자료들을 검토하는 것이었고, 나아가 반디 공간에서 진행할 전시의 계획을 검토해보는 것이었는데, 전시 개념과 그것의 전개과정에 관한 일관된 맥락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가장 큰 기준이었다. 35세 미만의 젊은 작가들은 동시대 시각예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의 흐름을 예측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토론 대상자로 올린 11명의 작가들에 관해 짧게 언급함으로써 젊은 작가들의 면면을 검토하면서 언급한 내용들을 소개함으로써 심사과정의 일단을 공유하고자 한다.

김선좌은 ‘검은 우유’라는 개념을 설정한 후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서 드로잉, 사진, 영상, 설치 등에 이르기까지 다매체에 걸친 전개과정을 거치고자 했던 기획안을 제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경쾌한 손맛이 두드러져 보이는 김청신의 작업계획은 낱장의 드로잉에서 공간 전체를 장악하는 능력에 이르기까지 좋은 느낌을 주었다. 다만 서구의 대중문화 스타들을 등장시키는 대목에 있어서 상투성 논란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지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민예진의 페인팅은 여성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중심주의 전통인 제사에 참가하는 방식에 관해 문제제기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주제설정이 돋보였으며, 제사상이 차려져있는 장면을 다양한 방식의 그림그리기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도 돋보였는데, 그림의 스타일에 비해 장면을 설정하는 방식이 좀 더 다각적일 필요가 있겠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으로 언급되었다.

박경선은 여성 이미지에 관한 자신의 구작들을 토대로 반디 공간의 특성을 여탕이라는 주제로 풀어내겠다는 계획을 밝혀 주목 받았다. 학부생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프로젝트에 참가한 경력을 갖고 있는 박민지는 페인팅과 퍼포먼스,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주제를 풀어내려는 접근방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양보현은 마치 반디 건물을 그린 것 같은 페인팅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그것을 담고 있는 기억의 문제를 풀어내는 드로잉과 페인팅을 제시했다. 아이스크림 막대기와 같은 사소한 사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한 이슬기의 작업에 대해서는 재료의 문제를 넘어선 차원의 ‘예술적 소통’에 관한 새로운 접근과 성찰을 가미한다면 한 차원 높은 작업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많겠다는 언급이 있었다.

이현지의 작업은 스타일리쉬한 도시공간의 표현 방식이 관심을 모았다. 체험을 근거로한 예술가로서의 자기발언이 좀 더 가다듬어진다면 충만한 자기 서사를 가진 작가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종이박스들을 파란색으로 칠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설치 작업을 하고자 했던 조은필의 작업에 대해서는 개념설정과 과정에 관한 계획이 보완된다면 좋은 프로젝트로 성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자작 소설을 제시하고 그 소설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의 시각예술 작품으로 풀어내고자 한 임종광은 2명으로 좁혀진 최종 선정 작가 후보에 들어 경합을 벌일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입체와 오브제, 그리고 영상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선보여온 작업 역량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매체 장악력뿐만 아니라 문제제기 방식과 개념적인 전개 과정 또한 돋보였다. 아쉽게도 최종 선정 작가로 선택되지 않았지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이 작가에게도 전시기회를 부여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테이프를 이용해서 파도, 집, 인체 등의 형상을 만드는 김덕영의 작품은 고르게 주목을 받았다. 그는 테이프를 말아서 작은 단위의 덩어리를 만들고 그것을 군집의 미학으로 끌어올리는 노동집약적인 작업으로부터 출발해서 랩과 테이프를 이용해서 신체를 캐스팅하는 작업에 이르러서는 실재와 허상, 알맹이와 껍질의 관계에 관한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재료를 선택하고 그것을 자신의 내러티브로 연결시켜 구조화 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전시계획 부분에 있어서 전시장 공간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조사와 연구 과정을 거친 후에 기획과 실행단계에서 짜임새 있는 상호 토론이 필요하겠다는 점을 전제로 김덕영을 선정 작가로 결정했다.

대안공간반디의 기획전시 공모에 참가한 작가들의 경향을 근거로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흐름을 언급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뚜렷한 개념 설정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공모의 대전제가 주제를 제시하고 거기에 따른 계획을 제출하는 것이었으므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공모에 참가한 많은 작가들이 주제를 결정하고 그것을 풀어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비교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다매체적인 접근방식이다. 단일한 매체 구사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러티브를 구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매체를 동시에 펼쳐 보이는 매체장악력의 성장이 두드려져보였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미술에 관한 정보가 차고 넘치다보니 다양한 방식의 스타일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신예들이 많은 반면에 자신의 몸에 맞는 자기언어의 개발과 예술가 주체의 밀도 있는 체험을 토대로 한 자기발언이 아쉽다는 점이다. 스타일에 관한 과도한 집착은 예술가의 진솔한 내러티브를 잠식한다. 예술은 창작에 관한 기술이면서 동시에 삶에 관한 성찰을 담은 지식이 아니던가. ■ 김준기(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대안공간반디 전시기획 공모 심사평

2009/01/05 11:12 2009/01/05 11:12

GIM's Public Art Story 31 : IM Oksang, JEON Tea-il, Cheong-gye-cheon

critic & column/GIM's Public Art Story | 2008/12/30 17:45


GIM's Public Art Story 31 : IM Oksang, JEON Tea-il, Cheong-gye-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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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 앞 청계천 버들다리 위에 있는 전태일. 1977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분신으로 생을 마감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청계천에서 그를 만났다. 전태일이라는 그 이름 하나가 한국의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이 작품의 의미는 넓고 깊고 크기만 하다. 그에 비해서 이 작품을 둘러싼 역사적 가치와 비평적 가치를 두루 헤아리는 일은 턱없이 좁고 작기만 하다. 전태일 기념상 맞은 편에 붙은 프래카드에는 전태일 분신 이후 38년이 지난 2008년의 현실을 드러내는 문구가 적혀있다. 전태일의 후배세대인 우리는 그가 남긴 말.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는 그 말에 대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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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17:45 2008/12/30 17:45

GIM's Public Art Story 30 : I Sanghyeon, Yellow Messinger, Seoul Metro

critic & column | 2008/12/30 16:08


GIM's Public Art Story 30 : I Sanghyeon, Yellow Messinger, Seoul M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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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의 빌딩 앞에 대지를 뚫고 나온 강렬한 에너지들이 불끈불끈 솟아 있다. 이상현 작가의 이 기념비적인 공공미술 작품은 미술장식품이 건물의 부속품으로 초라하게 빌붙는 방식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새로운 시각적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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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16:08 2008/12/30 16:08

노순택과 전준호에 관한 단상

critic & column | 2008/12/26 17:19


노순택과 전준호에 관한 단상

모 기관으로부터 두 작가에 대한 짧은 논평을 요청 받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몇자 썼다. 이 둘은 공통점과 차별점이 매우 뚜렷한 작가들이다.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한국 작가들 가운데 노순택과 전준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각별하다. 포스트 리얼리즘 세대에 속하는 일들은 정치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그 속에 구조 속 개인의 섬세한 체험을 담아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자는 한국사회의 구석구석으로 파고드는 반면, 후자는 전지구로 날아다닌다. 이 둘의 작품 방향은 비슷하면서도 극단을 달린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세월이 좀 더 흘러 이 두 작가가 어디로 갈지를 관심가지고 지켜볼 생각이다.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매거진의 사진 기자 경력을 가지고 있는 노순택은 이슈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근본을 가진 작가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이 충실한 다큐멘터리이면서 동시에 풍부한 해석을 낳는 예술 작품으로 성립하는 것은 자신의 작업을 로포르타쥬 수준에 머물게 하지 않고 새로운 인식과 감성을 발견하게 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예술가 상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이며, 사회적 이슈와 개인적 감성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뛰어난 작업들을 발표하고 있다.

부산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이후 영국에 유학하면서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 지평을 넓혀온 전준호는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면서 매체 장악력이 뛰어난 작가로 자리잡았다. 자칫 거대담론의 황량한 서사구조에 빠지기 위한 이러한 주제들을 작가 자신의 내면과 일상 체험 등과 연동시킴으로써 메시지의 호소력을 더한다는 것도 이 작가의 장점이다. 전지구적인 차원의 거대권력에 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다양한 매체로 소화하면서, 국가, 제국, 자본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의 활동 기반이 탄탄할뿐더러 국제적으로도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에서 호평을 받았다.

2008/12/26 17:19 2008/12/26 17:19

김종식 프로젝트의 가치와 방향성

critic & column | 2008/12/25 13:31


김종식 프로젝트의 가치와 방향성

1. 서론

부산화단의 문을 열고 꽃을 피운 화가 김종식. 부산미술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그의 삶과 예술은 부산화단은 물론 한국 근대화단의 면면을 헤아리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이다. 그는 여하한 시류와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고집스레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 식민지 학습기를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이룩한 예술가이며, 중앙과 지방의 차별을 넘어 보편성을 획득한 거장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을 지키며 부산작가로 살다간 예술가 김종식은 근대화단의 선구자로서, 교육자로서 짙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부산의 미술계는 그를 부산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식하고 있다. 토박이 작가로서 부산 근대화단의 형성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한평생을 부산에 살면서 창작활동을 한 김종식에 대한 정당한 평가이다. 그러나 평가 그 자체로서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일들을 벌이기에는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작고 후에 동아대학교와 미술계가 추진한 흉상제작, 주정이 작가 등이 주도한 범어사 앞 기념비 제작 이외의 이렇다할 기념사업을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김종식 20주기 심포지움은 이제 충분한 역사적 평가를 거리가 확보된 작가이니만큼 본격적으로 그의 생애와 예술세계에 대해 연구해서 그 위상을 재정립하는 자리이다.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진단을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실현하고자하는 이번 20주기 심포지움은 토론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길러 올리는 새로운 출발과도 맞물려 있다. 부산지역 화단 안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 또는 동아시에서 근현대를 관통해온 우리 미술은 역사를 재점검 하는 차원의 큰 그림을 그릴 시점이다. 이 글의 목표는 김종식 예술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고 김종식을 기리는 프로젝트의 가치와 방향성을 생각해봄으로써 김종식 프로젝트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폭넓은 토론을 유도해서 향후 100년 이상을 내다보는 계획을 수립하는 물꼬를 트는 데 있다.


2. 김종식의 예술의 가치

김종식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며,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미술을 학습하고, 해방 이후 부산화단의 생성과 발전에 기여한 근대인다. 그는 동래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 도쿄제국미술학교로 유학했다. 부모 몰래 미술을 전공하기로 한 것이 그의 나이 열아홉인 1937년의 일이다. 임완규, 최덕휴, 권옥연, 장욱진 등이 유학 동문들이다. 1세대 유학파 화가들이 돌아와 이른바 서양화가 이 땅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에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예술가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유학 당시 백우회(白牛會) 활동을 했다. 후에 재동경조선미술학우회로 이름을 고친 이 클럽은 30명이 넘는 회원을 가질 정도로 왕성했는데, 김종식은 후에 한국화단의 주류를 형성한 이들 유학생들과 교류했다. 일제시대 유학생 김종식의 작품은 표현주의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 경향을 보였다.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한 1942년은 징용으로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던 때였다. 김종식은 이 위기 상황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해방 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해방공간에서의 김종식은 화단 형성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김종식을 비롯한 수많은 젊은 선구자들이 1세대 작가 김원명의 집을 거점으로 음악가와 시인들과 교류하면서 부산 예술계의 싹을 틔웠다. 해방공간의 김종식은 부산의 풍경과 일상을 그렸다. 특히 그의 유명한 부산항 연작들은 강한 윤곽선과 짙은 원색으로 매력적인 감각을 발산했다. 한국전쟁 전후의 김종식은 노점상, 판자촌, 귀환동포, 제빙회사 등 동시대 삶의 정황들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의 부산 풍경과 일상을 그려낸 그의 작품들은 간결하면서도 굵직한 김종식 초기 회화의 전형을 창출했다. 해방과 함께 부산화단의 새 장을 열어나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한 김종식은 창작과 네트워크를 병행했다. 1946년 동래중학교 강당에서 열린 김종식 개인전은 '해방감격'을 비롯한 40여 점의 작품으로 이뤄졌다. 당시의 어수선한 정국에서 김종식은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작품발표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냈다. 김경, 임호, 김영교, 김윤민 등과 함께한 토벽 동인 활동은 김종식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는 관념적인 유희에 빠져드는 기성화단의 아카데미즘과 달리 동시대의 삶을 관통하려는 리얼리즘 경향을 보인다. 물론 그가 표현방법에 있어 사실주의 기법을 채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어 나가면서 동시에 동시대 삶의 지평을 깊이 성찰하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이후 그는 토벽 동인활동을 통해 부산 토박이 화가로서 한 시대의 정황을 읽어내는 미술활동을 모색함으로써 한국근대미술사의 중요한 역사를 만드는 데 동참했다. 1960년대의 김종식은 부산과 양산, 진해, 김해 등으로 교직생활을 하면서 옮겨 다녔다. 그는 1968년 동아대로 옮기면서 부산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여러 도시를 다니며 예술가의 자유를 구가했다. 이 시기 그의 작품 세계는 다양한 모색과 실험을 거친다. 1961년 작 '대결'이나 '갈등'과 같은 작품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그는 추상화 실험을 하기도 했다. 단색 화면에 추상적인 형상을 가미한 이러한 화풍은 곧이어 풍경과 재결합한다. 1970년대 들어 청색 윤곽선의 풍경화 연작으로 전환한다. 영도나 태종대, 하단, 통도사, 범어사, 천마산 등 수많은 실경산수를 남겼다. 이전의 검은색 윤곽선이 청색으로 바뀌면서 필선의 자유로운 운율을 가미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의 풍경화들은 기하학적이면서도 표현적인 패턴이 등장하기도 하고 붓의 운율로 풍경을 그려내기도 했다. 대상을 포착하는 화가의 붓질로 회화 그 자체의 묘미를 살리면서도 실재 대상을 담아내는 재현회화의 틀을 고수한 것이다. 완숙기에 접어든 그는 현실을 초월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화가로서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일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기반으로 고유의 필선과 색채로서 화면을 장악해 들어가는 힘을 가질 때 가능하다. 김종식은 추상과 구상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는 아카데믹한 풍경에 빠지지도 않았고 시류에 영합하는 추상미술에 현혹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김종식의 모색과 전환들은 한국 근대화단이 걸어온 여정이며 경계 위의 세계이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한국 화단의 급속한 변화 속도에 비해 김종식은 더딘 발걸음으로 곧게 자신의 길을 걸으면서도 다양한 실험을 지속했다. 가령 1955년 작 '빨래'는 검은색과 붉은색을 주조로 형상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면추상의 묘미를 살린 그림이다. 평생을 구상회화 중심으로 작업했던 김종식의 세계에는 이와 같은 의외의 장면들이 종종 들어있는데, '녹심'(1963)이나 '이승과 저승'(1965) 같은 작품은 표현적인 반추상이나 단색평면회화의 경향을 보이기도 하며, '담벽'(1982) 같은 말년 작에서는 기하학적인 추상의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격변의 시대를 거쳐온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서울이라는 중심이 아닌 부산이라는 지역도시에서 활동한 김종식은 평생 그림 그리기 하나만을 위해 살아간 예술가이다.


3. 김종식 프로젝트의 당위성과 관점

김종식은 근대의 콤플렉스를 관통한 거장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부산화단 혹은 한국화단의 콤플렉스들과 정면으로 대결했다. 그는 서구미술의 이식으로 출발한 근대화단의 근본적인 한계 상황 속에서 근대를 개척했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를 거쳐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에 이은 일대 혼란기를 거치면서 예술적 열정과 시대적 소명의식 속에서 갈등해야 했다. 또한 부산지역을 지키는 작가로서 중앙화단과의 간극을 넘어서는 일 또한 매우 커다란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제국과 식민, 건국과 내전, 중앙과 지방 등과 같은 격변의 세월을 맞이했다. 김종식은 자신이 처한 현실이 가중시키는 이중삼중의 콤플렉스를 맞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김종식의 예술은 부산지역의 미술계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의 미술사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라는 점을 다시 인식하고 그 위상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다각도의 프로젝트를 벌여야 한다. 이제는 김종식을 부산의 대표작가로 언급하기보다는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작가로 부각하여 그의 보편성을 확산해야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종식이 부산미술계와 동행한 역사적인 대목에 대해 소홀히 해서는 안된 것이다. 김종식은 한국전쟁 전후에 부산미술을 주도하는 그룹활동을 펼쳤다. 그가 동참한 토벽회는 부산의 지역성과 시대정신을 반영한 성찰의 언어 쏟아낸 그룹이다. 김종식은 김남배의 백양다방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토박이'라는 말을 변형해 '토벽회'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었다. 토벽 동인들의 창립전 서문은 사뭇 장중하다. '회화라는 것이 한 개 손끝으로 나타난 기교의 장난이 아니요, 엄숙하고도 진지한 행동의 반영'이라고 선언한 이 글은 '새로운 예술'이라는 것은 '필경 새로운 자기인식 밖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기에 우리들은 우리 민족의 생리적 체취에서 우러나오는 허식 없고 진실한 민족미술의 원형을 생각한다. 가난하고 초라한 채 우리들의 작품을 대중 앞에 감히 펴놓는 소이가 전혀 여기에 있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문화식민지의 모순과 지방화단의 척박한 환경에 놓인 이들은 회화를 통해서 근대적 지식인의 풍모를 갖춘 예술가로 거듭나기 위해 진지한 성찰의 언어들을 쏟아냈다. 그 성찰은 부산이야기이며 동시에 민족이야기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종식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가 소원하다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김종식 콘텐츠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유화 작품들과 더불어 수만장에 달하는 드로잉은 김종식이 평생을 두고 진행한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남의 눈으로 남의 붓으로 그리지 말고 자신이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그려야 한다'. 그의 제자인 이용길이 전언한 김종식의 말이다. 김종식은 '그림 그리는 기교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태도를 가르쳤다'고 이용길은 말한다. 그가 그토록 강조한 화가로서의 태도는 그의 평생을 지배한 '그리기의 숙명'을 통해서 관철되었다. 김종식은 끊임없이 손을 움직인 화가로 유명하다. 6백여권에 달하는 그의 스케치북은 평생 그림 속에서 살다간 치열한 화가의 길을 증거하고 있다. 1988년 영면의 길에 접어든 이후 그는 평생을 부산을 지키며 살아간 존경받는 예술가로 남아있다. 그의 신중하고도 강건한 풍모를 흠모한 많은 미술인들은 거장의 향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는 평생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선을 그었다. 그 많은 콘텐츠를 가지고도 그를 널리 알리지 못한다면 이는 김종식 유산을 이어받은 부산미술계 전체의 문제일 것이다.
김종식 프로젝트의 당위성은 상호지역주의 관점에서 김종식의 가치를 부산지역 바깥과 공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데 있다. 김종식의 타계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부산지역의 대표작가로 언급하고 내부적인 합의를 만드는 데는 큰 이견이 없지만 그 바깥과의 교류를 통해서 김종식을 알리는 데 대한 노력이 부족했다. 이것은 부산미술계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한국미술계 전체의 소통 시스템 부재에는 오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말 그대로 ‘김종식을 높이는 일은 부산미술을 높이는 일이다’. 김종식을 다시 세우는 일은 부산미술을 다시 세우는 일이며, 그에 관한 역사를 제대로 쓰는 일은 부산미술의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다. 김종식 프로젝트는 예술적 관점의 지역주의를 제대로 세우는 데 기여할 것이다. 부산이라는 도시 공동체가 지역성을 드러내는 김종식 예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예술전략이야말로 중심과 주변, 중앙과 변병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궁극적으로 김종식 프로젝트는 ‘지역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think local, act local)을 견인하는 예술전략’으로서의 지역주의를 역사적 관점에서 실행에 옮기는 프로젝트이다.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think global, act local)는 언명은 지역과 지역의 유기적인 연대를 강조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 속에는 중심주의가 숨어있다. 여전히 전지구의 중심권력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패권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성을 성찰하는 예술, 지역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지평 속에서 예술적 실천을 가늠해온 성과들에 대해 집중함으로서 우리는 예술 영역에 있어서 ‘지역적 사고와 지역적 실천’을 강조하는 새로운 전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적 실천의 맥락에서 지역주의가 중요한 이유는 예술 자체가 이미 주류질서의 중심권력과는 다른 관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예술계가 예술계로 성립하는 순간 이미 그 계에 종사하는 예술생산자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으로 자리한다. 예술생산자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라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정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적은 게 사실이다.
중심주의의 패권적 사고를 추종한다면 예술생산이라는 소외영역의 생산은 그 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지역주의가 중요한 것 이와 같은 맥락이다. 중심도시가 아닌 도시에서 중심도시의 패권을 한 숨에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방식의 판짜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지역주의 관점이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상황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해서 예술적 실천의 맥락으로 끌어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따라서 동시대의 예술계가 취하는 보편주의 방식의 패권지향적 흐름을 쫓아가기 보다는 그 질서와는 다른 맥락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예술적 실천이 중요한데, 그 가치 지향의 중요한 맥락이 지역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김종식 자신이 부산이라는 도시를 평생 삶의 단위로 삼으면서 부산을 세계 그 자체로 인식하고 살아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부산을 그렸고 부산을 이야기했으며 부산예술가로 평생을 살았다. 그의 예술생산이 부산의 삶의 정황과 사건과 풍경들을 토대로 했으며 그것으로 세계사적 보편을 이루고자 했다는 점에서도 김종식 예술은 지역주의 관점의 중요한 유산이다.


3. 김종식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가능성

미술의 개념과 관행, 제도 등이 일정한 인적 구성과 결합하여 형성되는 것이 미술계이다. 김종식 프로젝트의 출발점에 부산의 미술계가 있다. 부산미술계가 지금까지 행해온 김종식 프로젝트는 매우 간헐적인 것이었지만 그 진정성과 헌신성이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이 부산의 대표작가로 김종식을 꼽는 합의를 끌어낼 수 있었다. 이제 그 합의를 바탕으로 한층 더 체계적인 김종식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 행보의 중심에 부산미술계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네트워크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미술계의 외연을 문화계 전체로 넓히는 시각의 확장이 필요하다. 가령 부산지역 문단을 대표하는 요산 김정한의 경우 부산문학계를 넘어 한국문학계 전체에서 언급되는 중요한 작가이다. 문학계와 미술계의 네트워크가 김종식 프로젝트를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네트워크가 이루어지는 틀일 것인데 그런 점에서 <김종식프로젝트추진위원회>와 같은 단체가 성립한다면 반드시 그 외연을 범미술계는 물론 범문화계의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부산미술계가 성장하고 부산문화계가 튼튼해지는 지름길일 것이다.
문화계뿐만 아니라 정관계를 비롯한 각계각층과의 네트워크를 실천해야 한다. 네트워킹은 막연한 추상개념이 아니고 구체적인 실천 개념이다. 폭넓은 네트워크를 얻기 위해서 발로 뛰지 않고서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김종식 프로젝트를 부산의 문화정치로 직결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작고 작가를 한 지역의 문화정치의 관점에서 프로모션한 사례는 매우 많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경우 이중섭이 잠시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여 이중섭미술관을 만들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양구군의 경우에는 그 고장 출신인 박수근미술관을 설립했다. 광주의 경우 시립이 아닌 사립의 형태지만 의제 허백련을 기리는 의제미술관이 있어 광주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부산의 경우 김종식 미술관을 추진함으로써 부산의 문화브렌드를 높이는 문화정치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부산시 차원의 일이기도 하며 동시에 중구 차원의 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중구는 김종식의 작업실이 있던 지역의 관할 구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지금은 폐쇄되어있기는 하지만 김종식 작업실은 남장기념관으로서 그의 작품과 유품을 보관하던 곳이다. 그곳을 되살려 문화공간으로 만든다면 김종식 프로젝트의 핵심사업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남장기념관 인근인 대청동은 부산우체국 뒤편의 40계단이라는 상징적인 장소가 있으며 점점 쇄락해가는 인쇄골목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유휴공간을 활용한 도심재생이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부산시와 중구청의 협업으로 이 장소를 김종식 거리로 지정하고 남장기념관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해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나아가 그 건물을 중심으로 김종식미술관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구상해볼 수 있다.
남장기념관을 신개념 문화공간으로 재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관점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우선 남장기념관 주변공간을 두루 통섭하는 신개념 문화공간으로서의 목표지향을 설정할 수 있다. 신개념 문화공간들은 작품을 보여줌으로써 관람객들에게 감성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물질기반의 시각 정보 소통 공간일 뿐만이 아니라 예술 생산과 매개, 나아가 향유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담론을 유포하고 토론하며 격렬하게 논쟁하는 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들 공간은 아카데미를 열고 정기간행물을 발간하며 온라인 공간을 활성화하는 등 공간의 개념과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을 개발하고 있다. 정보와 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은 미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전시공간 개념까지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남장기념과 프로젝트의 두 번째 정책기조는 남장기념관을 원도심의 문화생산 전초기지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신개념 문화공간을 추동한 또 하나의 모티프는 장소 특정성을 넘어서는 의제 특정성의 발견에 있다. 광주에서는 대인시장 인근의 창고 공간을 개조해서 새로운 개념의 미술문화공간을 여는 일이 진행 중이다. 광주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획자와 작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이 공간은 인근 시장을 중심으로 도시공간 자체를 대상으로 문화생산에 직접 개입하고 참여하는 장소특정적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의 스페이스 빔 또한 유휴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공간을 옮기면서 새로운 문화생산 기지로 상승무드를 타고 있다. 안양의 대안공간 스톤앤워터는 대안공간들 가운데서도 해당 지역의 장소특정성(site specific) 뿐만 아니라 의제특정성(issue specific)을 살린 대표적인 공간으로 손꼽힌다. 해당 지역의 생생한 이슈를 발굴하고 예술적 실천의 목표로 설정하며 예술생산과 매개, 그리고 향유의 과정을 공유해 나가는 과정은 진화하는 미술문화생산이다.
셋째로 고려해 볼 만한 것은 남장기념관 주변 공간들을 레지던시 프로그램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주변 공간이 인쇄골목으로서의 효용성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상이다. 유휴 공간 재활용 논의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작업실 담론의 활성화 또한 신개념 문화공간을 견인하는 중요한 모티프이다. 수년전부터 담론 수준에서 꾸준히 대안을 모색해오던 작업실에 관한 논의가 실질적인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작업실 담론의 여파는 전시공간으로 한정되어 있던 미술문화공간의 개념을 크게 뒤바꿔 놓고 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미술문화공간을 향유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문화생산을 매개하는 기관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공공기관의 문화정치도 예술생산을 담보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광역지자체와 기초단체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문화예술정책을 펴고 있다. 도심의 유휴공간을 활성화하여 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매개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부산시와 중구청은 중구의 원도심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예술재생 프로젝트를 벌일 필요가 있겠는데, 이때 남장기념관은 중요한 구심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곳곳에서 태동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나 소규모 공간의 활성화, 미술시장의 다각화,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증대 등과 같은 현상은 탈근대 개념과 직접적으로 조우한다. 단일한 장르나 공간의 고립과 자폐로부터 벗어나 다차원적인 문화생산을 매개한다는 점, 이에 따른 자본의 이윤창출 방식도 단일성으로부터 복합성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 예술생산을 개별 예술가들의 것으로 방기하지 않고 적극적인 교류와 새로운 문화생산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 등 이 모든 것들이 단일한 것으로부터 다차원적인 것으로, 자족적인 것으로부터 상호적인 것으로, 닫힌 것으로부터 열린 것으로, 분화로부터 탈분화로 전환하려고하는 탈근대의 맥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탈근대적인 맥락의 통합의 정치학은 문화공간의 변화를 읽어내는 중요한 개념이다. 미술문화 내부에서도 통합의 맥락은 마찬가지의 효력을 가지고 있다. 생산과 향유를 분할하는 공간 배치, 생활공간과 예술향유공간의 엄격한 구분, 고급예술과 하위문화를 둘러싼 계층 간의 차이를 넘어서는 추세이다. 이러한 추세를 감안해서 김종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남장기념관과 그 주변 공간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구체적인 실행 프로젝트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4. 제언

결론을 대신하여 몇 가지 제언하자면 다음과 같다. 김종식 프로젝트를 위하여 연구하고 구상해야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그 기초연구와 네트워크 구상을 위한 초석의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작품의 수집과 보존을 통해서 김종식의 유산을 부산시민의 유산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보다 체계적인 학술활동을 벌여서 김종식을 부산미술계를 넘어서 한국미술계의 중요작가로 등재하고 근대미술사 연구의 맥락에서도 그 가치를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여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김종식 전작을 가늠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를 열어서 제대로 된 도록을 만들고 전작의 면면을 미술인과 시민들이 체험하도록 하는 일이다. 나아가 부산 지역 바깥의 다른 도시에서도 김종식 전을 열어서 그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할 필요가 있다. 부산미술협회의 역할 또한 크다. 수천명에 달아는 미협회원들이 김종식의 가치를 앎으로써 역사적인 맥락 위에서 예술가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학계 또한 같은 맥락의 역할을 해야할 것이며, 특히 교육계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부산지역의 미술을 소개함으로써 그들이 부산미술의 생산을 독력하고 후원하는 뿌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화랑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한 작가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미술시장의 교환가치는 매우 큰 가늠자 역할을 한다.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음으로서 작품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김종식 프로젝트의 저력이 탄탄해 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 화랑과 경매 등 다양한 방식의 시장 프로모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범미술계와 범문화계, 나아가서 각계각층이 집결한 김종식프로젝트추진위원회 꾸려서 체계적인 사업을 준비하는 것이 첫 단계의 중요한 일일 것이다. 작고 20주기를 보내면서도 체계적인 기념사업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은 우리 부산미술계가 부산의 대표작가로 김종식을 꼽고 있다는 점을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다. 기념사업회가 있어서 김종식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을 벌일 수 있다. 김종식학술대회를 꾸리거나 김종식미술상을 제정해서 진행하는 일을 추진할 중심축 역할이 절실하다. 미술상은 작가에게 주는 창작상과 김종식 연구논문을 중심으로 하는 이론상을 동시에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김종식에 관한 연구가 미비하고 비평과 이론의 풍토가 부족한 부산미술계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김종식 화집과 단행본 출간 또한 시급한 사업이다. 막대한 분량의 드로잉집에 실린 그림과 글들은 출판물로서 성공할 가능성도 높은 사업이다. 남장기념관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미술관으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그 공간 주변과의 긴밀한 문화정책적인 프로젝트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부산미술계와 시민사회의 합의를 조율하고 실행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중심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20년동안 부산미술계가 김종식의 대표작가로 인식하는 데 합의해왔다면 앞으로의 일은 그 합의를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실천하는 일이다.

김준기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 김종식 20주기 심포지움 발제문

2008/12/25 13:31 2008/12/25 13:31

실재의 배제와 물질의 귀환 : 도태근

critic & column | 2008/12/24 13:25


실재의 배제와 물질의 귀환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은 형상을 다루고 서사를 다룬다.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이 물질의 본질에 천착하여 미술 내적인 문제로 환원하는 미술근본주의 입장을 취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미술은 실재와 관계 맺는 방식에 있어서 탈분화 내지는 탈전문화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 작품이 실재의 영역과 결별을 선언하고 단절의 선을 그었을 때, 기호의 삼각형을 이루는 세 가지의 요소들, 즉 기표와 기의와 실재는 서로간의 관계를 유기적인 연동의 맥락에 놓는 것이 아니라 탈맥락적인 단절의 상황에 놓이게 했다. 따라서 모더니즘 미술은 기표와 실재의 분화(分化), 기표와 의미의 분화를 결과했다. 반면에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은 이들 기표와 기의와 실재의 관계를 탈분화(脫分化)의 맥락위에 놓이게 했다.

도태근의 여섯 번째 개인전 타이틀은 ‘Transformation & Position’이다. 물성의 변용과 사물의 위치의 문제를 다루겠다는 선언이다. 그가 내건 슬로건에 비해서 그의 작품은 훨씬 더 무겁다. 무엇을 위해서 뒤바뀌는지, 어떻게 위치하고 있는지에 대한 그의 개념은 간단하고 명쾌하다. 도태근은 그동안 자연의 형상과 추상적인 기호들을 결합한 조각 작품들을 선보였다. 주로 브론즈 캐스팅으로 결과물을 낸 이 작업들에서 그는 형상과 추상, 곡선과 직선, 거친 느낌과 매끈한 느낌 등의 이분법적인 대립의 요소를 한 작품 안에서 결합시키곤 했다. 강선학이 ‘새로운 언어로의 이행’이라고 말하거나 이영준이 ‘시간의 발견’으로 정리했던 이들 작업은 은유적인 방식으로나마 서사의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이러한 시각언어의 확장 국면을 접고 물질로 회귀하는 환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도태근은 쇠를 자르고, 달구고 두드려서 우그러트리고, 다시 붙이고, 자르고, 두드리는 과정을 일삼았다. 작업을 하는 동안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쇠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는 쇠의 두께에 마음이 동했을 것고, 철판에 그림을 그린 후에 그것을 잘라냈을 때 쾌감을 느꼈을 것이며, 그 철판을 불에 달군 후 벌건 철판을 두드려 우그러트리는 과정에서 쇠의 물성을 규정하는 원초적인 특성에 새삼 감탄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쇠라고 하는 물질과 예술가 주체 도태근의 신체가 진지하게 만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도태근은 물질과 몸으로 만나는 것을 작업의 실마리이자 주요 과정으로 삼았다. 이러한 태도는 대다수의 예술가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문제는 도태근이 특정한 형상을 만들거나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는 철저하게 형상과 서사를 배제하고 있다.

그가 탐닉하고 있는 것은 시각언어의 서사기능을 원초적인 것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는 물성 그 자체에 관한 매우 탐욕스러운 집착의 단계를 거쳐서 모종의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각언어를 개발하는 일이다. 그가 창출해낸 기호들은 시각언어의 면면을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것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는 동일한 기법과 과정을 거친 낱낱의 요소들은 각각 다른 표정으로 색다른 느낌을 제시한다. 이러한 표정의 다양성을 노출하는 전술로서 등장한 것이 거대한 직육면체 프레임 속에 일정한 높이와 간격으로 낱개의 덩어리들을 매달아 놓는 방법이다. 이 대목에서 쇠의 물성 변용 과정을 거친 낱개의 조각들은 공간의 문제를 다루는 요소들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동일한 사물일지라도 그것을 바닥에 놓는 것과 공중에 띄우는 것이 체험의 차원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그의 설치 방식은 그러나 매우 엄격한 절제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특히 높낮이를 따로 두지 않고 일정한 높이와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낱개 조각들은 직선과 곡선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형태의 미묘한 변화들 속에서 각각의 다른 느낌들을 제시하고 있다. 도태근은 그 낱개의 군집을 묶어주고 있는 프레임 내부의 규칙을 단일한 방식으로 한정했다. 낱개의 요소들을 반복했을 때의 첫 번째 의도인 동일한 것 속에서 차이를 발견하려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절제의 극단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形-08>이라는 타이틀로 단일한 프레임 속에 도열한 쇠 조각들의 변주는 비슷한 모티프를 가지면서도 각자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쇠 한 판 속에는 세상에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려는 예술가 도태근의 조형의지가 담겨있다. 이들 50여점의 쇳덩어리 파노라마를 접하는 관객은 그 동일성의 반복 가운데서 또 다른 운율을 발견한다.

‘김도박’이라는 이름의 또래 작가들이 있었다. 10년 전의 일이다. 김현호와 도태근과 박은생 세 작가이다. 이들은 패기 넘치는 철재 조각 작품들로 부산 미술계의 젊은 조각가 그룹을 형성하면서 신진 대열에 올라섰다. 10년이 지난 근년에 들어 이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김현호는 철판을 잘라 작은 조각들을 이어붙이면서 모종의 형상을 만드는 작업을 선보였고, 박은생은 철판 조각들을 가지고 매우 간결한 형상의 자연이미지들을 재현하는 작업으로 전환의 국면을 맞이했다. 두 작가 모두가 쇠 작업으로 회귀한 것과 마찬가지로 도태근도 근작을 쇠 작업으로 처리했다. 세 작가 모두 쇠 작업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도태근의 행보는 다른 두 작가와 사뭇 다르다. 도태근 이외의 두 작가가 형상을 다루면서 서사를 구사하고 있는 반면에 도태근은 그 반대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도태근의 태도는 비단 김현호나 박은생 두 작가뿐만이 아니라 중견 대열의 대다수 작가들의 행보와도 확연하게 다르다. 그의 작품들은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말 수를 줄였다. 더 과격하게 근본주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도태근은 왜 서사를 거부하는가? 이야기하지 않는 미술로의 회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적잖은 시간동안 실재 속에 존재하는 미적 감성들을 캐내는 작업들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철판을 자르고 구부려서 물성 변용의 심미적 가치를 담아내는 단일한 아이템으로 중견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자신의 작업 여정에 터닝 포인트를 찍고 있다. 그것은 물질 그 자체로 이야기하려는 미술이다. 그 이야기란 세계의 존재와 사건을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매우 원초적인 이야기에 머무는 미술이다. 이것이 도태근이 마흔살에 접어들어 취한 미학적 태도이다.

재현 언어를 완전히 배제하려는 도태근의 태도는 매우 도발적이다. 그가 30대 초반 이후에 사물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시간성을 끌어들이면서 사건을 만들어 냈던 것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행보는 그 이전과 유사하다. 실재와 관계 맺는 방식과 그것을 통해서 서사를 구축하는 행보를 접고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실재의 배제는 실재의 귀환과 반대되는 역주행이다. 그것은 물질의 귀환을 촉구하는 환원적 태도이다. 실재의 귀환 국면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타고 순(巡)처세를 하기보다는 그 흐름을 거스르는 역(逆)처세를 하고 있는 도태근의 태도는 따라서 매우 문제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실재가 귀환하는 시대에 물질의 귀환을 호명하는 도태근의 역처세를 매우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언젠가는 또 다시 실재와 관계 맺으면서 또 다른 서사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과 끝내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시각언어의 핵심으로 파고드는 환원적 태도의 근본주의자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반반씩 공존하기 때문이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도태근 개인전 서문.

2008/12/24 13:25 2008/12/24 13:25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순환하는 통섭의 세계 : 김성연

critic & column | 2008/12/23 15:19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순환하는 통섭의 세계

첨단의 뉴미디어를 두루 섭렵하면서 도시 공간의 배리를 캐내는 리얼리스트 김성연이 색채와 선의 세계로 일관하는 브러쉬 페인팅에 천착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문제적이다. 그는 사진과 영상 작업을 디지털 미디어의 차원에서 다루면서 도시의 면면을 읽어내는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동시에 그는 브러쉬 페인팅이 가진 아날로그 미디어의 신체 친화적인 특성을 십분 활용하는 화가이다. 따라서 그는 아날로그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를 두루 섭렵하는 통섭의 예술가이다. 근 몇 년간 그는 ‘포장된 캔버스’나 ‘캔버스를 포장하다’ 등과 같은 주제로 체크무늬 페인팅을 선보였다. 그러나 김성연이 모더니스트들이 했던 것처럼 미술 그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 가령 물성의 문제나 색채 또는 선 그 자체를 생산하는 신체의 수행성 실험과 같은 환원주의자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캔버스를 감싸는 포장 문양으로 갤러리 공간을 찾는 관객에게 현대미술과 상품의 관계를 질문하는 김성연의 그림은 고도의 내러티브 구조를 내제하고 있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그것은 김성연의 태도와는 매우 동떨어진 곡해를 낳을 것이다.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다룰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체크무늬를 그리며 직선을 상하좌우로 직선만을 긋고 있는 김성연의 태도에 관한 부분적인 해답이 여기에 있다. 그는 체크무늬 그림으로 미술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포스터모던 시대의 미술, 그것도 사진과 디지털 미디어, 동영상과 인터넷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모더니즘 시대의 미술의 근간을 뒤덮는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의 구조가 충만한 시대이다. 날것의 포장 그림과 그것을 변용한 디지털 작업을 동시에 제시하는 김성연은 이러한 시대에 미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관통하는 세 가지 수순을 밟는다. 첫 번째 단계에서 그는 ‘포장을 풀다’라는 주제로 입방체의 박스를 해체해서 평면으로 펼친 후 그 위에다가 예의 그 체크무늬 페인팅을 가미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크기와 형태의 박스들을 예술작품 생산을 위한 오브제로 끌어들임으로써 이전에 캔버스에 포장지 문양을 그렸던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간 방식이다. 그가 사용한 박스들은 물감이나 모기향, 과일, 치킨 등의 상품을 담았던 종이들이다. 그는 정형화한 캔버스의 틀을 벗어나서 기성의 사물, 그것도 포장지 그림을 실제의 종이 박스 위에 그린다는 이중 장치를 도입함으로써 소재나 주제에 있어서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다. 그는 자신의 아날로그 페인팅을 디지털 이미지로 옮겼다. 포토샵으로 처리한 이 이미지들은 붓질 그림의 일품성을 또 다른 차원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자신의 그림을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하는 방식의 자기복제는 뉴미디어 시대의 예술노동에 관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 작업이다. 물감과 붓질의 느낌을 디지털 미디어의 정보처리 방식으로 변환함으로써 김성연이 얻어낸 이미지들은 선과 선, 색과 색의 경계를 흐트러트림으로써 새로운 양상의 판타지를 창출한다. ‘포장의 이면’이라는 제목의 이들 연작들에는 색과 선의 경계를 혼융하는 몰핑(morphing) 방식으로 드러난 작품이 있는가 하면, 화면 전체를 뿌옇게 처리함으로써 몽환적인 그리드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스푸마토(sfumato) 방식의 작품들도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이들 디지털 이미지들을 기존의 고전에 대입하는 방식이다. 먹그림의 필치를 포장그림의 컬러풀한 문양으로 대치한 김성연의 작업은 자기복제의 수준을 넘어서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차용하는 데에까지 나아갔다. 그것도 높은 수준의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고전 원본이 그의 체크무늬 그림 이미지 속에서 드러나도록 일종의 도발을 감행했다. 그가 선택한 고전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정선의 ‘무송관폭’,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이다. 안견과 정선, 김정희는 조선시대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들로서 각각 이상향과 실재, 그리고 이념의 세계를 대표하는 명작들이다. 원작의 선들이 포장 그림의 이미지로 치환되는 순간 원작의 먹선들은 컬러풀한 판타지로 거듭난다. 작게는 2미터에서 크게는 3미터에까지 달하는 이들 디지털 프린트 작업은 ‘포장의 이면’이라는 명제에 원작의 명제를 붙여놓고 있다.

그것이 유쾌한 상상력의 수준이든 아니면 물질 기반의 미술에 대한 도전적인 일탈의 수준이든 간에 김성연이 창출한 새로운 이미지들은 일루전의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 화가 자신의 손으로 그린 브러쉬 페인팅 이미지와 그것을 디지털 미디어로 재생산한 이미지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자리잡고 있다. 김성연은 상호 이질적인 두 요소들 사이의 분절을 넘어 통섭을 실천하고 있다. 그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이러한 관점은 지난 몇 년 사이의 작품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통섭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현재 모습을 과거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것은 김성연의 작품세계,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세 가지 방식의 작업들이 서로 순환하는 고리의 연계 속에 놓여 있다는 점을 보다 넓고 깊은 해석의 지평으로 확장하는 일이다.

우리가 사진이나 영상 매체를 다루는 리얼리스트 김성연으로부터 체크무늬 포장지 그림의 필연성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미술에 관해 오랜 시간동안 고민해온 면면에 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회화를 전공한 20여년전의 초기작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김성연은 재현회화의 기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학부시절인 1980년대 중반부터 재현회화가 아닌 방식의 회화작업을 해왔다. 물감 자체를 두터운 물질로 보일 정도로 도드라져보이게 사용하거나 과감하게 붓질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의 최기 회화들을 사각의 캔버스를 벗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캔버스가 아닌 비정형의 합판과 같은 오브제와 결합시키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말들, 해야 할 말들이 너무나 많았던 젊은 시절에 그는 말을 하지 않았거나 말하기를 거부했다.

시대정신이나 현실비판 등과 같은 내러티브 구축의 근본 요소들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회화 그 자체의 세계에만 머무는 것이 상당히 고통스러웠던 시대를 지나서 그는 설치와 사진영상의 세계를 만났다. 유학 시절의 그는 통나무와 같은 오브제는 물론 전화번호부나 신문 같은 생활 주변의 사물들을 작품의 도구로 사용했다. 노가리와 같은 식자제로 설치 영상 작품을 만들기도 했으며 티브이 화면을 박살내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상설치 실험을 하던 과정에서도 그는 비정형의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항상 그림을 그려왔다. 그것도 초지일관한 태도로 재현회화가 아닌 비정형의 그림 그리기였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자유를 억압해온 구체성을 띈 그리기의 규정과 강압에 대한 저항을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체크무늬와 같은 포장지 그림을 그리는 김성연의 작업 태도는 따라서 그림 그리기와 예술가 주체 사이의 매우 뿌리 깊은 숙명을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내낸 과정이다. 이미 199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체크무늬 그림은 비정형의 패턴이나 기호들과 결합하여 다양한 방식의 배열과 배치로 나타났다. 때로 그는 색채추상이나 표현주의적인 색면추상의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귀국 이후에도 그는 도시의 면면을 성찰하는 사진영상 작업을 하면서 그림 그리기를 지속했다. 그는 2006년에 한 백화점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상품유통 공간에서의 예술과 대중의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의 방식으로 포장 무늬 그림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화려한 시각기호들에 가려진 본질의 문제를 언급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몇 년간에 걸친 연작 작업들은 이번 전시회 출품작들을 통해서 포장의 이면 작업으로 이행하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미디어를 병행하는 예술가 주체로서의 일관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오늘날의 시각예술에 관해 질문하고 답하는 근본주의 입장을 가진 김성연은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 체크무늬 그림을 가지고 매우 육중한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있다. 포장지 그림 자체만의 메시지가 아니라 작가의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문제의식의 수준에서 그는 말없는 그림으로 말을 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미술이 손과 눈이라는 신체를 작동하여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아날로그의 세계와 디지털 이미지의 세계를 상호연동의 관계선상에 올려놓고 오늘날의 시각 문화가 얼마나 넓은 통섭의 세계 위에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바로 이것이 김성연이 제시하는 아날로그 페인팅과 디지털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고전에 대입해서 새로 만들어낸 혼성 이미지가 순환하는 고리로 연결되면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에 대해 깊은 울림을 제시하는 저간의 힘이 아니겠는가.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김성연 개인전 서문

2008/12/23 15:19 2008/12/23 15:19

그래요, 당신은 예술가입니다 : 젊은 모색 2008 리뷰

critic & column | 2008/12/22 21:06


그래요, 당신은 예술가입니다

가장 치열하게 예술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묻고 답하는 신진작가들은 예술가의 꿈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전력질주하는 무서운 아이들이다. 그들로부터 새로운 예술의 에너지를 수혈받은 예술계는 따라서 이들의 행보를 주목하는 여러 가지 관행과 제도를 만들어놓는다. 해마다 수천명의 예비 예술가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와 각계약진을 펼친다. 젊은이들의 꿈을 먹고 사는 예술계는 그러나 그 많은 욕망들을 모두 수용할 여력이 없다.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예술노동을 사회적 노동으로 구조화하지 못하고, 예술가들에 대한 생산적 복지 개념이 전무한 사회에서 예술가의 지위와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행군을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경로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예술가들이 인정투쟁의 장에 동참하면서 신진예술가의 반열에 오르는 시기부터 그들은 ‘나도 예술가’임을 자임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좌표를 묻고 답한다. <젊은 모색 2008>은 신진작가들에 주목한다는 포맷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정체를 되묻는 ‘나는 예술가다’라는 부제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전시는 대중주의에 영합하고 미술시장에 길들여진 예술과의 차별화를 선언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다루는 작가들을 고루 섞어야 하는 젊은 모색전의 특성상 단일한 서사에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모듬전이라는 특성을 가진 이런 종류의 전시는 매번 주제의식이 빈곤하다거나 전시의 문맥을 읽을 수 없다는 식의 식상한 비판에 직면하곤 했다.

이번 전시는 몇 가지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작동시킴으로써 그러한 시선을 불식시키고 과천발 신진 호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예술가 주체의 정체성을 묻는 문제의식의 설정이다. 그것이 작가들을 선정하기 전에 만든 것이든 아니면 작가선정이 끝난 후에 레토릭 수준으로 갖다 붙인 것이든 간에, 참여작가들의 면면은 예술가 주체의 정체성을 묻는 전시 부제와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 난삽한 미술계에서 나름대로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생각있는 작가들을 선정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인 것이 주요했다. 오늘날 한국 젊은 작가들의 문제점으로 꼽히곤 하는 상투적인 서사의 반복과 시장지향성이라는 난맥상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반가운 일이다. 게다가 예년에 비해 훨씬 잘 정리된 깔끔한 전시연출도 돋보였다.

한국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되묻거나 역사적 사건을 들춰내는 오석근, 나현, 위영일, 이재훈 이혜인 같은 작가들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성과 인식을 보여주었다. 주술이나 음란 등의 코드를 가지고 모종의 도발을 벌이고 있는 고등어와 이은실의 작업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강석호와 릴릴, 안두진 등은 실재와 이미지의 틈새를 발견하고 그 본질을 탐구한다. 미디어 사회의 판타지와 배리를 캐묻는 작업 권경환과 김윤호, 자본주의 사회 문명비판의 시선을 가진 김시원과 이완,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그 내면의 욕망기제를 들춰내고 있는 이진준이나 임승천 같은 작가들 또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세대의 비판적 지식생산을 모색하고 있다.

기획자 이추영 큐레이터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을 요청하고 있다. 이 전시는 동시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통해서 예술가 주체의 정체성과 예술노동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한다. 그들은 각자 ‘나는 예술가다’라고 말했다.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말할 차례다. “그래요, 당신은 예술가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건네는 것이 마냥 경쾌하지만은 않다. ‘나는 예술가다’라고 선언하는 일은 ‘나는 지식인이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이 매우 심난하게 스스로의 책무를 수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한국사회에서 예술가로 살아가기를 권면하는 것이 민망한 까닭은 말 안 해도 알만한 일이다. 그래도 신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서 예술의 길을 묻고 답할 수 있다는 점.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가!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 서울아트가이드 2009년 1월호 기고문

2008/12/22 21:06 2008/12/22 21:06

자율적인 공공미술과 예술공론장 : 안창마을

critic & column | 2008/12/17 05:55


자율적인 공공미술과 예술공론장 : 안창마을

도시의 구석구석으로 파고드는 새로운 미술이 번지고 있다. 도시를 관념적인 도시일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특별한 마을 또는 공동체로 인식하고 그 장으로 뛰어드는 미술. 도시와 동행하는 미술. 공공미술이다. 새로운 방식의 공공미술은 도시 공동체라는 삶의 단위와 직접 만나는 예술적 실천이다. 이 글은 필자가 최근에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부산 안창마을이라는 매우 특수한 도시에서 벌어진 예술 프로젝트에 관해 몇몇 가지 의 생각을 보텐 글이다. 부산의 미술가들이 참여와 개입의 원칙 아래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 온 것은 지난 수년간 진화한 한국의 공공미술과 그 흐름을 같이 한다. 부산대역 일대의 그래피티 작업들은 이미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봐도 그만한 사례를 보기 드물 만큼 풍부한 예술적 에너지로 넘쳐나고 있다. 부산의 젊은 그래피티 작가들을 비롯해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와서 자생적이고 창의적인 젊은이문화를 만들었다. 그 에너지가 이제 유휴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으로까지 퍼지고 있다.

<아트 인 시티 2006> 프로젝트는 부산에 본격적인 공공미술의 첫 삽을 뜬 사업이다. 부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된 수정동 프로젝트와 물만골 생태마을에서 벌어진 프로젝트는 예술가와 주민의 소통이 어떤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겠는지에 대해 많은 경험을 축적하게 했다. 공공미술은 공동체와 동행하기 위해 때로는 갈등과 소외의 상황까지도 감당해야했다. 이어서 벌어진 2007년의 안창마을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한 공공미술의 좋은 사례를 남겼다. 올해에도 안창마을에서는 젊은 작가들과 학생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좋은 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가장 큰 원동력으로 삼는다. ‘공공기금 없이도 계속 하는 프로젝트의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예술감독의 말은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이 있다.

2007년의 프로젝트는 안창고라는 아카이브공간을 남겼다. 마을입구의 시멘트 벽에 오리 조형물을 설치하고, 마을지도인 안창여지도를 그려내기도 했다. 마을의 빈집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영화제, 자료집발간, 벽화, 주택벽화 등 다양한 방식의 프로젝트성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오리고기 식당이 많은 달동네인 안창마을이 예술적 에너지로 충만한 공간으로 그곳을 찾는 발길이 늘어났다. 그러나 기금마련에 실패한 아트 인 시티 프로젝트는 단기 사업의 한계를 드러냈다. 연속사업을 구상했던 예술가들은 꿈을 접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공공기금이 없어도 공공미술을 지속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겠다는 소망은 예술가와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졌다.

작년과 올해의 가장 큰 차이는 기금의 성격이다. 지난해에는 공공미술추진위원회의 <아트 인 시티 2007>의 공모 프로젝트로 이루어진 반면에 올해에는 마을에 자리잡은 동구복지회관에서 어렵사리 마련한 소액의 기금으로 추진했다. 따라서 국가단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추진했던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프로젝트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로젝트의 지속성이라는 차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공공기금을 획득하고 그것을 성과 위주의 사업으로 간주하지 않고 주민들과 지속적인 연대를 모색한 커뮤니티 아트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첫해의 성과로 남은 주민들과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마을단위 공공미술 프로젝트 <2008 안창고 프로젝트 : 두 번째 이야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맞은 요즘 같은 시대에 예술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2008년 프로젝트는 벽화, 그래피티, 영상다큐, 번지표 작업, 자료집발간 등의 연속 작업을 남겼다. 결과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현장답사와 마을조사, 워크숍, 사업설명회, 주민참여 프로그램 등 꼼꼼한 사전 작업을 거쳤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예술감독 서상호를 비롯해서 최화나, 최은미 등의 스태프가 주민과 대화하고 참여작가를 꾸렸다. <번지표 리폼> 작업의 송성진, <파랑마을 영상페스티벌>의 정혜련, <릴레이 프로젝트>의 정윤선 등의 예술가들이 학생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마을 곳곳에서 작업을 벌였다. 이 작업들은 지난해에 비해 규모는 다소 작아졌지만, 예술가들의 자율성에 입각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사례를 만들기 위한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의 열기로 충만했다.

번지표 리폼 작업은 송성진을 비롯한 20여명의 학생들이 10개의 조를 꾸려서 1년 전의 같은 작업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은 프로젝트이다. 가정집의 대문 주변에 레고 블록을 붙이거나 만화 풍의 아기자기한 벽화를 그리고, 작은 조형물을 부탁한 이 작업들은 가장 주민친화적이며 생활공간에 최대한 근접한 결과물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대문 옆 담벼락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재치와 해학을 동반한 작업들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정윤선이 구린 릴레이프로젝트는 <웰컴 투 안창>이라는 벽화 만화 작업을 남겼다. 13명의 학생들이 동참한 이 작업은 지속성을 최우선의 목표로 두고 마을의 삶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냈다. 이밖에도 부산의 판타지를 부추기는 광안대교를 거대한 벽에 그려넣음으로써 거리 공간을 환기하는 작업과 만원짜리 지폐 이미지를 차용한 그래피티로 눈길을 끌고 있다.

기획의도에 밝히고 있듯이 안창마을은 소외와 단절과 배제의 공간이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안창마을을 잊고 살려고 한다. 그러나 부산 도심을 발아래 두고 산허리에 자리잡은 안창마을은 거대도시 부산이 배태한 또 다른 부산이다. 그 현실을 망각하고자하는 거대도시의 배리는 마을의 삶을 또 다른 욕망을 낳았다. 오랫동안 지지부진하게 이어오는 재개발 논의가 잊을만하면 한번씩 뒤숭숭하게 마을을 휘젓기도 한다. 이러한 팍팍한 현실 앞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벌이는 예술가들의 실천은 따라서 자폐적인 작업공간의 논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주민들과 접촉해서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부터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떤 장소에 어떤 작업을 실행할 것인가에 관한 명쾌한 해답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하나 일마리를 풀어나가야 하는 막막함까지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 프로젝트는 진화하고 있는 공공미술의 현재진행형이다. 주문생산으로부터 자생적인 커뮤니티 아트로 한단계 성숙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안창마을로 뛰어든 예술가들이 마을을 대상화 시키지 않고 그 속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예술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절묘한 균형감각으로 끌어안으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앞으로도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율성의 영역에 뿌리를 둔 채 예술활동을 통해서 공공영역을 형성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예술가에게 주어진 자율성이라는 덕목이야말로 공공미술의 이름으로 예술가에게 주문생산을 요청하는 시대에 예술적 실천의 근본적인 힘을 신뢰하게 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예술적 자율성은 예술가 주체의 창의력과 진정성을 발휘하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공공미술의 공공성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작가의 일